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그녀도 남이 아니었구나그녀의 너와, 너의 그녀도 남이 아니었구나너의 어머니도 너의 과거도 너의 제주도여행도 남이 아니었구나네게서 전화가 왔다너의 문자가 연분홍 치마를 입고 왔다전화기 속으로 너는 울컥울컥 속을 게워냈다내가 아기를 낳으면 그것은 전화기다너의 전화기도 나의 전화기도 남이 아니었다너의 어머니도 남이 아니었다내가 어머니를 만들면 그것은 너다, 알겠니알겠니? 그것을사랑하는 딸의 결혼, 신혼여행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시인은 질기게 물고 물리며 이어지는 가계와 운명의 내림을 느끼고 있다. 시인의 어머니도 시인이라는 어머니를 낳았고 시인 역시 머지않아 어머니가 될 딸을 낳았던 것이다. 끈끈하게 이어지는 피의 내림에 대해, 그 운명적 이어짐에 대해 딸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다 그런 운명적 승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아침이다. 시인
2018-01-15
어둠속의 바다가 소리친다새벽마다 일어서는 산들이저마다 몸살을 앓는다항상 소리없이 강이 흐르고머리풀은 산들바람이들녘을 가로질러 가면하늘보고 물구나무선가을저녁 한때의향수가 희미하게 지워지고저만큼시간이 발움해 가는언덕 아래로 조용히빈 수레가 굴러간다시인의 눈에 비친 풍경은 쓸쓸함과 그리움이 묻어 있다. 소리없이 강이 흐르는 가을 저녁 한 때는 간절히 그리움이 깊어지는 때다. 가을바람에 흩날려 가버리는 것 같은 시간들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덧없는 시간의 언덕 아래로 빈 수레가 굴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이 허허롭기 짝이 없다.시인
2018-01-12
어느 시간은 그 주검 벗어나 저희끼리 며칠째 희희낙락 가고 있고어느 시간은헌 육신 속에 둥글게 안을 파고 들어가텅 비워지는내 시골에 돌아가 살리새로 핀 앵두꽃들로 세상을 환하게 갈아입히며또는 폐정(廢井) 속 아직도 깊은 밑바닥에서 울렁이는 관능들을서리서리 또아리 튼 새벽 물빛들을 길으며시골에 살리공동체적 삶과 전통주의가 살아있는 공간이 시골이 아닐까. 유년의 추억과 소중한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으로 돌아가 살고 싶어하는 시인의 바람을 본다. 단절과 폐쇄의 공간인 도심을 떠나 푸근하고 넉넉한 사람의 정이 서린 고향으로 회귀하겠다는 시인의 겸허한 목소리에 공감하고 싶은 아침이다.시인
2018-01-11
그대 살 속에 길이 있네그대 살 속에 절벽이 있네그대 살 속의 길 속에 절벽이 적벽 속에 길이서로를 꽉 껴안고 있네아침 저녁그대 살 속에 들면 화안한 그 절벽길인생이란 길을 가는 일이다. 그 길은 순풍 부는 평평하고 쉬운 길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쉬운 것 같은 그 길 속에는 절벽같은 난관이 있고 시련과 고난이 따르는 길이 있다. 사랑하는 일은 더더욱 그런 길의 연속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안한` 절벽길을 걷고 또 걷는 것이 진정한 사랑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시인
2018-01-10
두통을 앓는 바다는셔터를 굳게 내린 약국 앞을 서성이는데청년회의소 마당 팽나무 가지에는둥 둥불 밝힌 창문 하나 떠 있다촘촘히 기댄 어깨너머로푸른 청단이 일어서고붉은 홍단이 익어가고출출한 허기를 향해 야식이 배달되는저 따뜻한 시절마지막 뉴스가또박또박 기름값을 인상하기 전에개들이 컹컹컹 짖는 마당으로뚜벅뚜벅 걸어 들어와우뚝 멈추어라 자정이여자정이 가까워지는 포구, 구룡포의 무심한 한 밤 풍경을 그려내는 시인의 마음이 허허롭기 짝이없다. 흉어의 바다, 가난과 결핍이 쌓여가는 항구의 사람들, 시간을 견디며 화투를 치는 사람들, 기름값을 또 인상시킨다는 자정의 TV뉴스. 이런 쓸쓸한 풍경들을 그려내면서 시인은 정겨운 사람냄새 번져가고 훈훈하고 따스한 그래서 살만한 세상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시인
2018-01-09
먼 데서 한 순간을 사납게 따르고 와서앓는 가슴에 겨우 고인 고향의 얼음물 뒤로자꾸 떠올려지는보면 꿈이 바스러지는 눈빛과너무 흉측하게 어둔 힘 틈에서구르며 트이는 저 목소리들을어떻게 이렇게나 견딜 수 있는 건가아직도 비린 입들 때없이 끝없이너울리는 얼음판에 변고(變故)로 찧게 두고우리들, 다 큰 성대(聲帶)를 뜯어내 가는 시대의 핏물을잦은 술처럼 어쩌면 삼켜낼 수 있는 건가다친 산천은 마음에 잊히지 않고오래 더럽히며 참는 시간은집처럼 마구 지어진다밥통과 통하는 창이나 겨우 내고 거기 들어 살고 있는 일이여숨통은 끄고, 사람은 거짓으로 숨을 쉴 수 있는 동물이라는 건가시인은 떠나온 삶의 힘겨움과 현재의 처절한 삶을 돌아보며 생의 무게를 토로하고 있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고향은 그 모든 상처들을 치유해주는 힐링의 공간이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그런 치유와 위로의 고향마저 상실해버린 듯하다. 생의 추억은 따라버리고 싶은 술잔과 같다는 어둡고 갑갑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작품이다. 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18-01-08
