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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옛 선현들에게 배우는 지혜로운 자녀 교육법

지난 6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심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글을 쓰고 싶다”고 고백한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강사 김재욱 씨가 약속을 지키듯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옛 선현들의 지혜를 어린이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겠다’는 취지에서 만든 ‘아이를 크게 키운 고전 한마디’(한솔수북).가장 먼저 독자들의 눈길을 잡아채는 건 책의 헤드 카피다. “우리 아이만큼은 잘 자라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욕심으로 진정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진 않은가?”도발적인 질문에 이어지는 다음 대목도 신선하다. “반듯하고 똑똑하고, 순종하는 아이를 바라기 전에 담대하고 현명하고 품 넓은 부모가 되어 보자.”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며, 어른은 아이가 배우는 또 다른 교과서다.김재욱 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마주치는 선택의 순간이나 갈등의 순간에 고전에서 얻은 가르침을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삼으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김씨는 “때로는 실수도 하고 아이들과 부딪히기도 하지만 고전의 가르침은 결국 틀리지 않았음을 양육의 과정에서 경험했다”고 말한다.예를 들어 아이의 총명함과 상관없이 더 많이, 더 빨리 공부를 가르치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던 경험담에서는 이덕무의 이야기와 글귀를 소개하며 아이의 상태와 수준을 감안해 가르쳐야 한다고 코치한다.또, 아이의 공부에 부모가 얼마나 개입하는 것이 옳은가로 부부가 싸운 체험을 들려주면서는 ‘부모 자식 사이에는 책선을 하지 않는다’고 한 맹자의 글을 인용한다.박세당의 편지와 일화를 보여주면서는 남의 집 부모처럼 자식한테 정성을 다하지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하고 있다.‘천천히 걸어야 멀리 간다’ ‘자식의 삶은 자식의 것’ ‘뭐가 되려고 애쓰지 말게’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일’ ‘혼자 힘으로 사는 사람은 없다’는 등의 책 속 소제목은 저자가 부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압축하고 보여준다.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닌 인성과 사회성을 갖춘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하기까지 아이에겐 시간과 삶의 조언이 필요하다. ‘아이를 크게 키운 고전 한마디’는 이 중 삶의 조언으로 역할 할 수 있을 듯하다.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드물게도 네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저자는 ‘한문학자’답게 고전 속에서 인생의 답을 찾으라고 말한다. 옛 사람이 남긴 새겨들을 말은 2020년 오늘날에도 분명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1972년 경북 봉화군에서 태어난 김재욱 씨는 동국대와 고려대에서 공부했고, 박사 학위 취득 후 여러 대학에서 한문과 글쓰기를 강의해왔다. 삼국지 속 등장인물과 현대 한국의 인물을 비교해서 쓴 ‘삼국지인물전’, 인문교양서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9-09

기득권이 된 진보세력… 무너진 정의에 대하여

“‘무너진 정의, 사라진 공정, 물구나무선 민주주의!’”(천년의상상 출판사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서평 중)‘조국 백서’로 불리는 책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에 대항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천년의상상)가 출간됐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강양구 미디어 전문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 권경애 법무법인 해미르 변호사,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등 5명이 공동으로 집필했다. 이 책은 앞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펴낸 ‘검찰개혁과 촛불시민’ 일명 ‘조국 백서’와 대비된다는 의미에서 출간 전부터 ‘조국 흑서(黑書)’로 불렸다.회계사인 김 대표는 ‘조국 사태’에 대한 참여연대의 침묵에 분노해 이 단체를 탈퇴했고 권 변호사 역시 이에 관한 민변의 미온적인 태도에 실망해 정권 비판에 나섰다고 한다.황우석 박사의 연구 부정 의혹을 보도했던 강 기자와 기생충학자이면서 사회 현안에 관해 목소리를 내온 서 교수, 현 정권과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에 맞서는 SNS 활동을 활발히 펼쳐온 진 전 교수도 ‘조국 사태’에 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책의 집필에 참여하게 됐다.앞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펴낸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일명 ‘조국 백서’·오마이북)은 출간 직후인 8월 둘째 주 교보문고의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20위에 진입했고 그다음 주에는 9위로 올라섰다.‘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전문 분야 별로 필진 가운데 한 명이 사회를 보고 두 명이 대담하는 형식으로 엮어졌다. 전체 7개 장 가운데 1~3장은 미디어와 지식인 그리고 팬덤 정치를 다룬다.저자들은 “2019년 8월의 ‘조국 사태’로 인해 우리는 미래사회의 비전에 대한 토론과 합의는커녕 ‘청와대냐 검찰이냐’는 선택을 강요하고 정의와 상식의 기준 자체를 바꿔버리는 언어도단과 ‘비상식의 상식화’를 체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4~5장은 금융자본과 사모펀드 문제를 분석한다. 권경애 변호사, 김경율 회계사는 한국 사회의 금융시장이라는 커다란 그림 그리기부터 시작해 ‘조국 일가 사모펀드 에피소드’까지 2020년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문제를 넓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김 대표는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이 익명으로 하는 불투명한 투자활동이나 경영에 참여한 회사의 자금 횡령을 돕는 가림막 역할을 한 것이 사실상 사모펀드 제도였다”고 지적했고 권 변호사는 “공직자윤리법은 다양한 자본시장의 등장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낡은 규정들이 많고 특히 사모펀드의 규제는 전무한 상태”라고 비판했다.6~7장에서는 5명의 필자가 모두 참여해 ‘586 정치 엘리트와 무너진 정의와 공정의 회복’을 주제로 토론했다. 저자들은 “‘진보적 시민단체’로 불리던 곳에서 이전에 ‘우익 관변단체’가 하던 일을 하고 있다”면서 “진보세력은 거의 10년 동안 집권했고 문재인 정부도 벌써 집권 3년을 넘어가면서 이들이 새로운 기득권층으로 사회에 뿌리내렸다”고 진단했다.이어 “원한 감정과 피해 의식 속에서 기득권 유지, 정권 유지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이제는 꿈이 사라져 버렸다. 586 정치엘리트가 득세하는 현실 정치 속에서, 정의가 무너지고 공정이 사라지고 평등이 망가지고 있는 모습들과 대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8-27

전 생애 걸쳐 참된 스포츠 정신 실천한 故 손기정 선생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고(故) 손기정(1912~2002) 선생의 일생과 스포츠 철학을 기록한 데라시마 젠이치(寺島善一) 일본 메이지 대학 명예교수의 ‘손기정 평전’(사회평론사)이 국내 번역 출간됐다. 선생의 모교인 메이지 대학교수로서 여러 차례 선생과 만난 적이 있는 데라시마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서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문헌과 언론 보도, 선생의 자서전을 비롯한 관계 인물들의 기록과 지인들의 증언을 종합해 참된 올림픽 정신을 구현한 선생의 생애를 정리했다.그는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과 일본 한류 붐 등을 계기로 조성된 한국과 일본의 우호적 관계가 최근 양국의 정치적 문제로 붕괴해 역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보고 집필을 서두르게 됐다고 한다.책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식민지 백성의 서러움을 겪으면서도 운동에 전념해 올림픽에서 우승했으나 일제의 탄압을 받았던 청년기를 거쳐 후진 양성과 스포츠를 통한 국제 우호 증진에 앞장선 광복 이후에 이르기까지 생애를 시대순으로 정리한다.‘손기정 평전’은 데라시마 명예교수의 ‘스포츠는 국경을 넘어 마음을 이어준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광복절인 15일부터 일반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8-27

