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피부색, 인종, 종교, 국적을 이유로 개인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건 명백한 범죄행위인 동시에 인간의 평등과 존엄에 대한 도전이다. 용서받기 어려운 일.한국을 여행했거나 여행하고자 하는 태국인들이 “전자여행허가(K-ETA)를 받았음에도 입국 거부 사례가 많다”며 한국 법무부가 태국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했다. 이런 분위기가 ‘한국 여행 보이콧’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태국여행사협회(TTAA)에서 흘러나온다.보이콧(Boycott)이란 특정 국가나 단체에 보복을 가하며 공동으로 배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론 소비자가 기업에 항의하는 불매운동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한국인들은 비자 없이 태국 여행을 즐기는데, 태국 사람들은 전자여행허가를 받고도 입국이 거부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니, 이는 불공정하며 양국의 우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태국여행사협회의 주장일 터.실제로도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한국을 찾은 태국 여행객은 11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1%가 줄어들었다. 동일한 시기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의 여행자가 대폭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을 찾은 태국인 중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SNS에 ‘한국 여행 금지’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수만 명이 그것에 동조하는 최근 상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한국 법무부가 곤혹스러움에 빠졌다. 불법 체류자를 꼼꼼하게 찾아내는 본연의 임무가 ‘한국 여행업계를 죽이고 있다’는 비난으로 돌아온 탓.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태국인 불법체류자는 16만 명에 육박한다. 적지 않은 숫자다. 딜레마에 빠진 법무부가 뾰족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24
우정구 논설위원 항공모함의 등장은 해군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된다. 항공기를 탑재하고 이착륙시키는 항공모함은 이동성과 확장성 면에서 과거 해군의 전투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하기 때문이다.세계 어느 곳이든 투입이 가능하고 항공기, 헬기 등 다양한 군사적 자원을 탑재할 수 있어 항모 보유 수만으로 그 나라 군사력은 높게 평가받는다. 떠다니는 군사기지라 부르는 이유다.세계는 8개국이 22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절반인 11척은 미국 소유다. 2022년 중국이 세 번째 항공모함을 취역함으로써 세계에서 두 번째 많은 항공모함 보유국이 됐다. 중국은 2035년까지 6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할 계획이라 한다.항공모함의 건조 비용은 대략 7조원 정도 든다. 국가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항공모함 보유는 사실상 힘들다.1986년 만들어진 미국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가 22일 부산항에 입항했다. 이달 말 열릴 예정인 한국, 미국, 일본의 첫 다영역 군사훈련인 프리덤 에지에 참여할 목적이라 한다.10만t급 핵추진 잠수함인 루스벨트호는 축구장 3배 크기의 비행갑판을 갖추고 있다. 미 해군 전투기 FA-18 슈퍼호넷, 공중 조기경보기, 헬기 등 총 80여 대의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다. 승조원 수만 6000명에 달하니 웬만한 나라의 공군력과 맞먹는 규모다.최근 북한은 핵위협과 함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북러간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군사 합동훈련으로 한미일간의 결속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세계 6위의 한국군사력을 보강할 항공모함이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23
우정구 논설위원 1991년 제작된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파리의 센강을 가로지르는 퐁네프 다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두 남녀의 치열한 사랑 이야기가 주제다. 세계적 흥행을 이끌며 이듬해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우리나라서도 뜨거운 흥행을 기록하며 프랑스 영화의 붐을 일으킨다.파리의 남쪽에서 북쪽을 연결하는 퐁네프 다리가 세계적 유명 명소로 알려진 것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덕분이다. 퐁(Pont)은 프랑스어로 다리고 네프(Neuf)는 새롭다는 뜻이다.1570년 프랑스 앙리 3세 때 다리를 짓기 시작해 1607년 앙리 4세 때 완성된 다리다.