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인
느리게 구르던 수차가 덜컹, 깊은 바퀴자국을 남깁니다
사랑하는 동안 이곳은 늪지입니다
전선에 맺힌 빗방울 하나가 저에게 다가오는 때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수밀도 익어가듯 깊어갑니다 말갛게 바닥을 탐색하던 빗방울이
깜박, 저를 놓으며 온몸에 찰나의 광휘를 두릅니다
빗방울이 제자릴 찾는 데는 삼천년이 걸린다는데 삼천년 너머,
빗방울 하나가 허공에 떨고 있었을 그날에도
하늘은 저리 푸르렀을까요?
연일 소소한 바람이 많아진 비 갠 오후 흰 종이 위에
-종일 나뭇잎이 웅성거린다, 적었습니다 깊어진 여백으로
물푸레나무가 들어섭니다 다 셀 수 없는 마음입니다
시인은 저 “전선에 맺힌 빗방울 하나”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인 시인은 빗방울이 낙하하는 순간이 삼천년이나 걸려 일어나는 경이로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 순간은 삼천년이 압축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의 시간이다. 수밀도 익어가듯 천천히 깊어지는 사랑의 시간은 거대한 세월을 넘나드는 시간이다. 이렇듯 세계에 대한 사랑은 미세한 사물들에서도 익어가는 시간의 질감을 감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