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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누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가!

강희룡서예가명나라의 환관이었던 유약우(1584-?)는 그의 저서 작중지(酌中志)에 ‘나는 석가의 가르침을 극도로 증오한다. 불교는 세상을 미혹하고 백성을 속이는 것(惑世誣民)으로 여겨 가장 먼저 배척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적고 있다.유약우가 이 말을 남긴 두 가지 이유는, 첫째는 명 황실과 고위관료들의 주자학 숭상이다. 주자학은 주희의 유교 경전 해석을 바탕으로 발전된 것으로 삶의 개별적, 실존적 현상보다는 그 이면의 보편적 이치를 성찰하고 깨닫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에 태생부터 귀족적인 학문이었다. 현학적 태도로 만물의 이치를 통달한 자들만이 세상을 경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에 이 정도 학문에 심취할 수 있었던 이들은 대부분 관료나 토호가문 출신의 유학자들뿐이었다. 주자학측면에서 불교를 위험하고 천박한 사상으로 분류한 까닭은 불교가 근본적으로 인간평등사상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분과 출신에 관계없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주장은 고정된 신분질서를 옹호하던 이들에게 경멸과 증오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최제우가 창시한 동학(東學)은 신분제의 타파를 외치고 있었기에 혼란한 조선말 상황에 가난한 농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종교였다. 반봉건적, 반외세적으로 농민이 주축이 되어 지배계층에 대한 조선의 최대 항쟁이었으나, 이단으로 규정되어 최제우는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되었다. 이를 계기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으며 후에 3·1운동으로 계승되었다.2017년 8월에 방영된 TV 드라마‘구해줘’에 묘사된 무지군의 권력구조는 한국사회 전체 권력구조의 축소판으로 불의한 권력이 사람들을 이단의 유혹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이단들이 적극적으로 이 권력을 이용하기도 한다. 드라마에 묘사된 권력과 이단의 협력은 절대로 허구가 아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JMS(기독교복음선교회)를 예로 보면, 교주 정명석이 1978년 창설한 신흥종교로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 교파에서 이단 판정을 받았다. 정명석은 강간, 성추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2018년 2월까지 복역한 뒤 출소했다. 교단마다 교세경쟁이 심하다 보니 이단 문제가 불거져도 쉬쉬하기에 급급하고, 설사 해당 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아도 다른 교단으로 옮기거나 새 교단을 차리면 그만이다. 신천지는 2018년에 공개리에 정통과 이단을 가리자고 한기총에 제안도 했으며, 같은 해에는 신천지가 정통이고 한기총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책을 펴냈다. 올 초 코로나19의 확산중심에 신천지가 지목되자 8개 개신교단은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만희 총회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수그러들던 전염병이 하반기에 다시 고개를 들자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표후보는 지난 광복절 집회 중심에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신도를 위시한 한기총이 있으며, 이들이 사실상 테러 집단으로 정부를 흔들고 정권붕괴까지 노리는 정치세력이며, 사이비 종교집단이라고 열을 올렸다. 한기총의 집회행위에 대해 사이비인지는 더 두고 보면 알 것이지만, 유튜브나 다른 매스컴을 통한 가짜뉴스와 여론조작은 현대판 혹세무민의 한 행태인 것은 확실하다.

2020-08-24

공인의 봉사활동

강희룡서예가공자가 제시한 사람을 관찰하는 방법은, 먼저 그 행위를 보고, 다음은 어떤 동기에서 그런 행위를 했는지를 살펴보고, 진정으로 기꺼운 마음에서 한 행위인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사람이 어찌 자신의 속마음을 숨길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하지만 드러난 행위 이외에 그 동기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측은지심이나 즐거워서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늘 남의 행위에 대해 의심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것이 위선자가 선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일 것이다. 사람들이 그 이면을 다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그럴듯하게 궤변으로 포장해서 남의 이목을 속이려 드는 행위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게 되고 분노까지 느끼게 된다. 특히 공인의 경우에는 국민들은 더욱 화가 치밀게 된다. 예컨대 2017년 7월 봉사활동을 위해 청주 수해 현장을 찾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황제 장화 논란이다. 당시 홍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 불참하는 대신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수해현장을 찾았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준비된 장화를 신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장화를 신은 게 아니라 관계자가 허리를 숙여 신겨줬다. 봉사활동 시간도 45분 늦게 현장에 도착해서 실제 작업한 시간은 약 1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이날 자신의 봉사활동을 페이스북에 ‘오랜만에 해 보는 삽질이라 서툴렀지만 흡족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 피해를 당한 주민들에게는 봉사로서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민폐만 끼친 것이다.올해 장마는 유난히도 길고 국지적으로 폭우가 쏟아져 그 피해가 엄청나다. 정의당 대표 심상정 의원이 경기도 안성의 한 수해현장에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허나 수해복구를 도왔다기엔 옷차림과 신발이 누가 보아도 너무 깨끗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정의당에서는 심 대표가 보여주기식 봉사를 한 게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긴급복구 현장에 실질적 도움이 못되면서 민폐만 끼친 예견된 결과가 입증된 것이다. 또한 청와대가 ‘문의가 많아 알려드린다.’며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수해 복구 현장 봉사활동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이 사진을 두고 여당 인사들이 김 여사 ‘예찬경쟁’에 나섰다. 정청래 의원은 12일 페이스북에 ‘그 어떤 퍼스트레이디보다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썼으며, 민주당 8·29 전당대회 최고위원에 출마한 노웅래 의원이 김 여사와 2017년 허리케인 하비의 상륙으로 멜라니아 여사가 하이힐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등장한 재난패션을 비교하며 ‘클래스가 다르다’는 찬사를 보냈다. 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도 김 여사의 ‘진짜 봉사’라고 칭찬했고,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 검사는 ‘진정성과 순수함을 느끼게 된다며 측은지심을 구비한 분에게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어떤 이들이 청와대에 김 여사 봉사를 문의해서 사진을 올렸는지 모르지만 눈치 살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런 얄팍한 아부성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행위에 국민들은 혀를 내두른다. 봉사는 음덕(陰德)의 일종이다. 누구라도 봉사활동을 여러 통로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 이익을 취하려 한다면 이미 ‘봉사’로서의 가치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2020-08-17

사불삼거(四不三拒)의 공직자 윤리

강희룡 서예가조선 중기 학자이면서 정치가였던 미수 허목은 남인의 핵심이자 남인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분립되었을 때는 청남의 영수로서 당시 정계와 사상계를 이끌어간 인물이다. 허목의 저서 ‘기언, 허미수자명(記言,許眉53DF自銘)’에 스스로 지은 묘비명이 올려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말은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하였네/ 부질없이 성현의 글 읽기만 좋아했지/ 내 허물은 하나도 바로잡지 못하였네/ 이에 돌에 새겨 후인을 경계하노라.’허목은 미수(米壽)를 누리기도 했거니와 글도 많이 남겼다. 미수 스스로도 내가 기언을 지어 스스로 반성하였는데 말이 많으면 유익할 것이 없으며, 옛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고 하였다. 그중에 큰 것을 들면 자서(自序)가 2편이고 정사(政事)를 논한 것이 30편이니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미수는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권의 자서로 자신의 일생을 정리했다. 이 자찬 묘비명은 자서를 축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았던 분이 고종(考終)을 앞에 두고 132자의 짧은 글로 자신의 일생을 관조한 것이다. 말이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미수의 자명은 행한 것은 말과 일치하지 못했고, 말한 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겸사이겠지만 한마디로 언행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물론 선현이라고 해서 언행일치가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게다. ‘군자는 말이 그 행실을 지나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공자의 말씀도 이런 이유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요즘 100세 시대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예전 같으면 생을 마감했을 나이에 다시 불혹의 나이만큼을 덤으로 더 살게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 묘비명을 지어 후세에 남길 엄두를 낼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공무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 공복(公僕)이다. 이 말은 국가나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이다. 즉 국민의 일꾼으로 국민들의 편익을 위한 존재라는 것이다. 같은 의미지만 다른 어감을 주는 공무원과 공복의 차이는 책임감과 사명감일 것이다. 이 같은 차이는 존경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또한 이런 마음가짐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다. 결국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다면 어떤 권력과 권한 속에서도 중용을 잃지 않고 영욕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옛 관리들은 스스로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불문율을 정하여 규율로 삼았다. 첫째, 재임 중에는 부업을 갖지 않는다. 둘째, 재임 중에는 집을 늘리지 않는다. 셋째, 재임 중에는 부동산을 취득하지 않는다. 넷째, 재임지의 특산물을 결코 취하거나 먹지 않는다. 다섯째, 윗사람의 부당한 청을 거절한다. 여섯째, 재임 중 경조사의 부조를 받지 않는다. 일곱, 어떤 답례도 받지 않는다. 이것의 실천이 공복의 참길이다. 지금 국민 앞에 편 갈라 갑질을 해대는 공직자들이 언행을 일치시키기 위해 살기를 다한다면 생의 마지막에 회한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래야 미수가 후인을 경계한 보람도 있을 것이다.

