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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은삼과(圃隱三過)와 인간평가

▲ 강희룡서예가조선 전기의 문신인 서거정은 해박한 지식과 깊은 식견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사적(事蹟)을 널리 채집해 위로는 조종(祖宗)의 창업으로부터 아래로는 공경대부의 도덕과 언행, 문장정사(文章政事)와 국가의 전고(典故), 여항풍속에 관한 것 등 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을 격식에 매이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정연한 필체로 기술한 한문 수필집인 필원잡기(筆苑雜記)를 편찬했다. 이 필원잡기에 주자학을 연구하고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시조로 추앙받으며 지절(志節)과 학덕이 높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일화를 적은 포은삼과(圃隱三過)가 수록되어 있다.내용은 어떤 이가 포은에게 ‘선생님께서는 세 가지 과실이 있다던데 그것을 알고 계십니까?’하고 물었다. 그 첫 번째 과실은 술을 마실 적에 제일 먼저 들어가 맨 나중에 파하니 술 마시는 것이 지루하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러자 포은은 ‘젊었을 때 희귀한 술 한통 얻으면 친지들과 즐기려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시인했다.다음 두 번째 과실은 색(色)에 초연하지 못하다고 남들이 말한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 시인하며 ‘색 좋아하는 건 사람의 상정이요, 공자도 착한 일을 색 좋아하듯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라고 말했다.마지막 세 번째 과실로 당물(唐物·중국물건)을 사는데 무심하지 못하다고 남들이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이에 포은은 ‘자녀가 많고 혼인의 예식에 당물을 쓰는 게 시속(時俗)인데 유독 나만이 그를 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한다.이 내용을 엄밀히 살펴보면 이 삼과를 반드시 과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포은을 성인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과실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선비의 곧은 절개나 학덕이라는 한 인간의 일부분을 위해 그의 모든 인간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포은삼과는 옛 선비들이 그의 학덕 때문에 인간성이나 인간의 조건을 상실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으로 자주 인용되어 왔다.만약 사람들에게 콩과 팥의 꽃빛깔을 물으면 대개 콩꽃은 노랗고 팥꽃은 붉다고들 한다. 이는 열매의 빛을 꽃까지 확대시켜 인식했기 때문이다. 실제는 팥꽃이 노랗고 콩꽃은 붉다. 조선 성종 때 ‘악학궤범’을 편찬한 대표적인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 성현도 ‘한새 꼬리의 색깔을 물으면 사람들은 모두 검다고 하는데 이는 한 새의 두 날개가 꼬리를 덮고 있어서 검게 보인 것뿐이지 사실은 하얗다.’고 말하여 인물이나 사리의 어느 일부분을 전체로 확대 인식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원래 조선은 유가(儒家)의 선비정신을 근간으로 정치, 사회, 문화면에서 매우 탄탄하고 유례없는 긴 역사를 이룩한 국가였다. 그러나 필연적인 흥망성쇠의 이치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구한말을 거쳐 국권을 강탈당하고, 해방 후 미군정시대와 동족상잔, 그리고 근대 산업화 시절을 지내왔다. 그동안 우리는 쇠퇴의 원인을 유교의 선비정신에 떠넘겨 낡고 고루한 것으로 평가절하 하고 그 역사까지도 외면해버렸다. 이는 우리가 선비정신을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일부 부정적인 외형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비판했기 때문이다.오늘날의 성과 지상주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정의 모든 어두운 면을 미화시켜 버렸다. 정치 분야에서 국회는 내년 예산안 심사를 법정시간을 훨씬 넘긴 후 회의록도 없이 밀실 회의를 통해 후안무치한 졸속심사로 막을 내렸다.각 정당들은 오직 그들만의 이익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기를 쓰고 있다. 그래도 조선의 붕당은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전개되었지만, 지금 이들의 정치는 국민에게는 대욕비도(大慾非道·욕심이 많고 무자비함)한 적폐로 변하여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판단이 아닐 것이다.

2018-12-13

인재변별과 관료의 자세

▲ 강희룡 서예가영조(1694~1776)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한편 세자를 가르칠 목적으로 유교 경전과 역사서에서 수신과 위정에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자신의 견해를 기록한 책으로 ‘어제자성편(御製自省編)’을 편찬했다. 이 책 외편(外篇)의 첫머리에 수록된 시가 한 수 있다.‘교화와 정치는 오직 사람에 달려 있나니/ 백성들의 고락이 바로 나의 고락이로다./ 나라 다스림에 좋은 방법을 알고자 하는가./ 기미를 잘 살펴 어진 신하를 등용해야 하네.’이 책에서 영조는 수신의 요체를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보았고, 위정의 요체를 기미(幾微)를 살피는 것으로 보았다.기미를 살핀다는 것은 선악이 나뉘는 조짐을 살핀다는 것으로 곧은 인재를 변별하고 등용하여 국가를 다스리는 바탕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영조는 젊은 시절부터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당쟁을 목도하였고, 왕세제(王世弟)가 되어서는 충역(忠逆)과 시비로 발생한 신임사화(辛壬士禍)의 참상을 몸소 겪었다.이를 통해 어느 당파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기에 임금으로 즉위하자 탕평책(蕩平策)을 시행하였다.당파의 이익이나 사적으로 좋아하고 미워함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선악에 따라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임금이 인재등용의 방법은 어떠해야 하며, 등용되는 인재가 지녀야 할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하는 물음에서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선생은 1569년(선조1) 부교리(副校理)를 사직하는 상소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임금이 신하를 등용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에 대해 널리 자문해 보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게 될 때에는 반드시 상황을 깊이 고려하고 자신의 역량을 분명히 파악해야 합니다. (중략) 임금은 어진 인재를 찾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 작위와 봉록을 함부로 내주어서는 안 되며, 신하는 스스로의 지조를 지키는 것을 뜻으로 삼아 이익과 명예를 위해 과분한 자리를 받아서도 안 됩니다.’단 한 번의 수령 경험이 전부인 조선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18년간 유배생활에서 조선시대 지방자치단체장 ‘수령’의 덕목에 대한 12부 72조의 자세한 지침을 목민심서로 집필한 것도 그 궤를 같이 한다.우리 문화의 주요한 기반이었던 유학의 관점에서 인성은 인간의 내면에 갖추어진 확고 불변한 본성이다.주자는 ‘소학제사(小學題辭)’에서 소학의 정신을 요약하여 ‘원형이정은 천도의 일정함이요, 인의예지는 인성의 강령이다.’라고 정리했다. 원형이정이라는 자연계의 운행에 일정한 질서가 있듯이, 자연의 일부로서 사람의 본성에도 인의예지라는 도덕성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지금 청와대 특별감찰반 직원들의 비리사실이 적발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나 공공기관 단체장과 대통령의 친족 및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에 대해 감찰업무를 주로 수행하는 이들의 비리는 결국 쥐를 잡으라고 키우는 고양이가 쥐는 안 잡고 스스로 쥐의 행태를 저질렀으니 인재등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주는 한 사례라 하겠다.오늘날처럼 공직자의 자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사람을 쓸 때는 널리 자문하여 측근들이 이목을 가리는 것을 막고, 자세히 살펴야 다수의 논란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율곡의 상소와 인재 등용의 중요성과 방법을 제시한 영조의 지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2018-12-06

인성교육이 무너진 사회

▲ 강희룡 서예가유교사회에서는 본래 바른 생활습관과 품성을 배양하기 위한 조기 인성교육을 중시했다. 그래서 초등교육 단계의 교재로 사자소학(四字小學)이나 동몽선습을 비롯해 소학 등을 권장했다. 사자소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열 살 이전에 익힐 수 있는 책으로 반드시 배워서 익혀야 할 생활규범과 철학이 실려 있는 초학서이다. 동몽선습은 오륜을 정리해 덕행함양에 목적을 두었으며, 천자문을 익히고 난 후 어린 학동들이 배울 초급교재로 중종 때의 학자 박세무(1487~1554)가 저술한 것으로, 1670년(현종11)에 간행됐다. 당시에는 지식교육도 획일적이 아니라 개인의 수준과 능력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행해졌다.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지위나 부는 그리 중요시되지 않았고, 인품과 덕망이 높은 인사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졌다. 국가에서는 개결(介潔)한 성품과 행실을 갖춘 선비에게 청백리라는 명예를 부여하기도 했다.조선 후기의 학자 신익황(1672~1722) 선생의 ‘극재집(克齋集), 가숙잡훈(家塾雜訓)’은 가숙(서당)의 교육에 대한 견해를 적어 놓은 글이다. 전통사회에서의 서당은 오늘날처럼 공적인 초등교육 기관이 없던 시대에 마을이나 집안 단위로 어린 자제들을 가르쳤던 장소이다. 그런데 조선의 교육이 후대로 이어오면서 성공과 출세를 위한 선행적 지식 축적과 과거 시험에 대비한 작문 연습이 초등교육 단계로까지 퍼져있는 것을 간파한 신익황은 이런 현상이 부모의 욕심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특성과 능력에 상관없이 고강도의 교육을 시키려 들고 오직 훗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한 목적을 조기교육에 두고 있던 것이다.평생토록 교육에 종사했던 신익황의 눈에 비친 당시 초기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그는 학업에 대한 과도한 압박은 자녀를 위축시키고, 의욕을 꺾으며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해쳐 역효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아이의 수준과 성향에 맞춰 가르치기를 권장하고 지식보다 예절과 인성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는 자식이 겨우 말을 배우면 대구(對句)를 짓도록 가르친 후 학교에 들어가면 과거시험을 본분으로 삼고 학행을 겉치레로 삼게 됐다. 종일 익히는 것이 모두 이욕(利欲)의 논리였고, 효제충신(孝悌忠信) 등은 뒷전이 되다보니 고을에 미풍양속이 없어지고 세상에는 훌륭한 인재가 없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교육풍토 때문이었다.각 가정에서 부모의 언행은 자녀들이 그대로 학습하는 것을 우리는‘가풍’이라 말한다. 신익황이 진단한 당시 부모들의 자식출세에 대한 과도한 욕심은 자식들의 정서를 황폐하게 만들어 그릇된 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청소년기에 발생하는 범죄행위로 나타날 수 있으며, 성인범죄로 이어지거나 모든 생애에 걸쳐 바람직한 사회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는데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잠재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청소년 범죄를 비롯한 분노형 범죄, 묻지마 범죄는 개인의 문제만으로 봐서는 안 되며 갈수록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제도적 장치는 물론 사회 환경과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교육과 노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교육은 바로 자연에서 생물학적인 존재로 태어난 한 사람을 사회에서 문화적인 한 주체로 빚어내는 일이다. 인류가 축적해온 지혜와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토대로 자기 삶을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가도록 피교육자를 길러 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다시 말해, 교육은 단순히 과거의 지식, 또는 기존의 체계화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아니라 피교육자가 과거의 지식을 바탕으로 삼아 주체적으로 자기세계를 긍정적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잠재적인 역량을 계발하게 하는 일이다. 조기 인성교육 없이는 아무리 법과 제도를 고쳐도 흉악한 범죄예방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인성교육이 무너진 사회는 더 이상 가치는 없으며 병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2018-11-23