한적한 어촌 마을이던 포항의 성장과정 조명

포항지역의 일제강점기 모습을 기록한 책이 출판돼 관심을 끌고 있다.김진홍(58·사진)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이 펴낸 ‘일제의 특별한 식민지 포항-포항지(浦項誌) 주해와 그 주변의 이야기들’(글항아리)에는 구한말 당시 동부 해안가의 한적한 어촌 마을이던 포항동(浦項洞)이 면(面)으로, 또 읍(邑)으로 성장한 과정이 나와 있다.제1부는 ‘포항지’를 주석과 함께 번역한 주해서로 구성했고, 제2부는 ‘포항지’ 발간 전후의 포항 관련 사료들과 강점기 말에 이루어진 창씨개명, 일본인의 귀환, 포항시의 시승격까지의 자료를 모아 구성했다. 이 책은 저자가 몸담고 있는 포항지역학연구회 연구총서 4호격이다.이 책의 제1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인 1935년에 간행된 ‘포항지(浦項誌)’다. 당시 식민정책의 최전선에서 조선총독부 정책을 대변하는 두 명의 일본인 기자가 쓴 것으로 20세기 초반 포항으로 건너와 깡촌이던 그곳을 일약 동해안의 중심 항구도시로 키워낸 일을 자랑스럽게 기록으로 남겼다.“조선 시대에 들어 태종왕 때 연일에 진(鎭)을 설치하여 성을 짓고 병마의 구비도 완비했으나, 이것은 그다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아니다”라고 쓰고 있는데 편역자 김진홍은 주석을 달아 “특기할 만한 사실이 아니라고 폄하하고 있으나, 이것이야말로 포항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록이다. 이곳에 설치한 연일진은 말하자면 해병사단 안에 배치한 육군이다. 진은 군사적 요충지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에 이미 영일만 또는 연일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3·1운동을 “만세 소란”이라고 반복적으로 지칭한 것에 대해서도 “3·1 만세운동을 ‘만세 소란’이라고 표현한 데서 일본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영일군수(난바 데루지), 포항읍장(시모무라 시게히데) 둘 다 일본인이었다”라고 지적했다.이 책의 제2부 또다른 포항의 발자취는 ‘포항지’ 발간 전후 포항을 다뤘던 사료들을 모아 구성했다. ‘포항지’ 발간을 전후한 자료와 광복 직전의 창씨개명과 징용, 광복 직후 일본인의 철수와 6·25전쟁 직전의 혼란기 포항의 모습까지 담았다.△일제 강점기 초기에 소개된 포항 △조선총독부 자료에 소개된 포항 △특집기사에 소개된 구룡포 △특집기사에 소개된 포항 △포항읍 발전 좌담회에 소개된 포항의 당시 현안 △1939년부터 광복 이후 포항의 이모저모 등 알찬 내용들이 담겨 있다.게다가 2부에서는 일본 총독부가 창씨개명과 징용 등을 강제했다는 증거도 찾아내 싣고 있다. 특히 일일이 본문에서 소개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연표 작성으로 보완했다. 이 연표만 보더라도 구한말 이후 포항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일제가 조선인의 평균 체격을 측정하기 위해 남녀별로 모아놓고 찍은 사진, 1920년대 포항 나카초(仲町) 설경, 포항의 발전상과 변화를 한 눈에 보여주는 지도, 포항 구도심지의 초기 형성을 알 수 있는 지도, 1931년 2월 포항역에서 청어를 출하하는 광경, 1910년대 헌병출장소로 사용된 영일현청 사진 등 희귀한 사진 자료도 많이 담고 있다.저자 김진홍씨는 대구 출신으로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에서 ‘남북통일 시 재정 통합 방안’을 연구했다. 한국은행 조사국에서 아시아 지역 국제경제를 담당하다 2009년 포항으로 내려왔으며 현재는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그동안 ‘영일만항의 활성화 방안’ ‘포항 철강클러스터의 구조적 문제점 진단’‘경북 동해안 지역 글로벌 발전 방향’ 등 많은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포항의 근대 도시 발전, 역사, 문화, 산업 등을 연구하는 포항지역학연구회 회원으로 ‘포항지역학연구총서3) 포항 6·25’(공저)를 펴내기도 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8-20

바이든 美 대선 후보의 극적인 인생과 정치 역정

신간 ‘바이든과 오바마’(메디치미디어)는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제59대 대통령 선거 바이든(78) 민주당 후보의 극적인 인생과 정치 역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바이든 후보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제47대 부통령을 지냈다. 같은 기간 제44대 대통령을 역임한 버락 오바마(59)의 정치적 동반자였다.책은 대통령이었던 오바마와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의 ‘애정에 가까운’ 특별한 관계를 찬찬히 소개한다. 더불어 향후 펼쳐질 미국의 정치 변화도 예측하게 한다.두 차례의 임기 동안 오바마와 바이든은 완벽한 정치적 파트너로서 기쁨과 고통을 함께했다. 특히 바이든은 외교와 입법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오바마의 수석 고문으로 전례 없는 역할을 수행하며 부통령직의 모범이 됐다.책의 저자 스티븐 리빙스턴은 두 정치인의 깊은 애정과 신뢰가 미국에서 보기 힘든 ‘진실한 정치 브로맨스(남자들 사이의 유대와 우정)’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의 무례한 정치 행태에 질린 미국의 지식인과 대중에게는 오바마와 바이든이 진한 ‘그리움’이 되고 있다고 덧붙인다.책에서는 바이든의 극적 인생 스토리를 비롯해 그의 정치 성향과 철학을 살필 수 있다. 이와 함께 상원의원에서 시작해 부통령에 오른 정치 역정을 상세히 얘기한다. 가족의 죽음을 거푸 겪은 바이든의 파란만장한 삶은 물론 미국 내 정치·경제 문제, 인종 문제, 외교 정책 등도 들여다보게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8-20

“혼자 조용히 읽고 생각하고 쓰고 요약하라”

“손을 움직여 읽으면(초서 독서법) 뇌가 깨어나고, 의식을 집중해 읽으면(의식 독서법) 뇌가 편안해진다. 바로 그때 독서의 기적이 일어난다”조선 시대 또 한 명의 위대한 학자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두 손을 모으고 똑바로 앉아 공경히 책을 대해야 한다. 마음을 통일하고 뜻을 모아 골똘히 생각하고 깊이 두루 살펴 뜻을 철저히 이해하되 모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또다른 조선 선비 담헌 홍대용도 ‘여매헌서(與梅軒書)’에서 “정신을 한데 모아 책에 쏟아붓는다. 이렇게 하기를 계속하면 의미가 나날이 새롭고 절로 무궁한 온축(蘊蓄)이 있게 된다”고 말했다.이 모두 의식 독서법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싱긋)의 저자 김병완 작가는 한국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독서법은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하지만 일제 치하에서 말살돼버려 후손들에게 이어지지 못한) 독서법이라고 말한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서양 특유의 독서법(예를 들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방법)보다는 혼자 조용히 집중해 읽고 생각하고 쓰고 요약하는 초의식 독서법이 우리에게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독서를 하는 이유는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의식의 확장과 강화, 그리고 생각하는 법의 획득에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속독과 발췌독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책의 주장과 씨름해 온전히 그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독서법의 힘을 웅변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독서를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게 구체적인 독서 방법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3년 동안 도서관에 거의 칩거하다시피 하며 책과 씨름해왔던 저자는 자신이 해온 독서법이 실제로는 이미 조선 시대 우리 선조들이 독서법으로 활용해온 것임을 우연히 알게 됐다. 그 독서법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초서 독서법과 의식 독서법(이 둘을 합쳐 초의식 독서법)이다. 초서 독서법은 눈만이 아닌 손까지 사용해 책의 중요 부분을 가려내고 베껴 쓰면서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이고, 의식 독서법은 온 정신과 의식을 다해 온전히 책에 몰입해서 읽는 것을 말한다.이 초의식 독서법을 몸과 마음에 온전히 체득하게 되면 책이 전달하는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의 습득 차원에서 벗어나 해당 책의 저자와 책 속에서 만나게 되고, 이야기하고 논쟁하고 씨름하게 되며, 그 결과 오롯이 자기 자신만의 의식이 만들어져 새로운 인생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럴 때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내게 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저자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현대화한 초의식 독서법 실천방안을 제시한다. ‘BTMS(Book, Think, Mind, Summary. 읽고 생각하고 의식을 확장하고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독서법’으로 명명한 이 실천법은 독서노트 쓰기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또한 의식 독서법을 위한 방법론으로 서구에서 열풍을 일으킨 ‘포토 리딩(Photo Reading)’과 ‘그뤼닝 학습법’에서 말하는 집중력 강화법(귤 기법, 골프공 연습법 등)을 제안하고 있다.저자는 속도의 노예가 되고 실용성만 강조되는, 그리고 글자 하나하나에만 집중하는 지금의 독서법으로는 절대로 인생을 바꿀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한 일제 35년 동안 후대로의 전수가 끊어져버린 선조들의 위대한 독서법을 다시 기억하고 복원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생각’이 지배하는 이 시대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김병완 작가는 2013년 ‘48분 기적의 독서법’, 2014년 ‘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 2017년 ‘퀀텀독서법’등의 저서를 차례로 출간하며 사람들이 독서에 대해 관심을 유도한 바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8-13

