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포항 미래발전 심포지엄` 서정헌 박사 발제문
철강도시 포항에는 여전히 철강을 대체할만한 신성장산업에 대한 담론이 많다. 지난 수십년간 다양한 신성장산업이 제시되었지만 아직 포항에는 철강을 대체할만한 신성장산업은 존재하지 않는것 같다. 철강산업을 대체할 신성장산업을 찾는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최근 한국 철강산업이 처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포항 지역경제가 철강을 대체할만한 신성장동력을 찾는 것은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오히려 지금 포항 지역경제가 노력하여야 할 것은 철강산업 사양화가 지역경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지역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일이다. 본지는 스틸앤스틸과 공동으로 오는 19일 오후 2시부터 포항시청 대회의실에서 `철강산업 위기와 포항지역경제`란 주제로 개최되는 `창조포항 미래발전 심포지엄`에 앞서 발제자로 참여하는 서정헌 박사(스틸앤스틸 대표)의 발제문을 전재한다.포스코-현대제철 복점적 경쟁구도 유지로 균형 맞춰야
지역 관련 모든 주체 공감대 형성, 사양화 적극 대응을
□ 철강산업 사양화에 대한 고민이 선결과제포항에는 그동안 다양한 신성장산업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현할만한 시장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신성장산업을 제시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시장의 힘이다. 정부가 신성장산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성장산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시장의 힘을 유도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지금 포항 지역경제를 위해서는 신성장동력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포항 지역경제가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철강산업 사양화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강사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생존을 위해 투자를 한다. 그래서 철강은 구조적으로 과잉이 불가피한 산업인지도 모른다. 철강은 거대한 장치산업으로 철강사가 망해도 철강설비를 퇴출시키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투자를 통한 설비확장기에는 모두가 행복하지만 감산이나 설비퇴출과 같은 후진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철강은 후진이 없는 자동차와 같아 불황이 되면 생산을 줄여야 하는데 철강사는 감산이 어렵기에 철강재 가격은 더 큰 폭으로 떨어지고 철강사가 느끼는 불황의 골은 더 깊어진다.
철강산업의 경기 대응능력이 떨어지면 철강도시 포항의 경기 대응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경제가 특정산업 혹은 특정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우리는 산업도시 혹은 기업도시라고 한다. 이러한 산업도시의 경우 산업의 위기는 더 증폭되어 지역경제의 위기로 다가온다. 철강산업 위기에 소득효과나 고용효과와 같은 간접적인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더 큰 위기로 지역경제를 덮치는 것이다. 따라서 포항 지역경제 위기는 철강산업보다 더 큰 위기로 다가오는 것이다.
□ 철강산업 연착륙 방안은 없나
철강산업이 본격적으로 사양화 단계에 들어서면 되돌리기 어렵다. 위기에 일찍 대응하지 않으면 나중에 수십배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민간부문이 아니라 정부가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커진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철강은 사양화속도를 늦추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여기서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사양화 속도를 늦추는 4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철강산업 연착륙을 위한 수입방어 노력이다. 사양화 단계로 들어서면 정부는 먼저 수입규제를 통해 국내 철강산업의 후퇴속도를 지연시켜야 한다. 철강은 내수중심의 산업이기 때문에 수출입 물량이 많아지면 국가간 무역마찰이 불가피해진다. 과거 철강 선진국인 미국에서 철강산업이 후퇴할때 미국정부가 철강재 수입을 규제했던 것을 보면 지금 우리나라 철강재 수입규제는 아주 미약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밀려오는 중국산철강재 수입재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그러나 수입규제는 강하면 강할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수입을 지나치게 규제하면 국내 소비자의 철강재 선택폭이 좁아지고, 철강과 철강수요산업 모두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철강은 타 산업과 강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철강재 수입을 규제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타 산업이나 국민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때문에 수입을 규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수입규제만큼 철강산업 사양화의 속도를 늦추는 손쉽고 유용한 정책은 없는 것 같다. 수입규제의 명분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수입규제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철강사들의 공조가 필요하다.
둘째는 철강사의 감산노력이다. 수입규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업의 후퇴가 계속되면 철강사는 감산이라는 좀 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장치산업인 철강에서 감산은 아주 극단적인 사양화 대응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철강사는 고정비용이 높기 때문에 감산을 하면 바로 t당 원가가 상승하고, 원가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일관공정으로 생산성을 강조하는 대형 철강사일수록 감산에 더욱 취약하다. 그래서 철강사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져도 가능한 끝까지 가동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다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감산을 선택하게 된다.
