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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불로장생(不老長生)의 꿈

과학자들은 인간의 한계 수명을 120세 정도로 보고 있다. 1997년 122세로 사망한 프랑스 여성 잔느 깔망의 나이를 한계점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모든 동물은 세포 분열의 2배 만큼 산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인간은 일생에 60번 세포 분열을 하므로 120년이 한계 수명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옛날 사람들은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 고대시대 사람의 평균수명은 26세 정도였고, 중세는 30세, 1900년대에 와서야 50세를 넘었다. 그러나 요즘은 평균 70세이상을 살고 있다. 사람들의 식생활이 개선되고 의료 혜택도 그만큼 좋아진 탓이다.사람은 누구나 늙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란다. 진시황이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러 신하들을 멀리 동쪽나라 끝으로 보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닐 것이다.1970년 남태평양의 라파누이 섬 토양에 서식하는 세균에서 분리한 라파마이신이라는 물질이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늙은 생쥐에 이 물질을 투입한 결과 그렇지 않는 생쥐보다 최대 60%를 더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이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140살까지 생존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인간의 수명을 늘리려는 의학의 발달은 앞으로 더 많이 진전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한계 수명에 머물 것인지 더 나아갈 것인지는 아직 논란거리다. 최근 우리나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암 생존율이 처음으로 70%를 넘어섰다.선진국과 맞먹는 수준이다. 3명의 암 환자 중 2명이 5년 이상 생존하는 결과다. 우리나라 사람 사망 원인의 1위인 암도 점차 극복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최근 중국의 신화통신 등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라는 명령에 대한 답신이 담긴 문자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어느 성벽아래서 발견된 3만6천여 목독에서 지방 관리들이 진시황의 명령을 쫓아 불로초를 구하러 간 내용이 적혀있다고 한다.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힌 만리장성을 쌓았던 진시황의 불로장생의 꿈이 요즘은 반쯤 이뤄진 셈이 아닌가 싶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29

비트코인 광풍

비트코인 광풍이 불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에서 지난 8일 1비트코인이 2천499만원을 기록했다가 이틀 뒤 정부의 규제 검토 소식이 나오자 1천541만원으로 폭락했다. 비트코인은 올해에만 약 20배 상승하며 암호화폐 신드롬을 주도했다. 비트코인이란 가상화폐로서 금과 같이 발행량의 한계와 교환가치를 지닌 일종의 화폐다. 국가의 화폐 통제권에서 벗어나고자 가상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가상화폐는 2009년도에 비트코인이 탄생한 뒤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고있다.비트코인은 일종의 문제풀이에 따른 보상금 지급형식으로 얻을 수 있다. 마치 게임처럼 64자리의 암호중 앞자리 19개를 맞추면 비트코인이 발행된다. 통상 1문제를 풀기위해선 1개의 PC를 쉬지않고 5년간 돌려야 할 정도다. 예전엔 비트코인 1문제를 풀면 50비트코인을 주었지만 2016년부터는 4분의 1인 12.5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위한 조치다. 누구나 채굴이 가능하지만 채굴은 더 어려워졌다. 일반인이 비트코인을 얻는 방법은 거래소 구매 밖에 없다. 비트코인은 1000분의 1로 쪼개 1천원 단위부터 투자할 수 있다. 소액 투자가 가능하고, 연령 제한이나 등락제한도 없다.지난 2010년 1만비트코인으로 피자 2판을 주문할 수 있었는데, 현재 시가는 2천억원이 넘는다. 폭발적인 가치상승때문에 채굴 투자자 모집을 빌미로 한 사기행각이 많고, 익명성이 있는 비트코인으로 마약을 판매하는 범죄조직 마저 생기고 있다. 24시간 운영되는 비트코인 거래소에 투자한 주부나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코인 가격등락에 일희일비하고, 투기 실패로 자살하거나 코인을 노린 살인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 순기능과 다양한 평가기준이 있는 주식과 달리 비트코인은 투자가치를 평가할 어떤 자료도 없어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이 광풍은 유독 한국에서 심하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한국만큼 비트코인에 빠진 나라는 없다. 한국은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핵폭탄이 터지는 지점)`”라고 보도했다. 도박에 가까운 비트코인 광풍이 힘겨운 서민들을 더 힘들게 할까 걱정스럽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2-28

유종지미(有終之美)

