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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혁의 대상은 정작 자신이다

▲ 강희룡서예가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 6·13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중앙당 슬림화와 쇄신차원의 하나로 제일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여의도 당사를 마무리한다고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밝혔다. 또한 여의도 당사 현판 철거식을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처절한 진정성으로 더 낮은 곳에서 국민들이 부를 때까지 쇄신과 변화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자유한국당은 혁신비대위원장을 맡을 명망있는 인사를 영입하기 위해 수많은 후보군을 언급해왔다. 그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후보군에 올려 당사자들로부터 지적을 받고 있다.인재를 등용시키려는 리더의 욕심은 어느 시대, 어느 조직에서나 항상 있었다.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하고 설사 인재를 알아보았더라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는 병폐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 동양에서는 당의 한유가 ‘잡설(雜說)’이라는 글에서 천리마의 비유를 들어 일갈한 뒤로 이런 병폐에 대해 사람마다 인식은 하게 되었지만, 정작 고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뒤 이웃나라 조선에서도 이 문제는 여전히 제기되고 있었다.서애 유성룡(1542~1607)의 ‘서애선생문집, 독사여측(讀史8821測)’에 ‘임금은 늘 신하 중에 쓸 만한 인재가 없는 것을 근심하고, 신하는 늘 임금이 인재를 충분하게 등용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한다. 때문에 군신이 서로 제회(際會)하는 것은 옛날부터 어려웠고, 지치(至治)의 성대함은 역대로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중략) 신종(神宗)은 현인의 등용에 뜻이 있었으면서도 참소하는 자를 제거하지 못하였고, 좋아했던 자들은 참소하거나 면전에서 아첨하는 무리들뿐이었으니, 그 실덕(實德)이 지극하지 못했던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선조시대의 유성룡이 중국 역사책을 읽다가 ‘천하에 인재가 없다’는 송나라 신종의 말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서 쓴 글이다. 당시 송은 요와 서하의 빈번한 침략 속에서 왕안석을 중심으로 한 신법당(新法黨)을 중용해 부국강병과 국가제도 전반의 개혁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황제가 인재가 부족하다는 탄식을 내뱉은 것이다.서애는 그에 대해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감식안이 문제였음을 지적했다. 신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인재설’이라는 글에서도 그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서애는 여기에다 추가적으로 실제 인물들의 사례를 제시하고 마지막에서는 인재를 제대로 대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지적했다. 임진왜란 당시 국난 극복의 영웅 이순신을 극력 추천했던 이가 바로 서애였음을 상기하면, 문인의 상투적인 글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다.2002년 여름 월드컵에 히딩크라는 이방인 감독이 과감하게 능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여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일구어냈다. 상당수는 그동안 국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선수들이었다. 그러자 사회의 공·사 분야를 떠나 모든 리더들이 하나같이 ‘앞으로는 히딩크 식으로 과감하게 능력위주의 인사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자기부정에 국민들은 쓴 웃음만 지었다. 기존에는 능력 위주의 인사를 안 했다는 말이 된 것이다. 참 끔찍한 가상이다. 과연 조직의 리더들 중에 누가 히딩크 같은 안목을 지녔느냐는 것이다. 현실은 늘 이런 식으로 개혁의 대상은 정작 자신인데도 시선은 언제나 남을 향해 있다.‘하늘은 한 시대가 넉넉히 쓸 수 있을 만큼 인재를 낸다’는 청나라 심문규의 말처럼 인재는 언제나 존재한다. 선거철마다 인사 철마다 인재영입을 외치며 부산을 떨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인재를 알아보는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다.

2018-07-13

관료들이 배워야 할 역관 홍순언의 교훈

▲ 강희룡서예가조선 개국 초부터 선조 때까지 약 200년간 역대 왕들의 가장 큰 현안은 ‘대명회전, 조선국조(朝鮮國條)’의 주에 명 태조의 유훈이라 해서 ‘이인임의 아들 단(旦:태조 이성계)이 사왕(四王:공민·우왕·창왕·공양)을 시해했다’고 잘못 기록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종계(宗系)를 바로 잡는 것이었다. 조선이 개록(改錄)을 주청했으나, 시정 약속만 하고 실현되지 못해 두 나라 사이에 심각한 외교문제로 이어져왔다.조선에서는 태조 이성계의 종계를 바로잡는 종계변무가 외교의 최대 이슈였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사신과 역관을 파견했으나. 뚜렷한 결실을 얻지 못했다.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중기에 활약한 역관 홍순언(洪純彦·1530~1598)이 등장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인 사역원(司譯院)을 두어 역관을 배출했는데 ‘통문관지’는 조선 숙종 때 서역원의 역관인 김지남과 그의 아들 김경문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책으로 ‘인물’이란 항목을 설정해 최세진, 홍순언, 김근행 등 역대의 주요 역관들을 서술하고 있는데 다음은 홍순언의 행적을 발췌한 것이다.내용을 요약하면, ‘젊어서 불우했으나 의롭던 홍순언이 일찍이 연경에 가다가 통주에 이르러 밤에 청루에서 노닐다 자색이 매우 뛰어난 한 여인을 보고 마음에 들어 주인에게 부탁해 접대하게 했는데, 소복을 입고 있자 이유를 물으니 부모가 연경에서 벼슬하다가 돌림병에 걸려 동시에 돌아가셨는데, 혼자서 고향으로 모셔가 장사지낼 밑천이 없으므로 스스로 몸을 판다고 하며 눈물을 흘리자, 공이 듣고 불쌍히 여겨 그 장례비 3백금을 주고 끝내 가까이 하지는 않았다. 여자가 이름을 물었으나 끝내 말하지 않고 성만 알려줬다.이 여인은 후에 예부시랑 석성의 계실이 됐는데, 시랑은 이 일을 듣고서 그의 의리를 높이 여겨 조선의 사신을 볼 때마다 반드시 홍통관(洪通官)을 찾았다. 당시는 조선에서 종계변무 때문에 전후 10여 차례 사신을 보냈으나 모두 허락받지 못하고 있었다. 1584년에 공이 변무사 황정욱을 따라 북경에 이르렀을 때, 예부시랑 석성과 그의 부인을 함께 만났다. 부인의 요청으로 홍순언을 찾고자 했던 석성과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 홍순언은 그동안 조선이 그토록 원했던 종계변무의 임무를 완성할 수 있었다.석성의 부인은 홍순언에게 보은의 비단을 짜서 보냈다. 그리고 ‘보은단동(지금의 소공동, 북창동)’의 유래가 홍순언과 중국 여인과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록했다. 이 인연은 임진왜란 때 원병을 파병하는 것으로도 이어졌다. 석성은 왜란 당시 병부상서의 자리에 있었고 홍순언과의 인연을 생각해 명의 원병파병에도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마지막 대목은 홍순언이 인연으로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지만, 광해군 때부터 중국 사신에 대해 뇌물을 쓰는 풍조가 생기면서 외교적 폐단이 시작됐음을 통문관지는 기록하고 있다.홍순언에 관한 일화는 성호사설, 열하일기, 이향견문록 등의 주요 기록에도 널리 소개됐다. 각각의 내용상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홍순언의 인연이 외교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는 부분은 공통적인 요소이다.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행태는 우리의 공동체를 수렁으로 몰아넣는다. 일례를 보면 비서 성폭행으로 첫 공판을 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혐의를 부정하며 ‘이성적 감정에 따른 것’이라 형법상 범죄는 아니라고 강조했다.염치가 없다면 못할 짓이 없는 법이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의 하나로 염치를 꼽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조건 환경과 시선에 얽매여 자신의 소신을 왜곡해서는 안 되겠지만,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의 기본 질서와 도리를 파괴하면서 나 자신만 옳다고 주장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2018-07-06

