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수
시는 어디로 갔나
앞에서는 높은 빌딩들이 줄줄이 막아서고 뒤에선 인터넷의 바다가 출렁이고
머리 위를 번개처럼 가로지르는 핵탄두 미사일
인도의 새끼코끼리 귀만한
광화문 네거리 플라타너스 새 잎사귀에 머물었나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3층 완구점에서 내려
파란 스웨덴 인형의 눈알 속에 숨었나
핸드폰 뚜껑 속 번호의 유령
리모컨으로 조종하면
스크린에 알록달록 빈 그림자들이 뜬다
시는 어디로 갔나
서울역 앞 지하에서 너끈히 사흘을 굶은
풋내기 노숙자들의 체중에 휴지로 밟혔나
높은 빌딩이 거리를 점령하고 인터넷이 소통 방식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시인이 겨우 시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도심의 플라타너스 잎사귀나 수입 인형의 파란 눈알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유령 같은 ‘알록달록’한 시뮬레이션이 우리들의 감각을 사로잡을 뿐이다. 현란한 허상의 세계가 삶을 지배하고, 실제 삶은 비참한 이 세상에서 시가 살아남기는 힘들다는 것이 시인의 판단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