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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 명승’ 내연산 폭포의 위상

등록일 2021-10-12 19:24 게재일 2021-10-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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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원수필가
박창원​​​​​​​수필가

지난 8월 24일, 문화재청은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 있는 자연유산 ‘포항 내연산 폭포’를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 늦은 감이 들지만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내연산은 그 명성이나 가치에 비해 평가절하되어 왔다. 고찰 보경사를 품고 있는 내연산은 1983년 당시 영일군에 의해 보경사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1995년 포항시와 영일군이 행정통합을 하여 포항시가 된 후에도 ‘보경사군립공원’이란 이름을 계속 써 오고 있다.

내연산은 경북 내륙에 뿌리를 둔 산맥이 동해안으로 한 줄기를 뻗어 형성된 산으로 풍화에 강한 화산암 기반에 깎아지른 절벽과 깊게 패인 계곡이 발달돼 있다. 그러다보니 이곳에는 침식지형의 폭포와 폭포수 바로 밑의 웅덩이인 용소(龍沼)가 많아졌고, 열두 폭포를 가진 명산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 등장하는 내연산은 현재의 연산폭포, 관음폭포, 잠룡폭포 일대를 일컫는 명칭인 삼용추(三龍湫),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조금 움직이지만 양손으로 밀면 꿈쩍도 않는다는 기이한 바위인 삼동석(三動石)으로 일찍이 유명세를 탔다.

조선 선비들이 내연산을 명승지로 인식한 것은 대략 16세기부터이다. 1587년에 내연산을 유람한 울진의 선비 황여일(黃汝一)은 유내영산록(遊內迎山錄)에서 “산을 잘 논하는 자는 (내연산을) 소금강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때 벌써 소금강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서사원(徐思遠)은 1603년에 쓴 동유일록(東遊日錄)에서 “만 길 하얀 절벽이 좌우에 옹위하며 서 있고, 천 척 높이 폭포수가 날아 곧장 떨어져 내렸다.(중략) 사다리로 올라보니 선계에 앉은 듯하여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고 적었다. 정시한(鄭時翰)이 17세기말에 전국의 산천을 유람하여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책인 산중일기(山中日記)에 내연산 탐승 기록이 나온다. 이 글에서 그는 삼용추 일대의 모습을 보고 “금강산에도 없는 것이었다.”고 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림으로써 내연산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한 사람은 진경산수화의 거장 정선(鄭敾)이다. 정선은 1733년부터 2년 간 이곳을 관할하는 청하고을의 현감을 지내는 동안 내연삼용추(內延三龍湫) 등 내연산폭포를 소재로 4점의 그림을 그려 남겼다. 그로부터 많은 선비들이 내연산 폭포를 보기 위해 찾았고, 17부터 19세기까지 400여 명의 명사들이 내연산 폭포 주변에 탐승 기념으로 이름을 새겨 남겼다. 그것은 현재 내연산의 인문학적 자산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국가 명승으로 그 위상이 높아진 내연산 폭포를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 많다. 12폭포 탐방로는 최근 3년 사이 잦은 태풍과 폭우로 훼손된 채 방치돼 있어 정비가 시급하다. 또한 자연유산으로서, 인문유산으로서 관광객들에게 친절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안내판도 보완해야 한다. 보경사와 12폭포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문화재와 자연경관, 인문학적 자원을 가진 내연산은 사실 도립공원 급이다. 그러니 차제에 도립공원으로 격상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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