이열치열의 모순

▲ 강희룡서예가지금 한국의 기후는 아주 급격한 변화 속에 있어 여름이 시작되면 갑작스런 폭우와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지구의 온난화로 여름 장마전선도 최근엔 따로 발달하지 않고, 국지적으로 집중호우가 쏟아지며 횟수와 세기, 양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며칠 전 화기(火氣)가 극히 왕하고 태양의 양기는 극에 달한다는 24절기의 하나인 하지(夏至)도 지나서 며칠동안 낮 기온이 35~36℃를 넘나들었다. 한국 속담에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이 있다. 무더운 여름일수록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더운 음식을 먹거나 몸을 덥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열치열은 어떠한 의학 서적에도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동의보감에 나온다고 하는데 동의보감에는 덥다고 찬 음식만 먹으면 여름 감기에 걸린다고 하였을 뿐, 날이 더울수록 뜨거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의서라는 ‘황제내경’에도 ‘추위는 더위로 다스리고 더위는 추위로 다스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추위로 생긴 병에는 더운 성질의 약을 사용하고, 더위로 생긴 병에는 차가운 성질의 약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열치열과는 정반대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운 약재를 써서 열을 잡기도 하지만 이것은 열증을 가장한 한증을 치료하는 방법일 뿐 진짜 열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아니다.‘정조실록’에는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온다. 이열치열은 ‘이수치열(以水治熱)’의 반대말이다. 열기가 일어나는 곳에 찬물을 끼얹으면 열기가 금방 사라지지만, 열기에 열기를 더해봐야 별다른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난 왕조국가에서 역적을 다스릴 때 역적의 반대파 사람에게 처리를 맡긴다면 피의 살육이 벌어진다. 반면 역적과 같은 당파 사람에게 처리를 맡기면 비교적 온건하게 처리한다. 이것이 바로 더위로 더위를 다스리는 이열치열이다. 윗글의 예를 보면 병신년의 역적은 정조의 대리청정을 방해한 홍인한 등을 말한다. 당시 홍인한의 단죄를 담당한 사람이 대사헌 김상익이다. 두 사람 모두 노론이자 왕실의 인척이다. 이 때문에 ‘정조실록, 즉위년 7월 1일’에 ‘사간 신응현이 상소하여 대사헌 김상익은 홍인한과 한 통속이니 김상익에게 홍인한의 죄를 다스리게 한다면 이열치열과 다름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보아 이열치열의 속뜻은 온건한 처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이 이열치열의 오해에서 빚어진 잘못된 처방은 가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조선 후기 문인 홍우채가 19세에 요절한 아들 홍계영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인 관수재유고(觀水齋遺稿)에 실려 있다. 내용인 즉, 아들이 병을 앓던 초기에 의원의 말만 믿고 더운 약제를 썼다. 그러나 이 처방은 결과적으로 증상을 악화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몸속이 열기로 가득하여 배가 부었는데 더운 약제를 썼으니 당연한 결과였으며, 차가운 약제를 쓰지 않고 믿었던 이열치열의 처방이 원기를 손상하여 아들의 죽음을 초래하였다며 홍우채의 후회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홍계영은 재주가 뛰어나 8세 때 지은 유명한 연적명(硯滴銘)이 있으며, 작품으로 국문가사 희설가(喜雪歌)를 남겼다. 문중에서 천리지구(千里之駒)를 얻었다고 기대하는바 컸으나 병으로 19세에 요절하였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뜨거운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뜨거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면 일시적으로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뜨거운 음식은 식도암과 위암, 그리고 치아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의사들은 하나같이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올여름 더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열치열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든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2018-06-28

시위소찬(尸位素餐)의 정치인들

▲ 강희룡서예가조선건국의 초석을 놓은 정도전은 한 사람의 왕이 절대 권력을 갖고 다스리던 왕조시대에도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그 임금을 버리고 떠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 떠난 백성들의 마음을 누군가 얻게 되면 백성들이 그를 따라간다고 했다. 이 말은 고려가 망한 원인을 지적했고, 조선이 그렇게 해서 새로 섰으며 조선은 토지개혁을 통해 백성의 삶을 안정시켜서 백성의 마음을 얻었다.조선 전기의 문신인 신숙주는 관직을 지낸 선비 집안의 유풍을 자손들이 잘 이어가길 염원하는 마음에서 ‘깨끗하게 자신을 지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무슨 일이든 태연하게 해낼 수 있다.’라고 가훈을 지어 남겼다. 신숙주의 ‘보한재집’에는 마음가짐(操心), 몸가짐(謹身), 공부(勤學), 가정생활(居家), 관직생활(居官), 여자의 도리(敎女) 등 여섯 조목으로 나눠서 지었는데 윗글은 다섯 번째 조목인 관직생활에서 공인으로의 가져야할 정신을 인용한 구절이다.깨끗하게 자신을 지킨다는 말은 청렴결백한 관리를 지칭하는 문구이다. 깨끗함이 관리의 요건이 되는 이유를 신숙주는 ‘한 번 부정한 일을 저지르면 남이 알까 부끄러워 위축되고 부끄러운 마음에 명을 내리기도 주저하다 마침내 교활한 아전들에게 약점이 잡혀서 하는 일마다 실패를 초래하니, 자신과 명예를 모두 잃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며 세상에 이런 일이 허다하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느냐며 탄식한다. 속담에 ‘한 번 채소밭을 망가뜨린 개는 일 날 때마다 의심받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후에는 무슨 일만 생기면 모두 그 개를 의심하게 되고 개는 억울하게도 영영 그 의심을 면치 못한다.조선 후기의 문인인 김주신 선생의 ‘수곡집, 선비 행장(先FFFC行狀)’에는 ‘일하지 않고 밥 먹으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글은 김주신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행장을 기술하면서 어머니께 평소 들었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5세 때 아버지를 여읜 아들에게 무척 엄격하셨던 어머니는 아들이 빈둥대고 태만한 모습을 보이자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훈도했다고 한다. 사람이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다는 진리를 가르친 것이다.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 관리들이 스스로 녹만 축내고 있다고 자책하거나 혹 남의 무능함을 질타할 때 많이 쓰는 말이다. 시위는 헛되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뜻으로, ‘서경(書經)’의 오자지가(五子之歌)에 ‘태강(太康)이 시위해 안일함과 쾌락으로 그 덕을 상실했다.’라고 하여 하(夏)나라 태강이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한 데서 나온 말이다. 소찬은 수고하지 않으면서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무위도식(無爲徒食)과 같은 말이며 ‘시경, 위풍(衛風)’의 벌단장(伐檀章)에‘저 군자여 공밥을 먹지 않는구나.’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구한말 당시 관료들을 비난하면서‘어리석은 자는 시위소찬에 만족하고 영악한 자는 책임만 피하려고 한다.’라고 질타한 이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눈치나 살피며 안일과 권력만 탐하고 그릇된 일은 ‘모두가 다 네 탓이다.’라고 다투다 결국 군중의 분노를 일으키고 나라와 백성을 곤경에 빠뜨리고 말았다.지금의 위정자들도 혹 내가 떳떳하지 못하게 공밥만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통절히 돌아볼 때이다. 19대 총선과 임기 중에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은 20대에는 180석까지 차지한다고 운운하더니 오만과 권력다툼, 지도자의 무능으로 20대 총선에서 야당으로 전락했다. 그 후 파벌끼리 이전투구로 전전하다 6·13지방선거에서 또 다시 처참히‘탄핵’된 후 당 해체위기까지 왔다. 반면 대승을 거둔 여당 역시 벌써부터 내부에서 차기에는 180석차지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과거를 잊은 정당은 오만과 독선에 빠지게 된다. 결과는 현명한 국민들이 그 정당 자체를 해체시킨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18-06-22

선출직 공인들은 언행을 일치시켜야

▲ 강희룡 서예가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퇴계집에 ‘정자중에게 보내는 편지(與鄭子中)’가 실려 있다. 내용은 ‘자신을 반성하여 실천에 힘쓰는 것으로써 날마다 연구하고 체험하는 공부를 한다면 앎과 실천이 함께 나아가고 말과 행동이 서로 합치할 것이다.’이다.1564년에 남명 조식(1501~1572)선생은 성리학 이론논쟁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퇴계에게 충고를 담은 편지를 보낸다. 그 내용은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니 손으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예절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말해 헛된 이름을 훔쳐 남을 속이려 합니다. 선생 같은 어른이 꾸짖어 그만두게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억제하고 타이르심이 어떻습니까.’라고 적었다. 이 시기는 퇴계가 고봉 기대승(1527~1572)과 사단칠정논쟁(1558~1566)을 치열하게 벌이던 중이었었기에, 남명의 편지는 에둘러서 퇴계를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퇴계는 남명에게 변명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고 나서 못다한 이야기를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는다. 그 내용이 위의 글인데 ‘실천을 바탕으로 논쟁을 한다면 이론과 실천 둘 다 발전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편지를 받은 제자는 자(字)가 자중(子中)인 정유일(1533~1576)이다. 오늘날에도 남명과 같은 취지의 비판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일부 정치인들은 현실에서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선거 때만 되면 고원한 원칙과 이상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천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 원칙과 이상은 그저 허공에 뜬 국민을 속이는 말이 될 뿐이다. 그러나 퇴계의 말처럼 현실을 반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상을 실현한다면 이론과 실천은 함께 발전할 것이다. 한편으로 역사를 돌이켜보면 조선의 학문은 물 뿌리고 비질하는 것보다는 입으로 천리를 논했던 사단칠정논쟁을 통해 깊어진 면이 있다. 그것은 논쟁의 내용이나 결론 때문이라기보다는, 노성(老成)한 대학자와 신진학자들 사이의 격의없는 논쟁이 당대 지식인들에게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 서로 말과 글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게 되었고 그것들이 쌓여서 조선의 학문이 되고 문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퇴계가 살던 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사람 사는 이치는 다를 게 없다. 일상의 삶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원칙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서로 토론하고 그 원칙과 이상을 이루기 위해 행동으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오늘날 자본주의 정치행태의 기초가 되며 가장 핵심적이며 민주주의의 꽃으로 일컫는 것이 바로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이다.우리의 선거방식은 후보자들에게 TV를 통한 무제한 정책토론 같은 형식의 선거운동이나 인터넷 방송의 활성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혹시 있더라도 선진국처럼 두 명을 선출하는데 무려 수십 일 동안 정책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약점을 헐뜯는 막말로 일관하다 끝을 맺는다. 무속인의 굿당을 방불케 하는 거리의 수많은 현수막을 보면 ‘현수막을 위한 선거’처럼 보인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골목을 울리는 선거 송, 얼굴 큰 긴 벽보, 명함 돌리기, 현란한 퍼포먼스 등 선진국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유권자와 소통이 아닌 선거공해로 전락하여 지금까지 진행형이다.선거공약 또한 재탕 삼탕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같은 후보자들 입에서도 ‘선거 때마다 나오는 비슷한 공약들이 지방자치단체 미래를 무너뜨린다.’며 하소연하기도 한다. 이제 선거도 끝났다. 선택된 공직자들은 임기동안 약속한 공약을 퇴계의 가르침처럼 허언으로 끝내지 말고 실천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임기동안 존재감 없이 세금만 축내다 차기에 또 출마하는 후보자 퇴출은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 개개인의 소중한 표만이 그들을 걸러낼 수 있다.

