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삼가기를 옥을 손에 쥐듯, 가득찬 물그릇을 들듯이 조심하라. 이 글은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인 이첨(1345~1405)의 눌헌명(訥軒銘)으로 동문선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우왕 1년(1375) 간관이었던 이첨은 당시 권신이었던 이인임 등을 탄핵하다가 하동에 유배되었다. 유배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설에 오를까 염려한 이첨은 유배지의 한구석에 집을 지어‘눌헌’이라 이름 짓고는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명(銘)을 지었다.‘질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옛말도 있듯 사람의 처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 그리고 말해야 할 것과 침묵해야 할 것을 아는 것이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가 구설과 곤경에 처했던 역대의 설화(舌禍)는 굳이 군더더기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반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국가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허물을 바로잡고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는 올곧고 강직한 말은 윗사람의 노여움을 사기 쉬운 법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첨은 조정의 전권을 쥐고 전횡을 일삼던 권신을 주살하기를 청했다가 겨우 목숨을 건져 머나먼 남쪽 변방 해안가에서 10년이나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자신의 집을 눌헌이라 이름 짓고 말하기의 신중함을 강조하는 명을 지은 것으로 보아 언뜻 젊은 혈기에 집권자에 맞섰던 자신의 경솔한 언행을 후회하고 자숙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공자 역시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동은 준엄하게 하되 말은 낮춰서 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첨이 눌헌명의 뒤에 쓰다(題軒銘後)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이 명을 지은 것은 평소의 생각을 밝힌 것이기도 하지만 뜻이 좌절되고 기가 꺾인 자신을 조금이나마 격려하고 분발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위의 말은 공자의 말은 낮추어서 해야 한다는 뜻을 부연한 것이다. 즉 혼란한 세상에서도 해야 할 말은 하되 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돈키호테, 황교안 대표를 애마, 박형준 공동선대위원장을 시종에 비유하며 비판한 것을 건전한 비판과 해학이었다고 주장하며, 막말과 혐오발언의 사전적 의미까지 들먹이며 자신의 발언을 정당화했다. 정책경쟁이 실종된 지난 4·15 총선에서 후보자들의 막말은 ‘사이다 성’ 발언으로 지지층 결집을 굳히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미래통합당 후보들은 3040세대 비하에 이어 세월호 참사까지 비꼬는 거친 발언으로 선거에서 실패했다. 막말 논란은 단순 실수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당의 공천이 부실했다는 방증이며 선거결과는 참담했다. 또한 공천에 탈락하자 미래통합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홍준표, 권성동 의원은 복당도 되기 전에 원내대표와 대권주자로 본인들이 적합하다며 말을 앞세우다 진퇴양난의 입장이 된 것 같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더욱 부추길 수 있으며, 정치의 ‘고인 물은 민주주의를 위기에 처하게 한다.’는 말을 새삼 느끼게 하는 오늘의 정치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