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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등록일 2022-03-22 18:11 게재일 2022-03-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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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냄비는 삿포로 라면을 끓여낸다 / 냄비는 동원 참치국을 끓여낸다 / 냄비는 오뚜기 옥수수 스프를 끓여낸다 / 냄비는 파 마늘 햄 미역 깨소금 담고 미역국 끓여낸다 / 냄비는 모든 것을 담고 모든 것을 끓여낸다”

김응교 시인의 시집 ‘씨앗/통조림’(하늘연못, 1999)에 실린 두 연짜리 시 ‘냄비’의 첫 연이다. 식구를 한국에 남겨 두고 1996년에 도쿄외국어대학에 공부하러 가서 와세다대학에서 객원교수로 강의하다가 귀국하기까지 12년 동안 일본에서 혼자 생활해야 했던 시인에게 냄비는 소중한 살림살이 도구였을 것이다. 그러니 냄비밥, 냄비국깨나 먹었으리라는 추측은 추측도 아닐 터.

라면 하면 냄비다. 그중에서도 포르르 빨리 끓는 양은 냄비가 그만이다. 양은은 구리에 아연과 니켈을 섞어 만든 은색의 합금이다. 우리가 흔히 양은 냄비라고 부르는 노란색 냄비는 양은이 전혀 사용되지 않고 실제로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으며 여기에 노란색을 내기 위해 알루미나라고 하는 노란 코팅제를 입힌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냄비에 물을 끓이면 알루미늄이 용해되어 나오고, 알루미늄이나 알루미나는 모두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때문인지 집집마다 한두 개씩은 있었던 양은 냄비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몇몇 분식집에서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값싸고 가벼운 양은 냄비의 자리를 이제는 스테인리스, 법랑(세라믹), 내열유리, 통주물 등 다양한 재질의 냄비들이 차지하고 있다. 유치한 노란색이 아닌 은은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려한 꽃무늬로 치장한 영국제, 독일제, 프랑스제 고급 냄비들이 주방 선반 위아래에서 한껏 그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양은 냄비마냥 쉬이 식지 않고 보온성 좋은 국산 냄비도 쌔고 쌨다.

우리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 쓰는 말 가운데 냄비 근성이라는 게 있다. 빨리 끓기도 하지만 빨리 식어버리는 양은 냄비에 우리를 빗댄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성향은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닌, 이슈에 확 관심을 가졌다가 곧바로 잊고 마는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 성향이라는 주장도 있다.

새 대통령 당선자(헌법에 따르면 ‘당선인’보다 ‘당선자’가 적절한 표현이라고 한다.)는 당선된 지 10여 일만에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기로 확정하였다. 양은 냄비에 라면을 끓이는 것과 같은 속전속결 빠른 결정이었다. 광화문 시대 공약은 무색해졌다. 광화문이건 용산이건 ‘국민 속으로’라는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국민’의 여론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빠른 결정만큼 빠른 방향 전환이나 철회가 있을 수 있겠다. 반대론도 그렇다. 양은 냄비처럼 빨리 사그라들 수도 있고 뚝배기처럼 오래가거나 보온밥솥처럼 계속 뜨거울 수도 있겠다.

내 머릿속에서도 말이 끓는다. 하여, “냄비는 늘 싱싱한 생선을 주는 깊은 바다 같다 / 냄비는 헉헉헉 뜨건 숨 뿜으면서도 / 냄비는 수명 다할 때까지 / 냄비는 군소리 없다”라는 시의 2연으로 ‘군소리’를 식혀 없애고 만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담고 모든 것을 끓여” 낼 맛깔난 정부를 정녕 바라면 안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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