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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판집

등록일 2022-03-29 20:21 게재일 2022-03-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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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식

산판도 없는 겨울

산판집에서 겨울을 나는 사내는

눈이 나리면 부지런히 길을 쓸고

누가 다녀갔는지 인적도 찾을 길 없다

그렇게 겨울을 지날 때

푸른 밤하늘에 정점으로 박혔던 간결한 달이

방 안으로 조금씩 녹아드는 거다

 

 

손가락으로 기타 현판을 천천히 끄는 소리처럼

산판집 사내가 이불을 스스슥 끌어 올려 얼굴을 덮는다

그 소리에 놀란 고양이들은

더러 죽은 자의 집에서 떠나기도 했다

산판집 겨울은 꽃도 있고 나무도 있어

봄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부분)

 

‘산판’은 “나무를 찍어내는 일판”이라고 한다. ‘사내’는 그러한 일판이 없어 텅 빈 “산판집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그는 유령처럼 보인다. 화자가 이 산판집을 “죽은 자의 집”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래서 저 ‘산판집’의 겨울은 봄이 필요하지 않다. 그곳은 인간의 소망이 필요하지 않는 공간일 테니까. 그곳에서 산고양이들도 피하는 어떤 사내가 외로이 홀로 살고 있는 이 풍경은 극도로 쓸쓸하고 을씨년스럽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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