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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당당국민법` 아세요

세금은 국가를 위해선 꼭 필요하지만, 막상 내가 내려고 하면 아까운 생각이 든다. 서민에게 세금만큼이나 민감한 것도 드물다. 역사적으로도 세금 때문에 빚어진 불상사는 비일비재하다. 민중봉기도 가혹한 세금에서 발단된 예가 많다. 그래서 공자는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말했다.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다는 가렴주구(苛斂誅求)란 고사성어도 공자의 말에서 나왔다.우리가 일반적으로 조세정의를 말할 때는 공평과세가 기준가치다. 그러나 공평과세는 내가 느끼기에 따라 공평할 수도 있고 불공평할 수도 있다. 사람의 심리란 자신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저울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자증세를 내세우나 이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우리 사회의 경제 양극화를 고치기 위해 조세정의를 실현해야 하나 방법론에서 만만치가 않다.이종구 바른정당 의원이 연간 2천만원 이상 소득이 있으면 누구라도 월 1만원(연 12만원)씩의 세금은 내도록 하자는 법안(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당국민법`이라 명칭을 달았다. 국회 내에서는 정부 여당의 부자증세에 반대하는 여론을 담기 위한 법이란 해석도 있다. 그러나 복지혜택을 넓히려면 수혜자의 비용부담도 늘려야 한다는 국민 개세(皆稅) 주의에 입각한 제안이란 평가다.우리나라는 근로소득자의 46.8%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부자증세 문제가 제기되자 조세정의가 가진 자만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복지 혜택은 받으면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조세정의가 아니라는 것이다.특히 우리는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근로소득자의 비율이 너무 높다. 일본 16%, 독일 20%, 호주 25%, 미국 35%다. 월 1만원의 세금이라도 내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자는 게 이 법의 취지다. 러시아 표트르 황제 때 수염세를 만들었다. 무위도식하는 귀족계급에 대한 통치방법이었다고 한다. 세금은 목적의 정당성만큼이나 납세자의 동의도 중요하다. 당당국민법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29

만인 앞에 공평한 법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말했다. “법이란 가진 자들에겐 모든 걸 막아주는 방패이지만 가난한 자들에겐 심장에 겨눠진 창끝이다.” 이 진술에 배치되는 판결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법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가진 자`로 첫손에 꼽히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방패가 돼주지 못한 것이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김진동 판사는 `뇌물공여` `범죄수익 은닉`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력을 기대하고 뇌물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내려진 이번 판결을 두고 환호와 비난이 엇갈리는 형국이다. “지은 죄만큼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반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돈을 강탈당한 것이니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법은 만인 앞에 공평해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이 짤막하고도 당연한 문장이 권력과 금력 앞에서는 힘을 잃는 경우가 흔했다.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통치자는 가장 먼저 입법기관의 무력화를 획책한다. 중동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과 하피즈 알 아사드의 경우가 그랬다. 그들은 법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법 위에 군림했다. 한국의 경우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외견상으론 분리돼 성장했고, 많은 돈을 가진 자가 정치권력과 결탁해 초법적 지위에 오르려 했다. 이게 현 정부가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적폐 중 하나인 `정경유착`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재용 부회장 판결에 대한 법리적 논란은 유보하자. 다만 한 가지 긍정적 측면은 인정하지 않기 힘들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법이 더 이상 가진 자의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걸 선언한 듯하다. 이는 과거와의 절연이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1988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탈옥사건이 발생한다. 도주 끝에 자살을 택한 탈옥범 한 명이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범죄자조차도 부자에겐 방패가 되고 빈자에겐 창끝이 되곤 했던 당시의 한국 법을 조롱한 것이다. 그런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홍성식(문화특집부장)

2017-08-28

반갑잖은 아열대 현상

우리나라는 원래 온대성 기후이다. 사계절이 뚜렷이 구분되고 사철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천혜적 기후를 가진 나라다. 그러나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온난화로 세계 온도는 평균 0.7℃가 올랐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2배 수준인 1.5℃가 올랐다. 올여름 대구의 더위는 시민들을 짜증나게 했다. 대프리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폭염과 가뭄, 소나기로 반복되는 변덕스런 날씨가 이어지면서 대구의 기후변화는 이젠 현실로 다가왔다. 1970년대와 비교하면 대구의 기상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폭염 일수의 경우다. 1970년대는 23일이던 것이 2010년 이후는 31일로 늘어났다. 열대야 일수도 1970년대 10.3일이던 것이 2010년 이후에는 19일로 나타났다. 여름철(6월-8월) 평균기온도 1970년대에는 24.7℃였으나 2010년 이후는 25.8℃로 올라간 것이다.아열대 기후는 열대와 온대의 중간 정도 기온을 말한다. 기상학에서는 월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인 달이 8개월 지속되면 아열대 지역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이미 남해안 일대를 포함 상당수 지역이 아열대 지역에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기상청은 2070년이면 한반도 대부분이 아열대 가후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제주도에는 이미 60종이 넘는 아열대성 생물이 출현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부터 보이기 시작한 아열대성 어종 가운데 일부는 제주 연안에 정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황놀래기, 청줄돔, 가시복어 등이다. 과일의 지도도 바뀌고 있다. 대구사과는 옛말이다. 고온과 가뭄으로 품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크기도 작아져 상품성을 잃었다. 제주도에서만 재배되던 감귤과 한라봉이 완도 등 전남지역과 경남 거제까지 확대 재배되고 있다. 아열대 과일인 망고와 패션프루트 등이 충청도 내륙지방에 재배되는 기현상이 이젠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 우리가 반길 일은 아닐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25

