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말을 하게 되는 걸까. 무수한 언어가 별처럼 모여 일상을 구성하고 있다. 빈번하게 마주치는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별수 없이 말을 꺼내야 한다. 나를 드러내고 상대를 이해하는 방식의 발화를 고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말은 혀끝에 모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말은 깃털처럼 가벼우며 철근처럼 무겁다. 온종일 마음에 남아 있다가도 잠깐 한눈을 팔면 사라져버리고 만다. 무게도 속성도 가늠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을 사용할 때 늘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폭신폭신한 말도 함부로 다루게 되면 무엇보다 날카로운 흉기로 바뀌기 마련이다.
거짓말에 속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온전히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허탈함과 무력함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마음을 할퀸다. 영혼에 생채기가 나면 쉽게 치유되기 어려워 한동안은 그저 아파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교육받았다. 누군가를 속이는 일은 도덕적으로 매우 어긋난 일이며 해서는 안 되는 금기로 존재한다.
거짓말을 단순히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세상에는 다양한 거짓말이 있다. 정치인이 내뱉는 거짓말처럼 허망한 발화도 있지만 상대를 위해서 거짓을 내보이는 경우도 있다. 너무나 아픈 진실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 것이야말로 상대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위한 거짓말은 부정적인 언사라기보다 다정하고 슬픈 발화에 가깝다.
소설이야말로 대표적인 거짓말의 장르다. 허구로 구성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을 쓴다’는 말은 ‘거짓말을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틀린 말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표현임은 확실하다. 소설은 무엇보다 현실을 냉엄하게 기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허구의 인물과 배경을 바탕으로 처절한 현실을 보여주게 된다. 붙잡을 수 없는 세계를 찬찬히 그려나가며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이거 다 거짓말이잖아’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는 독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들은 소설 속 인물에 공감하고 함께 웃고 울면서 텍스트를 따라간다. 허구의 세계를 살아가는 허구의 인물을 응원하고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에 투영하기도 한다. 거짓이라는 형식을 통해 도리어 진실로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어떤 거짓말은 과하다 느껴질 만큼 달콤하다. 거짓말처럼 나쁜 것이 좋아지고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정말 그런 순간이 온대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다. 우리는 가장 좋은 순간을 믿기 어려워하고 불행에 익숙한 사람처럼 매일을 살아간다. 거짓말처럼 기쁜 날을 앞에 두고도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서성거리기도 한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거짓의 달콤함이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은 우리의 발목을 세게 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눈을 뜨면 달콤한 거짓말의 세계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드러나고야 만다. 그러한 거짓말은 가장 강력한 찰나로 작용한다.
그러한 찰나가 그저 무의미한 것은 아닐 테다. 가끔 우리는 세상에 그리고 상대에게 현명하게 속을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거짓말인 것을 알면서 기꺼이 속아주는 순간, 그 안에 있는 진실 한 스푼을 발견하게 된다.
맛이 좋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요리한 상대를 치켜세워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아프면서 아프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내보이는 것이다. 서로를 위해 속고 속이는 우스꽝스러운 연극이다. 나는 그 진부한 연극이 눈물 나게 아름답다. 그것은 살아감에 있어서 꼭 필요한 오해이며 소중한 이해다.
우리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말을 한다. 가끔은 서로의 말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말은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며 어떤 말은 그 안에 담긴 진실을 찾아내야 할 때도 있다.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행을 숭고하게 여기고 기꺼이 해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말을 소중하게 여기는 방식이며 세계를 이해하는 노력이 되기 때문이다.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도래하는 날을 상상한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희망찬 내일을 바란다. 그러한 상상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일말의 낙관 또한 지난한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필요한 거짓말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