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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열

등록일 2021-09-12 20:03 게재일 2021-09-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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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익

지하 통로

뱀 한 마리 미끄러지듯

전율하며 달려가고 있다.

오로지

표적을 향해

맹목의 정신으로 줄달음치는

일 촉 화살처럼,

불타는 살의는 미친 듯이 씩씩거리며

제 얼굴에 부딪치는 암흑의 벽면을

깨뜨린다, 무지하게.

뱀이 스쳐간 자리에는 피투성이,

피투성이 되어 넘어진 적막의 살점들이 살아 퍼덕인다.

위의 시에서 이수익 시인은 삶의 강렬성이 폭발하듯 현현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암흑의 벽면을” “맹목의 정신으로 줄달음”쳐 깨뜨리면서 스스로 파괴되는 뱀의 저 저돌적인 행동을 보라. 뱀은 죽음의 벽과 부딪치면서 주변의 삶을 다시 ‘퍼덕’이게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인 극단의 지점에 돌입함으로써, 저 뱀은 스스로 피투성이가 되는 삶을 살면서 ‘적막’을 파열시키고 삶을 삶답게 만들고 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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