꿈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시인이자 산문가인 민병일이 ‘모든 세대를 위해’ 쓴 동화 ‘바오밥나무와 방랑자’(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그의 동화는 시적 영감으로 가득한 이야기와 반짝이는 사유의 문장들을 통해 꿈과 상상력을 잃어버린 현대인을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따뜻한 위로의 시선으로 그려내며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그러나 잊히거나 상실한 것들, 그리하여 보이는 것 뒤에 숨어 있는 더 아름다운 것들을 다시금 불러낸다.이 책에서 인격화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바오밥나무는 그 크기가 높이 20미터, 둘레 40미터에 이르며 하늘을 떠받치듯 우뚝 솟아 5천 년을 사는 신비한 나무로,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단하고 상처 입은 방랑자들, 깊은 절망에 빠져 고독하게 길 헤매는 방랑자들에게 수천 년을 살아오며 터득한 지혜를 건넴으로써 위로와 더불어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북돋는다.또한 이 책에는 바오밥나무 외에도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진 여러 방랑자들이 등장한다. ‘유리병 속 꿈을 파는 방랑자’ ‘그림자를 찍는 사진사’ ‘순간 수집가’ 등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들뿐만 아니라 ‘물구나무딱정벌레’ ‘양귀비꽃’ ‘무당벌레’ ‘달팽이’ 등 그 대상도 동식물을 가리지 않고 폭넓다.저자 민병일은 자유로운 글쓰기와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독자들을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이끌지만, 그의 동화가 무엇보다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 속에 고단한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름다운 은유로서 녹아 있기 때문이다.3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24편의 글과 32점의 그림이 수록돼 있다. 독일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한 저자는 동화에 그림을 직접 그려 넣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8-13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전하는 긴급한 제언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현대철학자이자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슬라보예 지젝(71)은 ‘팬데믹 패닉’(북하우스)을 통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세계에 긴급한 제언을 전한다. 그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의 의미와 대처 방안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정리하면서 “감염병 덕분에 우리가 더 현명해지리라는 주장은 의심스럽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바이러스가 우리 삶의 기반들 자체를 흔들어놓을 것이며, 엄청난 고통은 물론 대공황보다 더 극심한 경제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그러면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길은 없고 새로운 일상이 우리 삶의 잔해들로부터 만들어지거나, 이미 조짐이 선명하게 보이는 새로운 야만에 접어들게 될 터”라고 비관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수년에 걸쳐 경고했음에도 우리를 아무 대비 없이 파국에 빠지게 만든 우리 시스템은 뭐가 잘못된 것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병철의 ‘근시안적’ 사태 진단과 조르조 아감벤의 국가권력에 대한 ‘반사적’ 비판 등 다른 철학자들의 발언을 검토한 뒤 “지금 이 순간 어느 정도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반사적으로 ‘감시’와 ‘통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또한 그는 방역과 경제를 양립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방역과 대립하는 것은 빈부 격차와 노동 착취로 연명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경제일 뿐이며 이 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기회비용만 따져 한시적 위기를 넘기려는 조치는 불안정 노동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명을 담보로 건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이다.저자는 해결책으로 ‘공산주의’를 들고나온다.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현실에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구체적 정치체제로서 공산주의가 아니라 ‘누구나 능력에 따라, 누구나 필요에 따라’라는 마르크스의 슬로건에 담긴 정신을 구현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마스크, 진단 키트, 산소호흡기 같은 의료장비부터 곡물에 이르기까지 생명과 생존에 관련된 물품의 생산과 공급을 시장 메커니즘에 의탁하지 않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조절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윤희정기자

2020-08-06

가치 창조와 가치 착취의 메커니즘으로 본 경제의 속살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인 영국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 교수의 ‘가치의 모든 것’(민음사)이 출간됐다.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전작 ‘기업가형 국가’에서 성장을 주도하는 국가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 다룬 바 있다. ‘가치의 모든 것’에서도 정부와 공공 영역의 ‘가치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기업을 보조하는 수동적인 역할이 아니라 가치 창조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저자는 중상주의, 중농주의, 고전경제학과 한계효용학파 등 가치 이론의 역사를 살펴보고 국부 측정 이론의 대두, 은행과 금융산업의 발전 및 그 과정에서 초래된 여러 문제를 분석한다.그리고 현대의 금융 위기와 경제 위기의 핵심에 가치보다 가격에 집중하는 구조적 문제가 깔려 있다고 진단한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이 단기적으로 주당 순이익을 높이고 경영자와 주주에게 가는 몫을 키우지만, 장기적인 투자를 막고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재무성과에 치중하는 기업 행태는 무익하고 비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실리콘 밸리로 대표되는 기업의 혁신은 그동안 자본주의의 새로운 동력으로 추앙받았으나 일부 기업의 막대한 이윤과 시장 점유율은 그들이 창조하는 가치에 비해 과도한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또한 정부가 지출만 하는 주체가 아니라 투자의 주체이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리스크만 사회화할 것이 아니라 보상도 사회화할 필요가 있음이 분명해진다고 강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7-30

