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강공장, 군사보호구역 고도제한에 포스코 “활주로 확장”<bR> 지역주민들, 비행기 소음·재산상 피해… “더 이상은 안돼”<bR> 국방부·포항시 등 유관기관, 주민의견 고려 협조·개선 필요
우리나라는 영토의 많은 부분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설정돼 있어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이 제한되고 주민생활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이들 지역 내에서 어떠한 행위를 하고자 할 경우 반드시 군의 허가절차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방부는 지난 1995년부터 일부지역을 보호구역에서 해제하거나 규제완화지역으로 조정해오고 있으나 주민들은 여전히 관련 제도개선과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해병대와 해군이 자리잡고 있는 포항지역도 군사보호구역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다. 특히 해군제6전투비행단이 사용하고 있는 K3비행장의 영향으로 남구 동해면, 연일읍, 대송면, 구룡포읍 등 비행보호구역으로 묶여있는 상태다.
본지는 신년을 맞아 군사보호구역에 묶여있는 현장을 찾아 해당지역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충을 살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봤다.
□ 공항이 주변지역에 미치는 영향
포항공항이 위치하고 있는 포항시 남구 동해면은 1960년대 조용한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마을 주민들은 해와 달을 상징하는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가 전해져 내려올 만큼 유구한 역사를 지닌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조용했던 마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을에 전술항공작전기지인 포항비행장(현 포항공항)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포항비행장 건설은 당시 대부분 주민이 어업에 종사한 어촌포구에 불과했던 포항에 향후 대한민국 중공업의 근간이 된 포항종합제철이 들어서면서 그 군사적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이뤄졌다. 대한항공이 1970년부터 3년간 포항-김포간 노선을 운항했지만 대부분 해군의 전투기, 정찰기 등이 이·착륙하는 목적으로 쓰여져 민간공항보다는 군용공항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발맞춰 도시규모가 점차 팽창하고, 군사보호구역 내 야제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높아지면서 인구 50만의 도시로 성장한 포항에도 군사보호구역의 하나인 비행안전구역에 대한 요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활주로로부터 불과 300여m 떨어진 곳에 사는 동해면 주민들은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던 터라 더욱 강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매일같이 들려오는 비행기 소음소리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데도 마을전체가 비행보호구역으로 설정돼있어 군의 허가없이는 자신이 소유한 땅에 건물을 함부로 지을 수 없었다. 인근에 위치한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군이 설정한 비행안전구역 제1~6구역 내에 위치한 공장은 증축을 원하더라도 고도제한에 걸려 무산되기 일쑤다.
실제 지난 2009년 5월 남구 비행안전구역 제2구역인 대송면에 위치한 동일산업은 페로망간 공장을 짓기 위해 포항시와 해군6전단측에 `비행안전구역 내 공장증축 사전협조 요청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해군6전단은 공장 최고 높이가 85.2m인 공장은 고도제한(74.5m)에 위배된다며 신축을 불허했다. 동일산업은 신축공장의 높이가 인근의 인덕산(해발 95m)보다 높지 않아 비행안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일산업은 이문제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시켜 시정권고 조치를 받아들었지만 현재까지 군으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포항시 생활폐기물연료화(RDF)사업도 높이 70~80m에 달하는 굴뚝이 고도제한에 걸려 설계변경까지 하는 사태를 겪었다. 결국 포항시는 당초 RDF사업 부지인 인덕산 중턱(비행안전 제4구역)에서 아래쪽(5구역)으로 옮기는 설계변경으로 공사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 포스코 신제강공장과 포항공항 활주로 확장
이처럼 비행안전구역 고도제한으로 인한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하는 가운데 2009년 8월 포항시의 허가로 건립 중이던 포스코 신제강공장이 비행안전구역 고도제한초과로 군에 의해 공사가 중단됐다. 비행안전구역 제5구역에 위치한 공장건물의 높이(85.8m)가 고도제한(66.4m)보다 19.4m 초과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미 60%이상 공정이 진행된 상태였지만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등 관련 법을 근거로 공사중지를 명령한 군의 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관련기관인 포스코와 국방부, 포항시 등은 오랜기간동안 줄다리기를 한 끝에 2011년 2월 3자합의서를 체결하고, 현재 공장쪽으로 나있는 활주로 378m를 공장 반대편으로 이동시켜 공장의 위치가 비행안전구역 제5구역에서 제6구역(고도제한 77.4m)으로 변경될 수 있도록 합의했다. 1천억원 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비는 포스코가 전액 부담하게 되며 활주로의 표고를 경사면 끝 부분을 기준으로 7m 상향 조정하고, 초과된 공장 상단 부분 가운데 1.9m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이같은 결정이 내려지자 신제강공장 반대편에 있던 동해면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활주로 확장이 예정된 지역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거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이 지난 40년간 소음과 사고위험으로 불안에 떨게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마을전체를 없애려 한다고 주장하며 활주로 확장을 반대했다.
