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호
재건축 현장
흙을 파헤치는 곳마다
도난당했던 내 기억의 늑골이 발굴된다
매립되었던 꿈의 모서리가 노출되고
뾰족한 기억으로부터 물길이 치솟는다
공사에 동원된 인부의 이름이 기록된 수첩과
낱장의 설계도, 바람 섞인 햇살
부러진 손톱과 핏방울이 말라있는 기초의 순장
거대한 뿌리가 햇빛에 조명되는 시간은 짧다
시인은 자신의 ‘기억’이 중장비에 의해 파헤쳐지는 현장에 서 있다. 그 현장을 보고 있는 시인은, 동시에 자신의 기억 역시도 파헤쳐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시인 내면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던 “거대한 뿌리가” 지상에 드러나는데, 그렇게 드러난 ‘기초’들이 조명되는 시간은 짧다. 하지만 시인은 그 다시 매립될 시인의 꿈과 기억으로 이루어진 삶의 뿌리들, 그 ‘기초들’을 포착하여 시화(詩化)하고자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