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이루지 못하는 밤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평생을 시를 쓰며 울다가 간 시인 박용래. 이 시도 가만히 음미해보면 그의 눈물이 보인다. 사람들이 다 떠난 적막한 고향마을 밤 깊도록 잠 못 들고 있을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린다. 눈 내리는 고향마을의 모습을 그린 슬프고도 애잔한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시다.시인
2018-03-16
봄이 와 범부채꽃이 핀다그 언저리 조금씩 그늘이 깔린다알리지 말라어떤 새가 귀가 없다바람은 눈치도 멀었다 되돌아와서한 번 다시 흔들어 준다범부채꽃이 만든(아무도 못 달래는)돌아앉은 오목한 그늘 한 뼘점점점 땅을 우빈다봄빛이 밝고 따사로운 둑 위에 핀 범부채꽃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 마음에 선명하게 비쳐든 것은 그늘이다. 바람이 흔드는 것은 꽃이 아니라 꽃의 그늘이고 땅을 우비는 그늘이라는 것이다. 시인의 섬세하고 투명한 눈을 본다. 모든 아름다움 뒤에는 씁쓸한 그늘이 있는 법이다.시인
2018-03-15
제일 높은 돌 위에 올라가 누운 제일 큰 자라제일 높은 돌 위에 올라가 제일 큰 자라 등판 위에그 다음 큰 자라, 제일 높은 돌 위에 올라가제일 큰 자라 몸통에 몸을 기댄 세 번째 자라더 높은 돌멩이를 갖다 놓으면제일 큰 자라가 그쪽으로 가서 올라타고두 번째 자라가 올라가서 제일 큰 자라 등판 위에 올라타고세 번째 자라가 올라가서제일 큰 자라 몸통에 몸을 기대겠지, 웃기는 자라웃기는 어항재미난 어항 속 풍경 하나를 보여주며 시인이 암시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알레고리라는 시의 기법이다. 첫 번째 자라를 올라타거나 곁에 서는 두 번째 세 번째 더 큰 자라는 인간 세상의 권력이랄까 계층을 의미하고 있는 듯하다. 어항 속 자라들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어서 `나라`라고 말했는지 모른다.시인
2018-03-14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그 복숭아나무 곁으로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저녁이 오는 소리 가만히 들었습니다흰 실과 검은 실을 더는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예리한 시인의 눈과 마음이 복숭아나무의 흰꽃과 분홍꽃 뿐만 아니라 복숭아나무가 숨기고 있는 수천의 빛깔을 발견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의 마음은 눈앞에 복숭아 나무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의 외로운 존재들, 사람이나 물질이나, 자연물이나 모든 외로운 존재들이 다 그런 빛깔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시인
2018-03-13
느티나무 가지에 앉은 눈의 무게는 나무가 가진 갓맑음이 잠시모습을 드러낸 것이다느티나무가 입은 저 흰 옷이야말고 나무의 영혼이다밤새 느티나무에 앉은 눈은저음부를 담당한 악기이다그때 잠깐 햇빛이 따뜻하다면 도레미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도 보일 게다쌓인다는 것, 그리고 따뜻하다는 것시인의 섬세한 마음결이 자연의 현상에 가 닿아 반응하고 있음을 본다. 눈의 무게를 느끼는 감각이 놀랍기 짝이 없다. 하얗게 날리며 내리는 눈, 전혀 무게를 느낄 수 없는 가벼운 것이 저토록 낮은 소리를 풀어내며 깊이 쌓이고 따스하다는 것을 느끼는 시인의 미학적 인식을 따라가 보는 아침이다.시인
2018-03-12
새는 왜 앉아 있던 자리에사상을 남기고날아가는 것일까헝크러진 꽃밭부러진 꽃대궁에왜 긴긴 나비의 헌사를바치는 것일까따스한 봄날 한나절을털실로 뭉쳐 뜨락에 던져놓고또 그것을 헝클고뒹굴며 보내는 한나절자, 비닐내를 꽁꽁 감춰 두었다삶과 죽음 혹은 전쟁과 평화 중어느 쪽 비린내를 먼저 찾아보겠니?몇 가지 물음을 던지며 시인은 존재의 문제에 깊이 빠져들고 있음을 본다. 봄 한나절을 털실 한 묶음을 묶어 던지고 그의 인식은 그 털실과 함께 뒹굴며 존재에 대해, 아니, 이미 상실되어버린 존재의 실상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시인
