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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세계 여성 정치인들의 ‘세상을 바꾸기 위한 삶’

영국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수상, 임신 중단 합법화를 이뤄낸 시몬 베유, 버스 승차 거부 운동으로 유명한 ‘현대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 부패한 집권층을 정면 비판했던 케냐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 16년간 독일을 이끈 메르켈 독일 총리…. ‘여성, 정치를 하다’(민음사)는 다양한 배경과 이력을 가진 세계의 여성 정치인 21명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 온 여성들의 삶을 복원해내는 작업을 꾸준히 펼쳐왔던 저자 장영은씨는 그들의 성취와 좌절을 톺아보며, 남성적 권력으로 이해되던 정치를 여성적 관점에서 재구성한다.앙겔라 메르켈은 정치를 시작한 이래, 싸움을 회피한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치고받는 정치 싸움이 재미있었고 상대의 묘책을 눈치 챘을 때 기분이 좋았다.” 좋은 사람은 권력을 멀리한다는 도덕적 통념은 유독 여성에게만 더욱 강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케냐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는 부패한 집권층을 정면 비판하며, 나무를 심는 환경 운동가에서 직업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꾀한다. 타이완의 첫 여성 총통인 차이잉원은 선거 패배 후 자신을 정치인으로서 추동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결국 책임감에서 해답을 얻는다.마거릿 대처는 카리스마와 집요함으로 직업 정치인인 여성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 영국의 총리가 됐다.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에 미친 그의 영향력은, ‘대처리즘’이라는 용어를 남겼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왔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미국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국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그에 걸맞은 ‘자질’을 갖췄는지 끊임없이 공격받았다. 그러나 그는 공직자로서의 점수는 “가장 가혹하지만 가장 공정한 심판관인 역사가 매겨줄 것”이라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했고, 북미관계를 지혜롭게 풀어낸 그의 외교는 역사에 길이 남았다.1858년 태어난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그의 동료들은 여성에게도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며, 유리창을 깨고 도로에 몸을 묶고 달리는 말 앞에 몸을 내던졌다. 감옥에도 여러 차례 갇혔다. 1997년 태어난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열한 살의 나이에 여성이 등교하지 못하도록 교육권을 침해하는 탈레반을 직접 비판했다가, 보복성 테러로 가해진 총격에서 살아남았다.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당연하게 만들기 위한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앞선 이의 등을 보며 힘을 얻고, 곁에 선 이의 손을 잡고 일어서며, 다음 세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이 책은 정치를 꼭 정당에 속한 직업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는 데 한정하지 않는다. 포크 가수 존 바에즈, 세계적인 어린이문학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독일의 미술가 케테 콜비츠 등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삶도 훌륭한 정치의 예로 조명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3-11

무례한 세상 속 나를 키우는 요령

‘더 좋은 곳으로 가자’(문학동네)는 50만 부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작가 정문정의 신작 산문집이다. 전작이 상처받지 않고 관계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법을 알려주는데 초점을 뒀다면, 이번 신작에는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매뉴얼조차 접할 기회가 없어 더 나은 삶을 꿈꿔볼 시도조차 못하는 이들을 위한 일과 생활의 요령이 담겨 있다. 작가는 ‘습관적으로 불행을 선택했던’ 지난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자기연민의 고리를 끊고 함께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자고 손을 내민다. 그리고 가능한 선에서 최대의 경험을 해볼 것을 권한다. 돈도 시간도 없고, 조언을 구할 지인도 부족하다면 책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원망과 슬픔을 뒤로하고 원하는 곳을 향해 씩씩하게 한 발짝 떼는 사람이 되자고 말한다. ‘공정함’이 세대를 막론하고 가장 민감한 이슈가 된 사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이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쉽게 세상을 탓하거나 자신의 배경을 책망하게 된다. 이 책은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보란듯이, 당차게 나아가기 위한 생생한 생활밀착형 매뉴얼을 담았다. 더 좋은 곳으로 ‘함께’ 가기 위해./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3-04

개인숭배 이끌어 권좌에 오른 독재자들

네덜란드 출신 역사학자인 프랑크 디쾨터(60) 홍콩대 인문학 석좌교수의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재자 8명의 흥망성쇠를 조명한 책 ‘독재자가 되는 법’(열린책들)이 출간됐다. 디쾨터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으로부터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인민 3부작’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학자다. 이번 책에서는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뒤발리에, 차우셰스쿠, 멩기스투 등 20세기를 오싹하게 만든 독재자 8명의 역사를 돌아본다.디쾨터에 따르면, 어떤 독재자도 공포와 폭력만으로 통치할 수 없다. 일시적으로 권좌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독재에도 기술과 연출이 필요하다. 국민으로 하여금 숭배를 이끌어 낸 독재자들, 곧 전제 정치가 합의된 것처럼 가장할 수 있었던 영리한 독재자들은 효과적으로 정적(政敵)을 약화시키고 장기 집권의 길을 닦을 수 있었다.이들 독재자는 세심하게 연출된 행진, 치밀하게 구축한 신비주의 장막, 지도자를 찬양하는 노래와 출판물 등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전 국민이 자신을 찬미하도록 부추겼다.디쾨터 교수는 개인 숭배가 독재 정치의 부수물이 아니라, 독재 정치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이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어떤 독재자도 공포와 폭력만으로 통치할 순 없다. 일시적으로 권좌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론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리한 독재자들은 특유의 기술과 연출로써 정적들을 약화시키고 장기 집권의 길을 닦아나갔다.뜻밖으로 독재자는 원래 나약한 존재였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애초부터 대중의 지지가 있었다면 굳이 폭력을 동원해 권력을 취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짜 두려워한 건 국민이 아니라 언제든 자신의 뒤통수를 치며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정적이었다.잡은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독재자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 교묘한 속임수, 각개 격파 등으로 정적들을 제거해 나갔지만, 결국엔 개인 숭배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인 숭배를 통해 측근과 반대파 모두를 약화시킬 수 있어서다. 개인 숭배의 목적은 혼란을 일으키고, 상식을 파괴하며,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 존엄성을 짓밟기 위함이었다. 특히 독재자 칭송을 강요함으로써 모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저자는 독재자의 개인 숭배가 대개 비슷한 경로를 따른다고 말한다. 권력을 얻은 뒤 언론을 장악하고,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나팔수처럼 그 영웅 신화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도록 하며, 외국 기자 등을 끌어들여 안팎으로 이미지 제고를 꾀한다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3-04