2020-08-10

어무적의 ‘유민탄(流民嘆)’

강희룡 서예가조선 중기 시인 어무적(魚無迹)이 지적한 병폐들이 오늘날의 적폐와 겹치면서 시대가 달라도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하려는 핵심에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어무적은 연산군 때 인물로 사직(司直)을 지낸 어효량과 관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자이기에 신분제의 한계로 과거를 보지 못했지만 뛰어난 재주를 인정받아 면천(免賤)되어 율려습독관이라는 말직을 지냈다. 당시 가난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이 유민들의 탄식을 담아 지은 시가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유민탄(流民嘆)’이란 제목으로 올려 있다. 이 시는 먼저 곤란에 처한 백성이 굶주려 곤궁하고, 헐벗어 고통 받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토로하며, 나라에서 구제할 힘이 있는데 마음이 없음을 원망한다. 다음으로 관리들이 욕심을 비우고 백성의 소리를 들으라고 한탄하며, 나라에서 구제책을 내도 지방에는 헛된 종이장이니, 청렴하고 제대로 된 인재를 뽑아서 백성들을 구제하라고 탄식한다.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7년(1501), 7월 28일’ 에 어무적이 올린 장문의 상소문이 있다. 김해에서 백성의 어려움을 담은 상소를 올렸으나 무시되자, 무리한 세금으로 고통에 빠진 백성을 대변해 작매부(斫梅賦)를 지어 관리의 횡포를 비난했다. 이 상소문의 첫머리에 재앙의 징조가 자주 나타나는 것이 미진한 데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며, ‘물이 새는 지붕은 위에 있지만, 물이 새는 줄 아는 자는 밑에 있다’라는 말로 자신이 상소를 올리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이 말은 위에서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고스란히 아래에 있는 백성들 몫임을 비유한 것이다.어무적은 이 상소에서 몇 가지 조목들을 나열해 폐단을 바로잡을 것을 주장했다. 그 첫째가 큰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으로, 군주가 마음과 뜻을 곧고 성실하게 해야 천리가 이기고 욕심이 사라져 군자가 모이고 소인이 멀어지며, 간신이 간사함을 부릴 수 없고, 권력자가 성패를 좌우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둘째는 선비들의 기개를 진작시키는 길은 언로(言路)를 크게 틔워 어진 이를 쓰고 부정한 사람을 물리치라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 사대부들의 잔치에 가무(歌舞)의 폐단을 없애 공검(恭儉)한 교화를 펼칠 것과 곡식을 축내는 술을 금지할 것, 이단을 금하는 법을 세울 것 등을 주장했다. 어무적은 1501년 이 상소로 쫓겨 다니다 객사하였지만 오늘날 우리 정치에 던지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고 본다.국민의 생명과 윤리는 뒷전이고 권력과 이윤만이 판을 치며 다투는 사회를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믿으면 속는 것이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국민들은 떠돌이 백성마냥 마음의 혼란을 겪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삶을 절실하게 이해하고 도우려는 위정자는 드물다.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개혁이란 이름을 빌린 완장부대가 망나니 칼춤을 연상케 하는 작태를 벌이고 있는 시국이다. 500여 년 전 조선의 한 시인의 노래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우리 정치판을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2020-08-03

국가흥망은 필부유책(匹夫有責)이다

강희룡 서예가구한말 유학자 박수는 17세에 학문을 시작하여 초기에는 과거에, 후에는 문장공부에 매진하였으나 모두 소용없음을 깨닫고 도학공부를 시작해 35세에 간재 전우의 문하에 들어갔다. 왕조도 기울고 지탱하던 유학의 도(道)도 스러져갔지만 형세가 한창 굽혀지는 시대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민족정신의 고취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박수가 스승인 전우에게 올린 편지에서 당시 유명 인사인 홍승헌의 논설에 대해 변론한 내용을 보면, 새로운 사상과 문물이 내리막길 왕조에 물밀듯이 들이닥쳐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 흔들리고 있다. 향교와 서원의 자리에 일본식 학교와 교회당이 들어서고, 세계열강은 자립, 계몽 등 명분을 내세워 선동하며 조선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지식인들은 흥학(興學)의 구호에 휩쓸리고 공학(孔學)과 공교(孔敎)를 표방하며 자립의 권한을 내세우지만 힘없는 나라의 공허한 울림뿐이다. ‘자립 두 글자는 망국의 장본이다.’ 입만 열면 명분뿐인 구호들만 현란했던 당시 지도층의 상황을 바라본 박수의 근심어린 한마디이다.누구나 자립은 원한다. 하지만 일찍이 파스칼도 말했듯이 ‘힘없는 정의는 무력할 뿐이다.’ 힘이 없으면 자립을 아무리 외쳐도 의미가 없다는 진실을 박수는 꿰뚫어 본 것이다. 무기력한 조선은 그들이 의도하고 조종하는 대로 국론이 분열되어 위아래가 반목하고 결국 망국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도 간파하였다. 아울러 그는 강한 외세에 비해 나약한 조선의 상황을 인식하고, 격동하는 정세에 순응하며 민족의 맥을 유지하고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바람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 훗날 나라를 회복할 근간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한창 굽혀지고 있는 형세인데 펴려고 한다면 그 형세를 면하지도 못하고 도리어 꺾일 것이다.그러니 난무하는 위험한 구호에 현혹되지 말고 은인자중하며 나라의 위태로움 속에서도 민족의 정신을 부지해 나갈 것을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권하였다. 이 방법이 소극적인 저항으로 보이지만 목숨을 끊거나,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저항하던 의혈지사 못지않게 지금의 우리나라를 일구는 원초적 힘이었음을 우리는 그의 국가관에서 읽을 수 있다.인권, 자주 등을 정의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시행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박수는 때가 중요하니 때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정의를 행하더라도 중도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구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때와 형세를 아는 것이 중함을 꿰뚫어 본 박수의 통찰력은 지금 시대에 시사하는 바 크다.광복되고 7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100여 년 전 시골선비 박수가 살던 시대와 다르지만 위정자들의 궤변이 진실을 묻어 국론을 분열시키고, 정의와 공정, 민주를 앞세워 교묘히 패악을 조장하는 세력도 여전히 활개 친다. 인권이라는 구호 아래 사회악이 필요 이상으로 보호받기도 하고, 자주국방을 내세워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세력도 여전히 설치고 있다.이런 불확실한 요인들을 제거할 수 있는 주체는 오로지 국민뿐이다. 국가흥망은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이다. 나라의 흥망은 결국 필부(국민)들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2020-07-27