2018-03-09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세월이 300년이 넘는다이제 난 지쳤다 왜 아직도 소식이 없소?지기에게 물어도 대답이 없다겨울 저녁 해가 진다눈이 내린다문 앞엔 작은 등불이 걸린다난 문 앞에 앉아 눈을 맞는다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문지기에게 다시 묻는다왜 아직도 소식이 없소?그건 당신이 바란 거야! 문지기가 대답한다문 앞에 앉아 300년이 흐른다300년의 시간이 흐른다해도 가만히 놓인 등받이 없는 의자에 등받이가 돋아날 리가 없다.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에 대해 말하고 있는 시인을 본다. 그 누구도 그 고독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운명적으로 인간은 고독을 껴안은 채 허허로운 시간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시인
2018-03-07
강서구 발산동 덕원여고 뒷숲에는 까치집 세 채가 나란히 붙어있습니다한 집은 형님 집한 집은 아우 집석양 속에 발그레 빛나고 있는 또 한 집은누구네 집인지 알 수 없어요석양 속 붉게 물드는 까치집을 바라보며 시인은 우리네 삶의 거처들을 생각하고 있다. 하물며 까치집 세 채가 오순도순 모여 혈족들의 사랑을 나누는 짐승들의 집도 그렇거늘 사랑과 헌신과 넉넉한 가족애가 넘쳐나는 우리네 집들을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시인의 따스한 세계관과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시다.시인
2018-03-06
거울 속에 그가 있다빤히 나를 본다때로 그는 군불아궁이에발을 담근다발은 데지 않고 발은 군불처럼 피어난다오동통한 허벅지날개를 접고 풀밭에 눕는다나는 떼놓고지구와 함께 물도래와 함께그는 곧 잠이 든다나는 아직 한 번도그의 꿈을 엿보지 못하고나는 아직 한 번도누구라고 그를 불러 보지 못했다평생 `존재론`, `인식론` 같은 실존의 문제에 대한 이론과 시를 써 온 시인의 전형적인 실존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내가 없는 거울 속에 천사가 있고 이 천사는 내가 사라진 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나의 존재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울이 있기에 내가 있고 거울 속에 천사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나는 헛것이고 환영이며 실존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며 나는 실존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8-03-05
누구나 오래안 잊히는 것 있다낮은 처마 밑떠나지 못하고 서성대던생솔가지 태운 냉갈내며밥 자치는 냄새누구나 한 번쯤울고 싶은 때 있다먹물 오락엎지른 창문에켜지던 등불두런대던 말소리마음 먼저멀리 떠나보내고몸만 눕힌 곳이 끝내집이 되곤 하였다귀소(歸巢)는 새들이 제 둥지를 찾아 돌아가는 것을 일컫는다. 시인도 새처럼 자기의 집으로 찾아가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서러움, 생의 심연에서 솟아나는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음을 본다. 그가 꿈꾸는 `밥 자치는 냄새`, `창문에 켜지던 등불`, `두런대던 말소리` 이런 기억들과 왈칵 쏟아지는 눈물 같은 것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목소리를 듣는다.시인
2018-03-02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거기 먼저 와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저 눈벌판도 덮지 못한내가 끌고 온 길들80년대 노동시인으로 열악한 노동현장과 불구의 시대현실을 고발한 생생한 육성시를 들려주었던 시인의 비교적 참참한 어조로 생을 관조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정처없이 떠돌고 떠돈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고, 삶에 대한 처연한 응시의 눈빛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시인
2018-02-28
