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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우는 소리

등록일 2021-12-15 20:06 게재일 2021-12-1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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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항복을 하자 독일에 사는 프랑스 사람들은 나치경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본 회퍼는 반 나치주의자 답지 않게 나치경례를 하라고 했다. 사람들이 본 회퍼를 향해 변절자라고 비난을 했다. 나치경례를 거부하던 자들은 나치의 탄압에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제 목숨 살리기 위하여 망명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나치경례를 용납했던 본 회퍼는 히틀러에 저항하다 형무소에서 처형을 당했다. 본 회퍼에게 경례하는 일은 목숨을 걸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목숨을 아껴 두었다가 정말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그는 도망가지 않고 용감하게 목숨을 바쳤다.

예수께서 로마의 병사들에게 잡힐 때에 베드로가 칼을 빼 들고 용감하게 저항했다. 그때에 예수는 칼을 거두고 저항하지 말라고 하면서 순순히 포박을 받았다. 그렇게 목숨 바쳐 싸우려 했던 베드로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형장으로 가자 자기 목숨 살리기 위해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거짓증언을 하면서 도망갔다. 베드로는 작은 일에는 목숨을 거는 듯 했지만 정작 큰일에는 목숨을 바치지 않았다. 반면에 예수는 작은 일에는 목숨을 걸지 않았지만 큰일에는 목숨을 바쳤다. 인간사가 그렇다. 잘 나갈 때에는 간이라도 빼어 줄듯 온갖 아부를 다하며 선봉에 서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다. 함석헌 선생이 어려운 일을 당하자 평소에 늘 주변에 알랑거리던 사람들이 다 떠나갔다. 함 선생은 “만 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하며 탄식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 뱉는 것이 인간지사(人間之事)이고 보니 우리 사는 세상이 감탄고토(甘呑苦吐)의 기회주의 소인배들의 난장판이 될까 걱정스럽다. 공자가 말하길 “성인은 내 아직 보지 못하였지만, 군자만이라도 만나 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성인 같은 요순임금 이후에 권력과 사리만 탐하는 소인배 임금들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나라가 그렇게 될까 걱정이다. 바울은 “개인적인 혈과 육을 상대하여 싸우지 말고 악한 권세를 가진 통치자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싸우라”했다. 대의명분 없는 일에 제발 목숨 걸고 싸우지 말고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에 목숨걸고 싸워야 하지 않을까?

제 목숨 살기 위해 도망가던 베드로가 닭 우는 소리에 문득 깨우치고 다시 돌아와 대의를 위하여 거꾸로 십자가를 짊어진다. 닭 우는 소리는 깨우침을 주는 은유적 표현으로 육사의 시 ‘광야’에도 나온다.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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