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이름과는 달리 프랑스 센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다리는 흰색 돌을 주로 사용해 만들었고 아치 형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다리 중간에는 말을 타고 있는 앙리 4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영화 속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이 세계인들의 뇌리에 박히면서 파리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최고의 데이터 코스로 등장했다. 또 다리 중간 중간에 설치된 둥근 석조 테라스에 앉아 바라보는 석양의 아름다움 때문에 이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도 유명해졌다.대구시가 작년부터 신천을 고품격 수변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상당한 고심 속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홍준표 대구시장은 파리 센강의 퐁네프 다리처럼 젊은이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프러포즈 명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프러포즈 명소의 대략적인 디자인도 나왔다.대외적으로 내세울 게 크게 없는 대구에 퐁네프같은 명소가 생긴다면 대구시민의 자부심 고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구의 명소 퐁네프 탄생을 기대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20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유대인들의 지혜를 담은 책 ‘탈무드’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땐 양같이 온순하지만,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납게 되고, 거기서 더 마시며 원숭이처럼 춤을 추고, 폭주하면 토하고 뒹구는 돼지가 된다.”술에 관한 비유 중 이처럼 적절한 걸 찾아보기 쉽지 않다. 선현들은 술을 마실 때도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오죽하면 주도(酒道)란 말까지 있을까. 과하면 도리를 벗어나게 만드는 게 술이다.한국인의 ‘술 사랑’은 유명하다. 필부필부부터 대통령까지 신분에 상관없이 많은 양이건 적은 양이건 술을 즐겨왔다. 김영삼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비교적 나이가 많아 집권했으니, 술을 크게 즐기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반면 40대에 대통령이 된 박정희와 전두환은 주량이 상당했다고 한다. 박정희의 경우 촌로들과 막걸리를 즐겨 마셨고, 동시에 청와대 인근 안가에선 위스키 시바스 리갈을 즐겼다.보스 기질 다분했던 전두환은 부하 장교들과 호방한 술판을 벌이는 게 여러 영화에서 묘사된 바 있다. 1980년대 청와대에서 가족 행사를 끝낸 전두환이 취한 모습으로 동생의 부축을 받는 영상도 남아있다.현직 윤석열 대통령 또한 애주가의 면모를 드러내는 경우가 흔했다. 막걸리병 뚜껑을 여는 방법을 알려주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보여졌고, 전통시장을 찾았을 땐 해산물을 가리키며 “이런 안주엔 소주 한잔이…”라며 웃기도 했다.다 좋다. 대통령이건 회사원이건 기호품으로서의 술을 즐기는 걸 누가 탓하랴. 다만 ‘유주무량 불급난’(唯酒無量 不及亂·마시는 양에 한정을 두지 않되 정신이 혼미해져서는 안 된다)이란 ‘논어’ 구절을 먼저 새겨야 할 터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19
우정구 논설위원 인구학에서 사람의 성비(性比)는 여성 100당 남성 수로 계산한다. 성비가 높다는 것은 남성의 수가 여성의 수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보통 105대 100 정도로 본다. 출생시만 보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더 많이 태어난다. 하지만 남자의 사망률이 높고 여자보다 평균 수명이 짧아 고령에 이르면 여초 현상이 생긴다.세계적으로 보아도 남성의 성비가 높다. 대륙별로는 아시아는 남성의 성비가 높으나 유럽과 중남미는 여성의 성비가 높은 편이다.남녀 성비 구성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사건으로는 전쟁을 들 수 있다. 전쟁에서 희생된 남성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성비의 불균형도 세대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100대 100으로 맞춰진다.동물의 암수 성비가 1:1에 근접하고 있는 것을 진화생물학에서는 피셔의 원리라 부른다. 성 생식을 통해 자손을 번식하는 인간의 성비도 자연의 법칙과 다르지 않다.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남녀 성비에 관한 연구결과가 흥미롭다. 결혼 연령층에 든 미혼남자와 미혼여성의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전국적으로 미혼남자가 미혼여자보다 19.6%가 더 많다고 한다. 이는 남아선호 사상이 존재한 시대적 배경과 남녀 성별 구분이 가능한 의료기술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분석이 된다.더 큰 문제는 지역별 차이가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서울은 미혼남녀의 성비 차이가 2.5%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북(34.95), 경남(33.2%), 충북(31.7%) 등 지방도시는 30%가 넘는다.