2018-06-15

당랑포선과 모기

▲ 강희룡 서예가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김윤식(1835∼1922)은 그의 저서 운양집(雲養集)에 ‘고약한 모기 이야기(苦蚊說)’ 즉 모기에 대한 우화를 싣고 있다. 그 당시 호남 전주의 모기가 독하기로 온 나라 안에 소문이 났는데 연해(沿海)의 여러 모기도 또한 전주 모기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강했었다. 그런데 전주와 연해의 여러 모기는 모두 순천 금오도의 모기를 대부(大父)로 추대하였기에 마침내 금오도의 모기가 전국에서 으뜸이 되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금오도에는 본래 사슴이 많기로 전국에 소문이 나서 먼 지역의 사람들까지도 먹을 것을 싸들고 바다를 건너와서는 사슴을 잡아 그 피를 마셨다. 예나 지금이나 사슴피가 보양식이라는 소문이 맞는 모양이다. 그러나 온 사람들마다 반드시 모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피를 빨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침내 금오도의 사슴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되었다. 알고 보면 사슴피가 도움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모기의 해로움이 더 컸던 것이다.‘고문설’의 일부 내용을 들춰보면 어떤 사람이 사슴피를 마시러 금오도에 왔다가 모기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나 탄식하기를 ‘모기야 나는 죄가 없단다’ 하였다. 그러자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사람이 웃으며 말하였다. ‘천하에 완전한 복은 없으며 반드시 되돌아가는 이치는 있습니다. 태양은 하늘 한복판에 도달하면 기울어지고, 달은 차면 이지러집니다. 물은 불을 이기지만 흙은 도리어 물을 이기는 것이 한결같은 이치입니다. 호랑이는 모든 짐승을 잡아먹을 수 있지만 털 사이에 숨은 벌레에게 물어뜯깁니다. 사마귀는 매미를 잡아먹으나 참새가 그 뒤를 노리고 참새 뒤에는 포수가 있습니다. 그 이치가 마치 은혜와 원한이 왕복하는 것 같습니다. (중략) 그대가 사슴피를 마신 지 여러 날이 되어서 혈기가 왕성하고 피부가 윤택합니다. 생각건대, 하늘이 모기를 시켜 그대의 이익을 나누어 갖게 한 것 아니겠습니까?’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인지라 고개를 끄덕였지만 의문은 남았다. ‘아니 저 모기는 마치 사슴을 위해서 대신 나에게 덤벼들어 복수를 해 주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슴은 모기에게 무슨 은혜를 베풀었단 말인가.’ 이런 의문에 대해 아까의 그 사람은 이렇게 답변을 했다. ‘모기는 그 작은 몸으로 바다 섬의 텅 비고 적막한 곳에 사니 사슴이 아니면 그 이름을 사방에 드날릴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커다란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이 농담 같은 얘기 속에 뜻밖의 커다란 진리가 들어 있다. 사슴이 많기로 유명한 섬에 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자 그 사람들을 문 모기가 더욱 유명해진 사례로 세상 만물은 서로 얽혀서 좋든 나쁘든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이다. 매미와 참새 이야기는 한나라 유향이 편찬한 ‘설원(說苑) 정강편’에 수록된 고사인 당랑포선(螳螂捕蟬)이다.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등 뒤의 근심을 돌아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이다.사람은 욕심과 이득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면 한 치 앞의 우환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지니고 있다. 6월 13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에 지금 많은 후보들이 공복을 자처하며 난립하여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각 후보 나름대로 지역을 위해 공약을 마련하여 유권자들에게 본인만이 적임자이며 지역현안을 해결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정치를 고려하지 않은 설익은 공약이나 추상적 공약은 애초부터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 없는 인기위주의 공약은 유권자들을 속이는 것이며 후진국 정치현상의 표본인 것이다. 혹시나 모기와 같은 해충에 해당하는 부적합한 후보자들이 걸러지지 않고 선택된다면, 그 부담과 책임은 유권자들이 떠안아야 한다. 올바른 일꾼을 선택 못한 결과는 국민을 주인이 아니라 그저 이 땅에 세 들어 사는 객으로 만들뿐이다.

2018-06-08

자신에 대한 의심은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 강희룡서예가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고봉 기대승 선생이 집안 일이 겹쳐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여러 말들이 확대 생산되자 해명하기 위해 쓴 글이 있다. 이 글은 세 가지 해명으로 행적에 대해 해명한 적해(跡解), 생각에 대해 해명한 의해(意解), 사리에 비추어 해명한 이해(理解)로 구성하여 논리적으로 풀어 놓았다. 요지는 대개 선과 악행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나 비방과 칭찬은 타인에 의한 것이라 어찌할 수 없으니 스스로 떳떳할 수 있도록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수신으로 비방에 대한 옛사람들의 전형적인 대처법이었다.위에서 언급한 방법 말고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소된다는 식으로 느긋한 대처법도 있다. 중국 한나라 때의 문신인 직불의와 제오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직불의는 조정의 동료들로부터 형수와 간통을 했다는 모함을 받았고, 제오륜은 장인을 상습적으로 구타한다는 모함을 받았다. 그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탓에 소문이 수그러들지 않았다.나중에 ‘내게는 형수가 없다.’ ‘내가 결혼했을 때는 장인이 돌아가신 뒤였다.’고 하자 비로소 오해가 해소되었다 한다. 야박하게 따지지 않는 도량에 대한 미담으로 자주 인용하는 고사이지만, 주자나 고려말기 학자인 이곡(李穀)은 이들이 초기에 해명하지 않고 비난을 묵묵히 감수한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그들 스스로는 해명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는 몰라도 요즘같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식의 대처는 자칫하면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남을 모함하지 않도록 고민하는 것이 정상인데 문제는 우리가 늘 모함을 당하는 사람의 대처 방식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모함이 일어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그 첫째는 시기심이나 사욕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의심 때문이다. 시기심이나 사욕의 경우는 스스로가 소인배의 도량에서 일어난 것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의심으로 인한 경우는 조금 더 객관적인 노력만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이 이웃집 아이를 의심해 살펴보았을 때는 모든 동작이나 태도가 영락없이 도끼를 훔친 자의 행색이었는데, 나중에 도끼를 다른 곳에서 찾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더라는 열자(列子)의 교훈이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의심은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기에 사람이 한 번 품은 의심을 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억울한 비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보다 남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지가 더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꼭 남을 해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그 경우라면 어떻겠는가라는 생각을 수시로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바로 대학에서 말한 혈구지도(FFFC矩之道)인 것이다.피감기관의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와 청탁금지법 위배의 의심을 받는 60여 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과 드루킹 댓글사건의 또 다른 축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의 연루 여부는 아직 의혹만 무성한 상태다. 또한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역시 지난 대선 전까지 드루킹을 몇 차례 만나 이 중 간담회 참석 사례비로 두 번에 걸쳐 수 백 만원을 받았으며, 김 후보와 드루킹을 연결시켜 준 인물로 의심을 받아 경찰에서 소환 조사를 검토 중이다.이렇듯 고위 공직자나 위정자들은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을 행위는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사실 여부가 의심 속에서 전개되는 상황과 어긋난다면 적극적으로 해명하여 국민들 앞에 그 의심을 풀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면 응당 법의 처벌을 받는 사회가 바로 민주사회인 것이다. 대통령의 인기나 정당의 지지율 뒤에 숨어서 세상을 농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부류들을 축출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은 국민에게 정신적 폭력을 무차별 행사하면서도 당연시하고, 잘못을 합리화하며 권력의 그늘에 기생하는 권력 기생충으로 변해 사회를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06-01