대담 형식 ‘안압지’ 발굴조사 이야기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안압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대담형식으로 담아낸 책‘못 속에서 찾은 신라 - 45년 전 발굴조사 이야기’를 최근 발간했다.안압지(雁鴨池)는 삼국통일 직후인 신라 문무왕 14년(674년)에 경주 월성 북쪽의 신라왕궁 후원에 인공적으로 만든 연못이다. 조선 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雁鴨池)라 불렀다. 1974년 내부 준설작업 중 유물이 무더기로 드러나면서 1975년부터 문화재관리국 경주고적발굴조사단(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전신)이 발굴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통일신라 때 조성한 인공 연못과 대형 건물터 등이 확인됐으며, 3만여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됐다.‘못 속에서 찾은 신라’는 2015년 안압지 발굴 4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안압지 발굴조사, 역사의 그날’ 좌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각색한 책이다. 안압지 발굴 조사과정에 대한 학술적인 내용, 당시 발굴조사자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자료를 함께 담았다.책은 ‘발굴조사의 서막’, ‘1975년 3월 25일, 첫 삽을 뜨다’, ‘물 속에 잠긴 보물들’, ‘발굴현장 일화’, ‘그들의 소망’으로 구성됐다.특히 1975년 출토된 나무배에 관한 이야기가 주목을 끈다. 통일신라의 배가 실물자료로 발굴된 것도 처음이었고 배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상태였다. 이 배를 수습하고 해체해 운반해야 했던 어려움과 그 과정에서 생긴 사고, 언론의 관심 등을 비롯해 보존처리 과정까지 사진 자료로 공개해 당시의 현장감을 되살렸다.또 발굴조사 과정, 유구·유물에 대한 고민, 조사자들의 감정과 애환을 담은 발굴야장(조사과정, 출토자료 등을 기록한 수첩)을 원본 그대로 수록했다. 책은 문화재청(www.cha.go.kr) 및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누리집(www.nrich.go.kr/gyeongju)에서 볼 수 있다. /윤희정기자

2021-03-02

맥시조문학회 동인지 40집 발간

맥시조문학회 동인지 40집 ‘허공에 치는 그물’ 표지.전통의 가치와 소중함을 시조 창작으로 이어가고 있는 맥시조문학회(회장 예병태)가 최근 동인지 40집 ‘허공에 치는 그물’을 발간했다.이번 시조집에는 조주환(명예회장), 예병태(회장), 김병래, 김제흥, 강성태, 김우연, 김일용, 김진혁, 박광훈, 서석찬, 원정호, 이경옥, 손수성, 조순호, 조영두, 황무굉 씨 등 16명의 회원 신작 시조 72편과 산문 2편, 연간 활동화보 등으로 엮었다.특히, 맥시조동인지 창간호부터 40집까지 전권 표지 사진과 발간을 자축한 회원들의 기념 휘호를 화보로 싣고, 최근 지역 일간지에 꾸준한 저널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병래, 강성태 등 2명의 회원이 쓴 ‘시조와 산문’ 칼럼을 함께 실어서 이채로움을 더했다.예병태 회장은 책머리에서 “유례없는 코로나19가 인간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변화시켜 놓은 상황에서도 우리 회원들은 여타의 시조 동인지에 좋은 시조를 발표하고, 한국가사문학 대상 수상, 언론사 기고 등의 왕성한 활동으로 희망과 따스한 위로를 전해왔다”며 “언어의 정수이자 시의 전범인 ‘시조’를 더욱 사랑하고 보급, 발전시키기 위해 회원들 모두 끊임없이 항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한편, 맥시조문학회는 1979년 창립 이후 매년 동인지를 내는 등 회원 모두가 치열한 시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계승, 발전시키려는 문학적 소신을 갖고 시조 계승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시조문학단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3-01

“당신의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외로움, 사랑, 미래, 신, 죽음, 정체성….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가치와 철학적인 질문에 고민해 본다. 최근 들어서는 일상적인 인생의 사실과 감정 외에도 팬데믹과 같은 현실을 두고 끊임없이 해답을 찾기도 한다.뇌과학자인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최근 발간한 저서 ‘김대식의 키워드’(김영사)에서 그런 34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사유한 결과물을 첨단 신경과학과 고대 문헌을 넘나들며 펼쳐 내놓는다.‘키워드’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 어떤 문장을 이해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말, 2) 데이터를 검색할 때 필요한 정보를 빨리 찾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나 기호 등이다.연구, 교육, 저술, 강연 등으로 방대한 지식과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온 김대식 교수는 이 책에서 ‘외로움:마음의 지하실’, ‘팬데믹: 인류의 동반자’, ‘미래: 우연과 필연, 질서와 무질서’, ‘신:신은 정말 죽었나’ 등 우리의 생각과 세상을 좌우하는 34개의 열쇳말을 제시하고 과학과 철학, 예술, 신화, 역사에서 소재를 빌려 명쾌하게 풀어내면서 이 시대의 인간과 사회의 문제에 대한 논리적이고 지혜로운 대답을 끌어낸다.각 꼭지는 대개 명화로 시작한다. 수록된 약 60점의 회화, 사진 중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223쪽, ‘오리지널’)나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266쪽, ‘신’)처럼 유명한 것도 있고, 막스 베크만의 ‘밤’(134쪽, ‘악’)과 ‘출발’(243쪽, ‘역사’),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187쪽, ‘괴물’)처럼 불편하거나 낯선 작품도 있다. 이 시각자료들은 각 키워드를 풀어나가는 실마리나 상징으로, 때로는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는 메타포로 작동하기도 하며 보는 즐거움과 함께 찬찬히 읽을 여유까지 제공한다.코로나19 시대를 반영한 듯 ‘외로움’이란 키워드에선 “많은 사람이 자가격리에 들어간 오늘날 사랑하고 걱정하기에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회적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한다. 외로움을 표현한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도 예로 들며 “홀로 남아 차를 마시며 나만의 생각에 빠져 버린다”고 고백한다.저자는 “외롭지 않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발전하는 게 인류”라며 “과학과 문명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더 외로워져야 하는 역설적 존재가 바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라고 강조한다.‘팬데믹’이란 키워드에선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전염병, 스위스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의 그림 ‘페스트’ 등을 설명하면서 “많은 불행과 행복은 사실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다. 인과관계와 거리가 멀다”는 의견을 전한다.책은 “감염병과 바이러스는 인류의 영원한 동반자였다”며 “이번 팬데믹도 극복할 것이지만 이데올로기와 기도를 통해서는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키워드 ‘미래’는 우연과 필연, 질서와 무질서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장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추론으로까지 나아간다. 다만 양자역학의 근본적 법칙인 불확정성의 원리 등을 제시하며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해석도 덧붙인다.‘신’이란 키워드에선 “신은 죽었다”고 표현한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언급된다. 물리, 화학, 생물학 등 과학 분야를 거론하며 “아브라함의 신 없이도 인류는 세상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신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한 나약한 우리 인간의 위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물론 진화론과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분자생물학, 뇌과학이 사람들의 불안을 없애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인정한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스스로 신이 되는 방법은 어떨지 제안하기도 한다. 팔다리뼈를 초강력 탄소복합 소재로 바꾸고, 100년을 못사는 사람의 몸을 유전적으로 개선하며,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는 방법 등을 상상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2-25