불온한 검은 나뭇가지를 모두 잘라내고영원히 마르지 않고 사막 한 가운데에 고여 있는오아시스를 찾아가노라면눈부시다두 배우의 꿈은빛을 굴절한 하얀 나비가 되고흰 새가 되어 방안을 온통 화안하게 채운다꿈이 세상에 집을 지었다비록 현실은 궁핍과 부자유의 굴레에 묶여 살아갈지라도 인간은 하얀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 시는 현실 밖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상에 젖어있지 않다. 시인은 현실에서 오아시스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꿈의 실현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과 찾아가는 도정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비록 사막 같은 어려움이 앞에 놓일지라도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절망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고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터득하는 것이다.시인
2018-01-05
천 칠백년 된 소금광산 미라가 발견되었다그 사진 가만히 들여다보니 꼭 웃고 있는 것 같다저 미라, 생전에 얼마나 고된 질곡들을 살았기에영혼이 몸을 떠난 후에도 그토록 젖은 그리움이나슬픔들을 지금까지 말려 왔을까이제 다 말리고 저렇게 웃고 있는 것일까그렇다, 생은 젖는 것희로애락, 그 어느 것 하나 덤덤한 것 있더냐젖은 것들, 천 칠백년 동안 다 말리고소금 광산 미라 이제 저렇게 웃는다천 칠백년 전 소금광산 미라는 미소를 띈 상태로 발견되었다. 생전에 수많은 질곡을 살다 죽은 것을 상상하며 시인은 생은 젖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희로애락도 지나고나면 저렇듯 마른 주검에 나타나는 미소 같은 것이 아닐까. 한 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덤덤한 것이 없기에 우리도 젖고 또 젖어 있는 것이리라. 언젠가 우리도 소금광산 미라처럼 마른 미소를 띄며 죽어있을지 모를 일이다.시인
2018-01-04
바람과 햇살이 숨어든 벽 어린왕자는 어둠의 벽에 별을 걸고섬과 섬을 뛰어 놀았지.미로의 길숲에 잠든 이야기한 송이 장미 가슴에 안은 채어느새 깨어난 별들은 횃불을 치며총총히 어둠을 삼켜낸다새벽 바람길 따라 별빛 지는 하늘에 닻을 걸고아득히 은하를 건너온 어머니파도언덕 휘어진 돛단배 거친 살 내음빗살무늬 손등 포구언저리 긴 매듭 풀어낸다먼동과 노을 그 붉은 시간들의 그늘 속어머니의 정원이 있다푸른 빛 잉태한 세월마당 절기마다 꺾여지는 바람의 늪깊고 여물진 속살통증으로 느끼는 시대 무뎌져 갈 즈음망각의 어머니침묵의 하늘 곱씹으며 빛을 잃은 지 오래다머언 기억 노을마저 저문 산언저리별똥별 피어나다시인은 병상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어쩌면 어머니는 미로 속에 숨겨져 있는 어린 시절, 그 아름다운 동화 속 꿈의 세계를 찾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왔던 처녀시절, 꿈 많았던 청춘의 시간들을 찾아 흔들리는 기억의 회로를 더듬어 찾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하는 애처로운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언젠가는 먼동이 되어 노을이 되어 서쪽으로 떠나갈 어머니, 아니 영원히 저문 산언저리에 별똥별로 피어날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8-01-03
운명은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몸이 먼저 알아버렸기 때문일까아니면 충효당 가는 길의 밤꽃 내음 때문일까하회(河回)에서 안고 말았다, 내 품에 안긴 여자는운명 앞에 침묵하고 있었다그때 내 몸에서 들끓는 열망과 같은비릿한 밤꽃 내음이 코끝을 스쳐 지나갔지만나는 호흡하지 않았다, 이 순간 한 호흡을 놓쳐버리면우리는 윤회(輪廻)의 이편과 저편으로 나눠질 수 있는 것이다내게 사랑이란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라함께 호흡한다는 것이다들숨과 날숨 고르게 쉬면서이 밤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하회 수태극의 물길이 내 손금에새로 새겨지는 밤이었다시인은 밤꽃 피어 아름다운 하회마을 충효당 가는 길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안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랑이란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 들숨 날숨 고르게 쉬면서 흐르는 강물처럼 영원을 향해 함께 흘러가는 것이리라.시인