한해의 끝자락이 되면 그 해를 정리하는 각종 수식어들이 뉴스를 타고 전해진다. 그것이 개인이든 직장이든 사회든 특정집단에 대한 특성을 규정짓는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수신문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시대상황을 압축한 대표적 표현으로 자주 인용된다.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꼽았다. “사악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일련의 과정과 촛불민심을 이렇게 본 것으로 풀이된다. 올 한해 나라 안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직장인에게 보이는 세상은 다르다. 취업포털 사이트가 직장인을 상대로 설문한 내용에서 뽑힌 사자성어는 다사다망(多事多忙)과 각자도생(各自圖生)이 많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거나 “제각기 살길 찾기에 정신이 없었다”는 말이다. 먹고살기에 바쁜 직장인의 마음을 대변한 표현이다. 취업 포털이 이번에는 구직자들에게 물어봤다. 그들은 고목사회(枯木死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다. “죽은 나무나 재처럼 의욕이 없다”는 말이다. 청년 실업자들의 애절한 마음을 표현한 말로 새겨들을 만했다. 중국 사람들은 올해의 한자로 공유(共有)를 선정했다고 한다. 공유 자전거를 중심으로 중국에 불고 있는 공유경제(Scharing Economy)의 상징성을 드러낸 단어다. 일본인은 올해 일본사회를 상징하는 한자로 북녘 북(北)을 꼽았다고 한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강행으로 일본인의 불안이 커졌다는 의미라 한다.나라와 직장 등 각자 처지에 따라 한해를 정리하는 마음은 모두가 다 다르다.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사자성어도 생각해 봄직하다. 며칠 남지 않은 한해를 보내면서 시간이 된다면 올해 부족했던 것과 아쉬움을 달랠 유종의 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유종지미(有終之美)`는 “마지막을 잘 정리하자”는 뜻이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는 말처럼 과정의 부족함이 있어도 마무리만 잘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27

중고생 희망직업

중고등학생의 희망직업은 시대의 세태를 반영한다. 최근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 초·중·고 1천200곳 학생·학부모·교사 등 5만1천494명을 대상으로 진로교육 현황을 조사한 결과, 학생들의 희망직업 1위는 초중고를 막론하고 2007년부터 최상위권을 유지해온 교사가 차지했다. 초등학생은 교사에 이어 운동선수, 의사, 요리사(셰프), 경찰, 가수, 법조인, 프로게이머, 제빵원, 과학자를 선호했다. 중학생은 교사에 이어 경찰, 의사, 운동선수, 요리사, 군인, 공무원, 건축가·건축디자이너, 간호사, 승무원 순이었고, 고등학생은 교사, 간호사, 경찰, 군인, 기계공학기술자, 건축가·건축디자이너, 의사, 컴퓨터공학자·프로그래머, 교수·학자, 승무원 순이었다.20여 년전만 해도 중고생 희망직업으로 남학생은 운동선수와 의사, 여학생은 교사를 선호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1995년 전국 중고생 7천800명을 대상으로 희망직업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남자 중학생은 운동선수(11.4%), 의상(9.5%), 과학자(8.1%) 순으로, 여중생은 교사(22.9%), 연예인(12.7%), 디자이너(8.4%), 의사(6.4%)순이었다. 또 남자고등학생은 의사(10.2%)를 가장 선호했고, 사업·건축업·학자나 교수가 뒤를 이었다.더 거슬러 올라가 30여 년 전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직업은 남자의 경우 과학자·운동선수·의사 순이었고, 여학생은 예술가·교육자·간호원의 순이었다. 지난 1983년 연세대 간호대학학생연구팀이 서울시내 국민학생 387명, 학부모 3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동 성역할에 관한 기초조사`에서는 남자 어린이들은 과학자(29.8%)를 가장 선호했고, 운동선수(22.2%), 의사(10.6%), 군인 및 경찰(7.1%), 교육자(6.1%)의 순으로 창의적인 직업을 좋아했다. 여자 어린이는 예술가가 28.6%로 가장 높았고, 교육자(19.0%), 간호원(16.4%), 의사(15.3%)의 순이었다.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희망직업이 창의적이거나 도전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교사가 1위로 조사된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이 만든, 자본주의의 우울한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2-26

하회탈 귀향의 기쁨

조선중기 실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하회(河回)마을을 일찍이 살기에 알맞은 고장으로 소개한 바 있다. 강이 마을을 감싸고 돈다하여 하회란 이름이 붙여진 이곳은 풍수상으로도 좋다. 낙동강이 마을을 섬처럼 둘러싸고 있어 마치 `물에 뜬 연꽃 같다`하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 부른다. 큰 인물이 많이 나고 평시든 난시든 평온을 유지하는 곳이라 했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이다. 문화재 청장을 역임한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하회마을을 한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민속촌이라 말하고 “수려한 풍광에서 하회를 당할 곳이 없다”고 기술했다.2010년 유네스코는 하회마을을 전 세계인류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로 인정하고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주택과 서원 등 전통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마을의 공간 배치가 조선시대 사회구조와 양반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곳에는 서애 종택인 충효당(忠孝堂)과 유학자 겸암의 종택인 양진당(養眞堂)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밖에도 북촌댁, 남촌댁 등 많은 건축물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전통한옥의 모습과 아름다움을 살피는 데는 여기만한 곳이 없을 정도다.5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하회탈과 병산탈 등은 그런 점에서 어쩌면`가장 중요한 일을 끝내고 완성으로 간다`는 뜻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의미가 담겨있다. 가장 한국적인 장소로 고전적 한국인의 모습이 되돌아온다는 말이다. 안동은 정신문화의 중심지로서 이제 한 단계 완성도를 더 높이게 됐다는 뜻이다.하회탈은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유일의 보존 탈이다. 보통 한국의 가면은 바가지나 종이로 만들어져 오래 보존된 예가 거의 없다. 탈놀이가 끝나면 탈은 바로 태워지거나 버려졌던 것이다. 하회탈은 재료가 오리나무인데다 표면에 옻칠을 해 정교한 색을 띠고 있으며 마을에서조차 신성시 했던 중요 문화유산이다.하회탈의 귀향(歸鄕)은 벅찬 감동이다. 안동에서 볼 하회탈의 진가가 벌써 궁금해진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22

