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바이러스의 습격과 영화의 시사성

강희룡 서예가조선은 의학수준이나 구료 대책이 역병에 매우 무력했기에 주민 90% 이상이 살기 위해서는 타 지역으로 대피했다. 한양에서 역병이 돌면 한성부가 역병환자나 죽은 주검을 적발해 성 밖으로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했고 혜민서나 동서활인원에서 역병으로 굶주린 이들을 보살폈다. 하지만 후기로 오면서 이 활인원의 의관들은 태만했고 약을 횡령하기 바빴기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다가 결국 1882년에 사라졌다. 당시 극성을 부리던 역병으로는 두창(痘瘡),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으로 가장 피해가 큰 것은 두창과 콜레라였다. 질병사(疾病史)에 따르면 18~19세기 전 세계에서 동시 발생한 전염병에 대해 조선도 국제교역으로 인한 세계역병유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사회변동으로 인한 인구밀집이나 잘 씻지 않고 날것을 즐겨먹는 문화, 관습적 측면에서도 그 원인이 있었다.‘마마(5ABD5ABD))’로 불리는 천연두(두창)는 가장 무서운 질병으로 감염되면 대개 죽음에 이르렀고, 살아남는다 해도 얼굴에 흉터가 남아 곰보가 됐다. 전염성도 강해 아즈텍과 잉카문명을 멸망케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조선 역시 천연두를 하늘이 내린 불가항력의 재앙이라 여기다 종두법의 수입으로 이 병을 이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콜레라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 의료선교사인 에비슨은 1895년에 창궐한 상황을 보고 ‘내가 살면서 본 일 중 가장 절망적이고 무서운 병으로 약도 죽음을 늦출 뿐이고 쓸모가 없다. 독은 단번에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고 모든 기관을 정지시켰다’고 적고 있다.이로 인해 역병이 한 번 돌면 수많은 사람이 겪고 죽었기에 마을 언덕은 무덤으로 가득 찼다. 중세 유럽사회의 봉건제도를 몰락시킨 흑사병이나 1918년 미국 시카고에서 창궐한 20세기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불리는 감염병인 스페인독감 역시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갔다. 1976년의 영국의 미생물학자 피터 피옷이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에서 발견한 에볼라바이러스를 비롯해 2002년 말 중국 광둥성에서 발병한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을 강타한 메르스 등 이런 바이러스가 주기적으로 휩쓸고 지나간 후 지금 코로나19가 또 다시 세계에 확산됐다. 이런 바이러스의 참상과 공포는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에볼라의 출현은 세균의 대유행을 의미하는 ‘아웃브레이크’라는 영화를 탄생시켰고, 파멸로 가는 진실인 ‘리트릿’은 공기전염을 통한 바이러스의 확산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컨테이젼’은 전염병 확산에 따른 인간의 공포와 사회적 혼란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이다.한국을 배경으로 한 ‘감기’는 현 상황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영화로 중국을 발원지로 변종 조류독감이 밀입국자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면서 감염원에 의해 급속도로 퍼진다. 100% 치사율을 다룬 영화로 도시폐쇄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택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보면 바이러스나 곰팡이 등 고대 미 생명체에 의해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미래학자들의 의견에 그 가능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런 장르의 영화 역시 인류에게 던지는 바이러스의 공포와 그 심각성에 대한 메시지는 주목해야 할 시사성이 크다고 보겠다.

2020-03-09

역병과 종교의식

강희룡 서예가한반도에서 역병의 최초 기록은 백제 온조왕 4년(BC15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전염병은 조선 후기 이르러 더욱 많이 유행하여 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인구를 감소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역병은 역신(疫神)이 사람에게 붙어 괴롭히다 데려가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 귀신을 복숭아 나뭇가지로 때리거나 불을 이용해 겁주어서 쫓아내는 방법인 축귀(逐鬼)와 달래서 귀신을 떼어주는 ‘굿’과 ‘여제(53B2祭)’ 가 시행되었고, 더 큰 신령의 도움을 받아 벗어나는 방법으로 장승이나 성황당 등에 비는 방식이 예방과 치료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여제는 중국 주나라의 제례를 적고 있는 예기(禮記)에 따르면 천자는 일곱, 제후는 다섯, 대부는 세 가지 제사를 지내는데 이들 제사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에는 태종(1400~1418) 때 처음 기록이 보인다. 이 제사는 상시적, 일시적 2가지 형태로 행해졌으며, 왕이 직접 제문을 짓기도 했다. 귀신 섬기기 가장 좋은 날을 택해서 지냈으나, 급하면 길일을 잡지 않고 역병이 난 지역에서 임시적으로 바로 제를 올리었다. 당시의 역병은 이겨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고 삶과 더불어 함께하는 존재로 인식했기에 망자는 저승에서의 극락왕생을 빌어주고, 산 자들은 업을 소멸시켜 극락을 누리게 한다는 법회인 수륙재(水陸齋) 같은 불교의식이 발달해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됐다.지금 세계는 코로나19라는 역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단시 되던 신천지교단이 이 역병의 슈퍼전파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신분과 행적까지 감추고 있어 감염원 추적에 애를 먹고 있다. 이만희 교주는 ‘금번 병마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마귀짓’이라며, ‘말씀과 믿음을 지키자.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하나님의 것이다(요 11:25-27)’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이 교단뿐만 아니고 기성교단의 목사들도 이런 재해를 대개 ‘신의 벌’로 해석해 설교하고 있다. 자연에 신이 직접 개입한다고 믿었던 중세인의 사고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18세기에 프랑스의 천문학자였던 라플라스의 ‘천체역학’ 논문을 통해 신은 과학에서 이미 사라졌다.구약(舊約)의 ‘숨은 신’이 된 것이다. 성경과 우리의식은 엄청난 공간적·시간적 간극이 존재한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친 말씀을 오늘의 한국인을 위한 메시지로 바꾸는 데는 심오한 해석이 필요하다. 임기응변식 해석으로 고대인의 세계관이 오늘의 신자들 머리 속을 지배하게 되면 종교적 상징과 비유를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이어 맹신이나 광신에 빠지기 쉽다. 28년 전 다미선교회의 시한부 종말론(1992년 10월 28일 휴거소동)의 끈을 그대로 잇고 있는 이단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례는 이단일수록 숨은 신을 끌어내어 사람들에게 현시하려는 경향이 높다. 이들과 오늘날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공통점은 이 사회에서 자신이 ‘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염병 방역이 ‘심각’ 단계로 올라간 날 한기총 회장은 광화문에서 신도들에게 이렇게 토해냈다.‘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코로나여 물러가라!’

