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기획취재 시리즈 <BR>포항의 새로운 꿈 `영일만대교`
샌프란시스코 만(灣)에는 3개의 눈에 띄는 큰 다리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든게이트 브릿지와 만의 북쪽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리치몬드 샌 라파엘 브릿지, 베이 브릿지 등 3곳의 교량이다. 이들 3개 다리 가운데 가장 길고 규모가 큰 것이 바로 베이 브릿지다. 샌프란시스코의 만의 남쪽에 있는데, 대략 동서 방향으로 만을 가로지른다.
샌프란시스코 반도와 인근의 오클랜드를 이어주는 이 다리의 정식 명칭은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 베이 브릿지이지만 줄여서 흔히 베이 브릿지라 불린다. 지난 1933년 공사가 시작돼 1936년 늦가을 골든 게이트 브릿지에 6개월 앞서 개통됐다.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80번 주간고속도로의 서쪽 끝 부분 구간을 이루기도 하는 이 다리는 2층으로 하루 24만대 가량의 차량이 통과하고 있다.
찰스 퍼셀이라는 인물이 디자인 한 이 다리를 건너다보면 운전자들은 물 위를 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 바닷길 연결한 13㎞ `복층 교량`
`베이라이트 프로젝트` 추진 세계적 야경 명소로 자리잡아
교육·문화도시, 교통·관광·공업도시로 발전 기폭제 역할
■ 해외 기획취재 시리즈① 포항 영일만대교의 필요성
② 국내사례 I 부산 광안대교
③ 국내사례 II 거가대교
④ 국내사례 III 인천대교
⑤ 해외사례 I 샌프란시스코 금문교(1)
⑥ 해외사례 I 샌프란시스코 금문교(2)
⑦ 해외사례 II 오클랜드베이교⑧ 영일만대교와 포항의 미래□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베이브릿지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이어주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베이브릿지(San Francisco-Oakland Bay Bridge)`.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골든 게이트 브릿지를 보며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베이 브릿지를 보고는 또다른 감정을 느낀다. 때문에 골든게이트보다 베이 브릿지를 더 좋아하는 여행자도 많다.
이처럼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늠름한 다리다. 샌프란시스코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교량 건설이 필수 과제였기 때문이다.
`인터네셔널 오렌지`라는 붉은색을 띠는 골든게이트교와는 달리 베이 브릿지는 은색 강철색을 띠고 있어 샌프란시스코의 풍경 속에서도 사이버틱한 실버 광채를 뽐낸다.
베이 브릿지의 길이는 13㎞이며 1936년 퍼셀의 설계로 완성됐다. 이 다리를 통해 샌프란시스코의 이스트베이에서 오클랜드로 향하다 보면 에르바부에나섬을 만날 수 있다. 이 섬은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이 섬을 통해 동과 서로 나뉘기도 한다.
2층 구조로 건설된 이 다리는 위와 아래층 모두 6차선 일방통행의 자동차 전용도로로 사용되고 있으며, 다리 밑은 선박의 항행이 가능할 정도다.
7천만달러 상당의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난 1936년 11월12일에 개통된 베이 브릿지는 1933년부터 1936년까지 1만5천명이 넘는 인원이 동원됐다. 미국토목학회는 1955년 미국의 7대 현대 토목 공학 불가사의의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 필요에 의해 탄생한 교량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에 거주하는 이들은 거친 파도로 항해가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페리(작은배)를 이용해야만 했다. 이에 정부는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양 도시의 해결책을 찾아나섰고, 자동차가 미래의 교통수단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1993년부터 베이 브릿지 건설에 돌입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거친 물살, 강품, 토양조건, 물의 깊이, 기술적 문제 등으로 인해 베이 브릿지의 건설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또 정치적 문제도 베이교 건설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1870년부터 베이 브릿지의 건설이 추진됐지만 재정으로 인해 빈번히 무산됐던 것.
이에 하버드 후버 대통령의 지지와 다리 통행료로 베이 브릿지 건설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건설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예르바부에나섬을 중심으로 베이 브릿지를 건설하면서 많은 건축자재와 인건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베이 브릿지가 건설된 후 베이 지역 사람들은 서로 쉽게 왕래할 수 있었으며,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다리로 자리잡았다.
□ 교량 그 이상의 의미
베이 브릿지는 베이지역 주민들에게는 단순히 다리 건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베이 브릿지는 지난 1989년 로마 프리에타(Loma Prieta) 대지진 당시 상판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를 당해 보수를 끝내고 다시 개통됐다. 지난 2002년 약 65억달러의 비용을 들여 재건설이 추진된 동쪽 베이 브릿지는 지난해 9월2일 대중에게 공개됐다. 이 교량은 지진으로 인한 안전성 문제로 예르바부에나섬과 오클랜드를 잇는 서쪽 구간에 새 다리를 건설하기로 하고 공사가 시작돼 1989년 지진 이후 24년 만에 완공됐다.
베이 브릿지 건설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자전거 안전 통행에 초점을 맞췄다. 이 구간의 자전거, 도보 전용도로는 많은 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은 부분 개방으로 인해 새 교량 전체의 2/3 구간만 오픈된 상태이지만 오는 2015년이면 자전거로 오클랜드~샌프란시스코 구간을 자전거로 출퇴근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예전 베이 브릿지와는 달리 보행자와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동쪽 베이교를 건널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더 많은 관광객들이 골든게이트 브릿지와 베이 브릿지로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 세계 최다 LED 설치 교량
베이 브릿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LED가 설치된 교량으로도 유명하다.
저명한 아티스트인 리오 빌라리얼씨는 베이 브릿지 탄생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베이 라이트`라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13년 3월 5일을 기점으로 2만5천여 개의 LED는 서쪽 베이 교(샌프란시스코로부터 예르바부에나섬)를 밝게 비추고 있다. 흥미롭게도 베이 브릿지의 LED의 빛의 패턴은 단순한 반복되는 패턴이 아니다. 아티스트 리오 빌라리얼씨는 하나하나의 LED를 프로그램화 했고, 유일무이한 빛의 패턴을 탄생시켰다.
한 경제 전문가에 따르면 베이라이트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9천700만달러라는 샌프란시스코의 경제적 이득이 예상된다. 베이 지역에 거주하는 5천만명의 사람들은 본인들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해주는 베이 브릿지를 보고 있고, 세계의 10억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베이 브릿지의 멋진 야경을 미디어와 온라인을 통해 감상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에드윈 리 시장은 “나를 포함한 수 많은 사람이 베이 라이트 프로젝트를 계속 지속할 것을 바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도시 발전 가속페달 역할
오클랜드 베이 브릿지 등의 완성으로 인근지역과의 교통이 원활해진 샌프란시스코는 미국내 뿐만 아니라 태평양 지역과 동양에 대한 바다의 문호로 개방됐으며, 인근 지역에서 재배되는 농산물과 광석, 식품, 각종 기계류를 생산해낸다.
또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80㎞ 범위 내에 90개 이상의 공업단지가 생겨 활기를 띠고 있으며, 중공업보다 식품·식육가공·제당·금속·인쇄출판·제재·고무·섬유 등의 경공업도 발달돼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예전부터 교육·문화의 중심지를 이뤘으며, 많은 대학과 연구소·문화시설 등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안개와 비탈길을 달리는 케이블카, 아름답고 조용한 시가지, 지중해성 기후, 경승지·오락시설 등이 갖춰져 있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윤경보기자 kbyoo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