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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 세계 대표 지성 134인과 사유의 시간을

이 시대와 사회를 만들어낸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경제, 문화, 사회, 정치 등을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현상으로 간주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우리의 ‘생각’, 즉 인식 활동의 소산이다. “우리의 생각이 곧 우리 자신이다.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과 함께 발생한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이 이 세상을 형성한다”라는 붓다의 말처럼, 우리의 생각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이 시대와 사회를 만들어냈다.기업가이자 사회활동가인 비카스 샤의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인플루엔셜)은 이 같은 사실에 착안해 금세기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문들의 생각을 인터뷰해 공유하는 프로젝트 ‘생각 경제학 프로젝트’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책은 정체성을 시작으로 문화, 리더십, 기업가정신, 차별, 갈등, 민주주의까지 총 7개의 대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주제들은 전 영역에 걸쳐 불안정성과 불투명성이 높아진 이 시대에 올바른 삶의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화두들이다. ‘정체성은 우리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문화예술은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차별과 갈등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민주주의는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 등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전 세계 대표 지성 134인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다. 유발 하라리, 조던 피터슨, 제인 구달, 마야 안젤루, 무하마드 유누스, 리처드 브랜슨, 셰릴 샌드버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오른 인물들의 위대한 생각들이 독자들을 깊이 있는 사유의 장으로 안내한다.한 예로 심리학자이자 ‘질서 너머’의 저자 조던 피터슨은 “어떤 인생을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비카스 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만일 이 세상의 문제들, 즉 자신과 가족을 비롯해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요. 누구나 주변에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거나 고통을 겪는 사람을 보면 심적으로 동요되기 마련입니다. 인간으로서 피하기 어려운 이러한 도덕적 부담을 덜어낼 유일한 방법은 그 문제에 맞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41쪽(‘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중에서)‘사피엔스’를 통해 인류의 정체성과 관련된 커다란 변화를 예고한 유발 하라리는 “앞으로 미래의 인류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장차 인간은 기술을 사용해 신의 영역으로 간주했던 능력들을 습득하게 될 것입니다. 비유법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조만간 인간은 각자 취향대로 생명체를 설계해서 창조하고, 머릿속과 직접 연결된 가상현실을 넘나들고, 수명을 과감히 연장하고, 원하는 대로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개조할 것입니다. (중략) 미래 기술의 혁신적인 잠재력은 우리 몸과 마음을 포함한 호모 사피엔스 자체의 탈바꿈에서 나타날 거예요. 미래의 가장 신기한 기술은 우주선이 아니라 우주선에 타고 있는 생명체가 될 거란 의미입니다.”-59~60쪽(‘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한가’ 중에서)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밥벌이에 치중한 생존 문제에 몰입해 의식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에 널린 갈등과 혐오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와 같은 삶의 근간을 흔드는 실존적인 질문들을 마주할 때, 잠자던 우리의 의식은 깨어나고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변화한다. “모든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는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말처럼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은 근본적인 가치가 뿌리째 흔들리는 오늘날, 진정한 인생에 대해 자문해보고 삶의 방향을 재정비할 수 있게 도와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26

정신과 의사·긍정심리학 전문가가 알려주는 건강한 상호의존 방법

태곳적부터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도왔다. 하지만 경쟁이 점차 심해지고 자유와 독립의 가치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우리는 고립된 채 외로움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돼버렸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인간다운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나를 살리는 관계’(위즈덤하우스)는 ‘나라서 참 다행이다’ ‘불안을 넘어설 용기’ 등 프랑스에서 다수 베스트셀러를 펴낸 정신과 의사 크리스토프 앙드레와 긍정심리학 전문가 레베카 샹클랑이 함께 쓴 책이다. 지난 50년 동안 다양한 연구자들이 관계를 공부하고 연구해온 결과를 바탕으로 애착과 상호의존이 왜 중요한지 과학적으로 설명해주고, 우리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해야 긍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고양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안한다.내 곁에 있는 사람 때문에, 나를 둘러싼 온갖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가? 관계를 싹둑 끊어내는 편이 일견 쉽고 마음 편해 보이지만 그것은 결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끊어진 줄은 결코 감쪽같이 다시 이을 수 없다. 얽히고설킨 관계를 현명하게 풀어내고 건강한 상호의존을 구축하는 데 이 책은 크나큰 도움이 돼 줄 것이다.“관계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도 같다. 관계는 우리 삶에 항상 있고 결코 없어서는 안 되지만 우리가 늘 의식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명상을 하면서 자기 호흡을 의식하고, 따라가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것이야말로 평정심과 분별력으로 나아가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훈련이다.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상호의존을 의식하고 마음 깊이 챙기며 그 양상을 관찰하고 온전히 누리는 것 또한 간단하면서도 썩 유익한 훈련이다. 이 훈련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여실히 깨닫고 행복과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맺음말’ 중에서 /윤희정기자

2021-08-19

“민족의 입맛, 철조망도 못 갈라놔”

(사)아태평화교류협회(대표 안부수·이하 아태협)가 지난해 12월 “누군가에게 평화의 텃밭이나 주말농장이 되기를 바란다”는 취지를 내걸고 창간호를 펴낸 계간 ‘평화친구’ 제3호(아시아)가 최근 광복 76주년을 맞아 2021년 여름 호로 발행됐다.이번 호의 주목할 내용은 아태협이 주도한 ‘옥류관 평양 물랭면’과 ‘옥류관 평양 고기만두’ 출시에 즈음한 안부수 대표의 권두 인터뷰,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와 류영재 서양화가 그리고 김동환 부엉이영화사 대표가 참여한 특집 ‘명작의 평화, 평화의 명작’, 광복절에 더욱 각별한 기획으로 마련된 안부수 대표의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발굴과 조국 봉환 현장을 가다: 일본(日本) 스미토모(住友) 광산 조사 및 강제동원 현장 실태조사’와 이경재 숭실대 국문과 교수의 ‘한국문학에 남은 일제 강점의 상처: 유진오의 기차 안’ 등이다.또 1909년 평양에서 태어나 20대에 5년간 미국 유학을 하고 삶의 전반기는 평양에서, 해방 후 삶의 후반기는 포항에서 살아간 한흑구 작가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연재를 시작해 첫 회에 작가소개와 함께 1930년 미국 시카고에서 발표한 시 3편과 1956년 포랑에서 발표한 명작 수필 ‘나무’를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정 지면인 ‘내 안의 평화’에는 김용국 시인의 시편, 포항에 거주하는 소설가 김강, 수필가 권정숙, 차성환 씨의 근작 수필을 싣고 있다.옥류관 평양 물랭면 출시에 대해 안부수 대표는 “민족의 입맛은 휴전선 철조망도 갈라놓을 수 없으니 무엇보다도 우리 협회의 노력과 정성이 남과 북의 민간교류에 온기를 불어넣고 평화의 시대를 위한 밀알과 같은 평화친구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방민호 교수의 ‘지나간 30년 전쟁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는 영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 장편소설인 ‘남아 있는 나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류영재 서양화가의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은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로 꼽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소장된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에 얽힌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풀어내면서 평화와 예술의 힘을 생각하게 만들어준다.이란주재미국대사관 직원들의 탈출기를 다룬 김동환 대표의 영화 ‘아미고’에 대한 해설과 제작 뒷얘기는 때마침 터져 나온 아프가니스탄 탈출 러시를 지켜봐야 하는 독자들에게 평화의 참된 의미와 평화를 지키고 누리는 일상의 삶에 새삼 사색할 계기를 제공해준다.인간은 전쟁에서 놓여날 수 없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남북 평화시대를 만들 수 없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대답의 하나를 ‘평화친구’ 이번 호는 권두에 초대한 ‘앵콜 평화엽신’에 담긴 두 베트남 작가의 대화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19

