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기
해도 빨리 자리를 거둔 異國의 낯선 교정
흐린 저녁은 비가 되고, 강의 실 창문을 열면 한 장 검정 도화지처럼
내 가슴을 닮아 어두워오는데
학교가 먹은 나이와 같다는 교정 한 가운데 은행나무
바람에 불러 소리칩니다, 놀러 나간 어린 나무들에게
이제 깜깜해졌다 집으로 들어오너라
바깥 풍경은 점점 도화지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요, 나는
어린 나무가 되어 달려나갑니다, 가는 동안
머리에 어깨에 조금은 비를 맞지만요.
이국의 풍경이 낯설어지면서 시인의 마음도 어두워진다. 그 마음의 어둠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학창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면서, 시인은 그리움을 느낀다. 그리움의 부름에 답한 것이 “학교가 먹은 나이와 같다는” 은행나무의 출현이다. 저 나이 든 은행나무는 어머니처럼 “집으로 들어”오라고 부르고, 이 부름에 응답하면서 시인은 ‘어린 나무’가 되어 어둠을 털고 집으로 달려가는 어린 시절의 아이가 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