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사건의 재구성 -사랑이었을까<br/>헤어진 여친 스토킹·주거지 침입<br/>피해자 심적 고통에 극단적 선택<br/>재판부 “비극의 주요 원인·계기”<br/>범죄자에 징역 1년의 실형 선고
지난 2017년 봄에 만난 청춘남녀의 애틋한 사랑은 가을이 채 오기 전에 끝났다. 헤어지자는 그녀의 이별 통보에 그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구애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그는 그녀의 집 주변을 배회했다. 그녀가 언제 집에 들어오고 나가는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옷은 무엇을 입었는지 살폈다.
심지어 그는 그녀의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 그녀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모습을 그늘 뒤에서 훔쳐봤고, 그녀가 집을 비운 사이 몰래 그녀의 집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성과 동거를 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가 믿었던 사랑은 다름아닌 광기(狂氣)였다.
그녀는 극심한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어느 공간보다 아늑하고 안락했어야 할 그녀의 집은 그로 인해 지옥이 됐다.
가족과 친구 등 가까운 지인들에게 정신적 고통과 피해를 토로했고, 수사기관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녀의 심적 고통이 모두 해결되지는 않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형사1단독 최누림 부장판사는 8일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31)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주거침입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A씨는 지난 2020년 7월 27∼31일 4차례에 걸쳐 전 여자친구인 B씨(28)가 집을 비운사이 주거지에 무단으로 침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A씨가 저지른 범행과 관련, 고통을 호소하다 같은해 8월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부장판사는 “피해자의 비극적·중대한 결과의 주요한 원인과 계기는 A씨의 본건 범행이라고 봄이 합리적”이라면서 “A씨는 피해자 및 그 유족들의 고통·감정보다는 자신과 그 가족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비록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A씨의 나이나 직업, 경력, 가족관계 등을 참작하더라도 실형을 선고함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A씨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는 판사의 물음에 “죄송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들었어야 할 과거의 연인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재판장에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의 유가족들만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