반복되는 축산재난

축산재난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축산전염병 스캔들의 원형은 영국발 광우병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84년 영국 서식스 지역의 한 농장에서 시작된 광우병으로 소 133마리가 간질환자처럼 쓰러져 죽었다. 영국 정부가 파견한 역학조사반은 133마리의 소 뇌에서 종양을 발견했고, 동물 사체로 만든 `동물성 사료`를 소가 먹기 때문에 광우병이 발병한다고 분석했다. 영국 정부는 1996년 8월부터 광우병에 걸린 30개월 이상 소 440만마리를 단계적으로 도축, 살처분했다. 한국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건 2000년부터다. 그해 3월24일 경기도 지역에서 처음 발생했다. 구제역은 소·돼지·염소 등 발굽이 2개인 동물이 걸리는 병으로, 치사율이 5~55%에 달한다. 당시만 해도 23일간 15건이 발생, 살처분도 2천여 마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10년 후인 2010년 충남 천안시에서 발병한 구제역은 6천691농가를 덮쳤다. 살처분으로 땅에 묻은 수가 무려 353만여 마리였다.AI는 구제역보다 뒤에 등장했다. AI는 닭, 오리 같은 조류에서 H5N6라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감염으로 발생하는 급성전염병이다. 첫 AI는 2003년 12월 10일 충북 음성에서 발생했다. 당시 528만5천마리의 닭 등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이후 AI가 한 번 발생하면 100일 정도 지속되며, 매년 수백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를 파묻는 일이 일상이 됐다. 특히 2014년부터는 여름철까지 AI가 지속됐다. 2016~2017년에 살처분된 가금류 수만 해도 3천807만6천마리에 달했다.올해는 살충제 계란문제까지 터졌다. 지난 14일 농축산부는 국내산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검출됐다며 산란계 3천마리 이상을 키우는 농장의 계란 출하를 금지시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451만여개의 계란을 폐기해야 된다고 밝혔고, 이 중 418만3469개가 수거돼 폐기됐다. 허술한 축산방역망의 철저한 재정비와 `동물복지형 농장`등 깨끗한 축산환경 조성이 축산재난의 악순환을 막을 방책이다. 정부의 발빠른 대응책 마련을 촉구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8-24

동물복지

동물에 복지란 말을 붙이니 어쩐지 어색하게 들린다. 그러나 동물도 조물주가 내려준 생명체인 만큼 동물 나름의 복지는 있어야겠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면서 `동물복지` 개념이 주목을 끌고 있다. 동물복지는 동물에게 주어진 현재의 환경조건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얼마나 편안한가를 의미하는 말이다. 동물의 멸종을 막기 위한 동물보호운동과는 차이가 있으나 동물학대와는 상통하는 의미가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닭의 사육방식이 비판을 받게 됐다. 자본주의적 생리가 일으킨 참혹한 참사라고 한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적 속성이 밀집사육 닭장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A4 용지 크기보다 작은 케이지에서 키우는 닭은 사료를 먹고 계란을 낳는 일만 한다. 마치 기계식 계란공장이나 다름없다.이런 상황에선 진드기 생성은 필연적이다. 닭은 원래 모래에 몸을 비비는 방법으로 몸에 붙은 진드기나 벌레를 떼어낸다. 자연적 생리방법이다. 그러나 밀실 사육장 안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사육농민의 살충제 사용도 예견된 일이다. OECD는 지난 6월 한국의 밀집사육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AI, 구제역, 브루셀라, 소결핵 등의 주요 원인이라고 경고 한바 있다.우리나라 축산이 살충제 계란과 같은 파문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동물복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견해가 주목받는 이유다. 프랑스에서는 닭 사육 방식을 제품에 표시한다고 한다. 케이지에서 키웠는지 넓은 사육장에서 키웠는지를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동물복지를 고려한 윤리축산이 새롭게 뜨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친환경 관점에서 새로이 출발해야 한다.1987년 세계 환경개발위원회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말로 환경의 중요성을 처음 언급했다. 경제개발과 동시에 환경보존도 이뤄 미래세대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자연을 파괴했다고 한다. 살충제 계란 역시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싶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동물복지는 우리가 풀어 갈 숙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23