새로운 세상을 꿈꾼 민초들의 혁명사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교유서가·전3권)는 지난 3월 타계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유작이자 50여 년 연구를 집대성한 필생의 역작으로 꼽힌다. 책은 19세기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계기부터 21세기 동학농민혁명이 재평가 받기까지 120여 년이 넘는 질곡의 역사를 기록했다.역사 대중화를 위해 힘썼던 이 선생은 평생에 걸쳐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매진했다. 그 혁명이 한국 근대사를 밝히는 상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19세기를 민란의 시대라 부를 만큼 끊임없이 이어진 민중 봉기는 인간 평등을 추구하고 자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초들의 저항운동이었다. 이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이후 3·1혁명,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고 근래의 촛불혁명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이에 선생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이 혁명의 민족사적 의의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19세기 말 조선을 뜨겁게 달궜던 농민들의 처절한 저항적 민족주의 정신을 전한다. 그러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재조명한다.선생은 단순히 사료를 바탕으로 동학농민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현장 답사는 물론, 동학농민군 후손들과 현지인들의 증언을 수집해 철저히 고증했다. 그뿐 아니라 조선 관료들의 기록과 일본의 기록물까지 샅샅이 훑으며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총정리했다. 또한 민초들의 함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200여 장의 자료 사진과 현장 사진도 곁들여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을 한눈에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선생은 동학농민혁명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혁명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역사의 재해석’ 과정까지 담았다.이 책은 총 3권으로 구성됐다. 온갖 적폐와 삼정의 문란으로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조선시대 경제의 근간이었던 농민층까지 저항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과정과 그와 관련된 사건을 살펴봤다. 제1권에는 민란이 일어난 19세기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함께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의 전파, 농민과의 결합과정을 담았다. 2권에는 일본이 농민군의 봉기를 빌미로 조선에 진출해 개화 정권을 수립한 뒤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농민군 섬멸작전에 나선 과정을 실었다. 마지막 3권에서는 전봉준 등 혁명 지도자들이 일본 영사경찰과 권설재판소의 문초를 받고 처형된 과정을 서술하고 그들의 죽음과 항일의병이나 3·1혁명 가담과정과 더불어 1980년대부터 활발히 진행된 역사적 재평가 작업 등을 두루 전한다. 그리고 동학농민군이 직접 작성해 발표하고 전달한 관련 문서들을 모아 말미에 부록으로 정리했다.꾸준하고 왕성한 연구와 집필 활동으로 역사 대중화를 이끈 원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1936년 대구에서 주역 대가인 야산 이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비록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철저한 고증 작업을 바탕으로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역사를 서술해 역사학의 높은 장벽을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계간지 ‘역사비평’을 펴내는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도 관여했다. 제2대 연구소장을 지냈고,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허균의 생각’, ‘한국사 이야기’(전 22권), ‘역사 속의 한국 불교’, ‘한국의 파벌’, ‘전봉준 혁명의 기록’, ‘이이화의 한 권으로 읽는 한국사’등 1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7-30

반 고흐 사후, 반 고흐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해바라기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책은 많다. 국내에 소개된 반 고흐 관련 서적만 검색해봐도 수십 종에 이르고 전문가 혹은 애호가가 아니라면 어떤 책이 필요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선택이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반 고흐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아트북스).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놀라움’ 그 자체다. 그 누구도 이 책의 지은이처럼 반 고흐를 연구하고 특정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반 고흐 사후, 제1, 2차세계대전 등 험난한 역사 속에서 작품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팔려나가 현재 우리들 곁으로 오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 험난한 여정과 궤적을 반 고흐 전문가 마틴 베일리가 수년에 걸쳐 연구하고 새로 찾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1980년대부터 반 고흐 연구를 시작해 집중적으로 글을 써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들에게 다시금 반 고흐라는 예술가의 진면목을 조망하면서 특히 반 고흐의 명작 가운데 해바라기 정물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눈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돋보이는 최고 품질의 작품 이미지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그 어떤 반 고흐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고화질의 도판은 예술가가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와 기법을 보다 명확하게 살펴보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책은 총 1부와 2부로 구성됐다. 1부는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우며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을 탄생시킨 반 고흐 생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2부는 시대의 불운을 온몸으로 부딪치고 종국에는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한 예술가가 남긴 작품이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떤 경로로 지금의 장소에 가게 됐는지 그 자취를 추적한다.책은 다시 열다섯 개의 챕터로 나뉜다. 이는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 중에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꼽히는 노란 배경에 만개한 해바라기를 그린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의 송이 수와 같다.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에 사용된 꽃병과 반 고흐가 귀를 훼손한 사건의 전말, 반 고흐에게 캔버스를 팔았다는 어느 노부인과의 만남, 그리고 1914년과 1939년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참혹한 전쟁 속에서 폐기 처분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아 지금의 소장처에서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맞이하는 걸작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 등 반 고흐의 삶과 작품 속에 녹아든 이야기가 쏟아진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7-23

극우주의의 회귀… ‘신극우주의의 양상’ 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장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1967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극우주의의 부상’을 주제로 한 강연 ‘신극우주의의 양상’(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이 강연록은 오스트리아 매체 자료실에 녹음본의 형태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독일에서도 지난해 처음 출판됐는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아도르노 다시 읽기’ 붐을 일으켰다. 반유대주의 및 파시즘의 원인과 구조를 해명하는 일을 필생의 작업으로 삼았던 이 사상가가, 독일에서 또다시 극우주의 정당이 득세하는 것을 바라보며 펼친 이 강연은, 전 세계적으로 극우주의가 회귀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불러일으킨다.이 강연은 1964년 서독에서 창당된 극우정당 NPD(독일민족민주당)가 1966~67년 주의회에서 의석을 얻으며 부상하는 상황을 마주하며, 신극우주의의 양상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 사회주의학생연합의 제안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그 자신이 유대계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독일 패망 후에야 고국으로 되돌아왔던 아도르노는 오랜 세월 파시즘 문제와 씨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극우주의의 양상을 분석한다.아도르노는 첫번째로 극우주의를 배태하는 원인이 경제적·사회적 구조 속에 내재해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특정 계층 집단이 위기에 내몰리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극우주의의 불씨는 꺼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국제정치적 차원과 민족주의의 문제와 관련된다. 아도르노는 당시 냉전 체제하에서 개별 국가들의 주권 및 결정권이 심각하게 제한당하고 있다는 느낌과 일종의 박해망상이 사람들을 극우주의에 넘어가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셋째는 극우주의를 심리적 차원에서 분석한다. 아도르노는 미국 망명 시절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수행했던 대형 프로젝트인 ‘권위주의적 인격’ 연구를 여러 차례 인용하며 파시즘에 쉽게 이끌리는 인간형, 즉 권위주의적 인격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의 특성을 숙고하고 문제화하는 것이 상황을 이해하고 대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조언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7-23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이들에게…

“지금 깨어 있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법륜 스님 말 중)삶에 지치고, 관계에 상처받고, 부조리한 세상에 고통받는 이들에게 인생의 길잡이가 돼준 ‘법륜 스님의 행복’(나무의 마음)이 독자들의 큰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을 담아 양장본 특별 에디션으로 출간됐다.지금 가까운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 에디션의 구성은 화가 김정숙의 작품이 표지로, 책 속에서 가려뽑은 100개의 문장을 통해 마음을 다리는 행복 100일 필사노트, 그리고 오디오북 전체 낭독(7시간 분량의 전체 낭독본) QR코드를 처음으로 선보인다.많은 사람들이 저자에게 연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식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직장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적 갈등과 세상의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질문 하나하나가 다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본은 행복에 관한 것이다.이 책은 그 간절한 물음에 대한 응답이자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전국방방곡곡은 물론 세계 115개 도시의 강연장과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자에게 던진 질문과 그 답변 중 가장 많은 공감과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내용을 엄선한 법륜 스님의 행복 안내서로, 지난 2016년 출간돼 30만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지금까지 법륜 스님이 세상에 내놓은 책들이 주로 즉문즉설(卽問卽說)을 통해 질문자들과 나눈 인생 상담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 것이었다면, 이 책은 온전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는 수행차원에서 개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주로 강조했다면 이 책에서는 행복의 수레를 끄는 또다른 바퀴인 사회문제도 함께 다루고 있다. 결국 개인의 마음과 사회적 조건을 함께 가꿔야 온전하게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법륜 스님의 행복론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무의식속에 잠재된 인간의 심리와 욕구, 관계 맺기에서 오는 갈등과 같은 개인적 문제를,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사는 게 바쁘다거나 직면한 현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해왔던 사회의 구조적 모순까지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전체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지혜로운 해법을 들려준다.이 책은 현실생활과 동떨어진 공허하고 허황된 이야기는 모두 걷어내고 오직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달콤하고 친절한 말로 건네는 위안과 위로를 기대한 이들에게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정곡을 찌르는 저자의 화법이 너무 냉정하거나 직설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부만 보고 세속을 떠난 출가자가 물정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평가절하 할지도 모른다. 특히 종교가 다르고, 질문자와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이라고 외면하기 쉽다. 그러나 법륜 스님은 어떤 질문을 받든 질문자의 처지를 고려하면서도 한편으로 남 탓, 환경 탓하다가 결국에는 자기비하와 자기학대를 거듭하며 고통을 확대재생산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더는 괴로움 속에서 헤매지 않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과 해법을 담아 이야기한다.수많은 상담 사례와 법륜 스님의 경험담을 통해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어떤 삶을 살고 있더라도 당신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다만 남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쌓아서는 안 된다.”냉정하지만 따뜻하고 단순하지만 명쾌한 법륜 스님의 행복론을 읽다보면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수많은 불합리한 신념과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나와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종교는 물론 사회, 정치, 삶 등 여러 분야에 두루 통찰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법륜 스님은 실천하는 종교인이자 즉문즉설을 통해 10대는 물론 노년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넘나드는 인생의 멘토로서 메마른 세상에 행복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7-16