이름까지 폄훼하는 저속한 사회

▲ 강희룡서예가‘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부름으로써 그 대상을 파악하고 나 사이의 관계를 형성시킨다. 이름으로 그 사물의 본질을 남김없이 반영할 수는 없지만, 그 불완전함에도 이름이 없으면 우리는 그 사물을 일컬을 수도 없고, 무엇이라고 판단할 수도 없다. 히브리 신화에는 하나님이 빛을 창조 후 시간을 만들었으며, 천지를 창조하여 공간을 이루었고 그 공간에 삼라만상을 창조한 다음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초의 사람인 아담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데리고 와서 보여주는 사물에 대해 하나씩 부른 것이 이름이 되었다. 이렇게 이름을 주는 것은 고대부터 숭고하고 위대한 일로 인식하였다.이름은 지명하는 힘이 있으므로 존경하거나 위대한 이는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이름이 불리면 대답을 해야 하므로 대답을 하는 행위는 이름 부른 자에게 지명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전통사회에서도 조부나 아버지, 스승, 임금과같이 존경해야 할 대상은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으며 심지어 자기 이름도 존경하는 사람 앞에서는 쉽게 부르지 않았다.사람은 태어나서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회의 주체적 구성원으로서 승인하는 통과의례를 베푼다. 성인식이든 관례든 이런 의례를 거쳐야 비로소 한 성인으로서의 주체자로서 그 공동체와 사회의 책임감을 지닌 주인이 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관례를 치를 때 성인이 될 당사자에게 출생 시 이름 외에 친지나 후견인이 ‘장차 이런 인물이 되었으면, 이렇게 살았으면’하는 소원을 담아 자(字)를 붙여 주었다. 자는 이름을 상징하기에 이름의 뜻을 반영한 글자를 자로 삼는다.자를 지어준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후기 문신이 김수항(1629-1689) 선생의 ‘문곡집, 삼형제 자설(三兄弟字說)’로, 이 글은 김수항이 부사를 지낸 김수오의 아들 삼형제의 자를 지어주면서 쓴 글이다. 첫째의 순(洵)은 ‘진실로’라는 뜻으로 신뢰에 관해 말한 ‘주역, 중부(中孚)’ 괘에 ‘헤아리면[虞] 길하다’고 하였는데 대체로 믿을 바를 살피고 헤아려서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이에 진실한 믿음을 얻도록 바라는 뜻으로 여우(汝虞·너는 잘 헤아려라)라고 붙였다. 둘째 징(7013)은 ‘맑다’는 뜻으로 맑음을 상징하는 것은 물이므로 맑게 비추려면 고요하고 안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정해져 있기를 바라는 뜻으로 여정(汝定·너는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여라)이라고 지었다. 셋째의 호(灝)는 감(坎)괘의 상전(象傳)에 말하기를,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 습감(習坎)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덕행을 한결같이 하며 가르치는 일을 거듭한다’고 하였다. 학문이 넓고 크게 됨은 때마다 거듭하여 익힘에 있으므로 자를 여습(汝習)으로 지었다. 이렇듯 이름은 큰 의미와 가치를 품고 있다.상대의 이름을 대하는 우리 현실은 너무 훼손하고 폄훼하여 비참할 정도다. 온라인을 통한 댓글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몇 사례를 보면, 김영삼 전대통령을 ‘뻥영삼’, 김대중 전대통령을 ‘핵대중’, 이명박 전대통령을 ‘쥐박이’, 박근혜 전대통령을 ‘닭근혜’, 현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앙, 문죄인’, 홍준표 전자유한국당 대표를 ‘홍발정’,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이해골’로 조롱하며 폄하하고 있다.이러한 천박하고 저속한 문화의 확산은 좌우로 나뉘어 서로 발목잡고 당리당략과 정치논리만 늘어놓는 후진적 정치행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이름이 사람을 귀하게 할 수 없으나, 사람은 그 삶에 따라 이름을 귀하게 할 수 있다. 440년 전 왜적을 막아 조선을 지켰던 이순신이란 이름은 성웅(聖雄)으로, 구한말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의 이름은 최악의 매국노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2018-11-16

양심을 올라탄 국방의 의무

▲ 강희룡 서예가성경의 그리스어에서는 양심을 시네이데시스 ‘공유하는 지식’이라 했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으로 살인이나 도둑질이 나쁜 짓이기에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는 것이다. 양심이 은유적으로 ‘은밀한 앎’이나 ‘내부의 빛’으로 표현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양심이 사물의 가치변별과 스스로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볼 때, ‘맹자, 공손추 상편’에 나오는 ‘사단(四端)’이야 말로 실천도덕의 근거이며, 양심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맹자는 사단을 통해 성선설을 근거로 인간심리현상을 제시한 것이다. 첫 번째 ‘측은지심’은 인(仁)이란 단서에서 비롯됐으며, 남을 불쌍히 여기거나 측은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으로 이 마음이 없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두 번째 ‘수오지심’은 의(義)에 해당되며 악을 부끄럽게 여기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사양지심’으로 예(禮)의 단서에서 비롯됐으며 남에게 사양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즉 겸손해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이라 보겠다. 넷째로 ‘시비지심’은 지(智)에 해당되며 잘잘못을 분별해 가리는 마음을 말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양심을 이 네 가지 올바른 마음으로 설명했으며 각자의 생각에 따라 어진 이도 악인도 될 수 있다고 했다. 양심은 떳떳한 마음으로 가책을 느낀다고 하는 것은 곧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천재시인인 김병연(1807~1863)은 과거시험에서 홍경래의 난 때 항복한 선천부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한 내용의 답을 적어 급제한 후, 어머니를 통해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양심의 가책으로 그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평생을 큰 삿갓을 쓰고 방랑하다 생을 마쳐 일명 김삿갓이라 불렀다. 이렇듯 양심은 부끄러움으로 나타나며,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도 그 뜻을 같이 한다.병역기피의 정당한 사유로 ‘양심’을 인정하지 않았던 2004년 대법원 선고 이후 14년만에 그 판단의 논리가 뒤집혔다. 병역의무의 강제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게 판결의 취지다. 일부 대법관들이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와 양심자유의 한계를 벗어나고, 정교분리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강도 높게 지적했음에도 대법원장 등 9명의 대법관이 낸 무죄의견이 최종결론으로 확정됐다.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양심이란 것이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같이 입증할 수 없는 모호한 단어들이 헌법적 가치보다 우위에 자리한 것이다. 결국 군에 안 가려고 버틴 사람들은 양심적이 됐고, 오늘날까지 국방의 의무를 마친 대다수 국민들은 졸지에 비양심적 국민이 된 것이다. 헌법을 비롯해 병역법 역시 국가가 만든 비양심적인 법으로 전락했다.국가가 법으로 정한 국방의무를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문장 자체가 해석이 안 되는 말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내린 판결은 결국 그들 스스로가 양심을 팔아버린 것이다. 좌우라는 이념성향을 떠나 국민의 생존과 관련된 사안이다. 인류역사는 국가의 존재는 부국강병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양심을 팔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는 맹자의 말처럼 그들이 지금 죄책감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을지 아니면 웃고 있을지 궁금하다.