이같은 문제는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시 한 번 제기됐다. 국방위원회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상공은 비행금지구역으로 국방부가 지정한 비행안전구역 고도제한은 당초부터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군의 포스코 신제강공장 건설공사에 대한 공사중지 명령은 부당하며 포스코도 군작전 방해를 초래한 원인제공자라는 이유로 활주로 확장비용 1천억원을 부담하게 돼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고 밝혔다. 게다가 군공항 이전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공항 확장은 `확정론`에서 `재검토론`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군공항 이전 특별법은 국방부장관이 부근 주민들의 이전 건의를 받으면 주민투표로 이전 부지를 정하고 부지 수용은 국유재산법 등에 따라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최종 통과할 경우 동해면 주민들은 국가에 공항 이전을 요구할 근거를 갖게 된다. 작전 편의 위주로 정책을 결정하던 국방부도 이번 법안 통과로 그동안 주장해온 공항 확장 명분에 큰 타격을 받게 된 상황이다.
□ 국방부, 포항시 등 유관기관, 주민의견 고려해 긴밀한 협조필요
국방부는 지난해 11월20일 포항시, 포스코, 해군6전단 등과 함께 포항공항확장 추진점검회의를 가졌다. 사업기간 연장과 동해면 주민요구사항에 대한 대책을 협의했으나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가 불참해 다음회의에서 재협의키로 했다. 포항시도 활주로 확장문제 해결을 위한 관련법 개정을 국방부에 건의하는 등 문제해결을 위해 나섰다.
포항시는 현재 전술항공작전기지로 지정돼 까다로운 제한조건으로 인근지역 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포항 K3비행장을 지원항공작전기지로 완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K3비행장은 해군전용 비행장으로 공군의 대구 K2비행장이 존재함에도 전술항공작전기지로 지정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포항시는 포항공항 비행안전영향성 평가용역을 전문기관에 의뢰했다. 평가용역은 활주로 확장에 따른 포항공항의 비행안전영향평가와 비행안전 확보 및 민원해소를 위한 방안 연구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항공기의 소음저감 방안을 찾고, 비행안전구역 내 고도제한을 완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포항시는 군의 원활한 작전진행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재산권과 생명권이 희생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방침을 갖고 대책마련을 강구할 계획이다.
포항공항 확장반대 대책위원회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여러차례 민원을 제기하고 공항확장을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는 등 주민들의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주민들은 포항공항확장 추진점검회의가 열린 지난해 11월20일 국방부 앞에서 공항확장을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주민들은 공항건립 이후 수십여년간 겪어온 소음문제와 재산상의 피해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공항을 다른지역으로 이전해달라고 요구했다. 공항 확장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동해초등학교도 다른지역으로 학교를 이전해달라고 포항교육지원청에 요구해놓은 상태다. 동해초는 현재는 학교가 공항으로부터 800여m 떨어져 있는데도 평소에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으면 하루에도 수십차례 이·착륙을 반복하는 민항기 및 군용기 등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여과없이 들려와 학습권에 막대한 침해를 입고 있는 상황인데 활주로 확장이 완료되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이같은 문제는 활주로 확장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지속돼왔던 것이라 이와 관계없이 개선을 해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포항교육청은 학교 이전의 필요성은 통감하고 있지만 활주로 확장 문제를 불러일으킨 포항시와 포스코, 국방부 등이 학교 신축을 위한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자체예산만으로는 사업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포항공항은 건립 이후 비행안전구역 고도제한, 소음문제, 안전성문제 등이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이제는 군 작전을 위한 공항, 비행기 이용객을 위한 공항이 아닌 지역주민 모두를 위한 공항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