사무실로 들어가는 박 팀장의 뒤를 쫓아가며 허 형사가 말했다.
-아들이 뭐?
박 팀장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직계 유가족으로 아들이 하나 있는데요. 위로 형과 어머니가 다 사고로 죽었답니다. 그런데 두 번 다 사고 현장에 그 아들이 있었습니다. 유일한 목격자이기도 하고. 형이 죽었을 때는 같이 차를 타고 있다가 혼자 살았고요.
-그래? 이번에 외국 출장 나갔다는 그 아들?
-네.
-그러면 용의자는 아니네.
-그게 아니고, 인생이 참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형이 죽는 현장에 있었지요, 잠깐 다른 일 하는 사이에 어머니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고, 이번에는 외국에 가 있는 동안에 아버지가 살해를 당했으니. 기구한 인생에 기구한 집안이지요.
영권은 경찰서장과 통화를 끝낸 후 전화를 내려놓았다. 무조건 잡으라고. 그것도 빨리. 그게 당신이 할 일이잖아. 큰 소리를 내어서인지 목이 간지러웠다. 가래가 목 안쪽에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으흐헉크. 억지로 한 기침에 가래가 튀어나와 명패에 붙었다. 노랬다. 허, 좋으면 나도 하려 했는데 말이야. 그는 만식이 이식받은 인공 폐의 성능과 만식의 경과를 본 후 인공 폐 이식을 받으려 했었다. 그의 심장은 이미 인공 심장이었다. 협심증 진단을 받고 관상동맥우회로수술과 나노 로봇 시술, 스텐트 시술 사이에서 고민하던 영권에게 만식이 인공 심장 이식을 권했다. 그는 만식의 조언을 따랐고 만족했다.
영권은 티슈를 뽑아 가래를 훔쳤고 안경 닦이 천을 꺼내 명패를 닦았다. 은근한 초록의 옥에 금으로 새겨진 이름. 국. 회. 의. 원. 김. 영. 권. 만식이 선물해준 명패였다. 몇 대 국회의원인지 숫자는 쓰여 있지 않았다. 계속할 건데 번거롭게 숫자를 왜 쓰나? 할 때마다 새로 만들려면 아까워. 만식은 영권과 눈을 맞추며 영권의 손에 명패를 쥐어주었다. 삼십 년 전의 일이었다. 영권은 이후로 삼십 년간 명패를 바꾸지 않았다. 값이 만만치 않은 고급의 명패라 새것으로 바꿀 필요가 없기도 했고, 삼십 년째 같은 명패를 사용하는 검소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만식에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정치인으로서 영권을 믿고 후원해준 만식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당신이 만든 정치인이니 끝까지 책임지라는 뜻이기도 했다.
영권의 원래 이름은 영달이었다. 국민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정치인의 이름이 영달이 뭐냐며 만식이 권한 이름이 영권이었다.
-유권자들이 물어보면 ‘찰 영盈자에 돌아볼 권眷자라 말하시게. 항상 뒤를 돌아보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채우라는 뜻입니다.’하고 대답하고. 스스로 다짐할 때는 ‘길 영永자에 권세 권權자, 영원한 권력이다.’하고 생각하시게. 권력은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네. 한 번 잡은 것은 절대로 내어놓지 마시게.
영권이라 이름을 지어주며 만식이 말했었다.
정치를 시작한 이래로 일곱 번의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중 두 번의 선거를 제외하고 다섯 번의 선거에서 영권은 승리했다. 그 두 번 중 한 번은 정치권의 물갈이 열풍을 피하기 위한 불출마였고, 나머지 한 번은 국민 기본 소득 개헌 정국에서 던진 정계은퇴라는 승부수였다. 물론 그는 정계를 떠나지 않았다.
선거에서 패한 적 없는 그였다. 그의 득표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갔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이었다. 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선거에서 질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노인들의 표, 노인이 될 유권자들의 지지만 굳게 쥐고 있으면 될 일이었다. 영권의 소속 상임위가 삼십 년째 노인복지위원회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제는 좀 더 큰 자리에 오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다섯 번째 국회의원 당선 후 후원인 모임에서 한 지지자가 말했다. 그렇지. 옳소. 이곳저곳에서 찬성의 말들이 쏟아졌다. 영권이 두 손을 들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영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좀 더 큰 자리에 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십 년 이십 년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르고 나면 내려와야 합니다. 그 자리까지 올랐던 사람이 다시 국회의원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 이름이 뭡니까? 영권입니다. 영원한 권력. 지금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영원한 권력이 되지 못합니다. 나중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맨 마지막에, 이번에 하고 나면 더 이상 못하겠구나, 저세상으로 가겠구나 싶을 때, 그때 높은 자리에 오르겠습니다. 그래야 제가 살아 있는 시간 중 일 분 일 초의 빠짐없이 여러분을 도와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말씀해주신 그 말들, 마음들. 기억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변치 않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말을 하는 중에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말을 마치자 모두들 일어나 박수를 쳤다. 후원회장인 만식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며 영권과 러브샷을 했었다. 그런데 만식이 죽다니. 영권은 아쉬웠다. 그리고 슬펐다. 잠깐, 아주 잠깐.
만식은 갔지만 만식의 돈은 그대로 남았다. 장례식장에서 만식의 유일한 자식, 필립의 얼굴을 보았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목이 쉬지도 눈두덩이 부어 있지도 않았다. 만식의 아들이 아니었던가. 이 정도에 감정이 흔들릴 집안이 아니다. 필립은 조용한 장례를 원했겠지만 영권은 그럴 수 없었다. 필립 앞에서 강한 분노와 규탄의 말을 쏟아냈다. 후원자들에게 보이는 결기였다. 필립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 소설가 김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