절망 않되 희망 없는… 저항하는 시 정신의 향연

이산하 시인‘나를 찍어라./ 그럼 난/ 네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마.’(시 ‘나무’ 전문)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알게 된 이후 27세에 쓴 장편 서사시 ‘한라산’으로 옥고를 치렀던 이산하(61)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악의 평범성’(창비)에 수록된 시다.‘악의 평범성’은 99년 펴낸 자신의 두 번째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이후 22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이다.시를 쓰고 발표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던 엄혹한 시절을 통과한 시인은 어느새 노년을 맞이했다. 자신이 맞닥뜨렸던 불의와 불합리와 부정했던 세상은 이제 한결 보드랍고 온화하고 민주적인 표피를 갖췄지만, 양상과 방식이 달라졌을 뿐 여전한 불의와 불합리와 부정투성이다.‘적’의 정체가 분명했던 시절에 격렬히 저항했고, 그러면서 안팎으로 상처를 입으며 벼렸던 시인의 날 선 시선과 감성은 겉으로는 안온한 일상으로 포장됐다. 신작 시집에는 그런 그가 오늘날의 ‘적’을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켜 어떻게 다시 빛을 발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편들이 빼곡하다. 자신을 찍을 도끼날에 오히려 향기를 묻혀주겠다는 ‘나무’의 자세로 시를 쓰는 시인 이산하.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는 그의 이번 시집은 아직도 열렬하게 살아 있는, 저항하는 시 정신의 향연으로 읽힌다.광주항쟁의 피해자를 비아냥하고, 세월호 사건 피해 학생을 조롱하는 듯한 SNS의 글에 환호하는 이들이 “모두 한 번쯤 내 옷깃을 스쳤을 우리 이웃”임을 알기에 “가장 보이지 않는 범인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악의 평범성1’)라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악’은 결코 비범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하기에 어쩌면 더 악랄해지고 지독해졌으리라. 이런 ‘악’을 양산하는 사회구조는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노동을 천시하는 변질된 자본주의의 모순을 기반으로 한다.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새로운 가면을 쓰며 폭주하고 있다./맑스의 자본론이 오히려 예방주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엥겔스의 여우사냥’)는 시인의 통찰이 눈을 번쩍 뜨게 만든다.해설을 쓴 김수이 평론가의 말대로 이산하의 이번 시집은 “최근 시단에서 찾기 힘든, 거시 역사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시집이다. 김 평론가는 이 시집이 세 가지 유형의 바퀴를 그린다고 해석한다.첫째,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으로서의 수레바퀴로 ‘자본론과 진화론’(‘엥겔스의 여우사냥’)으로 대표되는 바퀴이다. 둘째는 역사를 피로 물들여온 악의 평범성, 즉 인간을 살상하는 끊임없는 폭력의 바퀴로 “한국전쟁 때 미군 지프에 깔려 죽은/북한 인민군들 머리와 몸의 바퀴 자국이 마치 지퍼 무늬 같다고 해서”(‘지퍼헤드2’) 생긴 ‘지퍼헤드’라는 표현으로 상징된다. 셋째, 꿈과 신념이 잿더미가 된 세상에서도 인간이 두 손으로 굴리는 삶의 바퀴이다. “두 바퀴를 두 손으로 직접 굴리는 이 휠체어는/천천히 손에 힘을 주는 만큼만 바퀴 자국을 남긴다”(‘산수유 씨앗’)에서 휠체어 바퀴 자국은 앞세대와 뒷세대,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져야 하며, 인간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준다고 해석한다. 타인과 함께하는 발걸음이다.포항 출신인 이산하 시인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82년 필명 ‘이륭’으로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를 발표해 등단한 뒤 시집 ‘한라산’,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번역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 ‘체 게바라 시집’ 등을 펴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2-18

진정한 어른이 가져야 할 교양… 5가지 개념 ‘생각의 기술’로 풀어내

‘어른의 교양’(21세기북스)은 기술 정책학자이자 기업의 위기관리 전문가가 쓴 어른을 위한 교양서다.어른의 교양이란 나이를 벗어나 진정한 어른으로서 품위를 갖추고자 하는 사람이 쌓아야 할 최소한의 소양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평판이나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머리로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생각의 기술’이야말로 어른이 가져야 할 교양이다.저자 천영준 씨는 ‘어른의 교양’을 통해 철학, 예술, 역사, 정치, 경제 등 5가지 개념을 ‘생각의 기술’이라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풀어 설명해준다.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법(철학)부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법(예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법(역사),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정치), 인간의 심리로 부의 흐름을 읽는 법(경제)까지 불확실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지적 무기를 찾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는 소크라테스에서 애덤 스미스까지 희대의 사상가 30인의 삶과 생각을 만나 볼 수 있다.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전략적 비관의 기술을 익히라고 외친 세네카, 자신만의 시선과 기법으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호크니, 유산계급 출신임에도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마르크스, 경제 현상을 받아들이는 군중 심리의 중요성을 증명한 실러 등 이 책에서 다루는 생각의 거장들은 절대 지름길이나 편법을 허용하지 않는다.저자는 “정신의 허벅다리에 근육을 붙이고 제 길로 정상까지 오라”고 요구한다. “너 자신의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어서, 그 힘으로 일어서라”고, “누군가의 위로에 의지하는 아이가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되라”고 말한다. 또 ‘현대의 고전으로 남을 만한 거장’으로 영국 실용주의 정치의 대표인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행동경제학의 거두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다니엘 카너먼을 꼽는다. 이들이 실생활 문제를 풀어나가며 적용한 생각의 기술에 대해 풀이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2-18