잠곡 김육선생의 개혁을 본받아야

▲ 강희룡서예가우리는 흔히 조선시대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손꼽으라고 하면, 대개 퇴계 이황이나 다산 정약용을 지목하게 된다. 실제로 퇴계선생이 이룬 학문의 경지는 조선은 물론 중국 ·일본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다산선생이 저술한 여러 책들은 당시 사회의 각 방면에 걸쳐 갖가지 개혁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분들 아니면 당시의 학문 수준은 밑바닥이었을 것이며 우리의 사상체계 또한 그야말로 황폐했을 것이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이나 다산의 목민심서로 인해 백성의 생활이 얼마나 개선되었으며 윤택해졌을까”라는 질문에는 당시의 백성들의 궁핍하고 힘든 생활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학문과 사상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조선조의 인물들 가운데 백성의 삶을 직접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은 바로 잠곡 김육(1580~1658) 선생을 꼽을 수 있다. 김육 선생의 ‘잠곡유고, 호서대동절목의 서문’을 보면 그의 학문의 목적을 알 수 있다. ‘군자가 세상에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힘써 학문을 하는 목적은 그 학문을 시행하고자 하는 법이다. 천작(天爵)인 도덕을 수양하여, 인작(人爵)인 관직을 받는 것이 어찌 유독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고 명예만을 노려서 그렇게 하는 것이겠는가. 장차 배운 바를 시행하여 백성에게 펴고자 해서인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즉 관직의 높고 낮음을 따질 것 없이 공부를 하여 벼슬아치가 됐으면 진실로 그 뜻을 시행하는 데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성리학과 예학은 이상주의로 흐르고 있었으며 학자들은 모두 말로만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이 바르면 천하와 국가가 저절로 잘 다스려질 것이다,라고 떠들어 댔다.’ 그러면서 이를 실제로 실천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공리(功利)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비웃었다.잠곡은 이렇듯 헛되이 이상만을 추구하거나 형식적인 것을 숭상하는 학문을 배척하고 실제적인 일을 실현하며 쓰임을 절약하고 백성을 위하여 요역을 줄여 세금을 적게 거두는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실제 효종 2년(1651)에 반대파의 끈질긴 방해에도 불구하고 대동법을 호서지방까지 확대시켜 시행한 다음, 그에 대한 세부 절목(節目)을 반포하였다.또한 그는 당시의 성리학이나 예학 등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철저하게 행동과 실용을 위주로 학문을 실천하였다. 그러면서 여러 제도의 개혁을 통하여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려는 경세관을 가지고 있었다. 대동법을 확대 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당시 호서지방에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송시열, 김집, 송준길 등 소위 산림(山林)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해 대동법을 호서 지방까지 확대해 시행하였던 것이다.대동법시행 외에도 백성들의 실제적인 혜택을 위해 물품화폐가 가지는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화폐를 만들어 유통시켰고, 틀린 역법(曆法)을 바로잡기 위해 시헌력(時憲曆)을 도입해 시행했다. 또한 민생의 편의와 생산력의 증대를 위해 수차(水車)와 수레를 제작해 보급했다. 문맹인 백성의 교화를 위해 활자를 제작해 서책을 간행해 보급했다. 당시 이러한 제도의 개혁은 우리나라의 역사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릴 만큼의 진보적인 것이었다.‘청년 일자리’ 추경예산안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청년실업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근본적인 국가정책이 필요한 때라 생각된다. 경제가 정치논리에 끌려 다니면 결국 모두 망가진다. 막강한 기득권층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온 국민들에게 혜택이 가는 개혁적인 제도를 만들어 서민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국가의 책임과 의무인 것이다. 국정을 담당하고 있는 공직자들은 앞에서 말한 잠곡 선생을 귀감으로 삼았으면 한다.

2018-05-25

우리 사회의 정의는 존재하는가

▲ 강희룡서예가유가의 공자사상처럼 사람을 가르치거나 국가를 다스릴 때는 믿음을 우선시하며 중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혹은 국민과 국가 사이, 지역과 지역사이에 불신만 가득 차있다.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는 엉킨 실타래를 풀 때 급히 서두르다 보면 실타래가 더 꼬이고 엉켜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을 두고 침착하게 일일이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사회정의론에는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한다. 미국의 대표적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사회 제도의 제1덕목은 정의라고 밝히고 ‘다수가 누릴 보다 큰 이득을 위해서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해도 좋다는 것을 정의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의에 있어 옳음이 좋음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에 공정을 중요시했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평등한 시민적 자유란 이미 보장된 것으로 간주되며, 정의에 의해 보장된 권리들은 어떠한 정치적 거래나 사회적 이득의 계산에도 좌우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원초적인 입장에서 합의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주장한 것이다.마이클 센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2010)’에서 ‘의무론자들이 중요시하는 개념은 옳음이며, 결과주의자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좋음’이라고 했다. ‘옮음의 근거는 이성이며 이성에 근거를 둔 원칙이 옮음을 규정하는 기준이 되고, 좋음을 규정하는 것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가치관 혹은 관습’이라고 했다정의는 개인의 정당한 몫을 배분해 주는 것으로 이해가 상충되는 당사자들을 어느 한편을 일방적으로 부당하게 희생시키지 않고, 모든 당사자의 이익을 공정하게 고려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때 무엇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절차를 중시하는 입장과 실질(결과)을 중시하는 입장이 있기에 전자를 절차적 정의 또는 형식적 정의라고 하고, 후자를 실질적 정의라고 부른다.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1998)’은 ‘국가와 시장의 협력’으로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모두 극복하겠다는 정치적 프로젝트를 담은 책이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나 영국의 블레어 정부가 제3의 길을 표방했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시장경제의 정착, 생산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국정지표를 내건 DJ정부 역시 ‘제3의 길’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결과적으로 제3의 길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세계화와 시장개방, 구조조정을 거치며 겪게 된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체제로 굳어졌고, 지금의 더욱 심화된 불평등의 씨앗을 뿌렸다.정의와 공정의 축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한국 사회에 반칙이 횡행하는 토대를 제공하는 건 다름 아닌 정치권과 교육 당국, 법조계이다. 학생부 조작, 교육부의 설익은 개편안, 미성년 자녀의 논문 공저로 끼워넣기, 한 사건이 판사의 성향에 따라 유무죄로 판결나는 사례, 강원랜드 채용비리 관련 수사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기존 약속을 깬 검찰총장의 모호한 태도, 정치검찰, 늘 문제시되어 온 재벌들의 갑질, 더구나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비극을 낳은 국가의 무책임과 무능력 등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국민들에게 나타나는 반응은 역시 자살률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8.7명으로 회원국 중 1위다. 2위인 일본(18.7명)과도 격차가 크다. 한국은 2003년 이후 한번도 1위를 타국에 내준 적이 없다.영욕에 눈먼 자들이 설치는 국가가 되어서는 사회정의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혼란과 절망 속에서도 사람 간의 신뢰만이 지금의 불신과 단절을 끊을 수 있는 열쇠가 되리라 믿는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스스로 거울 앞에서 자신을 비춰보고 있을 자리가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2018-05-18

초심과 작심

▲ 강희룡서예가사람들은 한 해가 바뀌거나 어떤 일의 계획을 세우고는 그 목적달성을 위해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을 되새기며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게 마무리하는 초심(初心)을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이처럼 처음 마음먹었던 일을 끝까지 해 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기에 자신에게 한 약속이나 각오를 끝까지 지켜나간다는 사자성어가 ‘초지일관(初志一貫)’이며 유사 성어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는다는 시종일관(始終一貫)이 있다.맹자 등문공 하(騰文公 下)의 이른바 호변장(好辯章)에 ‘작심(作心)’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그 마음에 일어나서 그 일을 해치고, 그 일에 일어나서 그 정치를 해친다.’ 작심은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억지로 하기 싫은 것을 의식적으로 일깨운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만들어진 사자성어가 ‘작심삼일’이다. 이 작심이란 말은 두 가지 뜻을 품고 있다. 사흘을 두고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비로소 결정을 보았다는 신중성을 의미하고 있는 경우와, 삶의 목표를 정하고 마음에 품은 계획을 성공시키려 마음을 단단히 먹기는 했지만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그 결심이 흐지부지되고 만다는 뜻으로 쓰인다. 대개의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 후자의 작심삼일을 경험했을 것이다.조선후기 문인이면서 천주교인이었던 강이천(1769~1801)선생은 그의 저서 ‘중암고’에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을 욕망이라 하고, 제일 좋은 것은 인내’라 기술했다. 또한 그는 ‘내가 어릴 적에 들은 얘기로 도깨비는 식성이 두꺼비를 엄청 좋아하지만 두꺼비를 먹으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두꺼비를 볼 때마다 울면서 잡아먹고, 먹고 나서 죽는다는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크게 웃으면서 생각하기를 먹는 것이 좋기로 과연 그 목숨과 바꿀 정도란 말인가'했다. 하지만 중암은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특히 벼슬아치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았다.사람에게는 욕심이 있다. 욕심은 나쁜 것이니 아예 차단해야 한다는 종교적 입장도 있지만 욕심이라고 반드시 다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좋은 뜻을 이루려는 마음의 욕심은 욕(欲)이라 썼고, 이기적인 나쁜 욕심은 욕(慾)이라 써서 구별하였다. 욕망(慾望)으로 가득 찬 위정자들은 초심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신으로 작심하다 권력을 쥐고 시간이 흐르면서 부귀와 영욕에 취해 권력을 남용하고 갑질하거나 전쟁을 일으켜 그 나라를 망하게 하고 술과 여색으로 자기 몸을 망치는 자들이 세상에 즐비하다.이렇듯 눈앞의 영화와 쾌락 때문에 나라와 자신을 망치는 사람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욕망을 참지 못하고 두꺼비를 잡아먹는 중암이 생각하는 도깨비와 같은 부류들인 것이다. 후한의 학자 왕충의 ‘논형(論衡)’이라는 책에는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름철의 화로와 겨울철의 부채라는 뜻이니 때에 맞지 않아 쓸모없는 사물이나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겠다. 그렇지만 이 말을 뒤집으면 ‘동로하선(冬爐夏扇)’ 즉 겨울철의 화로와 여름철의 부채가 된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위해 요긴하고 필요한 존재가 되는 인재인 것이다. 정치에서 요직에 쓸 수 있는 이러한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한 국가의 부흥을 이룰 수 있다.코드인사나 패거리 정치에서는 잘못하면 초심이나 작심을 망각한 간신들이 설치기 쉽다. 면면을 보면 이런 부류의 간신이 한 명만 득세하더라도, 작게는 대통령이나 크게는 그 나라를 망치고도 남을 만하다. 유종의 미가 없는 우리나라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을 비롯해서 실세로 지목받던 이들이 하나같이 수형복을 입어야 하는 슬픈 현실을 국민들은 보고 있다. 국민의 부름을 받고 취임한지 1년이 된 문재인 대통령은 8일 국무위원들에게 초심을 지켜나가자고 당부했다. 한 정권이 끝나면 재판대에 서야하는 슬픈 역대 정부를 반면교사삼아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새겨들을 당부이다.