2018-11-09

촛불집회는 혁명인가, 쿠데타인가

▲ 강희룡 서예가2년 전 촛불집회는 현대사에서 우리 사회를 몰아쳤던 가장 큰 사건이었다. 본래 인간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촛불은 집회에서도 그 의미를 발했던 것이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정권을 몰락시켰던 촛불집회가 2주년을 맞았다. 광화문 광장에는 다시 적폐청산을 외치며 촛불혁명을 완수하자는 진보단체들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사기라며 석방 주장과 함께 노동자와 자영업자까지 다 파괴하는 문재인 정권은 물러나라는 보수단체들의 맞불 집회가 열렸다. 이들 양 단체는 이 촛불집회를 진보측은 혁명이라 일컫고, 보수 쪽에서는 쿠데타라 일컫는다. 서로가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는 상황에는 반드시 모함이 있다. 이 모함이 일어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시기심이나 사욕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의심 때문이다. 시기심이나 사욕으로 인한 경우는 스스로가 소인배의 도량을 벗어나지 못하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의심으로 인한 경우는 조금 더 객관적이 되고자 하는 노력만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의심은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이 촛불집회에 대해 여러 시각이 있으나 혁명도 아니고 쿠데타도 아니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과 축제, 투쟁과 놀이가 함께 전개된 매우 독특한 양상의 집회로 더 성숙된 민주주의를 이 사회에 안착시킨 국민의 집회인 것이다. 한국에만 있는 10월 유신, 4·19혁명, 5·16 쿠데타 등의 단어는 정치인들이 인기나 표를 안중에 두고 자기의 이념성향에 따라 마구 결정지어 부르다 보니 같은 사건이라도 그 명칭과 뜻이 서로 상반된다.‘유신(維新)’이란 말이 가장 먼저 쓰인 것은 ‘서경, 하서(夏書), 윤정편’이다. 윤후가 하왕(夏王)의 명령으로 희화를 치러 갈 때의 선언으로 치게 된 목적을 설명하고, 그 곳 관리들과 백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만들어진다. 당시 괴수인 희화 한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무고한 백성을 화에서 구제하는 것이므로 그의 위협에 못 이겨 본의 아닌 과오를 범한 사람은 일체 죄를 묻지 않는다고 선언한 다음, 오래된 더러운 습성을 모두가 함께 씻어내어 새롭게 하자고 한 단어인 ‘함여유신(咸與維新, 다 함께 새롭게 하자)’에서 유래됐다. 이 말이 독특한 뜻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시경, 대아(大雅) 문왕편’에 의해서다. ‘유’는 발어사(發語辭)로 별 뜻이 없으므로 유신은 결국 ‘새롭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후대로 전해 오면서 유신이란 말만이 갖는 독특한 의미를 갖게 되며,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대학, 신민장(新民章)’에 ‘시에 말하기를, 주나라가 비록 옛 나라이나 그 명이 새롭다.’라고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혁명은 천명(天命)이 강조되고 역성혁명까지 거론되고 있는 ‘서경(書經)’이다. 서경은 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혁명의 근거를 천명에 두고 있다. 곧 은주혁명(殷周革命)의 역사는 천명의 귀추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천명이 은을 떠나서 주로 돌아간 것이라는 견해가 천명 정치론이다. 이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 것이 서경의 오고(五誥)이다. 때문에 서경에는 민본주의가 강조되고, 아울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서경 ‘태서상편’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에 반해, 쿠데타는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아 지배 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을 말함으로 체제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구별된다.사람은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존재이다. 삶의 지혜는 단순히 오래 살았다고 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혹독한 내면의 성찰을 통해 숙성된 지혜라야 전인(全人)의 원숙한 삶이 된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위정자나 법관, 또는 언론에 의해 이념성향에 따라 명칭이 함부로 왜곡되게 결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는 입증 가능한 자료에 의해 객관적인 진실로만 기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18-11-02

학질에 걸린 사회

▲ 강희룡 서예가조선 중기 문신이며 구국의 문장가인 이정귀(1564~1635) 선생은 그의 문집인 ‘월사선생집’에 ‘학질을 쫓아 보내는 글’(送7627文)을 실었다. 내용은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뒤에 외부적이 치고,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해친 뒤에 사기가 와서 해친다.’이다. ‘학을 뗀다.’라는 우리말이 있다. 어떤 일에 시달려 기력이 다 소진되고 질리게 되어 거의 죽음에 이르는 상황을 겪었을 때 하는 말이다. 학은 학질을 가리키는 말인데, 한 번 걸리면 증상이 워낙 지독하여 잘 떨어지지 않는 아주 몹쓸 병이기에 이 말이 생긴 것이다. 이정귀가 이 병에 걸려 3년째가 됐을 무렵 병의 증상이 한여름에 두터운 겨울 외투를 입고도 화로를 끼고 살아야 할 지경이고, 추운 날 얼음물을 마시고도 갈증을 호소하며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는 움직이지 않아도 떨린다 했다. 이 때문에 승승장구하던 벼슬살이도 접은 터라 마침내 학귀(7627鬼·학질귀신)를 불러 전별의 잔을 건네며 사정하기에 이른다. 이정귀가 말하길, ‘혼백이 달아나 마치 미치광이나 바보와 같고 마음이 두렵고 어수선해 날로 기운이 쇠진해지도록 만든 것은 모두 그대의 짓이다.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토록 괴롭히는가. 또한 무슨 미련이 있기에 이토록 오래 머물고 있단 말인가. 부디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번개와 바람을 타고 훌쩍 날아가 달라.’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그러자 학귀가 응답하는데, ‘무릇 나무가 썩으면 날짐승이 모여들고, 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자기를 친 뒤에 외부의 적이 와서 치고,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자신을 해친 뒤에 외부의 사기(邪氣)가 와서 해치는 법이라오.’하면서 그(학질)가 들어온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으니 평소 음식과 거동을 함부로 한 것, 근심과 사념으로 기력을 해친 것, 초상을 치르느라 극도로 몸을 훼손한 것 등과 명리의 굴레를 쓰고 벼슬에 연연한 것을 특히 강조했다. 당시 학질을 앓고 있는 것은 조정도 마찬가지였다. 7년간 이어진 왜란의 와중에서 온 나라가 온전할 리가 없었다.조선조를 통해 보면 임금으로 인해 국가가 학질에 걸린 사례는 폭군으로 정리되는 연산군 시대이다. 조선 최초의 두 번의 사화(士禍)를 일으켜 수많은 신하들을 도륙하다 결국 중종반정으로 폐왕된 그는 연산군으로 강봉돼 폐위된지 두 달만에 역병으로 죽었다고 실록에는 기록하고 있다. 이후 50년은 사화라는 유혈극이 잇따라 일어나 선조 이후 정치 세력들이 붕당으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당파로 인해 국력은 소진됐으며 임진, 병자 등의 국난으로 국운은 쇠퇴했다. 또 한 사례는 선조이다. 임금이 당파에 휘둘려 사리판단이 분명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해 결국 나라를 환란으로 몰아넣어 초토화시킨 민족의 슬픈 역사를 만든 것이다. 스스로 홀대해 지키고 보존하는 데에 우선 힘쓰지 않는다면 갖가지 재난은 물론 외적의 침입까지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자중지란으로 생기는 것이다.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학질의 대표적인 사례 하나가 사립유치원의 비리이다. 국가에서 사립 유치원에 지원금을 사사로이 부정사용하다 적발됐다. 명품구입부터 아파트관리비까지 심지어 성인용품점에서까지 사용한 내역도 있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더구나 한 곳이 아니라 전국의 비리유치원 명단이 공개되면서 총체적으로 비리가 만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학질은 이번 국감에서 드러난 고용세습과 채용특혜이다. 청년 실업자 수가 40만 명에 육박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고용세습이란 희대의 병폐는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의 출발선을 애초에 다르게 설정하고 말았다. 학질은 이미 사라진 병이지만 이러한 사회적 병폐를 단단히 고치지 않고서는 국가발전은 없을 것이다.

2018-10-26

언잠(言箴)의 교훈

▲ 강희룡서예가문심조롱(文心雕龍)의 주(註)에 잠(箴)은 병을 고치는 침의 뜻이라 했다. 설문해자에서도 ‘잠은 침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경계하고 풍자하는 글이다.’ 라고 적고 있다. 이 잠에 대한 서양의 가장 대표적인 기록이 첫머리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금언집(金言集)이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오던 교훈과 격언을 편집한 구약성서의 잠언(箴言)이다.동양의 대표적인 것은 북송 중기 유학의 대가인 정이(1033~1107, 正叔)가 지은 사물잠(四勿箴) 즉, 시잠(視箴), 청잠(聽箴), 언잠(言箴), 동잠(動箴)이 있다. 이 중 언잠은 인간관계에서 사람은 예가 아니거든 말하지 말라는 경계(警戒)의 잠이다. 이 언잠의 주요 내용은 사람의 말은 외물에 느낀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기에 말을 할 때는 성급하고 경망스러운 태도로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마음을 항상 고요하고 안정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사람들이 내뱉는 말은 안일한 생각으로 가볍고 쉽게 하면 거짓말이 되기 쉽고, 번거로우면 조리가 없고 지리멸렬해진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기준으로 말을 마구하게 되면 남과 충돌을 불러오며,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하면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로보아 법도(예)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말도록 항상 경계하고 지키라는 요지가 언잠이다.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통을 위해 수많은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와 남의 관계는 주로 이 말을 통해 형성된다. 사회관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인 이상 상대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할지 말의 기술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보겠다.우리의 옛 선인들도 신중하고 간략하게 말하기를 힘썼다. 또한 자기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면서 늘 언행일치가 되도록 노력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 윤휴(1617∼1680)는 그의 백호전서에 ‘말에 대한설(言說)’을 지었으며, 후기의 성리학자며 서예가였던 강박(1690~1742)은 ‘국포집, 사잠사명, 신언잠’에 ‘생각해서 좋은 말을 얻더라도 때에 맞게 해야 한다. 때에 맞지 않으면 망언이 되거늘 하물며 생각지도 않고 내뱉으랴.’라고 말에 대한 교훈을 적고 있다.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인들이 말로 인해 몰락해 가는 과정을 우리는 여러 번 직접 목도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되돌아볼 줄 모르며 남의 일처럼 생각하며 예전에 하던 그대로 날카로운 말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생각없이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함부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이 나라의 국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양 대단한 의사결정의 주체인 양 으스댄다. 참으로 이해 못할 이런 식의 사람들은 앞으로 말로 화를 당하는 전철을 또다시 밟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이해찬 여당 대표는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이해찬발 20년 집권론’을 넘어 이제는 50년 집권론을 말한다. 방북 특사단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 고위인사를 만난 자리에서까지 국가보안법과 정권을 뺏기면 북측과 교류를 못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한 절대 정권을 안 빼앗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고 언급했다. 허나 정권은 정치인이나 각 정당이 선택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개혁이라는 슬로건 아래 민중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근시안적인 포퓰리즘이나 국정농단, 기타 국가정책이 실패로 이어지면 국민들은 반드시 야당으로 권력이동을 선택할 것이다. 권력은 정당끼리 뺏고 빼앗기는 게 아니라 국민들만이 그 선택권리가 있다. 국민만 바라보고 성숙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치를 한다면 500년 집권도 가능할 것이라 본다. 허나 현 정부를 ‘촛불정부’ 또는 ‘386 민주화 혁명정부’라고 사람들은 표현하기도 한다. ‘혁명은 필연적으로 썩는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기고 말의 신중성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8-10-19