100세 건강 비결… 삶 소중히, 사랑 실천하라

“최선의 건강은 최고의 수양과 인격의 산물.”‘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올해 102세가 됐다. ‘100세 시대’라고들 하지만, 실제로 100세를 넘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02세의 나이에도 강연과 책으로 ‘사랑하며 사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는 김 명예교수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김 교수의 주치의인 한의사 박진호 씨가 김형석 교수의 백세 건강비결을 들여다본 ‘한의학 박사가 본 김형석 교수의 백세 건강’(비전과리더십)을 출간했다. 저자는 김 교수와 오래 교제하고 진료하면서 유달리 허약한 체질을 타고났던 김 교수가 어떻게 장수를 누리고 있는지 비결을 연구해 보고자 했다.책은 동양철학과 한의학을 씨줄로 삼고, 김 교수의 기독교적 인생관을 날줄로 엮어 아주 특별한 그림으로 완성했다. 인격을 갖춘 인간이 되기를 추구하며 실천하는 사람이 결국 아름다운 건강 100세를 이룰 수 있다는 게 결론이다.저자는 김 교수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웃과 사회에 사랑과 행복을 전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원동력이 바로 건강이라는 것이다.김 교수의 생활습관과 그간 펴낸 책, 상담 등의 내용을 살피는 과정을 거쳐 이 책을 4년 만에 완성했다는 저자는 한의학자로서의 연구 결과와의 공통점에 주목했다. 그것은 바로 신체적인 건강 못지않게 소중한 것은 정신적 건강이며, 이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고 육성케 하는 것이 인격 또는 인간적 삶의 가치, 즉 인생관이라는 것이다.김 교수의 평상시 모습을 보면 건강 비결로 꼽을 수 있는 습관이 적지 않다.심호흡과 명상(기도), 규칙적 생활과 수영, 일을 사랑하는 자세와 긍정적 사고, 사색과 고른 식사 등이다. 선한 목표와 성실함, 봉사 정신도 뺄 수 없다. 저자는 이런 요소를 살펴보다가 이들을 아우르는 한 단어를 발견했다.바로 ‘참사랑’이다. 한의학으로 보면 음양의 조화, 건강한 상태로의 기순환 수승화강(水升火降)의 상태라 볼 수 있다는 것. 즉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을 실천하려 한 김 교수 건강은 결국 ‘참사랑의 선물’인 셈이다.저자가 김 교수의 건강 비결로 꼽은 6가지는 다음과 같다.1. 즐겁게 일한다. 2. 생활이 규칙적이고 웃을 때는 활짝 웃는다. 3. 식사할 때 골고루 천천히 먹는다. 4. 책 읽기와 운동을 즐기고 외국어 구사력도 탁월하다. 5. 낮잠을 자며 일기를 쓴다. 6. 기회 되면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2-04

박완서 10주기… 그리운 목소리를 다시 만난다

‘한국 문학의 어머니’로 불리는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10주기를 맞아 9권짜리 산문집 ‘박완서 산문집’세트(문학동네)가 나왔다.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살고자 했던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비롯해 세상과 소설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촘촘히 포진돼 있다.산문은 소설과 달리 양식적인 기교에 휘둘리지 않고 작가의 심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기 쉽다. 이런 점에서 한 작가의 산문들을 시기별로 구획해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일은 그 작가의 정신세계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1977년 평민사에서 출간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시작으로 박완서 작가는 꾸준히 산문집을 출간했다. 각각의 책에는 그의 작품 이면에 숨겨진 인간 박완서의 삶과 어머니이자 아내,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이 오롯이 담겨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소설과는 또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한다.문학동네에서 펴낸 박완서 산문집은 1977년 출간된 첫 산문집을 시작으로 1998년에 출간된 ‘어른 노릇 사람 노릇’에 수록된 작품까지 모두 465편의 산문을 엮었다. 초판 당시의 원본을 바탕으로 중복되는 글을 추리고 재편집했다.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가 출간 과정을 함께했으며, 각각의 표지를 장식하는 이미지들은 이병률 시인과 박완서 작가의 손녀 김지상씨가 사진으로 찍은 박완서 작가의 유품이다.1931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광복과 한국전쟁, 남북분단, 4·19, IMF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몸소 견뎌낸 박완서 작가는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문단에 데뷔해 2011년 영면에 들기까지 40여 년간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다.“삶의 길목마다 사는 맛이 마련돼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라고 작가는 산문 ‘한 길 사람 속”에 썼다. 전 지구적 팬데믹 상황 아래에서 다시 읽는 그의 문장은 한층 더 울컥한 마음이 들게 한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냉철하게 우리를 보듬던 그의 부재가 새삼 더 크게 느껴지는 시기인 한편으로 작가는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그 사랑이 영원할 것임을 예감하게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1-28

25년간 세계 곳곳서 만난 예술 기행

‘예술과 풍경’(을유문화사)은 영국 미술비평가 마틴 게이퍼드(69)의 예술 기행서다. 게이퍼드는 영국 주간지 스펙테이터에 기고하는 저명한 평론가로, ‘내가, 그림이 되다’ ‘다시, 그림이다’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등 명저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책에서는 25년간 세계 곳곳을 누빈 예술 여행이자 순례를 통한 경험을 전한다. 까다로운 용어나 난해한 미술사를 설명하는 비평서가 아니라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솔직한 감정을 담아 에세이처럼 풀어냈다.선사 시대 동굴 벽화부터 이탈리아 르네상스, 추상 표현주의를 거쳐 행위 예술, 설치 미술까지. 그리고 자신이 직접 보고 만난 미술 작품과 예술가들을 알려준다.저자는 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슬로 루킹(slow looking·느리게 보기)’이 중요한데, 이는 작품 앞에서 가장 잘 이뤄진다고 주장한다.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발품 판 만큼’ 보인다는 것. “예술 작품을 정확히 감상하려면 거의 항상 돌아다녀야 한다. 단순히 집에 앉아서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작품에 담긴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 가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 경험, 즉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과 만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1-28

이어령의 80년 인생은 어땠을까?

신간 ‘이어령, 80년 생각’(위즈덤하우스)은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이어령 교수(이화여대 명예 석좌)와의 100시간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저자 김민희는 이 교수의 마지막 제자이자 인터뷰 매거진 ‘톱클래스’ 편집장인 인터뷰 전문 기자다. 그는 이 교수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여에 걸쳐 나눈 100시간이 넘는 대화를 정리했다.책에는 무엇보다 이 책이 자신에 대한 ‘용비어천가’나 ‘회고록’이 아닌 “나로서, 나처럼 생각하는 힘”을 담아내야 한다는 이 교수의 진심에 ‘철저한 고증’과 ‘자기를 내세우지 않은 문체’로 책을 엮은 작가의 응답이 담겼다.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어령이라는 한 사람이 어떻게 창조적 생각의 지도를 그려왔는지, 그만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책 속에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채우지 말고 비워라’‘오래된 정원에서 새로운 생각이 꽃핀다’‘글로컬리즘, 극과 극을 끌어안아 결합시켜라’‘관료주의는 창조의 적이다’‘창조적 상상력은 생활의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온다’‘위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진짜 창조다’‘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걸 되게 하라’ 등 이 교수의 22개 지적 탐험이 3장에 걸쳐 펼쳐져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1-28

“창의성 계발하려면 인문학·과학 섞여야”