사자성어를 함부로 써서야

강희룡서예가사자성어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에 기관장이나 기업의 CEO가 신년사나 축사를 할 때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자성어 사용은 내용을 강조함에 있어 유용하나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맞는 사자성어나 격언을 찾아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추미애 법무장관이 올해 1월초 법무장관에 취임하면서 현재까지 검찰이나 검찰총장을 향해 분노가 섞인 감정으로 사자성어를 쏟아냈다. 첫째로 줄탁동시(5550啄同時)이다. 함께 행해지기에 가르침을 받는 제자의 역량을 파악하여 바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스승의 예리함을 비유한 말이다. 검찰개혁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고, 국민적 지지라며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 검찰 안팎에서 줄탁동시가 이루어지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는 국민과 시대를 끌어들여 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나 결국은 그 속에 그들의 성향에 맞는 검찰조직으로 바꾸어 그들의 부정이나 모순을 덮으려는 의도이기에 줄탁동시는 이 상황에 맞지 않는 인용이 부적절한 말이다.또한 총장에게 검찰이 파사현정 정신에 부합하고 있냐며 공개 석상에서 물었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은 불교 삼론종의 중요한 근본교리 중 하나로 사악한 것을 깨부수면 바른 것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얽매는 마음을 없애면 바르게 될 수 있다는 의미로 가르침에 따라 사악하고 간사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뜻이다. 권력층 비리 수사 중인 검찰에게 장관 완장차고 거들먹거리는 허세로 인사학살을 단행한 자로서 일반인도 사용하지 않는 천박한 말을 서슴없이 국민 앞에 쏟아내는 사람이 인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검찰수사를 ‘공정과 정의에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어야 한다며 바르게 수사하여 공정한 결론을 내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라 했다. 천의무봉은 하늘의 옷에는 꿰맨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천상의 직녀가 지상의 곽한이라는 청년을 사랑해서 황제의 허락으로 밤마다 인간계에서 곽한을 만났을 때, 직녀의 옷에 바느질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겨 물었더니 직녀가 천상의 옷은 원래 바늘과 실로 바느질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즉 어떤 작품을 인위적 기교 없이 훌륭하게 제작했거나, 가식 없는 자연스런 상태를 일컫는다. 하나 멀쩡한 검찰조직을 같은 패거리로 채워 인위적으로 비틀어 놓은 상황에서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공정이라 말하는 것이다. 검찰의 인사가 공정치 못한 상황에서 같은 편을 요직에 채우는 행태는 이미 정의와 공정은 사라지고 없기에 장관이 공정과 정의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수의 의견에서 시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의 겸청즉명(兼聽卽明) 역시 장관이 사용할 말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의 실정에서 알맞은 사자성어는 신생어인 ‘내로남불’ 뿐이다.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상대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였다. 우리와 거의 비슷한 일본에서도 1954년 조선의옥(造船疑獄)사건에서 한차례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권이 몰락하는 원인이 됐다.

2020-07-21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

강희룡 서예가삶의 여정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바른길도 있고 그릇된 길도 있다. 대개 그릇된 길은 개인 욕심이나 집단의 그릇된 목표로 인해 본의 아니게 택함으로서 패가망신하거나 목숨까지 던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조선후기 금석학파를 창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실학자인 김정희의 완당집(阮堂集)에 ‘천 리 길을 가는 말(適千里說)’에, 갈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아는 사람이 바른길과 잘못된 길을 자세히 알려주면서, 잘못된 길은 가시밭길이고, 바른길은 반드시 목적지에 이를 것이다, 라고 성심을 다해 알려줘도 의심과 욕심이 많은 자는 이를 믿지를 못해 딴 사람에게 묻고,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묻는다고 한다.결국 ‘남들이 모두 옳다하여 내가 감히 따를 수 없고, 남들이 모두 그르다 해서 그것이 과연 그른 줄 모르겠으니 내 직접 경험해 보리라,’ 라는 생각으로 가다보면 결국 함정에 빠져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거나, 설령 끝에 가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되돌아온다손 치더라도 이미 시간과 심력을 다 소모해 버린 터라 돌이킬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남들이 분명하게 일러준 바른길을 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여기서 완당이 말하는 천 리 길은 단순히 먼 노정만을 뜻하지는 않기에 우리 삶의 긴 여정에 비추어 보면, 인생의 여정에도 수많은 갈림길이 나타나기에 그때마다 어느 길로 갈지 신중히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일단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여간해서는 돌이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완당은 이러한 갈림길을 만나서 헤매지 않는 해답을 이미 행간에 암시하고 있다. 모르는 길은 마음대로 가지 말고 남들이 일러 준 것을 믿고 그 길로 가라는 것이다.완당은 선현들은 진리와 지혜를 고전을 통해서 가보지도, 겪어보지도 못 해 미로에서 헤매는 우리에게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욕심이나 위선을 앞세운 삶의 결과는 반드시 망양지탄(亡羊之歎·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서 길을 잃음)으로 돌아온다는 교훈도 함께 전달하고 있다.조선 인조 때의 학자인 홍만종의 문학평론집 순오지(旬五志)에 ‘적반하장(賊反荷杖)’에 대한 풀이가 나온다. 이 적반하장은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로 풀이된다. 오늘날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빌거나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을 내면서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에 기가 차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공(公)과 사(私), 정(正)과 사(邪)는 함께 할 수 없다고 검찰총장을 향해 법무장관이 내뱉은 말이다. 명언이다. 허나 여기서 누가 공과 정이고 누가 사란 말인가? 장관 입장에서 보면 본인이 공과 정이고, 검찰총장이 사라고 풀이되는 대목이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 반대로 풀이됨을 아는가! 추 법무장관의 임무는 임명부터 조국 전 장관 비리와 울산시장 부정선거 의혹, 같은 패거리의 각종 권력형 비리 등을 수사 중인 검찰지휘부를 장관직을 이용해 와해시키고, 임무에 충실한 윤 총장을 찍어냄으로서 검찰개혁이라는 포장으로 정치검찰화 시키려는 의도를 국민들이 읽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 아닌가.

2020-07-13

21대 국회와 조선의 선비상(像)