대통령 전용 이동수단

대통령이 공무를 위해 국내·외를 다닐 때 이용하는 전용 이동수단인 비행기, 헬기, 자동차, 열차 등은 모두 특별하다. 방탄기능은 기본이고, 비행기의 경우 미사일 회피장치가 장착되는 등 최첨단 전자장비로 도배되기 때문이다.우선 `코드 1`또는 `대한민국 공군 1호기`로도 불리는 전용기는 대한항공으로부터 빌린 장기 전세기로, 기종은 보잉 747-400이다. 정부는 지난 2010년 대한항공과 5년 임차계약을 맺었으며, 지난 2015년부터 2020년 3월까지 같은 비행기를 다시 빌렸다. 임차료는 5년간 1천400억원 수준이며, 항공기 정비와 관리는 대한항공이 맡고 있다. 전세기는 좌석을 400석에서 200여 석으로 줄이고, 대통령 집무실과 회의실, 휴식공간이 마련됐다. 군경과 경호 통신망, 위성통신망 등을 갖췄다. 대통령이 전세기를 쓰지 않을 때는 수시로 제주 인근까지 선회하며 점검한다.대통령의 전용 헬기는 `시코르스키 S-92`기종으로, 최고 시속 295㎞이며, 국내행사 때 자주 이용한다. 전용자동차는 기존의 벤츠 S600가드와 에쿠스 리무진 리티 외에 최근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EQ900 3대를 추가했다. 전용차는 방탄 설비가 기본 옵션이다.전용열차는 이번에 이례적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지난 2010년 도입된 대통령 전용 KTX 객차 8량은 `트레인1`으로 불리는데, 열차를 움직이는 기관차가 객차 앞뒤에 1량씩 붙기 때문에 총 10량으로 이뤄진다. 전용열차 구성은 대통령 전용칸과 회의실, 그리고 수행각료들과 청와대 참모진이 사용하는 수행원칸, 취재기자들이 탑승하는 기자단칸으로 구성돼 있다.서울~강릉간 경강 KTX 개통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전용 열차에서 시민 20명과 식사를 함께 하는 특별이벤트를 진행해 화제다. 청와대는“1979년 대통령 전용 객차가 도입된 이후 대통령 전용 공간에 일반 시민과 기자들이 탑승한 것은 처음이며, 전용 공간이 공개된 것도 처음”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전용열차에 최초로 탑승하는 행운을 잡은 시민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이 될 법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2-21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생각할 때다

중국 군사전문가들 사이에 한반도에서의 전쟁 대비론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 인민군 부사령관 출신의 왕홍광 예비역 중장은 베이징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토론회에서 “당장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시기”라며 “중국 동북지역에 전쟁 동원령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어느 교수도 워싱턴 포스트 기고를 통해 “미국정부 안보팀은 한국에서의 전쟁은 불가피한 결과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정작 한국에 사는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전쟁이 딴 나라 얘기로 듣고 있는 건 아닌지 이상할 정도다. 올 들어 벌써 미국 하와이 주와 일본 후쿠오카 시에서는 북한 탄도 미사일 발사에 대비한 대피 훈련을 몇 차례 실시했다.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한국거주 자국민을 쓰시마로 옮기는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한다. 믿어야 할지 난감하다. 북한에서 7천km 떨어진 하와이에서조차 대피훈련을 벌인다는데 휴전선을 두고 북과 대치한 우리는 너무 한가한 것 같아 어리둥절할 뿐이다.북한과 전쟁 가능성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은 어떨까. 많은 사람이 “설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이 같은 민족인 한국에 대해 공격을 쉽게는 못할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또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록 가만있지 않을 것이란 안이한 해석도 전쟁발발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일 것이다.이 달은 김정은 북한노동당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권력을 이어 받은 지 6년이 되는 달이다. 김정은은 그동안 4차례 핵실험, 41차례 탄도 미사일 발사로 권력을 장악해 왔다. 내년도 그가 내놓을 신년 메시지에 국제사회가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다.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 한다. 북한이 망하면 자유민주국가인 한국과 미국이 코앞에 군사를 배치할테니 중국으로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그러면 한국은 이런 상황에 어쩌면 좋을까. 문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우리가 할 일은 유비무환뿐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20