위대한 패배자 8인을 통해 보는 리더의 길

오늘날 모든 조직은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정해진 답이 없는 시대에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한 결단을 내리는 한편으로 MZ세대로 대표되는 자기중심의 세계관을 지닌 세대들을 문화적, 조직적 충돌 없이 이끌어야 한다. 섬기는 리더십, 카리스마 리더십, 질문하는 리더십 등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막상 현실에 도입하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힘들 따름이다. ‘위대한 패배자들’(흐름출판)은 인생의 성패를 떠나 오롯이 자신의 길을 걸었던 위대한 패배자 8인의 철학, 전략 그리고 그들의 삶을 동서양의 고전과 역사적 사건 등을 통해 재해석한다.경영학자인 저자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은 무기 없이 싸우는 전쟁터로 불리는 현대의 기업 경영에서 30년간 때론 이론가로, 때론 조언자나 참여자로 활동하면서 “왜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사라지는가?”란 의문을 갖게 됐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역사적 인물과 동서양의 고전을 연구하고 통섭하는 작업을 해왔다.지금까지 리더에 관련된 책들이 승자의 전략과 그들의 삶을 다뤘다면 이번 책은 조금 다르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아테네의 파괴적 혁신가 테미스토클레스, 송의 마지막 방패 악비, 소련 혁명의 수호자 트로츠키, 사막의 여우 롬멜, 세기의 혁명가 고르바초프, 한국전쟁의 진정한 영웅 리지웨이, 명나라를 세운 떠돌이 승려 주원장, 지금의 중국을 만든 한 무제 등 격변의 시기에 등장해 시대를 바꿔내는 리더십을 발휘했으나 결국 패배자, 잊힌 승자로 기억된 역사적 인물 8인을 통해 리더가 갖춰야 할 강인함, 통찰력, 책임감과 신뢰, 가치를 탐구한다.그러나 ‘위대한 패배자들’은 위대한 패배자 8명을 덮어놓고 롤모델로 치켜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신돈, 카이사르, 비스마르크, 이순신, 이병철, 이나모리 가즈오 등 동서양, 근현대의 리더들과 비교 분석해 각각의 리더십 유형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예를 들면, 송나라의 마지막 방패로 불리며 조국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결국 황제에게 배신당한 악비를 특유의 정치력으로 황제를 움직여 독일 통일을 이뤄낸 비스마르크와 비교하며 나아감과 물러남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페르시아라는 강대한 적의 침입과 귀족 중심의 기득권 세력의 반대 속에서 아테네의 근본을 해양 국가로 탈바꿈시킨 테미스토클레스. 그는 옳다고 생각된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뤄냈다. 비록 말년에 자신이 쓴 방법으로 조국에서 밀려났지만, 전쟁터에서 정치에서 그리고 국가경영에서 뜻한 바를 이뤄내고 만 그의 치밀한 전략 전술은 ‘손자병법’의 현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아프리카 전선에서 처칠에게 처절한 패배감에 안겨주며 현대 전쟁사의 한 획을 그은 ‘사막의 여우’ 롬멜. 그는 적들마저 존경심을 가질 만큼 과감하고 창의적인 전술을 현실에 성공시킨 리더다. 그러나 히틀러의 암살에 소극적인 가담을 하며 전략적 차원에서 우유부단한 결정을 내렸고 결국 나치에 의해 자살 당하고 만다. 전술에서 이기고도 전략에 지고만 전쟁 영웅을 통해 리더의 안목에 대해 분석한다.‘운칠기삼’. 성공은 운이 칠, 노력이 삼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성공과 실패는 인간의 노력과 재능을 벗어난 영역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도 승자의 이야기와 그들의 방법론만을 배우려고 한다. 그러나 ‘위대한 패배자들’은 조금 다르게 볼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기회를 봤고 그것을 잡으려고 했던 지도자들, 이기려고 했고 운이 따랐으면 승리할 수 있었던 장군들, 삶의 여정에서 한때 승자로 불렸으나 종국에는 패자가 되고만 잊힌 승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마디로 말해 그들은 비극적으로, 특히 극적으로 패배한 지도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전략과 리더십, 그리고 실패의 경험은 승자들은 결코 줄 수 없는 귀중한 시사점을 준다. /윤희정기자

2021-08-19

사소한 장면 속에 숨겨진 삶의 아름다움

“초여름 하오 산책길/ 오늘 내게 놀라운 사태事態는/ 연 이파리 위/ 소리 물고 파닥이는 물방울을 보는 일// 제 몸에 똬릴 트는/ 하늘도 해도 털어 내며/ 굴러 내리는 맨얼굴의 말 알아듣는 일(….)// 머물던 세상, 손 탈탈 털고/ 한 방울 바다의/ 중심으로 뛰어드는 일// 밀어라 밀어라 바람아/ 전율하는 이 가슴을/ 수평선을 기울였다 펴는/ 세상 가장 아찔한 상쾌 속으로!”- 손진은 시 ‘물방울 속으로’ 부분경주 출신의 중진 시인 손진은의 네 번째 시집 ‘그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가 걷는사람 시인선의 44번째 시집으로 출간됐다. ‘걷는사람 시인선’은 시류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히 해가는 좋은 시인들과 시를 발굴하고 그로써 오늘날 우리 문학장이 간과하고 있는 가치를 일깨운다.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손진은 시인의 이번 새 시집은 10년 만의 출판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과묵했던 문학 소년을 길러낸 고향의 정경과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을 내 ‘몫’의 말들로 풀어낸 시편들을 선보이고자 했다”고 말한다.10년 만에 펴낸 시집인 만큼 시적 사유의 힘이 탁월한 시편들이 시집을 가득 메우고 있다.시집에 담긴 51편의 작품 속에서 시인이 그려낸 인간 삶의 비극적인 단면, 자연의 이치와 아름다움, 사물의 본질 등은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무참한 현실 세계 속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구원하는 것은 과학적 세계관이나 거대 담론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경외(敬畏)와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근신(謹愼)의 마음이라는 것. 시집을 펼친 독자들은 시인이 직조해 낸 다채로운 신화적 세계를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김기택 시인은 손 시인의 이번 시집에 대해 “그의 시선이 닿으면 보잘것없는 것들은 극적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으로 무장한다. 그의 상상력은 별 볼 일 없는 사물이나 흔해 빠진 장면을 마법적으로 변화시키면서 놀라운 광경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고 평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12