2018-05-11

가정의 달을 맞아

▲ 강희룡 서예가5월은 가정의 달이다. 1989년 유엔에서 5월 15일을 ‘세계가정의 날’로 지정한 이래 우리나라는 1994년부터 가정의 날 기념행사를 실시하다가 2004년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은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했다. 여성가족부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함께하는 돌봄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국민 참여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매년 5월만 되면 전국 건강가정지원센터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각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족프로그램이 제공된다. 경북지역도 매년 5일이면 어김없이 어린이날을 맞아 경북어린이날 큰잔치나 백일장, 사생대회같은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성 행사는 매년 그랬듯 일회성 축제로 끝나버리고 만다.부처폐지론까지 나오는 여성가족부는 존재하고 있는 이유가 없고 사회에 큰 역할이 없이 허황된 각종00A0캠페인만 쏟아낸다. 사회 환경조성을 통해 일과 생활균형의 안정적인 양육환경을 조성하고 민주시민교육이 포함된 부모교육도 확산시켜 가겠다는 장광설도 실질적이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선심성 제도로 느껴진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며칠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지고 내년 이맘때쯤에 다시 같은 말을 내놓을 것이다.지금 우리 사회는 비극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가해자들의 잔혹함과 부실한 예방체계에 대한 반짝 분노만 일어날 뿐, 이 같은 비판이 학대 예방을 위한 사회적 지원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노인 관련 전담 부서를 따로 두면서 아동은 여성, 청소년, 다문화가정 등과 한데 묶어 놓고 있다.최악의 아동 성범죄인 나영이사건, 준희양사건 그리고 인천 초등생 유인살해사건 등 이런 흉악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아동학대 예방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외부에 드러난 아동학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동과 학대신고 의무자가 반드시 만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거나 미국이나 영국처럼 영·유아 가정 전체를 대상으로 한 가정방문 서비스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전통사회에서는 본래 바른 생활습관과 품성을 배양하기 위한 조기 인성교육을 중시하였다. 그래서 초등교육 단계의 교재로 소학, 동몽선습 등을 권장하였다. 지식 교육도 획일적이 아니라 개인의 수준과 능력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행해졌다.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지위나 부와 상관없이 인품과 덕망이 높은 인사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졌고 국가에서는 개결(介潔)한 성품과 행실을 갖춘 선비에게 청백리라는 명예를 부여하기도 했다.오늘날의 교육은 인성교육은 사라지고 성공과 출세를 위한 선행적 지식 축적과 일류대학시험에 대비한 작문 연습이 초등교육 단계로까지 퍼져갔다. 이런 현상은 결국 부모욕심에서 기인한다고 진단된다. 학업에 대한 과도한 압박은 자녀를 위축시키고 의욕을 꺾으며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해쳐 역효과를 초래하게 되어 가정이 파괴되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교육부 역시 청소년 범죄만 터지면 장관부터 언론에서 지식보다 예절과 조기인성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부르짖으나 며칠 지나면 모두 공염불이 되고 만다.매년 가정의 달이나 어린이날만 되면 마구 쏟아내는 선심성 탁상행정이나 아이들을 위한 전시성 프로그램도 중요할지 모르지만 아동학대 감시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학 전 아동에 대한 보호 조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사회와 정부가 아동학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과연 예방 의지는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특히 위정자나 공직자들이 먼저 자기의 내면세계를 바르게 가다듬은 후 가정을 잘 돌본 다음에 정치나 공직에 나서야 나라가 혼란스럽지 않다. 수신제가 후에야 치국평천하 아닌가.

2018-05-04

드루킹 사건의 교훈

▲ 강희룡서예가조선조에는 각 개인이 접하는 사회적 범위가 넓지 않아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굳이 장광설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이유는 장광설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알아서 인정해 줬기 때문이다. 현대를 자기표현의 시대라고 한다.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광고를 위해 열심히 연설을 하고 있고 글을 쓰거나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린다.그런데 자신을 내세우는 말을 살펴보면 보편타당한 진리에 입각해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사리와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은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의 주장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서 현란한 용어를 사용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독설을 퍼붓는 경우도 있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며 확산이 아주 빠른 오늘날에는 자신의 언행 가운데 잘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는 반면, 잘못한 것은 순식간에 퍼져 도리어 자신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마디 언행의 실수로 자신이 평생 이뤄 온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우리의 선인들은 말을 함에 신중하고 간략하게 말하고 때에 맞게 말하는 것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또한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면서 행실에 맞게 말을 하여 언행일치가 되도록 하는 것을 아주 중시했다. 자신의 행실은 엉망이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말을 늘어놓는 것을 못난 사람의 전형으로 보았다.선조 때 동인과 서인으로 형성된 당파는 숙종 때에 이르러 극에 달한다. 인현왕후의 폐위를 둘러싸고 남인과 서인이 엎치락뒤치락 정권을 차지하는 이른바 환국(換局)이라는 것이 몇 번이나 있었다. 서인은 다시 남인에 대한 처벌 여부를 둘러싸고 강경파인 노론과 온건파인 소론으로 갈린다. 이즈음의 환국은 단순히 정권만 바뀌는 것이 아니고 필연적으로 상대편의 목숨을 뺏는 핍박이 이어졌다. 이 모두가 서로 일면적인 관점에서 비판하고 항쟁하는 집단인 당파로서 보편적 진리를 스스로 인정하면서 상대 당파를 진리가 아니라고 무화(無化)하고자 한다.조선 후기의 문신인 농은 윤추(1632∼1707)는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의 아우다. 당시 윤증은 아버지 윤선거의 행적 기술과 관련해 그 스승인 송시열과 사제의 의리를 끊을 정도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윤추는 당쟁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조정의 지배층은 백성은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정권탈취와 정적들의 도륙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지방의 수령들은 이런 중앙의 혼란을 틈타 자신이 다스리는 지방에서 가렴주구를 일삼았다. 이런 상황을 직접 목도한 윤추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의 저서 ‘농은유고’에서 이런 위기감을 아버지의 제자인 나양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언급하고 있다.서원과 종사, 문묘가 모두 난잡해 분란이 이미 극에 달하여 벼슬아치들의 가렴주구가 도를 넘고 있다는 걱정과 동한(東漢)의 경우 이렇듯 위아래가 썩어 어지럽더니 결국 나라가 망한 것을 예로 들며 걱정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오늘날 조선의 당쟁보다 더 심한 대립과 갈등이 이 나라를 휩쓸고 있다. 그 당시는 소수 지배층만의 문제였지만 이젠 전 국민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당쟁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짧고 평범해 보이는 편지내용이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시대의 상황이 결코 그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정보매체의 발달을 통해 소통을 기대해보았지만 지금의 ‘드루킹 사건’처럼 댓글이나 여론조작을 통해 정작 상대에 대한 무시와 편견만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는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이단이라는 종교적 맹신도와 같은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지금의 형세는 자신들의 권력 욕심을 채우기 위한 위선적인 몸짓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엄정한 법이 본질을 벗어나지 말고 진실을 밝혀 사회의 정의를 세워야 할 시점이다.

