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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눈먼 돈

최근 미국판 로또 복권인 메가 밀리언 당첨을 두고 지구촌이 떠들썩했다. 미국 복권 사상 가장 큰 규모의 돈이 누구에게 돌아갈지에 대해 세계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1조7천억원의 주인공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지만 당첨자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미국민 사이에는 한동안 복권열풍으로 요란을 떨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복권열풍이 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걸고 복권 판매소를 찾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직장인 가운데 본업에도 열심히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은 꼭 복권을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복권에 당첨만 되면 단번에 벼락부자도 될 수 있으니 한번쯤 투자해 볼만한 일이다. 눈먼 돈이라는 말이 있다. 돈에 눈이 없으니 아무렇게나 굴러들어 온 돈을 뜻한다. 사전에서는 ‘임자 없는 돈’ 혹은 ‘우연히 생긴 공돈’으로 풀이한다. 복권 당첨금도 노력없이 생긴 공돈과 비슷해 얼핏 눈먼 돈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익적 목적을 둔 복권 사업에 투자해 생긴 돈은 눈먼 돈보다는 오히려 행운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요즘 국가 돈이 눈먼 돈 노릇한다는 비아냥이 많이 나돈다. 국가가 용도에 맞게 사용하라며 지원한 예산을 마치 내 돈인양 마구잡이로 사용하다 적발된 경우가 많아서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싼 사립유치원 비리가 그런 경우다. 사립유치원 원장의 개인 비리라고 할 수 있으나 이를 관리 감독하는 행정기관의 무방비가 국민 혈세를 눈먼 돈으로 만들었다는 책임도 면키 어렵다.이번에는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도 부당한 방법으로 국가 돈을 빼먹다 경찰에 무더기 붙잡혀 역시 국민 세금은 눈먼 돈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있음이 확인된 사건이다.선진국과 후진국 국민이 갖는 세금에 대한 인식은 내가 낸 세금을 되돌려받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라 한다. 후진국 국민은 세금을 되돌려받기보다 뜯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 세금을 도둑질하는 사람에 대한 엄벌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관리 잘못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세금에 대한 불신은 빨리 막아야 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02

트럼프의 역살라미전술

살라미 전술은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살라미(salami)’에서 따온 말로, 협상 테이블에서 한번에 목표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부분별로 세분화해 쟁점화함으로써 차례로 각각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말한다. 북한이 핵협상 단계를 최대한 잘게 나누어 하나씩 단계별로 이슈화하고 이를 빌미 삼아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최대로 얻어내기 위해 사용한 전술이다.그런데 요즘에는 북한의 전매특허였던 살라미 전술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비핵화 속도에 대해“오래 걸려도 상관없다”며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비핵화 속도에 점차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북제재 효과가 쌓이면서 결국 급한 쪽은 북한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야금야금 내놓는 것을 베껴 미국 또한 비핵화 시한을 점층적으로 늘리는 전술을 가리켜‘살라미 미러링(mirroring·모방)’을 펼치고 있다고 평한다. 이른바‘역(逆)살라미전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일리노이주 선거 유세에서도 북한의 비핵화 협상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과 관련해 “북한 핵실험이 없는한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 사람들에게도 말한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유엔총회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시간싸움(time game) 하지 않겠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5개월이 걸리든 문제 되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한발 더 나가 아예 문턱을 없앤 셈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시간 게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종전선언 대신 대북제재 해제 같은 경제적 요구에 집중하는 만큼 키를 쥔 미국으로선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본격적인 비핵화와 보상의 주고받기를 앞두고 북-미의 샅바 싸움이 길어지는 것같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북미간 살라미 전술이 펼쳐지는 동안 남북간 교류협상은 조금씩 진전하는 듯 하면서도 일부 협상은 답보 내지 정체상태를 면치 못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지 실감케 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01

참 기부(寄附)

불교에서 이르는 보시(布施)란 자비의 마음이다. 자비의 마음에는 대가가 없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면서 세속적 명리를 기대한다면 보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은 이와 같은 이치다. 선행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대체적으로 자기 가치에 대한 만족을 추구한다. 어떤 반대급부보다는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에서 당위성을 찾는다. 불교에서는 이런 정신을 이타정신(利他精神)이라 부른다. 이타심이란 남을 위한 마음이다. 이기심(利己心)의 반대 뜻이다. 착한 성격이나 희생정신, 배려심 등이 이타심과는 매우 유관한 단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남을 위한 이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우리 사회에서 이뤄지는 기부도 본질적으로는 이타심에서 출발한다. 기부를 하면서 반대급부를 생각했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자원봉사도 일종의 기부다.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체험케 하고 그 정신을 가르치는 것은 기부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하고자 하는데 있다. 자원봉사가 자발성, 비대가성, 공익성을 특성으로 하는 것처럼 기부도 같은 맥락의 특성이 있다.2017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알츠하이머 치료 연구에 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 때 그는 이 투자액 전액을 재단이 아닌 개인 재산에서 출연할 거라 밝혀 기부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 적이 있다. 미국은 기부문화가 잘 발달한 나라다. 초강대국 미국의 힘은 기부문화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미국의 부자들은 기부에 아주 익숙하다. 한 사회라는 공동체에 대한 남다른 가치를 인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최근 어느 노부부의 기부가 화제가 됐다. 평생을 리어카를 끌고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한 노부부가 2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학교 측에 기부했다. 놀라운 일이다. 그들보다 더 큰 갑부도 엄두를 못 낼 일을 노부부가 해서 사회의 이목을 더 끌었다. 팔순의 나이에 대가를 바랄 것도 없다. 경제가 어려워 답답한 요즘이다. 노부부의 기부가 청량제같이 들린다. 노부부의 기부야말로 참 기부라 할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31

