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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삼사일언(三思一言)의 교훈

강희룡 서예가조선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윤기(1741∼1826)는 그의 ‘무명자집(無名子集)’에서 ‘사람에게 있어 말은 물이나 불과 같다. 사람은 물과 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수재(水災)나 화재(火災)를 당하면 참혹하기 그지없으니, 조심하여 사용해야 그 폐해가 없다.’라고 경고했다. 윤기는 남인(南人)출신 학자로 33세라는 늦은 나이에 소과(小科)에 합격한 뒤 20년을 성균관 유생으로 있었다. 52세에 겨우 대과(大科)에 합격했지만, 86세로 죽을 때까지 미관말직을 전전했다. 극도로 문란했던 당시 과거제도 아래에서는 권문세가에 연줄을 대거나 뇌물을 쓰지 않고는 과거에 합격하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호(號)를 무명자 곧 ‘이름 없는 사람’으로 불렀는데, 거기에는 개인의 실력과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도 절망하지 않고 의연하고도 초연하게 살고자 한 그의 정신이 담겨 있다. 당시의 과거제도나 많은 사회문제의 한 요인으로, 윤기는 ‘긴속(緊俗)’ 즉 자기에게만 긴요한 일을 좇는 세태에 주목하고, 천하 사람들의 미혹함이 모두 이 ‘긴’이라는 한 글자에서 연유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성의 존재이므로 자기만을 위한 긴요함을 좇다 보면 자칫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실패와 치욕을 맛보게 되는 것이 하늘의 떳떳한 이치라고 했다. 윤기는 서문에도 말조심에 대해 ‘입은 화(禍)를 부르고, 행동은 흔단(91C1端·틈이 생기는 실마리)을 여니 경계하고 조심하라.’ 적고 있다.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이 진행하는 ‘알릴레오’라는 유튜브방송에서 15일 오후 패널로 출연한 한 경제지 기자가 KBS의 여성 법조기자와 검찰 간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며 ‘검사들이 이 여기자를 좋아해서 조국수사 내용을 흘렸다.’는 망언을 해서 문제가 됐다. 조국 장관이 검찰 장난으로 인해 사퇴했다는 가짜뉴스를 방송으로 퍼뜨리려다 이런 재앙이 생긴 것으로 풀이된다. 다급해진 유 이사장이 사과했으나 평소에 그의 신뢰 없는 말 몇 마디로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유 이사장 본인도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검찰 압수수색 전 자신의 컴퓨터를 빼돌린 행위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해 장난칠 경우를 대비한 것이라며 PC 반출행위를 ‘증거인멸이 아니라 증거보존을 위한 것’이라는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방송에 출연하여 마구 내뱉는 그의 궤변에 대해 국민들은 크게 신뢰를 두지 않는다. 그의 상식파괴적인 ‘요설(妖說)’을 대하면 고려 말 요승(妖僧)으로 기록된 신돈(?∼1371)이 떠오른다. 이런 행태는 결국 국민을 선동하여 이 사회를 교란시켜 병들게 한다. 세치 혀로 자신이나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정제되지 않고 진실을 왜곡하여 쏟아낸 말의 결과는 그의 자신을 향해 설화(舌禍)로 돌아갈 것이다. 말에 대한 경계는 어느 시대 누구나 언급하고 있다. 말을 조심하지 못하면 크게는 패가망신하고 작게는 창피나 미움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화근이 말에서부터 비롯되니 한 번 입에서 나오면 되돌릴 수도, 손으로 가릴 수도 없다. 이렇듯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기에, 삼사일언(三思一言)의 교훈을 새겨야 하지 않겠는가.

2019-10-21

대중조작과 간신 비무극과 백비

강희룡 서예가인간 악행의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명쾌한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보통은 이기심에서 악행을 저지른다지만 역사에서는 이유를 찾으려 해도 특별한 동기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악인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악인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으니, 목적을 위해서라면 복잡한 음모도 한 순간에 만들어내는 천재적인 재주를 가졌다는 점이다.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열국지(列國志)에 등장하는 인물 중 희대의 간신은 비무극(또는 비무기)과 백비로 기록된다. 비무극(?~전515년)은 춘추시대 초나라의 정치가로 평왕의 아들인 태자 건의 소부(少傅·부스승)를 맡고 있었다. 권력에 야심이 많은 비무극은 우매한 평왕을 이용하여 태부(태자스승)였던 오사부자를 처형했고 군주와 신하들 사이를 이간질하여 자신의 정적들을 숙청했고, 생각이 다른 신하들을 주살하고 권력을 휘둘렀다. 결국 백성의 원망으로 초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결국 오, 월, 초의 광폭한 복수극은 이 한 사람의 악인으로부터 시작됐고, 그리고 끝내 남방을 피로 물들이게 된다.백비는 초나라 대부 백극완의 아들로 간신 비무극의 흉계로 부친이 억울하게 처형되자 오나라로 도망쳐 동병상련의 처지인 오자서에게 의탁했고 그의 추천으로 오왕 합려와 부차를 섬기게 된다. 감언이설과 아첨에 능해 곧은 충정을 지닌 오자서와 계속 대립했고, 결국에는 월왕 구천의 책사인 범려의 꾀에 넘어가 월나라를 대파한 공에 자아 도취되어 부차를 안일과 환락에 빠지도록 만들었으며 충신 오자서를 참소하여 결국 자결하게 만들었다. 결국 오나라의 세력은 약화되어 마침내 월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그의 일족도 월왕 구천에게 처형당하고 도륙됐다. 이렇듯 역사에서 읽을 수 있는 간신의 영향은 망국과도 직결됨을 알 수 있다.사람들의 의견이나 생각, 경험 등을 서로 공유하는 온라인인 소셜 미디어나 신문, 방송 또는 유튜브 등을 통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교란될 수 있는지, 또는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지금의 정치현실에서 우리는 생생하게 느끼고 보고 경험하고 있다.지금처럼 정교한 가짜 뉴스가 사방에서 몰아치며 진실을 가리고, 현재의 불평등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엄습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로 가장한 권위주의에 이끌리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고 무기력하게 만든다.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현 정부 역시 고도로 발달한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을 상대로 일방적 선전과 설득이나 상징정책을 통해 대중으로 하여금 무의식중에 동조하고 지지하도록 양분된 선동정치를 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교훈을 준다.’는 교훈처럼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며, 그 속에서 우리가 놓인 위치를 알면, 나아가 우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가짜 민주주의를 더듬던 발걸음을 멈추고 불확실한 미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책임의 정치’이며 역사의식이다.

2019-10-14

한비자의 망국론과 한국의 정치현실

강희룡 서예가한비자(전280?∼전233)는 전국시대 말기 법가의 집대성자이고, 통치술, 제왕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는 형명법술에서 군주는 법을 세움과 동시에 신하에게는 법을 지키고 공을 세우게 하는 신상필벌의 법치설을 주장하였다. 당시 예치(禮治)의 정치적인 실효성이 빛을 잃으면서 예치와 덕치(德治)를 보조하는 정치수단에 불과했던 법이 통치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자신의 저서 ‘한비자15편, 망징(韓非子15篇, 亡徵)’에서 망국(亡國)의 징조 47가지를 일찍이 설파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망할 조짐을 보였던 전국시대의 6국은 천하통일로 중앙집권을 이룬 진나라에 의해 병합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한비자의 망징 47가지는 크게 나누어 분열, 부패, 무원칙, 안보의식해이, 가치혼돈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라의 쇠망을 알려주는 징표 대표적인 7가지를 지금의 우리 정치현실을 우려하며 나열해 본다.첫째, 법을 소홀히 하고 음모와 계략에 힘쓰며, 국내정치는 어지럽게 두면서 외세에만 의지하는 경우이다. 둘째, 군주가 누각이나 연못을 좋아하며 수레나 옷 등에 관심을 기울여 국고를 탕진하는 경우이다. 셋째, 군주가 간언하는 자의 벼슬이 높고 낮은 것에 근거하여 의견을 듣고 여러 사람 말을 견주어 판단하지 않으며,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계층의 의견만을 받아들이는 창구로 삼는 경우이다. 넷째로 군주가 고집이 세서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을 듣지 않으며 승부에 집착하고 사직은 돌보지 않고 제멋대로 자신만을 위하는 경우이다. 다섯째, 나라 안의 인재는 안 쓰고 나라밖에서 사람을 구하며, 공적에 따라 임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판에 근거해서 사람을 뽑는 경우이다. 여섯째, 군주가 대범하나 뉘우침이 없고 나라가 혼란해도 자신은 재능이 많다고 여기며, 나라 안 상황에 어둡고 이웃 적국을 경계 하지 않는 경우이다. 끝으로 나라의 창고는 텅 비어 있는 반면 대신들의 창고는 가득 차 있고, 백성들은 가난한데 나라밖 이주자들은 부유하며 농민과 병사들은 곤궁한데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득을 얻는 경우이다.현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자로 판정되어 청문보고서 없는 인사들을 보고서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이 무려 22명이나 ‘묻지마 임명’을 강행했다.그 중 각종 비리의혹으로 국민의 비난과 검찰수사선상에 있는 조국을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명분으로 법무부 수장에 앉혔다. 이 조국 게이트는 단순히 윤리의 실종이나 도덕의 추락이 아닌 범법의 문제로 정의와 공정, 도덕을 강조하던 개혁진보세력과 좌파정치세력들의 부패와 도덕적 불감증의 민낯이 국민 앞에 드러났다. 이러한 범법행위에 대한 국민적 원망을 무마하려고 이번에도 과거처럼 촛불로 거리에 어릿광대들을 풀어 ‘조국지지와 검찰개혁의 국민적 요구’ 라고 숫자 부풀림으로 여론조작을 통해 덮으려 하지만, 한비자는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벌레가 파먹었기 때문이고,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019-10-07