에드워드 윌슨(92) 하버드대 명예교수의 신간 ‘창의성의 기원: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사이언스북스)이 나왔다. 윌슨은 통섭(通攝·consilience),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 사랑) 등의 개념을 만들어 낸 저명한 학자다.사회성 동물학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섬 생물 지리학,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윌슨은 ‘창의성의 기원’에서 “생물학의 그 어떤 것도 진화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의 말도 “과학과 인문학의 그 어떤 것도 진화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로 대담하게 확장의 필요성을 역설한다.창의성에 대한 연구는 사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18세기 후반 천재성에서 분리되기 시작한 이 개념은 195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됐고, 지금은 보통 ‘새롭고 적절한 일을 할 수 있는 특성 또는 능력’으로 정의된다.윌슨은 인간의 창의성을 키메라(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이한 짐승)적인 특성으로 파악한다. ‘수십만 년 전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 뇌와 신체,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감정, 중세에 형성된 관습, 명확한 의미도 목적의식도 없이 신 같은 능력을 휘두르는 기술’을 모두 갖춘 존재가 현재 인간의 모습이자 인간 창의성의 기원’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창의성을 계발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과학이 섞여야 한다는 게 윌슨의 강조점이다. “과학과 인문학은 창의성을 낳는 동일한 뇌 과정에서 기원한 것”이고, “통일된 과학과 인문학”의 조합만이 “인간 지성의 잠재적인 토대”라는 것이다. 우리 인류는 창의성 덕분에 과학을 토대로 한 첨단 기술 문명까지 이뤄냈다.윌슨에 따르면, 우리가 어디로든 선택한 곳으로 가고자 할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게 과학이다. 그리고 이 과학이 무엇을 만들어 내든 그것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건 인문학이다.따라서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토대로 삼을수록 인문학도, 창의성도 범위가 넓어진다. 인문학과 과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자기 이해’이기 때문이다.‘창의성의 기원’ 194쪽. /(주)사이언스북스 제공“사람들이 흔히 믿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인문학은 과학과 별개가 아니다. 현실 세계나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과정 어디에서도 둘을 가르는 근본적 틈새 따위는 없다.”“과학이 인문학의 토대가 된다면, 인문학의 범위가 더 넓어진다. 과학적 관찰이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다루지만, 인문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무한한 많은 환상 세계까지 다룬다.”저자는 이처럼 과학과 인문학이 균형 있게 하나가 될 때 새로운 계몽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학이 사실적 지식을 제시한다면 그 지식이 가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인문학이어서다. 과학과 인문학이 더 깊이 융합할 때 두 분야가 상승효과를 보게 되고 창의성 계발 역시 새롭게 이뤄지게 된다.이 책은 창작 예술에 대한 저자의 찬양으로 가득 찬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사랑했고 본인이 나비학자이기도 했던 나보코프 등의 소설, 인간 감정의 토대를 이루는 이야기와 인물의 ‘원형’을 보여주는 위대한 영화들, 사냥꾼의 황홀경과 생물학자의 탐구 정신을 융합하는 자연 저술 장르의 논픽션들, 인간의 감각 경험을 확대하는 미학적 놀라움을 담은 회화 작품들이 윌슨의 비평이 곁들여 소개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1-21

한일간 힘의 역전현상… 근본 원인을 파헤치다

일본 전문가로 꼽히는 이명찬 전 동북아역사재단연구위원이 쓴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 역전’(서울셀렉션)은 일본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일본이 한국보다 뒤쳐지는 이유를 설명한 책이다. 일본의 경제 쇠퇴, 민주주의 후퇴 뒤엔 패전을 인정하지 않는 책임 회피적 사고가 근본 문제란 지적이다.10여 년간 일본에서 유학하며 게이오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12년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한일 관계를 연구한 저자는 양국 간 힘의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뽕(국가에 대한 자부심에 도취돼 있는 상태)’ 섞인 주장이 아닌, 일본인들의 증언과 자료를 토대로 한일간 ‘갑·을’관계가 뒤집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그리고 최근 두드러진 한일 갈등과 일본의 수출규제와 혐한 역시 ‘한일역전’ 현상이 일어난데 따른 결과임을 밝히고, 한일갈등을 해소할 궁극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한다.책은 일본이 한국에 추월당한 근본 원인을 일본의 정치·사회·문화적 후진성에서 찾는다. 먼저 시라이 사토시(白井聰) 교토 세이카대 교수가 쓴 ‘영속패전론(永續敗戰論)’을 소개한다. 일본이 패전을 종전으로 속여왔기 때문에 패전을 가져온 체제가 지속된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일본은 ‘패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차별한다’는 것이 ‘혐한(嫌韓)’의 근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이어 한일 갈등을 불러일으킨 이유를 양국 정상의 차이점, 우경화 일본 대 민주화 한국, 한일 국력의 역전 등 세 가지로 설명한다. 가장 주된 원인은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결과적으로 가속한 한일 양국 간 국력의 극적인 변화에 있다고 강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1-21

‘푸른시’ 열아홉 번째 동인지 발간

포항지역 문단을 대표하는 시동인 ‘푸른시’(회장 김말화)는 최근 열아홉 번째 동인지 ‘푸른시’ 2020 제19호를 출간했다. 사진푸른시 동인은 포항문인협회에서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이 지역 문학의 한계를 극복하기위해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고자 결성된, 이미 문단에 알려진 동인이다. 현재 활동 회원은 손창기, 김말화, 김선옥, 김성찬, 김동헌, 남정화, 조혜경, 김우전 등 모두 8명이다. 이들은 매월 1회 합평을 통해 창작욕을 다지고, 푸르른 시의 세상을 물들이고자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이번에 출간된 ‘푸른시’ 제19호에는 장인수 시인의 ‘여덟 가지(젖가슴, 달리기, 디카시, 미각, 반려견, 몸, 넝쿨손, 우주)에 대한 짧은 시론’과 울산에서 활동하는 ‘변방’ 시동인 11명의 지역 초대시인의 시를 실었고, 특집시 지면에는 하재영 시인의 신작시 15편을 실었다. 동인 작품으로는 신작시 64편과 오홍진 평론가의 ‘차가운 세상 너머에서 빛나는 푸른시’ 제목의 동인시 해설을 실었다. 또 두 권의 회원 시집을 회원이 서평한 손창기 시인의 김말화 시집 ‘차차차 꽃잎들’ 서평과 김말화 시인의 김동헌 시집 ‘지을리 이발소’ 서평을 수록했다.김말화 푸른시 회장은 “푸른이라는 말 속엔 ‘첫’이란 싱싱함이 들어있다. ‘첫’은 시작이고 관계이며 마음이다. ‘푸른시’는 그 ‘첫’을 잊지 않고 변함없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1-20