실록으로 본 훈민정음 창제의 갑론을박

▲ 강희룡서예가1443년(세종 25) 세종은 새로 우리 글 28자를 창제하였다. 1443년 12월 30일 실록의 기록에는 ‘이 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중·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훈민정음은 무엇보다 창제 동기가 밝혀져 있는 문자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으뜸간다고 볼 수 있다. 이 훈민정음의 창제를 반대한 대표적인 인물이 최만리였다. 1444년 2월 20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는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문자를 만드는 것이 중국을 사대(事大)하는데 잘못이라는 점이다. 조선은 대국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준행하였는데 언문을 창작한 것을 보고 모두 옛 글자를 본 따서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 것에 반대이며 중국에 흘러가서 비난하는 자가 있으면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있다는 것이다.둘째로, 이두가 있음에도 언문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설총의 이두는 모두 중국에서 통행하는 글자를 빌어서 어조(語助)에 사용하였기에 문자가 원래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므로 괜찮으나, 이번의 언문은 새롭고 기이한 기예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셋째로, 몽고·서하·여진·일본·서번 등 중국 글자가 아닌 고유 문자가 있는 나라는 모두 오랑캐 민족임을 강조하였다.넷째로, 너무 빨리 시행하는 데 따른 문제점도 지적하였다. 나라 사람이 모두 옳다 하여도 오히려 다시 세 번을 더 생각하고 제왕에 질정하여 어그러지지 않고, 중국에 상고하여 부끄러움이 없으며, 백년이라도 성인을 기다려 의혹됨이 없는 연후라야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언문이 비록 유익하다 해도 문사(文士)의 육예(六藝)의 한 가지일 뿐이며, 정치하는 도리에 하나도 유익됨이 없으며, 정신을 연마하고 사려를 허비하며 학업에 손실이 온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세종은 신하의 상소문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지적하였다. “너희들이 이르기를, 음을 사용하고 글자를 합한 것이 모두 옛 글에 위반된다 하였는데, 설총의 이두도 역시 음이 다르지 않으냐. 또 이두를 제작한 본뜻이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함이 아니겠느냐. 만일 그것이 백성을 편리하게 한 것이라면 이 언문도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한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들이 설총은 옳다 하면서 군상(君上)의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 또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 또 상소(上疏)에, 새롭고 기이한 하나의 기예라 하였으나 내 늘그막에 나날을 보내기 어려워서 서적으로 벗을 삼을 뿐인데 어찌 옛 것을 싫어하고 새 것을 좋아한다 하느냐. 또한 매사냥을 하는 것도 아닌데 너희들의 말은 너무 지나침이 있다. 그리고 내가 늙어서 국가의 서무(庶務)를 세자에게 오로지 맡겼으니 비록 작은 일이라도 참예(參詣)하여 결정함이 마땅하거든, 하물며 언문이겠느냐. 만약 세자로 하여금 항상 동궁에만 있게 한다면 환관에게 일을 맡길 것이냐. 너희들이 신하로서 내 뜻을 밝게 알면서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옳겠느냐?”세종은 언문이 백성들에게 무엇보다 편리한 글임을 강조하면서 신하가 비판한 상소를 세세히 반박하였다. 백성을 최우선으로 한 성군의 정신은 한글 창제와 더불어 인재를 찾아 씀으로서 ‘농사직설’과 ‘향약집성방’의 간행이나 측우기와 같은 과학 기구의 발명으로 한민족 문화의 절정을 이루게 되었다.

2018-10-12

관료자리와 ‘스펙 쌓기’

▲ 강희룡 서예가인재가 세상에 쓰이지 못하거나 반대로 무능한 사람이나 격에 맞지 않는 사람이 고위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런 잘못된 인사검증에 대해서 국민들은 목소리를 높여 비판을 한다. 그런가 하면 능력이 있을 줄 알고 발탁했는데 정작 그 자리에 올라가서는 형편없는 성과를 내거나 반대로 별 볼일 없을 줄 알고 임명을 꺼렸던 사람이 의외의 성과를 내서 임명에 반대했던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것도 일종의 잘못된 인사행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고려 의종부터 명종대까지의 문인이자 학자인 서하 임춘(1150년경~?)은 예천 임씨의 시조로 강좌칠현의 한 사람이다. 20세 전후해서 무신난의 화를 가문 전체가 입어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내다 30세에 세상을 떠난 뒤 지인이었던 이인로가 그 유고(遺稿)를 모아 ‘서하선생집’을 엮었다. 임춘의 ‘서하선생집, 일재기(逸齋記)’에 공직으로 나아가고 물러남에 대한 자세를 잘 기록하고 있다. 그는 ‘진실로 숨어 살 수 있는 덕을 가진 사람은 출세할 수 있는 역량도 있으며, 참으로 출세할 역량이 있는 사람이면 숨어서 살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또한 이 글에 덧붙이기를 ‘공명심에 사로잡히고 벼슬에 골몰하여 머리에 감투를, 허리에 관인(官印)을 차고 다니는 사람은 세력을 얻기 위하여 허덕이며 이익을 쫓을 뿐이다. 그에게 숨어 있을 덕이 있겠는가!’이 일재기의 주인공인 이중약(?~1122)은 인종 즉위년 고려 중기의 도사로 월출산에 들어가 도술에 능통하게 되었다. 도교에 심취하여 항상 마음을 물질 밖에 두고 얽매이는 데에 초탈한 이른바 진짜 은둔자였다. 한편으로는 의학을 연구하여 많은 백성들을 살려냈고 그 공으로 조정에 들어와 높은 벼슬을 하기도 하였으며, 후에는 중국에 건너가 도의 요체를 배우고 본국에 돌아와 도교사원을 설립하고 설법을 행하였다. 이런 주인공에 대해 서하 선생은 ‘도와 함께 행하여 이른바 진정으로 출세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숨고 싶을 때는 숨어서 도를 닦고, 세상에 나오고 싶을 때는 출사해서 역량을 발휘하는 그야말로 ‘참인재’인 것이다. 서하의 윗글은 인사(人事)가 아니라 인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용히 은둔 속에 학문과 역량을 기르다가 때가 이르면 세상에 나아가 그 역량을 백성을 위해 발휘하고, 여의치 않으면 다시 조용히 물러나는, 그야말로 공인으로서의 이상적인 진퇴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나아가고 물러남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커다란 화두이다. 지금의 관리임명 국회 청문회를 보면 인재보다는 같은 패거리임명으로 영욕에 눈멀어 합당하지 않은 자리를 탐내다가 올라보지도 못하고 망신만 당한 사람들도 있고, 임명은 되었으나 청문회과정에서 안팎으로 만신창이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또는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물러나지 못하고 미적거리다가 사방에서 집중 공격을 당하여 마침내 온갖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난 다음에 떠밀려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모두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알아서 적절히 처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라 하겠다.지금 교육과는 거리가 먼 인사를 교육부총리 임명을 놓고 정치권의 대립이 첨예하며 교육계도 지명철회를 요구했다. 청문회에서 나타난 그의 부조리한 행태는 딸의 위장전입과 피감기관 건물입주, 경력뻥튀기, 공무원법 위반, 남편의 위장전입 등 온갖 비리백화점이라 볼 수 있다. 대통령 직권으로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이런 사람이 과연 백년지계인 교육의 미래를 위해 어떤 역량을 발휘할지 의심이 든다. 교육보다는 ‘1년 시한부장관’ 의 가능성이 높은데 차기 총선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교육부총리 자리를 탐한다면 이 나라 교육은 혼란 속에서 더욱 병들 것이다. 서하 선생의 말씀처럼 자신의 능력을 냉철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아가고 물러나는 데 있어 이렇게까지 구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8-10-05