2018-04-27

관행과 도덕성의 평균치

▲ 강희룡서예가관행이라 함은 오래전부터 관례에 따라서 해 오는 대로 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관행이 우리사회에 주는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다. 예컨대 고질적인 촌지관행, 논문쪼개기 특히 전관예우라는 법조계 관행은 홍만표 변호사의 단기간 축재과정이 들통 나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산 사례를 들 수 있다. 당시는 한때 법조계에서는 퇴직 후 2년 이내에 평생 먹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가수 조영남의 대작(代作)사건 역시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부정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관행이 부패의 변명으로 이용된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굴절돼 있다는 것이며 부정과 비상식을 입막음 하려는 것으로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다. 때문에 이러한 적폐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고 주장하여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긍정적인 관행을 세우기 위해서는 정치가 중심을 잡아야 하고 사회가 바로서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사하고, 최소한 나쁜 짓을 했으면 부끄러움 정도는 아는 그런 사회라야 뻔뻔스럽게 대놓고 관행 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김기식 금감원장의 외유성 출장과 관련해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관행이었다면 봐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불과 1년 전 취임식에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결별하겠다는 다짐과는 정 반대의 동떨어진 결정을 내놓았다. 또한 정치자금 사용처 등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연일 불거지면서 사퇴 압박을 받자 도덕성이 평균 이하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들의 눈높이와는 다른 모습이다.여기서 도덕성의 평균이라는 좀 의아한 단어가 나온다. 이 말뜻은 정치인 하나하나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도덕성을 검증하여 정치집단인 국회의원들의 평균치를 낸 다음 그 수치에 대조해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한사람을 지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사례를 여당의 도움을 받아 무작위로 조사한 결과 김 원장의 사례를 국회의원들의 평균치와 따져 보니 국회의 관행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합리화시키려는 식의 해명을 내놓아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국회의원 집단에서 피감기관의 지원이나 국민혈세로 그럴듯한 명칭으로 포장한 외유성 출장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오늘날의 용어에서 도덕이라는 말은 윤리라는 말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없다. 즉, 도라는 것은 인륜을 성립시키는 도리로서 윤리와 거의 동의어이며 그것을 체득하고 있는 상태가 덕인 것이다. 또한 도덕이라고 하면 윤리와 거의 동의적으로 이용되면서도 덕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윤(倫)이라는 것은 중간을 의미하며 인륜이라고 하면 축생이나 금수의 존재방식과의 대비에서 인간 특유한 공동생활의 각종 존재방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사람에게는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동화하려는 유전적 욕망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의 통념이나 도덕률에 일치하지 않는 상태에 있을 때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느낀다. 부끄러움에는 복합적인 사회적 정서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실엄폐를 위해 궤변을 일삼는 것은 이 부끄러움이라는 불편함과 괴로움을 회피하려는 시도이다.김기식 원장에 대해 해임불가 입장을 고수해 온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후원금 사용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선관위에 공식 의뢰했다. 지난 16일 선관위는 관련된 논란에 일부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 발표 후 김 원장은 자진 사임을 표명했고 청와대는 이를 받아들였다. 대통령 취임 시 ‘낮은 자세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이를 맡기겠습니다’라는 말이 아직도 국민들 귓전에 생생하다.

2018-04-20

퇴폐적인 갑질문화

▲ 강희룡 서예가조선시대 갑질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는 면신례(免新禮)를 들 수 있다. 대과(大科)에 급제한 뒤 벼슬에 임명돼 처음 출사하는 사람을 신래(新來)라고 했는데 이 신래가 실질적으로 해당 관청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면신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신입관원이 선배관원들에게 행하는 일종의 신고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처음 만나는 선후배의 관계와 해당 관료 집단의 화목을 도울 수 있는 일종의 통과 의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것이 당사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성을 띠고 있었기에 경제적,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악습에 대해 성종 때 성현(1439~1504)은 새로 문과에 등과한 선비의 지나친 호기를 꺾고 상하의 구별을 엄격히 하려는 데서 면신례가 나오게 됐다고 그 유래를 분석했다. 처음 벼슬하는 사람의 오만방자함을 막고 선후배의 위상을 엄격히 해서 조직생활에 순응하게 하려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율곡 이이(1536~1584)는 고려 말 부패한 과거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했다. 과거 제도가 부패해 젖내 나는 귀족 자제들이 과거에 합격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선배들이 나이어린 급제자를 골탕 먹이려고 했던 것이 면신례의 유래가 됐다는 것이다.세상 풍속이 저속하고 투박해지니 여러 관청에 처음 배속된 관원이 있으면 벌례(罰禮)나 면신이라는 명목으로 술과 고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고는 취하도록 마시고 먹으며 어떻게든 음식의 가짓수와 그릇 수를 더욱 풍성하고 사치스럽게 요구했던 풍습이었다. 당시 처음 관청에 들어왔을 때 그로 인해 괴로움을 당했던 사람도 후배가 들어오면 똑같이 후배에게 반복했다.관료사회에서 심한 병폐를 일으키고 있던 이 제도를 1664년(현종5) 대사간 남구만(1629~1711)이 관원들의 면신례를 금지시키기를 청한 글이 ‘약천집’에 수록돼있다. 당시 적폐인 습속을 벼슬아치의 수치로 여긴 남구만은 임금에게 계(啓)를 올린 것이다. 남구만은 사대부가 출신(出身)해 군주를 섬기는 것은 이익을 얻고 녹봉을 받기 위한 계책만은 아니니 선배들이 후배를 처음 맞이할 때는 읍하고 겸양하며 자리에 오르게 하여 예우하고 공경하는 도리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어찌 되었건 왕조시대의 면신례가 서열과 위계를 중시하는 관료 집단에서 선배가 후배를 길들이는 도구로 이용된 것은 분명하다. 이를 명분으로 새로 출사하는 관원에게 참기 어려운 모욕과 학대를 가했던 데서 신래침학(新來侵虐)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신래 침탈을 금지하는 규정이 경국대전에도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못된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은 조선시대에 줄곧 제기됐다.이와 같은 기존 세력의 텃세 부림은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에서 많이 나타난다. 현시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군대폭력이다. 장군과 그의 부인 갑질을 비롯하여 고참병사가 신참을 가혹하게 괴롭히거나 지속적으로 폭행한 극단적인 사건들이다. 또한 기업에서 애사심을 기른다며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한 신입사원에게 가하는 갑질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듯 선후배간 엄격한 위계질서와 복종을 강요하는 문화는 대학에도 나타난다. 신입생 신고식이라는 관행으로 행해지는 폭행, 강요 등 군대식 얼차려와 각종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자 경찰에서는 대학 내 군기잡기 논란과 관련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집중신고기간을 연장한다고 밝혔다. 오늘날의 갑질은 인권유린은 물론이고 생명까지도 위협할 수 있으며 그 잔혹성은 면신례의 관행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인간적이다. 특히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유리한 위치에서 상대에게 가해지는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갑질문화의 악순환 고리를 끊지 않고 선진국진입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2018-04-13

조선의 서경(署經)과 현대의 공천

▲ 강희룡 서예가조선왕조에서는 인사행정을 일컬어 도목정사(都目政事)라고 했다. 이조와 병조의 인사 전형위원회에서 적격자 3명을 선발한 뒤 왕에게 올리면 왕이 최종적으로 한명을 낙점하고 이를 오늘날 신문이라 할 수 있는 조보(朝報)에 공표한다. 공표했다고 곧바로 관직에 취임하는 것은 아니다. 그 직후 이조와 병조에서 해당자의 친족·외족·처족 등 3족의 아버지·할아버지를 비롯해서 증조와 외조의 명단을 사헌부와 사간원에 보내 결격 사유의 유무를 판정받아야 했다. 이 절차를 서경(署經)이라 하는데 이 서경을 통과한 사람이어야만 취임을 승인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서경에 걸려 고위직에 나가지 못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수없이 많다. 조상들의 잘못 보다는 자신의 탐학이나 음욕이 문제가 된 것이 더 많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뇌물로 들깨 한 섬, 쌀 두 말 닷 되를 받았던 것이 화근이 됐던 인물도 기록되어있다.19세기 개화사상을 폈던 최한기(1803~1877) 선생은 23년의 연구 끝에 내놓은 그의 저서 `인정(人政)`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인 치인술을 논하면서 세상의 인품을 다섯 가지로 분류해 놓았다. 첫 번째는 질새(窒塞)로 선한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으로 그 수가 가장 많다. 여기에 속한 이들은 빈부귀천 등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선한 말을 듣지 않는다. 다시 말해 `꽉 막힌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그 다음으로 많은 부류는 큰 말은 받아들이지 않고 작은 말에만 귀 기울이는 소기(小器)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편벽된 소견을 가지고 간신히 제 몸을 보전하는 데만 바쁜 사람을 말한다. 그 다음이 선한 도를 스스로 깨닫는 통달(通達)이다. 이 통달은 견식이 막힘이 없고 언론이 분명하며, 일을 하는 데도 빈틈이 없고 이웃사람들과도 화목하게 지낼 줄 안다. 다음으로 작은 말은 버리고 큰 말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대기(大器)라 했다. 이 대기는 드물지만 큰일을 맡고 그 업을 이루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재들을 말한다. 끝으로 큰 말을 들어 크게 쓰고, 작은 말을 들어 작게 쓰는 불기(不器)가 그것이다. 도덕과 재능이 뛰어난 이 불기의 사람은 천하에 구하기가 쉽지 않고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가려내기조차 어렵다.지난 왕조시대의 임금들도 자신을 위해 오래 헌신한 사람들을 국정의 주요 자리로 대동하지 않았으며 인재를 널리 찾아 엄격한 심사를 거쳐 발탁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통치에 필요한 공인으로서의 인재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447년 세종은 과거시험의 주제를 `인재를 등용하고 양성하며 분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논하라`로 결정해 출제했다. 이 과거에서 장원으로 뽑힌 사람은 18세의 강희맹(1424~1483)이었다. 강희맹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더라도 여색과 재물을 밝히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후자이며,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으므로 청렴한 사람을 적합한 자리에 기용하여 능력을 키워주면 스스로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 하였다.실제 세종은 `교화하며 쓴다.`는 인재경영론을 펼쳤다. 또한 세종은 인재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은 나라의 수치라며 지역, 신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기회를 줬던 것이다. 이 정책으로 역사상 유독 엄청난 인재가 쏟아진 시기가 이때이며, 당시 발탁된 인재의 임무는 직언극간(바른말로 잘못을 극진히 간함)이 최고 덕목이었다.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 참신한 인물들을 영입하지 못하고 후보자 인물난으로 올드 보이들이 귀환하고 있는 제일 야당을 보면, 공손연의 의기를 생각나게 한다. 전국시대 위나라의 명재상 공손연은 `의리는 줄지어 나는 기러기와 같고, 차례는 꼬치에 꿴 물고기와 같도다`라며 의리를 내세워 자기편만 조정에 줄 세워 끌어들이는 당시의 인사를 비판했다. 인재발탁과는 거리가 먼 기준으로 후보자를 찾으니 인재는 안보이고 인물난을 겪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2018-04-06