2020-03-02

정치인과 아수라

강희룡 서예가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시스템의 핵심 동력은 탐욕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탐욕 덕분에 첨단기술 등을 개발했지만 바로 그 탐욕 때문에 도덕을 무시하기도 한다. 신이 아니고서야 사람에게는 양면의 모습이 존재한다. 즉 ‘예의바른 나쁜 인간’이다. 과일을 아무리 얇게 잘라도 그 반대 면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이중성도 여기에 해당된다. 다만 자신의 신앙과 양심 그리고 도덕정신에 따라 선과 악 중 어느 부분이 크게 될 수 있어 나머지 한쪽을 제어하게 되는 것이다. 인도 신화에 ‘아수라’ 라는 신이 있다. 어느 날 자기 여동생을 희롱하던 ‘인드라(인도신 중의 왕)’와 한판 결투를 하게 된다. 그 결투에서 인드라는 패하게 되고 도망을 간다. 아수라는 그런 인드라를 계속해서 쫓자 도망가던 인드라는 자기 발 앞에 지나가는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잠시 멈추게 되고 그로인해 치명타를 입는다. 그러나 인드라의 임기응변으로 상황은 역전되어 결국은 아수라가 패한다. 이 사건으로 아수라는 나쁜 신이 되고, 문제의 발단을 일으킨 인드라는 쫓기는 입장임에서도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위험을 자초한 면이 훌륭하게 받아들여진다. 아수라의 지나친 집착과 복수심은 그를 악한 신으로 만들고 흔히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두 얼굴의 신으로 불린다. 때문에 한쪽은 악의 얼굴로 한쪽은 선의 얼굴로 표현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어디서나 그 이중성을 찾을 수 있다. 이 이중성이 진실의 잣대로 실망을 크게 안겨줄 때 상대를 영원히 아웃시켜 기억에서 지우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선행을 할 수도 있고 악행을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인간의 이중성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윤리는 이렇게 인간의 이중성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이러한 사람의 이중성은 정치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난다. 겉으로는 서민을 위하는 척 하면서 부와 권력을 대물림 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 한 예로 조국의 트위터가 이 이중성에 대한 가장 정리된 지식의 보고(寶庫)이다. 그의 행적과 말은 모순을 통한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검찰해체를 시발점으로 궁극적으로는 법치와 국가해체를 구현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 단계적으로 천민 부르주아로 일평생 살아왔고 이 시점에는 언행의 불일치를 통해 유물론적 변증법의 중간 단계로서 공산 혁명을 이루고 나아가서는 아나키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지금 나라는 코로나19로 몸살을 앓는다. 국가 간의 눈치 속에 미온적인 대책으로 방관하더니 전국으로 확산되자 최고대응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허나 이미 늦었다. 5년 전 메르스의 홍역을 앓고도 설마하다 지금과 같은 괴물로 키운 것이다. 보건, 방역의 최일선인 의료 기관부터 정부와 시민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전염병의 사태가 번지는 데 일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와중에 경험과 학습 효과가 있어서 메르스 때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 다분하다. 공동체의 안전보다는 자신이나 패거리의 이익만 앞세우는 위정자들과 우리의 이중성이 지금 코로나19를 통해 아수라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2020-02-24

새 법보다는 원칙을 지켜야

강희룡 서예가‘승정원일기’ 영조 7년 2월 27일의 기록을 보면 ‘새 법을 세우지 말고, 옛 법을 바꾸지 말라.’고 적혀있다. 영조 7년 2월 27일 경상도 암행어사 이흡은 자신이 둘러보았던 고을 중 재해가 가장 심한 고을의 상황을 임금에게 아뢰면서 고을 현감이 백성들을 진휼하기 위해 감영(監營)에서 빌려와 쓴 돈은 공적으로 쓴 것이니 규정을 조금 고쳐서라도 그 일부를 관찰사가 탕감해 줄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하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 함께 입시한 우승지 조명신은 이 건의를 반박하며 탕감 받는 사례가 늘어나서 새로운 규례가 된다면 나중에는 재정이 고갈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국 백성들에게 다시 세금을 거둬야 하는 폐단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옛 법인 수령칠사(守令七事)의 정신을 거론하며, 백성들을 아껴야 하는 본래의 도리에 힘쓰도록 수령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수령칠사란 새로 임명된 수령이 임금을 하직하고 부임지로 갈 때에 외던 일곱 가지 조목으로, 농업과 잠업을 이루는 일, 인구를 늘리는 일, 학교를 일으키는 일, 군정의 정리, 부역을 고르게 매기는 일, 송사를 간명하게 처리하는 일, 간교한 행위를 종식시키는 일 등으로 관리들이 백성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임무였다. 조명신은 고을 수령들이 이런 기본 원칙은 소홀히 한 채, 칭송 받을 욕심으로 이리저리 변통에만 애쓰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즉 가장 중요한 원칙만 제대로 지킨다면 굳이 새로운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추미애 장관이 검찰 내 수사와 기소 주체 분리 방안 등 검찰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전국 검사장 회의를 소집했다. 검찰과 논의 없이 주요 법무행정 절차를 바꾸겠다고 발표한 건 문제라는 지적이 일자 뒤늦게 의견 수렴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수사와 기소를 각각 다른 검사가 판단하게 되면 사건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데다 외압 등이 끼어들 우려가 크다는 문제점이 있는데다 또한 이미 비슷한 제도로 인권수사자문관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데도 느닷없이 생소한 제도를 또 제안한 건 다른 의도가 있을 거라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법안의 내용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저 조명신의 주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새로운 법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하는 말이다. 새로운 법을 만들든 옛 법을 다듬어 쓰든 핵심은 억울한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4+1협의체라는 희한한 정치구도로 그들의 입맛에 맞게 통과시킨 공직선거법개정은 벌써부터 기득권에만 유리하게 적용돼온 선거법의 모순이 벌써부터 드러났다는 분석도 있다.사회질서를 위해 원칙이 제도화된 것이 법이다. 권력자들은 이 법을 마음대로 고무줄처럼 적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과거 대통령들이 취임할 때마다 원칙이 지켜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쳤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 사회에서 원칙은 더 무력화되고 있다. 그 이유는 고위층부터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참된 민주주의는 새 법보다 원칙을 지킨다.

2020-02-17

양치기소년과 양두구육(羊頭狗肉)

강희룡 서예가양두구육은 양 머리에 개고기라는 뜻이다, 겉과 속이 다른 속임수를 꼬집는 말이다. 이 고사성어의 배경은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이 궁인들 가운데 잘생긴 여자들을 뽑아 남장을 시키고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괴상한 취미에서 비롯되었다. 궁궐의 소문이 널리 퍼지자 백성들 가운데 예쁘다는 여자들도 모두 남장을 했다. 그러자 영공은 대궐 밖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금한다고 포고령을 내렸다. 그래도 금령이 잘 지켜지지 않자 재상인 안영을 불러 그 까닭을 물었다. 안영이‘왕께서는 지금 궐내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시키시면서 궐 밖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은 금하고 계십니다. 이는 마치 밖에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은 속임수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곧 깨달은 영공은 궁중에서도 남장을 하면 안 된다는 명을 내렸다.다산 선생의 목민심서 호전육조(戶典六條) 제3조 곡부(穀簿), 곡식장부에 ‘윗물이 이미 흐리니 아랫물이 맑기 어렵다’라는 기록이 있다. 춘향전에 신관사또에게서 모진 매를 맞고 옥에 갇힌 춘향이의 심정을 노래한 12잡가 중 형장가에 ‘국곡투식(國穀偸食)하였느냐’라는 대목이 나온다. 국곡투식은 나라곡식을 훔쳐 먹는다는 뜻이다. 이런 기록들은 모두 나라를 이롭게 해야 할 위치에 있는 관리들이 그들의 영욕으로 되레 나라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추미애 법무장관이 1월 9일 검찰고위직 인사파동을 야당이 비판하자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했다. 그 후 2월 3일 신임검사 임관식에서는 윤석열 총장이 후배 검사들에게 강조했던 ‘검사동일체 원칙’을 비판하면서 검찰조직에 뿌리 깊은 상명하복의 문화가 있다며 검사들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면서 상명하복 문화를 박차고 나가서 정의감과 사명감이 있는 존재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와 연관된 고위층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수사라인을 개혁으로 포장해 장관의 인사권을 이용해 공중분해 시킨 것은 이 사건을 덮으려는 인상이 깊다. 또한 상명하복을 강조하며 검찰조직에는 이런 문화를 없애라고 한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위이며 그가 말한 정의감과 사명감의 개념은 국민의 상식과 상반되는 느낌이 든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관한 공소장 미공개에 대한 비판에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은 신뢰감만 떨어진다.진실과 거짓게임에서 승자는 결국 진실 편에 있다. 거짓말은 곧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며 바로 척결대상이다.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려는 헛된 생각은 추악한 범죄이며, 이를 용인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진실을 왜곡하기 위해서 공직자로서 저지르는 비도덕적인 행위를 바로 ‘양두구육’이라 일컫는다.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고대 그리스 이솝의 ‘양치기 소년’ 우화는 거짓말은 매우 나쁜 것으로 그 결과는 참혹한 불행을 자초한다는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거짓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자 한다면 이는 이른바 양치기 소년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스스로의 몸이 반듯하면 단속하지 않아도 모두가 따르지만, 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단속해도 따라주지 않는다는 ‘논어’의 구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20-02-11