황필상법

국회는 지난해 말 자선·장학 또는 사회복지를 목적으로 하고 대기업과 특수관계에 있지 않은 ‘성실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주식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의결권 있는 전체 주식의 2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일명 ‘황필상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의 발단은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 창립자인 황필상씨가 지난 2002년 180억원 상당의 수원교차로 주식 90%를 모교인 아주대에 기증하면서 비롯됐다. 아주대는 황씨의 주식과 아주대 상조회 출연금을 모아 2003년‘구원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이 재단은 2008년까지 아주대와 서울대, 한국과학기술대 등 19개대 학생 733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2008년 수원세무서가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을 근거로 황씨에게 140억여원의 증여세를 부과한 것이다. 상증세법 제48조는 장학재단과 같은 공익법인이 특수관계인 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면 초과분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단은 증여세 부과 취소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재단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은 세무당국의 증여세 부과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다. 항소심 선고 후 대법원 판결까지 7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황씨가 내야할 세금은 체납액까지 더해 225억원으로 올랐고, 황씨는 고액 세금체납자로 몰려 거주하는 아파트까지 압류당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4월 증여세 부과가 적법하다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도 고통을 당한 황씨 사건이 알려지면서 일명 ‘황필상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최근 홍콩 배우 주윤발이 자신의 전 재산인 56억 홍콩 달러(한화 8천1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해 “영웅이 본색을 드러냈다”는 칭송이 자자하다. 그런데 이런 기부조차 만약 한국에서라면 엄청난 세금폭탄을 맞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황필상법’이 아니라 기부문화를 적극 장려하는 ‘주윤발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심사가 드는 요즘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30

반려동물

동물에 반려(伴侶)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핵가족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애완용 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동물도 인간의 반려자라는 의식이 커진데서 비롯됐다.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처음 언급됐다. 개와 고양이, 새 등을 반려동물로 부를 것을 제안한 것이다.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존중하여 동물은 사람의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을 펨펫족이라 부른다. 영어의 Family와 Pet를 합성한 단어다. 펫부머(Pet Boomer)는 은퇴해 반려동물을 기르는 중장년층을 일컫는다. 반려동물과 일상을 같이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반려동물과 관련한 산업도 덩달아 성장하고 있다.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0% 정도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반려동물 사육 인구수도 1천만 명을 넘는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이제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달라진 나라로 분류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반려동물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이들에 대한 각종 제도적 장치가 부족,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아직 많은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그 중 동물 화장장 설치는 가장 민원이 많이 제기되는 문제다. 증가하는 반려동물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동물 화장장으로 상당수 반려동물이 불법 매장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최근 대구 서구 상리동에 들어설 예정이던 동물 화장장이 허가 심의과정에서 주민 반발로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적법한 동물 화장장 허가 신청을 반려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주민의 반대에 부닥쳐 어쩔 수 없이 행정 집행이 중단된 모습이다.대구에는 현재 동물 화장장이 한 군데도 없다. 경북 청도에 한 군데가 유일해 동물 화장장 설치의 필요성은 제기되고 있으나 주민의 반발 또한 만만찮아 이래저래 고민인 것같다.동물 관리에 관한 법적 기준 등 선진적 제도 마련과 함께 행정의 분쟁 조정 능력이 아쉽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29

인구절벽과 ‘베이비 부머’

