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나무가 제 높이를 무너뜨려 피워올린
불꽃처럼, 새는
날개 밑에 층층이 석양을 쌓아 올린다
죽은 자의 이름으로 당도해도
죽지 않는 바람, 오늘은
남포에서 조개를 굽는다
(중략)
눈먼 자만이 날개를 달리라 처음 불 앞에 선 것처럼
가장 환한 곳부터 까맣게 타
서둘러 캄캄해지는 먼눈으로
장님의 걸음만이 바다를 건너리니
죽은 자의 이름으로 당도하는
여기 바람의 화장터,
어디에서 저물어도
밤은 허물밖에 내주지 않는다
(부분 발췌)
석양은 죽음의 운명을 향해 바다 건너로 날아가는 새들이 자신을 불태우며 마련한 불꽃이다. 그리고 바람은 “죽은 자의 이름으로 당도”한, 죽은 자를 불태우며 불타고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흐른 후인 밤에는 허물밖에 남지 않지만, 바람은 뭇 생명들을 죽음으로 이끌면서도 정작 자신은 “죽지 않는”다. 죽음과 삶의 겹침을 통해 이어지는 바람은 시간에 주름을 만들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