데카메론의 기억

강희룡 서예가13세기에 남러시아에 성립한 몽골왕조를 금장한국(金帳汗國)이라 한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바투는 몽골 서정군의 총수가 되어 러시아 및 동유럽과 남러시아를 장악해 킵차크한국의 기초를 구축했다. 1347년 무렵 이 킵차크 군대가 제노바 시를 향해 페스트 환자의 시신을 쏘아 보냄으로써 유럽에 페스트를 전파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동방 원정에 나섰던 십자군 병사들이 보석과 동방 문화를 약탈해 오면서 부수입으로 나병과 흑사병을 얻어 왔다는 것 또한 정설이다.그때부터 순식간에 퍼져나간 흑사병은 불과 수년 동안 이탈리아,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 중부를 거쳐 3년여 만에 스칸디나비아 국가에까지 이르렀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전 유럽인구의 1/3 내지 1/4이 사망했다고 기록된다. 숫자로는 약 2천500만에서 6천만명에 이르는 유럽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서유럽의 인구는 16세기가 되어서야 페스트 창궐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당시 흑사병이 가져온 유럽인들의 공포와 사고의 변환을 잘 보여 주는 문학 작품이 있으니 바로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가 1348년에서 1353년까지 쓴 소설들을 묶은 단편 소설집 ‘데카메론’이다. ‘열흘간의 이야기’란 뜻의 이 작품에는 피렌체에 창궐한 흑사병을 피해 시골의 한적한 별장에 몸을 숨긴 청년 셋과 처녀 일곱 명이 열흘간에 걸쳐 차례로 이야기한 기록, 즉 100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단테의 ‘신곡(神曲)’과 견주어 이 작품을 인곡(人曲)이라 할 만큼 근대소설의 선구자가 탄생된 것이다.흑사병의 공포는 유럽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로 예술이 후퇴한 것이다. 예술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창의력에서 비롯되는 것인 만큼 예술가들이 사라지고 난 후 그 자리를 메우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예술가들이 선호하던 여행까지 금지가 되었으니 운이 좋아 살아남은 예술가들이 그릴 만한 것은 너무나 생생한 기록인 페스트가 남긴 공포뿐이었다.다음으로 나타난 현상은 사회계층의 급격한 변동이었다.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은 지주의 파산으로 이어졌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임금은 급격히 상승했다. 게다가 금은보화는 아무리 쥐벼룩이 공격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이전에 비해 훨씬 많은 재산이 할당되었다. 이 시대만큼 졸부(猝富)가 급격히 출현한 시대도 드물 것이다. 이 졸부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지식을 머리속에 채우기보다는 겉치레만 신경 쓰는 유행으로 인해 패션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 중국 우한지방에서 발생된 신종역병으로 인해 전 세계가 비상이 걸렸다. 앞으로 어떻게 확산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정부는 중국 눈치 보며 강력한 대책에 미온적이다가는 ‘설마가 사람 죽인다’는 속담을 상기해야 될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이 신종 코로나 감염자가 한 명 발생하자마자 70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바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0-02-03

세습정치의 폐해

강희룡 서예가세습(世襲)은 신분이나 재산, 생활양식 및 각종 규범 등이 혈연이나 지연에 의하여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 왕조사회에서는 세습이라는 말을 그 대상에 따라 여러 가지로 표현하여 왔다. 왕권세습 경우에는 정치적, 법률적 용어에 한정하여 사용되어 왔으며 재산세습은 특별히 상속(相續)이라는 말로 표현했고, 학문이나 기예의 세습은 사사(師事)라는 용어가 널리 쓰였다. 이처럼 다양한 의미들을 담은 포괄적인 생활언어로는 대물림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경국대전, 예전편(禮典篇) 노비토전사패식조(奴婢土田賜牌式條)’에는 왕이 공이 큰 신하에게 ‘종과 토지 몇 결(結)을 상을 주어 영구히 세전(世傳)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교지가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왕이 특정 가문에서 노비와 토지를 세습할 수 있도록 법으로 인정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과거제도는 조선시대의 신분구조를 결정지었던 교육제도로 각 신분에 따라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문과·무과·잡과·역과 등으로 과거의 분야가 결정되었다. 결국 한 가문의 신분이 대대로 세습되도록 하는 법적 근거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과거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조차 없었던 노비나 죄인은 자연히 신분세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학문의 세습은 학연에 따라 이루어졌기에 일정한 학통(學統)을 형성했다. 그리하여 한 학자의 학통을 보면 그의 가문, 학문적 성향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예컨데 ‘계문(溪門)’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퇴계 학파를 줄여서 부르는 말로 안동지역에서는 학통이 계문과 연결되어야만 그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학문의 세습은 당파싸움이나 각종 시비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현대의 민주주의사회에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분야에서 균등한 기회가 주어진다. 2018년 말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산하 기업노조에서 간부들에 의한 고용세습이 있었던 것이 드러나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근로기준법과 고용기본정책법, 직업안정법 등을 위반한 불법행위를 ‘오래된 노사 간의 관례’라고 변명한 것을 보면 고용세습이 흔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한 면을 보여주었다.결혼 후에도 자립되지 못하고 부모에 기대어 사는 사람을 ‘캥거루족’이라 한다. 정치판에도 캥거루족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이 아버지의 지역구에서 출마하겠다고 하면서 지역구세습 시비에 휘말렸다. 문 의장 역시 의장 역할은 잊은 채 아들 공천을 염두에 두고 작년 연말 제1야당의 강한 반대에도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을 4+1협의체를 만들어 앞장서서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 지역구를 세습한다는 싸늘한 민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지난 23일 총선출마를 포기했다. 세습 정치의 폐해는 바로 부녀 대통령시대를 연 박 전 대통령으로 정치인으로서 스스로 이뤄낸 성취보다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권력 정점까지 올랐다 국민들 손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왔다. 그의 몰락은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2020-01-28