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하나 둘이 아님이 또 한번 드러난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18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역사학자 호암 문일평(188 8~1939)은 “그 사람이 궁금하거든 그가 먹는 음식을 보라”고 했다. 이 말은 사람의 음식 취향이 성격이나 인품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열쇳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 터.비단 음식뿐일까? 인간의 됨됨이와 품격을 은연중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는 것 중 또 다른 하나가 바로 그가 사용하는 ‘언어(말)’가 아닐지.세칭 ‘쌍시옷’을 입에 달고 사는 성직자를 상상하기 어렵고, 장자(莊子)를 인용하는 조직폭력배를 만나 보기 어려운 것처럼.전직 대통령 아내의 ‘인도 방문’을 두고 갖가지 구설이 떠돌고 있다. 그것과 연관된 논란 또한 이어지는 상황. 이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인 여당과 야당의 여성 국회의원 이름이 신문과 방송에 자주 오르내렸다. 국민의힘 배현진과 더불어민주당 고민정이다.문재인 전 대통령 아내의 인도 방문에 얽힌 의혹 제기 선봉에 선 배현진 의원을 향해 고민정 의원이 “제시한 자료 검증의 부실함을 인정하고, 더 이상의 경거망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고 의원은 인도 방문 동행자 중 한 명이다.배 의원이 발끈했다. “동료의원으로서 예우해줄 때 입을 곱게, 경거망동을 자제하길 바란다. (관련된)문서 이해가 잘 안 되면 밑줄이라도 치며 읽어라”고 치받은 것.두 사람이 공히 사용한 경거망동(輕擧妄動)이란 사자성어는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걸 의미한다.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을 향해 ‘생각이 없다’니…. 보기에 따라선 대단히 모욕적인 언사다.의견이 다를 땐 논쟁할 수 있다. 그러나, 가시 돋친 맹목적 힐난과 배려가 담긴 점잖은 충고는 분명 다른 효과를 나타내지 않을까?/홍성식 (기획특집부장)
2024-06-17
우정구 논설위원 기후 인플레이션이란 용어를 자주 접하는 시대다. 기후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이 용어는 기상 이변과 지속되는 지구온난화가 빚어낸 인플레이션을 의미한다. 즉 기상이변으로 농산물 가격 등이 폭등하면서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의 인플레이션이다.먹거리 물가를 위협하는 기후 인플레이션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 과일로 불리는 사과와 수박 등의 수확량이 줄면서 신선식품의 물가지수가 소비자물가 인상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는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탄소배출로 2050년쯤에 가서는 전세계 소득율이 19% 감소할 것이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소득감소 규모가 무려 38조달러에 이른다고 한다.지금 지구촌은 기상이변이 빚은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여름은 엄청난 무더위가 전 세계를 덮을 것이란 전망 속에 일부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이른 폭염으로 일상이 혼란에 빠지고 있다.중국 북서부 신장지역은 지표면 온도가 70도로 치솟아 맨발로 걸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라 한다. 그리스, 튀르키예 등지에는 40도가 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스페인에서는 폭염으로 주요 관광지가 폐쇄되는 일도 벌어졌다.우리나라도 6월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봄 기온이 역대 두 번째로 높았고 바다는 10년 새 가장 뜨거웠다고 한다. 지난 10일 대구에서는 첫 불볕더위주의보가 내려졌는데 예년보다 일주일이 빨리 찾아온 것이다.화석연료 기반의 산업혁명은 전례 없는 산업발전을 이룩했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인류에게 기후위기라는 무서운 재앙을 가져다준 꼴이다. 올여름 닥칠 역대급 폭염 소식이 기후 위기를 절실히 느끼게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6-16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나라에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것은 1988년으로 올해로써 36년째를 맞는다.최저임금은 저소득 근로자의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하고 유지시켜 주기 위한 제도다. 정부가 노사간 임금 결정에 개입해 최저임금을 정하고 사용자가 그 이상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임금의 기준점이 된다.그러나 임금을 더 받으려 하는 근로자와 임금 부담을 줄이려는 사용자간의 합의가 쉽지 않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늘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36년동안 합의로 결정된 경우는 단 7차례뿐이다.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달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제 논의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는 시급 1만원 돌파 여부다.