공직사회의 메기효과

▲ 강희룡 서예가북유럽 해역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 중에 정어리는 항구에 도착하는 동안 대부분 죽는다. 하지만 살아남은 정어리들은 식감이 매우 좋은 탓에 높은 가격에 팔린다. 이 정어리가 가득 담긴 수족관에 천적인 메기를 넣으면 정어리들이 잡아먹힐 것 같지만, 오히려 생존을 위해 더 활발히 움직여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존이 걸린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하면 미물조차도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이 효과를 `메기효과`라 부른다.미꾸라지 어항에도 메기 한 마리를 넣으면 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미꾸라지가 생기를 얻기 때문에 장거리 운송할 때 이 방법을 이용한다. 메기로 미꾸라지를 생존시키는 이 메기효과를 오늘날에는 기업경영에 접목하기도 한다. 메기 효과를 아는 조직은 다면평가제도나 승진, 성과급, 신진세력 투입을 적용하여 조직의 정체현상을 극복하고, 동기를 부여하여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이다.예컨대, 스웨덴 가구업체인 이케아의 국내 진출을 두고 한국 가구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예상과 달리 이케아의 국내 상륙은 국내 가구업체들이 소비자 기호에 맞추어 더욱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결과 걱정했던 시장잠식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이케아는 국내 가구업체들에게 유익한 자극제로 작용한 메기가 된 셈이다. 오늘날 다수의 사기업들이 사원들 간의 경쟁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회사발전과 능률을 향상시키는 것도 이 메기효과에 의한다고 볼 수 있다.우리의 공직사회에도 민간경력자 출신 공무원이 많이 채용되고 있다. 이 민간경력자들이 정부 부처에 투입되면서 정체된 공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정책에는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투입된 경쟁자의 존재가 기존 경쟁자의 잠재력을 끌어올린다는 일종의 메기효과를 기대하는 셈이다. 사실 지금의 우리 공직사회는 능력이나 실적을 떠나 큰 과오만 없으면 한번 공무원이면 정년까지 영원한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비단 공무원뿐만 아니고 각 대학의 교수나 교직사회도 마찬가지다. 능력과 실적은 뒷전이고 타성에 젖은 무사 안일한 자세와 책임회피, 갑질 등 공직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적인 요인들이 잠재하여 있다.민간경력직 채용제도는 민간의 경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공적업무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가를 선발하여 필요한 장소와 시기에 바로 투입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민간부문의 전문성과 효율적인 업무방식을 공공부문에 접목하는 것을 일부 공무원들은 메기효과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과 걱정을 하고 있다. 승진이나 보직을 놓고 쟁탈전이 치열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능력에 상관없이 `공채 순혈주의나 연공서열`만을 강조하는 것은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못하다.한 국가의 국제경쟁력이 물적요인과 인적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때,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인적요인이다. 민간경력자 상사와 함께 근무했던 행안부의 한 공직자는 `아무래도 민간 영역의 전문가들이 오는 것이어서 공무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던 부분을 일깨워 줄 때가 많았으며, 의사 결정과 실행이 빠르며 배울 점이 많았다`고 한다.국민복지와 행정서비스를 극대화하려는 정책에 두려움을 느끼는 공직자들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복지부동으로 자리에 연연하며 승진만 계산하는 공무원들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공조직이 정체될수록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선생의 백성에 대한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한 백성을 사랑하는 애휼정치에 힘써야 한다는 공직자상을 적은 `목민심서`가 지금의 공직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고 보겠다.

2018-03-30

고위공직자가 국민을 바라보는 시각

▲ 강희룡 서예가`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뭐하러 개돼지들한테 신경을 쓰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한국사회의 부패한 지도층을 조폭, 골프, 영화, 비선실세 등으로 빗대어 허구적으로 창작된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 일부이다. 2년 전 7월 교육부의 한 정책기획관이 언론사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민중은 개돼지다.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 등의 망언을 했다. 본인은 취중에 영화대사를 인용했다지만 당시 상황으로 보아 그의 편협된 사회관으로 인한 진담의 성격이 더 강했다. 결국 이 공직자는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의 실추와 고위공직자가 지켜야 할 품위를 손상시켰다며 최고수위 징계인 파면 처분을 받자 정부를 상대로 파면 불복소송을 제기했다.재판부는 나 전 기획관의 비위 사실은 인정되지만 정도에 비해 징계가 과하며 국민적 공분이 초래된 점이 너무 지나치게 고려됐다고 판단해 나 전 기획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교육부는 당초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었지만 지난 15일, 1,2심 판결을 뒤집기 어렵다며 2심 판결을 수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결과로 인해 이 공직자는 최종 승소해 복직하게 됐다. 이번 판결을 잘 못 해석하면 이제는 법적으로도 대중들을 개돼지로 인식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인간의 사고는 짐승으로 태어나 교육을 통해 하나의 인간으로 길들여진다. 길들여지지 않은 것은 인간이 아니다. 조선의 훈민정음 첫 구절에 나오는 `어린 백성`은 어리석은 백성이라는 뜻이다. 왕조시대 백성을 향한 임금의 `측은지심`은 백성을 어리석은 존재로 보는 시각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백성을 어리석은 존재로 보는 시각과 백성을 개돼지로 보는 시각은 기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한편 생각하면 예나 지금이나 민중은 개돼지 취급을 받아 왔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나라를 팔아먹어도 결국 지지했다.민주주의제도는 결국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불신에 기반하는 체제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공직자들이 백성을 어리석은 존재 또는 개돼지로 보는 것을 거부했으면, 백성을 향한 공직자들의 측은지심 또한 기대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주주의 하에서 대중이 인간답게 살려면 대중들 스스로가 더 이상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나 전 기획관의 시각으로 보면 사람이 1%이고 99%는 개돼지(민중)이다, 그래서 그는 1%의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사회건 신분제를 유지하는 동력은 상위 1%의 귀족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30% 이상을 차지하는 평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파의 한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교육부가 여론의 인민재판이 무서워 일단 파면부터 해놓고, 소송을 걸면 교육부가 패소할 것이니 소송을 통해 복직하라는 심보를 보였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이거야말로 법을 개와 돼지 취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젠 한국의 법까지도 개돼지 꼴이 된 셈이다.제일 야당 텃밭인 경북도지사 경선이 네거티브 등으로 과열, 혼탁 양상을 보인다는 판단 하에, 허위사실 유포, 상호비방 등을 하는 후보자는 자격 박탈 등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한다. 욕심이 눈을 가려 오로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칙이 또 기승을 부린다. 고대 중국의 남용이란 사람이 `시경, 백규`에 나오는 `옥의 티는 갈아서 없앨 수 있으나, 말의 티는 없앨 수 없다.`라는 구절을 하루에 세 번씩 외웠다. 공자는 이것 하나만을 보고서 남용을 선뜻 자신의 사위로 삼았다. 그만큼 공자는 말을 신중하게 하여 허물을 적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도지사 후보자들이 삼가 새겨야할 교훈이다.

2018-03-23

정조의 무술년과 2018의 무술년

▲ 강희룡 서예가조선 제22대 왕인 정조(1752~1800)는 역대 왕들 중 뛰어난 학자이자 문인이었다. 이미 많은 각종 기록물과 학술연구를 통하여 소설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세상에 널리 조명되었으나 대학자며 문인이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정조의 학문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문집이 바로 `홍재전서`이다. 당시 정조는 24세에 어렵고도 큰 왕업을 할아버지(영조)로부터 이어받았으나 당시 좌의정이자 외척인 홍인한이 화완옹주의 양자로 권세를 부리던 정후겸과 연대하여 이를 방해하여 조정이 한때 크게 소란스러웠다. 이로 인해 밤이나 낮이나 삼가 두려워서 편안히 지낼 겨를이 없었다고 하였다. 또한 왕으로서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여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선왕의 가르침을 이어받으려는 노력이 독실하지 못하여 면목을 일신하는 아름다움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적고 있다. 당시 정조는 `풍속이 어그러져 인재가 일어나지 않고 기강이 무너졌으며, 재용이 바닥나고 따라서 역적들이 층층이 생겨나 나라의 형세가 안정되지 않고 있으니 오늘의 현실을 옛날과 비교해 보면 어떤 때와 같겠는가. 과인이야 착하지 못하여 큰일을 해내기에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대들 여러 군자는 어찌 감히 각각 그대들의 지위와 직분을 공경히 수행하여 나 한 사람을 받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기록하고 있다.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맞이한 두 번째 해가 올해와 같은 무술년(1778)이다. 이 해의 지금의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국정전반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정책방향, 중요한 국정 현안을 발표하는 `신년사` 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새해 초에 중외의 모든 신하들에게 신칙하여 유시하는 하교`를 하였다. 그 내용은 `아픈 데를 보듯 하면 반드시 편안하게 해 줄 방도를 생각하게 되고,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면 또 양육할 방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백성들이 마음 편하고 배부르게 되면 그밖에 모든 나랏일이 절로 다 이루어질 것이니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모든 신하들은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정조의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는 연두교서라 하겠다. `서경`에도 `백성들을 내 몸 아픈 데 보듯 하라고 하였고, 또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라고 하였다` 아픈 데를 보듯 하고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라는 것이 어찌 한갓 그렇게만 하라는 것이겠는가. 아픈 데를 보듯 하면 반드시 편안하게 해 줄 방도를 생각하게 되고,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면 또 양육할 방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편안하게 해 주고 양육하는 데에는 방도가 있다. 맹자 역시 `항산(恒産)이 있으면 항심(恒心)이 있다`고 하였다. 이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지난 왕조시대나 지금의 민주주의라는 이 시대나 결국 사람 사는 이치는 한가지인 것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하는 공인들은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인격이나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각자 맡은 직책에 임하라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현실은 전직 대통령과 측근들이 하나같이 국가권력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여 부패와 비리로 수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고 있으며, 미투운동으로 들춰진 사회 지도층의 성범죄나 정치인들이 포함된 공기업, 금융권의 채용비리라는 독버섯 같은 갑질 횡포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정당한 기회와 희망마저 빼앗았다.240년 전 무술년 한 어린 임금이 나라와 백성걱정으로 잠 못 이루며 안으로 삼정승과 백관, 밖으로 방백과 수령은 물론 모든 말단벼슬아치들까지도 백성의 가난과 근심을 덜어주라고 하교한 이 기록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의 이 땅의 공직자들은 잘 새겨야할 선대의 교훈이다. 국민이 쥐어준 권력으로 사욕을 채우는 공인들은 모두 발본색원하여 강력한 법이나 제도 또는 선거를 통해 퇴출시킬 때가 온 것 같다.