소크라테스부터 노자까지… 철학자 54인의 지혜 전달

‘나를 살리는 철학’(클레이하우스)은 독일의 철학 컨설턴트 알베르트 키츨러가 삶의 지혜를 전하는 책이다. 저자는 삶의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고대 철학에서 답을 찾았고, 그 지혜를 철학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의 일상에도 적용하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예를 들어 그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자꾸 짜증과 분노가 일어난다’는 내담자에게 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가르침을 처방한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 화가 난다면 즉시 자신을 돌아보고 비슷한 실수가 없는지 생각해보라. 그의 충동적인 행동에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면 금세 화가 가라앉을 것이다.’ 이처럼 ‘나를 살리는 철학’에는 소크라테스와 에피쿠로스부터 노자와 샹카라까지 동서양을 망라한 고대 철학자 54인의 지혜가 가득하다.다음은 저자가 소개하는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12가지 인생의 법칙.△법칙 1. 걸음을 멈춰라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차분히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법칙 2. 내면의 정원을 가꿔라각자는 자기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이고, 행복은 정원에서 피워내는 열매와 꽃이다.△법칙 3. 너 자신을 알라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무엇이 자신에게 좋고 좋지 않은지 알고 있다. 자기기만이 최악이다.△법칙 4. 마음을 훈련하라나에게 도움이 되는 생각이 나의 내적 태도로 자리를 잡을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법칙 5. 자기다움을 찾아라내가 누군지 아는 건 어렵지만, 나답지 않다는 느낌과 그 원인을 찾아내는 건 생각보다 쉽다.△법칙 6. 타인의 결점을 이해하라나를 향한 어떤 공격도 그 근거가 내 안에 있지 않음을 명확히 인식하라.△법칙 7. 베풂으로써 느끼는 행복을 인지하라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먼저 베풀어 타인의 행복에 기여할 때 행복을 느낀다.△법칙 8.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라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적도 친절하게 다가가면 친구로 만들 수 있다. 관대함도 연습한 만큼 는다.△법칙 9. 운명을 스스로 조각하라나의 성격은 나의 운명이다. 모든 게 내 손 안에 있다.△법칙 10. 죽음과 가까운 친구가 돼라죽음과 끝이 없다면 삶은 무미건조하고 지루할 테고, 행복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법칙 11. 내려놓고 놓아주어라내려놓을 줄 알면 자유로워진다. 마음을 외부의 것들과 상황에 집착하도록 방치하지 말자.△법칙 12. 마음의 중심을 강화하라균형 잡힌 마음을 갖게 되면 나의 중심은 무한한 행복을 만드는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윤희정기자

2021-08-12

일과 윤리, 위대함과 정직함에 대한 심오한 통찰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남아 있는 나날’(민음사)이 번역 출간됐다. ‘남아 있는 나날’은 대를 이어 집사라는 직업에 헌신해 온 ‘스티븐스’라는 인물을 통해 양차 세계 대전 사이 영국 격변기의 모습과 여행길에서 바라본 1950년대 영국의 사회상을 교차한 작품이다. 출간과 동시에 “마술에 가까운”(뉴욕 타임스)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단순한 구조 속에 구시대와 신시대의 충돌, 일과 윤리, 위대함과 정직함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았다. 스티븐스가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여인과 아버지, 그리고 삼십 년 넘게 모셔 온 달링턴 경에 관한 이야기를 축으로, 이 작품은 우리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말해준다.때는 1956년 여름, 달링턴 홀의 집사로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는 생애 첫 여행을 떠나고,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지난날을 회고한다. 그가 무려 35년간 모셨던 신사 달링턴 경은 밀실에서 비공식 회담을 주재하고 외교 정책을 좌우하던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스티븐스는 그림자처럼 그를 돕는 집사의 직무를 통해 세상의 중심축에 닿아 있다는 내밀한 만족감을 느꼈다.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세간의 존경을 받던 달링턴 경이 나치 지지자라는 오명을 쓴 채 사회적으로 추락하면서 스티븐스의 경력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미 주인에 대한 존경을 넘어 맹목적인 헌신을 자처하던 스티븐스는 달링턴 경이 완벽한 도덕관을 가졌다는 믿음을 놓지 못한다. 평생 집사의 업무에만 매달린 탓에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마저 떠나보내야 했던 그에게 달링턴 홀이 상징하는 세계는 단지 ‘일’이 아닌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윤희정기자

2021-08-12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바다의 위대함’

최근 인류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해양오염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세계적인 해양생물학자 프라우케 바구쉐 박사의 ‘바다 생물 콘서트’(흐름출판)가 나왔다. 저자는 책을 통해 바닷속 놀라운 세계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와 가장 거대한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는 바다의 공존공생 법칙부터 우리가 해안가를 걸으면 맡게 되는 오묘한 바다 냄새는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지, 그리고 밤이 되면 수면 위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발광현상은 어떤 이유로 발생하는지 등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또한 바다에 가면 인간의 감정이 요동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인간의 감정뿐 아니라, 인간의 운명과 생존, 더 나아가 지구의 생존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바다의 위대함에 대해 전하기도 한다.이 책에 소개된 바다에 대한 설명은 책에서 배운 것뿐만이 아니다. 저자가 바다 위에서 혹은 속에서 생활하며 체험하고 직접 경험한 생생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해양생태계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들과 과학적 탐사의 결과들 그리고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어우러져 바다와 바닷속 동물들, 해양생태계 전반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가장 완벽하면서도 흥미로운 책이라는 평가다.“어디에 있건, 우리는 바다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숨 쉬고 생활하는 모든 일상이 바다로 향하고 바다로부터 온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하며, 우리가 왜 바다를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지 그 분명한 이유 를 알려준다.이 책의 핵심 가치는 세네갈 출신의 환경 운동가 바바 디오움이 1968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총회에서 연설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인간들은 오직 우리가 사랑하는 것만을 보호한다.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이 이해하는 것만을 사랑하며, 우리가 배운 것만을 이해한다.” 저자 바구쉐 박사는 이 책을 통해 “내가 느낀 바다에 대한 사랑과 이 유일무이한 세계를 보호하려는 소망을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속에서도 일깨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서문에 적었다. 이 책은 더 많은 사람이 바다에 대해 알게 될수록 인간이 바다의 재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다음 세대가 살아갈 이 땅을 위해 지금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확인하도록 돕기 위해 출간됐다.‘바다 생물 콘서트’에서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동물인 플랑크톤에서부터 바다거북, 해달, 펭귄, 대왕고래, 심해 문어 그리고 각종 해조류와 산호에 이르기까지 바닷속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주요 생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해양생물에 대한 최신의 데이터가 담겨 있는 책답게 한국어로는 명칭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낯선 생물들도 다수 등장한다. 또한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해양생물에 대한 정보까지 다채롭게 담겨 있다.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오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서 바다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싶어하는 저자의 집필 의도에 걸맞게 조금도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게 해양생태계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쉽고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05