공인의 대공무사(大公無私)의 정신

강희룡 서예가공(公)이란 글자는 본래 ‘사(私)를 나눈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사를 나눈다는 말은 바로 가난을 같이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여러 사람과 어려움을 같이하는 것이 바로 공적인 행동이라는 풀이로 해석되며 거둬들인 국민 세금으로 생활하는 모든 공무원을 공인이라 하는 것이다.여씨춘추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고전에 인사 원칙으로 이런 기록이 실려 있다. ‘공직을 추천하는데 밖으로는 원수를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친척을 피하지 않는다. 원수를 배제하지 않았고 아들이라고 피하지 않았으니 기황양이야말로 대공무사(大公無私)하다.’대공무사란 이와 같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냉철하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고사성어의 내용은 이렇다. 춘추시대 진나라 평공이 기황양에게 ‘남양에 현령 자리가 비었는데 누구를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라고 묻자, 기황양은 주저 없이 ‘해호’를 추천했다. 해호는 기황양과 극히 서로 미워하여 원수처럼 여기는 사이였는데 추천하자 평공이 놀라 다시 묻길 ‘해호는 그대와 원수지간이 아닌가? 어찌하여 해호를 추천하는 것인가!’이때 기황양은 ‘왕께서는 현령 자리에 누가 적임자인지를 물으셨지, 누가 신과 원수지간이냐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 후 평공이 다시 조정에 법을 집행할 사람 한 명이 필요하다면 누구를 추천하느냐의 물음에 기황양은 이번에는 자기 아들을 추천하였다. 평공이 자신의 아들을 추천함을 의아해 묻자, 기황양은 일에 적임자냐고 물으셨지 그가 내 아들인지 아닌지는 묻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 두 사람은 모든 공적인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여 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된 임명이라고 칭송했다.전국시대 말기의 한비자는 노자의 도론(道論)을 수용하여 법치사상의 세계관은 자연원리의 보편성과 공평무사 객관성을 주장했다. 또한 법치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백성들의 귀천과 관계없이 평등하고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정치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사람을 기용하는 용인(用人)의 기술은 국가 통치의 중요한 방면이기에 개인적 감정을 공적인 일에 개입시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사건을 언급하면서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만으로도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면서 조 전 장관을 둘러싼 갈등을 끝내고 이제 좀 놓아주자’고 호소했다. 범법행위로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를 사적으로 마음의 빚을 졌다고 풀어달라고 호소하는 대통령으로서의 행위는 참담하며, 불법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을 초법적이라며 국민이 준 권한을 이용하여 수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국가 공공조직은 투명성·공정성·객관성을 기반으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유는 특정 조직체를 넘어 한 사회의 가치 척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오늘날 한비자나 우리가 그리는 법치주의 이념이 진정으로 실현된 이상세계는 아직도 달성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2300년 전 한비자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2020-01-20

간디 망국론(亡國論)의 교훈

강희룡 서예가정치세력 간 갈등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조선후기의 당쟁과 세도정치가 유독 거센 비판을 받는 데엔 그 이유가 있다. 왜란과 호란이라는 큰 전쟁의 와중을 겪은 후에도 지배층은 국가나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그들의 영욕만을 위한 권력다툼을 벌인 탓이다. 이러한 지도층의 갈등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일상화됐다. 조선후기 국왕의 위임을 받아 정권을 잡은 특정인과 그 추종세력에 의해 행해지던 세도정치는 사회변화를 바탕으로 한 조선의 전통적 지배체제가 전반적으로 한계를 드러내자 마지막으로 도달한 정치운영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조선후기는 진주민란을 계기로 한 전국적인 ‘임술민란’에 나타나듯이 민중의식이 성장하고 상업이나 농업경영을 통한 새로운 성격의 경제시스템을 통해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력을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던 민중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처할 역량이 없던 부패한 지배계층은 오히려 그들의 낡은 지배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쪽으로 권력을 집중시켰던 결과가 망국으로 귀결된 것이다.인도 건국의 아버지이며 인도 민족운동의 지도자라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는 나라가 망하는 데는 일곱 가지 원인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원칙 없는 정치, 둘째, 도덕이 빠진 상업, 셋째, 노력 없는 부(富), 넷째, 인격이 빠진 교육, 다섯째, 양심이 마비된 쾌락, 여섯째, 인간성 없는 과학, 마지막으로 희생이 빠진 종교’가 그것이다. 이중 ‘원칙 없는 정치’를 망국의 으뜸으로 꼽았으며 이러한 정치는 부패한 권력을 낳아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에서 한국처럼 법의 해석과 적용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념은 무조건 옳고, 상대조직의 이념은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진영논리로 흘러 국가의 통치력으로 객관적 법치의 원칙을 파괴함으로 이미 그 기능을 잃어버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조국일가의 범죄행위와 하명수사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선거공작이라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모두 청와대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로 밝혀지자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취임과 동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조직을 개혁이라는 명분을 들어 법과 상식을 벗어난 인사이동을 감행했다. 이 인사의 내막엔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행위에 대한 수사가 좁혀오자 검찰개혁으로 포장해 수사조직을 공중분해시킴으로써 사건 자체를 덮으려는 속셈과 보복성 인사의 성격도 담겨 있다고 보겠다. 원래 검찰은 국민의 안전보장과 국가기강 확립,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부패척결과 약자보호 그리고 인권보장에 그 사명을 두고 있다. 이 사명완수를 위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검찰조직을 정부와 여당이 요구하는 입맛에 맞게 칼을 마구 휘두르는 현실을 보면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애초부터 없는 원칙이 무너진 좌파정치의 민낯을 보고 있다. 간디가 설파한 망국론이 요즈음 한국 사회의 자화상으로 다가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나라 안팎으로 처한 불확실한 시국에 대해 절망과 분노를 넘어 이제 국민의 권리인 저항권을 행사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2020-01-13

사자성어 수난시대

강희룡 서예가공자는 제자들과 일찍부터 춘추오패의 하나였던 제나라 환공의 묘당을 찾았다. 묘당 안에 들어서자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쓸모없는 술독이 바로 눈에 띄었다. 이 술독을 반기는 공자를 보고 그의 제자들이 의아해하자 제자들에게 술독에 물을 채우도록 시켰다. 물이 반쯤 이상 차오르자 신기하게도 비스듬했던 술독은 바로 섰고, 물이 점점 더 가득 차자 다시 비스듬히 기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엎어지고 말았다. 이 독이 제나라 환공이 항상 의자 오른쪽에 두고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며 나라를 다스렸다는 술독이다. 일명 좌우명(座右銘)이라고도 한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배웠다고 교만하게 군다면 반드시 넘어진다는 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이다.현대인들도 해가 바뀔 때마다 스스로 경계하는 격언이나 좋은 문장을 마음의 거울로 삼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려고 마음에 새긴다. 개인 말고도 정부 또는 정당,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도 한해 목표를 설계하고 달성을 위해 정진할 것을 다짐하는 교훈이나 사자성어를 쏟아낸다. 지난 2019년 새해를 맞아 경북도는 냉재야화(冷齋夜話)에 실려 있는 황정견이 주장한 환골탈태(換骨奪胎)로 정했고, 포항시는 조선 후기 학자인 유도원의 노애집에 실려 있는 사당잠(四當箴)에서 인용된 동필유성(動必有成)으로, 포항시의회는 ‘후한서’ 주목전에 나타나 있는 동주공제(同舟共濟)로 정하여 한해를 마무리했다. 개인들이 각자가 스스로의 삶이 풀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정하는 좌우명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없으나 공기관에서 정하는 이러한 사자성어가 도정이나 시정에서 조직의 목표에 대한 실천의지가 일 년 동안 반영되어 시민들을 위해 목표를 완성하였다면 다행이나 그렇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감언이설로 시민들을 속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한해가 바뀌어 경자년을 맞았다. 2020년 역시 경북도·주요 시군에서는 서로 뒤질새라 경쟁하듯 사자성어에 정책 비전을 담아 마구 쏟아냈다. 푸른 새바람으로 경북에 좋은 일들을 많이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은 도청의 녹풍다경(綠風多慶), 마음을 합쳐 힘써 나아가자는 뜻의 포항시의 합심진력(合心進力)을 비롯해 경북도내 전 기관단체들과 기초자치단체가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 새해 비전과 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을지 모르나 일 년 후 그 결과에 대해서는 거울 속에서 냉철하게 분석하여 비춰보아야 한다. 역사에 대한 분별 기준이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아닌 상대적인 이해관계가 되어버린다면 언젠가 우리는 무엇이 옳은 역사인지도 그른 역사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역사는 거울이다. 지난 일이 옳은지 그른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현재의 일이 옳은지 그른지는 알기가 어렵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변화에 속도를 내고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성과를 더욱 많이 만들겠다는 의지로 인용되는 사자성어들이 역사의 거울 앞에서 성찰적이지 않으면 매년 그렇듯이 그 빛을 잃고 말잔치로 끝날 것이다.

