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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실없는 가면논쟁

▲ 강희룡 서예가얼굴을 가려 변장을 하거나 방호하기 위해 쓰는 조형물을 가면이라 한다. 머리와 얼굴 또는 온몸을 가리는 경우도 있으나 단순히 면(面)이라고도 하며 한국 속언으로는 탈이라고 한다. 탈춤은 한 사람 이상의 연기자가 가면으로 얼굴이나 머리 전체를 가린 채 다른 인물이나 동물 등의 역할을 맡아 극적 장면을 연출하는 형태를 일컬으며 `탈놀이`라고도 한다. 이 놀이는 고대에는 유흥적 놀이로서의 성격보다 제례를 위한 가무로서의 성격이 보다 강했다.한국 탈춤은 대체로 삼국시대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며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과 같은 국가적 행사와 함께 고구려의 무악, 백제의 기악(伎), 신라의 처용무 등 규격화된 놀이문화가 우리 정서에 맞게 고쳐진 것을 그 기원으로 하고 있다.가면이 갖는 은폐성, 상징성, 표현성에 힘입어 일반 서민들의 정서가 지배층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데 널리 활용되었다. 탈춤은 공연자와 관람자 사이의 경계가 희미한 공연에서 공격의 대상은 파계승이나 몰락한 양반, 부패한 지배층 등이었으며 이들의 부조리함을 폭로함으로써 이들이 내세우는 도덕의 추악함과 특정 계층의 비리를 공격하고 극적 갈등을 더해 관람자의 흥미를 유발했다.지구촌 겨울 스포츠의 백미인 제 23회 동계올림픽이 지금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고 있다. 이달 9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이번 올림픽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북으로 나뉜 민족분단의 슬픔을 안고 있는 한반도에서 열리는 관계로 진보적인 성격을 띤 현 정부에서는 논란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추진해 출전하고 있으며, 북한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 응원단 등 500여명이 방남해 각 분야에서 공연과 시범과 응원을 하고 있다.남북 화해분위기 조성을 목적으로 한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은 일부 대한민국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박탈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북한 여성응원단이 지난 10일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첫 경기에서 젊은 남성 얼굴의 가면을 쓰고 응원한 데 대해 `김일성 가면`이 아니냐는 억측에서 문제가 제기됐다.한 언론사가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라는 제목을 달아 사진 기사를 내보내면서 촉발된 이 논란은 통일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해명한 데 이어 해당 언론사도 이날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며 공식 사과함에 따라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으며 `김일성 젊은 모습과 똑같으며 경기장에서 체제 선전을 한 것`이라는 의견과, `북에서 젊은이가 생각하는 대표 미남 모습`이라며, 신과 같은 김일성 얼굴에 눈구멍을 뚫고 응원도구로 사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이 팽팽하였다.일부 야당 의원들은 `한국 대통령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북한 응원단이 대놓고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겠느냐`며 민생은 팽개치고 치졸한 정쟁 속으로 끌어 들이고 있으나, 이 가면이 만약에 진짜 김일성 얼굴로 이를 통해 체제를 선전 또는 선동하려고 했다면 큰 오산이다. 이유는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념에 그렇게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가면에는 나라를 기울게 하는 진짜 무서운 가면이 있다. 이 가면은 겉으로는 가식적인 웃음과 친절로 국민을 내세우고, 속으로는 개인의 영욕으로 부패한 위정자들이 쓰고 있는 가면이다. 이 가면을 쓰고 있는 위선자들을 국민들이 찾아내어 퇴출시키지 못하면 참 민주주의와 선진국가로의 발전은 요원한 것이다.

2018-02-22

망국을 재촉하는 공직자들의 일탈행위

▲ 강희룡 서예가사계 김장생의 후손으로 영조 때 대사간을 지낸 석당 김상정(1722~1788)이 지은 `석담유고`에 `치재설`이 실려 있다. 즉 사람으로 태어나서 잘못된 행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석당 선생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시초를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하였다. 맹자가 `사람으로서 크게 중요한 일은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과 `부끄러운 마음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 말을 부연해서 설명한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누가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을 수 있겠는가. 잠시나마 스스로의 행실을 되돌아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다잡아 행실을 고쳐나가다 보면 부끄러운 행실을 조금이나마 줄여서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신의 행실을 되돌아보고 후회하면서 잠시나마 마음을 다잡는다는 것이다.숙종 때의 대학자였던 백호 윤휴(1617~1680)가 지은 `백록동학규` 라는 시 가운데 독행(獨行)에 대해서 읊은 시가 있다. 이 시 가운데 나오는 `신독(愼獨)`이란 말은 중용에 “군자는 혼자 있을 때를 삼가야 한다.` 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혼자 있어도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아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이 시의 내용은 학문이란 사람 되길 배우며, 이 학문을 실천하지 못하며, 말만 능히 잘하는 사람을 광대라고 했다.서구와 한국 고유의 가치가 혼재된 민주주의라는 틀은 한국적 정치 갈등을 여러 가지 형태로 유발시키고 있다. 한국에서 권위주의 정치문화가 생성된 이유로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가부장적 남자지배사상과 관료적 엘리트주의를 들 수 있으며, 관료적 권위에 대한 탐욕을 바탕으로 관의 지배와 민의 복종사상, 그리고 자본주의제도의 도입에 따른 금전만능과 배금주의사상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권위주의 정치문화 속에 상명하복을 바탕으로 그 부작용이 사회 구석구석을 병들게 한다. 그 한 예가 지금의 적폐청산으로 들춰지고 있는 여러 가지 범죄행위이다.전방위적으로 부패한 공직자들의 행태는 국민들 눈에는 그 추악함이 상식적인 선을 넘고 있다. 범죄의 수사와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 청구, 또는 재판의 집행 지휘 등 이에 수반하는 검찰행정의 사무를 처리하여 이 사회에 법과 정의를 세워 청렴을 구현해야 하는 엘리트 집단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고위 간부의 죄의식 없이 행해진 파렴치한 성범죄와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사건에 정치권과 검찰수뇌부의 부당한 외압을 받았다고 한 담당검사의 폭로를 보고 국민들은 허탈한 상태다. 어디 이 뿐인가. 각 은행과 공기업 채용비리는 `이게 나라냐.`할 정도다.역사는 지독하게도 반복된다. 그래서 역사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다. 식민사관의 폐해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조선조 중후기에 있었던 당쟁의 폐해와 관료들의 부패를 잘 알고 있고, 또 그로 인해서 조선의 패망이 앞당겨졌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지도자의 오만과 자존성은 그에 대한 신뢰와 복종적 태도 등의 행태를 보인다. 이에 편승한 공직자들의 충신이란 거짓가면 뒤에서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나라의 운명을 농단하며 어지럽히는 모습이 지난 조선의 패망과 꼭 닮았다.입버릇처럼 과거를 거울로 삼자고 하는 말은 공염불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우리 사회의 공직자들은 특히 고위직일수록 남들이 보지도 않고, 듣지 못하는 곳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거울 앞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 권력과 부를 좇는 공직자들의 위선적인 일탈행위는 결국 한 국가를 망국의 지름길로 인도할 뿐이다.

2018-02-09

잊어야 할 일과 잊지 말아야 할 일

▲ 강희룡 서예가어린이는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 성인과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3세 이전의 경험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렇다고 3세 이전의 경험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는 단편적인 사건은 잊혀 지지만 그때의 감정은 무의식에 남기 때문이다. 학대받은 어린아이가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후유증을 앓는 이유가 이것이다. 어린아이는 사건을 잊는 대신 감정을 기억한다. 성인은 이와 반대로 사건을 기억하는 대신 감정을 망각한다. 큰 슬픔이나 분노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심히 괴로워하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남는 것은 감정의 흥분이 소거된 사건 그 자체에 대한 기억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1681~1763) 선생은 `성호전집, 습망재기`에서 망각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습망`은 남송의 유학자 사양좌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연평문답`에 따르면, 만년에 불교에 심취한 사양좌는 망각을 익힘으로써(習忘) 양생(養生)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하지만 유학자 정호의 생각은 달랐다. 양생을 위해서라면 괜찮지만 도를 배우는 데는 해가 된다는 것이다. 정호가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이유는 사양좌의 습망이 일체의 생각을 제거해야 한다는 불교의 교리에 가깝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라.`는 맹자의 말처럼 본디 유학은 망각에 우호적이지 않았다.하지만 이익은 `그릇에 일정한 용량이 있는 것처럼 마음에도 일정한 용량이 있다. 열 되 용량의 그릇으로 한없이 쌓인 곡식의 양을 헤아릴 수 있는 이유는 그릇을 가득 채웠다가 깨끗이 비우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때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비우는 것이다. 깨끗이 비우지 않으면 그릇은 곧 가득 차서 헤아리는 기능을 상실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망각으로 번뇌를 극복함으로 전인의 경지에 이른다고 보았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는 잊고 오로지 현재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이익의 논리다. 다만 조건이 있다. 성품의 안정과 성실의 보존이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사람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난 사건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기억이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을 가능케 한다. 사람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은 나머지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지도자의 우매함과 위정자들의 정쟁으로 나라를 침탈당하고 민족이 도륙당한 지난날의 어두운 역사요 눈만 뜨면 터지는 지금의 대형 참사이다.국민의 의식구조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안전불감증은 사고를 야기하고 작은 사고를 대형재해로 키우는 원인이 된다. 2014년 세월호의 비극 이후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해양조난사고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해상조난사고가 예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2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밀양 세종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39명이 사망하는 등 19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런 대형 참사에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국회도 한몫을 한다. 안전 법률을 제정하지 않거나 법안이 국회서 계류 중으로 낮잠 자는 동안 벌어진 일이다. 이는 물질을 앞세워 생명과 안전을 경시해 온 천민자본주의와 후진적 정치행태의 결과인 것이다. 안전의식을 체질화하고 체계화하여 우리 사회가 다시는 그런 어이없는 재앙을 겪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훌륭한 안전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있더라도 사람들이 이를 지나치게 믿고 긴장을 풀고 방심한다면 결국 사고가 나게 된다. 국민 모두가 이런 참사를 영원한 교훈으로 삼아 많은 부분을 함께 바꿔나가야 한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2018-02-02

