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환
십자가는 죄인을 죽이는
아주 불길한 나무로 만든 형틀이었다
이름도 음습한 사형대
그런데, 누가 그곳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나
신성한 그림자
흡사 밤의 어둠이
밝은 낮을 만들듯이
어두운 밤은 홀로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리기에 적당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만든 십자가의 그림자. 이 그림자는 밝은 곳에서 보이지 않고 어두운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 홀로 기도를 드리기에 적당한 어두운 밤에서야 비로소 그림자는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이 그림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명료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그림자에서 우리는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을 경험하기에 사물에서 그림자를 찾아내는 일은 사랑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