교수들의 시국선언

강희룡 서예가대학하면 최고의 지성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이다. 대학은 그만큼 가기도 어렵고 선택된 교육기관이다. 후진국에서 대학생이 되는 비율이 고등학교 졸업생 수의 5% 미만인 경우도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교육의 영역이다.하지만 한국은 고등학교 졸업생이 줄면서 많은 대학에서 신입생 모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대학이 학생 모집에 전력을 기울이다 보니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본질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교수라는 직업은 당연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정치 또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있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현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기도 한다. 이들의 시국선언은 애국이 목적이며, 대표적인 사례는 4·19혁명이 일어난 직후인 1960년 4월 25일 당시 자유당정권의 부정선거와 부패에 항거하여 교수들의 시국선언으로 인해 이승만은 다음날 대통령직을 물러났다. 1986년 5공정권의 군부독재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었을 때도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민주화의 여망을 대변하면서 시민과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렇듯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우리사회에서 그들이 가진 비판적 지식인의 위상과 책임을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두고 가족이 검찰수사를 받기에 사퇴를 촉구하는 측과 조국 장관만이 검찰개혁 적임자라며 지지하는 측이 시국선언을 위한 교수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문제는 지지하는 측에서는 조국 장관만이 검찰개혁의 엄중한 역사적 과업의 도구로 선택된 것이라며, 수사로 온 가족의 삶이 망가지는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이 그 운명을 바치기로 결심했기에 그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검찰의 조국 가족 수사가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개혁정부의 미래를 좌초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 나라 민주주의의 성패를 결정지을 핵심적 사안이 바로 검찰개혁이기에 조 장관 일가 수사를 두고 마녀사냥식이라고 몰아붙인다. 아마 이런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사이비교수집단이 많은 것도 한국이 아마도 세계에서 선두일 것이다. 교수직을 발판으로 오로지 벼락출세와 권력지향적인 욕망을 꿈꾸며 정치권을 오가는 행태를 보이는 자들을 ‘폴리페서’라 한다. 이 폴리페서를 자신이 하면 앙가주망(지식인의 사회참여)으로 즉 내로남불 이야기하는데 앙가주망 이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배웠어야 할 것이다.학문 연구는 뒷전이고 정치권력에나 기웃거리면서 아부나 일삼는 자들은 이미 교수로서의 품격을 버린 것이다. 한 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라는 철밥통 관행 풍토가 사라져야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대학경쟁력이 살아날 것이다. 교수들 스스로도 학문적 능력과 연구실적 만으로 인정받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며 교수평가 온정주의는 배척해야 할 것이다.지금 그들은 조 장관의 일가가 보여준 삶의 궤적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실낱같은 서민의 사다리를 꺾어버린 행태를 민주주의로 포장해 궤변으로 국민 앞에 지지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9-09-30

정치인의 삭발

강희룡 서예가우리 민족은 머리카락을 중요하게 여기고 가꾸는 풍속이 있다. 조선조말의 개화기 상황을 보면 머리카락에 부여된 의미가 어떠했는가는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895년(고종32년)에 내려진 단발령(斷髮令)은 조선 사회에 일대 혼란을 불러왔다.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카락을 기르고 가꾸는 것이 효(孝)의 근본이라고 여기고 있던 사상 속에서 그것을 잘라버리라는 국가적인 주문은 백성들의 분노를 샀다. 이 시기 최익현(1833∼1906)은 ‘내 머리는 잘라도 이 머리카락은 자르지 못한다(吾頭可斷 此髮不可斷)’라며 저항하다 투옥되기도 했다.조선시대의 효에 대한 사상은 유가(儒家) 13경전 중 하나인 공자가 제자인 증자에게 전한 효도에 관한 논설 내용을 훗날 제자들이 편저한 ‘효경, 개종명의장(孝經, 開宗明義章)’에 기록된 ‘우리 몸의 머리카락 하나 살갗 한 점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거나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곧 효의 시작이니라’ 라는 사상 때문에 인체구성 요소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불가의 삭발은 출가 수행인의 모습으로 세속인과 다름을 나타내며 세속적 번뇌의 단절을 의미한다.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일컬으며 세속적 욕망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에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삭발을 통하여 자신의 수행일상을 점검하며 출가자의 청정의지를 표현한다.또한 고대 인도에서는 아이가 첫 걸음마를 뗄 때, 병에 걸리지 말라는 뜻으로 귓불을 뚫었으며 아이가 브라만의 자녀일 경우 세살이 되면 ‘추다카라나’라는 삭발의식을 치렀다. 아프리카 성년의식인 할례에서도 나타난다. 할례를 받은 상처가 한두 주일 후 치유되면 삭발을 한다. 이 머리가 다시 자란 후에야 비로소 ‘전사(모란)’가 된다.저자 잭 캔필드의 ‘내 영혼의 닭고기 ’라는 책 내용처럼 뇌종양의 치료로 항생제에 의해 머리가 다 빠진 15세의 친구를 위해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삭발을 하는 아름다운 삭발도 있다. 삭발은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을 통솔하는데도 이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 민족이 유태민족을 지배하기 위해 머리를 깎이고 화장실을 남녀공동으로 사용하게 하였던 것도 개인의 개성을 없애고 동물적인 본능만 살아있게 하기 위함이다. 각 나라마다 군대에서 군복을 입고 머리를 자르는 경우와, 교도소에서 범죄자들에게 삭발시키고 죄수복으로 입히는 것도 개개인의 개성을 없애므로써 조직이나 단체의 목표달성을 위해 일사불란한 통솔력에 따르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요즘 한국정치는 ‘삭발정국’이다. 지난 16일 조국 법무부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며 사상 초유의 제1야당 황교안 대표의 삭발이 도화선이 됐다. 황 대표의 삭발 이후 매일 현역 국회의원 10명을 비롯해 원외 인사들까지 포함하면 삭발 동참 인원은 20명 이상이다. 황 대표의 삭발은 흔들리던 그의 리더십을 막았지만 삭발에 동참한 현역이나 원외 인사들은 내년 총선 공천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선 중진의원이나 퇴출돼야 할 이들이 하는 삭발은 향후 당 쇄신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본연의 메시지보다 삭발이란 그 수단 자체만 남아버리고, 아무리 삭발해도 머리털은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2019-09-23

확인했어?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사람은 이기적이다.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바빠서 그렇다. 내 주변만 걱정하고 살아도 시간이 모자란다. 생각거리가 많고 걱정거리도 많다. 청년은 입시와 취업에 목이 마르고, 어른은 가계와 생업에 목숨걸고 산다. 하루하루가 전쟁같은 판에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나와 내 가족 챙기기도 만만치 않은 세상에 남들과 사회를 염려할 여유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북대화가 궁금하고 한일관계가 걱정이며 북미관계도 안타깝다. 나아가 4대강사업에도 관심이 있고 지구온난화도 띄엄띄엄 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투가 마음에 거슬리고 아베 총리의 망언에 핏대가 선다. 온갖 사건사고에 마음이 쏠리고 사회적 거대담론에도 제법 호기심이 발동된다.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매우 이기적이긴 하지만 또 한편 끊임없이 무엇이라도 알아야 하는 우리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까. 언론(言論). 언론의 유익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언론이 있어 나라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고, 언론이 있어 이웃과 세상이 사는 모습을 알게 된다. 언론이 전하지 않았으면 알 길이 없었을 뉴스가 하루에도 온갖 미디어에 한가득 실린다. 권력을 감시하고 정보를 전달하여 시민이 적절하게 판단하도록 돕는 언론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버팀목이 아닐 수 없다. 알아야 결정할 것이므로. 미디어환경이 급격하게 변해 가지만, 언론의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시민으로 알게 하라’.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지 본사 복도에 현수막이 붙었다. 그것도 대문자로만. ‘엄마가 널 사랑한다 말한다면, 그거 확인해! (WHEN YOUR MOM SAYS SHE LOVES YOU, CHECK IT OUT!)’ 취재와 보도에 나선 기자들이 분명히 해야 할 일은 ‘확인하고 확인하는’ 일이라는 의미. 당연한 사안이라도 기자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한 줄도 쓰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 취재원으로부터 보내오는 보도자료는 그들 입장에서 적혔을 게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보도자료는 기사가치를 결정하고 취재에 나설 시발점이기는 해도, 그 자체로 기사는 될 수가 없다. 기자의 이름을 걸며 적어 내릴 기사는 기자가 손수 확인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어야 한다. 검찰이 던져주는 단서가 기사의 줄거리가 되거나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에게 묻는 일로 취재를 대신하는 일은 일선기자라 불리기에 아직 흡족하지 못하다.언론인 빌 코바크(Bill Kovach)와 톰 로젠스틸(Tom Rosenstiel)은 ‘저널리즘의 본질은 확인(verification)에 있다’고 하였다. 사실을 일어난 그대로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는 생각. 팩트가 기사의 토대가 될 때에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팩트는 정확해야 하고 충분해야 하며 공정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누군가 던져준 사실과 문건은 기자가 확인하기 전에는 아직 취재를 위한 재료일 뿐이다. 시민의 민주역량은 ‘언론의 확인’에서 시작한다.언론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언론이 민주주의를 그르친다.