강희룡 서예가조선조 당대 명가의 후예로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을 했던 인물인 허균의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 가까운 집안 서숙(庶叔)이 면앙정 송순에게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재상 중 죽어서 서소문으로 나가는 사람은 봤지만, 살아 남대문으로 나가는 사람은 여태 못 보았네.’ 권력에 한번 발을 들이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으려 하기에 한 말이었다. 후에 송순이 개성유수를 지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서숙이 강가로 배웅을 나오자 송순이 말했다. ‘이제 제 발로 남대문을 나갑니다.’ 그리고는 뚜벅뚜벅 문을 나서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권력이란 원래 허망하기에 정의롭지 못한 인물은 더 큰 변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직을 내려놓는 게 순리라는 뜻일 것이다. 정승 조현명의 부인이 세상을 떴다. 영문(營門)과 외방에서 부의가 답지했다. 장례가 끝난 후 집사가 물었다. ‘부의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돈으로 바꿔 땅을 사 두시지요.’ 조현명이 ‘큰 아이는 뭐라든가?’ ‘맏 상주께서도 그게 좋겠다고 하십니다.’이 말을 들은 조현명이 여러 아들을 불러 꿇어 앉혔다. ‘못난 놈들! 부의로 들어온 재물로 토지를 사려하다니, 부모의 상을 이익으로 아는 게로구나…’ 하며 매를 몹시 때리고 통곡했다. 이튿날 부의로 들어온 재물은 궁한 일가와 가난한 벗들에게 고르게 돌아갔다. 우리사회에서 고위공직이라는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 받은 축의금이나 부의금, 부동산투기로 재산형성을 목적으로 삼는 부류들이 새겨야할 대목이다.정조 때의 성대중은 그의 저서 ‘청성잡기, 질언(靑城雜記, 質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구차하게 먹는 것만 찾는 자는 짐승과 다를 게 없다. 눈을 부릅뜨고 이익만 쫓는 자는 도적과 한가지다. 악착같이 사사로움에 힘쓰는 자는 거간꾼과 다를 바 없다. 재잘거리며 권세에만 빌붙는 자는 종이나 첩과 같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권세욕과 물욕만 좇는 전형적인 부나비 유형들을 일컫는다. 조선후기 학자 홍석주가 쓴 학강산필(鶴岡散筆)에 이조판서 이문원의 세 아들이 가평에서 말을 타고 아버지를 뵈러 상경했다. 아들들이 말을 타고 온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며, ‘아직 젊은데 고작 100 여리 걷는 것이 싫어 말을 타다니, 힘쓰는 것을 이렇듯 싫어해서야 무슨 일을 하겠느냐!’ 바로 세 아들에게 걸어서 가평으로 돌아갔다가 이튿날 다시 걸어 올 것을 명했다.세 아들 중 한 사람인 이존수는 이천보 전 영의정의 손자요 현 이조판서의 아들이지만 불호령을 받고 돌아갔다가 다시 걸어왔다. 이처럼 엄한교육을 받고 자란 이존수 또한 후에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다. 그는 언행과 침묵함이 법도에 맞았고, 지휘하고 일을 살피는 것이 공정하고 민첩해서 간교하고 교활한 무리들이 속일 수 없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21대 총선에서 당선되자마자 수사 받는 의원들이 여당에서 50여 명, 야당에서도 상당수가 있다고 한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패거리들을 위해 이용한지 오래 된 ‘내로남불 정치판’에서 반칙과 비리로 얼룩진 패악적인 이들에게 법이 얼마나 공정하게 심판하는지 한국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2020-07-06

외눈박이 역사의 표본

강희룡서예가조선의 선비 중 사람들이 한편에서는 기인이라 하였고, 또 다른 편에서는 법도에 어긋난 사람이라 하여 글은 취하되 사람은 사귀기를 꺼렸던 선비가 있었으니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임제(1549~1587)다. 그는 초서에 능하였으며 호방한 필치로 막힘이 없이 써내려간 풍모를 통해 구속을 싫어하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던 기개와 곧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글공부에 뜻을 두어 몇 번 과거에도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하여 28세가 넘어 벼슬길에 나아갔다. 하지만 당시 조정에서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서로 다투는 당파싸움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명산을 유람하였다.어느 날 임제가 잔치 집에 갔다 술이 취했다. 신을 신고 문을 나서는데 신발을 짝짝이로 신었다. 이를 보고 하인이 곁에서 왼발은 가죽신이고 오른발엔 나막신을 신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술 취한 임제는 끄떡도 않고 그냥 말 위로 훌쩍 올라타며 하인에게 하는 말이 ‘길 왼편에서 보는 자는 저 사람이 가죽신을 신었구나 할거고, 길 오른편에서 본 자는 저 사람이 나막신을 신었구나 할테니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냐! 어서 가자.’ 맞는 말이다. 말 탄 사람의 신발은 한 쪽만 보인다. 짝짝으로 신을 신었을 줄은 누구도 짐작 못한다. 각자 본 것만 가지고 반대쪽도 같은 신발이려니 하며 생각을 결정짓는다.사람의 판단 역시 항상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된다. 한쪽만 보고 다른 쪽도 으레 그렇겠지 하는 생각이나 아예 반대편은 보지도 않으려고 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힌다. 하지만 막상 말에서 내려 보면 그때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을 알지만 이미 늦었다. 이렇게 한쪽만 보는 외눈으로 결정을 내리면 이런 생각들은 늘 걸림돌이 된다. 이러한 외눈박이 결정이 국가에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사관(史觀)이다. 역사를 양 눈으로 바로 보려 하지 않고 이념의 틀에 묶여 외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현대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들이 뻔히 두 눈을 뜨고 과거 속의 지도자들 공과(功過)를 읽고 있는데도 국사책은 너덜거린다. 국가의 가치관이 흔들리면 국가지탱에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독립유공자가 친일파로,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로 바뀌는 외눈박이 역사를 평가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대한민국 수립 7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나라를 만들고 지키고 키운 이들을 친일의 오명 속에 빠뜨려 파묻으려 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이고 누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인가.이 사회에서 활동 중인 수많은 시민단체는 시민이 스스로 모여 한 개인이나 집단이익의 추구가 아니라 환경이나 인권과 같은 사회 공동체 발전을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는 사회정의로 포장된 개인들의 영욕을 목표로 하는 집단행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짝짝이 신발이 한 눈에 들어오는 위치는 어디인가! 바로 헛된 약속과 거짓말에 현혹되지 않을 위치를 찾는 게 국민들에게 던져진 숙제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더욱 무거운 난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외눈박이 역사의 표본’이라고 규정해 본다.

2020-06-16

우국지사의 선비정신

강희룡 서예가한말의 의병장 유인석은 국권이 강탈당하는 것처럼 나라에 큰 변고가 생겼을 때 처신하는 방법으로 ‘처변삼사(處變三事)’를 내놓았다.첫째는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우는 일이요, 둘째는 해외로 망명하여 옛 정신을 지키는 일이요, 셋째는 자결을 하여 뜻을 이루는 것이다.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자 만주와 러시아로 망명해 독립에 투신한 유인석은 첫째와 두 번째 방법을 함께 사용한 셈이다. 구한말 3대 시인이면서 우국지사였던 김택영, 이건창은 과거 보러 상경한 구례의 선비 황현을 만나 서울에서 교분을 쌓으며 의기투합했다. 황현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당시의 과거시험에 환멸을 느끼고 곧 낙향하였지만, 지역을 달리하면서도 세 사람의 교유는 지속되었다.융희 4년(1910) 7월 일본이 마침내 대한제국을 병합했다. 8월에 황현이 그 소식을 듣고 비통해하여 음식을 먹지 못하였다.그러던 어느 날 저녁 ‘절명시 4수’를 짓고 자제들에게 유서를 남겼다.‘사람이 죽는 일이란 쉽지 않은가 보다, 독약을 마실 때 세 번이나 대었다 떼었다 하였으니 내가 이처럼 어리석었단 말인가.’ 하였다. 얼마 있다 운명하니 향년 56세였다. 이 글은 김택영 선생의 ‘소호당집, 황현 전기(韶濩堂集,黃玹傳)’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강화도에 내려가 살던 이건창이 먼저 세상을 떴다. 그즈음 열강의 침략이 거세지면서 개화나 척사 등 지식인들의 대응도 본격화됐다. 을사늑약으로 국운이 다했다고 판단한 김택영은 망명을 택하였다. 김택영이 황현의 순국 소식을 들은 것은 중국 상해 인근의 남통에 있을 때였다. 동생 황원으로부터 매천의 자결상황을 자세히 전해들은 김택영은 친구를 기리며 ‘황현의 전기’를 썼다. 매천은 아편을 술에 타서 마셨다. 약효가 발휘되어 숨을 거두기까지는 만 하루가 걸렸다. 김택영은 황현의 전기를 작성하면서 특히 그의 죽음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궁벽한 시골에 사는 선비가 목숨을 끊은 이유는 무엇일까! 김택영은 여기서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유인석과 동시대를 살았던 매천도 유인석의 세 가지 상황에 직면했다. 김택영은 매천에게 망명을 제안하였으나 가난한 시골 선비가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하기에는 치러야 할 비용과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매천은 승산이 적고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것이라는 그의 판단으로 의병항쟁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매천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은 국가와 운명을 같이하는 일이었다. 죽어야 할 의리가 없는 매천이 자결한 것은 선비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끊은 매천은 자기를 성찰하며 역사와 현실을 읽어낸 110년 전의 지식인이었다. 오늘날 여의도에서 도금된 금배지를 달고 도나 개나 민주주의를 외치며 패거리지어 희희낙락하는 위정자들의 머리속에는 무슨 생각이 있을까? 직에 주어진 과한 특권을 자신의 범죄행위 방어에 이용한다거나, 일신의 영욕만 가득 차 국민을 기만한다면, 이 나라는 곧 110년 전과 같은 국가우환을 맞을 것이다.

