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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등록일 2022-03-20 20:20 게재일 2022-03-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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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문학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입장 차이일 수도 있지만 세대 차이이기도 하다. 사회적 이슈를 다룬 문제일수록 세대 차이가 더 느껴진다. 현직 국어교사들이 편집한 청소년 참고서에 실린,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읽는 관점에도 세대 차이가 나타난다.

월가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필경사 바틀비는 변호사가 하라는 일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번역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답하면서 거부한다. 선생님들의 작품 해석은, 바틀비를 채용한 변호사를 근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고용주로 보고, 바틀비의 거부를 체제에 대한 ‘수동적 저항’으로 해석하고 체제를 비판하는 인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해서 청소년들은 변호사는 충분히 바틀비에 공감하려고 충분히 노력했고 바틀비의 거부가 무리하다는 점을 들며 선생님들의 해석에 이의를 저항한다.

‘필경사 바틀비’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번역도 많지만 논문도 엄청나다. 그중에는 끝까지 바틀비를 책임지지 않았다고 변호사를 비난하는 관점, 바틀비를 통해 변호사가 변해가는 모습에 주목하는 입장, 바틀비의 행동이 이해 불가라는 논문도 있다. 세계적으로 이 작품에 대한 논문이 몇백 편이고 해석하는 관점도 수십 가지이며, 심지어 현대의 내로라 하는 사상가들이 이 작품을 통해 자기 철학의 관점을 정립했다고 한다. 이런 작품을 도식적으로 해석해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나 전광용의 ‘꺼삐딴 리’의 작품 해석도 예외는 아니다. 학교에서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 대해 세입자 권 씨는 순수한 사람이고 비정한 산업사회의 피해자인데 비해, 집주인 오 씨는 이해타산적이라고 해석한다.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은 일제 강점기 때도, 소련 점령 때도, 월남 후 남한에서도 사회 공동체는 신경 쓰지 않고 혼자 잘먹고 잘살았다는 이유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를 읽는 청소년들의 독법은 다르다. ‘아홉 켤레’의 집주인 오 씨가 세입자를 어디까지 도와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꺼삐딴 리’ 이인국에 대해서도 이인국의 능력을 부러워하며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독법을 틀렸다고만 할 수 있을까?

구두 아홉 켤레를 가지고 있는 세입자 권 씨는 정말 순수한지, 집주인 오 씨는 어떤 사람인지, 이인국의 잘못은 뭔지,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바틀비의 거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바틀비를 고용한 변호사는 바틀비를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청소년의 생각에 귀 기울이고 같이 토론해야 할 때가 왔다.

이런 질문으로 토론하다 보면, 삶과 공부가 일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대 간 소통도 가능해질 것이다. 정답을 낼 수 없는 작품을 도식적으로 해석해주고 문제 내고 채점하는 방식을 고집한다면, 세대 갈등은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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