포항문학 통권 47호 발간

‘포항문학’47호 표지.포항문인협회(회장 서숙희)는 최근 기관지 ‘포항문학’ 통권 47호를 발간했다. 연간지로 발간하는 ‘포항문학’은 이번 47호에서 특집1 ‘코로나 시대의 문학’과 특집2 사진에세이 ‘치유와 회복의 길-포항 그린 웨이를 가다’를 필두로 전국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의 초대 작품들과 문인협회 회원들의 시, 수필, 소설, 서평 등 90여 편의 작품을 실었다.호를 거듭할수록 전국 문단과 문인들의 주목을 받아온 ‘포항문학’은 올해 사회에 좀 더 천착하고자 특집‘코로나 시대의 문학’과 사진 에세이 ‘치유와 회복의 길-포항 그린 웨이를 가다’를 마련했다.특집 1은 우리가 직면한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코로나 시대의 문학을 마련해 코로나 시대를 진단하고 문학의 미래를 짚어본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의 ‘혐오와 분리의 감각 그리고 타자 윤리 사이-코로나 시대의 시 읽기’와 안지영 청주대 교수의 ‘최근의 SF 문학과 포스트-코로나 상상하기’를 실었다.특집2 사진에세이에서는 소설가 김영씨가 포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고 있는 포항 그린 웨이를 걸으며 쓴 사진 에세이를 실었다. 일상의 행복, 아름다운 동행,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생명의 길을 김주영 사진가긔 사진과 함께 적었다.문예지 특성을 살린 본격 문학작품으로 김나연, 조혜전, 민구식 시인들의 신선한 시들과 김강, 김도일, 안준우의 회원 소설, 회원 수필 이순혜 ‘오월의 마늘 밭에서’등 17편을 실었다. 초대작품들은 현 한국문단의 흐름과 수준을 가늠케 하는 수작들이다. 또한 포항문인협회 작가들은 지역과 이웃의 삶을 통해 그 수고로움과 아픔, 기쁨 등을 문학적 언어로 담아냈다.이밖에도 서평으로 현택훈의 ‘은유의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손창기 시집 빨강 뒤애 오는 파랑’등 7편을 실었고 회원 시조 김귀현 ‘중간 정산’등 18편을 소개하고 있다.서숙희 포항문인협회장은 “전 인류의 삶을 혼돈으로 몰아넣으며 엄청한 사회적 문화적 현상을 가져온 코로나19 팬데믹이지만 올해엔 다시 찾은 일상, 맑고 정돈된 생활환경 속에서 더욱 알찬 기획 아래 100여 명 회원 모두가 참여하는 활기 넘치고 풍성한 포항 문학의 발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1-18

평화를 꿈꾸지만, 현실은 전쟁의 연속

지난 3천년간 인간은 평화를 꿈꿔왔지만, 전쟁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파괴하며 아직도 우리 곁에 맴돌고 있다. 지금도 예멘과 우크라이나 등에서는 내전이 계속되고, 오래된 앙숙 파키스탄과 인도에서는 일촉즉발의 상태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정전이 아닌 휴전 상태가 지속되는 중이다. 인류 역사상 전쟁은 한시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평화라는 이상이 전쟁이라는 현실에 번번이 밀려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인간은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일까?조너선 홀스래그 벨기에 브뤼셀자유대 국제정치학 교수의 ‘권력 쟁탈 3,000년’(북트리거)은 철기 시대부터 현대에 걸친 3천년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나라와 민족 간에 전쟁이 벌어지는 다양한 원인을 탐색한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조감하면서, 고대 이집트부터 중국 한나라, 로마 제국, 이슬람 제국, 냉전을 거쳐 21세기 초입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평화의 균형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를 추적한다.저자는 이 방대한 역사 안에서 시대와 지역을 가로질러 반복돼 온 패턴을 찾아내고, 전쟁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을 뒤흔들며, 국제정치의 본질을 파헤치는 질문을 던진다. 상업과 무역은 정말로 국제 평화를 증진할까? 민주주의와 참여가 전쟁을 예방할 수 있을까? 전쟁은 권력에서 비롯되는 보편적 죄악인가? 지정학적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지금, 저자는 인간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선택해 왔는가를 밝히며 우리가 평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저자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되는 원인은 네 가지다. 첫째는 지배자의 권력과 야심이다. 나라의 힘이 너무 커져도, 너무 작아져도 전쟁은 일어났다. 국가의 힘이 강해지면 인근 지역을 정복하려고 공격했다. 국력이 쇠하고 내부 정치세력이 붕괴되면 이웃 나라가 쳐들어왔다. 국내 반란과 소요를 진압하려고 외세를 끌어들였다가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둘째는 안보강화다. 한 나라가 안보를 강화하기 시작하면 주변 나라들은 불안해한다. 안보력을 키우는 게 공격을 위한 것인지 방어를 위한 것인지 속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안보 경쟁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그 다음은 중요 교역로를 장악하려는 욕망. 가장 대표적인 곳이 실크로드다. 고대 이란 왕국이던 파르티아제국, 인도의 쿠샨제국, 흉노 연합국 등이 실크로드를 차지하기 위해 난투를 벌였다.마지막은 지나친 종교 신념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와 신념은 반드시 ‘성스러운 전쟁’을 일으켰다. 역사상 많은 종교가 평화와 자비를 설파했지만, 한편으로는 모두 전쟁의 원인과 근거가 됐다. 십자군전쟁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평화를 만드는 건 도덕이나 이상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라며 “인간의 도덕성에 기대어선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살아남으려면 권력을 키워야만 하고 권력은 일단 최선의 안보”라고 설명한다.힘이 있으면 타인에게 지배당하지 않는다. 힘이 없으면 착취와 결핍과 학대를, 최악의 경우엔 죽음까지 강요당한다. “황금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식을 전쟁에 내보내야 했고 무거운 세금을 내야 했다. 전쟁은 수평선에 걸린 불길한 먹구름처럼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다.저자는 “안보와 탐욕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한다. 발전은 새로운 욕망을 낳고, 인간의 욕구는 충족되지 않는다.평화라는 이상이 전쟁이라는 현실에 그토록 빈번하게 밀려난 이유를 설명할 단 하나의 완벽한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념해야 할 점은 있다. 전쟁은 어쩌다 실수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시기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1-14

독립운동가 19명의 생애·운동사 조명

“세 차례에 걸친 의병투쟁 과정에 전사한 선조들의 숫자는 알 길도 없고, 3·1만세운동으로 살해된 이가 7천500여 명,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하다가 희생되어 중국 정부가 집계한 항일열사만도 3천 명을 넘는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당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한 이도 수백 명이다.” -‘항일 전사 19인’ 책 중‘항일 전사 19인’(단비)은 한국 현대사를 다룬 장편소설 ‘경성 트로이카’ ‘연안행’등을 펴낸 안재성 작가가 쓴 독립운동가 19명의 약전(略傳·간략한 전기)을 모은 책이다.1890년대부터 1945년 해방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서 일본의 지배를 받던 당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항일 운동가 19명의 생애와 운동사를 기록했다.책은 전 재산을 팔아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짓고 독립운동을 한 이회영,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단일 국가를 염원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 ,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의 창립자 김원봉 등의 생애와 활동 이력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특히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민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린 남자현, 황포군관학교 최초의 한국 여성 독립운동가 김금주,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린 김명시 등을 소개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1-07