그러나 시급 1만원 돌파는 현재 시급이 9860원으로 1만원 턱밑까지 와 있어 1.4%만 인상돼도 시급 1만원을 넘게 된다. 지금까지의 시급 인상폭을 감안하면 1만원 돌파는 무난할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최저임금 시급 1만원은 그동안 사업주에겐 심리적 저항선으로 인식돼 왔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1만원이 돌파된다면 심리적 충격이 클 것으로 짐작이 된다. 최근 지속되고 있는 불경기를 고려한다면 최저임금 결정 정도에 따라 사회적 파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최근 소상공인연합회는 소상공인의 98.5%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내리거나 동결을 바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 생산성에 비해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설명도 덧붙였다.올 8월 법정기한까지 노사가 상생의 적정선을 찾을지 지켜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13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반골과 다혈질로 유럽에서 유명한 아일랜드 사람들. 그런 성정과는 무관하게 그 나라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예술가가 많다.‘더블린 사람들’로 데뷔한 제임스 조이스, ‘부조리극의 황제’로 불리는 사무엘 베케트, ‘빅토리아 시대 최고 예술가’라는 왕관을 쓴 오스카 와일드, 비단 문학 분야만이 아니다. 대중가수인 U2의 보노와 시네이드 오코너는 수천만 장의 앨범을 판매한 스타 중 스타.언급된 유명인들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아일랜드 시인이 또 한 명 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 159년 전 오늘은 예이츠가 태어난 날이다.19세기 영국·아일랜드 문학사(文學史)의 기린아로 기록된 그는 유년기부터 신화와 기괴한 전설 등 초현실적 주제에 집착했다. 이런 성향은 예이츠의 문학 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탐미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변모한 그의 시는 1923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았고.“뛰어난 감각과 통찰력을 지닌 시인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까지 가졌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세간을 떠돌았다. 1920년. 예이츠는 마치 예언 같은 시를 쓴다.‘모든 것이 파괴되고 중심은 무너졌다/혼돈만이 지상에 만연하다/세상엔 핏빛 물결이 번지고…’예이츠는 이미 104년 전에 오늘의 지구를 바라본 듯하다.끝날 기미가 없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하루에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이상 기후로 인한 폭염과 폭우 피해, 오직 돈만을 좇으며 청맹과니처럼 돌진하는 무뢰한들….‘모든 것이 파괴되고 중심이 무너진 2024년 지구’를 경계했던 예이츠의 예언이 틀렸기를 바랄 뿐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12
우정구 논설위원 염치(廉恥)란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사람으로서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마음의 자세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상대에게 정중히 부탁을 할 때 염치불고(廉恥不顧)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염치를 돌아보지 않고 부탁을 드린다는 뜻이다.염치가 없는 상태를 몰염치(沒廉恥) 또는 파렴치(破廉恥)라 부른다.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염치 있는 척하다’의 축약된 말은 얌체다.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 관중(管仲)은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으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들었다. 그는 예의염치 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고, 셋이 없으면 뒤집어 진다고 했다. 또 모두가 없으면 나라는 파멸하게 된다고 말했다.춘추전국시대 순자는 염치없는 자는 엄히 다스려야 하며 “염치 모르는 사람은 음식만 축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대부터 염치는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기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우리는 흔히 부끄러워서 대할 낯이 없을 때 ‘얼굴과 눈이 없다’는 뜻의 “면목 없다”는 말을 쓴다. 염치와 같이 사람이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됐을 때는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이라는 뜻이다.우리 정치에서 염치가 사라지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인데 정작 국민에 대한 염치는 없고 정치인 스스로를 위한 목소리만 요란하다.우리 사회가 염치없는 세상으로 바뀌어가는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정치의 영향이 크다. 