2019-09-18

독일과 일본의 역사관

강희룡 서예가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지난 1일 폴란드 중부 비엘룬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 행사에 참석해 과거사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그는 이날 당시 독일군에게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애도했다. 독일의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기리며 용서를 구한다.1939년 9월 1일 오전 4시 40분 독일이 폴란드의 비엘룬을 기습적으로 침공함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방어력이 없던 소도시 비엘룬은 순식간에 도심 전체가 파괴됐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 1천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후에도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후 5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폴란드에선 유대인 300만 명을 포함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6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바르샤바를 비롯한 주요 도시는 폐허가 됐다.비엘룬에서의 행사는 8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전 4시40분에 시작됐다.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린 비엘룬 공습은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이자 전쟁범죄였다’고 말했다. 두다 대통령은 독일 대통령의 비엘룬 방문을 일종의 도덕적 배상으로 규정하면서 ‘힘겨운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는 행동에는 용서하고 우정을 쌓을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독일은 그동안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폴란드, 프랑스, 영국 등을 비롯한 전쟁 피해국들에 많은 배상을 해왔고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를 계속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독일 하이코 마스 외교장관은 지난달 1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추모하고 용서를 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지난 7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해 ‘우리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억을 보존하고 이어가야 하며,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지역에서 1차 세계대전으로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일본은 지역적 한계와 서방국가들에 비해 조선 이외 다른 식민지를 보유하지 않았기에 경제침체에 빠졌다. 도조 히데키와 일본 군벌은 이 대공황을 타개하고 제국의 세력 확장을 위해 만주를 침략하여 만주국(1932)을 세우고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2차세계대전에 뛰어든다.일본은 10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을 강제징용 또는 징병해서 죽음으로 내몰았다. 전쟁 가해국으로 오늘날까지 사죄는커녕 오히려 한국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한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아베의 야망은 ‘전범국가에서 전쟁국가’ 즉 군국주의 부활이 주 목표다. 이번 개각에서 호전(好戰)적 사관을 가진 반한(反韓)인물들을 중심으로 ‘초우향우’ 개각을 단행했다. 이 개각으로 역사인식 문제를 놓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독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피해 입은 모든 나라에 사죄를 해왔다. 사죄 없는 일본과 과거사를 대하는 역사인식이 서로 상반되는 것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우리는 지난 비극의 역사를 잊지 말고 반드시 미래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9-09-16

미국이 필요한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

강희룡 서예가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834년 아시아지역에 파견되었던 미국의 로버츠 특사가 조선과도 교역할 가능성이 있다고 귀국보고를 하면서부터이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1845년 Z.프래트 의원이 조선에 대한 통상사절 파견을 제기한 데서 비롯된다. 양국이 공적으로 접촉할 계기가 된 것은 ‘제너럴 셔먼호사건’과 신미양요이다. 일본 주재 청국 외교관 황준헌이 조선의 외교진로에 관해 쓴 ‘사의조선책략(1880)’이 입수되어 이것이 어전회의에 상정된 뒤부터 미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양국관계가 호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략이 가장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의 남침을 막는 방아책(防俄策)으로 중국, 일본, 미국과 연대함으로써 자강책을 도모하라는 것이다.오늘날 미국은 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 세계에서 제2의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을 잡는 것을 우려하는 미국에게 한국의 지리적 위치는 전략적 요충지로 적절하기에 한미동맹관계를 통해 동아시아 정세를 주도함으로써 세계 패권국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리처드 에머슨의 ‘교환이론’에 따르면 한미는 서로에게 얻고자하는 가치 있는 자원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라는 나라의 존재이다. 한미동맹의 두 나라간 결합관계를 설명하려면 북한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국가안보의 안정성을 보장받으며, 또한 이 동맹으로 한국에서의 전쟁 가능성은 확연하게 떨어진다. 교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미동맹은 불균형관계이다. 이런 상황은 서로 교환하는 자원의 필요성부분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자원을 한국이 좀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 한국에 사드배치의 미국요구는 미국이 힘의 우위에 있다는 이유에서 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국가 간의 불균형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미동맹의 불균형관계를 균형화상태로 실행하려면 미국으로부터 받는 자원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것이며, 그 대안으로는 국방력을 높이는 것이다. 즉 미군 없이도 자체국방력으로 북한의 남침을 억제할 수 있다면 미군이 제공하는 안보의 안전성이라는 자원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주한미군 역사에서 미군을 용병으로 운운하는 트럼프 대통령 재 임기는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에게 동맹의 개념이 희박하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평택 캠프 험프리는 중국을 코앞에서 제압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기지 건설비의 90%인 97억 달러를 한국이 부담했다. 트럼프 요구대로 되면 동북아의 요충지에 군사력을 전진 배치하면서 매년 수 조원을 한국에 부담시키는 셈이 된다.연간 ‘방위비분담금 50억 달러(약 6조원)’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천박한 장사꾼 대통령이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것은 물론 피로 맺은 동맹국과 동북아의 안정을 파괴하는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9-09-09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변명

강희룡 서예가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던 최한기 선생은 ‘인정, 측인문(人政, 測人門)’에서 공직으로 나아가는 인재감별의 다섯 가지 대원칙을 언급했다. 이 덕목들의 출처는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로 본래는 나라의 재상을 뽑는 덕목이었는데, 최한기는 모든 인사에 적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덕목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다섯 가지 덕목은 ‘첫째, 평소에 그가 어떤 사람과 친했는지 살펴보고, 둘째, 가난할 때에 그가 어떤 것을 취하지 않았는지 살펴보며, 셋째, 처지가 궁할 때에 그가 어떤 일을 하지 않는지 살펴보고, 넷째, 현달(賢達)할 때에 그가 어떤 사람을 추천하는지 살펴보며, 끝으로 부유할 때에 얼마나 남에게 베푸는지 살펴보는 것이 실로 사람을 감별하는 대원칙이다’라고 하였다.전국시대 위(魏)나라의 기틀을 잡은 명군 문후(文侯)는 위성자와 적황 중 누구를 재상으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이극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이때 이극이 재상을 감별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위 5가지 덕목이었다. 결과는 위성자가 재상이 되자 적황은 이극에게 따졌다. 그러자 이극이 ‘위성자는 자신의 봉록 중 9할을 남에게 베풀어서 복자하, 전자방, 단간목의 세 현인을 초빙하여 임금께서 이 세 사람을 모두 스승으로 삼았다. 반면 그대가 추천한 사람들은 모두 신하로 삼았다. 그러니 그대가 어찌 위성자와 비교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적황도 승복하고 말았다. 사람이 지닌 인의예지의 덕성에 대한 신뢰는 공자와 맹자를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내려온 유학(儒學)의 불문율이다. 이번 정부의 증폭 개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조국 전 민정수석이 서울대에 복직 후 한 달 만에 다시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됐기에 ‘조국개각’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의 검증과정에서 드러난 ‘사노맹’활동으로부터 대학복직의 ‘폴리페서’로 지탄을 받더니 강의 없는 방학기간인 8월 교수월급으로 수백 만원을 받아 챙김으로써 ‘무노동 유임금’ 논란에 휩싸였다. 후보자의 국회 재산 신고액은 무려 56억원으로 이 중 예금만 16억원이 넘는다. 더 큰 의혹은 후보자 가족이 운영하는 웅동학원을 둘러싼 채권채무의 소송관계, 사모펀드의 75억원 투자 경위, 증여세 미납부, 동생가족의 위장이혼, 후보자의 낙제한 딸이 받은 황제 장학금 논란과 논문 1저자 파문 등 수많은 의혹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역시 가진 자들의 대입 준비는 다르다’라며 범죄형 특혜논란을 국민은 비웃고 있다.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던 정유라 사건이나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은 차라리 그 반칙 정도가 이 사건에 비해 약해 보인다. 청와대 공직인사 배제원칙인 5대 비리 이외에도 매일 새로운 의혹이 추가되고 일부 의혹에 대해서는 고발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청와대의 이번 인사 기준은 도덕성을 기본으로 하고, 해당 분야 전문성을 우선 고려했다고 밝혔다. 만약에 인사청문회 결과를 무시하고 물욕과 권력의 탐욕에 찌든 이런 부적격자가 그것도 법무장관에 임명이 강행된다면 검찰 수사를 받는 현직 법무부 장관이라는 희대(稀代)의 기록이 불가피해진다.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청와대가 지명을 거둬들임으로써 국민 앞에 스스로 밝힌 최소한의 인사원칙이라도 지키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2019-08-26

