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호
눈을 뒤집어 쓴 채
한 때의 무성했던,
마른 풀잎들이
제 기억들을 치켜들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며
마른 줄기 끝 땅 속의 생각들을 간직한 채
봄이 되면 푸른 실핏줄에
뜨거운 피를 치솟으며
붉거나 노란 기억들을 피워올리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정월 초하루, 폭설 속에서
오롯한 정신 하나로
지난 해의 낡은 이름표를 달고
바람 속에 서 있다
“눈을 뒤집어 쓴” 풀잎들이 겨울을 견디며 다시 자신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바로 “제 기억들을 치켜들”면서이다.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오롯한 정신 하나”를 견지해야 한다. 인간 역시 죽은 자를 망각의 강 너머로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기억하는 오롯한 정신을 가져야 하리라. 그 정신이 바로 자연세계이건 인간 세계이건 죽음을 삶의 세계로 이끌어 올리는 생명력인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