2018-01-02
나무들의 피는 푸르다그래서 밤나무 겨우살이는 푸르게 살쪄간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싸움이 그러하듯겨울 강선리에서는밤나무 겨우살이들이늙은 밤나무 몸뚱이에 이빨을 박아놓고겨울 나고 있다비대해진 자본주의의 탐욕과 침탈로 농촌 현실은 갈수록 피폐해져가고 있음을 시인은 겨울을 나는 밤나무를 모티브로 삼아 고발하고 있다. 자본과 외국농산물의 수입이 농민들의 고유한 생의 터전과 방식을 허물어 뜨리고 잠식해버린 지 오래다. 젊은이들은 살길을 찾아 도시로 나가고 노인들만 망가진 농촌에 버려져 있는 것이다. 아픈 농촌현실에 대한 시인의 칼날같은 비유의 언어들이 빛나는 시다.시인
2017-12-29
내 눈동자 속에서자기 날개의 물빛 흔들림을 보았을까배밀이로 생을 배워날개를 얻은 배추흰나비나비 날개 줄무늬에서굳은살이 늘어가는 발바닥을 본다배밀이로 생을 배워두 무릎을 얻은 나마주 본다는 것이전 생의 내 날개를, 그의 무릎을알아내고 고개 끄덕이며한 송이 솔개 그늘에 다가앉는 일생을 바라보는 시인의 깊은 눈을 본다. 배밀이로 생을 배워 날개를 달고 나는 배추흰나비 같은 것이 인생이 아닐까. 살아가면서 생의 굳은 살은 늘어가고 끝없이 배밀이로 생을 배워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그런 과정에서 조금씩 알아내고 고개 끄덕이고 그늘로 지워져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시인
2017-12-28
바람이 들어앉자무슨 약속이라도 있었는지팔랑 문지방을 넘어들어가는가랑잎 한 장우리가 내다버린연애나 동맹, 그리고 청춘 같은그 집 어디에도 우리는 없고이제는 저 바람이 주인이다한 때는 그 버려진 새장 안에는 연애나 동맹, 청춘이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충만한 지저귐과 생기와 온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내다버리고 포기해버렸기에 텅 빈 새장으로 버려져 있는 것이다. 시인은 버려진 새장을 모티브로 우리네 인생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 때는 희망과 사랑, 청춘의 열정이 가득 찬 인생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소중한 가치들이 희미해져가고 지워져서 허허한 바람만 드나드는 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생을, 그 허무한 시간들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12-27
노란 쇼핑백은 파란 쇼핑백과 한통속임을 치욕으로 여길까노란 쇼핑백은 안을 보여주지 않는다검은 쇼핑백은 안을 보여주지 않는다파란 쇼핑백은 안이 약간 보이는데포장한 박스들이 들어있다택시는 오지 않고현대인들의 폐쇄적이고 단절된 인간관계를 고발하는 시인정신이 또렷하다. 단단히 싸매고 포장되어 속을 보여주지 않는 쇼핑백들은 침묵에 든 사람들을 일컫는다. 자신을 은폐하는 순수한 암흑, 입을 다물고 있는 공포, 이러한 삭막하고 두려운 삶의 모습으로 쇼핑백처럼 무심히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관계가 단절되어 버리고 파편화된 현대인들의 안타까운 모습이다.시인
2017-12-26
자학 같은 운동으로 출렁이면서바람의 바람 끼도 받아주고힘차게 포옹하는 햇살의 애무도 받아주고보채듯 흔들리고 있음은자신의 몸 세차게 채찍질하여드디어 정수를 뿜어대며꽃을 피우고, 순을 틔워가난하고 어리석은 삶 살다 지친길손 보듬어 가르쳐 주는 것이니시인은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선 나무를 유심히 눈에 가슴에 새기고 다시 꺼내보고 있다.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을 세찬 비바람에 내맡기고 흔들리면서도 넉넉히, 최선을 다해 정수를 뿜어대며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 깨달음을 던져주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세상에는 벼랑 위 같은 힘겹고 아슬아슬한 한 생을 살아가면서도 넉넉히 생의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피워내는 사람들이 있다. 시인은 벼랑의 나무를 보면서 그런 어기차고 단단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12-22