혼란한 현대인을 위한 ‘노자’로 가는 바른 길

“덜어 내고 덜어 내어 무위하면 이루지 못하는 게 없다”인생의 의미를 남김없이 터득한 현명한 ‘늙은이’, 혹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융성했던 주나라의 수장실 관리. 바로 2천500여 년 전의 사상가 노자(老子)의 상이다. ‘도(道)’, ‘자연(自然)’, ‘무위(無爲)’, ‘인위(人爲)’, ‘비움(虛)’, ‘고요함(靜)’ 등등, 노자는 오늘날 우리의 정신을 주조한 아득한 옛적의 틀이다. 이러한 노자의 사상을 역주한 이석명의 ‘노자’(민음사)가 출간됐다.‘노자’또는 ‘도덕경’이 동양 사상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니, 동양 철학의 또 하나의 축인 ‘논어’와의 비교 속에서, 또한 서양 정신사와의 평행 속에서도 숱하게 논해져 왔다. 그럼에도 고갈됨 없이 늘 새롭게 읽히는 ‘노자’는 혼란한 현대인을 위한 고전이다. 노장 철학의 우뚝한 권위자인 역자 이석명은 30여 년의 연구로 소박하고 조야한 옛 판본으로부터 정련된 주석가들의 저작까지 망라해 노자로 가는 바른길을 연다.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 홀로 흐리멍덩할” 때 “흐릿하다가도 고요히 가라앉아 서서히 맑아지라” 이른 노자의 뜻 그대로,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스스로 노자에 다가갈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7-16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나기를”

“열과 성을 다한 책이기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 장 한 장 곱게 펼쳐 잘 읽어 보면서 번뇌에서 벗어나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경주 흥륜사 한주 법념 스님이 생애 처음으로 그동안 써 온 산문을 책으로 묵었다.법념 스님의 첫 산문집 ‘종이 칼’(민족사)은 여느 수필가들의 수필처럼 구구절절 풀어낸 글이 아닌, 오랜 수행을 하고 나서‘익은’그만의 직관력과 예리한 감성적 언어로 쓰여진 글들이 산문이 아닌 장편의 대서사시를 읽는 듯하다.책 제목은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는 동안 금강보검과 같이 백팔번뇌를 베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 제목을 ‘종이 칼’로 정했다.“종이 칼에 베였던 상처가 양손에 보이지는 않으나 휴유증이 남아 있어 새 책이 오면 조심스럽게 다룬다. 혹여 베일까봐 두려워서다. 돌이켜 보니 종이 칼은 내게 자극제였다. 도전정신을 길러준 고마운 존재일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준 도반이라고 여겨진다. 더불어 삭도-면도칼도 지금껏 승려로서 정진할 수 있게 만든 일등공신이랄 수 있다. 칼은 남을 다치게 하지만 때론 베인 상처가 자극제가 되어 매사에 조심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다.”(‘종이 칼’ 부분)스님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가까운 일상들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지혜를 찾아내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며 성찰하도록 이끈다. 옛 과거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과 자연의 섭리에 대한 스님만의 생각도 엿볼 수 있다.“푸른 벚꽃은 인공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자연 그대로다. 벚꽃이 지는 게 아쉬워 연푸른 잎을 다시 피워 내다니…. 덕택에 봄을 두 번 느껴볼 수 있지 않은가. 연둣빛 새싹을 ‘푸른 벚꽃’이라고 표현한 발상이 신선하다. 그뿐이랴. 화려한 벚꽃과 견주어 푸르른 어린잎에 꽃만큼 높은 가치를 매겨주는 감성도 놀랍다.”(‘푸른 벚꽃’부분)국화, 나리, 백합, 아기범부채, 매발톱 등 직접 꽃밭을 가꾸고 집 안에 화분을 기르는 등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며칠 새 잠포록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오랜만에 해가 선을 보인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받고 꽃들이 함빡 웃는다. 그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다림 끝에 맛보는 달콤한 기분이리라’는 어구에서 스님의 마음이 엿보인다.책이 저절로 읽히는 이유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순결하고 따스한 애정과 스님이란 오랜 사유를 해 본 자의 지혜로움, 그리고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의미가, 디디고 지나간 사람의 흔적은 없어지지만, 오늘도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남아 도움을 주는 존재. 디딤돌 같은 은근함을 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스님의 손 끝에서 한 글자씩 쓰여졌을 문장들이 때로는 아프게, 아름답게 피어나는 하얀 눈꽃 빨간 홍매화 같다.1972년 혜해 스님을 은사로 불교에 입문한 법념 스님은 15년간 제방선원에서 안거 수행했다. 1992년부터 10여 년 간을 일본에서 불학에 매진했다. 이번 수필집은 온전히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진작에 향곡 큰스님의 일화를 정리한 ‘봉암사의 큰 웃음’을 출간해 관심을 받았다. 취미로 했던 자수는 전시회를 열 정도로 빼어나다고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7-09

예술가들은 신화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미술에 대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쉽고, 편안하게 풀어주는 미술이야기꾼, 이주헌 미술평론가의‘신화의 미술관’(아트북스)은 지금까지 책 속 일러스트레이션으로만 보아온 미술작품을 전면에 내세운 ‘신화로 보는 미술 이야기’이다. 책에서 저자는 “신화는 상상력의 소산이며, 미술가들은 신화의 내용을 항상 그대로 반영해 작품을 제작하지만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 미술작품을 따로 떼어 살펴볼 필요가 있고, 또 우리가 유럽의 미술관에 가면 보게 되는, 신화를 주제로 한 미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이들 작품을 ‘신화미술’이라고 정의하고, 좀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신화의 미술관’은 그런 의미에서 신화를 재창조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선별해 감상하게 하며, 더 나아가 상상의 폭을 넓혀준다.책은 그리스신화의 주요 캐릭터들과 일화들을 서양의 신화미술 작품들을 통해 살펴보게끔 구성됐다. 총 두 권으로 묶어 출간될 예정으로, 이번에 펴낸 ‘올리포스 신과 그 상징 편’에서는 신화 속 주요 캐릭터인 올림포스 신들을 중점적으로 표현한 미술작품들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특히 책에서 소개하는 미술작품들은 고대에 만들어진 조각과 도기화도 일부 실려 있으나, 대부분 르네상스 이후 제작된 그림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는 이 책이 신화미술을 ‘감상’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어 우리에게 익숙한 르네상스 이후의 작품들이 그 목적에 걸맞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고대의 미술작품들도 얼마든지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작품들은 감상 이전에 숭배와 의식을 위해 제작된 것들이 많기에 예술적 풍미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아테나가 지혜를 상징하고, 아프로디테가 미를 상징하는 데서 알 수 있듯 그리스신화의 신들은 세계의 다양한 가치나 덕, 현상을 상징하는 존재들이고, 신들 또한 그들의 표지물을 통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상됐다. 그런 만큼 이들을 동원한 다양한 주제화와 알레고리화가 많이 그려졌는데, 그 표지와 상징의 역할을 알면 코드를 풀어나가듯이 그림을 해석할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7-02