베이비 붐 세대란 전쟁 후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나라마다 베이비 붐 세대의 시기는 조금씩 다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났던 46년부터 65년 사이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전쟁이 끝나고 미뤄졌던 결혼이 한꺼번에 성사되면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미국에는 그 숫자가 2억6천만 명 정도다. 전체의 29%다. 인구가 집중적으로 생겨난 이들 세대는 그들 사회의 새로운 주류 세력으로서 두각을 나타낸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 후인 55년에서 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베이비 부머’라 부른다. 690만 명 정도다. 이들은 고도의 경제성장과 외환위기,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경험한 세대다.그들은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학교입학 때가 되면 학급 증설 붐을 일으켰다. 어느 세대보다 혹독한 입시지옥도 경험했다. 이들 집단의 움직임은 늘 사회 경제적으로 주목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그들 집단은 또한번 우리를 주목시켰다. 이른바 생산가능 인구 감소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이다.일본은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청년실업률이 줄기 시작했다는 통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은 시장에서의 변화는 크지 않다. 그러나 2년 후면 베이비 부머 맏형격인 55년생이 65세에 진입한다. 한해 적어도 30만~40만 명의 생산가능 노동인구가 감소할 거란 전망이다.반면에 복지 등 부양 비용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학자 사이에는 아파트가 유일한 자산인 이들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 부동산 시장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 풍부한 노동력을 공급했던 베이비 붐 세대의 퇴조를 바라보면서 당면한 인구절벽 문제를 심각히 걱정해 본다.지난 8월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최초로 3만 명 선이 붕괴됐다. 33개월째 연속 하락세다. 사망자수는 최고를 찍었고 혼인 건수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구절벽이 그야말로 가속화되고 있다. 베이비 부머의 출산율은 보통 3.0명이었다. 지금 우리나라 여성은 한명 당 자녀 한명을 채 낳지 못한다는 통계다. 인구절벽의 문제 정말로 심각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26

블록체인의 미래

블록체인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장부에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여러 대의 컴퓨터에 이를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이다. ‘공공 거래 장부’라고도 부른다. 중앙 집중형 서버에 거래 기록을 보관하지 않고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에게 거래 내역을 보내 주며, 거래 때마다 모든 거래 참여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대조해 데이터 위조나 변조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온라인 금융이나 가상화폐 거래에서 해킹을 막는 기술로 쓰인다. 블록체인은 거래에 관여한 모든 컴퓨터가 동시에 기록을 보유한다. 추가적인 거래가 일어나면 각 참여자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거래내역을 고치려면 네트워크상의 모든 컴퓨터가 기록을 바꿔야 해 사실상 해킹이 불가능하다.블록체인은 부동산 계약, 공증 등 모든 종류의 거래가 가능한‘스마트 계약’기술로 발전하면서 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 도입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전자결제나 디지털 인증, 화물 추적, 사물인터넷(IoT) 등 보안성이 필요한 분야에 우선 접목되고 있다. 세계 최대 해운기업 머스크는 2018년 8월 블록체인 물류플랫폼 ‘트레이드렌즈’를 선보였다. 오픈바자르(OpenBazzar)는 블록체인 기반 커머스 플랫폼이다. 오픈바자르에서는 특정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구매자와 판매자가 서로 직접 커뮤니케이션한다. 이베이와 비슷한 시스템이다.위·변조와 조작이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투표 시스템도 개발되고 있다. 2016년 미국 유타주에서는 공화당 등록 당원이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를 통해 공화당 미국 대통령 후보 지명에 참여했고, 국내에서는 경기도 따복 공동체가 주민제안 공모 심사에서 블록체인 기반 투표를 적용한 사례가 있다. 캐나다 스타트업 Axiom Zen사는 블록체인 기술인 이더리움을 게임에 적용한‘CryptoKitties(암호고양이)’서비스를 공개해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블록체인은 해킹을 사실상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강력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ICT 서비스를 넘어 다양한 융합 산업으로 적용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어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한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25

실명 공개의 힘

1993년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안겨준 큰 사건이었다. 부유층의 반발과 갑작스런 제도 변경으로 금융시장은 대혼란을 야기했다. 그러나 실명제 실시에 따른 국민적 반응은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를 단행한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때 90%까지 올라간 것만 보아도 금융실명제 실시는 잘된 일이었다.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의 정상화를 통해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금융거래의 투명성 확보로 건전한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다. 특히 당시 한국적 상황에서는 지하경제화된 음성, 불로소득과 정경유착의 검은돈을 제거하는 목적이 더 컸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금융실명제 실시는 세월이 흐를수록 음성적 거래를 위축시키고 금융시장 안정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실명제라는 것은 이처럼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예컨대 공사 실명제가 있다면 이 공사에 대해선 실명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실명제는 본인의 명예와 책임을 동시에 내 건 약속인 셈이다.사립유치원 비리와 관련, 실명 논란이 컸다. 고심하던 교육부가 여론에 밀려 결국 실명을 밝히기로 결론을 냈다. 그러나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비리와 연루된 교육 공무원 명단 공개도 요구하면서 실명 공개를 둘러싼 상방 공방이 벌어지는 촌극도 있었다.그러나 자기반성없는 한유총의 성명에 대해 적반하장이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실명 공개 공방은 일단락됐다. 유치원의 입장에서는 이유야 어쨌든 실명 공개란 위협이 칼날처럼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비리 유치원의 실명 공개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는 70%가 찬성이다. 그것이 정보공개로 인한 명예 실추나 선의의 피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민 정서는 공개 쪽에 있다. 그만큼 유치원 비리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나쁘다는 뜻이다.국세청이 악성 세금체납자 명단을 발표, 공개 망신을 주는 것도 일종의 실명 공개에 의한 영향력 표시다. 공공의 이익과 개인 사생활 보호가 자주 충돌하는 복잡한 세상이다. 실명 공개의 힘이 큰만큼 활용 방법도 지혜로워져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24