2020-01-06

조선의 삼사(三司)와 공수처

강희룡 서예가빛나는 문화와 풍요로운 경제력을 자랑했던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백성을 위한 모범적인 정치를 위해 ‘언론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라는 유훈을 남겼다. 왕이 간신의 아첨에만 빠져 있으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으며 결국 망국으로 치닫는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게 되면 어느 누가 나라를 위해 바른 말을 하겠는가.송 태조가 언로(言路)를 보호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조선의 건국 주체들의 생각엔 언로의 보장은 그들의 이상에 매우 적합한 제도였고 언관(言官)제도의 강화를 위해 왕명과 정책에 직접 간쟁을 담당하는 언론기관을 창설했으니 삼사(三司)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료들은 이 삼사에서 관직생활하는 것을 영예로 여겼으며 이들의 주요 임무는 잘못되는 정치 전반에 걸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 직책이었다.따라서 이들의 힘이 강할 때는 왕권과 신권의 전제를 막았으나 이들의 힘이 약하거나 파벌에 의해 나눠질 때는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백관을 규찰하며 기강과 풍속을 바로잡고 억울한 일을 없애주는 일 등을 맡는 기관은 송나라나 고려에서 어사대가 그 역할을 하였는데 조선에서는 삼사 중 사헌부가 담당했다.이 사헌부는 고위직의 직무를 감찰하고 공직기강을 바로 잡는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먼저 본인들 부서 내부에서도 규율이 매우 엄격했으며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조정 신료들의 규율과 기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만큼 스스로의 행동과 위계질서가 일종의 타의 모범이 되는 행동으로 여겼다. 왕에게 직언하며 고위관료들을 탄핵하고 견제하는 만큼, 왕이 파직 명령을 내리는 등 따위의 지위의 위태로움도 안고 있었다.이런 위험 속에서도 잘못된 정치에는 목숨을 걸고 임금께 상소를 올리며 자신의 주관을 펼치는 청렴한 관료들이다 보니 그 위엄은 사뭇 대단했으며 정승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지금 국회는 본회의에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한 여야의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며 팽팽한 공방전을 초래했다. 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국무총리 비서실 정무직 공무원 등이다.결국 공수처는 입법 행정 사법을 초월하는 초헌법적 기구로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된다.더구나 대법원장, 공수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며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에 대한 혐의를 인지단계에서부터 공수처에 통보토록 한 새 조항의 도입은 더 이상 견제할 기관도 없는 무소불위의 괴물로 만든 것이다.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틀을 깨부순 이 공수처의 입김에서 모든 기관들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사법부 역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사법권의 독립은 사라질 것이다. 헌법 1조 1항에 명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대한민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2019-12-30

4+1과 위성정당의 꼼수

강희룡 서예가춘추시대 위나라 혜왕은 백성 수 증가를 바탕으로 부국강병을 위해 노력했으나 별 효과가 없자 맹자한테 그 원인을 물었다. 이에 맹자는‘전장에서 전쟁이 한창일 때 한 병사가 갑옷과 투구를 던져 버리고 도망을 쳐서 백 보쯤 가서 멈추었습니다. 또 다른 병사는 오십 보쯤 도망치다가 멈추어서 백 보 도망친 사람을 겁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혜왕은 ‘오십보나 백보나 도망친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요?’이에 맹자는 ‘그것을 아신다면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지지 않는다고 한탄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결국 혜왕이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도운 것은 전쟁을 위한 목적이었기에 위나라는 인구가 더 늘지는 않았던 것이다. 사자성어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이다.백성을 많이 잘 보살핀다는 이 보살핌의 뜻은 평소에 백성을 위한 지도력과 백성들의 생활안정, 예의와 도덕국가, 교육이 널리 보급된 문화국가를 실현하는 것으로 이외에는 사적으로 아무것도 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결국 혜왕이 바라는 백성 수 증가는 이웃나라와 전쟁을 목적으로 하였기에 다른 목적을 둔 꼼수정치라 인구수가 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정치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존재할 수도 없다고 할 만큼 그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행정부 우위와 관료 지배적 특성으로 권위주의와 전제적이며, 중앙집권적인 체제 속에 여, 야의 극심한 대립현상은 타협의 정치가 정착되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국회 또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이합집산으로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철새정치인들이 정치판을 휘젓고 다니는 행태가 만연되어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의 ‘4+1협의체’는 여야합의체라고는 하나 실제는 범여권기구로, 세간에서는 군소정당 대표들이 금배지를 달기 위해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을 나열하며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선거법개혁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양당에 의석이 집중되는 기득권 체제가 해체되고 다당제 체제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해왔다. 그러나 ‘석패율 당선’을 노린 소수정당 후보들이 선거개혁과는 거리가 먼 범여권 중진 인사가 지역구 출마를 해 낙선해도 당선이 가능하다는 꼼수를 노린 것이다. 결국은 개혁으로 포장된 여당과 범여 군소정당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누더기가 된 선거법 개정안은 꼼수정치의 본질을 드러냈다. 이 꼼수에 반발한 제1야당은 바로 ‘비례한국당’이라는 비례대표 의석확보를 위해 위성정당을 차릴 수 있다고 발표했으니 어찌보면 ‘신의한수’아닌가. 민주당이 정치개혁이라는 포장으로 선거제 개혁보다는 의석수확보에만 혈안이 되어 의회 민주주의에서 찾아볼 수 없는 4+1이라는 범여협의체를 만들어 제1야당을 배제시킨 후 국회농단을 하는 마당에 위성정당 구상은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하는 결과도 있겠으나 야당의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다. 꼼수정치를 집어치우라고 서로 삿대질하며 싸우는 현 시국은 국민들 눈에는 파렴치정치, 꼼수정치의 끝판왕으로 밖에 안 보인다.