민주적인 조선의 대간제도

▲ 강희룡 서예가조선은 고려의 대간(臺諫)제도를 계승하면서 대간의 위상을 훨씬 강화시켰다. 조선의 대간은 여론을 근거로 왕의 잘못이 있으면 목숨을 걸고 직언을 했다. 한 번 해서 듣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계속했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스스로 사직했다. 대간의 탄핵을 받은 정치 관료들은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일단은 사직서를 내야 할 만큼 그 위력은 대단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삼공육공을 두어 여러 관청을 통솔하게는 했지만, 대간을 중요하게 여겨 거기에 많은 권한을 주었다. 그리하여 풍문(風聞: 직접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정보를 가지고 공격하는 것)과 피혐(避嫌: 공격받은 사람이 혐의를 피해 사표를 내는 것), 그리고 처치(處置: 공격한 언론기관이 아닌 다른 언론기관에서 사실을 조사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 등의 법규를 두어 오로지 의논으로 정치를 하도록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의 문물제도를 설계하고 정비한 장본인으로서 독특한 군주관과 신하관을 피력했다. 군주의 독단적인 정치를 반대하며 군주는 최종적인 결재권만을 가지고 정책결정의 주도권은 재상에게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군주의 독단을 견제하는 제동장치와 재상에 대한 탄핵장치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대간이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대간은 천하제일의 인물만이 될 수 있다고 단언했으며, 당대 최고의 학문적, 정치적 식견을 갖춘 사람이면서 강개한 성격의 소유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대간이 군주를 가장 집중적으로 간쟁했던 것은 국왕이 자신의 직무를 게을리 했을 때다. 다음으로 인사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을 때이며, 언로(言路)가 막혔을 때, 경연(국정전반에 대한 토론)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는 것이 간쟁의 주요 내용이었다. 대간을 군주의 이목지관(耳目之官)이라고 한 것은 대간을 통해 세상사를 알아야만 제대로 통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간에게는 관리를 임용할 때 반드시 대간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권한이 주어져 있었다. 국왕이 어떤 관리를 임명하고자 해도 대간이 임명장에 서명하지 않으면 그 관리는 관직에 취임할 수 없었다.조선조 고위 정치 관료로는 한명회가 성종치세기간에 무려 107회에 걸쳐 대간으로부터 탄핵을 당했다. 한명회는 세조집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고 예종과 성종에게 두 딸을 왕비로 들여 왕실과 혼인관계를 이중으로 맺음으로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자신의 호화별장인 압구정에 중국사신 정동이 온다고 성종에게 궁궐에서만 쓰는 장막을 쳐달라고 요청하는 사건으로 대간으로부터 탄핵되고 성종이 한명회를 파직하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한명회의 세도가 한풀 꺾인 탄핵사건이었다.조선의 대간제도는 왕조의 흥망과 운명을 같이 했다. 제대로 운영될 때에는 태평성대를 구가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부터 점차 망국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갔다. 영조 이후 이조전랑의 인사권을 이조판서에게로 넘긴 후부터 대간의 언론권이 제약되면서 사실상 조선의 정치구도는 바뀌게 된다. 대신들 손으로 넘어간 인사권은 당연히 대신들을 신랄하게 탄핵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결국 대간의 유명무실화는 국가권력이 한 가문에 집중되는 세도정치를 낳았으며 세도정치로 인해 조선이 망하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탄핵되어 법정에 서고 적폐청산이라는 간판 아래 전전 대통령까지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정권의 위정자들이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과 함께 생각하는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듣기 싫은 소리엔 아예 귀를 막아 버리고 생각이 다르면 매도하며, 입맛에 맞는 패거리들의 합창소리만 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국민들로부터 견제 받지 않으려는 어떠한 권력도 적폐청산이라는 도마 위에 오르는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018-01-26

가상화폐와 2030세대

▲ 강희룡 서예가비트코인은 지폐나 동전과 달리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온라인 가상화폐(디지털 통화)다. 젊은 세대가 노동의 가치를 버리고 한탕주의에 빠졌다. 2030 젊은 세대의 비트코인 열풍에 일부에서는 걱정과 탄식이 터져 나온다. 정부는 강력한 규제로 거래소를 폐쇄한다고 발표했으나 반대를 원하는 청와대 청원이 20만 명이 넘었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 화폐에 빠져드는 현상이 그만큼 강력하다고 보겠다. 이런 투기현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지난달 27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청원이 올라왔다. `저는 문재인 정부를 뽑을 때 드디어 사람답게 살 수 있겠구나, 가슴이 부풀었지만 여전히 겨울 되면 보일러 비용 아끼려 전기장판 틀어야 되고 여름 되면 에어컨 비용 아까워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부디 대한민국에서 처음 가져본 행복과 꿈을 빼앗지 말아주세요.` 암호화폐에 대해 규제안을 내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청원이다.이러한 현상에 빠진 2030세대에게 물어보면 `노동으로 언제 돈 버나` `비트코인이 나를 사표 내게 만들어줄 것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로 제 꿈은 건물주가 되는 거다. 비트코인은, 나를 건물주로 올려줄 꿈의 사다리다. 한방만 터지면 미련 없이 퇴사 인증하겠다.`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연봉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는다. 이렇게 투자하는 이유는 지금 연봉으로는 뼈 빠지게 일해도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확천금을 기다리고 모든 걸 걸고 투자하는 것이다.` `코인 판만큼 공정한 게 어디 있나. 여기선 아버지가 누구이며 배경이 누군지 안 물어.` 젊은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코인판(가상화폐 시장)만큼 공정한 게 어디 있느냐고 주장한다. 신분제가 공고한 사회에서 투자로 버는 가상화폐 시장이 오히려 공정하다는 것이다.한국 사회는 지난 한 세기동안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되어 미군정, 6·25 동란, 5·16 군사정변을 겪으며 초고속 경제성장 등 세계에서 가장 급변한 나라로 꼽힌다. 특히 가치규범의 급변이라는 측면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역사와 전통이 짓밟히는 한편 나라 패망의 요인을 조선의 봉건국가 탓으로 돌리면서 우리 스스로 역사와 전통을 짓밟았다. 또한 초고속 경제성장에 따른 득은 1%의 그들 몫이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의 대가는 국민의 몫이었다. 이 결과가 사회 양극화인 것이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며 부익부빈익빈 현상으로 고착화되면서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기득권층을 제외하고는 서민들은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 `대물림가난` 이다.천민자본과 권력의 갑질에 매질당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오늘날 젊은이들은 `가난의 대물림`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는 그 의식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코인으로 인해 부의 재편이 이뤄질 수 있다는 마지막 기회라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상화폐 한 종류인 이더리움 창시자 사진을 걸어놓고 신처럼 떠받드는 모습의 사진도 있다. `내 삶에 구원을 줬다.`는 의미다. 5천만 원은 있어도 흙수저요, 몽땅 다 잃어도 흙수저인 것이다.지금의 한국 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아예 날 수 없는 구조로 고착화됐다. 직장에 들어가 저축을 열심히 해도 금수저가 될 수는 없다. 즉 아버지의 가난이 내게로, 그리고 내 자식들에게 대물림 되는 게 현실이다. 자살률 1위, 최악의 부정·부패국가, 공권력에 대한 최고의 불신 등을 비롯해 삶의 질이 전쟁 중인 나라보다도 못하게 된 것이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상징적이다.정부에서는 국민소득 3만 불을 운운하나 선진국 기준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고 나라의 경제규모만 크면 선진국인 줄 아나. 이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물신주의와 출세주의만을 조장시킨다. 한국의 사회신뢰도는 OECD 최하위권이다. 따라서 국민소득이야말로 서민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인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젊은 세대의 지금의 가상화폐 돌풍이 우리 사회를 잘 투영하고 있다고 보겠다.

