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다른 지방 전례를 보면 이건 그런 정도로 끝나는 사소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드디어 대구와 경북이 실제적으로 나뉘어지는 사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말만 나뉘어졌을 뿐 그 둘이 느낌으로는 하나일 뿐이지만 앞으론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지역언론에도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대구에는 대구의 언론이 있고 경북에는 또 경북대로의 언론이 독자적 영역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앞서 둘로 나뉜 부산과 경남 사이에 그런 일이 생겨 있다.
경북도청이 옮겨갈 즈음 이 땅 언론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신문기자였고 지금은 방송기자로 일하고 있는 소설가의 상상력을 통해 그 앞날을 그려보자.
2014년 6월 초여름. 경북 안동시 풍천과 예천군 호명을 아우르는 경북도의 행정타운 건설현장은 유난히 더웠다. 얼마 전 이곳에 문을 연 커피숍에 모여 앉은 기자들은 기대에 들뜬 모습들이었다. 그들은 오는 9월 도청과 도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유관기관들이 이전해오는데 따른 기획 아이템을 구상하느라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기자들은 취재와 기획 아이템을 찾는 것도 문제지만 일찍 찾아온 더위 때문에 녹초가 됐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행정타운의 환경에 적응하느라 피곤했다.
3년 전만 해도 경북도청 이전이 계획대로 전개될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러나 도지사는 올 연초 신년사를 통해 6월이면 안동시 행정타운에 신축 중인 신청사가 준공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8월말까지 대구에서 안동으로의 도청 이전 작업을 완료하고 9월에는 역사적인 경북도청 이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를 것이라는 스케줄을 내놓았다.
풍천의 행정타운 건설현장 가운데 우뚝 솟은 경북도청 신청사 주변으로 경북지방경찰청과 경북도교육청이 나란히 위용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는 이들 관공서 건물이 썰렁한 느낌이었지만 일부 기업이 신축한 빌딩과 몇몇 상가건물이 그나마 중간에 끼어 숨통을 트게 했다.
A사 기자 한승기(가명)는 에어컨 바람을 쐬며 냉커피를 마시다말고 투덜댔다.
“행정타운이라는 것이 관공서 빼놓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문제야. 업무용 빌딩과 상가와 정주기반이 다 갖춰지기 까지는 어차피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말야…. 안 그래요?”
한 기자는 오는 9월 도청이 이전해 온다 해도 인구 10만 명의 정주여건이 갖추어진 완벽한 행정타운이 들어서는 것은 아니니까, 어차피 행정 신도시 건설이 완공되는 2027년까지는 고생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겁을 주었다.
기자들은 6월 중순인데도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뛰어넘자, 점심을 먹고 난 뒤 에어컨이 잘 돌아가는 커피숍에서 들어가 좀처럼 일어설 생각들이 없었다. 기자들은 커피를 마시며 본격화되고 있는 도청 이전의 스케줄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B사 기자 정충기(가명)는 행정타운에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언론사들의 미래를 제법 그럴싸하게 분석했다. 독립사옥을 신축한 언론사도 있는가 하면 빌딩을 임대해 입주하려는 언론사도 있었다.
“기자들이야 행정신도시 환경에 재빨리 적응하고, 취재원 확보하고, 도청 이전에 따른 경제효과와 행정타운의 기능과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찾아내 기획기사를 쓰고…. 뭐 그렇게 하면 되지만 경영진들은 살얼음판 걷는 기분일 거야.”
정 기자의 말대로 언론계에서는 도청 이전과 동시에 취재와 편집기능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도록 준비한 신문사로 4~5개 사를 꼽았다. 포항과 대구에 본사를 둔 신문사들이 도청 소재지를 새로운 고지로 삼아 치열한 쟁탈전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안동시 풍천의 행정타운에 가장 먼저 신사옥을 건립한 A일보는 벌써 2년 전에 본사가 있는 포항을 포기하고 아예 안동으로 이전하기로 내부 결정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A사 대표이사 박만수(가명)는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해 5월 제주에서 열린 신문협회 모임에서 타사 사장들에게 자사의 계획을 밝혔었다.
“포항에 있는 본사를 완전히 폐쇄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 본사 체제를 유지할 겁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도정의 중심인 안동에다가 제1본사의 기능을 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A사 한 기자는 그런 사실을 뒷받침하듯 말했다.
“우리 회사는 늦어도 8월까지 편집국과 광고부의 인력 절반을 안동 본사로 발령을 낸다는 내부 지침을 한 달 전에 통보 받았는걸.”
포항에 본사를 둔 B사 역시 A사에 대응해 안동 행정타운에 신사옥을 건립 중에 있었다. 도청의 행정기능이 대구를 벗어나 독자적인 공간을 무대로 전개되는 만큼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라고 했다. B사도 A사 처럼 양 본사 체제로 업무를 확대하는 방향이었다.
이들 A, B사 보다는 늦게 결정을 내린 C사는 아예 본사를 안동 행정타운으로 완전히 옮긴다고 했다. 언론계에서는 C사 경영진의 생각이 A, B사와 다르다고 보고 있다. C사는 포항에 대한 미련 때문에 본사 기능을 둘로 쪼갤 경우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꼴이 된다고 분석한 것이다. C사의 대표이사 김수기(가명)는 지난 1월 신년교례회 자리에서 기관장들과 환담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었다.