2018-03-16

미투와 미퍼스트

▲ 강희룡 서예가눈만 뜨면 사회 전 분야 각 계층을 불문하고 듣기에도 민망한 성범죄가 전방위적으로 폭로되고 있다. 편견과 천박한 권력의 권위주의에 눌려 수면 아래로 내려가 감춰져 있던 성범죄의 추악한 진실이 `미투` 운동으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대표적이다. 원래 이 운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자신이 당한 성폭력 피해사실을 고백함으로써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운동으로 지난해 10월 할리우드의 거물 허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에 대한 여배우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를 끌게 된 해시태그(#MeToo·나도 당했다)를 다는 행동을 발단으로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됐다.올해 1월말 검찰청 전용 웹사이트인 이프로스에 한 여검사가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고위급 검사장에게 장례식장에서 당한 성추행을 폭로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한국판 미투 운동을 불러왔다. 이 여검사가 당한 일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법무부장관 옆에서 여러 명의 검사가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버젓이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성범죄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도 말리지 않고 출세에 눈멀어 애써 모른 체하며 함께 자리한 당시의 동료검찰들도 모두 공범인 셈이다.지난해 우리사회의 문단 내 일부 시인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나왔지만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유야무야됐다. 오히려 폭로에 참여한 일부 여성은 가해자인 남성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다행히도 지금 한 여검사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이 사회의 가려졌던 성범죄행위가 끊이지 않고 고발되고 있다. 검찰조직 외에도 각 대학의 익명 페이스북인 `대나무숲`에는 교수들의 성추행이 잇따라 폭로되고 있다. 특히 문화예술 전공 학생들의 피해가 다수 게시되고 있으며, 그 가해자가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이다. 그들은 유리한 위치를 이용하여 부끄러움 없이 추악한 성범죄의 갑질을 암암리에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여야지도부가 일제히 미투를 지지할 때, 국회 보좌진과 직원들의 고충을 나누는 페이스북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는 `미투야 더 세게 불어 부디 국회에도 불어와 달라`는 소망이 올라왔다. 약자인 여성 보좌진이 하소연할 곳은 이 익명게시판 정도이나 아직 무풍지대인 국회도 성폭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권력의 멋은 모른 채 맛에만 취하여 영욕을 갈구하는 부류들의 놀음은 천박한 정치세계의 정수(精髓)다. 피에 굶주린 듯한 권력의 맛보다는 그 멋을 아는 정치세력의 자기성찰이 바로 세련된 민주정치인 것이다.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군들 부끄러움은 있다. 그렇지만 이 부끄러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결정된다. 한 부장판사는 검찰 내 성폭력 사건에 관련하여 미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성범죄는 나부터 솔선하여 막겠다는 `미퍼스트(나부터 먼저)` 운동을 제안했다. 또한 이런 범죄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원 스트라이크 아웃의 불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엄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조선후기 임광택(1714~1799) 선생의 `쌍백당유고`에 다음과 같은 시가 실려 있다. `얼굴을 보면 다 사람 같은데/ 마음을 살펴보면 간혹 짐승도 있네/ 사람마다 사람답거나 그렇지 않으니/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기를.`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시간의 흐름으로 잊혀지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으로 할 짓이 아니다. 인면수심이란 말이 단지 말뿐이 아닌 세상으로 변한 것 같아 씁쓸하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슬로건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현 정부가 적폐를 뿌리 뽑고 얼마나 청렴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드는지에 작은 기대라도 걸어본다.

2018-03-09

남을 탓함에는 공정함이 있어야 한다

▲ 강희룡 서예가19세기의 조선은 17세기 이후 조금씩 밀려오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조류가 본격적으로 큰 파고를 일으키던 시기이다. 이 19세기를 대표하는 최한기(1803~1877) 선생은 정약용, 김정희와 함께 기존의 동서양의 학문적 업적을 집대성했으며, 한국의 근대사상이 성립하는데 큰 기여를 한 실학자이며, 개화사상의 가교자이다. 또한 조선의 미래를 걱정한 당시의 대 지식인으로서의 최한기 선생은 조선시대 인사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그의 저서 `인정(人政)`에서 `남을 꾸짖음(責人)`을 기술하고 있다.누군가를 꾸짖는다는 것은 그의 잘못을 바로잡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남을 꾸짖으려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있어야 하며 본인의 감정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계산해서도 안 되며, 지위와 힘을 내세워서는 더욱 안 된다. 결국, 꾸짖는 사람이 공명정대하고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말이니 다른 사람을 꾸짖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편협된 개인 생각으로 남을 꾸짖으면 상대방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남을 궁지로 몰아넣어 피할 길이 없게 하기 때문이다. 너그럽고 공정하게 남을 꾸짖으면 상대가 화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상대에게 주선(周旋)할 길과 변통할 방도가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정한 사람이라야 그 잘못됨을 교화시킬 수 있다.`대개 남을 꾸짖는 데는 일정한 기준을 토대로 하여 남과 나를 달리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운행 원리를 거스르면 꾸짖어서 따르게 하고, 국가와 사회의 안녕을 해치면 꾸짖어서 돕게 하고, 사람의 도를 닦지 않으면 꾸짖어서 익히고 행하게 해야 한다. 이는 천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행하는 도리요, 나 혼자 행하는 일이 아니다. 남을 꾸짖어서 감복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 쓰는 방법도 알 것이다.`라고 기록한 최한기 선생의 말에 새삼 고개가 숙연해 진다.공적인 조직이나 직장에도 꾸지람은 존재한다. 업무와 관련된 실수를 하거나 조직에 손해를 입힌 경우에 받게 되는 질책이나 문책 또는 징계가 그것이다. 직위에 따라 상하관계가 정해져있는 조직사회에서의 꾸지람은 보다 체계적이고 공식적이다. 그것은 각 조직의 관리시스템에 따라 행해지며 동일한 행위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원칙이 있다. 때문에 이러한 형평성이 전제가 되므로 직장에서 공적으로 행해지는 꾸지람을 구성원들은 불평 없이 수용하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의 꾸지람이 공정하지 않는 경우는 관리자의 성향이나 지위, 관련된 인물에 따라 달라져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업무상의 실책일지라도 적정선을 넘거나 인격적인 모욕이 느껴지는 꾸지람이라면 그 정당성을 잃는다. 관리자가 폭력적인 꾸지람으로 자신의 인격을 실추시키고 조직까지 위태롭게 하는 경우는 그 꾸지람이 공정하고 타당한 명분과 절차에 따라 상식적인 선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점을 망각해서 생긴 일이다.우리의 정당정치에서 상대에게 나타나는 꾸지람의 행태는 편협한 사람이 남을 꾸짖을 때와 같다. 즉 상대가 자신의 개인욕심을 따르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낸다. 은밀함을 좋아하고, 항상 남들이 알까봐 두려워한다. 겉으로는 아첨하는 태도를 짓지만 몰래 남을 해치는 습성을 감추고 있으니, 남에게 꾸지람을 받기에도 바쁠 텐데 되레 타당을 꾸짖고만 있으니 가히 막장정치의 정수를 보는 것 같다.지난 20대 총선은 세월호사건, 국정교과서, 공천파동 등 이슈들이 합쳐져 당시 기고만장하던 집권당은 결국 국민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당했다. 그 여파로 대통령탄핵까지 몰고 왔으며 지금은 대안 없는 야당으로 전락하였다. 이번 북한의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의 방남을 두고 여야가 서로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하는 고질적인 당쟁행태를 국민들은 보고 있으니 그 꾸지람의 정도는 6·13지방선거에서 곧 나타날 것이다.

2018-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