혐오신조어가 판치는 세상

▲ 강희룡서예가사회의 다양한 계층 사이에 잠재하던 갈등이 점차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특정집단의 이름 뒤에 충(蟲)을 붙여 혐오감정을 드러내는 신조어가 우리생활에 퍼지고 있다. 이 벌레 충자를 붙인 혐오신조어는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 회원을 비하하는 ‘일베충’에서 시작됐다. 이 일베를 중심으로 남성의 여성혐오가 몇 년 전의 화두였으나, 지금은 여성들에 의한 남성혐오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들은 메갈리아(메갈)라는 커뮤니티를 무대로 공론장을 형성하면서 그간 쌓인 남성에 대한 증오를 분출하고 있다.현재 대표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혐오단어는 2011년 ‘일베충’이라는 표현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널리 퍼져 올해까지 블로그나 트위터에 게시된 글이 85만 건 이상 언급됐다. 메갈과 일베의 충돌 중에 강남역 살인사건 여파로 한국 남성들을 모두 비하하는 ‘한남충’이란 말을 메갈리아에서 만들었다. 지금은 월수입 200만 원 미만인 남자들을 지칭하며 올해에만 18만 건 이상 쓰일 정도로 퍼졌다. ‘개저씨’ 또한 개념 없는 아저씨를 뜻하는 혐오단어로 나이나 지위를 앞세워 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중년 남자를 의미하는데 지난해엔 8만 건 가까이 쓰였다. ‘맘충’은 엄마를 의미하는 맘(mom)에 충을 결합한 말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엄마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혐오의 대상이 전방위적이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 전체를 마치 사회에 해악을 주는 존재로 여기는 세태를 인터넷 커뮤니티 한두 군데만 들어가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여성혐오는 꾸준히 있었지만 모성애마저 지금처럼 벌레 수준으로 끌어내려진 적은 없었다. ‘급식충’은 학교에서 급식만 축내고 식사 아닌 시간에는 잠만 자다 돌아오는 학생, ‘좌좀충’은 좌익좀비, ‘우꼴충’은 우익꼴통, 아이들을 버릇없이 기르는 아빠들은 ‘애비충’이라 부른다. ‘틀딱충’은 노인네들의 틀니에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비유로 노인세대를 통틀어 비하하는 표현이다. 노년층은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적 정치성향으로 인해 진보적인 젊은 세대에 대한 비판적 태도나 과도한 조언에서 빚어진 세대 간 갈등으로 해석된다. 충자는 없지만 ‘김치녀’나 ‘된장녀’는 냄새나는 김치나 된장에 비유하여 본인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명품과 사치, 허영을 가진 여성을 혐오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터키 1.2, 한국 0.72, 폴란드 0.59로 OECD 국가 중 2위이며, ‘타인에 대한 관용과 존중도’는 OECD 평균이 69.9인데 한국은 45.3으로 최하위다.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탄생될 만도 하다. 혐오란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을 듣는 것을 의미하기에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그 고통을 상상하기 어렵다. 사회상을 반영한 언어의 부정적 표현이 극으로 치닫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 내부에 정치, 사회적 집단 갈등이 널리 퍼져있음을 의미하며, 한편으로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소득불평등 등 사회구조적 갈등이 심각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상에 범람하는 혐오표현에 물드는 건 순식간이다. 이러한 부정적 언어들을 반성을 통해 걸러내지 않으면 일상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온라인공간은 사적영역이 아니라 공적영역이다. 성숙한 국민으로의 자질을 갖추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이 남만 탓하는 ‘내로남불’의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피해 또한 모든 국민이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어린이들이 정상적인 언어를 배우기도 전에 부정적이며 비정상적인 언어를 먼저 습득하면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사회적 문화를 형성하게 될 우려가 크다. 특정 다수를 아무런 생각없이 혐오의 낙인을 찍는 일상이 아무 제재없이 인터넷상에 유행처럼 번지면 어린 학생들은 이것을 유희로 생각할 수 있다. 이제 혐오신조어는 우리사회의 문제점으로 자리잡았다. 사용에 있어 적절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 본다.

2018-09-21

난도질 당하는 병역의무

▲ 강희룡서예가우리나라는 헌법상 규정된 국민의 의무가 있다. 일반적으로 국민의 4대 의무라 하면 국방, 근로, 교육, 납세의 의무를 말한다. 이중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를 제외하고는 권리인 동시에 의무에 해당된다. 헌법 제39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로 되어있다. 사상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남북으로 갈려진 우리 민족은 1950년 6·25라는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 느슨한 국방이 나라를 얼마나 위험에 빠뜨리는지를 경험했다.예나 지금이나 국가와 민족의 보존에 필수적인 요소는 부국강병밖에 없다. 지난 조선의 역사를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끊임없는 주도권잡기 역사로 본다면, 건국 당시 정도전등은 신권국가를 만들고자 했으나 실패함으로써 태종부터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강력한 왕권국가를 이룩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신권국가체제로 운영되었다.신하들이 왕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왕권이 신권에 밀리는 막강한 신권국가였음에도 이들에게 국가는 없었다. 단지 남은 건 붕당만 있을 뿐이었다. 이로 인해 호란과 왜란을 겪었고 후기에 나타난 세도정치는 이 붕당이 만들어낸 최악의 정치노폐물이라 할 수 있다.한 국가의 패망은 흔히 내우외환(內憂外患)이라고 대충 얼버무리지만 그 속을 자세히 관찰하면 외환의 경우는 내부의 결속을 다질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기에 그 강도만 적절하다면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다.하지만 내우의 경우는 자국의 역사를 스스로 폄하해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론을 분열시켜 국력을 소진하게 만들어 마침내 스스로 망국에 이르는 아주 위험한 요인인 것이다.108년 전 경술국치로 조선이란 나라는 국제무대에서 사라졌다. 우리 민족은 36년이라는 일제강점기속에 허우적거리다가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자 지금의 한국인 신생독립국가로 탄생할 수 있었다.하지만 남북이 대치되어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병역의무는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의무였다. 가난하고 존재감 없는 한국을 스포츠로 세계 속에 알리기 위한 국위선양의 목적으로 1973년에 국제대회에서 입상한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병력특례법이 최초로 제정 시행된다. 이 병역법 33조는 예술·체육 분야의 특기를 가진 사람은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한국은 지금 근대산업화의 성공으로 글로벌시대에서 그 위상은 경제력이나 국방력이 상위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병력특례법은 더 이상 국위선양의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결론이다.올해 아마추어 선수들의 대회인 ‘아시안게임’에 병역의무를 미루거나 이행해야 할 위치에 있는 프로선수들을 대거 참여시켜 병역을 면탈 받은 사건은 이들이 국위선양 목적보다는 법을 이용하여 병역특혜를 통해 개인의 인기와 부를 누리려는 무임승차를 원하고 있던 것이다. 이로보아 이 특례법이 사실상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불만요인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위정자들이나 관료들 청문회를 보면 병역의무를 모호한 질병이나 건강상태로 대를 이어 면제받는 사례가 대부분이어서 항간에는 몸이 비정상적이어야 관료도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연예인들 병역기피의 일탈행위를 차치하고라도 서울에 있는 한 대학 성악과 선후배들이 단백질 보충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거나 검사당일 알로에 음료를 많이 마시는 등의 방법으로 병역을 회피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2010년 이후 성악 전공자 중 체중과다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범죄행위 대상자가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이렇게 각 계층에서 편법으로 병역을 면탈받아 무임승차하는 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조국이 없으면 위정자도, 각료도, 권력도, 스프츠 선수도, 예술인도 심지어 민족까지도 소멸되고 없다는 역사의 진리를.

2018-09-14

1등 딸과 꼴찌아빠

▲ 강희룡 서예가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익(1543~1620) 선생의 ‘성호집’에는 ‘애꾸눈 닭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쪽 눈이 안 보이고 다른 눈도 온전치 못한 닭이 정상적인 닭들보다 병아리를 더 잘 키우는 것을 보고 지은 글이다. 정상적인 닭들은 새끼를 데리고 다니면서 흙을 파헤쳐 벌레를 잡느라 부리와 발톱이 닳아지고 사방으로 나다니느라 편안하게 쉴 새가 없다. 또한 위로는 솔개를 옆으로는 고양이를 감시하면서 부리로 쪼아대고 날개를 퍼덕이면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 그렇게 해도 환란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뒤에 보면 병아리들이 열에 예닐곱은 죽어있다. 또 멀리 나가 돌아다닐 경우에는 사람이 보호해 줄 수가 없어서 사나운 맹수들의 밥이 되곤 한다.그러나 애꾸눈 닭은 모든 것을 반대로 하였다. 나다닐 때에는 멀리 갈 수가 없으므로 항상 사람 가까이에서 의지했고, 눈이 제대로 살필 수가 없으므로 항상 두려움을 품고 있다. 이에 그저 느릿하게 움직이면서 병아리들을 자주 감싸주기만 할 뿐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병아리들은 스스로 모이를 쪼아 먹으면서 잘 자랐다. 별 지혜가 없는데도 기르는 방법을 제대로 해서 병아리들을 온전하게 길러냈다.이 상황에서 이익이 깨달은 것은 무릇 어린 새끼를 기를 때에는 작은 생선 삶듯이 조심해야 하며 절대로 들쑤셔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이 말은 노자가 치국의 방법에 대해 ‘큰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마치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해야 한다’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노자의 이 말은 자녀교육의 방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녀가 나름대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해 주어야지 일일이 간섭하면서 직접 밥을 떠먹여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우리는 흔히 자녀교육법에서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와 한호(한석봉)의 어머니가 한 밤중에 불을 꺼놓고 떡을 썬 이야기를 한다. 이들의 교육법은 자식이 잘 배울 수 있는 환경조성과 학습동기만을 유발시켜 스스로 공부하게 하여 큰 인물을 만들었다. 말을 자연스레 물가로 끌고 갔지 억지로 물을 먹이지는 않았으며, 물고기 잡는 방법만 알려줬지 직접 잡아서 주지는 않았다.오늘날 우리 학부모들이 자녀교육에 쏟는 열정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도 뛰어난 인재가 드물다. 그 이유는 억지로 물을 먹이고 물고기를 직접 잡아서 먹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법은 창의력은 없고 시험만 잘 치러 목표한 대학에만 가면 끝인 기계적인 학생만 있게 된다.서울 강남의 한 여고에서 현직 교무부장의 쌍둥이 딸이 각각 문·이과 전교 1등을 차지해 논란이 불거져 수사에 의뢰된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의 내용은 작년 1학기 성적이 각각 전교 59등과 121등이던 자매가 2학기 들어 2등과 5등을 하더니 올해 문·이과에서 모두 1등을 하면서 의혹을 불러왔다.감사 결과 논란과 관련된 해당 교무부장이 이 쌍둥이의 아빠로 지난해부터 올해 1학기까지 딸들이 치를 내신시험 문제지와 정답지를 혼자서 수차례 검토한 사실과 자매가 지난 1년간 8개 과목 9문제에 걸쳐 오류 정정 전 정답을 적은 정황으로 볼 때, 쌍둥이 딸 뒤엔 시험지를 혼자서 주물럭거린 교무부장 아빠가 있었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 이해하지만 일그러진 이런 욕심은 입시의 공정한 경쟁을 파괴하고 교단을 황폐화시킨다.오늘날 미국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뒤에서 미국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은 유대인이다. 소수민족이지만 세계에서 유독 위인이 많은 유대인들의 자식교육법을 우리는 큰 의미를 두고 살펴보아야 한다. 이 황당한 사건을 보면 쌍둥이 딸들은 일등일지 몰라도 아빠는 꼴찌 아빠이다.