집착은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우(愚)를 범한다

강희룡 서예가장자, 도척편(莊子, 盜跖篇)에는 춘추시대 노나라의 미생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용인즉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는 기록이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 만들어진 고사이다. 사기 소진열전(史記, 蘇秦列傳)과 전국책(戰國策), 회남자(淮南子) 등에도 보이는데 소진만 미생의 행동을 신의로 보고 다른 곳에서는 모두 이 이야기를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예로 들고 있다.전국시대의 종횡가로 이름이 난 소진은 연나라의 소왕을 설파할 때에 이 이야기를 예로 들어 자신의 신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장자는 도척편에서 공자와 대화를 나누는 도척의 입을 빌어 미생의 융통성 없고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통박하고 있다.‘이런 인간은 제사에 쓰려고 찢어발긴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 없다.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기니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전국책에서는 미생과 같은 신의는 단지 사람을 속이지 않는 데 불과할 따름이라고 하고, 회남자에서도 미생의 신의는 차라리 상대방을 속여 순간의 위험을 피하고 후일을 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송양지인(宋襄之仁)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사람들 삶의 과정이 대체적으로 겉으로 꾸밈이 많은 오늘날 미생과 같은 행동은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이나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잠깐의 카타르시스는 될지 모르지만, 참다운 삶의 도리를 알고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큰 흉년 때 자신에게 혀를 찼다는 이유로 그가 주는 구호 음식을 거절하고 굶어 죽은 제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가 일단 사과를 했으면 그냥 받아먹었어도 되는데 너무 소심하게 예의를 따졌다고 증자가 부정적 평가를 내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신의와 예의와 명분은 유가의 절대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로 흘러 중용의 도를 해치는 것은 크게 경계했다.공자는 ‘군자는 무조건적으로 고집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오직 그 상황에서 가장 의로운 선택인가가 판단의 전제였을 뿐이었다. 예기 단궁(檀弓)에 보이는 고사인데, 이 고사는 두 가지 가치를 보여준다. 하나는 아무리 중요한 원칙이라도 상황에 맞게 권도(權道), 즉 융통성을 부려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현실에 타협하거나 비굴하게 굴지 않는다는 것이다.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전례 없이 큰 갈등과 고립된 외교를 겪고 있다.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거듭 강조한 ‘평화경제론’과 이례적으로 통일의 시점을 제시하고, 통일 이후 한국의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 대북 메시지를 던진 지 불과 24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북한은 문 대통령을 향해 심한 조롱 섞인 말 폭탄과 미사일 발사로 답했다.‘남한 패싱’을 노골화한 북한이 남북 관계의 창구를 닫고 저 혼자만의 길을 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풀리지 않고 있는 일본과의 경제대립이 그렇고, 북한과의 관계도 하나도 화해의 진전 없는 현실에서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세계 경제 6위권이 될 것이라는 환상과 ‘평화경제’라는 모호한 단어를 국민 앞에 들고 나와 자화자찬하는 정부와 여당도 그렇다. 미생지신이나 송양지인 같은 우매한 생각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도탄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한 TV 광고가 나온다. 영화 ‘국제시장’속의 자유를 향해 남쪽으로 향하는 흥남부두 피난민의 처절한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2019-08-19

영화 ‘기생충’이 보내는 메시지

강희룡 서예가사람에게 기생충(寄生蟲)은 이나 벼룩 같은 외부 기생충과 회충 또는 십이지장충 같은 내부 기생충이 있다. 조선의 허준(1539~1615)이 지은 동의보감도 대부분 중국의 각종 의서 내용들을 그대로 인용하는 데 그쳤다. 그 예를 보면 ‘사람이 고단할 때 열이 있으면 충이 생기는데 이 심충(心蟲)을 회충, 비충(脾蟲)을 촌백충(寸白蟲), 폐충(肺蟲)은 누에와 같으니 모두 사람을 죽이는 병으로서 그 중 폐충이 가장 급한 병이다’ 라고 천금방(千金方)의 기록을 인용했다.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관객수 1천만을 넘었다. 인간 기생충을 다룬 이 영화는 한국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흥행은 현실의 사회상을 반영한 대중성이 높을수록 성공한다.내용을 살펴보면, 지상과 지하를 경계로 지상의 집에 도착해도 다시 계단을 오르는 부유층과 반지하에서 작은 창문 틈을 통해 위를 봐야 세상이 보이는 지하방, 그리고 더 지하로 내려가서 사는 하층계급을 다룬다.이 영화에는 계획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부자인 IT회사 사장은 직원들과 회사경영의 계획을 세우며 그 계획을 성공시켜 부를 이루지만, 가난한 계층은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안 되니, 하루하루를 살며 무계획을 계획으로 살아가게 된다.땅을 경계로 지상과 지하 즉 피라미드형 사회적 계층으로 지상은 언제나 풍족하고 폭우 앞에서도 걱정 없지만, 반지하부터는 물에 잠겨 피난을 가야 한다. 신계급주의사회의 양단에 살고 있는 두 가족의 거주형태는 빈민계층 사람들이 아무리 위로 올라가려 해도 불가능해 현실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없는 자의 몸에선 늘 가난이란 냄새가 공통적으로 풍긴다. 이 냄새는 옷을 빨아도 없어지지 않는 찌든 생활의 냄새이다. 빈민층끼리는 못 맡지만 부유층에선 쉽게 맡아 이 냄새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 삶이 고통으로 찌들면 여유가 없어 남을 배려하거나 동정심은 사라지고 증오와 미움만 남는다는 인간심리 또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유층은 빈민층이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한다. 이 선이란, 운전기사는 기사로서, 가정부는 가정부로, 각자 위치에서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되 상부층에 도전하지 말라는 선이다. 기생충 가족이 일시적으로 성충이 되어 보지만, 결국 못 견디고 숙주(宿主)가족을 공격한 후, 파멸되어 스스로 본연의 자리인 지하로 내려간다.달팽이는 몸속의 수분이 많이 증발하기 때문에 건조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한다. 하지만 바다달팽이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매일같이 바위 위로 올라와서 갈매기들의 먹잇감이 된다. 이는 갈매기 몸속에서 번식할 수 있는 기생충이 달팽이를 이용한 것이다. 비슷한 경우로 개미도 있다. 평소에는 풀숲 사이로 기어 다니던 개미가 기생충의 공격을 받으면 자꾸만 풀잎 끝으로 기어오른다. 그리곤 풀을 뜯는 가축의 장으로 들어간다. 초식동물의 장 속에서 번식하는 것이 이 기생충의 삶이다. 영화는 우리 사회의 빈부의 양극화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살아가는 동선을 보면 거의 안 겹치는 게 현실이다. 기생충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국민을 숙주로 한 것이다. 어둠속에서 유권자들이 맡긴 권력을 이용하여 청탁이나 횡령 등으로 부패한 공직자들, 정치권력을 가진 엘리트가 대중매체 등을 이용해 그들의 의도대로 대중조작해 언론소비자들을 마취시키는 행위에 편승한 언론사는 회충 같은 내부 기생충이며, 패거리 정쟁을 일삼고 일을 안 하는 국회나 직권남용 같은 사례는 벼룩 같은 외부 기생충들이다. 대체로 이런 기생충들은 정치 후진국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런 독버섯 같은 기생충이 토착화하기 전에 완전 제거가 안 되면 사회와 나라는 병들어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2019-08-12