DSR 규제

DSR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ebt Service Ratio)의 영어 약자다.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의 소득 대비 전체 금융부채의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말하는 것으로, 연간 총부채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눠 산출한다. 주택대출 원리금 외에 모든 신용대출 원리금을 포함한 총대출 상환액이 연간 소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대출 상환 능력을 심사하기 위해 금융위원회가 2016년 마련한 대출심사 지표다. 주택담보대출 이외에 금융권에서의 대출 정보를 합산해 계산한다. 비슷한 용어이지만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소득 대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에 신용대출 등 다른 대출의 이자를 더한 금융부채로 대출한도를 계산하는 반면 DSR은 대출의 원리금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자동차 할부금, 학자금 대출, 카드론 등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더한 원리금 상환액으로 대출 상환 능력을 심사하기 때문에 더 엄격한 기준인 셈이다. DSR을 도입하면 연소득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금융부채가 커지기 때문에 대출 한도가 대폭 축소된다. 이 DSR은 DTI 규제가 없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도 적용된다.오는 31일부터 저축은행과 여신전문회사의 가계대출 심사에도 DSR이 시범 도입될 예정이어서 금융권은 물론 각 가정에서도 대출금 관리에 신경써야 한다. 모든 금융회사 대출 원리금 대비 연간 소득 기준으로 DSR을 산출해 대출에 활용하게 된다. 은행들은 31일부터 ‘DSR 70%’ 관리지표가 도입되지만 제2금융권은 가이드라인 형식으로 자율 시행을 한 뒤 정보가 축적되면 내년 상반기 쯤 순차적으로 관리지표가 도입될 예정이다. 금융위는 DSR가 70%를 넘는 대출을 고(高)DSR로 분류, 시중은행은 앞으로 고DSR가 전체 대출의 15%를 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오는 31일부터 은행권을 시작으로 DSR 규제가 강화되면 2건 이상 대출을 받은 이른바 다중채무자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현재 소득이 많지 않은 저소득층, 청년층, 은퇴생활자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가 이대로 지속되면 서민들의 대출금 상환압박이 심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23

노년의 행복지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를 측정, 그 결과를 내놓았다. 1천 명을 대상으로 전문가 그룹이 참여해 7개 영역 36개 지표별로 만족도 조사를 벌였다. 행복이란 추상적 개념을 숫자로 측정해 만족도 여부를 왈가왈부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결과에 눈길이 간다.한국인의 행복지수는 평균 6.3점이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6.56점으로 가장 높았고, 60대가 6.05점으로 가장 낮았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느끼는 행복도가 더 높았다. 최근 빚어지고 있는 취업난과 주거문제 등으로 20대는 미래안정성 부문에서 가장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행복관련 지수는 어릴 때 높아졌다가 40대에 가장 낮아진 뒤 다시 높아지는 U자형을 보이는 게 정상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60대 연령층이 연령별 세대 중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70대 이상 노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짐작이 간다.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우리나라 OECD 국가 1위의 노인 자살률과 노인빈곤의 문제가 주된 원인일 것으로 분석했다.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다는 한국의 체면이 구겨진 결과이다.더한 문제는 우리나라가 장수시대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섰다. 초고령사회도 곧 눈앞에 닥칠 일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노인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장수가 과연 행복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축복받아야 할 인간의 장수가 재앙이 된다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행복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 판단이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각자가 갖는 몫이 따로 있다. 그러나 개인이 가져야 할 행복의 요소와는 별개로 국가가 만들어야 할 국가차원의 몫 또한 따로 있다. 성공적 복지국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 한 국가의 행복지수는 노년층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22