우리 삶에 꼭 필요한 힘과 태도 ‘사랑’

태어나고 떠날 때까지, 우리는 참 많은 일들을 겪는다. 이 많은 일들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노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힘과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고찬근 신부는 우리가 건강한 사회에서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 끊임없이 깨닫고자 한다. 온유함이 가득한 세상을 바라며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그 단상을 ‘우리의 사랑은 온유한가’(달)에 묶었다.겸손의 진정한 의미, 고통과 행복을 받아들이는 방법, 미움보다 용서가 좋은 이유, 배려의 기쁨, 타인을 챙기는 지혜로움, 타인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깨달음, 그렇게 타인과 자신을 사랑하는 일들에 대해 적었다.이 책에서 고 신부는 삶의 여정에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고 강조한다. 힘, 건강, 지식, 돈, 권력…. 이 모든 것들이 ‘사랑과 평화를 위한 도구’임을 알아야 한다고 전한다. 사랑의 힘, 진리를 섬기는 힘이 있을 때에 사회에 물과 공기와 햇빛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온갖 어려움이 가득한 시대에 그래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상기시켜준다. 고 신부는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랑만이 자신을 ‘자신답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알아가는 기쁨과 권리를 누릴 필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는 곧 오늘 하루를 평화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려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견디는 힘, 슬픔의 크기를 작게 하는 힘, 용감히 반대할 줄 아는 힘, 타인을 용서하는 힘을 기른다면 오늘 하루는 자신을 사랑하며 평화로이 지낼 수 있게 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05

“뇌를 알면 나를 안다?” 뇌에 관해 궁금하다면…

왜 뇌는 당신의 뇌처럼 진화했을까? 누가 봐도 확실한 답은 ‘생각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흔히 뇌가 일종의 ‘상향 진보’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추정한다. 말하자면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로 진화해서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는 어떤 동물들보다도 더 정교하게 설계된 ‘생각하는 뇌’인 인간의 뇌가 있다는 식으로 가정한다. 리사 펠드먼 배럿 미국 하버드대 법·뇌·행동센터의 수석과학책임자는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더퀘스트)에서 우리 뇌가 생각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발상은 인간 본성에 대한 엄청난 오해들의 근원이 돼왔다고 주장한다.저자는 “일반적으로 뇌는 사고를 위한 기관으로 여겨지지만 뇌는 생각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뇌는 몸에서 뭔가 필요할 때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동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인 ‘알로스타시스’(Alllostasis·변화를 통해 몸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능력)를 해내는 기관이라고 말한다. 에너지가 필요하기 전에 그 필요를 예측하고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생존을 위해 신체를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뇌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작은 벌레에서 진화해 아주아주 복잡해진 신체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요약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7-29

재미와 감동의 시집 ‘마주보기’… 국내 첫 완역판 출간

“슬픔은 금방 사라진다./슬픔은 쉽게 찾아오지만 매번 또 사라진다./이렇게 우리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영혼은 점점 길들여진다.”- 에리히 케스트너 ‘누구나 아는 슬픔’ 중독일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1899~1974)의 대표 시집 ‘마주보기’(이화북스출판사)는 1980년대 후반 서정윤 ‘홀로서기’, 도종환 ‘접시꽃 당신’과 함께 국내 시집 붐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 시집이다.이화북스출판사가 2004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정식 계약판으로 출판됐다가 절판된 ‘마주보기’를 국내 최초 완역판으로 최근 출간했다.캐스트너가 1936년 발표한 이 시집의 원제는 ‘에리히 캐스트너 박사가 시로 쓴 가정상비약’이다. 삶에 지치거나 감정이 메마를 때, 사랑이 떠나갈 때, 결혼 생활이 위기에 빠질 때, 나이 드는 게 슬플 때 등 여러 상황과 감정에 맞춘 처방전 같은 시들을 선사한다.‘호주머니가 텅텅 비었을 때’, ‘정치에 식상했을 때’, ‘사랑을 잃었을 때’ 등등의 경우에 맞춤형의 짧고 쉬운 시를 통해 올곧고 순수한 인간의 마음을 노래하며 병든 인간혼을 교정하고 정화하고 치료한다.시인 캐스트너 역시 문학은 동시대의 아픔을 담아 가장 쉬운 말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문학관을 바탕으로 이 시집을 썼다고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7-29

우리가 몰랐던 조선시대 여성들은 어땠을까?