김소월·백석·윤동주·이상 그리고 이용악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이 한국 대표 시인들의 작품에 감상글을 덧붙인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마음산책) 시리즈를 펴냈다.김소월, 백석, 윤동주, 이상, 이용악 등 다섯 시인의 시를 소개하고 옆쪽에 시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사연을 적었다. 시인별로 한권씩 총 다섯권이 출간됐다.‘진달래꽃’,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서시’, ‘오감도’, ‘오랑캐꽃’처럼 각 시인의 대표작부터 김소월의 ‘엄숙’이나 이용악의 ‘집’처럼 비교적 덜 알려진 시도 넣었다.김용택 시인은 기존의 유명한 시들을 다섯 시인의 ‘정면’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다섯 시인에게 고정시켜놓은 시대적, 시적, 인간적인 부동의 정면을 잠시 걷어내고 그들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다섯 시인이 평생 동안 펼쳤던 시세계의 정면뿐 아니라 측면과 뒷면까지, 다양한 면모를 두루두루 살펴보고 이야기를 들려준다.시의 편편마다 덧붙인 김용택 시인의 감상글은 김소월과 백석, 윤동주, 이상, 이용악의 시로 가닿는 징검돌이자 디딤돌 역할을 한다. 조심조심 디뎌 밟듯 시로 향하는 그의 글은, 자체로 또 한 편의 시로 읽힌다.김용택 시인은 김소월을 두고 “100여 년 전의 시인이지만 밤이면 내 머리맡에 떠 있는 한 식구 같은 달”과 같다고 표현한다. 김 시인은 김소월의 시를 이별과 그리움, 한(恨)의 정서로만 읽는 것은 경계한다. ‘초혼’을 읽고 나서는 “단순하게 읽으면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이 구절만 남는다”라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인다.평안도 방언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데다 소소한 일들을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나가듯 시를 쓴 백석의 시는 34편을 가려 뽑았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백석의 시를 읽는 김용택 시인의 어조는 서정적이다. 백석 시에 자주 나오는 평안도 방언을 두고 “백석의 모든 시에는 우리가 모르는 지명이나 방언이 많아 늘 검색을 해야 한다”고 꼼꼼히 따져 읽다가도, “읽다가 잘 모르는 것은 그냥 넘겨도 시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라며 한 편의 시 자체로 감상한다.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깨끗한 영혼의 시인, 윤동주의 시를 두고 김용택 시인은“어른이나 어린이가 읽어도 되는 시와 동시가 많다”고 말한다. 윤동주의 맑은 영혼이 고스란히 비치는 시들은 어른과 어린이가 따로 읽는 시가 아닌, 누구나 읽어도 좋은 윤동주의 ‘착하고 선한 시’인 것이다.김용택 시인은 이상의 시가 놀랍도록 현대적이고 뜨겁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전율한다. 또한 1910년, 한일병탄의 해에 태어나 1937년에 죽은 이상의 생애를 두고 아픈 시기에 태어나 짧은 생을 살다간, 슬픈 사람이었다고 표현한다. 때론 이상의 시를 읽는 것이 쉽지 않음을 토로하기도 하고, “무수한 생각들이 일어나 달리고 뛰고 난다”며, 숨가쁘게 이상의 호흡을 따라가기도 한다.김용택은 30여 년간 섬진강 근처 마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살았다. 1982년 시인으로 등단해 ‘섬진강’, ‘맑은 날’, ‘강 같은 세월’, ‘울고 들어온 너에게’ 등의 시집을 펴냈고,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등 산문집도 냈다.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7-02

정조의 리더십 코드는 ‘위민’

정조의 표준 영정. /더봄출판사 제공우리 역사상 최고의 개혁군주로 평가받는 정조(正祖)는 신궁(神弓)이었다. 그가 활을 쏠 때면 50발 중 49발을 쏘아 명중시켰다. 그런데, 마지막 한 발은 과녁을 향해 쏘지 않고 허공으로 날리곤 했다. 50발을 모두 명중시킬 수 있었으나 스스로 겸손하기 위해 마지막 한 발을 쏘지 않은 것이다.여기에는 주역(周易)에 통달했던 정조의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주역 점(占)을 칠 때는 보통 시초(蓍草)라고 하는 50개의 산가지를 사용하는데, 그중 1개는 태극(太極)을 상징해 사용하지 않고 49개의 산가지만 가지고 주역 점괘를 뽑는다. 그리고 그 점괘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변화의 숨은 뜻을 찾아낸다. 이에 착안한 정조는 1발의 화살을 제왕의 산가지로 여겨 아예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조선의 제22대 국왕(재위 1776~1800년)이었던 정조는 개혁과 겸손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대표적 지도자였다. 정조 전문가인 김준혁 한신대 교수는 신간 ‘리더라면 정조처럼’(더봄출판사)을 통해 이 ‘정조의 리더십 코드 5049’의 비밀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정조 리더십은 비단 봉건왕조 시대에 통용됐던 군주의 리더십이 아니라 21세기에도 충분히 응용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끊임없이 단련하고 훈련해 스스로 군사(君師)로 자리매김하다군주의 사적 행위는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 해도 곧 공적 행위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조는 말과 행동에 있어 매사 신중하고, 늘 근엄함을 잃지 않았다. 정조는 신료들에게 늘 ‘사중지공(私中之公), 손상익하(損上益下)’를 강조했다. 사적인 일로부터 시작하지만 반드시 공적인 것으로 연결되도록 강조했고, 윗사람은 덜 가져도 아랫사람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공적인 일을 하면서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익을 얻었을 때 함께한 이들에게 고른 분배를 하지 않고 독식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정조는 국왕으로서 사적인 이익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공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며, 누구보다 따스하면서도 친인척과 측근들의 잘못은 추상같이 다스리는 위엄도 보여줬다. 특히 그는 군주로서 엄청난 양의 정무를 소화하면서도 학문에 소홀하지 않았고, 신체 단련도 충실히 했다.또한 불교와 도교, 그리고 서학(西學)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배척당하던 그 시대에 정조는 성리학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상은 아니라고 단호히 이야기했다. 그러한 정조의 정신은 보다 높은 단계의 실학으로 발전했고, 정조시대 조선의 문화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 길을 나서서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스스로 공부한 의학지식을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사용하며, 외세의 침입을 막고 강력한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스스로 병법과 무예를 익혔다. 이러한 솔선수범과 소통의 리더십은 관료와 양반사대부 그리고 백성들을 감동시켜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경문화의 시대를 만들어냈다.△정조 리더십의 비밀은 모든 백성들을 위한 위민사상에 있다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라는 뜻이다. 즉 백성은 임금을 떠받들지만 임금이 잘못하면 백성들이 임금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정조는 항상 백성을 물로 보고 임금을 배로 보았다. 그래서 정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이 어느 천은 작은 것이기에 작게 비추고, 어느 강은 큰 것이기에 더 많이 비추어서는 안 된다.” 국왕이 힘 있고 돈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고,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에게는 적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베풀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6-25