2018-01-19

진대법의 교훈

▲ 강희룡 서예가조선 전기의 문신인 최보(1454~1504)는 `금남집, 동국통감론`에서 고구려 제9대 임금인 고국천왕이 시행한 진대법(賑貸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제 고구려의 왕이 굶주린 백성들을 보고 그 의식을 지급하고, 나아가 온 나라의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염려해 마침내 진대법을 시행했으니 그는 이른바 백성을 구휼하는 정치에 대해 아는 자일 것이다.`이 진대법이란 보릿고개 계절에 곡식을 빌려줬다가 가을에 추수한 뒤에 돌려받는 고대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도였다. 양식이 없어 굶어 죽거나 몸을 팔아 남의 종으로 전락하는 일을 막는 효과도 컸다. 그래서 그는 고국천왕이 정치의 요체를 잘 안다고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반면 제나라 환공이 외유할 때, 한 노인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 옷과 음식을 내려줬는데, 노인은 온 나라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의식을 내려주라고 부탁하자 환공은 `과인의 창고 정도로 어찌 온 나라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두루 혜택을 베풀겠는가!`라고 말한 일화에 대해 `이는 어진 마음은 있지만 정치를 하는 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다`라고 일축했다. 또한 춘추시대의 명재상이었던 자산이 정나라 재상의 신분이면서 그 수레와 가마를 가지고 진수(溱水)와 유수(洧水)에서 백성들을 건네줬던 일화에 대해 `이는 작은 은혜를 행했지만 정치를 하는 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다`라고 낮게 평했다.최보 선생이 강조하는 내용은 임금이나 재상이 반드시 사람마다 물건을 내려주고 사람마다 건네주느라 날이 부족할 정도인데도, 백성들에게 미치는 은혜는 도리어 두루 고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헐벗고 굶주린 노인에게 옷과 음식을 내려준 제나라 환공이나 겨울철에 자신의 수레를 동원해 백성들을 건네준 정자산의 행위에 대해서는 진정한 정치가 아니라고 보았다. 결정적인 문제는 그들 정도의 신분이라면 한두 명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그런 방식보다는 온 백성들의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라는 것이다.맹자에 나오는 고사로 양나라 혜왕이 희생으로 쓰일 소가 벌벌 떨며 끌려가는 것을 보고는 불쌍한 마음에 양으로 대체하라고 명했다. 얼핏 보면 참으로 어진 마음이다. 그러나 대신 죽어간 양은 무슨 죄인가. 제물로 쓰이는 동물들이 불쌍하다면 희생을 바치는 제도 자체를 없애야 했던 것이다.리더나 위정자가 눈앞의 곤궁함을 보고 자잘하게 은혜를 베풀기 시작하면 그로 인해 생기는 폐단이 만만치 않다. 한정된 재원 속에서 당장 한쪽에 이익을 주면, 다른 쪽에서는 그만큼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어머니가 우산장수 아들이 불쌍하다고 비 오기를 기도하면 소금장수 아들은 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이런 현상은 인기와 여론에 민감한 오늘날의 정치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갑을관계, 비정규직 문제, 저출산 대책, 안전 불감증으로 일어나는 각종 재해 등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이슈만 터지면 여야 없이 우르르 몰려들어 타 정당을 비방하며 대안 없이 문제점만 지적하며 책임을 떠넘긴다. 특히 약자를 배려한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국가 전체적인 차원의 미래지향적 접근보다는 표를 의식해 지엽적인 정책을 내놓는 경우도 다반사다. 인기 위주의 졸속적인 일회성 대책은 장기적으로 볼 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리더나 위정자라면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사고를 가지고 정책을 수립하거나 대책을 세우면 대신 피해를 입는 다른 쪽의 사람이나 조직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무술년의 새해가 밝았다. 후진적인 막장정치가 일소되고 국민 모두가 바라는 올바른 정치행위가 이뤄져 국태민안의 한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8-01-05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

▲ 강희룡 서예가교수신문은 한국 교수사회를 대변할 신문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창간을 논의해 한국 지성의 정론지를 표방하며 1992년 4월에 창간됐다. 이 신문은 2001년부터 연말이면 우리나라의 한 해 동안에 일어난 사회상을 특징짓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한 사례로는 2008년에 선정된 호질기의(護疾忌醫)다. 중국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가 통서(通書)에서 마치 병을 숨기듯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꺼리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했다. 당시 교수신문은 `국민들의 비판과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정치권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선정 이유를 전하면서 정치권이 미국 쇠고기 사태와 촛불시위, 글로벌 경기침체의 대응방식이 미흡했다고 비판했다.2009년 중국과 미국의 전략경제 대화 중에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전국시대 고전의 하나인 `맹자, 진심(盡心)하`의 `산길의 오솔길도 사람들이 자주 다니면 큰길이 되지만, 뜸하게 이용하지 않으면 풀만 우거진다`라는 대목을 인용해 두 나라 사이의 지속적인 협력과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중국인이 즐겨 쓰는 관용구인 `동주공제(한 배를 타고 같이 강을 건넌다)`와 `봉산개도, 우수가교(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를 인용해 양국의 협력을 강조했다. 뒤의 것은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우리는 주로 정치판에서 심심찮게 토사구팽 등과 같은 비교적 잘 알려진 중국의 사자성어를 인용하곤 한다. 최근에는 경영인들도 함축적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유용한 사자성어를 즐겨 쓰고 있다. 몇 년 전 한 대기업의 총수는 주력사업의 중국 진출을 독려하기 위해 `파부침주`라는 `사기, 항우본기`에 나오는 상당히 극적인 사자성어를 언급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사자성어는 대부분이 송나라 이전으로 춘추전국시대 550여 년을 거치면서 가장 많이 형성된 걸로 본다.이러한 사자성어는 한자문화권의 특별한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다의어인 한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 글자의 뜻이 다양하게 축적되는 것과 동시에 의미도 다양하게 변해 하나의 문화코드로 정착했다. 국가 간의 회의나 비즈니스 협상에서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코드인 사자성어를 즐겨 인용하는 것도 거기에 담긴 심오한 의미에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태어 전달함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고도의 심리전술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지난해에는 국정농단사건이 발생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가결되자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니 물의 힘으로 배를 띄우지만 물이 화나면 배를 뒤집는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선정됐다. 올해 선정된 사자성어는 수나라의 불교 삼론종(三論宗)을 집대성한 가상대사 길장(549~623)의 저서인 `삼론현의`에 실려 있는 교리인 파사현정(破邪顯正)이다.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더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패와 비리로 썩은 사회 곳곳의 환부를 도려낼 힘과 용기는 결국 시민들의 촛불에서 나왔으니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져 올바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 파사현정이란 사자성어는 2012년에도 대통령을 비롯해 가진 자들의 사익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익실현과 정의사회를 구현하도록 하는 바람으로 선정됐었다. 당시 MB정권에 대한 실망감과 새로 들어설 박근혜정부의 출범에 대한 기대감과 여망에서 선정되었지만, 되레 박근혜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바뀌어 다시 출현한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단어가 다시 선정되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게 국민들 희망이다.

2017-12-22

정치판의 차도살인

▲ 강희룡 서예가손자병법은 춘추시대 제나라 낙안 사람으로 손무(생졸미상)라는 한 학자가 그가 살던 시대의 사상적 성격이 깃들어있다면, 병법 36계는 작자미상으로 당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은 `주역, 손괘`의 손익영허(損益盈虛)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손은 음 익은 양에 해당한다. 손과 익은 음양이 그렇듯이 서로 덜어내면서 더해주는 관계에 있다. 상대적인 개념인 까닭에 익과 손은 사물의 안팎을 총체적으로 고찰해야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병법에 적용한 것이 바로 36계의 제3계인 차도살인 계책이다.이 차도살인은 친구를 끌어들여 적을 제거한다는 뜻으로 달리 풀이한 것이 인우살적(引友殺敵)이다. 요체는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는 부자출력(不自出力)에 있다. 차도살인 계책은 기본적으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기 위한 계책이다. 고사로는 명나라 왕정눌의 희곡 삼축기, 조함의 고사에서 비롯됐다. 복송 인종 때 상국 여이간과 하송, 한독 등이 결탁해 사욕을 채우자, 범중엄이 개혁을 주장하였고 이들은 범중엄을 제거하고자 했다. 1038년 북송의 속국인 서하(西夏)의 원호가 황실에서 하사한 조씨 성을 버리고 탕구트족의 고유 성씨로 바꾸며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에 이들은 문약한 서생인 범중엄에게 병사를 주어 서하의 반란을 진압하도록 함으로써 서하인의 손을 빌려 그를 제거하고자 한 사례이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왕윤이 여포의 손을 빌려 동탁을 제거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즉 자신의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의 칼을 빌려 목적을 달성하는 계책인 것이다.차도살인은 적을 처단해도 아군의 피해는 입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컨대 적성세력 중 한 국가와 몰래 강화하고 그 조건으로 지금까지 그 나라가 동맹을 맺고 있던 다른 적국의 배후를 기습하게 하는 것도 차도살인에 해당한다. 1600년 10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한 동군에 회유된 서군의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전투 중에 서군을 배반한 것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기도 했다.정나라 장공이 회나라를 치려 할 때, 회나라 신하들 가운데 용맹하고 우수한 장수들에게 벼슬과 토지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날조된 서약서를 회나라 수도의 성문 밖 제단 밑에 매장하고 닭의 피를 뿌려 정말 이뤄진 것처럼 공작해 회나라 군주는 이를 발견하고 서약서에 이름이 올라있는 명장들을 죽임으로 회나라를 쳐 멸망시킨 사례와, 219년 촉의 관우가 위나라의 번성을 공격해 조조가 곤경에 빠지고 지원군도 관우에게 격퇴되자, 조조는 천도를 검토할 정도로 궁지에 빠졌다. 이때 사마의의 제안으로 조조는 오나라의 손권과 동맹으로 인해 관우를 격퇴하고 형주 공방전에서 명장 관우가 아들 관평과 함께 살해된 사례이다.얼마 전 제 1야당 대표는 `우리 의원들 차도살인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최근 이뤄지고 있는 친박계 의원들의 검찰수사에 대한 부담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즉 자신이 현 정부의 검찰을 통해 친박계 청산에 나서고 있는 듯한 형국으로 일각의 비난이 부담스럽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허나 검찰에 드러난 비리나 부패가 사실이면 차도살인이라 볼 수 없다. 부패한 정치인들은 사실에 근거해 누구나 예외 없이 법의 심판대에 올려 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그들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하지 않았다.지금 진행되는 또 하나의 사례는 10년 전에 일어난 일로 `DJ 비자금 제보 사건`이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곧 밝혀지겠지만, 10년이 넘은 이 사건이 현 시점에서 불거진 것을 보면 제2, 제3 야당 간의 통합과 관련된 느낌을 받는다. 반통합파 누군가에 의해서 이러한 정보가 재생산되고 호남의 정신적 정치지주인 DJ를 끌고 옴으로서 지역적 결속력을 확고히 하는 한편 통합찬성파의 지도부를 궤멸시키려는 음해공작이라면 이 역시 정치판에서의 전형적인 차도살인인 것이다.