2020-06-08

정의(正義)와 앵벌이

강희룡 서예가한국사회에서 7~80년대 만해도 어린아이들이 시장바닥이나 버스 정류장, 지하철, 번화가 같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구걸을 하거나 껌 같은 것을 파는 행위를, 어린아이들이 앵앵 울면서 돈벌이를 구걸한다는 말에서 유래한 단어가 ‘앵벌이’다.이러한 행위는 법적으로는 ‘구걸부당이득’이라 하여 다른 사람의 구걸을 통하여 이익을 얻은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경범죄처벌법에서 다루고 있다. 과거에는 전쟁고아 등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앵벌이 아동을 자주 볼 수 있었고, 90년대 중반까지도 인신매매와 유괴가 심각했던지라 앵벌이 아동이 제법 많았으나 요즘은 거의 사라졌다.또 다른 유형의 앵벌이는 카지노에서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하고 허드렛일이나 대리도박, 자리 맡아주기, 구걸 등으로 카지노에 기생하면서 푼돈을 벌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앵벌이도 잘 하면 수입이 괜찮다하지만 애당초 도박중독 때문에 그 지경이 됐으니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다시 도박으로 탕진하고 앵벌이로 돌아가고는 한다.지난달 2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이용수 할머니께서 오랜 세월 함께한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할머니들을 30년 동안이나 이용했다고 폭로하며 울분을 토했다.2008년에 별세한 고(故) 심미자 할머니의 자필 일기장에서도 정대협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앞세워 윤미향 대표의 재산축적을 위해 돈을 모금한다고 그 이유를 적고 있다. 이어서 정대협은 고양이고, 할머니들은 생선이며 할머니들을 물고 뜯고 할퀴는 쥐새끼 같은 단체라고 비판하며, 할머니들의 피를 빠는 거머리라고 질타했다.심 할머니는 생존 시에도 정대협을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고 주장했다. 정대협에서 정의연으로 이름을 바꾼 이 단체는 회계관리 부실부터 윤미향 대표 개인계좌를 통해 받은 후원금이나 모금 등 수많은 의혹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말씀처럼 정의연이 저지른 부정행위가 사실이라면 개인의 돈벌이를 위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이용한 ‘추악한 현대판 앵벌이’를 한 것이다.정의기억연대의 정관에 명시된 목적은 국가권력 감시이며, 주요 임무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함이다. 이 과정에서 이 단체는 친일, 반일 프레임을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화가 됐다. 이 권력화를 이용해 정의연 간부들은 요소요소에서 그들이 바라던 영욕의 자리를 꿰찼다. 윤 대표 역시 제 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국회로 진출했다. 결국 겉은 할머니들의 얼굴로 포장하고 뒤로는 그들의 골수를 뽑는 앵벌이를 통해 부와 명예를 제 몫으로 돌린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의를 앞세워 대중의 관심을 끌고 난 뒤, 한 건 터뜨려 개인의 영욕을 충족시키는 몰염치한 사례가 극에 달한다. 최소한의 부끄러움과 도덕성도 없는 세계에 유례없이 특이한 시민운동을 한국인들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정의(正義)라는 단어 뜻을 바꿔야 할 현실이다.

2020-06-01

영욕에 본성을 잃은 위정자들

강희룡 서예가이규보(1168~1241)에 대해서는 극명하게 상반되는 두 가지 평가가 있다. 13세기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극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인 정권 아래의 기능적 지식인으로 권력에 아부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이규보가 태어나고 2년 후인 1170년 무신난이 일어난 난세였다. 천부적인 문재(文才)를 지니고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을 익힌 지식인이 살아가기에는 녹록치 않은 시대였을 것이다. 이규보는 아홉 살에 이미 신동이라 일컬어질 정도의 시재(詩才)를 보여 주었고, 성격 또한 자유분방했다. 시대와 어울리기 어려운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청년 이규보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과거에 세 번을 낙방하고 네 번째로 응시한 사마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했지만, 오랫동안 관직은 주어지지 않았다. 방황하며 술을 마셨고 장자사상에 심취하여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동경하기도 했다. 무신정권과 화합하지 못하고 현실 정치에서 벗어나 시와 술을 즐기며 고담(高談)을 일삼던 죽림칠현 같은 이들의 눈에 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한동안 그들의 시회(詩會)에 출입하며 함께 하자는 권유를 받기도 했으나 이규보는 그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길을 택한다. 서른 즈음 정권의 요직에 있는 이에게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호소하고 관직을 구하는 편지를 쓴다. 그러다 최충헌의 시회에 초청받아 그를 칭송하는 시를 쓴 덕분에 관직에 진출하게 된다. 본인으로서는 현실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실망스러운 처신이었을 수도 있겠으며, 변절자란 지목도 있었을 법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규보는 내면세계의 갈등을 돌을 내세워 스스로 문답을 적었다.‘동국이상국문집 후집, 돌의 물음에 답하다(答石問)’의 내용을 살펴보면, 큰 돌이 이규보에게 ‘(중략) 사람은 만물의 영장인데 어째서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하지 못하고 언제나 외물에 부림을 당하고 다른 사람에게 떠밀리는가. 외물이 유혹하면 거기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외물이 다가오지 않으면 우울하여 즐겁지 못하며, 남이 인정해 주면 기를 펴고, 남이 배척하면 기가 꺾이니, 그대처럼 본래의 참모습을 잃고 지조 없는 존재도 없네. 만물의 영장이 이런 것인가!’이규보가 답하길, ‘너란 물건은 불서(佛書)에 우둔하고 미련한 것들의 정신이 목석으로 환생한다, 라고 했으니 너는 이미 정기와 광명을 잃고 돌덩이로 타락한 것이다. (중략) 내가 죽어 땅에 묻히면 너는 나의 비석이 되기 위해 깎여서 상할 것이다. 이것이 어찌 사물에 의해 움직여지고 본성을 손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도리어 나를 비웃는가?’ 여기서 돌은 자신의 선택을 비난하는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고 자기 내면의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다.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영욕이 갈리고 궁달(窮達)이 판가름 나는 선택이다.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있다. 어쩌면 삶의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선택 앞에서 고뇌하고 해명이라도 하는 이규보의 인격이 오늘날의 위정자들에게 비춰보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2020-05-25

시민단체 출신들의 ‘정치 먹튀’