가깝고도 먼 나라

강희룡 서예가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보면 기원전 3세기경 한반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600여 년간 청동기와 철기문화를 일으켰는데 이를 ‘야요이 문화’라고 한다. 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은 원주민인 조몬(繩文)인을 몰아낸 이 야요이인이라는 학설도 있다. 이후 백제와 가야, 고구려인의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이를 도래인(渡來人)이라고 한다. 일본의 건국과 일월숭배와 관련이 깊은 신화적 요소가 짙은 설화인 ‘연오랑 세오녀’도 삼국유사에 전한다. 이 설화가 고대 일본문화의 성립과 관련이 깊다는 것은 세오녀가 짠 비단의 존재에서 알 수 있다. 이는 일본으로 건너간 집단 가운데 직조 기술자가 있으며, 이들이 일본에 직조 기술을 전파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듯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는 그 유래가 매우 깊음을 알 수 있다.일본인에 대해 일찍이 신숙주는 ‘해동제국기서’에 ‘그들의 습성은 강하고 사나우며, 무술에 정련하고 배타기에 익숙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그들을 만약 도리대로 잘 어루만져 주면 예절을 차려 받들고, 그렇지 않으면 문득 함부로 노략질할 것입니다.’라고 하여 일본에 대한 경계심과 함께 교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신숙주는 임종 직전에도 성종에게 ‘일본과의 평화를 잃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임진왜란은 명, 청의 교체, 일본의 에도막부와 같은 새로운 정권의 성립을 말해 준다. 이 전란의 시대를 살던 강항(1567∼1618)은 왜군에 잡혀 피로인(被虜人)의 신세가 된다. 그가 지은 ‘간양록(看羊錄)’은 일본에 끌려가 목격한 실상을 속속들이 기록한 체험기록이다. 그 중 ‘적중봉소(賊中封疏)’의 한 대목을 보면 ‘백만의 야인이 수십만의 왜병을 대적치 못할 터인데, 국가에서 남쪽을 가볍게 여기고 북쪽을 무겁게 여기는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중략) 왜인이 포 쏘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천성이 영리하여 지금의 왜인은 옛날의 왜인이 아니니, 조선의 방어 또한 옛날의 방어로는 안 되는 것이니, 국경의 방비를 전일보다 백배 더해야 할 것입니다.’ 당시 일본의 역사와 사회상을 객관적으로 제시한 기록이다.에도시대 조선통신사는 1607년에 시작되어 200년 동안 모두 열두 번 파견되었다. 통신사로 파견된 인사들 중 신유한(1681∼1752)이 쓴 ‘해유록(海遊錄)’의 기록을 보면, ‘통신사들은 일본 전국의 지식인과 민중에게 거의 열풍에 가까운 큰 환영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즉 조선 문화전파의 길이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문화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일본 내부와 속사정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이가 드물었고, 일본의 참모습을 직시하기는커녕 깔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연암 박지원이 ‘우상전(虞裳傳)’에 남긴 언급을 보면, ‘수백 년 동안 사신의 행차가 내왕했으나 체통을 지키고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치중하느라 그 나라의 인물, 요새, 강약의 형세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왔다갔다만 하였다.’라는 기록이 당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일본에 관한 종합 정보지의 성격을 지닌 이덕무(1741∼1793)의 ‘청령국지(873B86C9國志)’를 보면 조선후기 지식인들은 일본을 통해 서구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적지 않게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역학에서는 한국과 일본은 모두 동쪽에 있는 나라라고 해서 목(木)으로 분류한다. 같은 목이지만 한국은 갑목이고, 일본은 을목이다. 이렇게 음양을 십성(十星)으로 분류하게 되면 겁재(劫財)가 되는데, 이 겁재는 사람으로 치면 배다른 형제이다. 즉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인 것이다.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일본과 불붙은 경제전쟁은 목소리만 높인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아베의 숨은 목적은 한국에서의 극대화된 반일감정을 이용하여 그의 목표인 전쟁 가능한 일본 헌법으로 개정하는데 있다. 국민들에게 죽창과 의병의 행동강령, 이순신의 12척의 배를 운운하며 국민을 애국과 이적으로 가르는 것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반드시 이긴다.’는 손자병법이 필요한 시국이다.

2019-08-05

카디즈(KADIZ) 침범의 의미

강희룡 서예가영공은 해안선에서 바다로 12해리(약 22㎞)까지인 영해와 영토의 상공을 일컫는다. 모든 나라들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 타국의 군용기가 자국 영공에 들어오면 국토침범 행위로 간주한다. 일단 영공을 침범 당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경고방송 후 진로를 차단하게 되며, 플레어 발사 후 경고사격의 단계를 거쳐 강제착륙을 시키거나,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격추시켜버린다.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민간기까지 격추한 사례도 있다. 이 대표적인 사례는 소련은 1978년 4월 파리에서 출발한 KAL707기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를 들어 전투기를 띄워 미사일로 공격했다. 비행기는 다행히 인근에 비상착륙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2명이 숨졌으며 나머지 95명의 승객은 목숨을 건졌다. 국제사회는 소련군 전투기가 민간 항공기를 공격한 것을 강하게 비난했지만, 소련은 영공을 침범했다며 격추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른 예는 1983년 9월 1일 소련에 의해 격추된 KAL007기다. 미국 뉴욕을 출발해 당일 저녁 서울에 도착하려던 KAL기는 오전 3시쯤 일본 홋카이도 근해에서 연락이 끊겼다. 정규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에 들어간 KAL기는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에 격추되어 탑승자 269명 전원이 숨졌다. 소련은 사건 발생 8일 만에야 자국 영공을 침범한 KAL기가 착륙 유도에 불응해 취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발표했다. 당시 전투기 조종사는 2013년 언론 인터뷰에서 KAL기를 군 정찰기로 확신하고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격추명령 이유와 KAL기의 항로 이탈한 이유 등은 아직도 미궁이다.남의 영공을 침범한 군용기를 격추하는 사례는 최근에도 많이 발생한다. 특히 적대적 관계에 있는 국가들 간에는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 지난달 20일 이란 혁명수비대는 자국 영공을 지나는 미국의 군사용 드론(무인항공기)을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남부지역 상공을 날던 미군 드론 ‘RQ-4 글로벌호크’를 대공 방어시스템으로 파괴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해당 드론이 이란 영공이 아닌 국제공역을 비행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드론 격추 사실을 보고받고 이란 공습계획을 승인했다가 실행 직전에 철회하기도 했다.2019년 7월 23일 오전 9시 1분경 러시아 항공우주 방위군 소속 조기경보기 A-50이 대한민국 독도 영공을 무단 침입했다. 앞서 카디즈(KADIZ·한국방공식별구역)를 침범한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에 맞서 경계비행을 실시한 대한민국 공군이 대응사격을 하자 러시아 조기경보기는 9시 37분 독도영해를 벗어나 56분 방공식별구역에서 빠져나갔다. 남북이 휴전 이후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가 한꺼번에 한국을 상대로 이렇게 도발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중국은 23일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비행은 전면적인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심화 발전시키고 연합작전 능력을 향상하며, 공동으로 글로벌 전략 안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러시아는 당초 한국 영공 침범 사실을 인정하고 깊은 유감 표명했다가, 나중에 독도 영공 침범에 대해 증거가 명백한데도 공식 부인하는 전문을 우리나라에만 보내왔다. 일본의 자위대 군용기도 긴급 발진을 했으나 한국에만 전문을 보낸 것은 독도가 한국영토인 것이 국제적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러시아의 이러한 말 바꾸기 수법은 공산권이 남긴 화법으로 전형적인 외교 수법이다. 올 들어 군용기 카디즈 무단진입은 중국이 25차례, 러시아가 13차례나 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한일관계가 최악이고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한미일 공조의 틈새를 벌리며,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를 자신들의 영향력 안에 두고자 하는 ‘패권심리’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풀어진 우리의 국가안보를 강한 국방으로 원칙을 천명할 것인지, 유토피아적인 발상의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꿈꿀 것인지 결단의 순간이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이다.