“포항의 광고시장이 상대적으로 좋고 충성도 높은 독자도 많은 것은 인정합니다만, 신문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도지(道紙)를 표방한다면서 포항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가당착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지방신문이 살기 위해서는 도정의 중심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C사 기자 조부영(가명)은 자기 회사 사장의 말에 힘을 실려주려는 듯 말했다.
“9월 까지 안동 행정타운으로의 본사 이전을 한다는 통보를 받았지. 그리고 포항의 본사를 안동으로 옮기는 대신 포항에는 별도의 취재본부를 둘 계획이라고.”
대구에 본사가 있는 D사 기자 김도영(가명)은 대구지역 신문사들은 포항에 본사가 있는 A, B, C사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대구광역시가 갖고 있는 정서는 기초자치단체인 포항과는 확연히 다르지. 우리 신문사는 대구라는 지방도시를 밑거름으로 성장해온 터라, 자칫 도청 이전지로의 신문사 기능을 이전할 경우 역풍에 휘말릴 위험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어. 그 때문에 양 본사 체제라는 카드도 선뜻 내놓을 수 없다는 거야. 대구는 보수적 성향이 짙은데다가 결집력이 높은 지역적 특성으로 `우리 것` 이라는 자부심이 센 도시거든.”
김 기자는 자기 회사 편집위원 정영호(가명)가 대구광역시 간부들과의 식사자리에서 했던 말을 흉내 냈다.
“대구시민들이 D일보가 우리 신문인줄 알았는데 어느 날 안동의 경북도 행정타운으로 신문사 기능을 분산한다던지 혹은 이전한다는 소리가 나왔을 때, 무슨 소리를 하겠습니까? 뻔한 거 아닙니까? 차라리 안동에 있는 기존의 취재본부를 강화시키는 정도라면 모르겠지만요.”
대구에 있는 E사의 기자 이주형(가명)은 자기 회사의 입장도 비슷하지만, D사와는 달리 경북도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내부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편집국장이 회의 자리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대구광역시도 물론 중요하지만, 경북도 역시 그만 못지않아. 지금은 경북도 산하 기관이 모두 대구시내에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막상 도청 산하 기관이 몽땅 안동으로 빠져 나간다치자. 신문사로서는 안동의 경북도 행정타운을 놓을 수가 없을 거니까.”
이 기자는 그 때문에 자기 회사는 대구와 안동의 양 본사 체제로 가동하는 쪽으로 내부 조율이 끝났고, 9월 도청 이전과 함께 안동본사 개소식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커피숍을 떠나 슬슬 회사로 복귀할 준비를 하면서 하품을 했다. 이미 선발주자로 안동에 상주하고 있는 기자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신문사들의 사옥 이전에 따른 비용부담과 직원들의 정주여건 해결 등을 문제로 열을 올렸다. A사 황 기자는 “직원들의 이사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문제지만 자녀들의 학교 문제가 더 크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결국 얼마 동안은 안동의 신행정타운에 문을 연 언론사 소속 직원들은 주말이 오면 대구나 포항으로 자동차를 몰고 달려가는 주말부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사 이전에 따른 비용부담도 문제로 떠올랐다. C사 조 기자는 “가뜩이나 경영이 어려운 신문사인데 신사옥을 건립하면서 부채비율이 너무 높아질게 뻔하다”면서 “본사 이전 이후 경영정상화가 늦어질 경우 자칫 부도가 날까 두렵다”고 말했다.
행정타운 상가 커피숍에 모여 앉은 기자들은 자리를 일어서면서도 오는 9월에 이전을 완료하는 경북도 신청사 시대에 부풀어 있었다. 기자들은 9월이면 도청과 도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유관기관들이 이전을 해오지만, 기자들에게는 선구자적인 희생이 요구될 것이라 데 공감했다. 2020년 까지는 자족인구 10만 명을 위한 기반시설과 정주여건이 완성되고, 2027년에는 행정복합 자족도시로 완성된다는 청사진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짧지 않은 기간을 지혜롭게 극복해야하는 언론사의 경쟁력 부분에 대해 저마다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밖으로 나오자 뜨거운 태양이 기자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9월 도청 이전에 맞춰 생산해 낼 기획 아이템과 특집기사를 고민하느라 골머리를 썩이던 D사 김 기자가 불쑥 눈앞에 우뚝 모습을 드러낸 경북도청 신청사를 바라보며 구구단을 외듯 슬로건을 외쳤다.
“전통이 살아 있는 문화도시! 저탄소 전원형 생태도시! 명품 행정도시!”
C사 조 기자는 달구어진 자동차 문을 열면서 다음달 1일 개통되는 안동시 풍천면 행정타운에서 포항으로 연결되는 4차선 국도 62km를 떠올렸다.
“그래도 1시간 넘게 걸리던 운행거리가 절반 가까이 단축된다니 천만 다행이지 뭐야!”
조 기자는 이번 주말 자동차를 달려 가족이 기다리는 포항으로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6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경북도 신청사를 들락거리는 차량행렬이 활기찼다. 나무를 심는 조경회사와 사무실 집기를 실어 나르는 트럭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기자들은 안동시 풍천 행정타운 북서쪽의 유난히 푸른 검무산을 바라보며 9월에 펼쳐질 경북도의 새로운 역사의 현장을 저마다 상상하느라 더위도 잊었다.
/글=조중의(소설가·포항CBS보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