엄격한 유교 사회였던 조선시대에서 여성들은 순종과 인내를 미덕으로 살아갔다. 황진이, 허난설헌, 신사임당 같은 상황적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했던 뛰어난 여성들이 있었는가 하면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늘과 같은 존재로 여성으로서의 억압된 삶을 살아야 했던 많은 여성이 있었다.‘또 하나의 조선’(한겨레출판)은 신분상으로는 밑바닥 여종에서 왕비까지, 지역으로는 남녘 산골 촌부에서 한양 마님까지, 나이로는 10대 소녀에서 여든 할머니까지, 정사(正史)라고 하는 실록이나 양반 남성의 문집으로 구성되는 조선 ‘너머’의 조선 이야기를 담았다.‘우리가 몰랐던 조선시대 여성들 이야기’를 주제로 그늘에 가려져 있던 주변적 여성 52명의 삶을 조명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조차 버거웠던 시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취를 남긴 여성들이다.책은 장희빈, 대장금, 황진이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들을 비롯해 ‘음란하고 아름다웠던’ 낙안 김씨, 당대에선 드물게 여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긴 성장기의 주인공 숙희, 마을을 돌며 근심을 위로했던 무녀(巫女) 추월, 상속받은 액수의 세 배로 재산을 불린 ‘자산 관리의 달인’ 화순 최씨 등 시대의 한계와 인간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여성들의 다채로운 서사를 담았다.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인 저자 이숙인은 이번 책에 대해 “자료가 남아있어도 주목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사소한 기록 하나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었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 책은 짧게나마 기록에 남은 자들을 통해, 소외되었던 여자들을 기억하려는 시도이다”라고 말한다.이 책의 1부 ‘구체적으로 살고 입체적으로 존재하다’는 자신의 운명 안에서 나름대로 개성 있게 살았으나 ‘시대가 주목하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여겨진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일례로 경북 칠곡 지역에서 칠십여 생을 살다 간 신천 강씨는 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점잖게 박제된’ 양반가 여성의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첩을 들인 남편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강씨의 목소리는 500년 전을 살던 한 여성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날것 그대로 전한다. 이렇게 역사 속 인물을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은 2부 ‘성녀와 마녀의 프레임을 넘어’에서도 돋보인다. 허난설헌, 대장금, 논개 등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여성들도 낯선 맥락 속에 배치될 때 기존의 도식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다.황진이는 남성의 시각으로 재단돼온 ‘사랑의 화신’이나 ‘성녀(聖女)’ 같은 상징을 벗고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거듭난다. 저자는 또한 우리에게 폐비 윤씨로 더 잘 알려진 제헌왕후가 ‘현숙한 왕비’에서 도저히 중전 자리에 둘 수 없는 악녀가 되는 데 걸린 고작 7개월의 시간을 따라가며, ‘구성된 죄’의 전후를 살핀다. 장희빈에게서 300년 넘은 ‘악녀’ 꼬리표를 떼어낸 뒤, 그녀가 냉엄한 역사 현장에서 겨우 열 살 남짓한 아들의 미래를 기원했던 평범한 여자였음을 설명하기도 한다.책은 ‘공식적인’ 가부장제 사회에 각자의 방식으로 균열을 시도했던 여성들의 상처와 성취를 동시에 들여다보기도 한다. 3부 ‘닫힌 운명에 균열을 내다’에서는 주로 그 치열한 분투를, 4부 ‘시대의 틈에서 나를 꽃피우다’에서는 크고 작은 성취를 볼 수 있다. 성범죄 가해자를 직접 응징하고 자수한 김은애, 20세에 과부가 돼 늙고 가난한 시부모를 부양하던 중 ‘음란하다’는 헛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씨 부인, ‘열녀’가 당사자의 뜻이라기보다 다양한 시선에 의해 주문되고 제작됨을 보여주는 배천 조씨 등은 지금의 우리가 과연 그들로부터 얼마나 나아갔는지, 또는 얼마나 겹쳐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시대의 한계와 운명에 기꺼이 도전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가슴 벅찬 울림을 준다. 여자들의 외출이 엄격히 규제됐던 사회에서 ‘여행’에 승부를 건 두 여성, 남의유당과 김금원이 만들어낸 풍경들은 호쾌하고 통쾌하다. ‘밥이나 하고 옷이나 만들던’ 여자들의 일을 지식의 영역으로 체계화한 이빙허각, 당시 일반적이던 도피로서의 여성 불교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여성 불교의 힘을 보여준 이예순, 글과 시로 고통을 치유하고 존엄을 회복한 김호연재와 김삼의당 등은 강하고 명민한 여성들의 아름다운 성취를 보여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7-29

제임스 홀리스가 탐험한 인생의 지혜를 말하다

“지금 삶이 힘든 건 결국, 아직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나를 숙고하는 삶’(마인드빌딩)은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나는 이제 나와 이별하기로 했다’의 저자이자 저명한 융 심리학 전문가인 제임스 홀리스가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제임스 홀리스는 ‘나를 숙고하는 삶’을 통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가장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지혜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저자는 시인과 소설가, 철학자, 심리학자들의 문장에서 얻은 깨달음과 상담자들과의 다양한 면담 사례, 도스토옙스키, 융, 니체, 러셀 등 여러 예술·철학자들의 작품을 인용하며 그가 탐험한 인생의 지혜를 전한다.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 결국 자기 내면과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며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숙고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이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인간의 마음은 탐색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인간의 잘못을 탐색하는 마음, 실패를 탐색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잘못을 탐색할 때 비로소 인간의 마음이다.”(335쪽)/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1-07-29

‘일본 명단편선’ 10권 번역 완간

일본 근현대를 대표하는 명작가 42명의 명작 단편소설 127편을 번역한 ‘일본 명단편선’(지식을 만드는 지식)이 출간됐다. 우리나라 일본문학 연구자 63명이 번역해 펴낸 이번 명단편선은 127편의 작품을 인생, 재난, 근대, 동물, 광기, 남녀, 계절, 일상, 허무, 구원 등 10개의 주제로 구분해 각 권에 13편 정도씩 담았다.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해 단편소설의 귀재로 통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탐미주의의 대표 작가 다니자키 쥰이치로,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 등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의 작품 외에도, 일본 1천엔짜리 지폐의 초상인물인 여류작가 히구치 이치요, 신감각파의 대표작가 가지이 모토지로, ‘괴담’의 작가 고이즈미 야쿠모 등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숨은 보석 같은 명작들이 포함돼 있어 주목받고 있다.역자들은 대부분 일본근현대문학을 전공한 전문가들로서 대학원을 수료하고 국내 또는 일본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국내외 대학의 일어일문학 관련 학과 교수 및 강사로 재직중이다.공동 번역자인 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이정희 교수는 “이번 ‘일본 명단편선’전 10권 출간을 통해 한국에서 일본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형성될 것을 기대한다”며 “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일본인의 정서나 일본문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기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7-22

방랑자들의 굴곡진 삶, 슬픔과 좌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V.S. 나이폴의 ‘자유 국가에서’(민음사)가 최근 국내 출간됐다. 영국령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인도 이민자 3세로 태어난 나이폴은 식민지 상황 아래서 피지배자, 주변인이 겪는 혼란을 그린다. ‘오리엔탈리즘’의 에드워드 사이드 등은 나이폴이 식민지 역사와 제3세계의 현실을 외면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나이폴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담론보다는 피지배자가 경계인으로서 겪는 인간적인 갈등에 더 주목한다.이 작품은 부랑자, 집시, 외국인 노동자, 식민지 파견 행정관 등 식민지를 둘러싼 다양한 방랑자들의 굴곡진 삶을 제시하며 정체성을 둘러싼 이방인의 고뇌를 다룬다. 네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모두 모국을 떠나 삶의 뿌리와 공동체를 상실한 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나이폴은 식민지에서 태어나 본국의 이민자로 살았던 개인적 경험을 확장시켜 식민과 탈식민, 유럽과 비유럽의 대립 구도, 식민지 독립 후 문화적 혼돈기의 삶을 소재로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 유럽 중심의 식민주의가 어떻게 세계사를 왜곡하고 개인의 삶과 희망을 짓밟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7-22