강희룡 서예가역사 속에는 수많은 인생을 희생시키며 한 사람의 영웅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냥 흔적도 없이 소멸되는 한 많은 인생이 수도 없이 많다.조선 역시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러졌고, 19세기 말 마지막 왕조의 어지럽던 정치상황은 조선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대한제국으로 고쳤으나 14년을 지탱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5년의 긴 세월 일제강점기라는 어둠의 터널에서 허우적대다 1937년 시작된 전쟁이 1945년 원자폭탄의 위력에 무릎 꿇자 해방됐다. 이 기간 중 한반도 백성들은 전시체제 하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근로정신대’가 조직되어 일본으로 끌려가 전쟁 수행을 위한 노역에 투입되기 시작했으며, 여성 대원으로 이루어진 ‘여자근로정신대’도 결성됐다. 이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근로정신대라고 모집해 놓고 위안부로 끌려가거나 성 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잦았다.1990년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진실규명과 힘들게 사는 생존자 할머니들을 지원하려는 37개 여성단체들이 모여 만든 연합체가 바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다.이 단체는 2015 한일합의무효화와 일본군성노예제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100만 시민들의 참여로 2016년 설립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2018년 7월 통합해 현재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되었다.이 시민단체 출신들을 적극 기용하기 시작한 노무현정부부터 이들의 존재감이 급격히 커진 원인은 위안부 단체 활동 자체가 진보진영에서 여성운동의 상징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정의연’의 전신인 정대협 출신 간부들이 장관, 국회의원, 청와대 인사 등 적잖게 배출되면서 일각에선 시민운동의 순수성에 의심을 둔지도 오래다. 실제로 상당수 피해 할머니들은 노무현 정부시절부터 자신들을 이용한 정대협 출신 정치인들에게 강한 반감을 표시해 왔다.위안부 피해자 모임인 세계평화무궁화회 소속 할머니 33명은 그해 ‘위안부 두 번 울린 정대협은 문 닫아라.’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미 정치인으로 둔갑한 정대협의 전, 현직 관계자들에게 그들이 지금까지 한 일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관련 의혹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 역시 윤 당선인의 국회입성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자신들을 이용해 정치인으로 탈바꿈하는 윤 당선인을 향한 이용수 할머니의 지적은 2000년대 초부터 고수하고 있는 다른 할머니들 입장과 사실상 판박이다. 허영구 전 민노총 부위원장 말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는 당사자가 아니라 대리인, 거간꾼들이 조직의 고난을 거치며 쌓아 온 성과를 낚아채 정치적 대표가 되는 ‘정치 먹튀’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직위를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회원이나 후원자들이 그들의 지위를 팔아서 국회의원 배지 달라고 말한 적도 위임한 적도 없다. 참 시민단체는 그냥 순수한 목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단체일 뿐이다.

2020-05-18

위정자의 입

강희룡 서예가말을 삼가기를 옥을 손에 쥐듯, 가득찬 물그릇을 들듯이 조심하라. 이 글은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인 이첨(1345~1405)의 눌헌명(訥軒銘)으로 동문선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우왕 1년(1375) 간관이었던 이첨은 당시 권신이었던 이인임 등을 탄핵하다가 하동에 유배되었다. 유배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설에 오를까 염려한 이첨은 유배지의 한구석에 집을 지어‘눌헌’이라 이름 짓고는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명(銘)을 지었다.‘질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옛말도 있듯 사람의 처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 그리고 말해야 할 것과 침묵해야 할 것을 아는 것이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가 구설과 곤경에 처했던 역대의 설화(舌禍)는 굳이 군더더기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반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국가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허물을 바로잡고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는 올곧고 강직한 말은 윗사람의 노여움을 사기 쉬운 법이기 때문이다.당시 이첨은 조정의 전권을 쥐고 전횡을 일삼던 권신을 주살하기를 청했다가 겨우 목숨을 건져 머나먼 남쪽 변방 해안가에서 10년이나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자신의 집을 눌헌이라 이름 짓고 말하기의 신중함을 강조하는 명을 지은 것으로 보아 언뜻 젊은 혈기에 집권자에 맞섰던 자신의 경솔한 언행을 후회하고 자숙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공자 역시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동은 준엄하게 하되 말은 낮춰서 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하지만 이첨이 눌헌명의 뒤에 쓰다(題軒銘後)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이 명을 지은 것은 평소의 생각을 밝힌 것이기도 하지만 뜻이 좌절되고 기가 꺾인 자신을 조금이나마 격려하고 분발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위의 말은 공자의 말은 낮추어서 해야 한다는 뜻을 부연한 것이다. 즉 혼란한 세상에서도 해야 할 말은 하되 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돈키호테, 황교안 대표를 애마, 박형준 공동선대위원장을 시종에 비유하며 비판한 것을 건전한 비판과 해학이었다고 주장하며, 막말과 혐오발언의 사전적 의미까지 들먹이며 자신의 발언을 정당화했다. 정책경쟁이 실종된 지난 4·15 총선에서 후보자들의 막말은 ‘사이다 성’ 발언으로 지지층 결집을 굳히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미래통합당 후보들은 3040세대 비하에 이어 세월호 참사까지 비꼬는 거친 발언으로 선거에서 실패했다. 막말 논란은 단순 실수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당의 공천이 부실했다는 방증이며 선거결과는 참담했다. 또한 공천에 탈락하자 미래통합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홍준표, 권성동 의원은 복당도 되기 전에 원내대표와 대권주자로 본인들이 적합하다며 말을 앞세우다 진퇴양난의 입장이 된 것 같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더욱 부추길 수 있으며, 정치의 ‘고인 물은 민주주의를 위기에 처하게 한다.’는 말을 새삼 느끼게 하는 오늘의 정치판이다.

2020-05-11

신조어로 본 현실

강희룡서예가코로나19로 인해 10여 년 만에 미국의 일자리가 70만개가 사라졌다 한다. 통계적인 수치이기에 현재는 아마도 더 악화된 상황으로 예상된다. 호텔과 서비스업 제조 건설 등 3월에만 70만개의 일자리가 공중분해가 됐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지자체들마다 주말이면 외출과 집단모임 등 감염에 취약한 행동이나 모임은 자제하라고 계속적인 주의사항을 국민들에게 전달한다.대부분의 국민들은 힘들지만 빨리 코로나19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부의 권고사항을 따르며 연장된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동참을 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온라인 구매가 중가하면서 택배 회사들의 호황과 전자상거래 매출이 고공성장을 하고 있다.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든 사업장에서 유연근무제나 재택근무제를 실시한다. 하지만 이 제도를 실행하기에 부적합한 사업장은 무급휴가나 강제퇴사 등이 이루어질지 모른다. 결국 기업으로서는 존폐위기에서 직원들의 자리를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있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요즘 우리사회는 청년들이 실감하는 고용절벽을 빗댄 신조어가 눈길을 끌고 있다. 가장 공감하는 1위 신조어는 ‘이퇴백’으로 ‘적성에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퇴사해 다시 백수’가 된 사람을 뜻한다. 입사 1년 미만 신입사원 10명 중 3명은 조기퇴사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무리 취업이 어려워도 회사가 본인과 맞지 않으면 조기퇴사도 불사하는 밀레니엄 세대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위는 ‘백수’로 생계유지와 취업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취업에 ‘100번을 도전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긴 구직기간 동안 생계비를 벌면서 취업준비를 하는 취업준비생의 애환이 담겨 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데 두려움을 느끼는 현상인 ‘자소서 포비아(공포증)’는 3위였다. 구직자들의 스펙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차별화된 자기소개서 작성이 요구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구직자들이 많은 것이다. 신입 구직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자소서 작성에 막막함을 느낀다고 했으며 이들이 꼽은 가장 까다로운 문항은 지원동기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구직자 49,7%는 자소서의 공포증으로 입사지원을 포기했던 경험으로 나타났다.이 외에도 ‘청년실신시대’로 ‘청년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청년들의 취업이 늦어지고 학자금 대출 등으로 청년신용불량자가 증가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한다.31살까지 취업을 못하면 절대 취업을 못한다는 ‘삼일절’, 새벽 등교를 줄인 ‘새등’, 가축처럼 일만하는 직장인을 ‘사축(社畜)’, 사축은 회사에서 길러지는 가축처럼 일만하는 직장인으로 긴 노동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긴 단어이다. ‘월급로그아웃’은 월급이 모두 빠져나가는 상황을 일컫는 신조어로 월급이 들어와도 월세, 카드 값, 세금 등으로 다 빠져나가 실상 월급이 들어와도 만져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는 직장인의 슬픔을 담고 있는 신조어이다. 불확실성의 현실 속에서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하기에 자신의 결정에 긍정과 확신을 가진다면 보람찬 삶을 가꿀 수 있을 것이다.