의사들의 집단 휴진 선언 또한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염치없는 행태의 다름 아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6-11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았지만, 사건 당시의 놀라움과 대중의 분노는 크고 높았다.2004년. 밀양 지역 남자 고교생들이 여중생 한 명을 성폭행했다. 후안무치한 범죄에 가담한 학생들이 자그마치 44명이라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이었다.18세였던 성폭행 가해자들은 밀양의 여러 고교에 재학 중이었다. 범죄의 잔인성 탓에 밀양이라는 도시 자체가 여론의 돌팔매를 맞았다.14세에 불과한 어린 여학생을 유인해 돌아가며 성폭력을 저지른 건 물론, 때리고 협박했으며, 돈까지 뺏은 고교생들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은 당연지사 엄한 벌로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죄를 저지른 고교생 중 10명만이 기소됐고, 20명은 소년부 송치로 마무리됐다. 13명은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론이 났다. 수사 결과를 접한 이들은 “참을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분노했다.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사건은 잊혀져갔다. 가해자들은 18세 고교생에서 38세 성인이 됐다.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았다. 그들이 최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한 유튜버가 “밀양 성폭행 가해자 44명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이미 몇 명의 신상이 알려졌고, 얼굴과 직업이 공개된 가해자가 다니던 인기 좋은 식당은 문을 닫았고, 직장도 이들의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공적 처벌이 아닌 사적인 단죄 방식은 옳지 않다’는 견해가 있으나, ‘그때 제대로 받지 않은 벌을 지금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라스콜리니코프가 주인공인 소설 ‘죄와 벌’그리고, “하늘에 죄를 지으면 숨을 곳이 없다”는 공자의 말이 떠오르는 오늘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10
우정구 논설위원 일본에서는 고독사, 자살, 살인사건 등으로 사망자가 나온 집을 ‘사고물건’이라 부른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이런 사고물건이 늘면서 사고물건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부동산 업체까지 생겼다고 한다. 사고물건은 시세보다 10∼50%까지 낮춰 팔고 있으나 선뜻 나서는 이가 많지 않다고 한다.고독사라는 말은 1990년대 일본에서 나홀로 죽음이 급증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우리나라도 저출산, 고령화, 이혼율 증가 등 복잡한 사회적 요인에 의해 고독사 숫자가 늘고 있다. 2017년 2412명이던 고독사가 2021년에는 3378명으로 1000명 가까이 늘었다. 그중 50∼60대가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마처 세대’라는 신조어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선 1960년대생(55∼64세)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한 복지단체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마처 세대’ 3명 중 1명은 자기 자신이 고독사 할 것을 우려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우리나라 1인 가구는 이제 1000만 가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혼자 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시대의 흐름 속에 외부와 단절된 집에서 고독사하는 일이 더 빈번해질 것 같다. 노년층의 고독사뿐 아니라 장기불황에 의한 실업과 SNS를 통해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청년층에서의 고독사도 증가세에 있다.고독사는 이제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다.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경북도가 고독사 예방 활동을 하는 행복기동대를 발족했다. 지역사회 활동가 등으로 조직한 인적네트워크다. 맹활약을 기대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09
우정구 논설위원 금세기 최대 유전 발굴로 벼락부자가 된 나라는 남미의 가이아나다.가이아나는 남아메리카 동북단에 위치한 인구 80여 만명의 작은 나라로 과거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의 통치를 받았으나 1966년 독립국가가 됐다.사탕수수와 쌀농사 등 1차산업 기반의 빈국이었으나 가이아나 앞바다서 석유가 발견되고부터는 일약 부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됐다.가이아나의 석유 발견은 단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거의 100년 가까이 탐사작업을 벌였으며 실패를 거듭한 끝에 거머쥔 행운이다. 2019년 가이아나 앞바다서 8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된 것이 확인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국제사회는 2020년대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남미의 가이아나를 꼽고 있다. IMF는 가이아나의 1인당 GDP가 5년 내로 4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도 한다. 