이육사 대구 집 유감

안동 출신의 민족시인 이육사가 대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20년 17세가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사오면서부터다. 1937년 서울로 옮겨갈 때까지 17년간 대구에서 보냈다. 17년 기간 중 영천에서 혹은 일본 동경에서의 대학생활 시절도 있었으나 대구에서의 거주 기간이 적지 않았다. 또 독립운동가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 투옥되고, 그의 수의번호 264가 뒷날 아호가 된 것도 대구와는 유별한 인연이라 말할 수 있다. 1930년 그의 첫 시 ‘말’이 발표된 것도 대구에서의 일이다. 그는 중외일보 대구기자로 활동도 했으며 이육사라는 필명을 알리기 시작한 무렵의 주무대가 대구였다. 대구는 그에게 시인으로서 또는 독립운동가로서 맹활약한 배경지였다.이육사는 23세의 나이에 투옥되는 등 17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조국의 독립을 누구보다 갈망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의 시에서 표현한 청포도는 독립을 기다리는 조선의 모습이다. 덜 익어 푸른색을 띠는 풋포도를 독립을 기다리는 조선의 모습으로 비유한 것이다. 또 광야에 목 놓아 부르게 하고 싶은 백마를 탄 초인의 모습에서 민족의 울분과 희망을 표현했다.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을 염원했던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를 기리는 이육사문학관이 그의 고향인 안동에 세워진 것이 2004년의 일이다.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소박하게 지어진 문학관 뒷산에는 그의 묘소도 있다. 생가터 옆에는 시비 동산도 만들어져 있다.이육사가 대구에서 거처했던 남산동 대구집이 철거 위기에 놓였다. 대구시가 활용 방안을 놓고 고심하던 사이 아파트 재개발 지역에 포함된 것이다. 이미 건물 외벽이 허물어지는 등 건물로서 가치를 상실한 현장을 본 시민들의 마음이 왠지 착잡하다.대구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민족시인 이육사의 역사적 흔적이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의 역사적 체취가 남아있던 그곳에 그를 기억할 작지만 의미있는 기념물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 역사란 후손이 다듬고 보존할 때 그 가치가 커지는 법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19

한국의 국가경쟁력

한 나라의 국가경쟁력은 자국 내 기업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조하고 국민들이 더 나은 경제적 번영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 유지하는 국가의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온 나라가 청년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올해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140개 국가 중 15위로 작년보다 2계단 상승한 것으로 발표됐다. 기획재정부가 17일 세계경제포럼(WEF)이 공개한 국가 경쟁력 평가 결과에서 한국이 이런 성적표를 받았다고 전했다. 작년에는 평가 대상 국가 137개국 가운데 26위(구 지수 기준)를 기록했다. 작년 평가 결과를 올해와 비교할 수 있는 방식(신지수)으로 환산하면 한국은 17위였다니 종합평가 순위는 작년보다 2계단 상승한 셈이다. 분야별로 보면 한국은 12개 부문 가운데 10개에서 30위 내에 들었는 데, 거시경제 안정성, 정보통신기술(ICT)보급 등 2개 분야는 1위였다. ICT 보급의 하위 항목을 보면 광케이블 인터넷 가입자 수에서 1위를 기록했고,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는 6위였다. 거시경제 안정성에선 물가상승률, 공공부문 부채의 지속가능성 등 2개 항목이 1위였다.WEF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 등을 바탕으로 전 세계 ICT 부문을 주도하고 다수의 특허출원과 높은 연구·개발(RD) 지출비중 등을 바탕으로 한 혁신 거점이라는 평가를 한 반면 혁신적 사고(90위), 기업가정신·기업문화(50위) 등의 순위는 상대적으로 저조하게 나오는 등 혁신 부문 중 소프트 파워에서는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시장 독과점, 노동시장 경직성 등 때문에 생산물시장이나 노동시장의 효율성도 부진한 것으로 분석됐다.올해 국가별 순위 1위는 미국이었고 2위는 싱가포르, 3위는 독일이었다. 이어 4위 스위스, 5위 일본, 6위 네덜란드, 7위 홍콩, 8위 영국, 9위 스웨덴, 10위 덴마크, 11위 핀란드, 12위 캐나다, 13위 대만, 14위 호주였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5위였고, 노르웨이(16위), 프랑스(17위), 중국(28위) 등보다는 순위가 높았다. 세계 15위라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일견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걱정도 함께 밀려온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18

무관용의 원칙

‘깨진 유리창 이론’은 우리 사회의 무질서와 범죄가 주변의 무관심으로 방치되면 무법천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내용이다. 미국의 범죄학자 ‘조지 켈링’은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두면 사람들은 그곳이 방치됐다고 생각하고 다른 유리창도 깨고 도둑질까지 해 그 일대가 무법상태로 변한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범죄율을 낮추려면 사소한 것부터 잡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 뉴욕의 범죄를 줄이는데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학자다.1990년대 일이다. 강력 범죄로 고민하던 뉴욕시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한 지하철 내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강력범죄는 잡지 않고 낙서만 지운다는 시민들의 비난 여론에도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한 결과, 5년 뒤부터는 뉴욕의 범죄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시는 깨진 유리창 이론의 효과라 생각하고 이번에는 경범죄 단속에 나섰다. 이후 뉴욕의 치안이 훨씬 좋아졌다고 한다.깨진 유리창 이론은 범죄학에서 출발했으나 기업에서 더 많은 응용을 했다. 기업이 경영전략을 짜면서 수많은 비용을 투자하면서 정작 사소한 일에 소홀히 해 실패해선 안 된다는 이론의 근거다. 총체적 위기는 사소한 위기관리에서 온다는 교훈적 이론으로 통용된다.‘무관용의 원칙’은 깨진 유리창 이론에 근거해 나온 말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규정이나 규칙을 위반하면 용서를 하지 않고 엄벌하겠다는 뜻이다.최근 정부는 미투운동에 대한 공직사회에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키로 했다. 공직자는 모든 유형의 성범죄로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당연히 퇴직된다. 벌금형 기준과 구제 기간을 강화한 것이다.사립 유치원의 비리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일파만파다. 교육부가 무관용의 원칙으로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 연간 2조 원이 넘는 국비가 지원되는 동안 감독기관은 도대체 무얼 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 세금은 언제까지 눈먼 돈 노릇을 해야 하나 답답하다. 무관용의 원칙이 잘 지켜질지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17