소득 주도 성장론

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론`을 경제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내놨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요체는 `임금인상이 총수요를 늘려서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신고전파 경제이론에 따라 기업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수출과 국가재정투자를 늘림으로써 경제성장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펴왔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조차 시장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고 재분배를 통해 복지를 늘리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한국의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거의 일직선으로 나빠져왔다. 시장의 분배 자체가 문제였다. 더구나 한국의 수출은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가계는 140%에 달하는 부채비율 때문에 더 이상 빚으로 소비를 늘릴 수 없다. 수출주도-부채주도 성장의 시대가 막을 내린 셈이다.이런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는 신고전학파와 대척점에 있는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의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에 뿌리를 두고 있다. 포스트 케인스 학파는 우선 신고전학파의 `보이지 않는 손`을 부정한다. 국가 개입이 없는 자본주의는 불안정성과 경기변동을 유발한다는 관점으로 경제를 바라본다.특히 포스트 케인스 학파는 국가의 개입으로 유효수요를 유지 또는 증대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국가가 주도해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소득을 늘려줌으로써 국가경제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이나 어린이 수당 그리고 기초연금 인상 등은 이 같은 포스트 케인스 학파의 소득주도 성장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어떤 경제이론이 우리 실정에 최적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 누가 알랴. 실행해보기 전에 결과를 알 수 없다. 그리고 특정 이론이 경제현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해법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다만 사회적 대타협으로 소득주도 성장론이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현재 한국이 나아가야할 `분배를 통한 성장`이나 `균형성장`의 길을 뚫어줄 수 있는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8-22

테러리즘 경계

유럽에서 비교적 테러의 무풍지대로 알려진 스페인에서 연쇄 테러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는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14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로 테러는 정말 영 막을 수 없는 인간의 재앙인가 하는 물음 앞에 우리는 섰다. 테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테러 행위에 대한 자의적 정당성에 있다. 이슬람 테러 조직이 저지르는 테러는 그들에게는 애족적 정당성이 명분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테러라 규정해도 그들에게는 자위적 행동일 뿐이다.테러의 백미는 역시 미국 9·11 테러다. 수 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류 최악의 테러였다. 자본주의 상징인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자폭 비행 납치범에 의해 무참히 무너진다. 미국의 자존심인 국방부 펜타콘 건물도 부서져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동시다발로 저질러진 이날 테러로 뉴욕은 아수라장이 됐다. 시민들도 공포와 전율로 패닉 상태에 빠져든다. 미국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힌 사건이었다.이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빈 라덴은 미국의 추적을 교묘히 따돌리며 도피를 계속했으나 10년이 지난 2011년 5월 파키스탄의 한 은신처에서 미국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되는 종말을 맞았다.테러는 특정 목적을 가진 단체가 살인, 납치, 유괴, 약탈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대개는 정치적, 사상적 목적을 갖고 있다. 9·11테러도 그렇고 과거 테러는 대상이 정해져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요즘 발생하는 테러는 뚜렷한 목적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무고한 시민까지 공격하는 맹목적 테러가 빈발한다는 것이다. 이번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그러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희생된 사상자들의 소속 국가가 24개국에 이르는 것으로도 이를 설명할 수 있다.우리나라도 IS(이슬람국가)가 손꼽는 테러대상 60개국에 포함된다. 친미적인 분위기와 중동에서의 한류문화 인기는 테러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곳 극단주의자에게 한류는 서구의 타락한 문화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테러에 대한 대비가 우리도 이젠 있어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21

평화의 섬 `괌`

서태평양 최남단에 위치한 섬 `괌`.미국령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해 미국의 하루가 시작되는 곳으로도 유명한 섬이다. 그보다 우리에겐 휴양지로, 관광지로 더 친숙한 섬이다. 우리나라 교민도 수천 명이나 살고 있는 곳이다.괌은 이 섬을 처음 발견한 `마젤란`이 상륙해 원주민과 싸움을 벌여 쟁취한 섬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마젤란은 포르투갈인이지만 스페인 왕의 도움을 받아 세계 일주를 하게 된다. 그런 연유로 이 섬은 스페인 영으로 귀속된다. 마젤란이 처음 입도한 1512년부터 44년 뒤 스페인장군이자 필리핀 총독인 `레가스피`가 이곳을 스페인 영으로 선언하면서 300여 년간 스페인 통치를 받았다. 1898년 미국과 스페인이 전쟁을 벌여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통치권을 이양받는다. 그러나 1941년 일본이 괌을 공격 점령하면서 일본 소유로 3년간 넘어갔다가 종전 후 미국이 재탈환하는 역사가 이곳에 있다. 괌은 전쟁과 인연이 있는 섬이다. 스페인과 미국, 또 일본으로 번갈아 가며 지배를 받았고 그 전쟁 유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솔레다드 요세, 스페인 다리, 스페인 광장 등이 구경거리를 제공한다.1926년에는 마젤란 상륙 기념비도 세워졌다. 매년 3월 6일은 그의 상륙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 당시 모습으로 대선단의 이동이 재현된다. 평화롭고 자연이 아름다운 최상의 휴양지. 그 속에도 많은 전쟁의 역사가 간직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지금 괌은 조용한 가운데 일촉즉발의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북한의 괌 주변 미사일 폭격 발언으로 이 섬의 평온함이 깨지고 있다. 괌은 원래 전쟁의 상흔 못지않게 전략적 기지로 활용돼 왔다. 사드 미사일 기지나 B-1B와 같은 장거리 전략 폭격기, 잠수함 등이 주둔하는 미국의 군사 요충지다. 평양과 미국령 괌과는 3천200Km 거리에 있다. 북한 핵무기를 둘러싼 한반도의 긴장감이 괌이라는 평화의 섬으로 전운이 옮겨간 양상이다. 역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때가 많았다. 평화의 섬 `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18