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가이아나의 회원가입을 권유하는가 하면 원유생산 능력이 알려지면서 유엔안보리 비상임 국가에도 진출하는 등 국가의 위상도 올라섰다.그러나 한편 IMF는 제조업 육성을 경시하고 석유로 번 돈을 마구 쓴다면 베네수엘라처럼 자원의 저주를 받을 것이란 경고도 함께 보내고 있다. 실제로 석유개발과 건설 붐으로 일자리가 늘고 있지만 정작 원주민보다 외지인이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고도 한다.경북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표로 산유국 진입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다. 아직은 넘어야 할 문턱이 많아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가이아나의 실체에서 배울 것은 없는지 살펴볼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06
우정구 논설위원 대북확성기는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우리 군의 심리전 무기다. 1962년 북한이 대남방송을 시작하자 우리도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개시한 것이 대북확성기 방송의 시초다. 그동안 남북관계에 따라 방송이 중단되거나 재개되는 일이 여러번 반복됐다.최근 북한이 오물이 든 대형풍선을 남한으로 살포하는가 하면 GPS 전파교란 행위 등 연쇄적 도발을 일삼자 정부가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를 무기로 꺼내 들었다.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선언 이후 중단된 지 6년만이다. 대북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압박 수단으로 통하고 있어 북한의 다음 반응에 정부도 긴장감 갖고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대북확성기 방송은 최대 30km 떨어진 곳에서도 정확히 방송 내용을 들을 수 있는 고출력 장비의 무기다. 부도덕한 북한 수뇌부의 실상이 스피커를 통해 폭로된다면 북한군과 인근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 무기로서는 최적격이다.정부는 과거에도 북한이 심각한 도발을 개시했을 때, 대북확성기를 카드로 꺼낸 적이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2015년 비무장지대 목침지뢰 사건, 2016년 4차 핵실험 등의 직후다. 특히 그동안 내보낸 대북방송의 내용이 김정은 정권의 세습과 비리 등 북한 내 실상을 폭로한 것이어서 이번 우리측 대응에 북한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이번 대북확성기의 재개로 남북관계의 긴장감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북한측의 다음 대응에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이런 이유다.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분위기다. 대북확성기의 위력과 함께 유비무환의 정신무장도 갖고 갈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04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해결 어려운 문제나 걱정거리가 있을 땐 선현이 남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전 세계 사람들의 입에서 하루에도 수천 번 인용되는 것이지만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기에.‘논어’ 계씨편엔 天下有道 則政不在大夫 天下有道 則庶人不議(천하유도 즉정부재대부 천하유도 즉서인불의)란 문장이 있다. 고루하고 어려운 말이 아니다. 현대적으로 풀어쓰면 대충 아래와 같다.“공자는 말했다. 세상에 도(道·원칙과 합리)가 굳건히 서있다면 정치가 권력자의 손에만 독점되지 않고, 그런 세상이라면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는다고”.국민을 위무하고 편안하게 해줄 의무를 가진 정치인이 국민을 걱정하지 않고, 외려 국민이 정치인을 걱정하는 해괴한 상황에 오늘날 한국이 처해 있다 말하면 과장이라고 욕을 먹을까? 앞서 인용한 문장 중 大夫(대부)란 단어를 21세기 방식으로 ‘대통령’이라 바꿔보자.한국 국민들은 현재 전·현직 불문 대통령과 그의 아내를 무거운 마음으로 걱정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 인도를 방문한 아내를 두고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 하니, 견해를 달리하는 국회의원 한 명이 “국민을 어찌 보고 능청맞게 흰소리를 하느냐”고 따진다.현직 대통령의 아내가 선물로 받았다는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놓고는 “특별검사를 통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과 “과도한 흠집 내기”란 목소리가 긴 시간 격렬하게 충돌 중이다.너그럽고 선량한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까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대통령들과 그의 배우자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걱정과 화를 부르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도 못해주는가?/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03