누가 내 목을 돌렸습니다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멈추지 않았습니다왼쪽으로 돌릴 때 오른쪽으로 힘을 주다가오른쪽으로 돌릴 때 왼쪽으로 힘을 주다가그만 목이 헐렁해져 버렸습니다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고 하였습니다다음 세상에서는 힘을 쓰지 않겠습니다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돌려주고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돌리다가목을 떨기겠습니다시인은 목을 얘기하면서 타의에 의해 간섭받고 통제받는 현대인들의 슬픈 초상을 그리고 있음을 본다. 목은 우리 몸의 중심이며 목숨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가 목을 돌리고 제어한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주체를 상실한 현대인들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나는 시다.시인
2018-02-27
눈이 없는 사람이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모르는 개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일찌감치 부모의 눈알을 후벼먹은 후레자식들이 휘파람을 불며 모여들었다 제멋대로 각목들이 쟁여져 있었다 훔쳐 온 자전거가 벌겋게 썩어 가고 있었다 개만도 못한 자식들이 자전거 체인을 벗겨 흉기를 만들고 있었다 담배를 돌려 피우며 팔뚝을 지지고 있었다 비린내가 풍겼다 고기는 팔고 비린내만 달고 온 어머니들, 돈에는 비린내가 난다 돈에도 비린내가 나 빠지지 않는 사람 냄새에 진절머리를 쳤다 눈 없는 아버지 말없이 듣고 있었다 손목에 체인을 감아쥐고 무엇을 후려치고 싶은 시절이 흘러가고 있었다시인이 설정한 장면 두 개가 무거운 그늘을 뒤집어 쓰고 있음을 본다. 한 장면은 소위 후레자식들이 훔쳐온 자전거로 흉기를 만드는 장면이고 한 장면은 어물전에서 고기를 팔고 돌아온 어머니들의 몸에서나는 비린내다. 시인은 두 장면에서 모두 비린내가 나 진저리쳐진다고 말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다 삶이고 삶에서 나는 비린내인 것을. 시인은 이런 불구의 세상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시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네 한 생이 비린내 속에서 굴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시인
2018-02-26
눈 내리는 아침에 인적이 없다다만 남쪽 하늘로부터 따스한 온기가 간신히 느껴진다내 곤두선 살갖만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 밖에 떠 있는 항성을기억할 뿐이다오래도록 눈 속으로 사라진 지상은 떠오르지 않아바람 불면 부는 대로 눈길 나고 눈언덕 돋는움직이는 마을 따라 떠돌다 보면내게도 녹아 버릴 리 없는 빙하기가 도래할까설원에 낯선 문자가 씌어 있어가까이 가 보니 허리 부러진 무지개였다좀 전까지도 누군가와 생소한 얘기를 나누던 것 같았지만 단지눈 쌓여 희뿌연 허벅지 살을 드러낸 안개나무 한 그루앙가슴에 녹아내리던 물방울 다시 얼어붙는 중이다가지런한 발자국이 나무 밑에서 끊어졌다눈 그치고 여전히 인적은 없다세계를 흔적으로 이해하려는 듯한 인식의 방식을 본다. 세계에 대한 인식은 이미 암호화되었거나 그 암호화된 것들이 지워져 가는 그 흔적을 추적하고 찾는데 시인의 특별한 인식의 틀을 발견할 수 있다. 눈이 온 천지를 덮어 설국을 이룬 세계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거기서 존재의 태를 발견하려는 시인의 밝은 눈을 본다.사진
2018-02-23
비가 오면온몸을 흔드는 나무가 있고아,아, 소리치는 나무가 있고이파리마다 빗방울을 퉁기는 나무가 있고다른 나무가 퉁긴 빗방울에비로소 젖는 나무가 있고비가 오면매처럼 맞는 나무가 있고죄를 씻는 나무가 있고그저 우산으로 가리고 마는사람이 있고시인은 비를 대하는 나무와 사람의 모습을 재미있게 대비시키고 있다. 나무는 어떻게해서든지 비와 온몸으로 접촉을 시도하는 반면, 사람은 우산으로 내리는 비를 차단시키고 말 뿐이다. 시인은 인간의 자기중심적 속성과 무반성적인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비아냥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시인
2018-02-22