단편영화처럼, 삶의 단면 녹여낸 51편의 작품

“벚꽃이 전쟁처럼 흩날리는 저녁/ 바그다드 도서관이 불에 탄다/ 길 위에 사람들은/ 낡은 책 안으로 사라져가고/ 죽음은,// 검은 주머니 가득/ 모래 폭풍을 싣는다/ 어둠을 달리던 바람의 마차들/ 달빛 아래 드러나는 폐허의 이빨들/ 희망도/ 절망도/ 깨진 꽃잎을 주워 담으며 중얼거린다//…봄은,/ 학살이다// 홀쭉해진 계절을 틈타/ 별빛도 마른 티그리스 강가/ 어린 소녀들의 물동이 안에서도/ 달은 자라고/ 포탄이 떨어진 자리마다/흰 꽃이 선다//”- 최미경 시 ‘4월’ 전문포항에서 북 콘서트 ‘언니네 책다방’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미경 시인이 등단 17년 만에 첫 시집 ‘저녁 7시에 울다’(달아실출판사)를 출간했다.최미경 시인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200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2004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으며, 장편 동화 ‘폭풍소녀 가출기’와 청소년 성장소설 ‘너의 눈을 내 심장과 바꿀 수 있기를’을 낸 바 있다. 최미경 시인. 최 시인은 첫 시집 ‘저녁 7시에 울다’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서로 닮아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태내에 지니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정서, 곧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미화시키는 현명함을 시로 표현했다. 이 책에 실린 ‘너는 You are’ ‘나는 I am’ ‘그 혹은 그녀 He or She’라는 3개의 주제로 한 총 51편의 작품들은 감정의 근원적 주제에 대한 탐색을 보여주고 있다.그의 작품은 탄탄한 구성력과 참신성이 돋보이는 문장력을 배경으로 기민한 통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의 고유성을 말하고 있다. 최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그리워하며 애증과 결별을 반복하는 과정이 삶”이라며 “그러한 단면들의 연속성을 편집하여 단편영화처럼 재구성해 시로 녹여내고자 했다”고 말한다.문학평론가 박성현 시인은 시집 ‘저녁 7시에 울다’에 대해 “이 시집은 죽음의 ‘구원’과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상상의 구체화”라며 “이에 대한 그의 생래적 감각을 만나볼 수 있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2021-07-22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 역사 대탐구

중국공산당이 지난 1일 창당 100년을 맞아 성대한 축하 행사를 열었다.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 올라 “중화민족이 지배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던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그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괴롭히면 강철 만리장성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아편전쟁 이후 굴욕의 한 세기를 보낸 중국을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시켰다는 자부의 선언이다. 1921년 당원 50명으로 출발한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은 2020년 GDP는 전년대비 2.1% 성장했다. 이런 성적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모든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과 대비되는 것이며,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경쟁에서도 꿋꿋이 버텨낼 정도로 강한 국가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현대와 중국’(나무발전소)은 전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연구교수였던 신봉수씨가 간결하고 명확한 방식으로 현재의 중국을 만들어낸 ‘과정’, 그리고 현재 중국 사회나 경제, 정치, 외교의 특징을 설명해준다.책은 서구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치제도, 경제제도, 국제관계 등이 중국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추적한다. 아편전쟁부터 시진핑 시대까지 기독교 문명과 유교 문명의 만남을 충돌·굴절·변용이라는 핵심어로 요약하며 냉전 후 사회주의 현대 중국을 탐색해나간다. /윤희정기자

2021-07-22

세 커플의 자발적 사랑… 현실 공감 로맨스

결혼을 기피하는 세태를 문학적으로 고찰한 ‘결혼하지 않는 도시’(마음서재)가 출간됐다.2007년 ‘슬롯’으로 제3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신경진의 네 번째 장편소설인 이 책은 로맨스 드라마이지만 단순 연애소설이 아닌 사회성에 방점을 두고 있는 미래지향형 소설에 가깝다. 스토리가 인물들의 러브라인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갖는 시대상과 변화의 추이를 끊임없이 관찰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세 커플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결혼제도의 맹점을 들여다본다. 밖에서 볼 때는 단란한 가정이지만 공허함과 결핍을 느끼는 쇼윈도 부부, 사각 관계라는 위험한 실험을 시도하는 남녀, 새롭고 특별한 방식의 결합을 추구하는 커플이 등장한다. 선택적 결합으로 푸른 눈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큐레이터. 이성과 감성을 두루 갖춘 중국계 2세 출신의 성적소수자, 폴리아모리(비독점적 자유연애)를 꿈꾸는 대학원생, 서로 다른 인종과 나이 차를 극복한 커플. 저마다 편견에 시달리고 있지만 행복을 찾는 지점은 동일하다. 바로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 어쩌면 그들은 법적인 효력보다 서로의 삶을 온전히 공유하는 순간에 만족하는 연인들인지도 모른다. 남녀 간 사랑과 결혼에는 정답이 없지만 두 사람의 만남이 반드시 결혼으로 귀착해야 하는지를 작가는 넌지시 묻는다. /윤희정기자

2021-07-15

평범한 시간 속에서 배우는 삶의 아름다움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괴테와 마주 앉는 시간’(문학동네)은 괴테 전문가 전영애(70) 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가 독일 문학 거장 괴테의 세계로 친절히 안내하는 책이다.전 교수는 독일 대문호 괴테(1749∼1832)의 시 770여 편을 15년에 걸쳐 완역하고 ‘파우스트’와 ‘데미안’ 등 주옥같은 괴테 전집을 번역해 괴테 전문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2015년 ‘시인의 집’을 통해 여러 시인들과 작가들을 향해 걷는 마음의 기록을 전한 바 있는 전 교수는 이번 책에서 다시 괴테로 돌아가 ‘파우스트’‘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서·동시집’등 거대한 작품들에 담긴 아름답고 시적인 격언들을 통해 고단한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눈물 젖은 빵’에 관한 이야기나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등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유명한 말들에는 괴테가 긴 생애 동안 끊임없이 꿈꾸고 사랑하며 체득한 빼어난 지혜가 담겨 있다. 전 교수가 이 모든 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그런 사람은 어떻게 자기를 키웠는지 알려주고 싶어서다. 그가 모델로 삼은 괴테는 살면서 위기나 시련을 겪으면 능동적인 사유와 연구, 창작으로 극복해낸 인물이다. 그는 괴테를 알게 된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한다.‘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는 괴테의 작품세계가 워낙 방대해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독자들을 위해 차분히 이야기하는 말투로, 우리가 괴테에게 배울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찾아내어,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희망에 대해서 말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7-15

한국에는 과학이 존재하는가?