평범한 순간에도 감동이 담긴 정채봉의 산문과 시

故 동화작가 정채봉. / 샘터 제공“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먼저 창을 열고 푸른 하늘빛으로눈을 씻는다.새 신발을 사면 교회나 사찰 가는 길에첫 발자국을 찍는다.새 호출기나 전화의 녹음은 웃음소리로 시작한다.새 볼펜의 첫 낙서는 ‘사랑하는’이라는 글 다음에자기 이름을 써본다.새 안경을 처음 쓰고는 꽃과 오랫동안 눈맞춤을 한다.”-정채봉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중‘첫 마음’‘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동화작가 고(故) 정채봉(1946~2001)의 20주기를 기념한 책 두 권이다.고인의 타계 20주기를 맞아 그가 젊은 시절 근무했던 직장인 샘터 출판사에서 기념해 최근 펴냈다.각박하고 고된 현실에서 많은 사람이 본래 마음,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혀 고통에 빠지게 된다고 여긴 동화작가 정채봉은 자신의 글로써 삶에 그을린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고 위로하고 싶어 했다.‘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용어를 뿌리내리며 한국 문학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그는, 동화라는 장르적 틀을 넘어 놀라운 창작열로 소설, 시, 에세이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산문집 ‘첫 마음’은 생전에 정채봉이 펴냈던 ‘그대 뒷모습’,‘스무 살 어머니’,‘눈을 감고 보는 길’,‘좋은 예감’네 권의 산문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들을 엄선해 한 권으로 엮은 에세이집이다. 그가 평생 문학적 화두로 삼았던 마음, 삶에 대한 의지, 사람, 자연을 주제로 한 수필들이 실렸다.첫 번째 장‘슬픔 없는 사람 없듯’에서는 살면서 얻게 되는 마음의 생채기를 보듬으며, 단단하면서도 겸허한 마음을 가꾸는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두 번째 장‘별빛에 의지해 살아갈 수 있다면’에서는 간암 판정을 받은 후 병상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며 여전히 형형한 필체로 삶을 반추하는 자기 성찰적인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세 번째 장 ‘흰 구름 보듯 너를 보며’에서는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피천득 수필가 등 당대 거목들과의 교감에서 얻은 인생의 지혜를 섬세하게 붙들어 놓는다. 더불어 유년 시절을 지켜줬던 할머니, 그리고 곰보 영감님, 문경의 농바윗골 사람들 등 주변 사람들의 평범한 순간에도 감동하는 인간 정채봉의 마음이 실려 있다. 마지막 장‘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에서는 자연 앞에 한낱 인간으로서 겸양과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그의 태도가 담겨 있다.시집은 정채봉이 남긴 유일한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개정 증보판이다. 그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남긴 유작이기도 하다.정채봉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메모지나 찢어진 쪽지에 펜으로 쓴 시들을 지인인 정호승 시인에게 건넸고, 이를 엮은 책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 됐다.정채봉은 ‘성인 동화’, 그러니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오세암’이 프랑스에도 소개됐다. 첫 장부터 명성에 맞는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 담백하고 간결한 언어로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다독였던 정채봉. 그는 늘 자신이 발견한 삶의 순수를 이야기하고, 자분자분한 걸음걸이와 말투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겸양이 드러났다.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음이 시리고 답답한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와 위안을 그의 글에서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1-07

‘형산수필 36집’ 출간

영남권 대표 수필문학 단체인 형산수필문학회(회장 윤영대)가 회원수필집 ‘형산수필 36집’을 펴냈다.형산수필은 포항지역 수필가들이 1984년 7월 7일 창립 이후 34회에 걸친 ‘형산수필’을 출간해 왔는데 이번 호에도 지난 1년간 회원들의 땀과 정성이 배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기획으로 공동주제 수필 ‘잊지 못할 그 사람’을 실었으며 서상은, 이삼우, 조유현, 윤영대, 이상윤, 이화련, 박안복, 서강홍, 성정애, 전미라, 조효선, 김경일, 김춘희, 손성범, 장숙경, 김순애, 오학임, 송귀연, 이명우, 서상문, 김태선, 김보영, 윤순옥 등 회원 23명의 신작수필 46편을 실렀다.공동주제 수필 ‘잊지 못할 그 사람’에는 박안복, 성저애, 전미라, 조효선, 윤영대 회원의 수필 ‘어머님 전상서’‘오대산에서 만난 여인’등 5편이 실렸다.‘우는 새와 노래하는 새’, ‘봄은 왔건만’, ‘도토리 꿀밤’, ‘상선약수 유감’, ‘코로나 사막 체험’, ‘들깨를 심어높고’, 꿈보다 해몽’, ‘기다림을 여는 시간’, ‘팔공이’등 주옥같은 회원들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원로와 중견, 신인들의 작품이 대조를 이뤄 세대감과 연륜을 느낄 수 있다.회원수필집 중간에는 ‘제9회 형산수필문학상’심사평을 실었다. 이밖에도 표지에는 원로 문인화가 손성범이 그려 넣은 빨간 단감 문인화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울한 마음에 맛있는 입맛을 다시게 한다. 또 화보애는 이화련 성정애 전미라 세 회원이 작품집을 출간한 후기 사진 등을 실었다.한편, 형산수필문학회는 1984년 7월 7일 수필가 김규련 초대회장을 중심으로 빈남수, 서상은, 장현, 성홍근, 이삼우, 박성준 등 7인의 작가가 모여 창립했으며 지난 36년간 향토적이고도 문학적 가치가 높은 수필이 실린 회원수필집‘형산수필’을 매년 발간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포항 및 경북 동해안 지역의 역량있는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수필 공모전인 ‘형산수필문학상’을 개최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1-05

사무라이,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우리에게 일본과의 문제는 숙명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속에서 일본과 당당히 경쟁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그들을 외면하고 밀어내는 것이 아닌, 그들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 역사의 이해는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국내 최고의 일본사 권위자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근현대 일본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메이지유신’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오늘날 일본은 메이지유신이 닦아놓은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메이지유신이란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일본열도를 강타했던 사회적 대변혁을 말한다. 성공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체제를 혁신하며 대변혁을 이루어 낸 일본은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명실상부한 근대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그렇다면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으며, 이를 설계한 사람들은 누구인가?‘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21세기북스)에서는 대변혁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네 명의 사무라이가 등장한다.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주 ‘요시다 쇼인’, 근대 일본의 아이콘 ‘사카모토 료마’, 마지막까지 사무라이로 남은 ‘사이고 다카모리’, 냉철한 판단력과 리더십으로 혼란을 정비한 ‘오쿠보 도시미치’를 중심으로 근대 일본이 탄생한 과정을 소개한다. 저자는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과감한 판단으로 극적인 혁신을 이뤄낸 이들의 드라마 같은 삶을 보여주면서, 대정봉환, 삿초맹약, 흑선사건 등 일본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쉽게 풀어냈다. /윤희정기자

