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외향
빛무리와 엉키고 설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체위로 불어오는 바람만이
수억만 년 길러온 머리카락을 지상에 드리우며
앙상한 늑골의 흔적을 남길 뿐이었다
길 없는 길은 나를 어디에도 내려놓지 않았다
계속 나아가라는 뜻인지 그만 멈추라는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전언이 세상에 가득했고
손톱 밑에 가득 박힌 시간의 알갱이를 세며 나는
날개를 떼어 놓고 가버린 새들의 근황이 문득 궁금해졌다 (부분)
인간적인 것이 감히 틈입할 수 없는 절대적 공간. 이곳에 주름 잡힌 시간의 겹은 엄청나서 시인의 손톱 밑에까지 ‘시간의 알갱이’들이 가득 박혀 들어갈 정도다. 바람으로 상징화된 비인간적 시간의 힘은 모든 것을 소멸시켜 먼지로 만들어버린다. 새들조차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 몰라 “날개를 떼어놓고”는 없어져버렸다. 이렇듯 광활하고 장대한 환몽에 압도당한 시인은 ‘몽유병자’처럼 그 ‘길 없는 길’을 걷고 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