욜테크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소비스타일로 떠오르고 있는 욜로(YOLO)족의 소비성향이 변하고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욜로족은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며 소비하는 태도로 유명하다. 내 집 마련, 노후 준비보다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생활, 자기계발 등에 돈을 아낌없이 쓴다. 이같은 욜로족의 소비성향이 소비는 최소화하고 저축에 올인하는 짠테크족의 소비 성향과 접합되면서 즐길 건 즐기면서도 아낄건 아끼자는 주의로 바뀌고 있다. 바로 `욜로족`과 `짠테크`가 합쳐진 `욜테크`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평소 불필요한 지출은 최대한 줄이고 즐길 때는 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한다. 욜테크 트렌드가 가장 활발하게 나타나는 분야는 여행, 명품, 뷰티케어다. 여행 욜테크의 경우 항공, 숙박, 교통 등 여행 준비과정에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탐색해 최대한 합리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평소 카드 사용으로 최대한 항공 마일리지를 모아 여행시 활용하고 항공·숙박 등을 예약할 때는 여러 사이트를 비교해 최저가를 찾는 것은 기본이다. 또 무조건 저렴한 숙소를 찾기보다는 프리미엄급의 숙소를 고르되, 각종 프로모션의 혜택이나 할인코드 등을 꼼꼼히 챙겨 `합리적인 프리미엄`을 추구한다.명품 소비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명품을 살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명품을 구입할 때 해외직구나 중고매매를 이용하는 비중이 높고, 해외직구 시에는 관련 혜택이 있는 신용카드를 이용하거나 환율을 체크하는 등 최대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구입 대신 명품 렌털 전문점을 활용하는 빈도도 높다. 뷰티케어 분야에서는 고가의 화장품 대신 저렴한 제품을 구입하고 아낀 비용으로 피부관리, 네일케어 등 개인 맞춤형 서비스에 투자해 높은 만족도를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 욜테크는 신세대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반영하면서도 전통적인 실속을 노리는 일석이조의 소비패턴이다. 이런 삶의 패턴이 새로운 소비문화의 대세로 자리잡아 간다는 게 다행스럽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2-19

공시(公試) 열풍의 그늘

`신의 직장`보다 더 좋아 `신의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 있다. 공무원이다. 공무원 증원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열풍`이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서울도 지방도 어딜 가나 `공시열풍`이다. 심지어 대학 진학을 포기한 고교생들이 공시학원에 몰리는 바람에 대입학원이 망해 버렸다는 말까지 나온다.젊은이들이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호하는 이유는 먼저 안정성이다. 1997년 IMF 이후 직장의 안정성에 대한 선호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모험보다는 직업의 안정성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적 경향이라 하겠다. 수입성면에서도 대기업 못지않다. 정년 보장이 잘되고 늦은 퇴직이 장점이다. 연금과 복지도 최고 수준이다. 잘하면 퇴직 후 `공피아`로 새 직장을 얻을 수도 있다.부모조차도 “공무원이 최고”라 하니 자라나는 아이들이 공무원을 꿈꾸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나 우리 사회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시대적, 경제적 배경에도 물론 원인이 있다. 젊은이들이 모험과 도전을 통해 나라 발전을 견인토록 하는 환경을 만들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이다.그러나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고 공시족을 양산하는 것은 국가 장래로 봐선 결코 바람직 한 일이 아니다.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무원 증원을 늘리는 것은 국민의 부담을 늘릴 뿐 아니라 미래 지향적 선택도 아니다. 세계적 투자 귀재인 짐 로저스(75)는 한국을 방문해 “중국, 러시아 등 세계 어디를 가도 10대들의 꿈이 공무원인 나라는 없다”고 한국의 사정을 혹평했다. “5년 안에 한국 경제는 활력을 잃고 몰락의 길로 갈 것”이라며 “한국은 투자처로서 매력이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정부는 앞으로 5년간 17만여 명의 공무원을 추가로 더 뽑겠다고 한다. 공시족 열풍도 덩달아 당분간 더 지속할 전망이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수정되지 않는 한 공시 열풍은 바로 잡을 수 없다.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돕는 정책, 민간주도의 일자리 창출에 정책의 무게가 옮겨져야 한다. 청년취업 한파가 내년이 더 걱정이라 하니 난감한 일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18