대통령과 세월호의 진실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연단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10초 가량 말문을 떼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다소 떨리는 목소리였다. 단상 아래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실종자 가족, 생존자 까지 총 207명의 세월호 가족들이 감회어린 눈빛으로 대통령을 쳐다보고 있었다.“세월호를 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미수습자 수습이 끝나면 세월호 가족들을 청와대로 한번 모셔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수색작업을 하는 중에 이렇게 모시게 됐습니다.”문 대통령의 표정은 침통했고, 눈시울과 코끝이 붉게 물들었다. 연단 좌우 대형 모니터에는 노란 리본 모양 문구와 함께`304명 희생된 분들을 잊지 않는 것 국민을 책임지는 국가의 사명입니다`라는 글귀가 떠있었다. 문 대통령은 먼저 미수습자 가족에 대해 “선체 수색이 많이 진행됐는데도 아직도 다섯 분이 소식이 없어서 정부도 애가 탄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들이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당시 정부에 대해선 가차없는 비판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3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세월호를 내려놓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는 이유는 미수습자 문제 외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도대체 왜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일어났던 것인지, 정부는 사고 후 대응이 왜 그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것인지, 그 많은 아이가 죽어가는 동안 청와대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너무나 당연한 진상 규명을 왜 그렇게 회피하고 외면했던 것인지, 인양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지 국민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고 분개했다. 많은 국민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대통령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세월호의 진실`이었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가족의 한을 풀어주고 아픔을 씻어주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다시는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이 추후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약속이었다.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갔다. 문 대통령은 “분명한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정부는 참사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선체 침몰을 눈앞에서 뻔히 지켜보면서도 선체 안 승객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을 정도로 대응에서도 무능하고 무책임했다”고 당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흥분된 마음을 추스른 듯 차분한 목소리로 “늦었지만 정부를 대표해 머리숙여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세월호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세월호 사고 발생 이후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청와대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난 것도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정확히 3년4개월 만의 일이었다. 청와대에 초청된 세월호 가족들은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인데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느냐”며 울먹였다.행사에 앞서 취재진과 만난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너무 억울했다. 분통이 터졌고. 지금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아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는 “3년이나 노숙하고 단식하고 그렇게 만나달라고….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시위하고, 정말 빌었다. 지금은 응어리가 모두 터지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그렇게 우리 말 좀 들어달라고, 아픈 사람 목소리 좀 들어달라고…. 이렇게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에겐 큰 위로가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이날 문 대통령은 광화문 거리에서 단식을 함께 했던 유민아빠 김영오씨와 재회했고, 실종자 가족 대표인 남경원씨와 포옹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약속한 대통령의 말에 큰 위로를 받은 가족들은 다소 편안해진 표정으로 돌아갔다. 대통령에게도 미지수로 남아있는 `세월호의 진실`이 조만간 낱낱이 밝혀지길 기대한다.

2017-08-18

살충제 계란

살충제 계란이 전국을 충격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처음 문제가 된 것은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에서 유통 판매되는 계란에서 바퀴벌레나 벼룩 살충제로 사용되는 `피프로닐`이란 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이 성분은 해충을 잡는데 사용되는 맹독성 화학물질로 알려져있다. 현재 살충제 계란이 확인된 나라는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이다. 축산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이들 유럽국가에서 살충제가 검출되는 바람에 소비자들에게 더 큰 충격이다.유럽을 강타한 `살충제 계란` 쇼크는 그대로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경기도 남양주와 양주의 산란계 농가의 계란에서 처음으로 살충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성분이 검출됐다. 정부는 농약 검출결과가 나올 때까지 전국 마트에서 달걀 유통을 중단시키고, 전국의 산란계 농가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위생검사는 농장당 달걀 100개씩을 무작위로 추출해 동물위생시험소에서 살충제 성분 유무를 검사하는 방식으로 실시하고있다. 최초 농약 성분이 검출된 남양주 농가와 양주 두 농가에서 출하한 계란들은 유통과정을 추적해 파기된다. 두 농가는 총 13만7천개의 달걀을 중간도매상 6곳에 출하한 것으로 나타났다.우려스런 것은 대부분의 축산농가가 닭에 기생하는 진드기를 제거하기 위해 약품을 쓰고 있어서 사용이 금지되거나 제한된 살충제의 성분이 검출되는 산란계 농가가 더 있을 개연성이 높다는 데 있다. 이같은 `살충제 계란`사태를 막기위해서는 소독약을 뿌릴 때 닭을 계사에서 모두 내보내고 빈 계사에 소독약을 뿌려 소독하는 등 계사를 아주 위생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공간이 없는 농장에서 자율적으로 이처럼 소독을 하도록 기대하기는 어렵다.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럽 사태이후 지난 4월부터 닭이나 계란에 있어서 잔류농약에 대한 측정이나 모니터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는 데도 정부당국이 “별 문제없다”며 안일하게 대처한 탓도 크다.` 소읽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행정이 개탄스러울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8-17