감산을 한다고 항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감산은 잘못하면 큰 성과없이 경쟁사에게 시장점유율만 뺏기게 되고 장기적으로 경쟁력에 손상을 입게 된다. 수입이 너무 쉬운 상황에서는 감산이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결국 수입재의 국내시장 점유율만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감산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내 철강사간 공조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철강산업에서는 선도기업과 여타 철강사간 입장차가 너무 커 공조가 어렵다. 철강사간 공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특정 철강사의 감산이 경쟁사의 시장점유율만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여기에 공정위가 철강산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다. 감산이 어려우면 철강산업의 사양화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양화단계에 들어서면 정부가 철강산업의 사양화 속도를 지연시키기 위해서라도 철강사간 공조에 대해 좀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셋째는 철강사의 설비퇴출이나 구조조정 노력이 필요하다. 철강사는 감산 등으로 사양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만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우면 설비매각이나 퇴출과 같은 구조조정을 시작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철강도시 포항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아비규환이 된다. 철강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설비퇴출이 어렵기 때문에 설비퇴출을 용이하게 하는 정부의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이 부도난 철강사를 회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설비매각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을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철강산업 사양화는 지역경제에 노사문제 환경문제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동시에 표출시킨다. 철강사 노사관계나 환경단체의 역할이 포항지역 철강산업이 사양화를 극복하는데 너무나 중요한 변수라는 것이다. 선진국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면 지역사회는 더 적은 비용으로 철강산업 사양화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넷째는 철강산업 사양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 한국 철강시장에 만들어진 포스코 현대제철의 복점적 경쟁구도를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양사가 공정한 경쟁을 통해 최적의 분업구조를 빨리 찾아가는 것이 철강사 사양화 속도를 지연시키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복점적 경쟁구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포스코와 현대제철 역학관계를 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복점적 시장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면서 적당한 경쟁과 공조가 만들어지도록 유도되어야 한다. 만약 양사 사이에 균형이 깨어지면 그 자리는 결국 중국 철강사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균형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각 사의 시장지배력과 시장행위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가지고 있는 시장지배력의 힘은 그 속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현대제철은 한국의 대표 재벌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에 속한 철강사다. 현대제철을 하나의 철강사로 봐서는 안되며 재벌기업의 철강부문으로 보아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대제철의 철강시장 지배는 철강수요산업인 자동차의 철강산업 지배라는 특징이 있다. 최근 포스코 열연독점의 힘은 이미 사라지고 있고 현대제철의 수직계열화 힘은 더 강화되고 있다.
□ 중앙·지방정부의 역할 분담
철강은 국민경제의 기초소재산업이기 때문에 철강산업이 너무 빠른 속도로 후퇴하면 한국경제와 철강수요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철강산업 사양화 속도를 늦추는 데는 개별 철강사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철강산업이 본격적으로 사양화 단계로 들어서면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고, 정부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철강과 수요산업 그리고 국민경제와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정부가 사양화 속도를 조절하여야 한다. 이 때 중앙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분담도 중요하다.
철강산업이 후퇴하더라도 한 나라가 철강재를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국내 철강산업 생산이 통째로 붕괴되면 철강재 수입 협상력도 약화된다. 이렇게 되면 철강수요산업의 사양화 속도가 빨라지고 철강산업의 사양화 속도가 가속화 된다.
지금 당장 포항 지역사회가 필요한 것은 신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철강산업 사양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포항 지역경제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신성장동력을 찾는 노력도 의미가 있지만 당장 더 시급한 것은 철강산업을 연착륙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포항 지역주민, 포항 소재 철강사, 철강노조, 환경단체 등 포항지역과 관련된 모든 주체들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서정헌 스틸앤스틸 대표이사 사장은
포항산업과학기술연구소(RIST)와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에서 철강산업을 연구했고, 현재 철강전문 산업정보 업체인 스틸데일리(steeldaily.co.kr)와 철강교육, 컨설팅, 세미나를 하는 스틸앤스틸(steelnsteel.co.kr)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산업연관모형을 이용해 산업구조변화와 철강수요의 관계를 규명하는 연구로 계명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