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림
아무도 모르게 달려온 시간들이
들녘에 깔려 밤을 재촉한다
길게 울며 언덕을 내려가는
염소들은 이제 밤을 볼 것이다
구름들은 추억을 볼 것이다
더욱 급하게 시간들은 들을
뒤덮고 염소와 나무들은
어둠속에 있다 우리는
모두 어둠속에 있다
걸어온 길의 발자국을 기억하는데도
우리는 숨가쁘다 대지는 신음으로
가득하다 언제 우리는 밤과 함께
독이 될 수 있으리오
낮에서 밤으로 뒤바뀌는 시간, 이제 구름들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몸을 감출 것이다. 우리가 걸어왔던 흔적들인 발자국도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될 것이며 풍경은 그야말로 적막과 망각 속으로 빠져들어 갈 것이다. 시인은 새벽이 아니라 밤과 함께 더 깊어지는 시간, 우리가 독이 되는 시간을 기다린다. 종말에 대한 예감으로 가득 차 있는 위의 시는 밤으로 표상되는 정지된 시간을 전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