2017-12-15

공부의 양면성

▲ 강희룡 서예가공부를 한다는 것은 대개 `힘들고 어렵다`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공부의 길은 무척 고단하다. 고등학생만이 아니라 부모들 욕심은 초등학생에서부터 오직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아이들이 싫건 좋건 애를 쓴다. 학생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관여해 그야말로 온 집안이 `힘듦`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것이다.그러면 이렇게 총력을 기울여 좋은 대학을 들어가게 되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대학생들은 입학할 때부터, 더 나은 조건의 안정적인 직장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듯 공부를 한다. 그렇게 공부를 하여 사회에 진출하고서도 그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직장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생존하기 위하여 또는 남보다 앞서기 위해 자격증을 따든지, 외국어를 더 공부하든지 등 공부의 쳇바퀴 속에서 자신의 여가 시간까지 쏟아야 한다.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공부광풍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원래 공부란 이렇게 힘든 것일까? 이 물음에 떠오르는 논어의 한 구절이 있다.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우리들은 이렇게 힘든 공부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데, 공자는 배우고 익히는 공부는 즐거움이라고 정리했다. 왜 공자의 공부는 즐거웠고 우리가 하는 공부는 이렇게 힘든 것일까. 공자는 15살에 공부에 일평생을 바칠 것을 마음으로 다짐했다.(十有五志于學) 그리고 15년이 지난 뒤 30세에 자신이 공부한 성과를 가리켜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적 관점, 즉 세계관을 확립하였다(三十而立)`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10년의 공부를 더한 결과 공자는 `세상사에 한 점 의심이 없는 경지에 도달했고(四十不惑)` 여기에서 10년의 적공(積功)을 더하고서는 마침내 `우주의 이치를 알 게 되는 경지(五十知天命)`를 성취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차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즉, 공자의 공부는 오늘날의 공부와 그 방향을 달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의 공부가 사물의 분석과 지식의 축적에 중심을 맞추고 있다면, 공자의 공부는 자신의 내면으로 그 중심이 쏠려 있다. 다시 말해 현대의 공부가 지식축적을 바탕으로 한 외적성취를 추구한다면 공자의 공부는 자아의 성찰을 통한 내적성취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고전에서는 전자를 위인지학이라 하며, 후자를 위기지학이라고 한다. 자아의 정신적 성취가 위기지학의 목표라면 앞서 공자가 공부한 학문의 방향은 위기지학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15세에 학문을 시작한 이래, 내면의 자아를 튼실하게 세워 마침내 50세에 세계가 운행되는 이치를 알게 되는 경지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공자의 위기지학은 60세에 이르러 자기 내면으로 회귀해 `타인의 칭찬과 비방에 초연한 경지, 즉 세상사의 시비를 초월한 경계인 `이순(耳順)`에 이르게 된다.이 경지가 어찌 우주의 이치를 아는 것보다 더 우월하냐고 의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근세 한국불교의 위대한 선승이 물욕, 색욕, 수면욕 등 인간의 욕망과 오감을 자극하는 번뇌를 모두 극복했지만 끝내 남는 것이 명예욕이라고 술회한 것을 보면, 어쩌면 세상의 시비에 초연한 이순의 경지는 인간으로서 진정 도달하기 어려운 경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위기지학의 공부는 그가 70세에 도달해 `욕망과 이성의 불협화음이 없는 평화(不踰矩)`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의 공부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면, 공자의 공부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수단으로서의 공부는 결코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무한한 인간의 욕망이 종착역을 설정할 수 없기에 목적지 없이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피로한 심신상태가 바로 위인지학으로서 공부를 하는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공부는 괴롭고 공자의 공부는 즐거운 이유이다.

2017-12-08

황당무계한 정치인의 독설

▲ 강희룡 서예가여말선초의 문신인 이첨(1345~1405)은 우왕 1년(1375) 조정의 전권을 쥐고 전횡을 일삼던 권세가 이인임을 탄핵하다 겨우 목숨을 건져 변방 해안가에서 10년이나 귀양살이를 했다. 유배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설에 오를까 염려한 그는 자신의 집을 `눌헌(訥軒)`이라 이름 짓고 신중함을 강조하는 `명`을 지은 것으로 보아 젊은 혈기에 권력자에 맞섰던 자신의 경솔한 언행을 후회하고 자숙했던 것 같다.동문선(東文選)에 전해지는 눌헌명의 구절은 `말을 삼가기를 옥을 손에 쥐듯, 가득찬 물그릇을 들듯이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즉 혼란한 세상에서도 해야 할 말은 하되 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 역시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동은 준엄하게 하되 말은 낮춰서 해야 한다`라고 가르치고 있다.`질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격언도 있듯 사람의 처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다. 그리고 말해야 할 것과 침묵해야 할 것을 알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가 구설과 곤경에 처해 화를 입은 역대의 사례는 굳이 더 이상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국가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나 공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그렇다고 `학이 날 적에는 날개가 검고 서 있으면 꼬리가 검다`고 대답하는 형식은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고 하는 주장은 보신(保身)의 대책으로서는 흠잡을 데 없지만, 올바른 공직자의 처신으로서는 부족한 것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벙어리일 뿐이며 양편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첨에 가깝기 때문이다.윤기(1741~1826) 역시 그의 `무명자집, 자식들을 깨우치고 스스로도 반성하며`라는 서문에서 `사람에게 있어 말은 물이나 불과 같다. 사람은 물과 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수재나 화재를 당하면 참혹하기 그지없으니 조심하여 사용해야 폐해가 없다. 입은 화를 부르고, 행동은 흔단을 여니, 명심하고 명심해, 경계하고 조심하라`고 말조심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지난 11월 15일 규모 5.4의 강진이 포항에서 발생했다. 이 천재지변으로 1천여 명이 넘는 흥해 지역 주민들이 졸지에 집을 잃고 오갈 데 없는 이재민으로 전락해 대피소에서 여진의 공포와 초겨울 추위에 떨고 있다. 이 초유의 재해를 두고 제1야당 최고위원이라는 여성 정치인이 `현 정부에 하늘이 주는 경고이자 천심`이라고 막말을 넘어 독설을 쏟아냈다. 야당의 입장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 소재로 활용하려는 정략적 발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진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맞은 상황에서 함부로 내뱉은 독설은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재민들과 포항시민들의 가슴을 두 번 찌르는 비수가 되었다.정치인의 말은 신중해야 한다. 불필요한 오해를 빚을 가능성이 있는 말은 삼가야 하며 본인이 스스로 내뱉은 말에는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긴 세월 영호남이라는, 동서로 갈린 기형적인 한국의 정치지형은 각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100% 당선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았다. 이는 곧 수준미달과 후안무치의 정치인을 배출하게 되어 온갖 비리와 부패의 중심에서 정치판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으며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전직이 하늘을 팔아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직업인 무속인 출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에 몸담고 있는 공인으로서 이런 비과학적이며 비논리적인 독설을 스스럼없이 내뱉고, 자기 자신의 부끄러움을 돌아볼 줄 모르는 정치인은 이제 국민들이 심판하여 퇴출시켜야 할 때이다. 유권자들이 위정의 탈을 쓴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이 설쳐대며 내뱉는 기가 막힌 막말과 독설을 들으며 가슴을 칠 것이다.