그루밍 성범죄

그루밍(길들이기·Grooming) 성범죄는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주로 가정에서 방임되는 취약 아동이나 청소년이 대상이 된다. 선물이나 고민상담 등을 통해 신뢰를 쌓은 뒤 신체접촉을 시작으로 성범죄에 이른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인정과 애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가해자는 이런 특성을 잘 알고 십분 활용한다. 그러다 보면 피해자는 그루밍을 거치며 가해자와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피해자는 성적 학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범행으로 인식하지도 않게 된다. 그루밍 성범죄는 ‘교사와 제자’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친족 간에도 그루밍 범죄가 일어난다.‘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접근해 15살 여중생과 수차례 성관계를 맺고 임신까지 하게 했다가 상습 성폭행 혐의로 2013년 재판에 넘겨진 40대 연예기획사 대표 A씨의 사례가 대표적인 그루밍 성범죄 사례다. 그는 법원에서 피해 여중생과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항변했고, 1·2심은 차례로 징역 12년형, 9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피해 여중생이 평소 A씨에게 보낸 편지와 문자메시지에서 ‘사랑한다’는 표현과 이모티콘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파기환송심을 거친 이 사건은 현재 검찰의 이례적인 재상고로 다시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그루밍 성범죄의 문제 중 하나는 처벌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형법상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은 만 13세 이하로 규정돼 있어 만 13세 이상의 청소년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하면 상대 남성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아동·청소년 전문가들은 그루밍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성년자 의제 강간 연령을 지금의 만 13세에서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처럼 만 16세로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한다.그루밍 성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동화’가 이달 말 개봉된다. 의붓 아버지의 어긋난 사랑으로부터 한 소녀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소년 ‘동화’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그루밍 성범죄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16

가짜뉴스 공방

우리는 이미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의 정보로 하루의 일상을 시작한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예측했듯이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힘의 근원이 이미 지식 정보계층으로 넘어가고 있다. 국가나 기업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은 이미 과거가 돼버렸다. 권력의 본질 자체가 과학적 혁명과 같은 첨단기술 수단을 통해 변화한 세상이다. 토플러는 인류 역사상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킨 3번의 혁명이 있었다고 했다. 하나는 농업혁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산업혁명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식과 두뇌에 바탕을 둔 정보혁명을 손꼽았다.정보화 사회는 정보가 중심이 돼 가치를 만드는 세상이다. 물질과 에너지가 자원이 됐던 농업화 및 공업화 시대와는 대별되는 개념이다. 정보화 시대에는 과잉정보나 불량정보로 인한 부작용이 필수적으로 나타난다. 산업화 과정에서 드러났던 물질만능주의와 비슷한 사회적 병폐라 할 수 있는 것이다.가짜뉴스 문제가 또다시 국감장에서 논란이 됐다. 가짜뉴스의 범람을 법으로 규제하자는 여당과 현행법으로도 규제가 가능한데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는 야당의 주장이 맞섰다. 결론적으로 정치권이 이 문제를 두고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공방을 주고받는다면 결론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가짜뉴스는 개념 자체가 불분명하고 사용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학자들도 가짜뉴스의 역사를 인류의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만큼 길다고 말하고 있다. 인류가 생활 속에서 전해 듣는 정보는 가공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가짜정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류는 가짜뉴스와 늘 다퉈 온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정보화 사회에 대한 평가는 정보를 얻는 사람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사용해 인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이 정보나 컴퓨터에 지배되는 세상이 되어서는 올바른 정보화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의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가짜뉴스를 통제할 뾰족한 수단도 없지만 통제보다는 똑똑한 소비자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가 없어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15