다른 때는 아니고참으로 마음이 평화로워졌다고 생각하고 한참 만에 고개를 들며거기 오동꽃이 피었다살아온 날들이 아무런 기억에도 없다고, 어떡하면 좋은가….그런 평화로움으로 고개를 들면 보라 보라 보라오동꽃은 피었다 오오무엇을 펼쳐서 이 꽃들을 받을 것인가꽃은 언제 어디서나 피고 진다. 그러나 진정으로 꽃의 아름다움을 만나기란 그리 수월치만은 않다는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꽃을 만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답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참으로 마음이 평화롭고 여유로워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의 뒷부분에서 그 감격과 떨림과 질문에서 시인의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시인
2018-02-21
모래가 나를 짓눌러 온붉은 바위를 먹고 있다바위 속으로 섬광처럼 난길의 비밀도 먹고 있다부드러운 모래 능선을깎아내고 보태며 회오리치던내 삶이 묻힌다따뜻하다모래 속에는극약 같은 향(香)도 있다모래가 짓눌러온 붉은 바위를 먹는 것처럼 황량하고 허무한 것이 우리네 생이라는 인식에서 시는 출발하고 있음을 본다. 이처럼 모래 속에 묻히는 삶을 시인은 따뜻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담담한 수용이고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평화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리라.시인
2018-02-20
살구꽃살구꽃그 많고 환한 꽃이그냥 피는 게 아닐 거야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 매어 다는 걸 봐생각나지, 하루 종일 벌떼들이 윙윙거리던 거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날도전깃줄은 그렇게 울었지그래살구나무 어디인가에는 틀림없이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가 있을 거야낮에도 살구꽃밤에도 살구꽃시인의 상상력이 재미를 더해주는 작품이다. 봄에 피는 살구꽃들과 벌떼의 잉잉거림이 희망차고 역동적인 서정을 이뤄내고 있다. 꽃 앞에서 불의 상상력을 펼쳐 보이며 봄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는 환하게 밝은 작품이다.시인
2018-02-19
나무들이 울창한 생각 끝에 어두워진다김 서린 거울을 닦듯 나는 손으로나뭇가지를 걷으며 나아간다깊이 들어갈수록 숲은 등을 내보이며멀어지기만 한다 저 너머에내가 길을 잃고서야 닿을 수 있는집이라도 한 채 숨어 있다는 말인가문 열면 바다로 통하는집을 저 숲은 품에 안고 성큼성큼 앞서 가는 것인가 마른 잎이힘 다한 바람을 슬며시내려놓는다 길 잃은 마음이숲에 들어 더 깊은 숲을 본다우리의 인생길을 숲에 들어 나뭇가지를 걷으며 나아가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숲에 들어 걷다보면 더 깊은 숲을 보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고 방향을 잡지 못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김 서린 거울을 닦듯 다시 막막한 숲속에서 길을 찾고 길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구도와 순례의 시심을 읽을 수 있는 시다.시인
2018-02-14
삼율 지나다가 정거장 건너편, 텃밭이었던 자리. 이젠누구네 마당가에저렇게 활짝 핀 봉숭아 몇 포기, 그 옆엔빨간 토마토가 고추밭 사이로 주렁주렁 익고 있다왜 내겐 어머니보다 할머니 기억이 많은지멍석을 말아내고 참깨를 털면서흙탕물이 넘쳐나는 못도랑 업고 건네면서둑방가에 힘겨워 쉬시면서, 어느새달무리에 들고 그 둘레인 듯 어슴푸레하게, 할머니아직도 거기 앉아 계세요?나는 장수하며 사는 한 집의 내력이꼭 슬픔 탓이라고만 말하지 않겠다다만 우리가 추억이나 향수라는 이름 말고 저 색색의눈높이로 고향 근처를 지나갈 때모든 가계는 그 전설 따위에 도달한다그리고 뒷자리는늘 비어서 쓸쓸하다경북 울진군 후포가 고향인 시인이 어릴적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정겨운 필치로 보여주고 있는 시다. 어머니보다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어슴프레한 편이다. 그래서 시인은 전설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핏줄로 이어온 육친의 사랑을 느끼며 그 할머니의 부재에 대한 쓸쓸함이 묻어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시인
2018-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