‘세인트 테레사’ 성인 추대 기념 묵상집

“어제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겐 지금 오늘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시작합시다.”(‘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p.112)“침묵은 우리가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다른 이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이 침묵이 필요합니다.”(‘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p.157)세인트 테레사 (1910-1997) 성인(聖人·SAINT) 추대를 기념해 이해인 수녀가 옮기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천한 테레사 수녀의 묵상집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판미동)가 출간됐다.테레사 수녀는 이 책을 통해 아프고 가난한 사람이 늘어나는 시기야말로 종파를 떠나 모든 사람을 향한 기도가 필요한 순간임을 역설한다.1999년 국내 첫 출간 이후 50쇄 이상 판매되며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 책은 테레사 수녀가 2016년 성인으로 시성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문을 비롯한 틱낫한, 지미 카터 등 13인의 추천사를 수록한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였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서문에서 테레사 수녀가 세상을 향해 베푼 자비는 “모든 어둠을 밝히는 빛”이었음을 밝히며, 그녀의 정신을 이어받아 어려운 시기일수록 “그녀가 사람들에게 건넨 미소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전달하자”고 강조한다.1994년 인도 콜카타에서 직접 테레사 수녀를 만나고 돌아온 이해인 수녀가 자신만의 따뜻한 문체로 번역해 냈다. 이해인 수녀는 첫 출간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요즘처럼 안팎으로 힘든 때일수록 기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라고 전하면서 이 시대에 기도가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6-18

유홍준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여행”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의 실크로드 여행이 가장 감동적이었다”우리 시대 대표적인 인문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실크로드 답사 대장정을 완료했다.최근 출간된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3’(창비)은 전적으로 실크로드 상 도시와 지역을 다룬다.지난해 4월 출간된 중국편 1~2권에서 실크로드를 찾아 서안에서 시작한 여정은 하서주랑과 돈황을 거쳐 이번 3권에서 본격적으로 신장 위구르자치구 오아시스 도시들과 타클라마칸사막을 탐방한다. 현장법사와 손오공이 불경을 찾아 지나간 길, 고대 동서문명 교역의 중심, 탐스러운 과일과 고고학 보물들이 넘쳐나는 곳. 신장 지역 실크로드에는 환상적인 풍광과 다채로운 이야기가 넘쳐난다. 유홍준 교수와 답사 일행은 투르판, 쿠차, 호탄, 카슈가르 등 대표적인 오아시스 도시들을 거치며 다종다색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는 특별한 여정을 떠난다. 답사여행의 대명사 유홍준이 직접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여행”이라고 평가할 만큼 답사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이 연달아 펼쳐진다.여러 다른 견해가 있지만, 독일의 동양학자 알베르트 헤르만 이후 많은 학자가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실크로드의 개념은 중국 서안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시리아에 이르는 총 6천400㎞를 뜻한다. 이 경우 실크로드는 크게 동부, 중부, 서부 구간으로 나뉘는데 중국편 1·2권에서 다룬 부분이 동부 구간이며, 이번 3권의 오아시스 도시 순례는 곧 실크로드의 중부 구간에 해당한다.중부 구간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사막 타클라마칸을 관통하는 구간이며 좁은 의미의 실크로드는 바로 이 구간을 가리킨다고 유 교수는 설명한다. 책에서 다루는 곳은 타림분지를 둘러싸는 천산남로(실크로드 중로)와 서역남로(실크로드 남로) 상에 위치한 5개 도시다. 구체적으로는 천산남로의 투르판과 쿠차, 서역남로의 호탄과 카슈가르, 그리고 모래 속에 파묻힌 실크로드 중로와 남로의 분기점 누란 등이다.유 교수는 신장 지역 실크로드 답사의 핵심으로 투르판과 쿠차를 꼽는다.투르판은 실크로드 북로와 중로가 갈라지는 길목에 위치해 고대로부터 실크로드의 대표적인 오아시스 도시로 꼽힌다. 이곳엔 대형 고대도시와 무덤, 길게 펼쳐진 포도밭과 인공수도 카레즈, 베제클리크석굴 등 불교유적과 이슬람 건축 유적 등이 남아 있어 답사객이 꼭 들러야 할 곳 천지다. 이번 실크로드편 답사 3분의 1이 투르판에 대한 이야기일 만큼 볼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투르판 불교 유적을 대표하는 베제클리크 석굴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을 배경 삼아 수려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석굴사원이다. 투르판은 오아시스 도시 중에서도 정치적으로 부침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그 역사를 잘 보여주는 곳이 교하고성과 고창고성이다. 이 두 고성은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옛 도시터로, 차사국, 고창국 등 투르판 지역에서 흥망한 서역 국가들의 역사를 몸소 증언한다. 다른 실크로드 유적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빛나는 장대한 도시 유적지다.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창비 제공투르판에서 천산남로를 따라 좀 더 들어가면 화려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고대 구자국의 도읍 쿠차가 나온다. 쿠차 답사의 핵심은 불교 유적지 탐방이다. 키질석굴, 쿰투라석굴, 수바시 사원터 등 신장 지역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들이 쿠차에 몰려 있다. 특히 키질석굴은 신장 최대 규모의 석굴로, 벽화를 비롯한 많은 유적이 파괴됐으나 여전히 화려한 불교미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또 최초로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쿠마라지바와 조선족 화가 한락연의 이야기가 답사객을 매료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동아시아 불교가 성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쿠마라지바의 일생과 업적을 되짚은 답사기의 어조가 한층 고조된다.그밖에 도굴로 크게 훼손된 쿰투라석굴과 절터만 남아 있는 수바시사원 역시 고대 쿠차의 화려한 불교문화를 후세에 전하는 중요한 유적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6-18

‘장기 고을에 가면 조선왕조 500년이 있다’

조선시대 220여 명의 유학자들이 머물다간 포항 장기면의 유배 역사를 담은 책 ‘장기 고을에 가면 조선왕조 500년이 있다’(경북매일신문출판)가 출간됐다.이 책은 포항의 향토사학자인 이상준씨가 지난해 6월 21일부터 올해 3월 11일까지 35회에 걸쳐 본지에 게재한 기획연재물 ‘장기에 가면 조선왕조 500년 역사가 보인다’를 엮은 것이다. 본지는 창간 30주년을 맞아 포항에 숨겨진 조선시대의 굴곡진 역사를 반추하고 그 속에 담겨진 선조들의 정신과 문화를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책으로 펴냈다.‘유배문화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고려말 조선초 설장수를 비롯해 송시열·김수흥·정약용 등 200여 명의 유배 현장인 장기현을 중심으로 조선조 당쟁의 내막과 실상을 검증된 문헌을 통해 실증적으로 서술하고 있다.특히 장기현 유배인의 면면은 남이와 이시애로 대표되는 무신 계급, 그리고 정감록에 연루돼 역모로 몰린 사람들, 사육신 일가, 환관이나 노비 등 각계각층을 망라한다. 책은 각각의 유배생활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며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유배지의 실상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인다.이에 대해 이민홍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추천의 글에서 “이 책은 당쟁에 수반된 유배문화에 무관심한 기존 학계의 피상적인 검토 수준에 머물렀던 유배인 가족에 초점을 맞추고, 귀양지에서의 생활상을 결부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특히 왕위승계와 수반된 당쟁 및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이들의 귀양지를 유배문화로 격상시켜 그 내막을 최초로 심도있게 고찰한 것으로는 저자가 최초”라고 필자의 연구를 높게 평가했다.저자는 왕위 계승과 당쟁의 재물이 돼 장기로 귀양 온 유배객들이 남긴 다수의 서정적 창작물을 함께 인용해 유배인의 고뇌와 생활상을 형상화했다.또한 장기 집권을 위해 아들을 잔인하게 죽인 영조와 동아시아의 주역이 만주족의 청나라로 바뀐 대세를 외면한 친명사대주의자들에게 희생된 광해군의 비극도 유배와 결부시켜 서술했다.500년간 당쟁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선시대 권력 분쟁의 산물인 유배문화에 대한 기획기사는 어느 지역 언론에서 볼 수 없는 것으로 지역사회 발전과 조선시대 유배에 대한 필자의 공부와 노력이 담겨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저자 이상준씨는 “유배인들이 남긴 사상과 학문을 지역의 소중한 유배문화 자원으로 활용한 이 책이 장기유배문화 체험촌 운영과 관광해설, 논문연구 등 여러 방면에서 유의미한 길잡이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이 책의 출판기념회는 오는 7월 2일 오후 4시 포항수협 송도회센터 3층 대강당에서 열린다. /윤희정기자

