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봉
나무는 연주를 마칠 때마다 몸 속에
하나씩 나이테를 그린다
나무 몸 속에 매미와 뻐꾸기
태양과 별의 숙명이 머물고
나무는 명상한다. 정적과 혼돈 뒤섞인
끝없는 생명에 대하여
한 알 과일을 먹은 뒤 오래도록
우리 입 속에 남는 과일의 향연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과즙이여
나무 악기의 음률이여
오래도록 행복해지는 우리여
나무 악기의 빛, 나무 악기의 어둠
허공과 영혼을 소진하고, 시간을 금빛으로 소진하고
이 세계의 생명으로 스며드는 침묵의 탄주여
대지로부터 하늘로 치솟는 악기의 소용돌이여
나무가 자기의 온몸으로 일하여 맺은 한 알 과일 안에는 온 우주의 드라마가 들어가 있다. 그 과일이 선사하는 감미로운 미각은 나무가 “허공과 영혼을 소진”하면서 온몸으로 연주하는 음악의 음률이다. 그 달디 단 음악에 ‘우리’는 “오래도록 행복해”진다.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별의 숙명”이 바로 그 우주의 음악일 터, 우리는 과즙을 먹으며 그 음악에 참여하면서 하늘로 상승하고 별과 태양을 맛본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