2019-07-29

죽창의 진실과 죽창가(竹槍歌)

강희룡 서예가며칠 전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그의 SNS에 ‘죽창가’를 언급했다. 이 메시지는 아마 한국을 압박하려고 부당한 무역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국론을 하나로 모으자고 하는 뜻일 것이다. 죽창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이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시 민초들의 삶의 배경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당시 구한말의 정치, 경제구조의 진실을 냉철히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조선은 정조시대 후기로 이어오면서 60여 년간 세도정치로 국고는 텅 비고 모든 산업은 위축되었다. 백성들은 심한 기아에 시달렸으며 나라가 순식간에 빚더미가 되자 대원군은 세도정치의 폐해를 알고 고종의 비(妃)로 명문이면서도 몰락하여 일가가 없고 그 세력이 미미하며 부모가 일찍 죽어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민치록의 외동딸 민자영을 며느리로 맞아들였다. 이 왕비가 바로 민비이다. 민자영이 왕비가 되자 갑자기 없던 친척이 수없이 몰려들었고, 이들에게 같은 민씨라는 이유로 요직에 등용하거나 벼슬을 내렸다. 당시 기록에는 뇌물을 바치고 지방의 사또가 되어 가는 사람이 미처 남대문을 나가기도 전에 더 많은 뇌물을 바친 다른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황현의 ‘매천야록’에 고종은 뇌물을 좋아했으며, 대신들을 임명하고 일주일도 채 안되어 자리를 바꾸게 하는 등의 졸속행정으로 관리들이 공문서를 들고 갈 곳을 모르더라는 기록도 있다. 전국의 큰 고을이면 대부분 민씨들이 수령자리를 꿰찼고, 평양감사와 통제사는 민씨가 아니면 할 수 없게 됐다고 쓰고 있다. 고종과 민비의 재물에 대한 탐욕은 끝이 없었고, 당시 뇌물 5만 냥으로 벼슬을 산 자가 바로 고부군수 조병갑이다. 탐관오리 중 으뜸이었던 조병갑은 만석보라는 대형 저수지를 축조하여 사용료를 부과하였고, 아버지의 공덕비 명목으로 백성들로부터 엄청난 세금을 걷고 노역을 시키는 등 민초들을 괴롭혔다. 이 폭정에 견디지 못한 고부군 사람들은 전봉준 아버지인 전창혁을 대표로 탄원서를 제출하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매질뿐이었다. 곤장으로 인해 전창혁은 거의 죽은 상태로 돌아와 며칠 안 되어 죽고 말았으니 이에 분개한 아들 전봉준이 1894년 1월 동학농민들을 주축으로 봉기했다.전주성 함락으로 크게 놀란 조정은 청나라에게 지원군을 요청하자 1894년 5월 5일 아산만에 청군이 상륙한다. 하지만 무능한 고종과 대신들의 이런 잘못된 결정은 바로 다음 날 ‘일본은 조선에 대해 청과 동일한 파병권을 갖는다’는 톈진조약을 명분으로 일본군이 전격적으로 제물포에 상륙하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내부의 분란을 진압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는 역사적 사실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공주에서 벌어진 ‘우금치전투’에서 야포와 개틀링 기관총, 스나이더 소총 등 신식 무기로 무장한 조선관군과 일본군에 비해 2만여 동학군은 대부분 조총과 죽창으로 무장하고 전투를 했으니, 이건 전투가 아닌 제노사이드(학살)였던 셈이다. 농민군이 대패하고 1895년 3월 전봉준이 처형될 때까지 그렇게 1년 만에 동학농민전투는 막을 내렸다.여기서 우리가 가장 기억해야할 것은 일본군이나 죽창이 아니라 상무정신이 없고 문약했던 관리들, 권력에 줄서서 백성의 고혈을 빠느라 정신이 없었던 당시 부패한 사회구조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이 무능한 집권세력을 향해 죽창을 든 것이다. 민정수석이 올린 죽창가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라는 주사파 일원으로 스스로 전사라 칭하며 남조선 우익 200만은 학살해야 한다던 김남주가 작사했다. 민중해방운동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민비는 2000년대 ‘명성황후’라는 오페라에 의해 부패와 악질적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조선의 국모’로 변해버렸다. 동학농민운동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정자들이 각자 입맛에 맞는 해석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2019-07-22

가장 위험한 거짓말

강희룡 서예가이솝우화 중 하나로 ‘양치기 소년’이 있다. 양치는 소년이 심심풀이로 늑대가 나타났다! 며 자주 거짓말로 소란을 피웠다. 동네사람들은 소년의 거짓말에 속아 무기를 가져오지만 번번이 헛수고로 끝났다. 여러 번 반복되는 소년의 거짓말은 신뢰를 잃어갔고 어느 날 정말 늑대가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아 결국 마을의 모든 양이 늑대에 의해 죽었다. 거짓말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으되, 듣는 사람의 상식과 심리를 기만하여 이득을 얻은 경우다.사실이 아닌 것을 상대방에게 이것을 믿게 하려고 사실처럼 꾸며서 하는 말은 대개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가 죄가 없는 거짓말로 원만한 인관관계를 위한 거짓말이나 농담을 말하며, 자식 자랑을 하는 부모에게 ‘아이가 참 이쁘네요.’라고 말하는 사례이다. 둘째로는 방어적인 거짓말로 가장 흔한 형태이다. ‘늦잠을 자놓고 차가 막혀서 늦었다.’고 하는 사례이다. 셋째로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거짓말로 허풍이나 허세를 부리는 경우로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론’이다. 이 주장은 실제로 전투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북한위협으로부터 국민의 동요를 막고 반공정신과 안보의지를 다지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은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라는 허황한 허풍을 떨었다. 끝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로 가장 악의적인 말이다. 이 악의적인 거짓말은 일반인들이라면 개인이나 사회에 부분적으로 그 피해가 미치겠으나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회 지도층에서의 거짓말은 한 국가의 멸망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큰 거짓말은 서인 황윤길의 왜적 침입보고에 대해 동인 김성일이 민심이 흉흉할 것을 우려하였다는 반대보고이다. 당시 조정의 동·서인의 치열했던 정파싸움을 감안하면 주리론과 예학에 밝았던 김성일이 풍신수길의 흉계를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 결국 민심은 거짓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김성일의 보고서를 선택한 조선은 7년이라는 전란 속에 조선백성의 삼분의 일이 도륙당하는 화를 입었다. 분명히 사실 혹은 진실을 말하는데 거짓인 경우가 있는데 특히 정치인들이 이 방법을 자주 쓴다. 많은 정치인이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기억에 없다.’는 수사를 활용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의 거짓말 논란 파장이 크다. 그의 강직하고 정의로운 이미지에 큰 생채기를 입었고 검찰 신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됐다. 하지만 이 거짓말은 개인의 도덕이나 특정 조직의 신뢰훼손에서 그치고 만다.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군 조직의 거짓보고이다. 지난달 16일 군 경계를 뚫고 들어온 삼척 북한 목선사건에 대한 국방부 대국민 발표는 한마디로 드러난 상황과는 동떨어진 거짓말 보고였다. 또한 지난 4일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 탄약고 인근에 거동 수상자가 나타나 암구호를 확인하려 했으나 응하지 않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틀 뒤 2함대 소속 병사가 본인이라 자수했는데 조사 결과, 상급자의 명령으로 허위자백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계실패의 책임론이 커질 것을 우려해 사건의 은폐, 조작을 시도한 것이다. 13일 국방부 조사본부가 밝힌 범인은 인접 초소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병사로 밝혀졌다. 현장의 오리발에 대한 설명이 없어 신뢰성이 없다. 더구나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국회의원에게 거짓대답을 일삼는 합참의장의 행위나 국방장관의 인식이 국민에 대한 거짓발표를 별 것 아니라는 것을 보면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이 일상인 모양이다. 목선사건은 진실을 비틀었고, 이번 2함대 사건은 통째로 조작한 것이다. 적(敵)의 눈치 속에 군기는 무너지고, 자리와 영욕에 연연하는 지휘관들이 우글거리는 군대는 더 이상 군이 아니다. 한비자의 ‘망징편(亡徵篇, ‘나라가 망하는 징조’)’이 떠오른다.

