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추절
골목 꿈속까지 밝히던 보안등과
장마철 하수도를 역류해 스멀스멀 차오르던 미류나무
수만의 잎 흔들어 머리속 하얗게 지우던 미류나무
썩는 냄새와 붕붕거리던 왕파리와
몸 부벼 속삭이던 낮은 풀들과
골목 한가운데 눈 까뒤집고 넘어진 쥐
기어이 웃음 하나씩 켜 들던 이름 모를 꽃들과
약 먹은 쥐 먹고 개거품 물며 나뒹굴던 고양이
가끔씩은 이것들의 얼굴 어루만지던 바람과
그 여름끝 며칠만에 발견된 망뚱 할매의 여비 없이 떠난 하늘행
당신과 함께였던 한 여름 그곳
재개발이 한창이더군요
하지만 내 마음 아득 생생한 변두리는
어떤 기계도 허물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였던” 추억의 장소는 현재 재개발 중인 도시 변두리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더러움과 죽음이 ‘미류나무’, “속삭이던 낮은 풀”, ‘기어이’ 핀 꽃, ‘가끔씩은’ 불던 바람과 대비되면서 공존한다. 이 대비 때문에 “당신과 함께였던” ‘그곳’에서의 시간은 우울하면서도 아름답고 숨 가쁜 것으로 기억되는지 모른다. 시인은 이 장소가 허물어지더라도 마음 속 추억의 공간만은 허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