2019-12-23

예산농단과 세금도둑

강희룡 서예가조선시대는 토지에 세금을 부여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큰 재원이었다. 건국 초기에는 손실답험법(損失踏驗法)이라 하여, 풍·흉년을 직접 조사하여 세금을 매겼으나, 토지를 조사하는 관리들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많아 세종시대 역시 과세기준에 고민이 있었다. 이에 임금은 공법(貢法)이라는 새로운 세법을 마련했다. 공법이란 국가가 수취하는 토지세의 한 제도로서, 수년간의 수확고를 통산하여 평년의 수익을 정해진 비율로 삼아 세금을 매기는 제도였다. 세종 12년의 ‘세종실록’ 기록을 보면 세종은 공법 결정 이전에 과거시험에 공법 관련 내용을 출제하여 공법 제정 문제가 조정의 현안임을 강조하는 한편, 공법시행 이전에 신하와 유생들의 의견을 알아본 후에 최종적으로 공법의 시행은 백성이 결정할 사안으로 판단하였다.1430년(세종12) 세종은 이 새로운 세법 시안을 갖고 백성들에게 그 찬반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를 3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무려 5개월간 실시하였다. 치밀한 성품과 백성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종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었다.세종실록에는 ‘정부와 육조, 각 관사와 각 도의 감사, 지방수령 및 여염(閭閻)의 세민(細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는 기록은 임금이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이다. 8월 10일 호조에서 발표한 국민투표 결과보고를 보면 17만여 명의 백성들이 투표에 참여하여, 9만8천657명이 찬성, 7만4천148명이 반대한 것으로 집계됐다.그 시절에 수많은 백성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투표에 참석하도록 한 점은 매우 눈길을 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특히 조세에서 백성이 찬성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다는 성군으로서 세종의 선언은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지난 10일 여당은 제1야당을 배제하고 4+1협의체라는 정당구조로 512조의 슈퍼예산안을 28분 만에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즉 대대적인 세금 ‘나눠먹기 짬짜미’를 한 것으로 그야말로 예산을 농단하며 희대의 ‘세금 도둑질’을 한 것이다. 입법부 수장으로 중립의무를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그의 지역구에 아들 세습공천을 위해 여당의 선봉대 역할을 했다는 게 진실이라면 그는 이미 의장으로서의 역할과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다.더구나 박지원 의원은 그의 지역구 목포에서 의정보고회 때 아예 ‘예산농단주범, 세금도둑 박지원입니다’를 인사말로 세금도둑질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며 다니니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로 인해 납세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국민들은 세금을 내면서도 뭔가 빼앗기고, 분하고,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민본과 민주적 절차’와 소통을 중시했던 세종의 의지는 600년 전의 국민투표를 가능하게 했고, 그 성과물인 공법은 시대를 더욱 빛나게 했다.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인의 작태를 보면 ‘납세의무를 국민이 당연히 져야만 하는가?’라는 의문만 더욱 강하게 든다.

2019-12-16

수오재기(守吾齋記)의 교훈

강희룡 서예가조선의 중종 시대는 연산군 시절의 잘못된 정책과 사회풍속을 바로잡으려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조광조는 도학정치의 실현을 위해 사림을 천거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현량과를 주장하며 사림 28명을 선발했다. 또한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정국공신(靖國功臣)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 등 개혁정치를 서둘러 단행하다가 사흘 후 반발한 훈구세력에 의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이 개혁정책은 무산되고 한 달 만에 사사됐다. 후일 율곡 이이가 경연일기(經筵日記)에서 조광조를 평가한 내용은 오늘날 위정자들이나 관료들은 귀담아 들을만하다.‘옛사람들은 학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서야 도(道)를 행하려 했던 것이다. (중략) 조문정(趙文正·조광조)은 어질고 밝은 자질과 나라를 다스리는 재주를 가지고서 학문이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에 갑작스레 요로(要路)에 올라, 위로는 임금 마음의 잘못을 바로잡지도 못하고 아래로는 권력세가의 비방을 막지도 못하여, 몸은 죽고 나라는 어지럽게 했으니 도리어 뒷사람들이 이것을 징계삼아 감히 일을 해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학문이 이루어지기 전이라는 것은 아직 국가를 경영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간절한 표현이다. 조광조가 학문이 이루어진 후에 관직에 나갔다면 국가에 큰 도움이 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였을 것이라는 탄식을 글로 적은 것이다. 겉으로 보아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 있더라도 준비된 사람, 곧 학문과 인격을 이룬 사람이 먼저 있어야 한다. 학문이 논리적으로 완결됐다는 기준은 모호하지만, 지금처럼 학계출신들이 정부나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벼슬과 학문의 관계에 대해 주자는 ‘이치는 같으나 하는 일은 다르다. 하지만 학문을 하고서 벼슬하면 그 배운 것을 실험함이 더욱 넓어진다.’라고 했다. 대체로 사람들은 벼슬길에 들어서게 되면 여러 요인으로 본성을 잃게 되어 일생을 망치게 된다.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며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 자신을 지킨다는 ‘수오재기(守吾齋記)’를 실었다.다산의 강진 유배 시기는 관료로서는 암흑기였지만, 학자로서는 최고의 수확기였다. 자신을 잘못 간직했다가 잃어버린 본성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관찰하여 적은 이 수오재기는 본인의 정체성을 깨우치며 경계한 글이다.‘어렸을 때는 과거에 급제해 명성을 얻는 일이 좋아 보여 공부에만 매달려 10년을 보냈다. 마침내 뜻을 이루고 처지가 바뀌어 조정에 나아가서는 화려한 관복을 입고 미친 듯 대낮에도 큰 도로를 활보하고 다녔다. (중략) 세상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바로 나다. (중략) 맹자는 가장 큰 지킴이란 몸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이 진실이다. 내가 스스로 말한 것을 글로 써서 수오재에 관한 기(記)로 삼는다.’반복되는 시간 속에 저무는 해는 항상 아쉽고 오는 해는 늘 새롭다. 위정자들을 비롯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본심을 잃고 가식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수오(守吾)의 시간을 살필 때이다.

2019-12-09

386과 586

강희룡 서예가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학문으로 성립시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가 내세운 천심(天心)에 대해 공자는 ‘민심이 곧 천심이니 민심을 얻은 자가 천심을 가진 자’ 라고 정리했다. 맹자 역시 왕조는 천명에 의해 일어나며 천명(命)이 바뀌는(革) 것이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 했다.이 혁명론은 민본주의와 직결되며 혁명의 주체는 엄격한 도덕성과 정의가 요구된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의 문하인 정몽주는 시경(詩經)의 이념을 바탕으로 고려왕조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하려는 온건파인 반면, 동문수학한 정도전은 서경(書經)의 정치이념과 궤를 같이하며 혁명을 들어 신 국가를 건설하자는 급진파로 역성혁명을 주장했다. 결국 신흥무인세력과 결탁한 급진파는 이 혁명을 통해 1392년 조선을 세우게 된다. 이처럼 혁명의 정당화는 완결된 인격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추진되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현대사에서 1980년대는 민주화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대중적으로 확산된 시기이며, 대학생집단이 주도하였다. 1960년대 출생해 80년대 대학생활을 했고 90년대에 30대였던 이들이 바로 386세대로 부르는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부터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에서 이들은 사회의 공정과 정의 그리고 민주와 도덕을 앞세워 군사독재에 대항했다.이 운동권세대가 정치에 대거 진입한 건 2000년 총선 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젊은 피 수혈’이라는 명분 속에 이 그룹을 대거 정치권에 입문시켰고,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이들이 노무현 후보의 열렬한 지지와 2004년 열린우리당까지 이끌면서 진보정치의 세대적 기반이 됐다.그들은 현재 한국정치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지도적인 위치에 도달했다. 이들은 짧은 고난으로 오랜 세월 영욕을 누리며 이제는 ‘586세대’가 됐다.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볼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민주화의 선봉에 있었다는 그들만의 도덕적 우월감과 독특한 연대감을 갖추고 열정으로 세상을 바꿔보려 했던 패기가 모순과 불의로 가득 찬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없어지고 현실과 타협하며 기득권층이 된 것이다.보수기득권층을 경멸과 증오로 대하며 ‘우리끼리’ 라는 등식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공유하던 진보의 도덕과 정의도 사라졌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으며, 남의 눈 티끌까지 비판하면서 내 눈 속의 들보는 모른 척하는 이중적 태도까지 보인다. 국가의 주요정책이 처음부터 운동권 출신의 폐쇄적 생각에서 결정되니 그들 이외의 국민들이 이해 못하고 당혹해하는 결과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진다. 국민소득 약 2천달러 수준의 80년대에 저항했던 운동의 기억으로 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의 한국을 진단하고 이끌어 가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자칭 진보라는 그들이 과거에 ‘독재’라고 그토록 비판하며 민주화를 외쳤던 정치행태를 지금 와서 더 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속성으로 적폐 덩어리로 변해있는 그들은 반드시 퇴출되어야 할 대상이다.