2020-04-27

오만의 정치는 망국의 지름길

강희룡 서예가‘당 현종이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것은/ 허심탄회하게 간언을 수용했기 때문이네/ 황금 상자를 길이 두고 거울로 삼았던들/ 행차가 어찌 서촉(西蜀)까지 이르렀겠나.’고려시대의 문신이며 명문장가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 금함(金函)이다. 당나라 예종을 이어 즉위한 현종은 연호를 개원(開元)이라 고친 뒤에 요숭, 송경, 장구령과 같은 어질고 뛰어난 인재를 재상으로 등용하여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여파로 혼란에 빠진 국가를 안정시키고 3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끌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서 말하는 ‘개원의 치세(開元之治)이다. 개원 연간 동안 현종은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신하의 상소가 올라오면 그 가운데 긴요한 것을 골라 황금으로 장식한 상자 속에 넣어 두고 수시로 꺼내 읽으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고 한다.하지만 즉위한 지 30년이 되어 연호를 천보(天寶)로 바꾼 뒤로는 양옥환(일명 양귀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국정을 게을리하기 시작하였다. 이 틈을 타서 이임보, 양국충과 같은 간신들이 국정을 농간하더니, 양귀비의 양자가 되어 현종의 총애를 독차지하던 절도사 안녹산이 난을 일으키니 장안은 순식간에 점령되었다. 목숨만 부지한 현종은 지금의 중국 성도(成都)인 서촉으로 피난하고 나라는 성당(盛唐)시대에서 기울기 시작한다.사람은 자신의 실패와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성공하고 잘한 행위만을 자랑스러워하고 패배와 잘못은 숨기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발전을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성공을 자부하고 안주하는 데서 발전하기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고치는 데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고칠 것이며, 잘못이 고쳐지지 않는데 어떻게 나아질 수 있겠는가.4·15 21대 국회의원 총선의 결과를 보면 보수 세력이라고 자칭하던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궤멸에 가까운 참패를 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넘겨 헌법개헌을 제외한 모든 입법 활동에 있어 일방적 추진이 가능해졌다. 이는 향후 국내의 입법 작용이나 대통령의 정치행위의 결과가 오로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귀결된다는 점이다. 2년 후 국가상황과 여당의 실정은 대선을 통해 국민이 평가할 것이다.벌써부터 총선결과를 등에 업고 오만한 자들의 막말이 쏟아진다. 더불어시민당의 한 대표는 자신의 SNS에 ‘이젠 보안법 철폐도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촛불 시민은 힘 모아 여의도에서 이제 당신의 거취를 묻고 있다.’라고 적었다. 조국 전 장관 아들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로 비례대표에 당선된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18일 ‘한 줌도 안 되는 부패한 무리의 더러운 공작이 계속될 것’이라며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말했다. 현종이 서촉까지 피난하고 나라가 망한 역사적 사실이 새삼 떠오르는 현실이다.

2020-04-20

일성록(日省錄)에 비친 구휼(救恤)

강희룡 서예가정조는 세손시절부터 논어에서 증자가 말한 ‘나는 날마다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에 대해 반성한다.’는 글귀를 좇아 스스로 반성하는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자신의 언행과 학문을 기록한 ‘존현각일기’를 기록한다. 이 책은 1783년부터 임금의 개인 일기에서 규장각 관원들이 시정(施政)에 관한 내용을 작성한 후 왕의 재가를 받은 공식적인 국정일기로 전환되었다. 1760년부터 1910년 8월까지 임금의 입장에서 조정과 내외의 신하에 관련된 내용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일성록(국보153)’은 이 존현각일기로부터 시작된다. 조선왕조실록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일본인들이 중심이 되어 편찬되었기에 그 공정성과 사실의 정확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승정원일기 또한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개수하는 일이 자주 있었으므로, 진실된 역사기록으로서의 일성록은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동부는 구(舊) 병민 146명과 신(新) 병민 5명, 남부는 구 병민 502명과 신 병민 21명, 서부는 구 병민 112명과 신 병민 6명, 북부는 구 병민 314명과 신 병민 7명입니다. 신구 병민 총 1천113명 가운데 나아서 도성으로 돌아간 사람이 94명, 사망한 사람이 7명, 현재 앓고 있는 사람이 154명, 나아지고 있는 사람이 858명이며 현재 남아 있는 병막(病幕)이 421곳이니 지난번에 비하여 현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구 병민 중에서 굶주림과 곤궁함이 더욱 심한 자 13명을 뽑고 신 병민 중에서도 22명을 뽑아 총 35명을 건장한 자와 약한 자로 구별하여 규례대로 쌀을 지급해 주었는데 총 11말입니다.’위 기록은 정조 12년(1788) 5월 중순부터 도성에 역병이 돌기 시작한 뒤 두 달쯤 지난 7월 19일에 비변사의 담당 낭청이 병민의 치료와 관리현황을 보고한 내용으로 전후의 과정을 포함하여 일성록에 소상하게 실려 있다. 전대미문의 이러한 구체적인 보고와 유기적인 노력이 계속 이어지던 끝에 위에서 본 7월 19일의 보고에서 총 1천113명의 환자 중에 새 환자는 39명 정도로 현저히 줄었다고 하였던 것이다.정조는 세손 시절에 영조를 간호하면서부터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수민묘전(壽民妙詮)이라는 의학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그 서문에서 ‘사람을 치료하는 이치나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가 똑같다.’라고 하고 나라도 폐단의 근원과 실정이 각기 다르니 이를 밝혀 처방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국정운영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230여년이 흐른 지금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세계 물류체계가 마비되면서 모든 경제활동은 위축되고 경기가 침체되어 삶의 질은 떨어졌다. 정부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을 받으나 실제지급방식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다행이 지자체에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나 일부에서는 지급기준에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오늘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도 백성의 생명을 지켜줘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정에 맞게 지휘해 나간 정조와 최선을 다한 신하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거울로 삼을만하다.

2020-04-13

막장정치와 선거보조금

강희룡 서예가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은 불법 정치자금 축소 등을 명분으로 지난 1980년부터 시행되어온 제도다. 선거보조금은 정당의 보호와 육성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규정에 의해 공직선거가 있을 때에 지급한다. 따라서 선거가 있는 해마다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을 대상으로 경상보조금 지급기준에 따라 후보 등록 마감일을 기준으로 지급된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제21대 4·15총선에 여야 12개 정당에 선거보조금 440억7천여 만 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또한 선관위는 정치자금법 제26조에 따라 전국 253개 지역구의 30%(76명) 이상을 여성 후보로 낸 당에게 지급되는 여성추천보조금을 77명의 여성후보를 낸 국가혁명배당금당에게 보조금으로 8억4천 여 만 원도 지급한다고 밝혔다.이번 4·15 총선에서는 20대 국회에서 여당과 범여 군소정당들이 야합한 4+1협의체라는 정치구조로 선거법인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21대 국회에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제1야당을 뺀 채 통과시켰다. 이 꼼수정치의 결과로 태어난 것이 바로 거대 양당의 2중대인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230억 원의 선거보조금과 양당의 위성정당까지 포함하면 무려 300억 원이 넘는 선거보조금을 받게 된다. 문제는 정당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지급하는 선거보조금이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꼼수 위성정당에도 돌아간다는 점이다. 위성정당 후보들이 총선 후 통합 혹은 모 정당으로 복귀를 공언하고 있어 거대양당은 위성정당 몫인 85억 원에 달하는 선거보조금을 사실상 편취하고 있는 셈이다.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게 정지되고 전 국민이 절박한 생계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양당은 국민혈세인 선거보조금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노동현장에선 벌써부터 무급휴직과 정리해고 바람이 시작됐고 영세소상공인은 당장 임대료조차 낼 여력이 없어 연쇄폐업 우려까지 나오는 등 당장의 생계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거대양당의 위성정당이 편법적으로 수십억의 선거보조금을 챙기는 것은 전염병과 사투하며 시름하는 민생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선관위가 법의 취지와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법에 명시된 기준만을 적용해 선거보조금을 지급하는 행태도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남성중심의 정치 문화를 바꾸기 위해 규정한 정치자금법을 악용한 ‘허경영당’으로 불리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여성추천 보조금 8억4천만 원을 싹쓸이한 것도 마찬가지다. 형식적 배분자격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선거보조금을 마구 지급한 것이다.국고보조금은 수 만원을 부당수령해도 고발되거나 환수되는 것이 당연한데, 수십억을 편취해 가는 정치행위에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다. 정치에는 룰과 시스템이 없고, 국민세금은 감사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다. 결국 그 돈은 당권파의 쌈짓돈이 된다.권한과 권리는 줄이고 싶지 않고, 의무나 책임 그리고 감시는 피하려고 하는 국회의 막장정치에 선관위가 만든 막장선거판이 아수라장을 만든 것이다. 눈 먼 돈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이 영원한 진리다.