2019-07-15

신숙주의 유비무환(有備無患) 국가관

강희룡 서예가조선시대 외교를 흔히 사대교린(事大交隣)이라 한다. 사대는 대중국 외교를 말하고 교린은 중국을 제외한 주변 여러 나라와의 외교를 가리키지만 주로 일본과의 외교를 말한다. 대일본 외교는 대중국에 비해 첫 번째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그 중요성은 컸다. 대일본 외교에서 조선후기까지 기본지침서가 된 책이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이다. 이 ‘해동제국기서’에 ‘신이 듣건대, 이적(夷狄)을 대하는 방법은 외정(外征)에 있지 않고 내치(內治)에 있으며, 변어(邊禦)에 있지 않고 조정에 있으며, 전쟁하는 데 있지 않고 기강을 바로잡는 데 있다.’ 라는 대목이 있다. 즉 국가의 외부 적을 대하는 방법은 외정에 있지 않고 내치에 있다는 것이다.조선이 건국된 지 200년 되던 해, 선조시대는 내치에서는 실질을 좇아 현실에 변용하기보다는 과거를 인습하는 풍조로 현실 대응의 한계가 드러났다. 조정은 동인과 서인의 당파로 사분오열돼 권력 다툼의 장이 됐고, 인재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일본 통신사로 갔다 1591년 3월 귀국한 서인출신 정사 황윤길은 풍신수길에 대해 지략가로 보고 전쟁의 위험을 보고한 반면, 동인출신 부사 김성일은 쥐에 비유하며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했다. 이런 상반된 보고는 당시 동·서인으로 갈린 정치상황에서 객관적인 보고가 가능했을지 여부도 불확실한 것이었다. 조선은 1555년에 일어난 을묘왜변을 계기로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꾸준히 대비책을 마련해오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로 대규모 전쟁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고, 일본의 군대규모를 과소평가했다.성벽보수와 축성의 토목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의 반발과 신중론을 펼치던 신하들의 반대로 국방은 큰 차질을 빚고 있었다. ‘징비록’에 임진왜란 발발 직전 신립을 만난 류성룡은 ‘태평세월이 너무 길었소, 그래서 병사들은 겁이 많고 나약해졌으니 급변이 일어날 때 그에 항거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요.’라는 기록을 남겼다. 선조는 김성일의 보고를 따랐고, 류성룡의 전쟁대비책에 대해 한정된 국방 예산을 이유로 수군까지 없애자 일본 침략에 대한 마지막 보루까지 무너졌다. 임금이 전쟁위협을 애써 외면하며 일상의 삶을 유지하려 했으나 조총으로 무장한 20여 만명의 왜적이 전면전을 일으키자 조선은 순식간에 초토화되고 백성들은 도륙당했다.조정에서 급히 동원령을 내렸으나 이미 군역과 조세제도의 부패와 난맥상으로 국방시스템은 붕괴되어 있었고 전쟁 대비에 적극적이었던 서인세력마저 조정에서 축출되면서 전쟁위험은 더욱 커졌다. 임금과 조정을 장악한 동인세력은 막연한 낙관론에 기대어 근본적인 대책에 미온적이었다. 항전할 의사가 없는 선조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처음부터 요동으로의 망명을 목적에 두고 정치적 술수를 발휘하여 신하들의 반대에도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파천하여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신했으나, 망명은 명나라로부터 거부당했다. 이 무렵 육지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상권을 이순신이 장악하며 전세가 서서히 역전되자 선조는 의병들이 나중에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로 나간 김성일은 ‘만번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며 병란 중에 덮친 전염병을 구제하다가 병에 전염되어 56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15년 후 백성을 버린 임금도 치세를 마감했다. 조선사에서 가장 큰 외세와의 전쟁인 임진왜란이라는 7년 전쟁은 큰 시련을 예고하며 시작됐고 끝났다. 이 역사적인 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군경의 경계망을 뚫고 동해 삼척항을 통해 귀순한 ‘북한 목선 사태’는 군의 해상경계작전에서 실패했다. 투철한 군 정신에는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란 말이 있다. 이 구멍 뚫린 경계실패를 놓고 책임져야 할 국방장관의 어정쩡한 태도는 ‘공은 나에게, 책임은 부하에게’로 해석된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초병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맥아더의 명언이 떠오른다. 400년 전 조선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클로즈업되는 것이 나만의 기우이길 바랄뿐이다.

2019-07-08

선비들의 여름나기

강희룡 서예가계절은 장마로 접어들었다. 장마가 끝나면 곧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열대 기후로 변하여 겨울은 짧고 여름은 길어지며 기온 또한 예전에는 30℃ 안팎이던 것이 이제는 40℃정도까지 오르내린다. 여름은 원래 덥다. 지난해 여름도 더웠고 100년 전 여름도 더웠다. 여름이 덥지 않으면 천재지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름에는 피서를 즐긴다.전통사회에서 더위를 이길 수 있는 피서방법에는 여러 가지 있으나 특별히 계곡을 찾거나 벽오동 아래서 더위를 씻곤 했다. 이러한 자연을 이용한 방법 외에도 글이나 시를 통해 더위를 이기곤 했다. 대표적인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 문인인 정내교(1681~1759) 선생의 문집 완안집에 ‘수운정피서( 水雲亭避暑)’라는 시가 있다. 정내교가 수운정이라는 곳에 피서를 하며 지은 시이다. 그는 중인 출신이라 높은 벼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시의 재능은 당대에 최고로 인정받아 많은 이들이 그에게 시를 배우기도 하였다. 정조 때 대제학과 좌의정을 지낸 김종수와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며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도 그에게 시를 배웠다고 한다.시 내용은 이렇다. ‘붉은 해 중천이라 새들도 울지 않고/ 산인은 말을 타고 천천히 지나는데/ 골짜기 산속 길로 어느덧 접어드니/ 반갑게 솔바람에 물소리 들려오네.’ 이 시는 특별한 기교나 묘사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한여름의 뜨거움과 산중의 시원함을 잘 전달하고 있다. 제1구의 ‘중천에 걸린 붉은 태양[赤日中天]’은 더운 이 여름날 생각만으로도 덥다. 얼마나 더운지 새들도 모두 자리를 피해 보이지 않는다. 제2구에서는 이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피해 산길로 향하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옮겨야 하겠지만 무더위로 인해 최대한 천천히[閑] 내딛고 있다. 배경은 어느 순간 깊은 산중으로 바뀌어있다.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숲 속에선 솔내음 가득 실은 솔바람[松風] 불어오고 길옆 계곡에선 물소리[間水] 들려온다. 제3구에서 지친 우리 몸의 감각을 집중시키다가, 제4구에서 더위를 식힐 솔바람과 물소리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또 한 예는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1713∼1791)의 표암유고(豹菴遺稿)에 실려 있는 ‘해암이 고맙게 보여준 석전의 그림에 차운하다.’라는 시다. ‘구름이 앞산을 가리더니 소나기 쏟아지고/ 바람이 초목에 불어와 기이한 향기 풍기네/ 북창에서 책상 대해 긴 여름날을 보내노니/ 청량한 이 기분 아낌없이 그대와 나누리라.’ 무더운 여름철 소나기가 지나가자 기온이 뚝 떨어지고 집 주위의 풀이며 나무에 바람이 불어와 신록의 향기가 코끝에 스친다. 서늘한 북쪽 창문 아래서 책을 읽으며 긴 여름날을 보내노라니 이 청량한 기분을 혼자 누리기 아까운 생각이 든다. 3구에서 북창은 도연명의 고사를 썼다. 도연명이 오뉴월에 북창 아래에 누워 서늘한 바람의 감촉을 즐길 때면 내가 복희씨 이전의 태고적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해 질 녘 바람과 저녁노을은 원래 주인이 없으니 이 청량한 기분을 그대와 나누는 것을 아끼지 않으리’라고 한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강세황의 처남 유경종이 명나라의 유명한 화가인 심주(沈周)의 그림을 표암에게 보여주었는데 이 시는 그 그림에 있는 제화시의 운자를 따라 지은 작품이다.오늘날에도 다양한 피서법이 있다. 캠핑장을 이용하는 방법과 오수(午睡)체험, 차가운 물에 발을 씻는 탁족, 죽부인과 함께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는 체험도 유행이다. 여름 더위는 열매를 영글게 한다. 더위에 비록 몸은 시달려도 영혼 역시 더 단단히 여물 수 있다. 세종 때 일에 지치고 소진된 집현전 학자들에게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사가독서(賜暇讀書)’라는 독서휴가를 주어 재충전하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기승을 부릴 올 여름 무더위를 우리도 독서삼매를 통해 자아를 찾아 영글게 하는 법을 피서로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07-01