2019-12-02

극단적 투쟁보다 개혁정당으로 국민 지지 얻어야

강희룡 서예가단식은 건강이나 항의 표시를 할 때 동원되는 행위이다. 의학계에서는 단식을 대체로 에너지 섭취를 1일 200㎉ 미만으로 정의한다. 대략 커피믹서 4개 먹는 정도이다. 만약 저항의 의미로 단식한다면 72시간 이상이 필요하며 이때는 물 이외 다른 것(소금은 예외)은 입에 대서는 안 된다. 단식에서 중요한 것은 72-72(72시간-72일)법칙이다. 의학적으로 72시간 가량 굶으면 체내 포도당이 모두 사용돼 인체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뼈와 근육, 장기 등에서 에너지를 모두 빼앗아간다. 학자들이 단식의 한계를 72일로 보는 경우는 대부분의 사람은 72일이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단식은 2500년 전 중국에서 발간된 한의학 최고의 원전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책은 소문(素問)과 영추(靈樞) 두 부문으로, 소문편에서는 인체의 생리현상과 양생법에 대해 기술하였고, 영추편에는 침구의 임상적인 활용에 대해 서술했다. 조선 초 태종실록에 양녕대군에 대한 단식기록이 실려 있다. ‘세자(양녕)가 몰래 기생 봉지련을 궁중에 불러들였다.(중략) 임금이 듣고 수하에게 곤장을 때리고 봉지련을 가두니 세자가 마침내 걱정해 음식을 들지 않았다.(태종10년, 1410년 11월)’ 태종이 봉지련을 가두자 세자가 단식으로 저항한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조선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경우 역시 9일간의 폭염 속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로 고통스럽게 굶어 죽어갔다.한국정치사에서 위정자들의 대표적인 단식투쟁은 1983년 5월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YS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이던 5월 18일부터 6월 9일까지 ‘대통령 직선제’등 5개항을 내걸고 23일간 단식을 했다. 이 투쟁으로 민주화추진협의회가 정식 출범하여 4년 뒤 6월 항쟁과 대통령직선제로 이어져 정치민주화에 이정표를 세웠다. 1990년 평화민주당 총재였던 DJ는 10월 8일부터 20일까지 13일간 ‘내각제 포기와 지방자치체 도입’을 외친 단식을 통해 지방자치제 결실을 맺었다.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도 수감 중이던 안양교도소에서 5공 청산에 항의하며 27일간 단식을 했으나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소미아, 공수처, 패스트트랙 등 굵직한 정치현안들에 대한 야당 요구를 내걸고 죽기를 각오하겠다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21세기의 깨어있는 국민들은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투쟁보다는 기존 패거리 정치에 함몰되어 있는 정당의 비합리적인 조직운영과 정치구도의 개혁을 더 바라고 있다. 인재등용이 없고, 진영논리에 빠진 패거리 정치의 결과는 한탕주의로 흘러 국가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이제라도 구태정치의 답습에서 벗어나 개인의 영욕을 내려놓고 국가의 미래지향적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민주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하는 시점이라 본다.

2019-11-25

가치농단과 검찰개혁

강희룡 서예가지식의 축적이 인격의 성장과 비례하지 않는 것이 사회의 현실이다. 배움이란 현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천적 지식으로 활용돼야 가치가 있으며 이 지식이 선(善)쪽으로 사용돼 사물의 이치나 도리를 깨닫고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할 때 지혜라 한다.캐나다 출신의 사회인지학습이론의 창시자인 반두라는 사회학습이론에서 특정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강화보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함으로써 사회적, 인지적 행동을 배우고 좀 더 효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즉 사람의 성장과정 속에는 역할모델이 있다. 이 역할모델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나도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하며 마음속에 그리게 되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다. 대표적인 예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침대 머리맡에 뉴턴의 사진을 붙여놓고 그 사진을 보면서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노력하고자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역할모델은 주변의 어른이나 책 속의 위인이 될 수도 있으나 부모가 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부모의 언행을 그대로 닮는다. 역할모델은 아이의 관심분야에서 성취과정을 본받게 된다는 점에서 진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에 아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하며 은연중에 부모의견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질만능으로 치닫는 지금의 우리 교육에서 긍정적인 부모의 역할모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특히 상위계층 일수록 오로지 내 자식만이 물불 안 가리고 명문대에 입학시켜 잘 먹고 잘살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교육을 단지 돈 버는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자식입시에 대한 그릇된 열망과 부모들의 욕망을 소재로 2002년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이 있다. 일본 사회의 대다수가 갈망하는 명문학교 입학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가족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 엔터테인먼트 문학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수작으로 꼽힌다. 명문 중학교 입시에 대비해 호숫가 별장에서 합숙과외를 하는 네 쌍의 가족들에게 벌어진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일본 교육시스템의 문제점과 폐단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풍자한 작품이다. 우리의 교육현실과도 맞물려 있어 공감이 큰 내용이다. 2019년 2월까지 방영된 JTBC의 한국의 의대입시와 사교육의 과욕을 소재로 삼았던 드라마 SKY 캐슬이 있었다. 이 드라마의 결말은 다행히 성적보다 자신의 가치관을 더 중시하는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가족들은 새로운 삶을 위해 스카이 캐슬을 떠났고 가식적인 삶에서 본성을 회복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참된 삶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한국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조국가족의 빗나간 자식사랑’이라는 드라마 같은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지금도 ‘엄빠찬스(엄마와 아빠의 지위를 이용한 특혜)’를 이용해 입시부터 취업까지 각종 범법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조국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정과 정의를 어지럽힌 가치농단을 검찰개혁이라는 틀 속에 희석시켜 왜곡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9-11-18