2020-06-17

호기심으로 다가서는 박물관 스토리텔링

박물관은 그 도시의 역사 그리고 문화의 바탕과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기본이 된다. 도시문화의 거울이 되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다. 그 중요성만큼이나 지금 세계 박물관은 유물의 수집 및 전시의 기능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연구와 사회 교육기관으로서 봉사하고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능동적인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 운영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구교육박물관의 김정학 관장이 36곳의 국내외 박물관 답사기를 냈다.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곰곰나루)이다.“설립자, 운영자, 관람객의 생각의 높이가 맞는 박물관이 빛나 보였습니다.”, “메모를 하면서, 나중에 다른 박물관과 비교해서 얘기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모은다는 마음으로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김 관장은 박물관을 찾을 시민들에게 박물관이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배우고 즐기는 제3의 삶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책은 그가 지난 10년 동안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미국·캐나다·호주의 이색 박물관 36곳 현장을 찾아 박물관 답사기로 읽을 수 있게 구체적인 설명과 안내가 이어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박물관 스토리텔링 책이다.책을 펼치면 여러나라의 박물관들이 각각 18개의 주제에 담겼다. 역사와 전쟁, 생태, 도시, 레트로, 어린이, 그림, 죽음까지 흥미로운 박물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우리의 도시를 사랑하는 법’(미국 시애틀 역사산업박물관(MOHAI)·일본 오사카 ‘생활의 금석관(今昔館)’), 거듭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아픈 역사의 트라우마(경기 광주 ‘나눔의 집’ 일본군‘위안부’역사관·미국 LA ‘관용의 박물관’), 산과 바다, 오직 제자리에서 박물(博物)을 이루는 그곳(경북 봉화 청량산박물관·일본 모지코 간몬해협박물관),‘인간의 미래를 약속하는 곳’(충남 예산 한국토종씨앗박물관·캐나다 오타와 캐나다농업식품박물관) 등 주제에 맞춰 저마다 특색있는 박물관들을 소개하고 있다.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 /곰곰나루 제공김 관장은 20년 동안 한국과 미국 등에서 방송사 프로듀서를 지냈고, 영남대 천마아트센터 총감독, 국악방송 한류정보센터장, 구미시 문화예술회관 관장 등 역사와 문화 현장에서 실무진으로 일한 뒤 지난 2018년 6월부터 대구교육박물관 초대관장으로 부임하면서 박물관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그는 “미국의 한 사회학자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곳을 ‘제3의 장소’라고 규정했는데, 저는 그곳이 박물관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기호(sign)’ 같은 존재가 가득하고, 지적 호기심이 다양한 재미로 이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또 “지금 세계는 감성 기반의 프로그램을 첨가한 ‘마인즈 온(Minds On)’ 박물관이 대세다. 박물관이 ‘대중교육시대’의 주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마인즈 온 박물관’의 시대가 왔다는 의미로 보면 될 것”이라며“이 책으로 소개하는 36곳 박물관들은 만든 이의 의지와 지키는 이의 생각과 찾는 이의 마음이 삼합(三合)을 이뤘다고 믿으며 무릎을 쳤던 곳이라 꼭 한번 방문을 권한다”고 전했다.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세계 박물관의 유형이 ‘눈으로 보는(Eyes On) 박물관’에서 ‘체험하는(Hands On) 박물관’으로, ‘이해하는(Minds On) 박물관’에서 ‘느끼는(Feels On) 박물관’으로 이행한다는” 김 관장의 박물관 론에 대한 퍼즐이 조금은 맞춰진다. 이번에 소개되지 못한 더 많은 박물관 이야기가 아직 그의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증도 더해진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6-11

낙동강 최후 방어선 ‘포항 6·25 전쟁사’ 책으로

“6·25전쟁 당시 포항을 사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다”포항의 지역 인문학 연구 및 발굴을 위한 한 자생적 연구모임이 사재를 털고 발품을 팔아 포항지역 6·25전사를 총망라한 책을 출간했다. 향토사학자 이상준 씨와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인 김진홍 씨, 의사인 이재원 씨, 기자 출신 프로듀서인 김정호 씨가 공동으로 지난 2018년부터 전사 편찬에 착수, 2년 만인 지난 3일 ‘포항 6·25’(도서출판 나루)를 펴낸 것이다.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자생적 단체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전사를 발간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애국정신이 어떻게 세대를 이어 승계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사진으로 보는 포항 6·25, 포항 6·25전쟁사, 10명의 6·25전쟁 생존자 증언, 포항의 6·25전쟁사 연표 등을 510쪽에 담아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포항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6·25전쟁이 발발하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기간에 북한군에 점령당했다. 부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서 포항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마지막 보루였다. 기계·안강전투, 소티재전투, 포항여중전투, 비학산 전투, 송라 독석동 철수작전, 미군 포항상륙작전, 형산강 전투, 천마산 전투 등 포항 전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수많은 희생 끝에 포항을 사수했다.포항은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최후 방어선의 하나로 엄청난 격전지였을 뿐만 아니라 반전의 계기가 됐던 주요한 전투지이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 전세의 전환점이 된 인천상륙작전보다 2개월여 앞서 실시된 미군 포항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편찬된 6·25 전쟁사에서 이같이 치열했던 포항 전투에 대해 비중을 두거나 상세하게 다루지 않았다.포항지역학연구회 연구위원들은 이런 포항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6·25발발 70주년을 기억하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미국, 일본은 물론 국내외의 주요 정보를 직접 찾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거쳐 이 책을 펴냈다. 책의 내용은 그동안 한 번도 출판된 적 없는 방대한 자료와 객관적 사실들로 꾸며졌다.미국 뉴욕타임즈와 라이프지 등 유수의 여론기관과 미국회도서관, 일본기자협회, 한국 국사편찬위원회 등에서 발굴한 작품성과 현장성을 갖춘 다수의 사진을 수록한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총 4부로 구성된 책은 6·25전쟁의 개관에서부터 포항지역 전쟁사, 그 밖의 이야기들로서 전쟁 전 포항 지역에서 발생한 좌우익의 충돌, 전장의 한가운데서 발생한 억울한 사연,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쟁의 이야기들까지 하나하나 총망라하는 ‘최초의 집대성’ 사료로서의 가치가 특별하다.포항지역학연구회 이재원 대표는 “6·25전쟁 당시 이름 없이 산화한 참전용사와 수많은 호국영령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은 물론 포항이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기획, 제작했다”며 “6·25전쟁 중 포항의 전쟁사가 곧 대한민국 전쟁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다. 이를 통해 포항인의 자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출판 의도를 전했다.한편, 포항지역학연구회는 지역 인문학 연구 및 발굴을 통해 포항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지역의 교육계, 학계,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12명이 지난 2018년 창립해 그동안 ‘용흥-용흥동 이야기’, ‘포항의 숲과 나무’ 등의 연구 결과물을 생산한 바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6-04