신간 ‘과학의 자리’(김영사)는 과학의 사회적 의미와 과학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최초의 논의이자 현장 과학자의 과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치열한 고민이 담긴 역작이다.저자인 김우재 하얼빈공업대학교 교수는 한국 과학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과학자이자 패스파인더로 꼽힌다. 연구실이나 실험실에서 연구에만 매진하는 것이 과학자의 미덕이라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김우재 교수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다. 그는 인문학자들조차 압도하는 철학적, 역사적 지식으로 중무장한 채 다양한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라는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는 낯선 과학자다.김 교수는 이 책에서 “과학기술 시대, 왜 한국에는 과학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고, 우주로 인공위성을 쏘는 나라에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무슨 의미일까? 오늘날 한국 사회는 과학기술과 과학지식으로 가득한 공간이지만 ‘과학적 삶의 양식’과 ‘과학문화’가 정착되지 못했고, 그 결과 역설적으로 과학 부재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과학을 도구가 아닌 사유의 방식으로,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현재의 과학 부재를 극복하고 ‘과학적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김우재 교수가 말하는 ‘과학적 삶의 양식’이 존재하는 사회는 과학자가 곧 철학자이기도 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과학자가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인정되는 공간이다.김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과학은 절대적 권위를 지니지만 이는 과학지식이 가지는 권위일 뿐, 과학 그 자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과학’은 문화가 아니라 지식으로 통용되고, ‘과학자’는 지식인이 아니라 기술인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날 선 목소리로 과학을 산업발전과 권력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정치권력과 과학의 외피를 빌려 과학적 권위만을 전유하는 ‘인문 좌파’ 양쪽 모두에게 직격탄을 날린다.서구 사상사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상호보완과 경쟁을 통해 진보해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극단적 이분법이 통용됐고, 인문학자가 모든 사회적 논의를 독점한다. 그 결과, 왜곡된 지형도 속에서 한국 학계 특유의 비판 부재와 외국 이론에 대한 종속성, 인문학자의 반과학적 태도라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김 교수는 과학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증명하기 위해 근대과학-계몽주의-낭만주의-논리실증주의로 이어지는 서구 지성사의 상보적 계보를 치밀하게 탐구한다. 계몽주의로 뜨거웠던 17세기로 돌아가 볼테르, 칸트, 마르크스 등을 예로 들며 각자 자신의 과학의 성취를 철학적으로 변환하고자 하거나 자신의 사상을 ‘과학’으로 만들고자 했음을 설명한다. 당시 철학과 과학은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성과를 흡수하면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과학’, ‘삶으로서의 과학’이 공허한 주장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이를 실행해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과학기술정책과 거버넌스 구조를 제안한다. 한국의 상황과 제도적 맥락에 맞는 새로운 과학기술 체제에서부터 이를 이끌 리더십의 요건과 과학기술계 인사 검증 매뉴얼까지 구체적이고 상세한 대안을 보여준다. /윤희정기자

2021-07-15

박상륭 작품 집대성… 타계 4주기 맞아 전집 출간

박상륭(1940∼2017) 소설가 타계 4주기를 맞아 그의 작품을 집대성한 전집(국수출판사)이 출간됐다. 국내 관념 소설의 대명사이자, 죽음을 통한 구원이란 주제를 철학적·종교적인 사유로 풀어내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박 상륭의 작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소설뿐 아니라 산문, 서문, 후기 등 박상륭이 공개적으로 쓴 모든 글을 포함했다.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2만3천875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국판 4권에 나눠 담았다. 현재 출간되는 평균적인 소설책으로 치면 20권 분량에 달한다. 책은 세트로만 판매한다. 중단편 소설, 장편소설-산문, 칠조어론, 주석과 바깥 글(서문/후기)로 구성됐다. 쪽수는 권마다 따로 매기지 않고 연번으로 1쪽에서 시작해 4천572쪽에서 끝난다. 1940년 전라북도 장수에서 태어난 박상륭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서 김동리(1913∼1995) 문하에서 수학했다. 1963년 ‘아겔다마’가 사상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1969년 간호사인 부인을 따라 1969년 캐나다로 이주해 작품 활동에 천착했다. 2017년 7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향년 77세로 별세했다. 대표작은 장편 ‘죽음의 한 연구’이다. 종교, 신화, 설화, 연금술 등 다양한 관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서른세 살의 화자가 도를 구하는 내용이다.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한 관념 소설로 유명하다. /윤희정기자

2021-07-15

‘잃어버린시간을 찾아서’… 성찰과 인상의 기록

불문학자인 정명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20세기 최고 역작으로 불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180개의 성찰과 인상의 기록인 ‘프루스트를 읽다’(현대문학)를 출간했다. 90대 노학자인 정 교수는 20세기 최고 역작으로 불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독하지 않았다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해 2016년 초부터 무려 5년 넘게 프루스트가 남긴 방대한 저작을 꼼꼼히 살펴 180개의 단상으로 남기는 투혼을 보였다.이 책은 작중 화자 마르셀과 작가 마르셀을 때로는 분리하고 때로는 동일시하며, 소설 속에 드러난 프루스트의 예술관과 사생관, 인간관과 세계관 및 종교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프루스트의 예리한 관찰력과 깊은 통찰력, 그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섬세한 묘사, 해박한 지식, 감성과 지성의 관계성 등에 대한 분석은 물론 프루스트의 한계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아울러 프루스트와 여러 작가들, 특히 도스토옙스키, 에밀 졸라, 보들레르, 앙드레 말로 등과의 비교분석, 프루스트와 저자 본인의 문학적 지향에 있어서의 차이 등도 만나볼 수 있다.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한 소년이 유년기를 거쳐 사랑을 알게 되고, 예술을 향유하며 한 시대를 살아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 내면과 삶의 총체적 모습을 드러내는, 전대미문의 기념비적 대하소설이라 할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7-08

감정이 풍부해지면 판단이 정확해진다?