한파(寒波) 즐기기

올겨울 첫 한파가 찾아왔다. 예년보다 빠르게 그리고 기온도 많이 떨어지면서 겨울 추위의 매서움을 제대로 느끼게 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 내려진 한파주의보로 만물이 움츠러든 모습이다. 서울의 아침기온이 영하 12℃로 떨어졌고 경북 북부지방도 영하 17℃를 기록했다. 한파는 한랭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특정지역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현상이다. 이때는 기상청이 한파주의보 등을 통해 한파로 예상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토록 알려주고 있다.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한파는 한반도 상공에 머물고 있는 영하 25℃ 이하의 찬 공기 때문이라고 한다.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1년 중 가장 추운 날이 양력 1월 15일 무렵이다. 24절기 가운데 가장 추운 때를 대한(大寒)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중국의 기준이고 우리의 경우는 소한(小寒)때가 더 춥다고 한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는 속담은 대한 추위가 소한보다 덜 춥다는 조상들의 경험담이다.옛날부터 농가에는 소한부터 날이 풀리는 입춘까지 약 한달 간 바깥출입을 삼가며 겨울나기에 들어갔다. 땔감과 먹거리를 충분히 준비하고 해동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겨울에 모든 동물이 월동에 들어가는 것처럼 사람도 추위를 피해 일손을 놓는다. 요즘이야 난방이 잘되고 따뜻한 방한복들이 많이 나와 생활패턴이 옛날 같지는 않다.학창시절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을 중강진으로 배웠다. 압록강 상류의 남안에 위치한 곳으로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19.5℃라 한다. 1933년 1월 2일 영하 43.6℃를 기록,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아파트 등 도심 속 생활로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느끼기가 예전 같지가 않다.옛 말에 겨울철 추위가 제대로 추워야 다음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맹추위가 해충을 없애기 때문이다. 겨울이 추운 것은 겨울답기 때문이다. 모처럼 찾아온 한파를 즐기는 것도 추위를 극복하는 방법이 아닐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15

혼잣말 효과

혼잣말이 운동효과를 높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흥미로운 심리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다.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혼잣말이 동기부여와 자제력 향상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학생 135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2주 동안 “운동을 좀 더 자주하자”는 내용의 격려의 말을 적도록 했다. 단, 이때 자기 자신을 `나(I)`라고 지칭하는 1인칭 그룹과 `너(You)`라고 지칭하는 2인칭 그룹으로 나눴다. 그 결과 1인칭 그룹보다 2인층 그룹이 미리 세운 운동 계획을 더 잘 실천했으며, 운동 효과도 더욱 크게 나타났다. 이를테면 “나는 날씬해질거야”라고 말하기보다 “○○야 너는 날씬해질 거야”라고 누군가가 말해주듯 혼잣말을 하는게 더 좋은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산다 돌코스 박사는 “혼잣말이 자기 행동에 대한 높은 수준의 제어를 보였다”면서 “어린시절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격려를 받았던 긍정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해 더욱 동기부여가 된다”고 설명했다. 다이어트 중 음식 앞에서 자꾸 무너질 때도 “넌 할 수 있어”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혼잣말`이 다이어트를 지속해 나가는 동기를 부여하는 데 효과적이라니 잘 활용하면 좋을 듯 하다. 혼잣말의 효과는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미시간주립대가 자기공명장치를 통해 확인한 결과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크게 혼잣말을 할 때 스트레스 수치가 내려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연구팀 제이슨 모저 박사는 “혼잣말은 자신의 경험과 거리를 두는 방법으로, 감정을 제어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혼잣말의 이같은 효과는 선생님의 기대심리와 학생의 부응심리가 만나서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로젠탈 효과`나 타인의 기대와 관심으로 인해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피그말리온 효과`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어쨌든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칭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혼잣말 효과가 또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2-14

`젠트리피케이션` 논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우리나라에 나타난 것은 오래된 일은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영국의 사회학자가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이 1964년도다. 이후 미국 맨해튼 등 세계적 도시들이 도시개발과 함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겪게 된다. 최근 중국은 경제성장과 함께 나타난 도심인구 증가로 이 문제가 보다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작년 세계 150개 도시의 집값 상승률을 조사해 보니 중국이 상위 10개 도시 중 8개를 싹쓸이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도 베이징의 경우 1년간 집값 상승률이 30%다. 서울의 1년간 집값 상승률 3.1%와 비교하면 베이징의 집값 상승률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이 간다. 국가가 경제를 통제한다는 사회주의 국가지만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국가적 해법은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북경 교민과 주재원 등이 집중 몰려 살던 왕징지역도 집값 상승으로 변두리지역으로 이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도심공간이 재개발되면서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고 그곳에 살던 원래의 주민이나 임차인이 바깥으로 내몰리는 현상이다. 자유경제 체제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사회 문제화가 된다면 국가가 관리 통제할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 약자의 내몰림이란 측면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부정적 느낌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낙후된 도심공간의 개발이란 활성화 측면에서 보면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한국감정원이 서울 홍대 앞과 신사동 가로수길, 대구 방천시장 등 전국 12군데를 `젠트리피케이션` 이슈지역으로 선정한 바 있다. 사회 문제가 될지 관찰하겠다는 뜻이다.대구 중구청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 제정에 나섰다고 한다. 2년 전에도 같은 조례 제정에 나섰던 중구청은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는 의회를 어떻게 설득할지 관심이다. 시장경제에 맞지 않아 반대했던 구의회는 이 문제에 어떤 대응을 할지도 궁금하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묘법의 지혜가 필요하다./우정구(객원 논설위원)

