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화악산 날 등 바위 한 발 나가면
한 발 밀리고 아이젠 신고도 미끄러지는 눈길, 낯설다
다음 세상 찾아가는 길이 이럴까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한 장면,
누가 도끼로 찍은 것처럼 간밤 내린 눈에 잘생긴 소나무 정수리 쪼개졌다
제 몸통 제가 반 갈라 올리는 소신공양이다
(….)
하얗게 꽁꽁 염했다, 지난 밤 컴컴한 시간
화악산 골짝마다 쩡, 쩡, 소나무 몸 열리는 소리 컷겠다
그 때 어떤 영혼이 경계를 넘었을라나
팔다리 흔들면서 걷는 내가 도무지 내가 아닌 것 같다
꽃피고 새가 울면 사라진 길 다시 만나는 걸까
바람도 숨 쉬며 하늘과 땅 사이에서 논다
시인은 “화악산 등 바위”에서 미끄러지면서 죽음과 맞닥뜨린다. 그러나 그 죽음과의 마주침이 시인에게 공포를 가져다주지는 않은 것 같다. 눈으로 “하얗게 염”한 소나무의 “어떤 영혼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었을라나” 추측하고 있는 모습은 공포에 사로잡힌 자의 모습이 아니다. “꽃피고 새가 울면 사라진 길 다시 만나는” 미래에 대한 낙관 또는 윤회론이 시인을 공포에서 자유롭게 해주었기 때문이리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