2017-12-01

입시생에게 보내는 다산의 메시지

▲ 강희룡 서예가조선시대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는 반관(反觀)이라는 풍조가 유행하였다. 반관은 반관내성 또는 반관내조를 가리키는 단어로 즉 돌이켜 보고 안으로 살핀다는 뜻으로 유가에서는 사물을 대하는 수양법에, 불가에서는 좌선하는 방법에 쓰는 말이다. 속박과 규범을 싫어하는 젊은이들은 반관의 뜻을 구실로 삼아 외모 수식하는 것을 가식이라고 지탄하고 마침내 기본적인 예의범절까지 무시하면서 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많았다.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먼저 외모부터 수습해야 비로소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라고 교훈을 내리고 있다. 이 내용은 다산 선생이 강진의 유배지에서 생활할 때 유배지로 20세를 갓 넘긴 장남 학연이 찾아왔는데 아들은 옷깃도 잘 여미지 않았고 앉을 때도 무릎을 잘 꿇지 못하는 등 외모나 행동거지가 단정하지 못하고 엄숙한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유달리 크게 염려하여 일깨워준 글이다.다산은 자신도 한때 이 병에 걸렸었다고 털어놓고 그 못된 병통이 아들에게 옮겨간 것이라고 자책한다. 그리고 이는 성인의 가르침을 모르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결론짓는다. 성인의 가르침이란 `논어, 태백`에서 증자가 `도를 행하는 데 있어 귀중히 여겨야 할 것이 세 가지이니, 용모를 움직일 때는 거칠고 태만한 태도를 멀리할 것이요, 안색을 바르게 할 때는 진실에 가깝게 할 것이며, 말을 할 때는 비루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멀리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가리킨다.다산은 `세상에 벌렁 드러눕고 삐딱한 자세로 서고 허튼소리를 하고 시선을 어지러이 두면서 엄정하게 마음을 보존할 수 있는 자는 없다`라고 거듭 경계한다. 그리고 아들들의 서재에 `삼사재`라 이름을 붙이도록 하였으니 삼사(三斯)는 바로 증자가 말한 세 가지 교훈을 일컬은 것이다. 조선 중기 학자인 정개청(1529~1590)도 `학문하는 자는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는 것이 제일 우선인데 그 요점은 의관을 바르게 하고 안색을 반듯하게 하는 것보다 절실함이 없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의복과 관대 등을 항상 깨끗이 하고 매우 단정히 하였다고 한다. 외면을 제어하는 것은 내면의 세계를 함양하기 위한 것이다. 마음이란 것은 순식간에 황당하고 허탄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마음을 잡아 안정시키려면 우선 외모를 견제하라는 것이 선인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인 것이다.오늘날의 청소년들의 세계는 대체로 두 길로 나뉜다. 하나는 공부나 시험처럼 부모나 교사 같은 기성세대가 짜놓은 세계와 다른 하나는 기성세대와 자신들을 구분 짓는 그들만의 세계이다. 전자는 결국 공부만 잘 하여 서울에 있는 특정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이고 후자는 많은 청소년들은 부모의 요구에 마지못해 책은 뒤적이지만 뒤로는 그들만의 유행과 언어를 쓰면서 청소년 시절의 문화를 일궈낸다.이 시기는 일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불완전하고 사회적 반항심이 강한 시절이다. 자아형성에 가장 큰 범위를 차지하는 시기이므로 인생에서 매우 소중하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대중매체가 왜곡되거나 잘못된 내용을 청소년들에게 제시하였을 때 가치관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사회가 청소년들에게 강조하는 올바른 가치와 대립되는 그릇된 것들을 청소년들에게 내면화시킴으로 건전한 인성발달 및 가치관에 많은 장애를 주기 때문이다.시대를 달리해도 청소년 시기는 상처도 많이 받고 주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 남을 배려하는 엄정함이 있어야 한다.11·15 포항지진으로 일주일 연기된 2018년도 대입 수능시험이 끝나면 한국 특유의 입시지옥에서 억눌려왔던 수험생들이 시험후 풀어진 감정을 분출할 때 환경조건 여하에 따라 인격형성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기에 어른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기이다.

2017-11-24

아동폭력과 의견설(義犬說)

▲ 강희룡 서예가조선 전기 문인인 이륙(1438~1498)은 그의 `청파집`에 `의견설(義犬說)`을 싣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여 들여다보면 선생이 집에서 기르던 흰 개가 주인의 뜻을 잘 알아차리며 다른 어미가 새끼를 낳고 죽자 그 새끼들을 데려다 힘들게 젖을 먹여가며 잘 키워 신통하다는 줄거리다. 가축인 개는 주인과 객을 분별할 줄 알고 어미와 새끼를 구별할 줄 알아 그 성품이 가장 지혜로우니 개 중에서도 의로운 녀석이라는 것이다. 지금 세상의 처들이 남편의 전실 자식을 남 보듯이 하고 심한 경우에는 원수처럼 여겨 사납게 물어뜯기를 짐승처럼 하니 이들이 이 의견의 소문을 듣는다면 어찌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의견설`을 짓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개가 지닌 도적지능과 인간이 지닌 도덕지능은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인간의 도덕지능은 스스로의 학습을 통해서 고도화되는 것에서 당연히 동물과의 차이점이 있다. 유아기에 몰랐던 도덕규범은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넓게는 사회집단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익히고 배우게 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천륜이나 인륜을 무너뜨리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인간 이하의 짓을 할 때는 대개 `짐승만도 못한` 또는 `개만도 못한`이라고 그 행위자체를 비하한다.진화생물학자인 마크 베코프 교수는 개나 늑대에게도 도적지능(Moral intelligence)이 있다고 연구에서 밝혔다. 이는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이 단체 규범을 따르지 않을 경우 도태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으며 `개는 사리분별력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친구를 사귀거나 원한을 품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사람처럼 당황하거나 웃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계모의 악행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전래동화인 콩쥐팥쥐와 고전소설 장화홍련전과 서양의 신데렐라와 백설공주가 있다. 이 외에도 동양고전인 `맹자`에도 순임금의 계모가 자신의 친아들과 공모하여 순임금을 죽이려고 수차례 기도했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모가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일은 늘 이야기의 단골 소재가 되어 왔던 것 같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유난히 계모에게만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는 원인은 지난 전통사회에서는 자녀 양육은 오직 여성 몫이며 남성은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로부터 큰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모계사회의 의식구조와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적 사고에 따른 편견이 배어 있다고 생각된다.요즘 우리 사회에는 정말로 `개만도 못한 사람`의 군상들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의 도덕지능은 우리가 가까이하는 개의 도적지능만큼도 안 되는 것이다. 이혼율이 나날이 높아지는 오늘날의 사회는 친부모의 손에서 자라지 못하고 조부모나 재혼한 부모에게서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계모 계부 구분 없이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현실이며 더 큰 문제는 들추어지지 않고 있는 학대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500년 전의 조선 초 이륙 선생의 `의로운 개`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당시 조선에도 계모가 의붓자식을 미워하는 일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미 잃은 새끼들을 제 새끼처럼 젖을 먹여 키운 의로운 개를 보고 그런 계모들이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기를 바라서 윗글을 짓는다고 밝혀 놓은 것을 보면 `개보다 못한 인간`들에게 주는 교훈은 크다고 보겠다.어른들의 폭력에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건이 터지면 임기응변식 방안을 내놓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검토를 통해 사회 안전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국민 공감대가 형성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어른들의 폭력과 학대에 더 이상 아이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지금부터라도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요즘은 뉴스를 대하기가 두렵다.

2017-11-10

구차한 변명을 국민 앞에 하지마라

▲ 강희룡 서예가구차(苟且)라는 용어는 원래 구저(苟苴)에서 파생된 말이다. 후세로 오면서 풀초를 빼고 구차로 전한다. 구저란 신발 바닥에 까는 지푸라기를 말하는 것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되는 의인을 살리기 위해 천리 길을 가는데 그의 신발이 닳아서 발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너무나 애처로워 볏짚을 모아 그의 신발에 깔아주었다. 이 일을 보고 구차하다는 말은 `모멸을 감수하고 적은 동정을 받는다`는 뜻으로 안영(BC.578년 ~ BC.500)의 `잡상편`에 기록돼 있다.구차함이란 버젓하지 않거나 번듯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무엇이 구차함인가`하는 용어에 대한 경계는 경전의 여러 곳에 나타나는데, 그중 순자는 `영욕`에서 `살기에 급급할 뿐 앞날의 재앙을 알지 못하는 구차한 자들은 자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고 한탄했다. 또한 고대의 일상생활에 적용되었던 규범들을 수록한 자료인 `예기`의 `곡례편`에는 `재물을 대하여 구차하게 얻으려고 하지 말며, 어려움을 당해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말라`고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 외에도 삶의 국면마다 이런 구차함에 대한 경계를 만나고 있다. 그래서 구차함을 없애야 하는 언행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대개의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구차함이 무엇에 대한 구차함이냐에 따라 구차함을 피하려는 노력은 우리의 삶에 서로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예기의 그 무엇에 대한 구차함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밖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의식주와 같은 것이다. 이것에 대해 자신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번듯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겉멋을 부리는 가식의 행위이다. 몇 평짜리 아파트가 나의 버젓함을 대표하는 것이 될 때 그 삶이 얼마나 초라하겠는가. 이런 것에 대해서라면 능력에 맞게 검소하게 생활하고 만족할 줄 알면 내면의 삶은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요구한 것 즉 자신을 단속하며 소신을 지켜나가는 것 등에 대해 소홀히 하고 쉽게 만족할수록 자기계발은 요원해진다. 구차한 타협으로 인한 만족은 결국 자신의 삶마저 황폐하게 만든다.조선후기 문신인 이시원(1789~1866) 선생은 `사기집, 구암설`에 `구차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면 구차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일이란 위에서 말한대로 그 구분이 확연하지 않은 때가 많다. 앞의 예기의 경계 중에 재물을 얻으려는 것에 대해 말하면 재물은 밖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재물을 얻겠다고 자신과 약속한 일이라면 그 일은 또 나 자신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구암설에서 어떤 일이 구차한지 않은지 논하기에 앞서 그 일을 마땅함의 저울에 올려보길 권하고 있는 것이다.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구차함이 당당하게 대중들 앞에서 나서기 시작했으며 소위 지성인이란 사람들의 화법 속에 부끄러움 없이 들어박혀 있다. 수동태를 써서 자신의 생각이 아니고 다수의 생각인 것처럼 만드는 생존방식을 택해왔던 과거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살기 위한 현재진행형이다. 대표적인 예로 현 정부가 공약했던 고위공직자 임명에 따른 본인과 직계가족의 인사청문회 5대 비리 관련자 원천배제는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되어 이미 우리 사회구조가 수용할 수 없는 가치관이 된 것이다. 지난 정부의 한때 문체부장관이었던 인사가 국회 위증혐의에 대해 증인선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무죄라고 주장하는 구차한 변명이나, 현재 국회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중소벤처기업장관 후보자의 미성년자인 딸에게 증여된 수십억을 비롯해 제기되고 있는 각종 의혹들을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행위는 결국 저지른 잘못보다 그 죄를 더욱 크게 만든다. 마땅함의 저울질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저울질을 거치면 구차함은 어느 측면에서든 더 이상 구애(拘碍)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2017-11-03

