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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미학

등록일 2021-05-19 20:18 게재일 2021-05-2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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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1968년 같은 해에 ‘이재용’씨와 ‘김기환’씨가 태어났다. 이재용씨는 일류 가정교사를 통해 학업에 도움을 받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아버지의 회사에 입사하고 삼정전자 부회장이 된다. 같은 해에 태어난 김기환은 학교 다닐 때에 반장도 하고 성적도 우수하여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럴 즈음인 1993년 대학입시 부정사건이 터진다. 부자들이 고액을 주고 대학입학 대리시험을 치게 하고 학력고사 성적을 조작하는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가난하여 대학도 들어가지 못하는 김기환은 부정한 일을 저지르는 부자들의 불공정 횡포에 대한 반감이 극도에 이르게 된다. 결국 지존파를 조직하여 부자들을 골라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사형에 처해졌다. 만일 이재용과 김기환이 바뀌어 태어났다면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예수는 “가난한 자가 복되고 부자는 천국가기 어렵다”고 가르쳤다. 물질을 초월한 디오게네스와 같은 심오한 철학자가 아닌 한 가난을 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부자가 천국 가기 어렵다고 해서 부자 되길 포기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예수가 말한 가난한 자의 원어는 ‘프토코스’인데 이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외부적 힘에 의하여 재산과 노동력을 상실하여 가난해 진 자를 뜻한다. 이를 성경에는 ‘오클로스’라 했다. 대표적으로 잦은 전쟁으로 인하여 생긴 고아와 과부가 이에 속한다. 원래는 고아와 과부를 형제나 친척 그리고 지파공동체가 돌보게 되어 있지만 이들은 오히려 가난한 자의 가산을 삼키는 자가 되어 버렸다. 잉여자본을 억압과 착취에 사용하고 불공정 경쟁의 도구로 사용하면 불의한 부자요 천박한 자본주의가 된다. 예수는 이런 부자가 천국가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에 아무리 가난하여도 세리와 창녀가 되거나 도적이나 강도가 되지 않고 의롭게 산다면 행복할 것이라 했다. 성경에 나오는 부잣집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더라도 도적이나 강도, 세리나 창녀가 되지 않은 거지 나사로가 바로 그이다. 예수는 이가 죽어 천국에 들어갔다고 했다. 예수가 말한 복된 빈자는 의로운 일을 하다가 가난하게 되었거나, 가난하게 되어도 의를 잃지 않고 살아간 사람이다. 아무리 어렵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김기환과 같이 살인강도가 되지 않고 의롭게 사는 자를 향해 예수는 “행복하여라 너희 가난한 자여”라고 했다. 그 말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이들을 행복하게 하라는 실천적 선언으로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빈자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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