“너의 삶을 놓치지 말고 경험하라. 매 순간을 따스하고 친근한 감정으로 느끼고 기억하라. 그것이 네가 살아서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다.”‘감정 연구’(글항아리)는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 권택영이 인간 감정의 의미를 규명하고자 한 기념비적 시도다. 오랜 세월 문학과 심리학, 현상학을 통해 의식과 감정을 연구해온 그는 문학과 정신분석학, 뇌과학에 기반해 ‘따뜻함’과 ‘친근함’의 힘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이 책은 사랑, 기억(회상), 감정, 느낌을 핵심적으로 다루며 문학, 정신분석학, 뇌과학 연구를 섭렵한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감정을 저장하는 편도체, 기억을 입력하고 출력하는 해마를 중심으로 점점 회상에 잠기게 된다.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은 70퍼센트의 부정적 감흥과 30퍼센트의 긍정적 감흥으로 나뉜다고 한다. 즉 인간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소외, 분노, 절망 등 부정적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데, 저자는 ‘인지’와 ‘감정’이 끊임없이 협조하도록 독려함으로써 ‘따스함’과 ‘친근함’으로 우리 삶의 서사를 써나가자고 주장한다.노년에 이르면 지나온 기억이 온통 삶을 지배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와 타인의 뇌를 궁금해하고, 자의식도 더 파고들게 된다. 저자는 삶을 가장 충실하고도 기름지게 만들어줄 유일한 감정으로 ‘사랑’을 꼽으면서 이것이 어떻게 미학적 감상의 대상이 되는지 추적한다. 이 책은 삶의 필요들을 충족시키는 데 직선 코스로 가지 말고 에둘러 갈 것을 청하면서, 문학작품을 통해 우회적인 답변들을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동물이면서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게 진화된 기억력은 오로지 인지 기능이라기보다 ‘감정’에 의해 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게 저자의 강조점이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내가 자전거에서 떨어졌을 때 다정하게 내 손을 잡아주었던 그 사람, 아플 때마다 배려해주던 다정한 마음, 눈 오는 날 들른 카페에서 그가 했던 어떤 말…. 단순히 고마웠던 일이라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란 이유로 반복해서 떠오른다. 감정과 기억의 아이러니다.이런 기억은 상처가 깊어지는 것이라 때로 잔인하지만, 출구는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퇴색되고 변형이 일어나며 결국 경험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만이 가진 삽화적 혹은 서사적 기억이다. 감정이 사적일수록,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일수록 깊이 각인되고 시간에 의해 변형된다.저자는 베르그송, 윌리엄 제임스, 프로이트 등을 통해 이 기억의 문제에 천착해 들어가며, 특히 제임스에 주목한다. 제임스는 의식이 나와 타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른다고 말했다. 타자가 내 기억과 생각의 일부인 것은 그 힘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이를 인간에게만 있는 ‘이차적 기억’(삽화적 기억)이라 부른다. 이차적 기억은 내 사적 저장소에 저장됨으로써 내 감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중 ‘따스함’과 ‘친근감’이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걸 제임스는 강조한다.여기서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기억은 마음의 재산인 까닭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끼는 사람은 결국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는 혹은 세속적으로는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괴로운 날들이 지나면 두고두고 꺼내 보는 풍성한 일기장이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저자는 조지프 르두, 안토니오 다마지오 등의 연구를 좇으면서 이 책의 주제인 ‘감정’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핵심적인 부분임을 밝혀나간다.“사랑은 자의식이고 기억하는 모든 것이다. 감정을 저장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입력하고 출력하는 해마는 서로 연결되어 붙어 있기 때문에 사랑과 기억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스하고 친밀한 감정으로 경험한 일은 오래도록 자세히 떠오른다. 감정에 깊은 상처를 남긴 말과 폭력은 트라우마가 되어 강박적,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습관과 회상을 빼면 우리는 하등 동물조차 될 수 없을 것이요 감각과 느낌을 제거하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_14쪽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7-08

공기재난시대, 호흡공동체 위한 과학·정치 제안

미세먼지, 코로나19, 폭염. 이 세가지 공기재난이 한국사회를 숨막히게 하고 있다. 당연한 삶의 배경이던 공기는 공들여 관리해야 할 삶의 조건이 됐다. ‘호흡공동체: 미세먼지, 코로나19, 폭염에 응답하는 과학과 정치’(창비)는 한국사회를 ‘호흡공동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며 이 공동체의 삶을 조율하고 회복하기 위한 공공의 과학과 정치를 제안한다.전치형 카이스트 교수를 비롯한 김성은·김희원·강미량 등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소속의 신진 연구자들인 저자들은 방대한 데이터와 자료를 바탕으로 공기재난에 맞서는 한국사회를 과학의 눈으로 해설한다.저자들은 중층의 공기재난에 휩싸인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 기업과 소비자가 추구하는 각자도생의 길 대신 과학과 정치가 협력해 공동체의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피난의 공동체’를 만들고 ‘피난민 되기’와 ‘피난민 맞이하기’를 연습하자고 말한다.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이 책은 시민의 공기연대를 통해 공기복지, 공기정의, 공기인권을 실현해야 할 당위를 설파한다. 공공과학의 참신한 스토리텔링이자, 들숨 날숨의 정치를 역설하는 예리한 사회비평서”라고 평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7-08

티타임… 세계 여러 나라의 차 문화는 어떨까?

‘차의 역사는 중국에 있다’는 말이 있다. 중국은 제일 먼저 차나무를 발견하고 차의 원산지로 찻잎을 사용한 나라다. ‘신농본초경’에 의하면 기원전 2천700년경 “신농이 백 가지의 초목을 맛보다가 72가지의 독에 중독되었는데 차를 먹고 해독하였다”고 전한다. 가장 먼저 차를 약용으로 이용했고 어린 잎은 소채로 쓰며 식용으로 발전되면서 점차 음용으로 정착했다고 할 수 있다.이처럼 차는 건강음료 또는 기호음료로 약용에서 출발하지만 기호음료로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생활 속 의례로서는 이상향의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형이상학 구도의 한 방편으로서 우리생활을 유지했다.‘티타임’(따비비)은 영국의 음식 역사학자이자 음식 전문 저술가인 헬렌 세이버리가 세계 여러 나라의 차 문화를 비교한 책이다.영국의 티타임으로 시작해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을 거쳐 인도와 남아시아, 한국 등의 차와 다구, 티 푸드와 다도 문화를 보여준다.저자는 티타임 혹은 ‘티’라고 부르는 것은 차를 마시는 시간뿐만 아니라 함께 먹는 음식, 차를 보관하고 따르는 도구들, 함께 하는 사람들과 결합한, 하나의 문화라고 말한다. 문화 현상은 시대와 나라마다 다른데 서구 각국도 다 다르며, 차의 발상지 중국과 이웃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차 문화도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고 전한다.저자의 안내에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차를 마시는 문화가 세계 곳곳의 일상 속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또한 차를 준비하는 방식이나 티타임과 관련된 절차, 관습 그리고 차를 마실 때 곁들이는 음식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티타임을 더욱 우아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다구들, 다양한 티타임의 모습을 담고 있는 회화, 각 국의 대표적인 티룸들의 사진까지, 수많은 도판들이 눈을 호강하게 한다. 식사 대용으로 혹은 간식으로 차에 결들일 수 있는 다양한 티푸드의 레시피도 소개돼 있어 티타임에 관한 세계여행을 끝내고 일상에서 차를 즐겨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