2018-09-07

고전에서 가르치는 정치논리

▲ 강희룡 서예가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의 원리를 물었다. 공자는 정치의 원리를 첫째로 인민의 생계대책, 둘째로 치안과 국방, 마지막으로 인민의 신뢰를 들었다. 자공이 상황에 따라 하나를 포기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공자가 치안과 국방을 먼저 포기하라고 하였다. 자공이 다시 부득이한 상황에서 남은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공자가 생계대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덧붙여서 예로부터 사람은 모두 죽지만 신뢰가 없으면 설 수 없다고 하였다.권력을 얻는 과정에서나 운용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잃어버리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국가의 권위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위아래가 서로에 대해 믿지 못하면 결국 믿을 것은 내가 또는 우리가 가진 힘밖에 없다.이런 상황이 되면 국가의 기강이 혼란하고 정치의 권위가 사라진 곳에는 돈이든 권력이든 물질이든 그것을 가진 자는 결국 그 힘을 폭력적으로 행사하게 된다. 또한 그것에서 소외된 계층은 폭력에 희생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폭력으로 항거할 수밖에 없다. 혁명이란 그래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위아래가 서로 믿는 사회가 되려면 조금이라도 더 권력이 많고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믿음을 보여야 한다.믿음을 얻는 길은 자기 이름을 회복하는 데 있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관료들은 관료라는 위치에서, 정치인들은 정치인으로서 이름을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듯한 이름을 세워 진리를 찾는다는 말잔치는 결국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 뿐더러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피해만 자초하게 된다.이런 경우는 지식의 유희에 빠져 함부로 사실을 합리화하는 어리석은 실수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또한 공자는 위정자들이 다섯 가지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네 가지 악덕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이른바 4악덕(四惡德)’이다.그 첫째가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은 잔학한 것이다. 이 말은 사전에 미리 가르쳐 주지도 않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죽이는 경우이다.두 번째가 미리 경계해 놓지 않고서 일의 완성을 재촉하는 것은 난폭한 것이다. 즉 일의 성과가 어느 정도에 미치지 못하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지도 않고 성과가 미달했다고 몰아치는 경우이다.셋째로 소홀하게 명령해 놓고 시기를 꼭 대도록 기대하는 경우이다. 기간을 정해서 명확하게 명령을 내리지도 않고 기한을 재촉하는 것은 모진 것이다.넷째로 고루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있어 내고 들이는 것을 인색하게 하는 것을 유사(有司)라고 한다. 즉 베푼다고 하면서 실제로 예산을 나눠 주는데 자기 돈을 주는 것처럼 지나치게 따지고 인색하게 구는 것은 정치인의 취할 바가 아니라 사사로운 모임의 유사나 할 처신이라는 것이다.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에 상관없이 무조건 벼슬에 집착한다.이러한 결과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분류한 아홉 가지 위정자들의 모습이다. 굳이 자유한국당 뿐만 아니라 국민의 눈에는 거의 모든 여야정치인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복숭아 두 개로 용사 셋을 죽였다는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의 고사가 있다. 세 명에게 복숭아 두 개를 주면서 공이 있는 사람이 가지라고 했는데, 서로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복숭아를 다투다가 결국 부끄러움에 자결을 하였다는 내용이다. 교묘한 계략으로 상대를 제거한다는 고사지만, 적어도 그들처럼 명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만큼 염치를 지닌 위정자들이 요즘 시대에 몇이나 있겠는가.시사하는 바 크다

2018-08-30

삼종지도(三從之道)와 페미니즘

▲ 강희룡 서예가의례(儀禮)는 유교경전 13경 중 하나이다. 이 의례 상복전(喪服傳)에 삼종지도가 기록되어 있다. 삼종지례라고도 하는 이 단어는 ‘좇아야 할 세 가지의 도리’로서 동양의 봉건사회에서 여성이 마땅히 복종해야 할 윤리를 말한다. 이 사회적 윤리는 집에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시집을 가면 지아비를 따르며,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의 뜻을 좇아야 한다는 것이다.주역 64괘의 해설에 의하면, 건은 남자를 상징하며 건강을 덕으로 하여 여자를 지배하고, 곤은 여자를 상징하며 유순을 덕으로 하여 남자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이것으로 남녀의 지위를 정립하였다. 이러한 교육관은 봉건사회에서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보고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굴레로 작용하였다. 또한 대대례(大戴禮)의 본명편에 ‘부인에게는 7가지 내쫓을 사항이 있으니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경우, 아들이 없는 경우, 음탕, 질투, 나쁜 병, 말이 많은 경우, 도둑질 등 이 칠거(七去)의 경우는 내쫓지만 예외조항은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 함께 부모 3년 상을 치른 경우, 가난하다가 후에 부자가 된 경우는 삼불출(三不出)이라 하여 내쫓지 못하니 이를 칠거삼불출이라고 했다.동양의 율령에서 남편의 일방적 의사표시로써 아내와 이혼하는 일을 기처(棄妻)라 하여, 이 기처의 이유가 칠거였던 것이다. 조선에도 이 규정이 계수되었으니 본조에 해당하는 죄를 소박정처죄(疏薄正妻罪)로 하여 비첩이나 기첩과 애욕에 빠진 자를 처벌한 사례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후기까지 이어졌으며 조선의 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성본위의 사회규율 속에 삼종지도로 방향이 설정된 삶을 살아야했음은 물론이다. 여성의 정조에 대한 황당한 조선성리학의 집단사고는 병자호란(1636) 직후 청나라로 끌려갔다 몸값을 치르고 돌아와도 조선에서 살 수 없던 환향녀(還鄕女)들에게 영향이 미쳤다. 대부분 정조를 잃은 이들이 이혼과 박해를 당하자 조정은 ‘한양으로 들어오는 입구 개울에서 몸을 씻으면 부정이 사라진다.’는 희한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환향녀들은 홍제원(지금의 홍제동)의 개울에서 몸을 씻고 또 씻었지만 지울 수 없었고 서방질하는 여자 ‘화냥년’으로 통했다. 당시 사대부들은 성리학의 가치를 지킨다는 명분에 사로잡혀 전쟁을 자초했고 입만 살았지 실제 국력은 미약하여 전쟁에서 항복하자 여인들은 불가항력적인 강간의 위치에 처해졌다. 당쟁으로 사분오열된 조선은 결국 삼전도의 항복으로 이어졌고 이 굴욕적인 패전은 사대부들의 비굴한 민낯이고, 화냥년은 조선이 극단적으로 찢어질 때 발생한 파열음인 것이다. 이 외에도 여성의 고통은 임진왜란에서도 있었고, 일제강점기 때도 위안부로 고통받았다.오늘날 가부장제 폐지와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인 페미니즘의 활동이 활발하다. 이러한 사회운동을 발판으로 터진 사건이 미투운동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미투 폭로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을 주목해온 여성단체들은 남성 편향적인 한국사회의 틀을 바꿀 변곡점이 될 제도권의 첫 응답이었기에 그 결과를 기대하고 참여했다. 그러나 법원은 입법에 책임을 넘기는 듯한 모호한 해석으로 안희정에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미투의 분노와는 달리 우리사회는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동토(凍土)임을 확인해 줬다. 법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이 법이 엄정하지 못하고 권력에 빌붙어있으면 국가의 존재가치가 없다. 지금의 정치상황은 380년 전 조선의 사대부 정쟁과 비슷하다. 결국 속물들은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못하고, 타인의 불행에서 자신의 행복을 구걸하기 때문이다.