대구 경제의 민낯

대구 경제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내륙도시인 대구가 한때 전국 3대 도시로 명성을 날린 적도 있으나 좀처럼 명예를 회복지 못하고 있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대기업 유치 등 대구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지나고 보면 그게 그거다. 경제를 살리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 줄 알지만 그분들의 약속이 새삼 야속하다. 얼마 전 인천의 한 언론사는 창간호에서 인천은 인구 300만 명을 넘기면서 대구를 제치고 국내 3대 도시로 비약했다고 보도했다. 경제지표 등에서 머지않아 부산을 추월할 기세라고 자랑했다. 이른바 수도권에 자리한 인천은 지금 의욕이 넘쳐나고 있다.일각에서는 인천의 국내 3대 도시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인구가 많다고 3대 도시로 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천이 성장한 것은 서울의 베드타운이기 때문이지 인천 자체가 도시 기능적으로는 3대 도시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도시는 도시 자체적 구성 요소가 잘 갖춰져야 하고 무엇보다 자립적 도시 기능이 우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만 해도 잠은 인천에서 자고, 직장생활은 서울에서 하는 사람이 많기에 대구를 넘어섰다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다.그러나 대구가 경제적으로 타도시보다 경쟁력이 있고 풍요로운가 하는 질문에는 말문이 막혀 버린다. 지역 총생산(GRDP) 전국 꼴찌라는 불명예를 25년간 달고 있다. 과연 무엇이 대구를 이처럼 침체 구덩이에 빠뜨렸는지 궁금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또는 정치적 위상에서 우리나라 중심부에 섰다고 자부했던 대구가 지금은 왜 이처럼 초라해졌을까 싶다.대구 근로소득자의 1인당 연평균 급여와 법인 사업자의 평균 당기순이익이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국세청이 국회에 건넨 2016년도 자료다. 지역기업의 경영 상태와 무관치 않은 결과다. 대구 경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같아 어찌 우울하다. 특히 우리지역 봉급생활자의 급여가 울산지역 봉급자의 72%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젊은이가 대구를 떠나는 이유를 알만하다. 백성을 편안케 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리더십이 아쉽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12

풍등

풍등은 특정 행사때 하늘 높이 날리기 위해 만든 연등의 일종으로, 중국에서 유래됐다. 제갈공명이 발명했다해서 공명등으로 불린다. 중국에서는 새해맞이 시점에 대규모로 풍등을 날리기도 한다. 풍등에 소원을 적어 날리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는 데다 행사 자체가 장관을 연출해 세계 여러나라에서 전통문화 축제행사로 실시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풍등축제는 대구 풍등축제다.‘달구벌 관등놀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4월에 열린다. 풍등축제는 신라시대 때부터 이어져서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전통 문화축제로, 대구에서는 1967년부터 관등놀이의 형태로 전승돼 왔다. 형형색색 오색풍등에 희망, 소망을 적어 푸른 밤하늘에 날려보내며 기원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준다.풍등은 그 안에 불덩어리를 품고 바람을 따라 날아다니는 물건이어서 얼마간 하늘을 난 뒤 땅에 떨어질 경우 화재를 일으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2017년 12월 26일 소방기본법 제12조가 개정되면서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의 권한으로‘풍등 등 소형 열기구를 날리기, 그 밖에 화재예방상 위험하다고 인정되는 행위의 금지 또는 제한’이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를 위반해 풍등을 날리다가 적발되면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또 야생동물이 떨어진 풍등을 먹이로 여기고 삼켜서 죽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가 하늘을 떠 다니는 풍등에 다리가 얽혀 빠져나오지 못해 끝내 목숨을 잃은 올빼미 한 마리의 사진을 공개하며 풍등 사용 금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영국 50여 개 자치단체는 풍등 날리기를 금지시켰다.하지만 그동안 풍등이 전통문화로 취급됐고, 빈번히 시행되어 왔었기에 일반인들에게 풍등을 날리는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이 희박하고, 벌금에 대해서도 반발이 크다. ‘전통문화 이벤트’와‘화재위험 요인’이란 인식 사이에 놓였던 풍등이 최근 경기도 고양저유소 화재를 일으켰다고 해서 논란이다. 아름다운 전통문화 행사도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큰 재난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11

