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사회는 갑의 횡포가 분야를 초월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을이 마땅히 하소연할 길이 없었던 사회구조에 드러나지 않다가 지금에야 인권의식이 고취되면서 `을의 설움`이라는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갑과 을의 관계는 무조건 일방적인 것은 아니나 갑의 프리미엄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갑의 횡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공직사회에서나 민간부문에서 업무협의를 하는 상대에 대한 무례함, 폭행, 폭언, 무리한 요구까지도 서슴없이 해 댄다.
내면세계가 유교윤리에 기반을 둔 선조들은 관리들의 갑질을 무척 경계했다. 그 하나의 예를 보면, 주세붕(1495~1554)선생은 `무릉잡고, 송정흥덕지임서`에서 `현감이 비록 낮은 직책이지만, 한 고을의 주인이기에 고을 내의 초목, 금수의 생명 등 모두 현감에게 달려있으니 하나의 사물이라도 제대로 안정을 누리지 못한다면 모두 현감의 책임이다. 하물며 백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했다. 이 글은 주세붕이 흥덕이라는 지방의 수령으로 부임하는 벗에게 준 갑질경계의 송서 내용이다. 고을 수령은 조정의 중요 직책에 비하면 하찮은 벼슬일 수 있으나 실상 그 관내에서는 거의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이다. 공직자로 법령을 가지고 손쉽게 고을 백성을 통제할 수 있는데다 온갖 핑계로 고혈을 쥐어짜도 마땅히 견제하기도 어려웠기에 자신도 모르게 갑질이 가능한 자리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질은 대체로 천민자본주의 정신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특히 가치규범의 급변이라는 측면에서는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민족의 혼과 역사, 그리고 전통이 짓밟히거나 소멸 또는 왜곡되었으며 우리 스스로도 나라 패망의 요인을 조선의 봉건제도 탓으로 돌리면서 역사와 전통을 부정했다. 안팎으로 자신을 부정하거나 부정당하며 살아왔기에 오로지 살 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남을 밟고서라도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거나 출세하는 것이 목표였다.
겉과 속이 다른 한국사회의 이중성은 겉으로는 미국식의 명분을 내세우나 속으로는 그 반대이다. 미국은 절차와 수단에서 엄격한 법치를 준수하고 사회적 관계가 연고가 아닌 합리적인 실력주의를 기반으로 하며, 기회균등이 공정하게 보장되는 사회이다. 즉 겉과 속이 같아 함께 작동하는 사회이다. 반면 이중성을 띤 우리의 의식구조는 도입된 자본주의를 윤리와 도덕 같은 정신적 가치는 소홀히 하고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로 정착돼 불리한 상대에게 죄의식 없이 갑질로 나타나는 것이다.
군 장성의 공관병 갑질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각 기업의 오너, 재벌 2, 3세들, 학문의 전당인 각 대학 내의 부조리한 갑질 등 사회 전방위적으로 심각한 행태로 나타나며, 심지어 대통령의 지시로 재외공관 내의 갑질조사가 현지에서는 행정직원들을 상대로 갑질 제보자 색출조사로 둔갑하는 또 다른 갑질 횡포가 벌어지고 있다. 갑질은 상위의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나 상대의 인권을 유린하는 반민주적인 행태로 범죄행위임을 누구나 인식해야 한다.
중국 동진의 도연명(365~427)이 자신의 종을 아들이 있는 집으로 보내면서 당부한 말은 유명하다. `이 자도 남의 소중한 자식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고 잘 대해주거라.`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종에게까지 이런 배려를 할 수 있는 진정한 인격자의 한 면을 보는 사례이다. 천박한 물질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