화왕계의 교훈

▲ 강희룡 서예가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하거나 망한다는 말이 있다. 권력을 잡게 되면 권력에 도취되어 남의 충고나 비판은 멀리하고 꺼리게 되며 그 자리에는 아첨하여 자기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로 채운다. 그래서 권력은 부패하게 되고 마침내 망하게 되는 것이다. 즉 견제 받지 못하는 권력은 스스로 무너진다는 것이다. 고려와 더불어 조선이 중국에도 실질적으로 없던 500여 년의 왕조를 이어올 수 있었던 토대는 대간제도를 건전하게 적극적으로 활용한 데 있다.조선시대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장치로 설치한 대간제도는 왕권과 신권을 동시에 견제했다. 대간이란 백관들의 감찰임무를 맡은 사헌부의 대간과 국왕에 대한 간쟁의 임무를 맡은 사간원의 간관을 합친 말이다. 이 대간이 절대 권력을 견제할 수 있었던 배경은 활발한 언론활동에 있었다. 여론정치를 위해서는 오늘날처럼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인지라 정치와 풍속 전반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직책이 별도로 필요했으며 이 직책을 맡은 관리가 대간이었다.김부식(1075~1151)의 `삼국사기` `설총전`에 화왕계가 실려 전한다. 설총의 유일한 유문(遺文)으로서 이 화왕계는 신문왕이 5월 한여름에 높고 훤한 방에서 설총을 돌아보고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색다른 이야기를 원하자 설총이 들려준 우화이다. 꽃 중의 왕인 목단이 미인이며 아첨을 잘하는 장미와 충간하기 위해 삼베옷에 가죽 띠를 두른 차림으로 찾아온 백두옹인 할미꽃 두 사람을 두고 선택을 망설이는 것을 보고 백두옹이 화왕에게 간언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들어 설총이 신문왕을 깨우쳤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 쓰인 가전체소설인 화사(花史)나 화왕전은 이들을 번안한 것으로 보인다.그 내용을 간략히 보면, 꽃 중의 왕인 모란에게 모든 꽃의 정령이 다투어 달려와 화왕을 배알할 때, 한 아름다운 여자 정령이 붉은 얼굴과 옥같이 깨끗한 이로 곱게 단장하고 모란의 환심을 사려할 때, 다른 남자 정령이 베옷에 가죽 띠를 띠고 백발에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다가와서 말했다. `제 이름은 할미꽃(白頭翁)입니다. 저는 서울 밖 큰길가에 자리 잡고서 아래로는 탁 트인 들판과 위로는 높이 솟은 산에 의지해서 사옵니다. (중략) 모든 군자는 결핍을 대비하지 않음이 없으니 대왕께서도 혹 이런 생각을 하십니까!`라고 묻자 누군가가 `대왕께서는 두 사람 중 누구를 곁에 두시렵니까?` 라고 물으니 꽃의 왕이 `노인장의 말도 이치에 닿는 말이며 미인도 얻기가 어려우니 장차 어찌해야 좋을까?`하며 망설였다.이때 노인이 `저는 대왕이 총명해 의리를 아실 것이라 생각해 왔으나 이제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체로 임금 된 사람 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정직한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 이가 드뭅니다. 그러므로 맹자는 불우한 신세로 일생을 마쳤으며, 풍당은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낮은 벼슬자리에 머물렀사옵니다. 예부터 사정이 이런데 전들 어쩌겠습니까?`이 말을 들은 화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고 한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신문왕은 서글픈 기색으로 `그대의 우화는 참으로 뜻이 깊구려. 이 이야기를 기록하여 임금이 된 자의 경계로 삼게 하오.`라고 기록하고 있다.이 우화에서 장미는 아첨하는 간신배이며, 할미꽃은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신하를 상징한다. 인간의 위선과 약점을 꼬집고 짤막하면서도 촌철살인의 지혜를 주는 우화는 별로 없다. 그래서 역사기록이나 문헌에 나오는 우화는 한두 편이라도 우리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오늘날의 정치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이 우화가 주는 교훈의 학습효과가 크다고 보겠다. 권력을 갖게 되면 누구나 권력을 휘두르는 맛에 유혹을 당하기 쉽다. 권위의 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독존의 늪에 빠져 제왕적 통치방식으로는 국민 마음을 얻지 못한다. 국민의 눈높이를 모르고 불통하는 지도자는 그 누구도 국민으로부터 배제 당한다는 진실을 반면교사로 새겨야 할 것이다.

2017-10-27

`2017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갖는 의미

▲ 강희룡 서예가역사의 흐름은 문자와 철기를 가진 사회나 국가가 그런 편리하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기(利器)를 갖지 못한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거나 멸망시켰다. 미개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진보된 인간 생활의 총체를 문명이라고 볼 때, 이러한 사회발생의 징표로 문자와 청동기나 철기의 사용을 들 수 있겠다. 상고사에서는 비록 원시적인 부족국가이지만 철의 생산과 확보가 곧 한 나라의 국력과 결부된다는 중요성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고대 춘추오패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초나라 장왕이 주나라 사신에게 구정(九鼎)이라는 솥의 무게를 물어본 유명한 일화는 당시 장왕이 구정을 빼앗아 자신이 천자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동정(銅鼎)은 중국의 상나라나 주나라 이래로 사용된 중요한 예기의 하나로서 신분을 나타내고 정치적 권위나 국력을 상징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도 안함로(579~640)의 삼성기(三聖記)에 `배달국의 18대 환웅 중 제14대 자오지 환웅천황(기원전 2707년)인 치우천황은 신라시대의 기와무늬였던 도깨비 얼굴로 `머리는 구리로 두르고 이마를 쇠로 가린 모습이었으며 쇠로 무기를 만들어내니 온 천하가 두려워 치우천황이라고 불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5000년 전에 이미 우리는 철제무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중국의 동북아공정에 대비한 역사드라마 `주몽`에서도 보았듯이 한사군의 강한 철기에 맞서 고구려 또한 강한 철의 야금술을 개발해 고구려를 건국한 실제 역사를 반영한 것이다.철의 유통량에 따라 정주적(定住的) 또는 이동적인 대장장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철제품을 수리하고 축소 재생산해 경제구조나 병기개발의 기조가 되는 경향이 강했던 고대사회에 반해 오늘의 부국강병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제철소의 거대산업화는 부를 가져오는 반면 환경문제도 함께 유발한다. 철 자체의 이미지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따뜻하고 곡선적이고 전원적이며 긍정적인 이미지에 반해, 차갑고 기하학적이며 도시적이며 인위적인 부정적요소가 강하다. 이로 인해 철강 산업을 기반에 둔 공업도시인 포항 역시 철의 부정적 요소가 강한 도시라고 볼 수 있다.프랑스 파리의 술집과 빈민촌을 문화예술 중심지로 바꾼 퐁피두센터나 철광산업이 내리막길을 접어들어 도시가 경쟁력을 잃기 시작하자 몰락하는 공업도시를 건축물, 조형물, 가로등 등을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게 꾸며 세계적인 명소로 바꾼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처럼 포항도 철강 산업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오염과 부정적 이미지를 최소화하는 녹색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친환경적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신 시장을 창출함으로써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즉 예술문화도시 형성을 통해 주민의 의식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비즈니스도시로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규모는 작지만 시민들에게 따뜻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금속을 기반으로 한 스틸아트 뮤지엄과 형산강, 송도, 동빈내항, 환호공원을 잇는 아트웨이를 조성해 철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과 새로운 작품들을 통해 차가운 공업도시라는 이미지를 깨고 예술도시로서의 모습으로 가꾸어 왔지만, 작품들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 못하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관계로 그 연속성이 끊어진지 오래다. 다행히 지난 9월 18일부터 10월 14일까지 영일대해수욕장 일원에서 `Hello Steel`을 주제로 철강기업체 근로자와 국내 유명조각가를 비롯해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학생들까지 참여한 스틸작품이 전시된 시민 참여형 축제 프로그램인 `2017 포항아트페스티벌`에 3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았다하니 이 축제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철을 소재로 한 독특하며 이색적인 이 축제를 미래의 포항지역을 차가운 공업도시에서 예술문화도시로의 탈바꿈시키는 일이야말로 포스코와 포항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선진문화의식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2017-10-20