우정구 논설위원 고(故)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삼성그룹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시킨 획기적 전기가 된 사건으로 유명하다.1993년 6월 7일.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 200여 명을 불러모아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 내지 2.5류가 된다”며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모두 다 바꿔라”라는 강도 높은 주문을 했다.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은 경영의 핵심가치를 양에서 질로 전환하고, 품질경영으로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한다. 기업주의 비전 제시가 성장으로 이어진 모범적 사례로 평가된 선언이다.프랑크푸르트 선언 2년 후인 1995년의 일이다. 삼성 생산 휴대폰 15만대가 불태워지는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이 거행된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자 자존심”이라는 구호 아래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거행된 휴대폰 화형식 후 삼성의 휴대폰 시장 국내 점유율은 놀랍게도 4개월 만에 50%를 차지한다.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많은 기업의 본보기로 회자되는 것은 선언적 의미 이상의 기업성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지난달 파업을 결의하자 국내 경제계의 관심이 삼성의 파업 움직임으로 쏠리고 있다. 무노동 경영을 고수하던 삼성에서 파업선언이 나온 것만으로 쇼킹한 일인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점이라 삼성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일부에서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버금갈 제2의 선언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의 국내 경제 기여도는 국내 기업 중 단연 1위다. 삼성의 대응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6-02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해 복권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가 복권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응답자의 74%가 “복권이 있어서 좋다”는 대답을 했다. 당첨 여부를 떠나 복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대체로 긍정적이다.복권 구매 이유로는 기대와 희망, 행복과 기쁨 등이 가장 많았다. 복권 당첨자가 발표될 때까지 인생역전을 노리는 희망과 기대감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지난해 우리나라 복권 판매액은 6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중 로또복권이 83%로 5조6000억원을 차지했다. 로또복권의 경우는 10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경기 불황과 복권 판매는 비례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빠듯해진 살림살이를 복권 한방으로 해결해 보자는 대중의 심리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속되고 있는 국내 경기 불황에도 복권 판매가 역대 최대치를 갱신한 것만으로 불경기가 복권 판매를 부추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복권 구매자의 연령층에서 20대보다 60대가 2배가량 많다. 저소득 서민층일수록 복권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반증이다.한국의 로또복권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3억분의 1인 미국의 로또 파워볼과 메가밀리언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행운이 없이는 당첨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2022년 11월 미국 파워볼에서 나온 당첨금은 20억4000만 달러(약 2조8000억원)다. 길을 가다가 번개를 맞고 살아날 확률이라는 소리가 그럴 듯하다.북권 당첨 금액을 올리자는 일부 여론에 정부는 검토한 적이 없다고 했다. 팍팍한 삶 속에서 소소한 위로를 받고자 하는 복권을 무턱대고 당첨금을 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30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조선의 농부들은 24개의 절기(節氣)로 계절을 구분하며 살았다. 국가 경제의 중심이자 핵심축이던 농사 준비도 그에 따랐다.풍부하고 넉넉한 햇살 아래 세상 만물이 무럭무럭 자란다는 소만(小滿·음력 4월)은 이미 지났고, 벼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라는 의미를 가진 망종(芒種·음력 5월)이 바로 눈앞으로 닥쳤다.동서양 불문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지구 위에 없다. 지난 수천 년간이 그랬고, 앞으로의 수천 년 또한 그럴 터.