몰카와 통화녹음

우리사회가 `몰카와의 전쟁`을 벌인지는 꽤 됐다. 최근 국회의원 아들이자 현직 판사가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여성의 다리를 몰카로 찍다 검찰 수사를 받는 일이 벌어지자 몰카 폐해의 논란이 또다시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12년 1천824명이던 범죄자가 지난해는 4천499명으로 늘어났다. 최근 5년 사이 2.5배가 증가했다. 직업별로도 공무원, 전문직, 자영업 등 다양하다. 연령대는 26~30세가 가장 많지만 전 연령대에서 고른 분포를 보여 범죄의 신종화 추세가 뚜렷하다.몰카 때문인 사회적 스트레스도 늘었다. 특히 여성들은 누군가가 나를 몰카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지 두려움으로 불안 증세를 보이는 사례가 늘었다. 남성은 남성대로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찍을 때는 주변에 여성이 있는지 살펴야 하는 불편함을 겪는다고 한다. 국회가 11일 몰래 카메라의 제조, 수입, 유통에 이르는 모든 단계를 정부가 사전 통제하는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른바 `몰카 근절법`이다. 몰래카메라 문제가 발생하면 제조자부터 구매자까지 역추적이 가능하다. 몰카의 사회적 피해, 유통 등에 대한 주기적인 실태조사도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몰카의 사전적 통제가 가능토록 한 법이다.일명 `통화 녹음 알림법`도 법제화된다고 한다. 자유한국당이 준비한 이 법은 휴대전화 통화 당사자 중 한 명이 통화 중에 녹음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이 이 사실을 알 수 있게 음성 안내 메시지가 들리도록 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법 취지는 시민들의 사생활 보호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외국에도 통화 녹음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이 부당한 협박이나 공갈로부터 대응할 수단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법 제정을 앞두고 논란이다. 입법의 찬반을 떠나 과학의 발달로 우리가 받는 혜택도 적지 않으나 우리 스스로의 행동을 규제하는 나쁜 관습법을 양산화하는 꼴이 됐다는 서글픈 생각도 든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의 모양새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16

광복절 맞는 임청각

이낙연 국무총리가 최근 안동을 찾아 임청각(臨淸閣)의 원형 복원을 약속했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은 독립운동과 깊은 인연을 가진 고택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살림 집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집이며, 동시에 일제 수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보물 제182호로 지정된 임청각은 조선 중기 지어진 전형적인 상류계층의 주택이다. 세칭 99칸의 양반 집이다. 고성 이씨 종택으로 한때는 웅장한 규모와 주변의 빼어난 경관으로 세인의 관심이 쏠렸다.그러나 이상룡 선생을 비롯한 9명의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임청각은 일제의 탄압으로 집의 절반가량이 허물어지는 아픈 역사를 안게 된다. 안동을 호국의 고장이라 부른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전국 독립유공자의 15%인 2천125명이 경북에서 배출됐고 그중 안동에서 348명이 나왔다. 시군 단위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300명이 넘는 시군으로서 유일하다. 전국 평균의 10배가 넘는 숫자다. 왜 안동에 독립유공자가 많은지는 알 수 없으나 안동이 전통적으로 정신문화가 충만한 곳이란 것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충절과 효, 그리고 지조의 선비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다.일제 강점기 일본은 독립운동가가 유독 많이 배출되는 안동지역을 직접 통치키 위해 임청각 옆에 철도를 놓는다. 농촌에 불과한 이곳에 철도를 놓을만한 이유는 없다. 임청각은 철도 신설을 구실로 99칸의 절반 정도가 잘려나가는 수난을 당한다. 지금도 그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대를 이어 독립운동을 한 이 집안과 안동에 대한 일본인의 보복이다.이종서 교수는 임청각을 군자불기(君子不器)란 말로 표현했다. 군자는 기량이 워낙 커서 측량할 수가 없다는 뜻으로 고성이씨 종가의 굳건함을 대변했다. 고통스러운 시대에 스스로 시대적 책무에 나선 종갓집의 정신이 바로 국민이 존경해야 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임청각의 원형 복구 소식은 광복절과 안동사람들의 독립운동 정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는 계기가 됐다. 임청각의 복원을 기대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14

대구 야행(夜行)

