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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해온 음악… 손에 안잡히는 애인”

연합뉴스
등록일 2014-04-29 02:01 게재일 2014-04-2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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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의 바람`으로 활동중인 조성모, 마음의 변화 털어놔
“손에 안 잡히는 애인이랄까요? 너무 사랑하는데 늘 안 잡히는…. 좋아하는 여자 앞에 서면 위축되고 평소 행동이 안 나오듯이 음악 앞에선 늘 그랬던 것 같아요.”

가수 조성모(37)는 16년간 해온 음악을 이렇게 비유했다. 그리고 최근 발표한 새 앨범 `변화의 바람`(Wind of Change)을 내면서 자신에게도 마음의 변화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인터뷰한 그는 “이젠 음악을 좋은 친구로 두려 한다”며 “시작부터 너무 잘 된 나머지 그게 늘 어깨의 짐이었다. 인기 맛을 알면서 독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비로소 음악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조성모는 1998년 데뷔와 동시에 스타로 떠올랐다. 1집 `투 헤븐`(To Heaven)을 시작으로 2.5집을 포함해 3집까지 총 4장의 앨범이 연달아 밀리언셀러를 기록해 지금껏 총 판매량 1천600만장의 대기록 보유자다. 1990년대 밀리언셀러 시대 마지막 가수로 꼽히며, `얼굴 없는 가수`로 등장해 성공한 `신비주의 마케팅`의 원조로도 불린다.

그는 “16년을 돌아보면 앨범이 나온 첫날 잘된 게 기적이 아니라 16년간 하고 있는 게 기적”이라며 “당시 함께 데뷔한 가수 중 활동하는 동료들이 거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전 너무 평범해서 존재감이 없었어요. 공부도 운동도 특출나게 잘하지 않았죠. 학창 시절 한두 번 노래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둬줬어요. 고 1때, 교통방송 PD인 친구의 아버지가 저를 이경섭, 주영훈, 안진우 작곡가에게 소개해 주더군요.”

먼저 안진우, 주영훈 앞에서 오디션을 봤다. 주영훈은 “숫기도 `끼`도 없는데 어떻게 무대에서 노래하느냐”며 그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이경섭이 그를 눈여겨봤다. 조성모는 한 기획사를 소개받았는데 그곳에선 4인조 혼성 댄스그룹 `사천사`를 준비 중이었다. 그 팀의 보컬로 1997년 중반까지 1년 반 동안 연습을 했다. 그러나 정식 데뷔는 무산됐고 다시 폐인처럼 살면서 입대만 기다렸다.

오디션 이후 친분을 유지하던 이경섭에게 군대에 가겠다고 말하려 녹음실을 찾아간 날이었다. 개그맨 이휘재가 2집(1997)의 `블레싱 유`(Blessing You)를 녹음하고 있었다. 사실 이 곡은 이경섭이 조성모에게 주려고 만든 곡이었다. 평소 조성모를 `잘 본` 이휘재는 남자 가수를 찾고 있는 김광수 사장에게 그를 소개했다.

“광수 형이 절 녹음실로 불러 대뜸 `해봐`라고 하더군요. 이승환의 `천일동안`,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등을 불렀죠. 노래를 듣고는 다음 말이 `가봐`였어요. `더 할 수 있는 게 있으니 들어봐 달라`고 부탁하자 `됐어`라고 하시더니 차비하라고 3만원을 주시더군요. 나중에 들으니 처음엔 `반반`이었는데 `더 해보겠다`는 근성에 끌리셨대요. 하하.”

1998년 9월 1집이 출시됐다. 음악 한다며 4년간 친구 집에서 살던 그는 1집을 몇 장 들고 부모님을 찾아갔다. 집 안에는 온통 경매 딱지가 붙어있었다.

이즈음 신문에는 `얼굴없는 가수 조성모, 그는 누구인가`란 기사가 쏟아졌다.

정식 첫 방송은 1998년 10월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였다. 이후 방송 출연 요청이 잇달았다. 1집은 여러 곡의 히트 덕에 150만 장이 팔려나갔고 그는 그해 모든 신인상을 휩쓸었다. 승승장구는 계속됐다. 2000년에는 시인과촌장의 `가시나무`를 리메이크한 2.5집, `아시나요`가 수록된 3집을 잇달아 내며 그해 최다 판매량인 총 350만 장을 팔아치웠고 `잘가요...내 사랑...`이 담긴 4집(2001)도 96만장이 판매됐다.

2002년 김광수 사장과 전속 계약을 마친 그는 다른 기획사로 이적해 활동을 이어갔다.

굳은 각오로 만든 2003년 5집으로 그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0년 중반부터 디지털 음악 시장으로 전환되며 그 역시 상승세가 멈췄다. 2005년 6집을 내고 이듬해 입대하면서 2008년 제대까지 공백기도 생겼다.

2009년 7집으로 음악 인생 후반전을 시작했다. 팬들은 호응했고 이름값에 걸맞게 콘서트도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해 10월 KBS 2TV `출발드림팀 시즌 2`에 출연하며 발목이 골절돼 활동을 중단하면서 일본 투어, 뮤지컬 출연이 불발됐다. 2010년 `바람필래`가 수록된 미니음반으로 음악적인 변화를 시도했지만 전반전에서 기록적인 `골맛`을 봤던 그에겐 아쉬운 성적이었다. 그해 탤런트 출신 구민지와 갑작스럽게 결혼을 발표해 팬들의 아쉬움도 샀다.

조성모는 예전 같은 혈기는 아니더라도 아직 열정은 죽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요즘 5월31일 공연을 앞두고 밤새 노래 연습을 하는데 `왜 노래가 안 질리지? 내가 노래를 이렇게 사랑해?`란 질문을 스스로 던졌어요. 답은 제가 아직 부족하다는 거였죠. 하하.”

이어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이경섭과 팬들을 은인으로 꼽은 그는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지만 내가 노래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가장 빛나는 순간에 아버지 같은 존재인 경섭이 형과 다시 함께 해보고 싶어서다. 그리고 예전처럼 팬들이 많진 않지만 변함없이 날 지지해주는 팬들이 있어 노래하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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