대로(大老)가 없는 정치

강희룡 서예가인조실록(仁祖實錄)에 ‘왕이 하교하였다. 옛날에 은(殷)나라 임금 수(受)가 극악무도하였지만 삼인(三仁)이 떠나버리고 나서야 나라가 망했다. 이를 보면 나라에 어진 이가 존재하는 것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고 가뭄에 비가 내리는 일에 비유할 정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세 사람의 어진 이는 은나라 왕 주의 이복형 미자와 종실인 비간 그리고 기자를 가리킨다. 인조반정 후 집권한 서인정권은 반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고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남인계 인사 이원익(1547∼1634)을 영의정으로 발탁했다. 이원익은 인조의 부름을 받고 조정에 나갔지만, 광해군을 죽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이에 반대하여 광해군의 목숨을 구하였다. 정묘호란 당시에도 도체찰사로서 세자와 왕을 호종했다. 그 후 노쇠함을 이유로 치사(致仕)를 청하다가 그대로 귀향하였는데, 인조는 그에게 다시 조정에 나와 주기를 이렇게 정중히 요청하였던 것이다.내용을 더 살펴보면 ‘영부사 이원익은 선왕조의 훈구 대신으로서 충성과 정절이 크게 드러났으며, 청렴한 덕이 옛사람들보다 뛰어났으니, 진정한 이 나라의 대로(大老)이다. 그런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서 마음을 돌려 조정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으니, 이는 과인이 무도하고 성의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중략)’여기에 ‘대로’라는 말이 나온다. 이 대로는 단순히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만인의 귀감이 되고, 시국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세상을 바르게 이끌 수 있는 경륜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이는 맹자가 주나라의 백이(伯夷)와 태공(太公)을 ‘천하의 대로’라고 말한 고사에서 나온 것으로,‘나라의 큰 어르신’이라는 뜻이다. 이원익은 오랫동안 벼슬살이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두어 칸짜리 초가집에서 생활했고,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는 끼닛거리조차 없을 정도로 청빈했다고 한다. 그런 그를 인조가 대로라고 일컬은 것은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전례 없는 큰 갈등을 겪고 있다. 매사 이해관계에 따라 각 집단의 주장이 상반되고, 가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극단적인 대립을 거듭하고 있다. 모두가 내 주장만 내세울 뿐 다른 쪽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편을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편향된 시각, 아집과 독선은 격렬했던 왕조의 당쟁시기보다 더 심해진 듯하다. 누군가 나서서 대국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를 바라지만 사회 대통합은 고사하고 불신과 분열을 조장하여 손에 촛불을 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국민의 주권행사로 위임받은 권력을 그들만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절대 권력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상의 한계를 넘는 각종 부정과 비리를 오랜 세월을 수없이 보아왔다. 위정자들의 권력 쟁취욕은 사회를 지역주의로 만들었으며 무소불위 정치권력과 경제가 야합을 하면서 언론까지도 결탁한 실상이 요즈음 우리 사회실상의 진면목도 드러냈다. 과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거나 구성원들의 의견이 대립될 때면 집안이나 고을의 큰 어른을 찾아뵙고 고견을 들었듯이,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큰 어른의 말씀이 없어진지 오래인 듯하다.

2019-11-11

품격 잃은 정치행태

강희룡 서예가지난 2010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에 발가벗은 어린이가 주요 부위를 식판으로 가리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무상급식 광고포스터를 만들어 논란이 됐다. 당시 서울시에서 만든 이 포스터는 전면무상급식을 강행하면 학교보건시설 확충, 저소득층 급식비지원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교육현장 예산을 삭감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어린이 모델을 나체로 기용한 것에 문제가 일자 해명에 나섰고, 해당 사진은 얼굴과 몸이 합성 사진이었음이 드러났다. 당시 무상급식에 찬동하는 네티즌들은 해당 포스터 얼굴에 오세훈 시장 얼굴을 합성해 풍자했다. 논란이 일자 ‘시장을 나체로 만들어 올린 무상급식 지지 포스터는 문제가 없는가!’라는 질문에 당시 조국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공인의 경우 비판, 야유, 풍자의 대상이 되므로 이러한 포스터는 민형사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각 언론의 만평만화를 생각해보시면 될 듯,’이라는 글로 문제없다는 입장을 냈다. 2017년 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주최한 시국풍자 전시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풍자 누드화가 국회에 전시됐다.이 그림은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하여 이구영 작가가 세월호가 침몰되는데 나체로 잠을 자고 있는 박 대통령과 옆에 꽃을 들고 있는 최순실의 모습을 그린 풍자화로 ‘더러운 잠’이란 제목으로 걸려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10월 28일 자유한국당 공식 유튜브 계정인 ‘오른소리’에 ‘양치기 소년 조국과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애니메이션 두 편이 업로드 됐다. 내용 구성은 안데르센이 쓴 동명의 원작과 비슷하다. 벌거벗은 임금님 편에는 문 대통령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벌거벗은 채 간신들이 가져온 안보자켓, 경제바지, 인사넥타이를 매고 즉위식에 섰지만 실제로는 벌거벗은 상태다. 대통령을 닮은 캐릭터가 속옷만 입고 등장하는데다 특히 인사넥타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조국 전 장관이 경찰차 앞에서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일부 막말에 가까운 대사들이 영상에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극에 달한 천인공노할 내용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한국당이 지난달 30일 문 대통령 모친 상 중인 점을 감안해 영상을 일시 비공개 조치했지만 한국당 내에서도 품격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정경심 교수의 동양대 총장 명의 위조의혹이 있는 표창장과 국민들은 안중에 없고 ‘공은 우리끼리’라는 느낌을 주는 조국 장관 사퇴에 공이 있는 전·현직의원들에게 준 자화자찬의 나경원 표창장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가치 없는 표창일 것이다. 이 표창장을 받으며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희희낙락하던 그들의 모습은 교만의 극치를 보는듯 했다. 조국 사퇴는 고위직 인사 참사에 대한 지극히 평범한 국민들에 의해 밑바닥에서부터 만들어진 여론이 부정적인 것이 원인이 되어 낙마한 것인데 그들만의 능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외면한 이런 품격 잃은 정치행태를 많이 자행하는 정당에 대해 국민들은 차기선거에서 준엄한 심판을 보여 줄 것이다.

2019-11-04

영조의 인재등용 지혜를 배워야

강희룡 서예가영조(1694∼1776)가 스스로를 반성하는 한편 세자를 가르칠 목적으로 유교경전과 역사서에서 수신과 위정에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자신의 견해를 기록한 책으로 어제자성편(御製自省編)이 있다.이 책에서 영조는 수신의 요체를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보았고, 위정의 요체를 기미(幾微)를 살피는 것으로 보았다. 기미를 살핀다는 것은 선악이 나뉘는 조짐을 살핀다는 것으로 선한 인재를 변별하고 등용하여 국가를 다스리는 바탕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영조는 젊은 시절부터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당쟁을 목도하였고, 왕세제(王世弟)가 되어서는 충신과 역적의 시비로 발생한 신임사화(辛壬士禍)의 참상을 몸소 겪었다.이를 통해 어느 당파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왕으로 즉위하자 탕평책을 시행했다. 사적인 호오(好惡)나 당파의 이익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선악에 따라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민생정치로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였던 것이다.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선생의 1569년(선조1) 부교리(副校理)를 사직하는 상소에서 인재등용에 대해 잘 기록하고 있다. 임금은 등용하려는 사람에 대해 국민 모두가 적합한 사람이라고 평가해야 하며, 반드시 훌륭한 점이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고서 그를 등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널리 자문하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등용되는 신하 역시 자신의 능력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군주와 함께 국가발전의 업적을 성취하는 것에 내 능력이 적임자가 아니라면 즉시 물러나서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임금은 어진 인재를 찾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 작위와 봉록을 함부로 내주어서는 안 되며, 신하는 스스로의 지조를 지키는 것을 뜻으로 삼아 이익과 명예를 위해 과분한 자리를 받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날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서 임금이 잘못 등용하는 실수가 없기에 신하가 벼슬자리에서 놀고먹는 경우가 없었던 이유이다.자리나 재물에 대해 구차하게 얻으려고 하지 말며, 어려움을 당하여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말라는 예기 곡례(曲禮)편에 실린 교훈이 생각난다. 이 구차함은 크게 둘로, 하나는 밖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의식주와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고위직 자리나 재물을 얻으려는 것에 대해 말하면 이것들은 밖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얻겠다고 자신과 약속한 일이라면 그 일 또한 나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번듯함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겉멋을 부리려든다면 그 삶이 얼마나 초라하겠는가.군부독재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논리를 폈던 상당수 80년대 운동권들은 짧은 고난으로 긴 영예를 누렸다.신념을 위해 권력과 싸웠던 그들이 이젠 권력의 중심에서 사실을 조작하려고 한다. 오늘날처럼 공직자의 자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인재 등용의 중요성과 방법을 제시한 영조와 율곡의 글은 ‘조국사태’로 혼란스러운 지금의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9-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