야행은 밤에 걷는다는 말이다. 금의야행(錦衣夜行)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으로 남이 알아주지 않을 때 쓰는 표현이다. 자기가 아무리 잘해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밤길에 비단옷 입고 걷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요즘 세태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서도 비단 옷 입고 잘 걷는 시대다. 남 눈치 볼 것도 없다. 내 좋으면 그만인 세상이다.야행 행사가 뜨고 있다. 지난 7월 경주에서는 `천년야행` 행사가 열렸다. 신라 천년 역사가 숨 쉬는 경주에서의 밤거리 역사기행은 색다른 맛이 있다. 첨성대와 대릉원, 월성, 동궁, 월지 등 신라왕궁의 핵심 유적지를 둘러보는 행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사했다. 8월 초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안동 월영교에서도 `월영야행`이란 이름의 역사기행이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인 월영교와 주변 자연경관 등을 활용한 환상적 나이트 투어였다. 원이엄마의 애절한 편지 사연도 들었다. 석빙고 등 월영교 주변의 문화재를 둘러보면서 여름밤이 주는 운치에 모두가 흠뻑 빠졌다.문화재청이 선정한 전국 18개 시군구에서의 펼쳐지는 야행 행사가 여름밤 더위를 시원하게 날리고 있다. 우리지역에서는 경주와 안동에 이어 대구에서도 이달 25일과 26일 이틀간 열린다.`2017 대구 근대로 야행`이란 이름의 밤길 역사 투어다. 이번에는 청사초롱을 밝히고 청라언덕과 이상화 고택, 약령시 등 근대로 일원을 투어 한다. 작년보다 더 풍성하고 즐거워진다고 주최하는 대구 중구청이 자랑한다. 음악과 문화가 어우러진 대구야행은 이미 예약으로 꽉 찼다. 작년에는 5만3천 명이 다녀갔다. 올해는 6만~7만 명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전국 야행행사는 지역의 문화유산과 지역특유의 문화 등을 접목한 야간형 문화향유 프로그램이다. 밤길을 걷는 것(行)과 거리(路), 역사(史), 먹는 것(食), 자는 것(宿), 밤에 보는 그림(畵), 역사 이야기(說). 진상품 이야기(市) 등 소 테마별로 야행의 재미를 꾸몄다. 대구야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11

블랙리스트(black list)

블랙리스트는 일반적으로 `요주의 인물명부`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특히 미국에서는 노동관계의 은어로 사용돼왔다. 미국의 노동조합은 미조직 사업소를 조직할 때 조합의 전임 조직책을 파견한다. 조직책은 대상사업소에 취직해 내부에서 조직하거나, 대상 사업소 종업원과의 접촉을 통해 외부로부터 조직화하는 방법으로 조합을 조직한다. 이같은 노동조합의 조직활동에 대항해 사용자는 조합 조직책의 인물명부 작성을 흥신소 등에 의뢰하고 그 명부를 이용해 조직화에 대응했는데, 이 인물명부가 블랙리스트다. 지난 해 박근혜 정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해 여론의 지탄과 함께 재판을 받고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MBC 방송국에서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사실이 폭로돼 물의를 빚고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최근 `블랙리스트`로 추정되는 문건 2건을 언론에 공개했다.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와 `요주의인물 성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으로 각각 A4용지 1장과 3장 분량이었다.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는 2012년 파업 당시 보도를 담당하고 있던 MBC 카메라 기자 65명을 4개 등급으로 나눈 표이며, 최상위 등급은 별 두 개(☆☆), 2등급은 동그라미(○), 3등급은 세모(Δ), 최하위 등급은 엑스(X)로 표시했다. 등급분류는 2012년 파업 참가 여부와 회사 정책에 대한 충성도, 노동조합과의 관계 등이 기준이었다. ☆☆등급은 회사의 정책에 충성도를 갖고 있다고 적혀 있는 반면 X등급은 현 체제 붕괴를 원하는 이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리스트는 실제로 승진·보직배치 등 인사에 활용된 정황이 드러나 적지않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와 ○부류는 인사 때마다 1~3단계씩 승진했지만, △와 X부류 중 10여 명은 5년간 단 한 번도 승진하지 못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국민들에 대한 성향분석을 통해 지원여부를 결정한 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잘못된 일이다. 아울러 불편부당해야 할 방송이 소속기자들을 등급으로 나눠 승진 등에 차별을 했다니 진상규명과 함께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8-10

`우사인 볼트` 은퇴

영국에서 펼쳐진 201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 결승에서 3위로 골인한 육상 단거리의 신화 `우사인 볼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몸이 떠날 때가 됐다고 하네요. 다리가 아파요. 뛰고 나서 다리가 아픈 건 처음”이라고. 내 몸이 이젠 내 마음 같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도 이젠 “은퇴가 목표”라고 마음을 비우는 모습에서 우리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명언을 다시한번 떠올린다.그가 생애 마지막 100m 질주에서 만년 2인자였던 `게이틀린`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볼트의 10년 천하가 막을 내리는 장면이다. 세계 단거리 육상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1896년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1회 근대 올림픽부터 시작한 100m 육상경기는 1968년 미국 짐 하인즈(9초95)에 의해 10초벽이 깨진다. 이후 2007년 자메이카 아사파 파월이 9초74로 기록을 경신한다. 40년 만에 0.21초가 단축된 것이다.2008년 우사인 볼트가 등장하면서 세계 기록은 9초72로 낮아졌다. 2009년 9초58이란 경이적인 세계 신기록이 수립된다. 불과 2년 만에 0.16초를 단축한 것이다. 혜성과 같이 나타난 그는 이후 올림픽 연속 3관왕을 포함 금메달만 11개를 목에 건다. 육상의 황제, 인간번개, 역사상 가장 빠른 사나이 등 그에게 따라다닌 닉네임도 많다. 당분간 그가 세운 기록은 깨지기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신화의 인물 볼트도 `달이 차면 기울듯`이 때가 되면 은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기억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부인을 않는다.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황제의 마지막 질주에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내는 것도 그의 순응적 자세에 대한 격려다.우리의 속담에 “꽃이 열흘 붉은 게 없다(花無十日紅)”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것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욕심낼 것도 없는 게 인생살이다. 31살 우사인 볼트는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는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경청했다. 아름다운 은퇴 아닌가./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09

