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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

등록일 2022-04-07 18:22 게재일 2022-04-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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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영

허공의 담즙이 흘러내릴 때

꽃은 다 쓴 생리대 하나씩 머리끝에 매단다

숨어서 냄새를 피우려고

결국 시체가 되려고

꽃은 핀다

 

허공에서

입술을 오므리고 있는 자줏빛 꽃잎들

 

사람들은 낯선 꽃이 피었다고

슬슬 피하기 시작한다

허공에 뱀 대가리 활짝 핀다

말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꽃송이

아름다운 독종이다

시 쓰기를 삶의 소화 과정이라면, 시 쓰기 속엔 담즙이 흐르고 있을 것인데, 이 시에서 담즙은 특이하게도 생리혈로 치환된다. 수정하지 못한 시간은 썩은 채로 쌓여 있다가 담즙에 의해 소화되면서 생리혈이 되어 배출된다. 그러자 자줏빛 맨드라미 꽃잎이 피에 젖어 있는 “다 쓴 생리대 하나씩 머리끝에 매”달며 피기 시작한다. 시의 탄생이다. 이 자줏빛이 지금은 고인이 된 박서영 시의 특색이라고 하겠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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