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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들

등록일 2021-12-09 19:33 게재일 2021-12-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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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묵

동지를 나눠 먹고 밀린 월세만큼 키가 줄었습니다

꺼낼 것 없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빼도 작은방 불빛은 커지지 않았습니다

달팽이 껍질로 들어간 누이는 고드름처럼 느리게 울었습니다

몸을 구부리는 게 익숙해져 얼굴도 무릎만큼 단단해졌습니다

어둠이 길어 숨어있기 좋은 절기입니다

일 년에 하루쯤은 갓 끓인 팥죽처럼 미워할 수 없는 맛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새알심만큼 웃었던 동지가 지났습니다

- ‘아픈 사람들’ 전문

 

셋집에 살면서 긴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이 가난한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이 몸을 둥글게 말고 슬픔과 아픔, 그리고 서로에 대한 어떤 ‘미움’으로 단단해져간다. 하지만 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같이 음식을 먹을 때가 있으니, 그때가 동지다. 이들은 이날엔 동그란 ‘새알심’이 들어 있을 동지 팥죽을 둘러앉아 먹으며 화해를 한다. 그래서 팥죽은 “미워할 수 없는 맛”을 가졌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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