2018-08-24

파렴치한 꼼수갑질

▲ 강희룡서예가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기르지는 않는다. 대부분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다. 그러나 곡식 생산이 위주였던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고양이를 키우는 목적이 이와 달랐다. 곡식을 훔쳐 먹는 쥐를 잡기 위해 키웠다. 농경사회를 살았던 우리의 선인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큰 이로움을 주는 고양이와 관련된 글을 종종 남겼다. 조선중기 학자 송암 권호문은 송암집에 ‘고양이를 기르는 데 대한 설(畜猫說)’을 지었다. 송암은 본디 가난해 창고에 쌓아놓은 곡식이 없기 때문에 쥐로부터 해를 당할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을에 추수를 마치고 곡식을 쌓아놓자 뭇 쥐들이 갑자기 모여들어 들보 위에서 시끄럽게 돌아다니거나 옷을 잘게 썰어 구멍을 뚫어놓기도 하고, 곡식을 훔쳐서 자신들의 소굴로 가져가 그 피해가 막심했다. 이에 이웃집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 와서 기른 지 몇 달이 지나자 고양이는 쥐를 잘 잡았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쥐는 석서(碩鼠)로 아주 큰 쥐를 말한다.또한 송암은 이 글에서 관리가 되어 나라에서 주는 녹봉으로 호의호식하며 고양이의 역할을 해야 할 자들이 쥐를 제거하지 않고 자신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며 스스로 쥐가 되어 백성들에게 갑질을 하며 폐해를 끼치는 고관에 대해 ‘대개 짐승의 몸으로 사람의 마음을 가진 자도 있으며, 사람의 얼굴로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도 있는 법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얼굴로 쥐새끼같은 짓을 하는 공직자들이 넘쳐난다’며 부패한 벼슬아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개탄했다.지금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쥐의 세계에서는 그 어느 쥐도 상대가 안 될 ‘뉴트리아급’의 큰 쥐 무리가 널려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고양이가 큰 쥐로 변해있다. 국민에게 해독만 끼쳐 비난을 받는 이런 쥐로 변한 고양이라면 국민 누구나 마음껏 비난해도 괜찮고 심지어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 하찮은 잘못을 저지른 쥐만 잡을 경우 제아무리 많이 잡더라도 나라의 기강을 세울 수가 없다. 나라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는 큰 권력을 가지고 부정부패를 저질러, 국민의 삶에 막대한 해독을 끼친 모든 석서를 색출해 없애야 한다.지금까지 연간 62억원의 국회 특별활동비는 국회의원들의 쌈짓돈으로 논란을 빚었다. 자식 유학비로까지 쓰이는 이 정의롭지 못한 특활비를 국민 눈높이에 맞춰 완전히 폐지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결정을 놓고 문희상 국회의장은 ‘의정사에 남을 쾌거를 결단 내렸다.’라고 했고,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특활비 문제에 여야 간 완전히 폐지하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특활비 폐지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제도의 일면을 걷어낼 수 있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대립과 반목 속에 소모적 정쟁만 일삼던 정치권이 모처럼 의기투합해 손잡고 의장과 거대 여야 원내대표들이 정치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에 국민들도 만족스러워 했다.허나 불과 몇 시간 후 특활비 전면 폐지가 아니라, 교섭단체 몫의 특활비는 폐지하되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회 특활비는 절반 정도 삭감해 양성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꼼수 폐지’ 논란이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여론에 굴복한 국회의장은 국회 특활비를 100% 폐지하라고 지시했으나 의장단 특활비에 한해 최소한의 경비만 남기는 쪽으로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세간에 알려진 200가지가 넘는다는 특권과 온갖 비리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회는 한 여론조사에서 의원들의 신뢰도는 3%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학연, 지연에 얽매어 염치의 회복과는 거리가 먼 지탄을 받고 있는 이들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선진국 진입은 꿈인 것이다.

2018-08-17

묘비명으로 본 삶의 의미

▲ 강희룡 서예가생자필멸(生者必滅)이란 말이 있다. 살아있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다. 인생은 덧없고 짧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뜻은 결코 짧을 수가 없다. 그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이 묘비명이다. 원래 묘비명은 고대 이집트로부터 유래했고 이행시(二行詩) 형태를 원형으로 삼았다. 서양에서의 묘비명은 짧은 경구나 시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흔한 묘비명은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교훈적인 문구 ‘메멘토 모리(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이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자기가 쓴 작품 속의 주인공을 죽게 만들고서는 그들을 위한 묘비명도 써주었는데, 세르반테스의 명작 ‘돈키호테’는 파란만장한 여정 끝에 등장인물들이 세상을 떠나자 소설의 맨 마지막을 그들을 위한 묘비명 시로 장식했다.서양의 경우 꽤 유명한 자찬 묘비명은 ‘인간과 초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버나드 쇼(1856~1950)로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지었다. 묘비명이 반드시 사람에게만 쓰인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한 예는 바이런이 자신의 개 ‘보우썬’에게 바친 묘비명이다. 그 내용은, ‘이 곳에 묻힌 개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되 허영심이 없고/힘을 가졌으되 거만하지 않으며/용기를 가졌으나 잔인하지 않고/인간의 모든 덕목을 가졌으되 그 악덕은 갖지 않았다’이다. 이 묘비명을 읽으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설쳐대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기만 하다.스피노자는 ‘신에 취한 사람,’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 토머스 모어는 ‘고결한 양심, 불멸의 영혼’이라 새겼다. 중국의 도연명은 스스로 만사(挽詞)를 짓고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오류선생전’을 지었으며, 백낙천은 ‘취음선생전’을 지었다. 일본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잘못 쓴 원고를 찢는데 일생을 소비한 사내가 여기 잠들다’라는 자화상적인 묘비명을 선사했다.우리의 경우는, 정몽주는 ‘不事二君(두 임금은 섬길 수 없다).’ 유골 대신 이상을 묻은 광해군조의 허균은 ‘閒見古人書(한가하면 옛사람의 책을 보라).’ 이황은 ‘근심 가운데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가운데에 근심이 있었네. 조화를 타고 일생을 마치니 다시 또 무엇을 구하리오?’라고 스스로 지어 새겼다.선조 때 문인 성혼(1535∼1598)은 ‘평소 명예를 훔쳐 나라의 은혜를 저버렸기에, 신하로서 국가의 은혜를 저버린 죄가 크므로 시신에 삼베옷을 입히고 종이 이불로 염습하여 달구지에 싣고 고향에 돌아가 묻어달라’고 지었다. 인생의 성취를 자랑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면서 후손들이 장황한 장례를 치르지 않도록 미리 경계한 것이다. 세 번이나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됐지만 모두 사양했던 성혼의 초탈한 인격이 묘지에 그대로 묻어나 있다.얼마 전 타계하신 김종필 전 총리도 스스로 비문을 지었다. 시경 300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무사(思無邪)이다. 이 사무사를 평생 도리로 삼고 맹자의 무항산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을 나라 다스림의 근본으로 삼고, 논어의 遽伯玉(나이 50세에 49년의 잘못을 깨닫는다) 즉, 본인은 나이 90에 89년의 잘못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이백의 시, 산중문답의 소이부답(笑而不答)을 인용하여 마음의 한가로움 속에 평생을 함께한 내조의 덕을 베푼 부인에 대한 애틋함을 비문에 새겼다.동서와 고금을 넘어 자찬 묘비명을 남긴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통찰과 관조가 놀랍다. 지금의 위정자들이 어떤 내용의 비문을 스스로 지어 남길지 사뭇 궁금하다.

2018-08-10

비상식이 상식화 되어 있는 사회

▲ 강희룡서예가지난달 22일 올라온 ‘23개월 아기가 폭행에 장이 끊어져 죽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달 25일 낮 12시 30분에 21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이른바 아동폭행의 전형인 ‘성민이 사건’에 대한 청원이다. 이 사건은 지난 2007년 5월 울산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던 23개월 이성민군이 소장 파열에 의한 복막염으로 사망하였다. 어린이집 원장 부부가 성민이의 복부를 발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으나 법원은 아이를 숨지게 한 혐의를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로 판단해 ‘업무상 과실치사’로 사건을 종결했다. 청원자는 오래된 사건이라 재수사는 어렵지만 아직도 계속 아이들이 학대와 사고로 죽어나가고 있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형량과 처벌을 받지도 않는 법들은 꼭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우리나라 아동복지법에 아동학대 관련 내용이 처음 포함된 것은 1999년 일명 ‘영훈이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1998년 발견 당시 6세였던 영훈이는 위장에 위액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등에는 다리미로 지진 화상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런 끔찍한 아동학대가 가정에서부터 어린이집, 유치원까지 지속적으로 지금까지 이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18일 생후 11개월 된 영아가 보육교사에 의해 잠을 자지 않아 억지로 잠을 재우는 과정에서 아이를 엎드리게 한 채 이불을 씌운 상태에서 온몸으로 올라타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하루 전에는 폭염 속에 어린이집 통원 차량에 방치됐던 4살 아이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국민의 공분과 세간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2016년 복지부는 개정 ‘보육사업 안내’ 지침을 전국 지자체와 어린이집에 보내 따르도록 했다. 지침에는 통원차에 동승한 교사는 영·유아가 어린이집에 도착해 하차한 후 승하차 상황을 지체 없이 담임교사에게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아이들이 모두 내린 후 운전기사는 차 안을 한 번 더 점검하고 내리게 된다. 사전 연락 없이 아이가 등원하지 않으면 담임교사는 보호자에게 전화로 연락해 소재를 확인하고 확인되지 않을 경우 차량에 아이가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번 사고는 총체적으로 이 지침이 작동하지 않았다. 더 기막힌 것은 이 문제의 어린이집들이 모두 평가 인증에서 최고 등급인 ‘A등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어린이집 사고가 발생하자 국회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관련 입법을 쏟아낸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아이들의 하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통학버스에 의무 설치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슬리핑 차일드 체크’로 불리는 이 장치는 운전자가 버스 맨 뒷좌석까지 가서 특수 부착된 버튼을 눌러야 시동이 꺼지도록 한 장치다. 다른 의원들도 질세라 유사 입법에 나서고 있으나 뒷북을 지켜보는 여론은 따갑기만 하다. 2016년 7월 광주에서 4세 어린이가 유치원버스에 방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된 사건으로, 그 해 8월 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사건이 여섯 건이나 더 발생했지만 국회는 이 법을 처리하지 않았다. 소관 행정안전위는 그해 11월 자동차 관리 법령을 다루는 국토교통위로 떠넘겼고, 법안 심사 과정에서 시스템 탑재 논의는 건너뛰고 운전자가 어린이 하차 의무에 부주의할 경우 벌금 20만원을 부과하는 땜질 처방만 하고 넘어갔다.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이치와 도리를 지켜 직분을 다함으로써 이 사회는 밝아진다. 우리 스스로 눈앞의 이익과 편리 때문에 불합리를 묵인하고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아동학대죄 형량을 높여달라는 내용의 청원에 2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동참했다. 이로써 한 달 내 이 청원에 대한 청와대 혹은 정부부처의 답변이 기대된다.

