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점숙
시간의 무게에 눌린
수많은 선과 선 사이
사람의 인연들이 적멸의 색 입히니
화공은 번짐의 붓끝으로
마른 혼을 덧칠한다
오래 묵은 빛깔은
어둠과 닿아 있어
응어리진 마음까지 색이 번진 울음이 깊고
비워둔 허공의 침묵은
살아 못 건널 강이다
내 보았던 사람은 늘 바람숲에 있었다
육신을 비워 꿈꾼 자유를 위해
침침한 미소를 걷은
실핏줄을 더듬어간다
그어진 한 선에서 시간의 무게를 읽고, 선과 선 사이에서 인연의 적멸을 읽으며, 선의 번짐에서 적멸 속의 혼을 읽는 시인의 그림에 대한 응시는 삶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숙고하게 만든다. 시인은 나아가 선의 빛깔 변화와 선과 선 사이의 여백 속에서 어둠, 울음, 허공의 침묵을 읽어내고, 이와 함께 행간의 여백은 다시 삶과 죽음, 자유와 허공의 변증법을 시조의 정형적 형식 자체에서 음미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