2017-12-13

“미망인이라 부르면 실례”

최근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는 말 가운데 일부 단어의 의미와 용법 등을 수정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국립국어원은 분기별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상의 언어들 가운데 논란 소지가 있거나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내용을 수정 보완해 오고 있다. 이번에도 40건의 여러 표현을 수정 발표했다. 그중 미망인(未亡人)에 대한 의미를 수정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미망인은 일부 여성 단체들이 표현상 문제를 제기하는 등 그동안 논란을 불러온 단어다. 현재 국어 대사전에는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말”로 표기돼 있다.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의미의 미망인은 다분히 성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시대착오적이고 가부장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립국어원은 미망인의 뜻을 `남편을 여읜 여자`로 수정 표현했다. 그리고 주석을 달아 “다른 사람이 당사자를 미망인으로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본인 스스로가 겸손의 뜻으로 미망인으로 부르면 몰라도 타인이 부르는 호칭으로는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양성평등시대에 맞는 의미의 변화다. 특히 우리나라는 6·25전쟁을 통해 30만 가까운 전쟁 미망인이 생겨난 시대적 아픔이 있어 이 같은 단어의 수정만으로 당사자들이 느낄 심적 위안은 클 것으로 짐작된다.언어는 시대에 따라 생성도 되지만 없어져 버리는 것도 많다. 평소 우리 말에 대한 올바른 습관과 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 감기는 옛날에 고뿔이라 불렀다. 코에서 불이 난다는 뜻이다. 코에서 나는 콧물을 열심히 풀어대니 코에 열이 난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그러나 요즘은 고뿔보다 감기(感氣)라는 한자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고뿔이란 말이 이젠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랑하다`도 `생각하다`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사람을 생각한다고 해서 생각 사(思) 헤아릴 량(量)인 사량(思量)에서 바뀐 말이라 한다.앞으로도 언어의 변화는 무쌍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이 바뀐 미망인에 대한 의미를 익혀두는 것은 결례를 않는 방법이 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11

과학수사의 힘

1991년 3월 대구에서 발생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은 많은 아쉬움 속에 미제의 사건으로 남았다. 지금이었다면 미제사건으로까지 갔을까 하는 의문은 가져볼 만하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워낙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이었던 탓에 최선을 다한 수사라고 보아야 한다. 다섯 명의 초등학교 어린이가 대낮에 한꺼번에 사라진 사건에서 단 한가지의 단초도 찾지 못한 사실 앞에서 경찰은 별로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은 수많은 경찰력이 투입됐으나 결과는 맹탕으로 끝났다. 사건발생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같은 동네에 있는 학교 신축현장 뒷산에서 아이들의 유골을 발견했으나 공소시효 만료를 맞을 때까지 여전히 미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이 사건을 미스터리로 바라본다. 그러는 동안 우리 경찰의 수사력은 세월만큼이나 향상됐는지도 궁금해 한다.최근 미국 드라마 `CSI`나 한국 드라마 `아이리스` 등을 보면서 과학수사의 위력에 시청자들은 많이 놀란다. 물론 TV에 방영되는 과학 수사물이 흥미를 위해 다소 과대 포장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수사는 철저한 과학적 근거에 의해 실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과학수사란 이름으로 수사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과학수사란 현대사회 범죄가 날로 신속화, 광역화, 흉포화 해 가는데 대한 첨단적 대응 방법이다. 사건의 진실을 캐기 위한 현대적 장비와 기자재, 과학적 지식, 기술 등을 활용하는 것으로 탐문 수사의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수단이다. 자칫 묻힐 뻔한 13년 전 살인 사건의 범인이 과학수사의 힘으로 검거된 일이 대구에서 발생했다. 대구중부경찰서 형사팀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별건의 사건을 수사하다 우연히 발견한 담배꽁초에서 13년 전 사건의 용의자의 것과 일치하는 유전자 정보를 얻게 된 것이다.오랜 세월이 지나도 경찰의 망을 피할 수 없는 DNA 등 과학적 증거 능력이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범인도 경찰이 내놓은 과학적 증거 앞에 꼼짝없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담이다. 과학수사의 힘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08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장신(莊辛)이라는 대신은 양왕(襄王)에게 사치하고 음탕하여 국고를 낭비하는 신하들을 멀리하고, 왕 또한 사치한 생활을 그만두고 국사에 전념할 것을 충언했다. 그러나 왕은 오히려 욕설을 퍼붓고 장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장신은 결국 조(趙)나라로 갔는데, 5개월 뒤 진나라가 초나라를 침공해 양왕은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처지에 놓이게됐다. 양왕은 그제서야 비로소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조나라에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들였다. 양왕이 이제 어찌해야 하는지를 묻자 장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고 했습니다. 옛날 탕왕과 무왕은 백 리 땅에서 나라를 일으켰고, 걸왕과 주왕은 천하가 너무 넓어 끝내 멸망했습니다. 이제 초나라가 비록 작지만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기우면 수천 리나 되니, 탕왕과 무왕의 백 리 땅과 견줄 바가 아닙니다.”여기서 망양보뢰(亡羊補牢)는`이미 양을 잃은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쓰였다. 다시 말해 실패를 해도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늦지 않다는 말이다. 부정적인 뜻보다는 긍정적인 뜻이 강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속담은 일을 그르친 뒤에는 뉘우쳐도 이미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한국에서도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뜻의 망우보뢰(亡牛補牢)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사후청심환(死後淸心丸)·만시지탄(晩時之歎) 등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아까운 목숨이 스러진 낚싯배 사고를 보며 느끼는 국민들의 소회 역시 바로 망우보뢰(亡牛補牢)로 표현되는`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낚싯배 안전에 대한 우려로 용역결과까지 나와있었는 데도 대책 마련에 우물쭈물 하다 터진 사고였다니 더욱 개탄스럽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가권력의 무능함에 대한 비난이 탄핵으로 이어졌는 데도 또 다시 이런 비극이 반복된 것은 무엇때문인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국가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2-07

