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섭
떠나기 위해 기다렸다
활주로에 반듯하게 쌓인 눈이 사라지기 전까지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유리벽 너머로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짧게 지나가는 한낮의 여명 안에서
가랑눈들만 선명하게
선명하게 흩날리며
먼지처럼 활주로 위로 내려앉았다
떠나기 위해 기다렸지만
눈은 계속 눈으로 내렸다
그것들은 바닥에 닿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저기로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을까
우리는 멈춰버린 광경을 바라보며
광경 안에 멈춰 있었다
천천히 내리는 가랑눈들 사이로
안내방송이 가끔 차갑게 울렸다
(중략)
위의 시는 ‘코로나19’ 이전에 발표되었지만, 위의 시 각 연의 첫 행에서 반복되고 있는 떠남의 욕망과 기다림의 상황은 ‘코로나19’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을 것 같”고, 세계는 “멈춰버린 광경”으로 현상하며, 그 광경 속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 역시 “멈춰 있”는 현재의 상황 말이다. 위의 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상황에 대한 암울한 예견이 되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