2020-04-06

기가 막힐 일

강희룡 서예가중우(衆愚)정치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를 고찰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국가론과 정치학에서 민주제의 타락한 정체(政體)에 부여한 명칭이다. 폭민 정치라고도 부르며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대중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치를 의미한다. 지성인이나 다수대중이나 똑같이 한 표다.게다가 수적으로 엘리트보다 일반대중이 더 많다.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가 월등히 많은 대중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으므로 필연적으로 이들의 기호에 맞는 정책이나 포퓰리즘을 쏟아낸다. 투표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비판기능을 갖춘 소수 엘리트보다 대중의 수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로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닌 중우정치 즉 가짜 민주주의로 변질된다는 것이다.한국을 비롯한 많은 민주국가에서는 국민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양당제 혹은 몇 개의 당이 정치판을 독점하여 야합으로 나눠먹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정치세력들이 한 계층을 형성하여 민주주의를 통해서 자신들을 뽑아준 대중을 위하기보다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나 속한 집단을 위한 정치를 강화해 반민주주의로 변질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관심 혹은 비이성적인 대중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보다는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지역적으로 편중된 지역감정에 매몰되어 이성보다는 감성, 일시적 충동에 의해 정당이나 후보자를 선택하는 행위가 반복됨으로써 중우정치의 현실로 빠져들어 대중의 다양성이 정치의 다양성으로 직결되지 않고 있다.여기서 우리가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엘리트들의 오만정치다. ‘국민들이 원하기 때문에’라는 수식어를 내세우는 경우는 그 국민이라는 게 그의 머릿속에 기억된 다수를 잘못 지칭하여 필요충분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작금의 우리 사회는 TV나 신문보다는 유튜브나 SNS를 선호하는 시대흐름에 편승하여 대중들을 선동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민주주의의 운영주체인 시민의 역량과 성숙도가 낮을수록 이런 매스미디어매체의 선전과 선동에 휘둘리기 쉽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세뇌된 대중들은 명백한 진실조차 믿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사회를 둘로 쪼개 놓은 조국사태는 아직까지 정치를 혼란과 갈등으로 몰고 가고 있다.이런 가짜 민주주의의 근원은 과학과 이성, 진실이 부정된 자리에 궤변과 독선, 거짓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반지성주의가 우리 사회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조국 전 법무장관시절 당시 법무부 인권국장 자리에 있던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는 윤석열 총장을 비롯해 검찰 쿠데타 세력 명단이라며 자신의 SNS에 게시했다. 조국 전 장관을 개혁파로 기묘사화의 피해자인 정암 조광조에 비유하고, 세도를 부리던 대윤, 소윤인 윤임과 윤원형에는 윤석열 총장과 윤대진 부원장을 빗대며, 명단 속 인물들이 아직도 고위직에 남아있기에, ‘2020년에는 기필코,’ 라면서 국민들이 야차(사람을 해치는 사나운 귀신)들에게 다치지 않도록 널리 퍼뜨려 달라고 주문했다.이단 종교보다 더 무서운 민주주의의 가장 암적인 존재는 바로 이런 이단(異端) 정치인들이 설치는 정치판이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2020-03-30

매화의 교훈

강희룡 서예가‘오동은 천년을 살아도 그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조선중기 문인인 상촌 선생 문집 야언(野言)에 기록된 시 구절이다.매화는 이른 봄에 추위를 무릅쓰고 먼저 꽃을 피우고,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 퍼뜨린다.국화는 늦가을에 첫 추위를 이기며 피고, 대나무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한다고 하여 이 네 가지 식물의 특유의 강점을 덕과 학식을 갖춘 전인(全人), 즉 군자(君子)에 비유하여 이른바 사군자로 불린다.조선의 선비들은 송, 죽, 매를 겨울철의 세 벗이라 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라 불렀다. 그 중 매화를 으뜸으로 여겼으며 매화는 사귀(四貴)라 하여 꽃이 무성하지 않고 드문 것을 희(稀), 어린것보다 늙은 노목을 노(老), 살찐 것보다 야윈 것을 수(瘦), 활짝 핀 것 보다 꽃봉오리를 뇌(雷)라 하여 더 귀하게 여겼으며 망울부터 만개, 낙화까지 세 번을 봐야 한다고 했다. 꽃피는 시기나 장소, 색깔이나 그 모습에 따라서도 여러 별칭이 있다.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고 해서 화형(花兄), 엄동의 고난에 굴하지 않고 봄에 향기로운 꽃을 피워 고우(古友), 눈 속에 피는 꽃이라 하여 설중매(雪中梅) 등으로 불린다. 이렇듯 별칭이 많은 이유는 인간의 삶 속에 극복해야 할 아픔과 일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듯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겨울 추위를 뚫고 피어난 매화의 기개를 높이 평하여 이 같은 의미를 투영하려 했기 때문이다. 향기 또한 ‘귀로 듣는 향기’라 해서 고혹적이라 암향이라 일컬으며 암향부동(暗香浮動)이라 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섬세하게 느껴야 본래의 향기를 알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일제 강점기 때 개량된 매실나무가 아닌 토종 고매(古梅)는 전국에 대략 200여 그루가 있으나 대부분 노쇠하여 고사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매는 전국에서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순천 선암사 선암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탐매가(探梅家)들에 의해 호남5매, 산청3매, 경북2매로 불리는 고태미가 뛰어난 명매가 있으니, 호남오매로는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 담양 계당매, 전남대 대명매, 소록도 수양매를 이르는데 수양매는 태풍에 쓰러져 안타깝게 고사했다고 한다. 산청의 선비들이 심었다는 산청3매로는 산천재의 남명매, 단속사지의 정당매, 남사마을의 원정매가 있으며, 경북 2매로는 도산서원의 도산매, 하회마을의 서애매가 그것이다. 모두 단아하며 품격 높은 기개로 선비정신의 맑은 향기를 품고 있어 그 자태를 더해주고 있다.지금 국민들은 전염병 전파에 따른 과도한 스트레스와 공포증, 사회활동 위축 등 ‘코로나블루(코로나우울증)’로 인한 감염증후군에 걸려있는 상황에서 4·15 총선 공천을 놓고 정당마다 꼼수와 궤변, 편법이 난무하는 ‘진흙탕싸움’은 국민들을 더 힘들고 분노케 한다. 매화가 만발한 계절이다. 권력과 물욕에 찌든 부류들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섭리에 따른 인생무상과 자연의 경외심을 노래하고 있는 매화 앞에서 비추어 보지 않겠는가!

2020-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