스모킹 건

`스모킹 건(Smoking Gun)`은 어떤 범죄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결정적 증거를 일컫는 말이다. 살해 현장에 있는 용의자의 총에서 연기가 피어난다면 이는 그 총의 주인이 범인이라는 명백한 단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스모킹 건`이란 말은 영국 유명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인 `셜록홈즈` 시리즈 중 `글로리아 스콧`에 나오는 대사에서 유래했다. 소설 속 살해현장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언급된 말로, `그 목사는 연기 나는 총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the chaplain stood with a smoking pistol in his hand)`라며 목사가 살해범으로 지명된 것이다. 소설에서는 `연기 나는 총(smoking pistol)`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이후 표현이 바뀌어 스모킹 건으로 쓰이고 있다.1974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글을 쓴 기자 로저 윌킨스는 사건을 조사하던 미 하원 사법위원회의 최대 관심사가 `결정적 증거 확보`라면서 `Where`s the smoking gu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후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뉴욕 주 하원의원 바버 코너블이 닉슨 대통령과 수석보좌관 사이에 오간 대화가 담긴 녹음테이프(증거물)를 가리켜 `스모킹 건`이라는 말을 쓰면서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7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에서도 스모킹 건의 존재여부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핵심쟁점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다. 특검은 이를 밝혀줄 결정적인 증거인 스모킹 건으로,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 이후 작성된 안 전 수석의 수첩을 핵심증거로 재판부에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정황 증거로만 채택했다. 지난달 25일 증거로 채택된 `청와대 캐비닛 문건`도 스모킹 건이 될 것인지 관심거리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런 증거들이 박 전 대통령의 직접 개입을 증명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한 나라 권력 최상층부의 범죄를 입증하는 일이 그리 쉬울 리 없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8-08

`웰다잉 법`의 개시

`한국죽음학회`라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경한 단체가 있다. 인간의 죽음과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를 탐구하는 학술단체다. 인간의 죽음을 공론화하고 잘 죽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방법이 된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다. 죽음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핏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만큼 존엄하고 신성한 것도 없다고 보면 오히려 연구되고 장려돼야 할 영역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신비로움을 `죽음학`이란 학문에서 얼마나 심도있게 파헤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지난 4일부터 연명의료 결정법의 1차 시행이 시작됐다. 이른바 `웰다잉법`으로 불리는 이 법의 본격 시행에 앞서 호스피스 서비스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현재 말기 암환자에게만 허용되는 호스피스 서비스가 에이즈와 만성간경화 말기환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웰다잉 법`은 2016년 국회를 통과하고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우리나라도 법적으로는 존엄사가 인정되는 국가가 된다. 세계에서 9번째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국가가 허용한다. 그렇다고 존엄사를 우리 사회가 무작정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존엄사 논란의 주된 이유는 인간의 수명을 인간이 임의적으로 판단하는 데 있다. 회생 가능성 여부는 인간이나 과학이 판단할 부분이 아니라는 의미다. 동양적 철학에는 인명재천(人命在天)의식이 짙다. 인간의 수명은 하늘에서 결정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비록 내년부터 존엄사가 법적으로 허용이 된다고는 하나 우리가 일상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내키지 않는 영역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웰다잉(well-dying)은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을 뜻한다. 홀로 살다가 홀로 쓸쓸하게 맞이하는 고독사와 같은 우리사회의 어두운 면을 박차고 인생의 죽음을 잘 마무리하자는 소망의 표현이다. 법이 허용하는 존엄사의 가치에 부응하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공동체 정신이 먼저 살아나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07

