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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한숨 잔 이유

등록일 2022-02-06 20:08 게재일 2022-02-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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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토끼는 거북이가 느리다고 자꾸 놀렸어요. 그러자 거북이가 토끼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어요. 토끼는 바로 승낙하고 시합에 나섰지만 한숨 자다가 거북이에게 지고 말았어요.”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다. 거북이의 꾸준함과 토끼의 어리석음이 한눈에 대비되어 보인다. 실제로 이 우화는 거북이의 우직함을 칭찬하거나 토끼의 자만을 나무라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간단한 이야기 같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아리송하다. 토끼의 잘못을 나무라는 것은 자기보다 많이 느린 거북이와 달리기 시합을 할 때 기를 쓰고 달렸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정말 토끼에게 거북이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달리라고 해야 하나? 한숨 잔 토끼를 게으르다고, 어리석다고 탓하는 것은 약자와 경쟁하는 기득권자를 채찍질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거북이의 성실함을 칭찬하는 교훈으로 받아들이기에도 문제는 있다. 태생적인 약점을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특이하거나 영웅적인 사례를 일반화하여 약자를 다그치는 것은 가혹하다. 한때는 잠자는 토끼를 깨우지 않고 혼자 갔다고 거북이를 나무라는 논리가 인기 있었다. 그러나 이미 불공정한 게임에서 약자에게 강자를 도우라는 요구는 연대나 배려의 의미를 오남용한 것이다.

진호(가명)는 느린 학습자라고 불리우는 소년이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해 두려움이 많다. 며칠 전 진호와 ‘토끼와 거북이’를 읽으며 거북이는 왜 토끼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을까, 토끼는 왜 한숨 잤을까 물어보았다. 진호는 먼저 이런 말을 한다. 왜 이기는 것만 말해요? 체력이 좋아진 걸로 말하면 안 돼요? 아하, 정말 그렇구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어도 체력이 늘었을 테니 지더라도 의미가 있네. 그러자 뒤이어 이렇게 말한다. 토끼는 일부러 낮잠을 잤어요. 거북이에게 힘을 주고 싶어서요. 거북이는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어서 시합을 한 거예요.

학식 높은 어른들도 생각하지 못한 진호의 해석에 머리가 띵했다. 도대체 왜 우리는 토끼를 교만한 게으름뱅이로만 해석했을까? 왜 토끼가 거북이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달렸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거북이는 잠자는 토끼를 깨워 같이 갔어야 한다는 논리에 왜 동조했을까?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어른들, 공정의 프레임에 갇힌 어른들, ‘함께’를 오용하는 어른들을 진호는 멋지게 한 방 먹였다. 진호가 이런 말을 하기까지 혼자 겪었을 고통의 시간을 조금은 짐작하기에 울림은 더 컸다.

그런데 진호 친구들은 진호를 위해서 낮잠을 자줄 수는 없을 텐데, 거북이처럼 달릴 수 있겠어? 네.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네. 저는 할 거예요. 진호, 참 장하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츤데레 토끼와 우직한 거북이가 많아지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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