국민을 `간뇌도지`하는 정치

▲ 강희룡 서예가`곽우록`은 성호 이익(1681~1763) 선생이 지은 정책제안서로 국가의 정책전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밝힌 책이다. 곽우록이란 뜻은 콩잎 반찬 먹는 사람의 근심을 기록했다는 말이다. 콩잎반찬이란 고기반찬에 대응하는 말로서 신분이 낮은 백성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천한 백성이 정치에 간여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이 곽우록의 서문에 `정치인들이 잘못하면 국민들은 간뇌도지 당한다.`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간뇌도지는 죽임을 당하여 간과 뇌가 으깨어져 땅바닥에 뒹군다는 뜻으로 참혹한 말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그 첫 번째는 `나는 천한 사람이다. 천한 사람의 근심은 백묘(정전법에서 일부(一夫)가 받는 땅으로서 여기서는 농사지어 먹고 사는 농부)의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허나 생각이란 쉼이 없어 혹 신분을 벗어나 참람한 생각도 하니 이는 필부의 죄이다.`라고 보았다. 이익은 자신을 농사지어 먹고 사는 신분이 낮은 천한 백성으로 규정한다. 백성이 신분을 잊고 감히 임금이나 고관대작이 하는 국가대계에 끼어든다는 것은 건방진 일이니 이는 곧 필부의 죄라고 말한다.두 번째로 `옛날에 동곽조조(동쪽 성곽에 사는 조조라는 이름의 백성을 가리킨다)가 진헌공에게 글을 올려 국가의 정책에 대하여 물으며 육식자가 하루아침 조정에서 잘못하면 곽식자는 중원의 들판에서 간과 뇌가 으깨어 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도 또한 깊이 근심하는 것입니다. 만약 마부가 고삐를 놓치면 참승(마부의 곁에 같이 타는 주군의 수행원)이라도 고삐를 잡고 제대로 몰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수레가 엎어지면 내가 죽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다. 여기서 육식자란 고기반찬 먹는 사람이고, 곽식자란 콩잎반찬 먹는 사람이다. 위정자들이 잘못하면 그 화는 백성에게 참혹하게 미치니 목숨이 달린 일에 어떻게 간여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냐는 것이다. 즉 백성이 천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간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세 번째로 `지금 우리나라가 편안하고 국가의 대계는 치밀하여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이나, 촉 땅의 개는 눈을 보고 짖고 구멍 속의 개미는 홍수에도 태연하니 본디 사물이란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는 법이다.` 이 내용은 이제 필부로서 현금의 상황을 보니, 병자호란 이후로 큰 전쟁이 없었고 국가정책도 매우 치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 속 내용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성호 이익이 살던 시기는 격한 당쟁의 시대였다. 모든 국가적 에너지가 당쟁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빠져 들어간 어찌 보면 정치가 과잉 또는 왜곡, 아니 범람한 시대였다. 다행히 청나라의 안정은 조선을 외침에서 벗어나게 하였지만 당쟁으로 말미암은 폐해는 정책의 빈곤으로 이어져 민생을 도탄으로 내몰았다. 곽우록이란 정책제안서를 지은 것도 이런 상황을 두고 눈뜨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리라.북한이 6차 핵실험으로 레드라인을 넘자 북·미간 설전의 수위는 이미 임계점에 도달해 전쟁연습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 충돌이 실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리와 직결된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국내정치는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펼쳐놓고 입씨름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개혁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저질적인 정치공방만 남아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토론을 통한 소통이 더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작 상대에 대한 무시와 편견만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는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이단이라는 종교적 맹신도와 같은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민주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치행위의 본질을 벗어나 패거리의 욕망으로 판 자체를 깨는 우를 범하는 것은 결국 국민의 간뇌도지를 의미한다.

2017-10-13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의 반복

▲ 강희룡 서예가역사는 반복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정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역사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의 향배를 가늠할 수는 있다. 식민사관의 폐해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조선조 중후기에 있었던 당쟁의 폐해를 잘 알고 있고 또 그로 인해서 조선이 패망했다고 굳게 믿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불행히 지금도 망각하며 부정적인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윤추(1632~1707)는 윤선거의 아들이자,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의 아우이다. 선조 때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져 형성된 당파는 숙종 때에 이르러 극에 달한다. 인현왕후의 폐위를 둘러싸고 남인과 서인이 엎치락뒤치락 정권을 차지하는 이른바 환국(換局)이라는 것이 몇 번이나 있었다. 서인은 다시 남인에 대한 처벌 여부를 둘러싸고 강경파인 노론과 온건파인 소론으로 갈린다. 이즈음의 환국은 단순히 정권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필연적으로 상대편의 목숨을 뺏는 핍박까지 이어졌다.그의 `농은유고, 여나명촌서` 기록을 보면 아버지의 제자인 나양좌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서 당파로 어지러워진 당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내용인즉, `근래에 서원과 문묘가 모두 난잡하니 괴이한 일입니다. 이른바 환국이라는 것은 제 생각에는 그럴 일이 없을 듯합니다. 근래에 조정의 일을 보건대, 분란이 이미 극에 달하여 백성들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니 외방의 감사, 병사, 목사, 수령의 가렴주구가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중국 서한의 말기에는 안에서부터 어지러워져 백성들이 심하게 병들지 않았으므로 중흥을 이룰 수 있었지만, 동한의 경우에는 위아래가 모두 어지러웠으므로 나라가 망했습니다. 오늘날의 형세로 보면 위아래가 모두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더구나 살육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양쪽의 칼날이 서로를 향하고 있으니, 이는 옛날에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박두한 화를 또한 어찌하겠습니까?`그는 당쟁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조정의 지배층은 백성들의 삶은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정권 탈취와 정적들의 도륙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지방의 수령들은 이런 중앙의 혼란을 틈타 자신이 다스리는 지방에서 가렴주구를 일삼았다. 이런 상황을 직접 목도하면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짧고 평범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절실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시대의 상황이 결코 그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지금의 한국 정당정치는 조선의 당쟁과 거의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심지어 더 심한 대립과 갈등으로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전통사회는 소수 지배층만의 문제였지만 사회가 발달한 지금은 전 국민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당쟁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입버릇처럼 과거의 부정적인 역사를 거울로 삼자고 하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돼버렸다.율곡 이이(1536~1584)의 `율곡선생전서, 시폐에 대해 진달한 상소` 내용을 보면, 위기대처능력 인간형을 삼단계로 분류하였다. `상지(上智)의 사람은 미연에 환히 알고 있으므로 난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스리고 나라가 위태롭기 전에 미리 보전하며, 중지(中智)의 사람은 난이 이미 일어난 뒤에 깨닫게 되므로 위태로움을 알고 안정시킬 것을 도모하며, 난이 닥쳤는데도 다스릴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태로움을 보고도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지(下智)의 사람으로 구분했다.역사를 볼 때는 뒤에서 어느 한 점을 보기 때문에 자신은 그런 오류에서 자유로울 것 같이 생각하지만 자신이 처한 그 환경 속에서 한 점의 주인공이 되면 생각처럼 처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면을 객체화시키면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이더라도 지금의 형세는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위선적인 몸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2017-09-22