도덕과 법률 사이

기원 전 1천700년 경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은 인류 최초의 성문법이면서 그 내용도 긍정적 평가가 많다. 그 중 눈길을 끄는 대목으로 동해보복(同害報) 사상을 들 수 있다.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한다는 보복의 법칙이다. 가해와 보복의 균형을 의도하고 있다. `이를 다치면 이만, 눈을 다치면 눈만을 보복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얼핏 보면 가혹한 보복적 규정으로 보이나 실제로 사적인 다툼을 종결하기에는 유용해 보이는 측면도 있다. 과잉보복을 금지시키고 원한의 확대 재생산을 막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최근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는 `데이트 폭력`은 과거에 없었던 범죄라기보다는 도덕심에 의존했던 일이 범죄로 재단되는 사회상의 하나다. 이런 종류의 사례는 많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일이 빈도가 잦고 수위가 높아지면서 법이 만들어지고 법의 통제에 놓이는 경우다. 미혼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나 위협 행위인 데이트 폭력도 마찬가지다.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15년까지 데이트 폭력으로 연인에게 살해된 사람이 233명에 달했다. 한해 46명이 데이트 폭력으로 숨진 것이다. 연인이라는 친밀한 관계의 특성상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재범률이 76%에 이른다.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이 수위를 넘어서면서 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앞으로 연인관계의 사소한 다툼까지도 법의 제약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도덕과 법의 가장 뚜렷한 차이는 강제성 유무다. 도덕은 사회윤리 문제로 비난 받을 수 있으나 형벌로써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이 있다. 도덕이 법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다. 법의 영역에 개인의 도덕성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는 늘 논쟁의 대상이었다. 법이 도덕의 영역을 잠식하는 사회는 건전성이 떨어진다. 아무리 사회가 복잡해진다고 하더라도 도덕이 지켜야 할 영역은 남아있어야 한다. 도덕은 교육으로 출발함을 모두가 깨달았으면 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04

코리아 패싱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을 직역하면 `한국 건너뛰기`가 되지만 속뜻은 `한국의 안보현안을 두고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의 주변국들끼리만 의논하고 한국을 배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코리아 패싱의 유래는 지난 1998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 빌 클린턴이 일본을 건너뛰고 바로 중국만 방문하고 돌아갔을 때 제팬패싱(Japan Passing)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코리아패싱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건 지난 대선 때 대통령 후보자 TV토론이 계기가 됐다. 유승민 후보가 난데없이 문재인 후보에게 “코리아 패싱을 아느냐”고 물었다. 문 후보는 이 용어를 모른다고 답했고, 유 후보가 이 용어의 뜻을 설명했는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와 시진핑과 전화통화 등을 하면서 중요내용을 협의하지만 황교안 권한대행에게는 전화 한 통 해주지 않는다는 게 골자였다. 사실 코리아패싱은 박근혜 정부 때 북핵문제 때문에 한미일의 공조가 절실한데, 한국은 과거사 논쟁에 휘말려 일본과 대화를 않게 됐고, 그 결과 우리나라만 이런 논의에서 배제되면서 코리아패싱 상황을 자초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 이후 박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황이 이어졌으니 트럼프, 아베, 시진핑만 대화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8일 북한의 ICBM급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의 정권교체를 원치 않으며 그들과 대화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심각한 코리아패싱의 전조다.북한의 잇따른 도발과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보면 코리아 패싱의 현실화를 우려하는 야권의 목소리에 정부여당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만약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고, ICBM을 한 번 더 쏘고, 더 나아가 SLBM을 성공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기나라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미국이 코리아패싱 하지 말란 법이 없다. 코리아패싱의 결정판은 우리와 협의없이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것이다. 북한발 코리아패싱은 우리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8-03

책 읽는 구미시민

`원북 원시티(one book one city) 운동`은 미국 시애틀 공공도서관에서 출발한 독서 캠페인이다. 금세기 최고의 혁신적 독서운동으로 손꼽힌다. 시애틀에서 시작한 이 캠페인은 이후 수백 개의 도시로 확산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지역사회가 한권의 책을 선택하여 일정기간 같이 읽고 토론하며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소통하는 방법인데 지역민의 호응도가 유별나게 좋다. 해마다 선택되는 책을 통해 도시의 보편적 특징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독서가 생활에 유용한 이유는 여러가지다. 지식을 얻는 것이나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어떤 이는 독서를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고도 한다. 집중력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시카고 대학은 독서로 명문대학 반열에 올라섰다. 시카고 대학은 처음부터 일류 대학은 아니었다. 5대 로버트 허친스 총장이 취임하면서 명문대학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허친스 총장은 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던 방식을 과감히 버린다. 그리고 졸업의 조건으로 4년간 고전 100권을 읽게 했다. 처음엔 학생들의 반발도 컸으나 10권, 20권 넘어가면서 학교분위기가 바뀌어 갔다. 학생들은 토론하고 질문하고 사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시카고 대학은 8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된다. 놀라운 변화였다.독서의 힘은 시카고 대학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안다. 그러나 도시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수는 759개(2010년)에 불과하다. 미국 9천221개, 독일 8천256개, 일본 3천196개에 비하면 초라하다. 도서관 당 인구 수도 유럽은 1만 명 내외인데 우리는 6만 명을 넘는다. 책 읽기 환경이 나빠도 많이 나쁜 편이다. 구미시가 미국의 `원북 원시티 운동`을 벤치마킹한 `한 책 하나 구미운동`을 11년째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인구 43만 구미 인구의 절반이 넘는 22만 명이 올해 책 선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비록 작은 지방의 소도시지만 시민들의 독서 열의가 놀랍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