2020-12-30

한 권으로 이해하는 인류 20만 년의 역사

신간 ‘옥스퍼드 세계사’(교유서가)는 세계의 일류 역사가들이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부터 최근까지 20만 년에 걸친 역사를 서술한다. 대표 저자인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노터데임대학 역사학 교수를 위시한 11명의 저자들은 환경의 격변, 이념들의 상호작용, 문화의 단계와 교류, 정치적 충돌과 협력, 국가와 제국의 계승, 에너지의 해방, 생태와 경제,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만드는 데 일조해온 접촉과 갈등, 파급효과를 탐구한다.이와 함께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날을 전망할 때 유념해야 할 두 가지 장기 추세를 알려준다.그 하나는 인류가 처음부터 줄곧 자연에 속박된 존재였다는 것. 태양 극소기, 계절풍, 엘니뇨 등 지구 기후계의 변동은 문명의 흥망을 좌우해왔다.흥성한 문명의 배경에는 온난한 기후와 적절한 강우량이 작용했고, 쇠락한 문명의 배경에는 한랭한 기후와 폭우, 가뭄이 작용했다.산업혁명 이래 인간이 자연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전례 없는 자연재해와 기후 위기는 인간의 오만이 파국을 자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다른 하나는 때때로 창궐해 문명과 사회에 심대한 타격을 입혀온 전염병의 위력이다.저자들은 페스트, 두창, 출혈열, 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이 인구를 급감시키고 경제를 마비시켜 지정학적 판도를 바꿔왔다고 말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12-30

송희복 시인, 현대사회 세태 풍자로 시대와 호흡

“산을 보며, 산아, 하고 부르면, 산이 저만치 내게로 다가오네.”- 송희복 시인의 2행시 ‘제목 없는 시’송희복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스무 편의 서정시와 한 편의 서사시’(글과마음)가 출간됐다.시집은 스무 편의 서정시, 한 편의 서사시, 프랑스 기행시, 2행시 등으로 구성돼 있다.시집의 제목인 ‘스무 편의 서정시와 한 편의 서사시’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제목인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전례로 삼았다.첫 번째 시편 ‘이어도’는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과 유토피아 의식을 주제로 삼은 깊이 있는 시다. 스무 편의 서정시 중에 세태 풍자의 작품들이 적지 않다. ‘무슨 기약이라도 있었기에’ ‘가짜 뉴스’ ‘세상의 원로들’ ‘문학상에 대하여’ ‘아이러니, 혹은 아나키’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또 코로나19를 소재로 한 시 ‘비대면 시대의 낯선 풍경’ ‘코로나19’ ‘코로나, 어지러운’ ‘괴질’ 등도 눈길을 모은다.송희복 시인서사시 ‘새벼리의 아적붉새’의 소재는 1923년에 일어난 진주 형평사 운동이란 역사적 사건이다. 진주 지역의 방언인 제목의 뜻은 ‘동쪽 벼랑의 아침놀’이다. 진주 남강이 굽이치는 동쪽 벼랑에 벌겋게 물이 든다는 것. 우리 백정의 마음속에도 그렇다는 것을 언표하는 제목이다.프랑스 기행시는 시인이 지난해 여름과 올 2월 파리와 남프랑스에 머물면서 메모한 견문과 생각이나 느낌을 시로 남긴 기행시 중 14편을 모았다. 2행시, 즉 두 줄로 된 시는 가장 축약된 형태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올해 쓴 2행시 중에서 16편을 가렸다.송 시인은 “눈에 보이지 않은 괴질이 지구촌의 공동 과제가 되면서, 인간들에게는 세상이 더 좁아졌다는 느낌이 실감나게 다가왔다”며 “이 사실이 앞으로 미래 문학에 대한 감수성의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송희복 시인은 시인 겸 문학평론가로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됐으며 시집 ‘저물녘에 기우는 먼빛’, 평론집 ‘불안한 세상, 불온한 청춘’ 등이 있다. 제9회 청마문학연구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진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윤희정기자

2020-12-30

‘포항촉발지진 국민감사청구서’ 특별호 발간

“포사연의 국민감사청구서, 감사원의 포상을 받다”포항의 시민단체인 (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대표 이재섭·이하 포사연)가 지난 1988년 창립 이후 32년째 펴내온 지역연구 및 시민운동 종합 계간지 ‘포항연구’의 통권 제54호를 펴냈다.이번 ‘포항연구’제54호는 포항촉발지진에 대한 국민감사청구서 전문과 감사원(원장 최재형)의 특별감사보고서 전문을 담은 특별호로 발간했다.2018년 11월 15일 포항지열발전소 건설 과정의 63회 유발지진들이 촉발했던 규모 5.4 지진 발발 1주년을 앞둔 2019년 11월 12일 포사연은 흥해읍 피해주민 대표들과 연대해 임해도부소장(전 포항문화방송 보도국장)을 대표 청구인으로 해 포항시민 1천821명의 연대서명을 받아 국민감사청구서를 감사원에 제출했다.이대환(작가) 이동철(의사) 임재현(언론인) 장태원(시인) 강호진(교육자) 권영락(교육자) 김광일(공학박사) 도형기(한동대 교수) 등 포사연 회원들이 숙의를 거쳐 작성한, 단편소설보다 긴 분량의 감사청구서를 접수한 감사원은 ‘감사착수 결정’을 통보히고 2번 감사지연 사정을 알려오다 올해 3월 A4용지 300쪽 분량의 특별감사결과 보고서를 발표하고 홈페이지에 공개했다.또한 감사원은 이달 초 임해도 대표청구인 앞으로 포사연이 주도한 국민감사청구에 대해 우수사례로 포상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이에 포사연은 ‘포항연구’ 54호를 특별호로 발간해 포항 역사의 주요 사료로 남기고 코로나19를 극복한 어느 시기에 포항촉발지진에 대한 마무리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로 했다.이 밖에도 ‘포항연구’ 54호는 새해부터 국가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으로 추진될 예정인 ‘수소연료전지발전사업’에 대비해 LNG가스를 800도에 태워서 수소연료를 생산하는 기존 방식이 안고 있는 석탄발전 수준의 이산화탄소 배출이라는 심각한 반환경적 문제를 비롯해 작금의 한국사회에 대해 포항시민이 함께 생각해야 할 과제들을 칼럼특집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한편, 포항지역사회연구소는‘과학적 지역성, 민주적 진보성, 창조적 대중성’으로 출범해 영일만오염, 청하핵폐기장, 시민의식 문제들에 선도적으로 대응하며 지난 2000년 세계NGO대회에도 참여한 바 있다. 또한‘포항지진과 지열발전’(임재현 지음), ‘포항의 눈’(포사연 지음), ‘누가 어떻게 포항지진을 만들고 불러냈나?’(포사연 엮음) 등 단행본 발간을 통해 포항촉발지진의 진상 규명에 앞장섰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