모두귀를 열어 놓고 있다저마다 열린 귀만큼저마다 다른 속삭임으로들려주는비의 말씀풀잎도 나무도연신 고개 끄덕이고비 그치면새롭게 달라지는 모습언제일까?내 귀에도 빗소리에 열려고개 끄덕이며젖을 수 있는 날은비 오는 날은 유독 귀가 빗소리 쪽으로 열린다. 사람뿐만 아니라 비를 맞는 모든 자연과 사물들이 예민해져 귀를 연다. 순수하고 착한 마음 때문이리라. 시인은 사느라고 번잡한 세상의 소리에 열리는 자신의 마음을 반성하며 그저 순수하게 마음의 문을 열고 싶어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12-21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되자급훈 달면서와글와글 1학년 교실벽교탁 밟고 올라서서못을 박으면보이는구나숫기 없는 얼굴들이 희망군데군데 뚫린 못구멍마다보이는구나 좋은 세상걸찍한 급훈손바닥 찡하게 돌로 박으며쓸쓸히 바람이 눕는 어둠의 땅창 밖을 보면들리는구나 창을 넘어정지기밥머겨주나정지기밥머겨주나벽을 넘어 들리는구나필자가 문단에 나서게 된 등단 작품이기도 하고 첫 시집에 실린 작품이다. 교단에 서면서 아이들에게 정직과 용기라는 가치를 심어주고 싶어서 필자는 해가 바뀌고 학년이 바뀔 때마다 정직하고 용기있는 사람되자라는 급훈이 적힌 액자를 옮겨 달곤 했다. 정직과 진정한 용기가 통하는 세상을 바라며 교육현장에서 정직과 용기의 가치를 가르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정직하면 손해를 보고 용기를 가지면 어려움을 당하는 불구의 세상에 대한 야유와 안타까움이 배어있는 시다.시인
2017-12-20
새하얀 눈밭에새들의 발자국 몇 남아 시리다하늘을 나는 새들도가끔씩 땅 위에 자취를 남기는데한 번도 날아본 적 없는나는 이 세상길에 얼마나 많은 발자국을남겨 왔을까한 점 모이를 위해 새들은가끔씩 땅 위에 내려왔지만나는 이제껏 무엇을 바라어느 길로 어떻게 걸어 왔던가문득 그 먼 길 돌아다보면아직도 녹지 않은 기억의 골짜기 잔설 위로푸르고 시린 숱한 발자취어지러이 흩어져 있음을 본다눈 내린 아침 눈 위에 찍힌 새 발자국을 보며 시인은 자신을 돌아보며 깊은 침잠과 성찰에 빠져들고 있음을 본다. 이제껏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생의 길을 걸어왔는가라는 것을 자문하면서 아직도 자신이 꿈꾸고 추구해온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푸르고 시린 발자취를 찍으며 눈밭을 걸어가겠다는 시인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시인
2017-12-19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참을성이 부족해서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낮과 밤 사이에해와 달을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사이가 벌어져 있거나 틈이 생기는 곳을 닫고 여미기 위해 단추를 단다. 시인은 민들레라는 꽃단추에 주목하고 있음을 본다. 지상과 지하,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들이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모두 의미있는 생명들의 존재방식이고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 생명들이 피고 지는 시간 사이의 운명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참참한 언어로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7-12-18
저무는 세느 강 까맣게 눈발 날아오르고외투깃 세우고 지나는 연인들 뒷모습 따숩다카바이트 등 아래 빛바랜 브룩쉴즈가 액자속에서 웃고 있는포장마차 연탄불 위에는 한창 꽁치가 익고있고대폿집 5. 10. 시. 5 안줏감을 사오는 주인여자의 머리위에는함박눈꽃이 폈다밖에는 연신 우우 바람이 소리치고추운 날은 더 행복하여라벌겋게 달은 연탄 난로위 주전자에는 소란스레 물이 들끓고 있다술독에는 한창 막걸리 피어오르고추운 만큼 탁자위에는 늘 따스한 시들 가득했다겨울도 밤도 더 가라앉고 시인들은 합창을 한다세느 강 시인들의 노래는 작은 어둠 한 조각 걷어내지 못할지라도세느 강 아름다운 물결따라 밤이슥토록 반짝였다돌아가고 싶다 세느 강 낮에는 우울하고 칙칙한 오물들 흘러내리지만밤이며 오히려 물결위로 별들 가득 시가 되어 빛나던세느강은 시인이 살고있는 도심 속의 오염된 하천을 일컫는다. 지금은 복개되어 그 위에 술집들이 즐비한 풍경을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밤이 되면 그 술집들에는 시인묵객들이 찾아들어 인생을 얘기하고 세상의 일들을 안주 삼아 밤늦도록 취흥에 젖는 모습들을 따스하고 구수한 언어로 들려주고 있다. 삭막한 시대 속으로 던져주는 시인의 정겨운 목소리를 듣는다.시인
2017-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