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모내기 풍경

등록일 2021-06-03 18:40 게재일 2021-06-04 18면
스크랩버튼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모내기철이다. 논배미마다 물을 가득 싣고 트랙터로 써레질을 하여 이앙기로 모를 심는다. 소를 몰아 논을 갈고 손으로 모를 심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이앙기 몇 대가 드넓은 들판에 모내기를 끝내는데 불과 일주일 남짓 걸린다. 손으로 일일이 모를 심는 데는 온 동네 사람들을 총동원해도 한 달이 넘게 걸리던 시절과는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모내기철은 농번기 중에도 가장 바쁜 때였다. 보리를 베고 타작을 하는 일과 겹치기 때문이다. 논에도 이모작으로 보리를 심었으니, 그것을 베어내고 나서야 논을 갈아 모를 심었다. 초등학생들까지 일손을 도우라고 가정실습이란 명목으로 일주일가량 휴교를 했다.

모내기를 하려면 당연히 물이 있어야 한다. 봄 가뭄이라도 들면 저수지가 없는 천수답 주인은 하늘만 쳐다보며 애를 태울 수밖에 없었다.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길도 온 들판을 다 적시기에 넉넉하지 않으면 자기 논에 먼저 물을 끌어대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들판에서 밤샘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물꼬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오죽하면 ‘제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제 논에 물 들어가는 걸 볼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말까지 생겼을까. 지금은 저수지 정비는 물론 들판 곳곳에 관정까지 뚫어서 전기 스위치만 올리면 양수기가 작동을 하도록 되어 있으니 웬만한 가뭄쯤은 걱정이 없다.

모심기는 혼자서 할 수가 없었다. 품앗이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모심기일 것이다. 웬만한 논이면 열 사람 이상의 일손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 돌아가면서 손을 모아 모를 심어주는 품앗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할 때에는 흥을 돋우는 노래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동네마다 노래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이 한둘은 있어서 일하는 분위기를 흥겹게 한다. 새참으로 막걸리를 한 사발씩 돌리고 매기고 받는 모심기노래에 맞추어 모를 심다보면 노동의 고단함을 잊을 수가 있었다. 들이 넓은 우리 고장에선 모심기 노래를 비롯한 농요가 발달했는데 기계 영농으로 사라진 풍경이 되었다. 다행히 최근에 농요보존회를 발족해서 그 명맥을 이으려는 분들이 있어 여간 반가운 마음이 아니다.

달라진 영농방법은 생태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요즘 들판에는 개구리가 거의 없다. 트랙터로 갈고 써레질 하는 바람에 땅속에서 월동하던 개구리들이 무사하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제초제와 살충제의 살포로 메뚜기 같은 곤충들과 수생벌레들이 드물어져서 그것을 먹이로 하는 새들도 개체수가 줄었다. 이맘때쯤이면 강남에서 돌아와 분주하게 날아다닐 제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 높이 솟아올라 지저귀던 종달새 소리를 들은 기억도 까마득하다.

1960년대까지는 농업이 우리나라의 주요산업이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농업인구였던 것이 1970년대부터 급감해서 지금은 전체인구의 5%이하로 줄어들었다. 거기다가 기계영농의 도입으로 전통적인 농촌문화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오랜 세월 이어오던 모내기 풍경이 사라진 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뭔가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浮雲世說(부운세설)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