2018-08-03

한 정치인의 죽음을 보고

▲ 강희룡 서예가조선 중기의 학자인 장흥효(1564 ~1633) 선생의 ‘경당집, 일기요어(日記要語)’에 ‘ 자기를 이기기는 쉽고 남을 이기기는 어렵다. 자기를 이기는 건 나에게 달려 있고 남을 이기는 것은 남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라는 글이 있다. 자기를 이기는 건 실로 쉽지 않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부처는 전쟁에서 수많은 적을 혼자 싸워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더 용감한 일이라고 정리하였으며, 노자도 남을 이기는 자는 힘있는 자이나 자기를 이기는 자는 승부를 뛰어넘는 강한 자라고 했다.자기와의 싸움은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자기를 이기려면 자기와의 싸움을 전제해야 하고 자기와 싸우려면 본래의 자기와 또 다른 자기를 전제해야 한다. 이 싸움은 자기가 본래의 자기를 부정하는 치열한 싸움이며 본래의 한계와 구속을 깨고 새로운 상향의 존재로 변모해 가는 숭고한 싸움이다. 그래서 중국의 북송 때의 사마광은 자기를 이기는 것은 ‘자기의 사사로움을 이기고 도를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수히 자기와의 싸움에 직면하여 이 싸움에서 이기기도 하고 때론 지기도 한다. 다양화된 현대사회에서도 대표적인 자기와의 싸움을 치러야하는 것이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은 동물과 달리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이 내면세계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후진국일수록 재물을 이용하여 권력에 의탁해서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크게 나타난다. 즉, 재물을 원하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과 이에 의탁해서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의 의식이 결탁해서 사회적 비리를 만든다. 결과적으로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돈을 주고 뭔가를 도모하려는 사람과의 수요공급의 법칙이 맞아 떨어진 결과가 비리로 나타나는 것이다.조선의 선조 때 명재상이었던 이원익의 청백함을 포상하고자 인조가 흰 이부자리를 하사하는 일이 있었다. 이 이부자리를 전달하고 승지가 돌아오자 임금은 어떻게 살고 있던가하고 묻자, 승지가 말하기를 ‘기와도 아닌 초가인데 비가 새어 벽이 얼룩이 지고 문틈에서는 바람이 들 지경이옵니다.’ 고 대답하였다. 입시(入侍) 40년에 영의정까지 지낸 이가 겨우 초가 두어 칸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임금이 눈시울을 붉혔다 한다.세조 때 재상 이승소도 판서벼슬에 있으면서도 겨우 세 칸짜리 초가에서 살았다. 임금을 알현하고 있을 때, 마침 호화주택에 사는 병조판서 모씨가 입시하자 서로 모른체 하였다. 앞뒷집에 사는 같은 판서끼리 서로 모르는체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세조가 이승소에게 ‘병판을 모르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모르는 사이입니다.’ 고 대꾸했다. 조정에서 일하는 판서끼리 모를리야 없겠지만 모르는척하는 저의는 병판 모씨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 후 세조는 재물을 탐하는 신하가 입시하면 짐짓 알면서도 신이 누구더라? 고 이승소의 처세로 당황하게 만들었다한다. 이같이 인격적 척도의 상향을 위해 경제적 척도를 극소화하는 성향은 당시 한국 선비들의 본질이요 조건이었던 것이다.가진 것 없는 사람들과 노동자들의 대변자이자 진보정치의 아이콘이었던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지난 23일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다. 이유는 댓글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드루킹으로부터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받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서에서도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또한 본인의 어리석은 선택과 부끄러운 판단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적었다. 한 정치인이 내면의 도덕심이 정치자금수수라는 비리와 충돌하여 도덕심을 이길 수 없었기에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각종 비리에 휘말려있는 정치인들도 스스로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한번 태어난 삶을 권력의 온갖 특권을 빌려 비리 속에 얼룩지며 살다가서야 되겠는가.

2018-07-27

역사는 돌고 도는 거울이다

▲ 강희룡서예가당조(唐朝)는 중국의 역대 왕조 가운데 가장 성세를 구가했던 나라다. 그중 성당의 핵심 군주는 당태종(이세민·598~649)이다. 이른바 ‘정관의 치’는 태종 때의 연호(정관·627~649)를 딴 치세기를 일컫는다. 형제를 죽이는 참극(현무문의 변·626년 7월 2일)을 바탕으로 어좌에 올랐지만 태종의 정치력은 중국 역사에서 드물게 뛰어난 군주로 평가받는다. 한 고조 유방의 호탕함과 용인술과 위(魏) 무제 조조의 지모와 용병술을 갖췄다고 할 정도였다. 한창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부당하게 권력을 행사하거나 사치하지 않고 스스로 근검절약하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애써 황족과 대신들이 이를 본받게 했다. 당시 유럽의 문화는 당의 문화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그런 그에게도 3개의 거울이 있었다. 우선 손거울로 자신의 옷매무새 등 몸가짐을 바르게 하려고 했다. 그리고 역사를 거울로 삼아 세상사의 흥망함의 이치를 잊지 않았으며, 사람을 거울로 해 득실을 밝히려 애썼다. 그 ‘사람 거울’ 가운데 한명이었던 명재상 위징이 죽자 그는 “내가 평생에 모범으로 삼아왔던 거울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렸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않았다 한다. 위징은 원래 태종이 그 손으로 죽인 형 이건성의 사람이었다. 현무문의 변을 거친 뒤 그를 받아들여 세상을 다스리는데 함께 했다. 여러 현명한 신하 가운데 위징은 살아생전 태종에게 신랄하고 통렬한 충언과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 태종의 빛나는 치세는 타고난 절세의 기량과 수권 과정에서 흘린 형제의 피에 대한 참회의 기억, 2대만에 멸망하고 만 직전 왕조인 수나라 등이 반면교사였다. 그에 더해 위징과 같은 여러 현신들의 충언, 직언이 뒷받침되어 가능했다는 게 역사가들의 일관된 평가다. 뛰어난 군주 현신들로 성세를 구가한 나라와 달리 아둔한 군주, 요사한 간신들이 설쳐 나라를 요절낸 역사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진 왕조다. 그 애비 시황제가 세운 공전절후의 업적이 무색하게 못된 자식 호해(2세 황제)는 단명에 그친 왕조를 가장 비참한 상태로 끝장내고 말았다. 호해의 무능, 아둔, 혼암은 희대의 간신 조고의 간언, 요언과 쌍벽을 이루며 망국에 이르게 한 절대 요인이었다. 우리의 예는 조선의 여러 임금들 가운데 선조(1552~1608)가 떠오른다. 왕조 말의 고종과 함께 무능한 군주의 표상으로 회자된다. 서자로 방계출신으로 대통을 이었다는 선조의 자기 결함적 열패감에도 당대에는 조선 성리학의 사표(師表)라 할 퇴계와 율곡, 백인걸, 유성룡, 이순신, 권율 등 현신과 용장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국토가 유린당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극심한 참화를 겪게 한 7년간의 임진왜란에 대한 징후를 알아보지 못했다. 전란 중이나 전란 뒤 난국 수습에 보인 무능 등은 대부분 충언과 요언을 구분할 능력이 없었던 데서 비롯된다. 현대사에서도 이승만 전 대통령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일제 강점기 해외 독립운동에 의심의 눈길을 받는 그는 입지강화와 권력 유지를 위해 친일매판자본의 부활을 부추기거나 용인해주고 좌우 이념대립 및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는 데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6·25전쟁 당시 북한군 남하를 두려워 해 한강철교를 부수고 서울 시민들을 버려 둔 채 부산 등으로 피난을 갔던 일은 400여 년 전 선조의 몽진과 유사하다. 현재 구속기소된 두 전직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 불법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유지에 협력, 조력·부역한 이들의 경우 새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모두 한 국가의 리더가 역신들의 간언, 요언에 놀아나 몰락의 한 가운데로 빠져들어 국가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사례들이다. 이러한 사례들이 역사는 돌고 도는 거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고금을 관통하는 반면교사(反面敎師)다.

2018-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