청도 반시

청도의 감인 반시는 씨가 없고 모양이 쟁반처럼 납작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떫은 감을 대표하는 품종 중 상주와 영동 등에 분포하는 곶감용의 길쭉한 모양의 등시와는 다르다.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 수령 300년의 등시 감나무가 있다면 경북 청도에는 이서면 신촌리에 수령 150년의 반시 효시 감나무가 있다. 반시는 육질이 유연하며 당도가 높고 수분이 많다. 다른 과실에 비해 비타민C가 월등히 많아 노화방지, 피로회복, 감기예방 등에 좋다고 소문이 나있다.청도에서 생산되는 반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씨없는 감으로 유명하다. 청도 감을 다른 지역으로 가져가 심으면 씨가 생긴다고 한다. 산림청이 그 원인을 조사해 봤더니 청도 감나무는 열매를 맺는 암꽃만 있고 수꽃 감나무가 없어 수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도지방의 독특한 기후 등도 반시가 생산되는 이유라 했다. 2010년 산림청은 반시를 지리적 특성에 기인해 생산되는 농산물인 ‘지리적 표시제’ 농산물로 공식 등록했다.감은 예로부터 중국과 일본, 한국 등이 주요 산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은 오래된 농업기술서에 기록이 남아 있을만큼 역사가 있으며 생산량도 압도적으로 많다.청도반시는 조선시대 문인 박호가 평해(울진)군수 재직 시 명나라 사신으로 떠나는 친구에게 부탁해 감나무 가지를 가져 왔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박호가 고향으로 올 때 토종 감나무의 접수를 무속에 꽂아 청도 감나무에 접목한 것이다. 이곳에서 놀랍게도 씨없는 감이 열렸다고 한다. 이서면 신촌리 어귀에 있는 고목의 감나무가 원조 나무라고 한다.청도는 산과 물, 인심이 좋은 삼청의 고장이다. 대구 인근의 전원도시로도 명성을 잘 알리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가을만 되면 온통 감빛으로 물들어 가는 고장으로 더 소문 나 있다. 복잡한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 가을의 색깔과 정취를 제대로 만끽하기에 적당한 곳이다.12일부터 청도지방에는 반시 축제가 열린다. 청도 반시의 맛과 기분을 느껴볼 좋은 기회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10

신라의 미소

불교의 진리를 설명하는 것 중에 가장 압축된 말은 염화시중의 미소다. 본래 불교는 ‘말이나 관념을 떠나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부처님이 설법을 하던 중 연꽃을 들고 대중에게 보였다. 아무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가섭이란 제자만이 부처님의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하여 염화미소라는 말이 생겼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미소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선(禪)의 기원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이야기다.미소란 말을 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몸짓의 언어다. 웃음 속에 담긴 뜻이 알듯 말듯 하지만 마음이 통했다는 사인임을 서로가 안다. 그것이 어떤 장소든 상대가 누구든 시대가 어느 때든 상관이 없다. 미소 자체로 부처님의 마음을 안 가섭처럼 말없는 모두의 마음이 미소로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신라 천년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가 보물로 지정됐다. 천년의 세월을 미소로 지켜왔던 수막새의 ‘작은 웃음’이 드디어 국가 보물로 인정받은 셈이다. 기와 유물 자체가 보물로 지정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의 예술성과 문화재적 가치가 보물로 지정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특히 틀에 찍어 낸 것이 아니라 섬세한 손으로 빚은 잔잔한 미소의 수막새는 신라인의 체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문화유산이다. 수막새는 중국 전국시대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나 백제 미륵사지, 신라 유적지 등에서 발견돼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일제 강점기인 1934년 경주 흥륜사 터에서 지금의 수막새는 발견됐다. 당시 일본인 의사에 의해 일본까지 반출됐으나 박일훈(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라는 분의 끈질긴 노력으로 1972년 국내로 돌아왔다. 우리 문화를 지키겠다는 한 사람의 집념과 노력으로 오늘의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아동문학가 이봉직은 ‘웃는 기와’란 동시에서 “기와는 금이 가도 신라 사람의 웃음은 깨지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신라의 미소’가 이젠 이심전심으로 널리 퍼질 모양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08

고령 운전자

90세가 넘은 노인이 사업용 택시를 운전한다고 하면 우리가 이를 단순히 노익장(老益壯)의 한 단면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까. 사람의 건강이야 개인별로 천차만별이기에 꼭 나이 많은 노인이라고 해서 택시 운전을 못 할 것은 없다. 현행법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택시운전을 제지할 방법은 없다.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 택시의 운전자 연령이 90세를 넘어섰다면 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일이 된다.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90세라는 노령의 연령으로 택시를 모는 것은 어째 불안해 보인다.우리나라에서 90세가 넘은 노인이 사업용 택시를 몰고 있는 숫자가 전국적으로 237명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에서만 110명이 현재 운전 중에 있으며, 대구서도 17명의 90세 이상 노인이 택시 영업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국회에 제출된 국토교통부 자료에서 밝혀진 것이니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자료에 따르면 80~89세의 택시 운전자도 전국에 533명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령사회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설명할 수 있으나 그냥 넘기기에는 뭔가 찜찜하다.자료를 넘겨받은 국회의원도 고령화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자격증 유지 검사를 좀 더 정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지난해 일본에서는 치매환자인 60대 후반 여성이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다 오토바이 운전자를 사망케 한 사고가 났다. 일본에서는 치매환자의 11%가 여전히 운전 중에 있다는 통계도 나왔다 한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고령자 운전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운전면허 반납 캠페인 등 다양한 계몽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우리나라도 최근 10년 사이 65세 이상 고령자의 교통사고가 2.6배나 늘어났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정체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에 비해 고령 운전자 사고는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우리 사회의 고령자 운전도 대책 마련이 절실해졌다. 정부의 대응 노력으로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