“지방이 사라진다”

모 일간지에 실린 내용이다. “학교 운동장 빼고는 군(郡) 전체에 어린이 놀이터는 한군데도 없다. 경로당은 161군데나 있는데…”해외 토픽감이 아닌가 했다.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웃인 경북 영양군의 사정이다. 영양군에서 작년에 태어난 아기는 모두 74명. 울릉군(38명)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적었다. 2007년 신생아 수가 100명 이하로 떨어진 이후 10년째 이 수준이다. 지방소멸의 위기감을 다룬 일간지의 내용이다.2014년 일본에서는 일본의 지방소멸을 예고한 이른바 `마스다 보고서`가 발표되고 충격에 빠졌다. 일본의 총리대신을 역임한 마스다 히로야가 쓴 보고서는 “일본의 인구는 도쿄를 극점으로 빨려들면서 주변 지방도시 인구가 서서히 감소하면서 결국은 소멸의 길로 간다”는 내용이다. 대도시로의 인구집중 현상이 빚은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우리나라도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 오히려 더 심각하다. 금년 초 행자부는 업무보고에서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와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이어질 경우 30년 안에 전국의 1천383개 읍면동이 사라지는 지방소멸 현상을 예고했다. 일간지에 소개된 영양군이 바로 지방소멸 현상의 대표적 현장이다.“아기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늘고 있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통계청에 의하면 전국 81개 군 가운데 작년에 아기가 300명도 태어나지 않은 군이 52군데다. 농촌지역 64%가 존폐위기에 서 있는 것이다.“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가 지방과 중앙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지방이 소멸하면 중앙만 남는 것이 아니고 중앙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분권론자인 경북대 김형기 교수는 “우리나라 지방소멸 원인이 중앙집권적 체제에 기인한다”고 지적하고 “제대로 된 지방분권형 개헌으로 지방소멸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부쳐질 분권형 개헌안 마련 시한이 촉박하다. 분권형 개헌을 통해 지방소멸의 문제에 대응할 국민적 운동이 필요한 때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06

돌아오는 중국 관광객

유커(遊客·중국인 단체관광객)가 돌아왔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 3월 한국 단체관광 여행상품 판매를 금지했다. 그로부터 9개월이 가까워오는 지난 2일 중국인 여행객 32명이 베이징발 아시아나 항공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이는 중국 국가여유국이 지난달 28일 베이징과 산둥성 지역에 한정해 한국 단체관광을 허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맞이한 국내 여행사 관계자들은 꽃다발과 박수로 이들을 환영하며 한·중 화해의 분위기가 관광 활성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고 한다.사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존재다.유커들은 `화끈하게` 돈을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해외관광객의 1인당 평균 지출액은 1천625달러. 중국인 관광객의 경우엔 2천60달러로 다른 나라 여행자에 비해 지출액이 월등하게 많았다.유커가 한국에서 사용하는 돈이 면세점과 숙박업소, 관광지 식당과 주점 등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중국인 관광객의 감소로 국내 관광업과 숙박업 등의 매출이 7조4천500억 원 가량 감소했다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발표는 이를 증명한다.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올해 중국인 관광객은 329만4천 명이 줄었다. 한국 관광업계로선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중국 정부의 한국 단체관광 금지 조치가 하루라도 빨리 풀리기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재개의 조짐을 보이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한국 방문이 가져올 `그림자`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 여행자들이 지난 몇 년간 서울과 제주도 등지에서 보인 무질서와 비매너, 공공장소에서의 소란과 막무가내식 태도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한국인의 해외여행은 늘고,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은 줄면서 올 9월까지의 여행수지 적자가 122억5천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유커를 쌍수 들어 환영할 수도, 마냥 홀대할 수만도 없는 우리의 입장이 딱하다./홍성식(문화특집부장)