소만과 망종이 있는 양력 5월 말과 6월 초 사이는 갖가지 나물 맛있고 나들이하기 더없이 좋은 봄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황경 75도에 다다른 뜨거운 태양 아래 푸른 바다가 청춘들을 유혹하는 여름의 들머리다. 춥지도 않고 크게 덥지도 않기에 옛사람들은 이 시기를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곤 했다.헌데 세상사는 ‘여왕’이라 불러도 좋은 이 시절과는 무관한 모양이다. 2024년 망종 직전의 이 나라 정치·경제·사회적 풍경은 여왕이 아닌 ‘여비(女婢)’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온갖 특검법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로 정치권이 악머구리처럼 시끄럽고, 월급쟁이와 소상공인 모두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서로를 철천지원수인양 헐뜯는 세태도 지난 정권과 크게 다를 바 없고.망종 다음의 절기는 하지(夏至)다. 지구의 가장 북쪽에서 내려쬐는 햇볕이 세상을 환하고 뜨겁게 밝히는 시절이 목전인 것. 한국의 모든 갈등과 반목이 그 햇볕에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아 화해와 화합으로 양질전화(量質轉化)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29
우정구 논설위원 5월 31일은 세계 금연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가 1987년 흡연의 해로움과 흡연으로 인한 사망 및 질병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는 담배가 으뜸으로 꼽힌다. 담배에는 4000여 가지의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그 중 70가지 이상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형성돼 있다고 한다. 담배로 매년 800만명 이상의 사람이 죽는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나쁘고 담배 연기만 맡아도 고혈압, 당뇨병 같은 질병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담배는 처음 고대 마야인들이 종교의식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유럽 등지로 전파된 것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부터다. 당시 원주민들 사이 사용되던 담배는 유럽을 통해 전세계로 빠르게 전파됐다.우리나라는 임진왜란 이후 왜군들에 의해 넘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남령초(南靈草)란 이름으로 불렸다. 남쪽 국가에서 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뜻이다. 이후 남초에서 연초로 바뀌었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양반은 담배대가 긴 장죽을 물고, 돈 없는 양민과 노비는 담배대가 짧은 곰방대를 물어 담배대를 쥔 모습만 보아도 신분을 구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것이 벌써 500년 가깝다. 돌이켜보면 영문도 모르고 기호품으로 즐겼던 시절부터 멋과 낭만으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담배가 인류 건강의 적으로 통하는 시대가 됐다.작심삼일에 그치지 말고 이번 금연의 날에는 담배를 끊어보는 것도 해봄직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28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피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우리들의 아들은/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후략)’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시민군이 계엄군에 의해 진압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날 광주 전체엔 숨죽인 울음이 가득했다.당시 32세의 전남고등학교 교사 김준태 시인 역시 평생 안고 갈 트라우마가 생겼다. 동료의 아내가 만삭인 상태에서 계엄군에 의해 죽었고, 며칠 전엔 도청 앞에서 10여 명의 사람이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지는 걸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김 시인은 팔척장신에 형형한 눈빛이 범을 닮은 강골이다. 하지만, 인간 보편이 느끼는 공포가 그라고 왜 없었을까? 1980년 한국을 지배하던 신군부 앞에서 ‘5월 광주’에 관해 잘못 말했다간 체포와 투옥, 고문을 각오해야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나, 김준태는 ‘양심을 가진 지식인으로서의 시인’이 되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광주 거리 곳곳에 피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109행의 시가 실릴 수 있었다.모든 것을 걸고 하는 인간의 행위는 숭엄하다. 앞서 언급된 시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걸고 쓴 것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보태랴. 이젠 일흔여섯의 할아버지가 된 김준태 시인이 편찮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목숨 걸고’ 시를 쓸 수 있는 몹시 드문 시인인 그가 5월 광주정신과 함께 앞으로도 오래 건재하길 빈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