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아이들의 계절이었다.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란 말이 있지만 여름은 어느 세대보다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계절이었다. 나무 그늘에 앉아 부채질이나 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종일 쏘다니며 놀았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데다 요즘처럼 학원에 다니는 아이도 없었으니 여름방학동안에는 하루 종일 밖에서 노는 게 일이었다. 지금은 까마득히 멀어진 옛일이지만 그 때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동요를 듣거나 부르면 단박에 그 시절로 달려가게 된다.
“모래성이 차례로 허물어지면/ 아이들도 하나둘 집으로 가고/ 내가 만든 모래성이 사라져 가니/ 산위에는 별이 홀로 반짝거려요// 밀려오는 물결에 자취도 없이/ 모래성이 하나 둘 허물어지고/ 파도가 어둠을 실어올 때에/ 마을에는 호롱불이 곱게 켜져요”
박홍근의 동시에 권길상이 곡을 붙인 ‘모래성’이란 동요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놀던 아이들이 날이 저물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면 하늘에는 별이 돋아나고 마을에는 호롱불이 켜진다는 내용이다. 노래하는 아이들의 티 없이 맑고 고운 목소리가 그려내는 이 아름다운 정경을 무엇에 비길까. 어린 시절 그런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울컥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리라.
“저 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 외양간 송아지 음메 음메 울적에/ 어머니 얼굴을 그리며 간다/ 고향을 부르면서 구름은 간다// 저 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 뒤뜰에 봉숭아 곱게 곱게 필적에/ 어릴 때 놀던 곳 찾으러 간다/ 고향을 부르면서 구름은 간다” - 정근 시, 이수인 곡 ‘구름’
동시는 아이들이 직접 짓기도 하지만 어른들이 동심으로 돌아가서 쓰기도 한다. 그래서 동시의 화자는 언제나 어린이가 된다. 이 동요도 화자는 어린이지만 고향과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어른이 지은 동시다. 외양간에서 송아지가 울고 뒤뜰에 봉숭아가 곱게 피는 고향에는 나를 반겨주는 엄마가 있었다. 그곳에서 발원한 동심은 어른이 되어서도 꿈엔들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 고향 가고 싶다 그리운 언덕/ 동무들과 함께 올라 뛰놀던 언덕/ 오늘도 그 동무들 언덕에 올라/ 메아리 부르겠지 나를 찾겠지// 내 고향 언제 가나 그리운 언덕/ 옛 동무들 보고 싶다 뛰놀던 언덕/ 오늘도 흰 구름은 산을 넘는데/ 메아리 불러본다 나만 혼자서” - 강소천의 시, 정세문 곡 ‘그리운 언덕’
태어나서 늙도록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사람도 이 노래를 부르면 코허리가 시큰해지는 것은 왜일까. 고향이란 단순히 태어나고 자란 장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 시절과 그 속에 담긴 추억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일 것이다. 동심은 천진무구한 인간 본래의 마음이다. 그래서 성서에도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 아닌 이상 사람은 누구에게나 동심이 있다. 다만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때 묻고 무뎌졌을 뿐이다. 요즘 아이들은 동요보다는 성인가요를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가장 아름답고 순수해야 할 동심의 시절을 건너뛰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