2017-12-05

낙태죄와 현실 사이

`검은 시위`는 지난해 폴란드에서 처음 시작했다. 폴란드 정부가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이에 반발한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 `검은 시위`란 이름이 붙였다. 당시 여성들은 생식권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검은 옷을 입었다고 한다. 폴란드 정부는 결국 낙태 전면금지 법안을 폐기하고 말았다.우리나라도 작년 9월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법 개정안을 예고를 했다가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의 반발에 부딪혀 물러서고 말았다. 이후 낙태죄 폐지에 대한 청와대 청원이 봇물처럼 이뤄졌다. 최근에는 그 수가 청와대가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하는 기준 20만 명을 넘어섰다. 청와대는 “현행 법 체제는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빠져 있다”며 낙태죄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낙태죄는 OECD(경제협력개발국가) 35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 이스라엘 등 9개국을 제외하고는 임산부의 요청에 따른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3년 낙태죄 관련법을 제정했으나 지금까지 이로 인해 구속된 사례는 단 1건 뿐이다. 법은 있으나 사실상 사문화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음성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이 이뤄지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낳기도 했다.이번 청와대의 발표는 현행 법 체제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재고의 뜻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장 폐지 등의 조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방안도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다.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는 11개 여성단체의 공동 모임에서 `2017 검은 시위`가 있었다. 청와대의 발표에도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위였다. 낙태죄는 태아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만을 두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더 많은 사회경제적 요소들이 엉켜 있는 문제다. 사형제가 있으나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것과 같이 법과 현실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이런 것이다. 정부의 정책 결정이 궁금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04

중국인의 `꽌시`

중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관계를 중시한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일이든 기관과 기관과의 일이든 관계에 많은 의미를 두는 전통이 있다. 관계(關係)를 중국말로 하면 `꽌시`라 부른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중국인의 대표적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사건이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는다는데서 유래한 이 말은 남자들의 의리와 굳은 약속을 말하는 대명사로 쓰인다. 이 속에는 중국인의 전통적 `꽌시` 개념이 내포돼 있다.중국 전문가는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려면 `꽌시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인들은 `꽌시`에 목숨을 걸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오랫동안 중국인의 발목을 잡았던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를 없애려 했으나 `꽌시`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의 분위기만은 바꾸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익(利益)에 밝다”는 말을 했다. 중국에서는 군자란 학문과 덕망이 높으며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회적 리더가 되는 이들에게는 의(義)가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라 가르치고 있다.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씩이나 찾아가 그를 감동시켰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다. 선량한 유비의 의리 있는 모습에 제갈량이 감동을 받는 것은 인간 관계의 다른 표현이다. 군자의 모범적 자세라 보는 것이다. 서구 사회의 합리성과 실용적 사고에 비해 중국은 매우 감성적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금지됐던 한국행 여행이 최근 베이징과 산둥성 지역에 한해 부분적인 해제가 됐다는 소식이다. 그러면서 한국행 관광객에게는 여전히 롯데호텔 및 롯데 면세점과 위락시설은 사용 못하도록 단서를 달았다. 크루즈 여행이나 한국여행 상품의 온라인 판매도 금지를 유지했다.한국을 길들이겠다는 그들의 생각에 옹졸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국을 자청하는 그들의 `꽌시`가 이 정도인가 싶다. 공자가 말한 의(義)를 중시하는 중국인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중국 당국의 과감한 관계 개선의 의지가 필요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01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흡입력 높은 문장과 간명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로 일본을 넘어 세계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죽음이란 삶의 대극(對極)이 아닌 일부”라고 말한다. 죽음과 삶이 반대의 개념이 아닌 병존하는 것이란 하루키의 인식은 평화롭고 안정적인 삶, 고통과 불화 없는 안락한 죽음을 꿈꾸는 사람들을 불안으로 내몬다. 기실 완벽히 안정적인 삶과 고통이 부재한 죽음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가 있을 뿐이다.최근 죽음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인식에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합법적 존엄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 시범사업`이 시행된 지 이제 한 달이 넘어섰다. 이 기간 중 치료가 아닌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의료서비스는 받지 않겠다며 죽음을 맞은 사람이 7명이다.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연명의료(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를 거부한다”는 뜻이 담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놓은 사람들도 이미 2천 명이 넘어섰다고 한다.`존엄사`란 의학적 치료로 회복이 불가능한 사람이 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비록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존엄사라는 죽음의 방식이 옳다 그르다를 놓고는 아직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죽음이라는 심각한 문제 앞에서 명확한 태도를 취하기란 쉽지 않다.`존엄`이란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함`을 뜻한다고 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 모두는 존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은 당위에 그치고 있다.존엄해야 할 인간의 삶은 자연 재앙과 전쟁, 시기와 모함 속에서 휘둘릴 때가 적지 않다. `높고 엄숙한 죽음` 역시 로맨스 소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환상이다. 우리가 존엄한 삶과 존엄한 죽음이란 미망에 매달리는 이유는 현실이 이러하기 때문이 아닐까./홍성식(문화특집부장)

2017-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