4예(四禮)의 적폐가 판치는 나라

강희룡 서예가‘살아있는 갈대’라는 소설은 펄벅이 1963년도에 출판한 역사소설로 한국의 구한말(1897)부터 해방되던 해(1945)까지를 배경으로 한국 근대사 격동기에 살아간 한 가족의 4대에 걸친 장편소설이다. 펄벅은 이 작품의 첫머리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격찬하며 작품 곳곳에서 한국민족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표하면서 일제의 잔학성에 대한 강한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이 처음 출판됐을 당시 뉴욕타임스에서는 흔히 외교관 100여명이 10년 걸려도 못할 일을 단번에 해냈다는 표현을 쓰며 ‘한국에 보내는 애정의 선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펄벅은 이 소설에서 한민족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고증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으며 한국이 예절국가로 지구촌에서 제일 으뜸이라고 칭찬했다.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도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칭송하는 시를 남겼으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러왔다. 2천5백 년 전 이래 동방예의지국은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이지만 보통명사가 된 지 오래이다. 그 이유는 타 민족이 보아도 한민족은 ‘예의가 일상생활에서 몸에 밴 민족’이라 그랬을 것이다. ‘논어, 자한(子罕)’에도 공자가 구이(九夷는 東夷를 일컬음)에서 살고 싶다하자 제자가. ‘선생님 그곳은 누추할 터인데 어떻게 사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군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라고 답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공야장(公冶長)에서는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 한다. 나를 따라올 사람은 아마도 자로일 것이다.’라고 하였다.‘예기, 잡기하(禮記, 雜記下)’에서는 ‘소련과 대련은 상을 잘 치러서 3일 동안 애통해 했으며, 석 달 동안 게을리 하지 않았고 1년 동안 슬퍼했으며, 3년 동안 근심했다. 이들이 바로 동이의 아들이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또한 ‘한서, 지리지((漢書, 地理志)’에 기록된 기자(箕子)의 팔조법금(八條法禁) 중 지금 전해지는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해 갚아 주고,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 보상하게 하며,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적몰(籍沒)하여 그 집의 노비로 삼되, 속죄하고자 하는 자는 1인당 50만을 내게 한다.’는 이 세 가지 조항만 봐도 당시 고대국가로서 체계와 면모를 갖춘 문명 선진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인간관계에서 예절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의 불문법으로 올바른 습관이나 버릇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우리사회상은 어떠한가. 특히 위정자들의 언행 속에 네 가지 적폐인 무례(無禮), 결례(缺禮), 실례(失禮), 허례(虛禮)가 아무 죄의식 없이 언론을 통해 이 사회에 마구 쏟아져‘동방무례지국(東方無禮之國)’이 된지 오래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정치인이 더 나은 국가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존재인 줄 알고 있으나, 그들은 국가의 미래는 안중에 없고 오직 개인의 영달만 지속하려는 생각만 꽉 차 있으므로 그들의 실제 권모술수는 드라마나 영화보다 훨씬 더 치졸하고 위험하다고 어느 초선 비례대표 의원은 말한다.그들은 정치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에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기 보다는 나와 적을 구분하고 그 적을 공격하여 내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이런 하류정치풍토에서 터진 사건이 윤지오건이다.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은 뒤로한 채 장자연사건 증인인 윤지오의 증언에 민주당 안민석 의원을 비롯한 평화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 총 4개 정당 9명의 의원들이 가세하여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대중적 이슈에 편승하여 본인들의 정치적 인지도를 높이는 좋은 먹잇감을 문 것으로 이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증언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결과를 놓고 보면 이들은 되레 스스로의 발등을 찍은 셈이다. 이런 부류의 위정자들이 결국 정치와 나라를 병들게 하는 주역이다. 내년 총선에서 이런 위선적인 정치인들의 이름이 이 사회와 정치판에서 사라져야 선진국가로 갈 것이다.

2019-06-24

일체유심조를 잊었는가

강희룡 서예가지난 석가탄신일에 제일 야당 대표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봉축 법요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 대표가 합장 등 불교의식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언론을 비롯한 정치권에 비판이 쏟아졌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22일 보도자료를 내고 황 대표에게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또한 대한불교 조계종 측으로부터 ‘내 신앙이 우선이면 공당 대표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라’는 항의까지 받았다 한다. 처음 있는 이런 논란에 과연 정치인의 종교관은 어떠해야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기독교인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서인지 대선 후보로 나선 어떤 장로 정치인의 아내는 심지어 그들의 종교를 떠나 불자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법명을 받는 경우까지도 있었다. 이렇듯 기독교인 정치인들은 대부분 사찰을 방문해 떠밀리듯 알아서 합장을 했고, 이것을 언론에서는 ‘포용적 불심달래기’로 포장해왔다.정치와 종교는 엄연히 다른 개념을 가지고 다른 영역을 주관하기 때문에 결코 가까워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동전의 앞뒤와 같다. 정치의 입장에서는 종교를 이용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화하고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으며, 종교의 입장에서는 정치를 이용함으로써 다른 경쟁자(종교)에 대한 배타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의 호국불교,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의 도교와 불교의 관계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불교적 세시명절인 석탄일은 연등과 욕불행사가 가장 큰 2대행사로 꼽힌다. 연등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 깨끗한 연꽃이라는 불교적 의미가 강조된 것이고, 욕불이란 부처가 태어나자 구룡(九龍)이 와서 목욕시켰다는 설에 따라 탄생불(誕生佛)을 욕불기(浴佛器) 안에 모셔놓고 신도들이 돌아가면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어 목욕시키는 의례를 말한다. 즉 민중의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적 의미의 의례들이다. 여기에 합장이란 불교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인도에서 행해지는 예법으로 힌디어로 ‘그대에게 보내는 경례’라는 뜻으로 서로 합장을 하는 것은 인도에서의 일상적인 인사법이다. 불교에서도 이 예법은 인사법이었으며 불타와 보살에 대한 예배의 방법이다. 이 의례는 자신의 마음이 불타와 보살에 전념하고 있음을 나타내려는 것이다.불교의례는 그에 따른 공덕을 쌓음으로써 원망(願望)을 처리하려는 신앙행위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의식행사에 참여하는 출가 수행자나 신도들의 믿음에 대한 진정성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불교종단에서 불거지는 사찰 주지를 포함 조계종 유명 간부 스님들의 술 담배와 함께 밤새 벌인 억대 도박판, 무소유와 청빈을 부르짖으며 주지선거에서의 금품살포 등 지난해 세수 87세인 설조 스님이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서 40일 넘게 단식을 했다. 이유는 조계종단의 불행한 사태의 원인은 비(非) 비구(比丘)들의 종권장악이며,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지 않은 승려가 80년대 이후 행정을 장악하고, 군화가 사찰을 짓밟고, 노름꾼의 수괴가 수많은 불자들의 존경을 받는 스님을 종단 밖으로 내몰고, 악행의 유례가 없는 자가 종단의 행정대표가 되어도 거침이 없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숨겨둔 아내와 자녀, 재산 은닉, 학력 위조 등 조계종 총무원장인 설정 스님의 3대 의혹도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파일에 합장 등 불교의식을 따르지 않았다고 기독교인인 황 대표의 태도에 비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표면적인 허례허식보다 내면의 진정하고 경건한 마음의 봉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형식에 의미를 두고 얽매어 남을 평하기보다 진정한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마음속을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화엄경의 중심사상이며 고승 원효와 관련된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잊었는가.

2019-05-27

스승의 날과 스쿨미투

강희룡 서예가육조(六朝) 이래의 산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으뜸인 당(唐)의 대문장가인 한유(768~824)는 스승을 따라 학문을 닦아야 할 당위성을 역설한 문장인 사설(師說)을 지었다. 먼저 스승의 정의를 제시하고 다음으로 스승의 필요성과 스승 삼는 방법 등을 개진한 후에 당시에 남을 따라 배우기를 꺼렸던 잘못된 풍조를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세태에도 불구하고 육경의 경전을 모두 익힌 이반이 자신에게 가르침을 청한 것을 기회로 이 글을 지어서 주게 됐다고 그 배경을 밝히고 있다.내용을 보면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란 도(道)를 전하고 학업을 내려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존재이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면 누가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의혹되었으면서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혹된 것은 끝내 풀리지 않게 된다.(중략), 공자가 말하기를,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제자가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이 아니요, 스승이 반드시 제자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도를 들은 것에 앞뒤가 있고 학술에 전공이 있으니 이와 같을 뿐이다.’라고 정리했다.선생과 스승이란 단어를 새겨보면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나와 있다.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으로 배울만한 것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스승은 배울만한 것이 있어야 비로소 스승이 된다. 이에 근거하면 학교의 교사만을 스승으로 삼을 근거는 사라진다고 보겠다. 또한 지식과 가르침을 주는 사람만이 스승이 아니다. 관계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게 했다면 그것 또한 스승이다.우리사회는 스승에 대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스승의 날’을 정해놓고 그 의미를 새긴다. 하지만 인성이 실종된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교권침해는 매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교육청에 의하면 지난 15일 최근 3년간에 접수된 교원의 교권침해 현황을 보면,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가 2016년 442건(95%), 2017년 467건(94%), 2018년 478건(92%)이다. 10건 중 9건 꼴로 학생들이 교권침해 가해자로 나타난 것이다. 그 유형으로는 교사에 대한 폭언과 욕설이 가장 많았으며 수업진행 방해, 교사성희롱, 폭행 등이 뒤를 이었다. 심지어 어떤 학교에서는 학부모가 학생들 앞에서 교사에게 폭언이나 멱살을 잡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이런 실태가 아마도 경기도뿐만이 아닐 것이다.교권침해의 반면에는‘스쿨미투(학교 성폭력 등 학교미투)’가 있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졌고, 교육당국의 방치 하에 학교 성폭력을 고발한 학생들은 2차 가해까지 시달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인 ‘정치하는 엄마들’은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스쿨미투 전국지도를 공개하고 ‘가해교사는 스승의 탈을 쓰고 교권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성폭력 공론화를 이끌어낸 재학생이나 졸업생 고발이야말로 시대의 참스승이라고 말한다.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교사의 교육활동이 안전하면 학생들의 학습권도 보장받을 수 있게 서로 연계되어 있다. 교사는 다른 직업보다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나아가 전 국민이 함께 학교 내 성폭력이나 위계에 의한 폭력 그리고 교권침해는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교사와 학생관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다. 한유의 말처럼 단편적인 지식전달이 아니라 인성과 지성을 함께 가르치는 참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 스승의 날 폐지까지 언급되는 오늘날과 같은 불확실성 시대에 황폐해진 교단(敎壇)을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2019-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