적폐를 넘어 망국으로 가는 공기업 채용비리

▲ 강희룡 서예가전통사회에서의 과거시험은 국가에는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 장치이며 응시자에게는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해 관직으로 진출하는 통로이다. 그러나 권력이 비정상적일 때는 과거 시험의 공정성이 무너짐으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변질돼 백성의 신뢰를 잃게 되며, 공적 제도가 아닌 개인의 사유물로 전락돼 세력을 형성하는 데에 이용되고 온갖 부정부패의 중심이 됐다. 윤선도(1587~1671)의 `고산유고`를 보면, 그는 몇 해 전 사마시를 통과하고 관직 진출을 꿈꾸는 이른바 사회초년생이라 할 수 있는 그의 나이 30세에 인생의 일대 전환기를 맞는 `병진소`를 올렸다. 이 상소로 인해 윤선도는 37세까지 8년간이나 죄인으로 귀양살이를 했다. 이 시기는 광해군 8년으로 이이첨의 권력이 극에 달했을 때인데, 이이첨이 모든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어 교묘하고 치밀하게 자신의 뜻대로 국정을 움직이고 나라를 그르친 실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 상소는 `광해군일기`에도 실려 있으나, `유중불하`의 처분을 받았다. 유중불하란 상소의 내용이 임금의 뜻에 맞지 않아 상소를 궁중에 두고 관계 기관에 회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특히 이 상소에서 과거시험이 공정하지 못하고 부정이 일상화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 많은 비중을 뒀다. 자표상응(응시자끼리 커닝 페이퍼를 돌려보는 행위), 시권위표(시험지에 표시하여 특혜를 받는 행위), 장옥통두(시험 감독관과 내통하는 행위) 등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오직 합격에만 목표를 두는 현실을 폭로했던 것이다. 당시 권력자 이이첨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선 네 아들이 유출된 문제를 입수하거나 남이 지은 글을 베껴서 제출하는 부정한 방법으로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 이러한 부정은 누구나 금방 알아차리고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기에, 권한을 가진 사람이 아무리 어려워도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오늘날 젊은이들은 대학입시부터 각종 취업시험에 이르기까지 시험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사회는 발전했지만 그 안에 퍼져있는 온갖 부정과 비리는 400년 전 고산이 개탄한 시대보다 더 참담해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개천에서는 용이 아예 날 수 없다`는 사회구조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형태를 띤 정치구조에서 대선을 비롯해 각종 선거를 치르면서 나타나는 소위 선거공신들이나 측근들의 구제를 위한 여러 행태 중 부정청탁의 채용비리는 강원랜드, 석유·전력공사 등 모든 공공 기관에서 그 도를 넘고 있다.공기관은 젊은이들에게는 `꿈의 직장`으로 통한다. 이러한 공기관의 취업이 권력자나 기득권층의 개입으로 그들의 인친척이나 주변사람들이 연줄을 활용해 간단히 입사하는 현실이다 보니 이런 패악적인 채용비리로 이들이 자리를 차지한 탓에 실력 있는 `흙수저` 자제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낙방의 고배를 마셨으며 지금도 직장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지금 밝혀지고 있는 어떤 공기업은 심지어 합격자 518명 중 493명이 배경(빽)이 있었다. 즉 부정청탁, 세습채용, 서류위조 등 `반칙세계`의 축소판인 것이다. `돈도 실력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한 정유라의 인터넷 글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으나 사실 이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나타낸 말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양극화가 심각해지다보니 자신의 노력이나 실력보다는 삶속에 배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겪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이나 실력보다 해당되지 않는 다른 그 무엇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회는 비극이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사회의 비리가 근절되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박탈감과 좌절감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공정한 일자리 경쟁은 모두 공정한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불어 사는 한국사회 최후의 안전판이다. 검찰은 채용청탁을 한 사람이나 받아준 사람을 모두 파헤쳐 엄벌해야 이 사회가 공정하게 유지될 것이다.

2017-09-15

책기(責己)의 정신이 실종된 위정자들

▲ 강희룡 서예가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기정진(1798~1879) 선생의 `노사집`에 안윤극이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글의 서두에서 이른바 책기(責己)의 자세를 강조한 구절이 적혀있다. `성인의 도는 자기를 탓할지언정 남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애써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십상인데 노사선생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돌아보고 책임질 수 있어야 이른바 전인으로서의 인격체를 실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스스로를 책망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러한 책기를 나름대로 잘 실천해 나아갈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있다. 중국 송나라의 학자인 충선공 범순인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탓하는 데에는 명석하고,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에는 흐리멍덩한 법이다. 너희가 다만 항상 남을 탓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탓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면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라고 가르쳤다.전통사회의 임금들은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면 수라상에 올라가는 반찬의 가짓수를 줄여가며 스스로 근신했다. 이는 단순히 겉으로 반찬 몇 가지를 덜 먹는 행위에만 그친 게 아니라 천재지변은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임에도 임금은 그것이 자신이 부덕해서 발생한 소치로 돌리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근심하고 반성한 것이다. 이는 곧 지난 사회의 임금들이 책기를 실천한 자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그동안 정치권력과 언론을 비롯한 우리 사회 기득권층들은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주창해왔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고 나라의 경제규모만 커지면 마치 선진국인 것처럼 환상을 불어 넣어온 반면, 역사와 전통에 근거한 공동체 규범과 정체성이 무너지고 짓밟히는 실태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무시해 왔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당한 절차와 과정은 오히려 비효율적이고 사치스러워졌다. `목적만 달성하면 사후에 얼마든지 정당성을 인정받는데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절차와 수단을 지키느냐.`의 생각이 지배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면 그것이 정당화되었던 해방 이래 한국사회의 `성공 방정식`은 불행히도 지금까지 고착된 채 현재진행형이다.대표적인 표본이 정치권이다. 여야가 바뀐 지금의 정치상황에서 국가비전과 정치철학 없는 각 정당의 정치행태는 토씨하나 행동 하나 틀리지 않게 상대 당의 언행을`한풀이`하듯 그대로 풀어내고 있다. 겉으로는 좌나 우, 보수와 진보를 외치는 정치권은 결국 자신과 가족의 영화와 생존이라는 절박한 이름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탈법, 또는 불법이나 위법, 초법적인 일탈 행위도 서슴지 않으며, 이러한 물신주의와 출세지상주의는 곧 한국 정치인들의 가치관이 됐다. 이러한 역사와 관행이 쌓이고 국민을 앞세워 개인이나 패거리들의 영욕을 공익으로 포장한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위정자들이 득실거릴 때 우리는 결국 국가의 존폐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다.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백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후기는 107년 전 8월 29일 `경술국치`라는 국권이 찬탈당하는 치욕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듯 과거의 패악적인 정치 갈등으로 인해 국가가 소멸되는 상황까지 온다는 결과를 기억한다면, 공직자들은 자신을 냉철히 분석하여 그 자리가 국민 앞에 부끄러우면 내려놔야 할 것이다. 자신을 속이며 남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쉽게 할 수 있다. 내 눈앞의 남을 바라보듯이,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비추어 보면 감춰진 자신을 모두 볼 수 있다. 이렇듯 남을 보는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스스로의 잘못을 직관하고 고쳐나간다면 책기라는 덕목을 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2017-09-08

천민자본주의와 갑질문화

▲ 강희룡 서예가요즘 우리사회는 갑의 횡포가 분야를 초월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을이 마땅히 하소연할 길이 없었던 사회구조에 드러나지 않다가 지금에야 인권의식이 고취되면서 `을의 설움`이라는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갑과 을의 관계는 무조건 일방적인 것은 아니나 갑의 프리미엄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갑의 횡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공직사회에서나 민간부문에서 업무협의를 하는 상대에 대한 무례함, 폭행, 폭언, 무리한 요구까지도 서슴없이 해 댄다. 내면세계가 유교윤리에 기반을 둔 선조들은 관리들의 갑질을 무척 경계했다. 그 하나의 예를 보면, 주세붕(1495~1554)선생은 `무릉잡고, 송정흥덕지임서`에서 `현감이 비록 낮은 직책이지만, 한 고을의 주인이기에 고을 내의 초목, 금수의 생명 등 모두 현감에게 달려있으니 하나의 사물이라도 제대로 안정을 누리지 못한다면 모두 현감의 책임이다. 하물며 백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했다. 이 글은 주세붕이 흥덕이라는 지방의 수령으로 부임하는 벗에게 준 갑질경계의 송서 내용이다. 고을 수령은 조정의 중요 직책에 비하면 하찮은 벼슬일 수 있으나 실상 그 관내에서는 거의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이다. 공직자로 법령을 가지고 손쉽게 고을 백성을 통제할 수 있는데다 온갖 핑계로 고혈을 쥐어짜도 마땅히 견제하기도 어려웠기에 자신도 모르게 갑질이 가능한 자리였다.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질은 대체로 천민자본주의 정신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특히 가치규범의 급변이라는 측면에서는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민족의 혼과 역사, 그리고 전통이 짓밟히거나 소멸 또는 왜곡되었으며 우리 스스로도 나라 패망의 요인을 조선의 봉건제도 탓으로 돌리면서 역사와 전통을 부정했다. 안팎으로 자신을 부정하거나 부정당하며 살아왔기에 오로지 살 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남을 밟고서라도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거나 출세하는 것이 목표였다.겉과 속이 다른 한국사회의 이중성은 겉으로는 미국식의 명분을 내세우나 속으로는 그 반대이다. 미국은 절차와 수단에서 엄격한 법치를 준수하고 사회적 관계가 연고가 아닌 합리적인 실력주의를 기반으로 하며, 기회균등이 공정하게 보장되는 사회이다. 즉 겉과 속이 같아 함께 작동하는 사회이다. 반면 이중성을 띤 우리의 의식구조는 도입된 자본주의를 윤리와 도덕 같은 정신적 가치는 소홀히 하고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로 정착돼 불리한 상대에게 죄의식 없이 갑질로 나타나는 것이다.군 장성의 공관병 갑질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각 기업의 오너, 재벌 2, 3세들, 학문의 전당인 각 대학 내의 부조리한 갑질 등 사회 전방위적으로 심각한 행태로 나타나며, 심지어 대통령의 지시로 재외공관 내의 갑질조사가 현지에서는 행정직원들을 상대로 갑질 제보자 색출조사로 둔갑하는 또 다른 갑질 횡포가 벌어지고 있다. 갑질은 상위의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나 상대의 인권을 유린하는 반민주적인 행태로 범죄행위임을 누구나 인식해야 한다.중국 동진의 도연명(365~427)이 자신의 종을 아들이 있는 집으로 보내면서 당부한 말은 유명하다. `이 자도 남의 소중한 자식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고 잘 대해주거라.`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종에게까지 이런 배려를 할 수 있는 진정한 인격자의 한 면을 보는 사례이다. 천박한 물질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2017-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